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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일기가 아닌, 정치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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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으로 돌아가자'라는 슬로건은 식상하다 못해 이제 곰팡이가 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오래되었지만, 사실 이것만큼이나 도시생활에 지친 이들에게 일탈의 충동을 느끼게 하는 말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이른바 귀농생활을 주제로 하는 수기는 자연스럽게 책을 읽음으로서 갑갑한 도시생활을 벗어나는 대리만족을 느끼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있어서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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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으로 돌아가자'라는 슬로건은 식상하다 못해 이제 곰팡이가 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오래되었지만, 사실 이것만큼이나 도시생활에 지친 이들에게 일탈의 충동을 느끼게 하는 말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이른바 귀농생활을 주제로 하는 수기는 자연스럽게 책을 읽음으로서 갑갑한 도시생활을 벗어나는 대리만족을 느끼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있어서 어필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소비자가 있으면 생산자도 있는 법. 자연스럽게 출판계에서 귀농생활을 소재로 한 책들은 너무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개인적인 경험을 다룬 수기에서부터, 귀농에 필요한 지식들을 다룬 책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다양한 책을 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한 번 쯤은 접해봤을 법한 이런 '귀농'에 대한 책들은, 사실 전부 엇비슷한 형태를 가진다. 어차피 자연으로 돌아가자라는 슬로건 자체가 상당히 단편적인 이야기만을 꺼내놓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수기는 개별적이지만, 동시에 공통적이다.

그런 점에서 '이장이 된 교수, 전원일기를 쓰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귀농수기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아니, 차라리 벗어나지 못했다면 다행일까. '이장이 된 교수...'는 조금 더 특별한 방법으로 독자들의 정신을 멍하게 하는데, 차라리 귀농수기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나았을껄, 이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그렇다고 해도 어차피 내용은 비슷하다. 시골로 내려가게 되는 과정부터 시작하여, 귀농 후에 겪게 되는 이야기들 모두, 분명히 개인적인 경험이기에 특별할 수 밖에 없지만 어디선가 한 번쯤은 읽어봤음직한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장이 된 교수...'가 다른 귀농수기와 차별성을 가지는 이유는, '전원일기'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뭐 아버지와 어머니의 과거를 줄줄이 읊어내는 것이야, 개인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수기의 특성을 잘 표현하고 있고 그로 인해서 귀농-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풍부하게 만들어내니까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도대체 왜 '전원일기'라는 테마로 묶은 수기집에서 한미FTA부터 시작하여 촛불시위 그리고 세종원안과 심지어는 현재 정치에 대한 비판까지 읽어야 하는가,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물론 개인적으로 쓴 글을 엮었다는 점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그게 목적이었으면 함부로 '전원일기'라는 테마를 붙여서는 안된다. 제목은 책을 말한다. '전원일기'라는 지극히 목가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정작 내용은 정치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면, 본인처럼 정치라면 두드러기가 날 정도인 이들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짜증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차피 정치에 대한 이야기야 서로간의 입장이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을 이해한다 치더라도, 난 이런 이야기를 읽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고.

그 뿐만 아니라 이런 식의 전원일기가 불편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가 일구어낸 '귀농' 또한 실질적인 귀농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에 기인한다. 그는 속세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땅의 소중함을 알게 해 준다는 점에서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에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자연으로 돌아가는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또 다시 자본으로 귀결된다. 물론 그것은 사회에 귀속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속성 때문이긴 하다. 그리고 전형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럼에도 '이장이 된 교수...'가 불편한 이유는, 어지간한 월급쟁이들이 버는 돈으로는 귀농할 수 없다는 것에 기인한다. 농촌에 땅을 구하고, 집을 사는 것 조차 어지간한 돈으로는 쉽지 않다. 결국 귀농도 자본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그런 이들이 과연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운운할 수 있는 자격이 될까?

물론 위에서 언급한 모든 요소들이, 개인적 특성-수기라는 점에 기인한다면 별거 아닌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노골적인 정치얘기와, 자본과 귀결될 수 밖에 없는 귀농에 대한 찬양은 결국 그의 '귀농'이 표면적인 귀농에 불과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는 감정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e*******a 2010.08.04.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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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약과 겸손을 생활화해야 한다
"절약과 겸손을 생활화해야 한다" 내용보기
절약과 겸손을 생활화해야 한다 박용범 독서작가(2022년)     P34 특히, 이반 일리치 Ivan Illich 선생이 '간디의 오두막'을 방문하고 쓴 글에서 "우리가 평생 동안 끊임없이 수집하는 가구나 기타 물품들이 우리에게 내면적 힘을 주지 않는다."라고 하면서 "이 물건들은 불구자의 목발 같은 것이다. 우리가 편의품을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그 물건들에 대한 우리의 의존도는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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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약과 겸손을 생활화해야 한다

박용범 독서작가(2022)

 

 

P34

특히, 이반 일리치 Ivan Illich 선생이 '간디의 오두막'을 방문하고 쓴 글에서 "우리가 평생 동안 끊임없이 수집하는 가구나 기타 물품들이 우리에게 내면적 힘을 주지 않는다."라고 하면서 "이 물건들은 불구자의 목발 같은 것이다. 우리가 편의품을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그 물건들에 대한 우리의 의존도는 더 커진다."라 통찰한 것을 염두에 둔다면 어떤 외적인 힘에 크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자발적 간소함'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부단히 자신을 채찍질해야 함을 알 수 있다. "간디가 살았던 이 오두막보다 더 큰 장소를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마음과 몸과 생활 방식에서 가난한 자들이다." 일리치 선생이 이렇게 말한 것은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는 불필요한 물건이나 상품들은 주위 환경으로부터 행복을 섭취할 수 있는 사람의 능력을 위축시킨다."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우리는 내면이 공허할수록 소유나 소비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려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지금까지 우리는 불행히도 더 많은 자본을 모으고 더 많은 투자를 해서, 더 많은 상품을 만들어 팔아 더 많은 이윤을 남기면 그래서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이 소비하게 되면 행복해질 것이라 믿어왔다.

세상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가, 인간이 세상을 위해 존재하는가? 자본의 돈벌이에 한평생을 바치고 허무하게 끝나는 인생이 아닌, 삶의 기쁨과 관계의 즐거움을 일상적으로 느끼며 날마다 작은 행복을 만들며 살아가는 인생, 그런 삶과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이제부터라도 자연의 품에 '깃들어' 살기 위해 낭비와 탐욕을 그만두고 절약과 겸손을 생활화해야 한다. 온 세상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이 세상을 위해 존재함을 알려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사람과 자연, 사람과 사람이 공생 공존을 할 수 있다.

 

 

P206~208

그렇다면 그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필요의 수준을 넘어 자연을 어머니 품으로 인식하지 않고 단순한 개발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하나가 되지 못하고 서로 분열과 경쟁을 일삼고 있는 것, 바로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바람직한 제도와 시스템이 필요한데 그것은 지금까지의 대량 생산, 대량 유통, 대량 소비, 대량 폐기를 핵심으로 하는 '자폐적 산업주의'를 과감하게 포기하고 소규모, 자율과 자치, 분권화, 절약과 검소함, 재생과 순환 등을 핵심으로 하는 '유기적 생태주의' 시스템이어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개인과 집단의 책임성 있는 실천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춥거나 덥다고 에어컨을 이용해 온도 조절을 하지 말고 가급적 내복이나 자연 바람을 이용한다. 할 수 있다면 텃밭이나 텃밭 상자를 이용해 채소의 일부라도 자급한다. 흙으로 돌아가는 경제가 필요하다. 흙의 어원인 휴무스 humus'겸손'이라 하지 않던가. 겸손과 경외의 경제가 필요하다. 농사를 주업으로 하지 않더라도 농심農心, 즉 유기농 농민의 마음을 가진 살림살이 경제가 필요하다. 그것은 정직의 경제, 나눔의 경제, 자립의 경제, 협동의 경제, 겸손의 경제, 감사의 경제, 배려의 경제, 순환의 경제다. 가정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도 모두 모아 가축 사료나 유기농 퇴비로 재활용한다. 특히 음식점에서는 반찬을 필요한 만큼만 적절히 덜어 먹는다. 전기, , 가스 등을 최대한 절약하고 소박한 생활을 습관화한다. 허세나 위신을 버려야 불필요한 낭비가 없어진다. "지구는 인간의 필요를 위해서는 충분하지만 인간의 탐욕을 위해서는 몇 개 있어도 모자란다."라는 마하트마 간디의 말을 기억하면서 자신의 참된 필요에 걸맞은 생활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 동시에 이러한 개인적, 집단적 실천과 더불어 사회적 전체의 변화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유기적 생태주의' 시스템을 제도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이장이 된 교수, 전원일기를 쓰다(강수돌 저)에서 일부분 발췌하여 초서 독서법으로 공부하면서 개인적 의견을 덧붙인 서평입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y****a 2022.02.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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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이 된 교수, 전원일기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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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이 된 교수, 전원일기를 쓰다 /저자 강수돌/출판 지성사/발매 2010.07.12.       P21~23 대개 평당 얼마냐 하는 문제를 가지고 이리 재고 저리 재다 보면 좋은 땅도 놓치고 만다. 그렇게 '때'를 놓치면 아무리 좋은 계획도 자꾸만 뒤로 밀리고 나중엔 아예 포기하고 만다. 내가 텃밭을 일구며 집 짓고 살 땅도 돈이 없었다면 그림의 떡에 불과하지 않았을까. 소비를 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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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이 된 교수, 전원일기를 쓰다

/저자 강수돌/출판 지성사/발매 2010.07.12.

 

 

 

P21~23

대개 평당 얼마냐 하는 문제를 가지고 이리 재고 저리 재다 보면 좋은 땅도 놓치고 만다. 그렇게 ''를 놓치면 아무리 좋은 계획도 자꾸만 뒤로 밀리고 나중엔 아예 포기하고 만다. 내가 텃밭을 일구며 집 짓고 살 땅도 돈이 없었다면 그림의 떡에 불과하지 않았을까. 소비를 줄이고 생산자로 역할을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일단 돈을 주고 땅을 사되 너무 소유에 집착하지 말자는 것. 내가 살 집도 가장 소박하고 자연스럽게 짓자는 것이었다. 집 짓는 과정에서는 물론 지은 뒤에도 가능한 자연을 해치지 않고 자연의 품속에 깃들며 살자고 다짐했다.

 

 

이십삼 년간의 직장 생활로 기반을 만들 수 있는 돈을 모았다. 이제부터는 꿈에 그리던 생활을 펼쳐나가면 된다. 소비를 줄여야 한다. 생산을 하면서 자급자족하는 생활로 돌아서고 모자라는 것은 채집 생활로 보완을 하면 된다. 일단 욕심을 내려놓는 작업으로 많은 것이 해결될 수 있다. 먼저 마음 농사 마음 짓기로 시작해야 한다. 지금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소유를 무소유의 개념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자연에 얹혀살다가 가는 것이다. 그것이 5년이면 어떻고 50년이면 어떤가. 삶의 양이 아니라 삶의 질을 이루기 위한 안분지족 삶에 충실할 때이다.

 

 

P36

화려한 집보다는 소박한 집을 짓기를 잘 했다. 사실은 이것만 해도 정말 과분하다. 특히, 이반 일리치 Ivan illich 선생이 '간디의 오두막'을 방문하고 쓴 글에서 "우리가 평생 동안 끊임없이 수집하는 가구나 기타 물품들이 우리에게 내면적 힘을 주지는 않는다."고 하면서 "이 물건들은 불구자의 목발 같은 것이다."라 통찰한 것을 염두에 둔다면 어떤 외적인 힘에 크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자발적 간소함'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부단히 자신을 채찍질해야 함을 알 수 있다. "간디가 살았던 이 오두막보다 더 큰 장소를 갖고 싶어 하는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마음과 몸과 생활 방식에서 가난한 자들이다." 일리치 선생이 이렇게 말한 것은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는 불필요한 물건들이나 상품들은 주위 환경으로부터 행복을 섭취할 수 있는 사람의 능력을 위축시킨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우리는 내면이 공허할수록 소유나 소비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려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P158~159

생각건대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대량 생산-대량 유통-대량 소비-대량 폐기' 시스템은 결국 얼마 되지 않아 자멸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참으로 우리가 더불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자 한다면 '규모의 경제'를 포기하거나 최소화해야 한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가축은 그 고기도 건강하지 못하다. 이윤을 위해 길러지는 동물이 건강한 사료를 먹고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랄 수 있는가? 그래서 가능한 한 육식보다는 채식을 더 많이 해야 한다. 채소조차 가능한 한 텃밭에서 길러 먹든지 아니면 가까운 생협 매장이나 직거래를 통해 유기농 농산물을 구해 먹자.

 

 

미국 켄터키 주의 농부이자 작가인 웬델 베리 Wendell Berry파우스트 경제학이라는 글에서 비판했듯 오늘날 우리는 '친환경적인' 식물성 자동차 연료를 생산한답시고 그렇지 않아도 이미 망가진 농경지를 더 황폐화한다. 바야흐로 '친환경' 자동차가 잘 팔리는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지구 온난화의 진짜 이름은 낭비와 탐욕"이라 확신한다. 우리 자신의 탐욕과 낭비적인 생활 방식 자체를 성찰하고 포기하지 않고는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자연의 품에 '깃들어' 살기 위해서 낭비와 탐욕을 그만두고 절약과 겸손을 생활화해야 한다. 온 세상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이 세상을 위해 존재해야 함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사람과 자연, 사람과 사람이 공생공존할 수 있다.

 

 

 

 

 

이장이 된 교수, 전원일기를 쓰다(강수돌 저)에서 일부분 발췌하여 필사하면서 초서 독서법으로 공부한 내용에 개인적 의견을 덧붙인 서평입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y****a 2021.06.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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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일기로 쓰는 삶의 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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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 뒤 불어오는 바람이 세다. 창문을 여니 끈적한 바람과 함께 풀벌레 소리 묻어 들어온다. 서울을 떠나 수도권으로 이사를 오니 이런 복도 누린다. 서울로의 출퇴근 때문에 한참을 망설인 일이었지만, 지금은 어떠한 후회도 없다. 도시와 농촌의 풍경이 공존하는 곳. 도시의 혜택을 누리면서도 자연의 축복을 조금이나마 받고 있다. 이렇게 살다보니 전원생활이 더 그리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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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 뒤 불어오는 바람이 세다. 창문을 여니 끈적한 바람과 함께 풀벌레 소리 묻어 들어온다. 서울을 떠나 수도권으로 이사를 오니 이런 복도 누린다. 서울로의 출퇴근 때문에 한참을 망설인 일이었지만, 지금은 어떠한 후회도 없다. 도시와 농촌의 풍경이 공존하는 곳. 도시의 혜택을 누리면서도 자연의 축복을 조금이나마 받고 있다. 이렇게 살다보니 전원생활이 더 그리워진다. 사방이 아스팔트로 둘러싸인 곳에서 탈출하여 그나마 지금도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만, 여건이 된다면 지금이라도 조그마한 나무집을 지어 아이들과 흙을 밟고 살고 싶다. <이장이 된 교수, 전원일기를 쓰다>(지성사, 2010년)를 읽으며 그런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다.

 

마을 이장이 된 교수, 그는 왜 촌으로 들어갔는가. 그리고 거기서 이장이 되었는가. 세간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 또한 세간의 상식처럼 살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상식’은 또 무언가. 그의 생각으로는 촌에 가서 그렇게 사는 것이 상식인 삶이다. 21세기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비상식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게 맞다. 현대의 인간은 자연에 반하고, 본성을 거스르고, 인륜을 저버린 채 산다. 정신보다 물질을 좇고, 마음보다 육체를 좇는다. 1등을 못해 안달이 났고, 하나를 위해 다수를 희생시키는 극한의 생존경쟁체제를 떠받든다.

  

강수돌 교수는 경영학 교수다. 그는 돈의 경영을 가르치지 않고, 삶의 경영을 가르친다. 그런 그에게 이장이 되고, 농사를 지으며, 산 속에 귀틀집을 하나 지어 아이들을 자연 속에서 가르친 일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물론 자연스럽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가능했던 일은 아니다. 그만큼의 생각과 실천이 뒤따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강의실에서나 마을에서나 집에서 한결같은 철학과 믿음으로 살아갔다. 또 아직 비상식적인 삶들을 상식적인 삶으로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바들을 모색하고 작은 부분부터 실천해 나갔다. 그의 목표는 거창하지 않았다. 바로 자신부터, 그리고 그 주변으로부터 가능성을 모색해 나갈 때 진정으로 삶의 방식이 바뀐다고 보았다. 어느 날 갑자기 이상적인 체제가 등장한다고 해서 사람들의 삶이 일순간 바뀌지는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책은 ‘교육’과 ‘공동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시간을 제공한다. 요즘 귀농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전원생활에 관한 책도 많이 나와 있어 전원일기는 그만의 생활방식을 엿보는 정도로 족하다. 그런데 교육과 공동체에 대한 그의 생각은 짧게 정리되었지만, 길게 여운이 남는다. 사실 짧은 정리도 아니다. 이 책의 기저를 꿰뚫는 생각들이 바로 이것들이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는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문제이다. ‘마을’과 ‘지역’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는 잘못된 삶의 방식을 바꿀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된다. 국가를 중심으로 경제체제를 바꾸고 법을 바꾸고 제도를 바꾼다고 해서 어느 날 갑자기 삶의 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삶의 터전인 마을과 지역을 중심으로 비상식적인 삶의 모습을 제거해나갈 때 상식이 상식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또한 교육은 두말해 무엇할까. 그가 주장하는 유기농 교육은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제 앞가림을 하면서도 자신의 꿈과 소질을 키워 자기 행복과 사회 행복을 구현할 것인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한다.

 

“아이들 교육을 걱정하는 부모님들이여, 자녀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은 천 번 만 번 옳은 일이지만 과연 우리가 자녀를 사랑하는 ‘방법’을 제대로 알고나 있는지 되물어 보자. 우리가 자녀들보다 더 오래 살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요, 진실이라면 아이들이 우리 없이도 꿋꿋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준비를 시켜 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아이들을 시험 점수나 등수라는 수치로 가두지 마시라. 중요한 것은 스스로 앞가림을 하면서도 이웃과 더불어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겠는가?” (94쪽)

 

“돈벌이 위주의 자본주의 경제, 신자유주의 세계화 물결이 거칠게 다가올수록 역설적이게도 삶의 근거지 내지 운동의 근거지로서 ‘마을’ 또는 ‘지역’이 대단히 중요하게 부각된다.” (216쪽)

 

교수가 이장이 되는 일이 더 많아져야 할 것 같다. 직업이나 신분에 상관없이 자신의 역할을 하고 삶의 질을 높여갈 수 있는 마을이 국가의 기본단위가 될 때 우리 삶이 더 행복해지지 않겠는가. 거시적인 차원에서 큰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운동도 중요하지만, 아래로부터 일어나는 개혁들이 큰 흐름을 만들어 갈 수도 있다고 본다.

  

by 꽃다지, 2010.08.15

l*******g 2010.08.1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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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이 된 교수, 전원일기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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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교수이자 시골마을 이장인 지은이의 이력이 독특하다. 대학교수라는 직함과 시골마을이 잘 어울리지 않는듯 하지만 아마 이 책을 읽고 난후에는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책속에는 시골 생활 이야기속에 자녀들의 교육방법과 자연이 주는 삶에 관한 이야기들도 담겨져 있다. 헬렌니어링.스코트니어링의 『조화로운삶』과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과도 닮은 가치관을 추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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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교수이자 시골마을 이장인 지은이의 이력이 독특하다. 대학교수라는 직함과 시골마을이 잘 어울리지 않는듯 하지만 아마 이 책을 읽고 난후에는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책속에는 시골 생활 이야기속에 자녀들의 교육방법과 자연이 주는 삶에 관한 이야기들도 담겨져 있다. 헬렌니어링.스코트니어링의 『조화로운삶』과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과도 닮은 가치관을 추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과 함께 하는 삶속에서 물질에 구애받거나 인간관계속에서 시달리지 않고 행복을 만끽하는 이야기가 내게 부러움으로 다가왔다.

 

"풀뿌리의 끈질긴 생명력에서 희망을 찾다"

독일에서 유학을 하던 시기에 유럽의 아이들은 어릴때부터 '점수'지향적인 삶이 아닌 앞으로 인생에 대한 뚜렷한 목표를 찾아나서는 반면 한국아이들은 목표의식도 없는 채로 무조건 1등만을 강요받으며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강수돌은 더 나은 삶의 가치를 찾기로 결심한다. 우선 수도권의 탈출계획을 세워 시골로 들어간후 자연과 더불어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목재를 구하고 집을 짓기까지 쉽지 않은 작업이었지만 하나씩 차곡차곡 쌓아올려 결국 집이 완성되었다.  매일 느껴가는 작은 행복들이 책속에 고스란히 담겨있어 문득 나도 아둥바둥 높은 목표만을 향해 나아갈 생각을 접고 자연과 함께 살아가면 좋겠다는 희망을 품었다.

 

우리의 삶은 행복해야함에도 스트레스가 가득하고 갈수록 커져간다. 오늘의 행복은 내일이면 나아지겠지라고 미루어 두고 하루하루 걱정은 쌓여간다.지은이는 모든 불행의 근본은 우리과 자연과 땅을 떠나서 살려하는데 있다라고 이야기한다. 좋은 아파트에서 살고싶은 마음, 좋은 직업을 가지고 좋은 물건들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욕심들때문에  더욱 살기 힘들어지고, 살기 싫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자연과 더불어'가 아니라 '자연의 품에서' 살아야한다는 지은이의 말처럼 자연속에서 내가 누리고자 하는 행복을 발견하고 직접 기른 채소를 맛보고 재배한 과일, 곡식들을 수확하는 기쁨을 누리는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는 자연속으로 가서 살겠다고 하는 말들은 결국은 지금의 스트레스를 겪고 서라도 도시에서 살겠다라는 욕심을 부리고 있는건 아닐까. 자연속으로 들어가 행복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통해 많은 것들을 생각해볼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e********7 2010.07.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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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똥'을 받는 농부가 '대안'이죠
"매일 '똥'을 받는 농부가 '대안'이죠" 내용보기
조치원 신안리 주민인 고려대 강수돌 교수(경영학)는 마을에 들어서는 고층 아파트 건립 반대 운동을 주도하면서 주민들의 지지를 받아 이장이 되었다. 대학 교수이면서 마을 이장, 작은 밭은 일구는 농부라는 세 가지의 직함을 가진 그는 '돈의 경영' 대신 '삶의 경영'을 추구하는 경제학자다.  먹물 깨나 들었다는 사람들이 흔히 가진 약점은 '현장성의 부재'다. 이론은 실천의 길잡이
"매일 '똥'을 받는 농부가 '대안'이죠" 내용보기

조치원 신안리 주민인 고려대 강수돌 교수(경영학)는 마을에 들어서는 고층 아파트 건립 반대 운동을 주도하면서 주민들의 지지를 받아 이장이 되었다. 대학 교수이면서 마을 이장, 작은 밭은 일구는 농부라는 세 가지의 직함을 가진 그는 '돈의 경영' 대신 '삶의 경영'을 추구하는 경제학자다.  

먹물 깨나 들었다는 사람들이 흔히 가진 약점은 '현장성의 부재'다. 이론은 실천의 길잡이이지만 실천이야 말로 이론이 범할 수 있는 오류를 일깨워주는 경종이라 할 것이다. <이장이 된 교수 전원일기를 쓰다>에서 강수돌 교수는 인간성, 효율성, 생태성의 세 측면이 어떻게 하면 조화와 균형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 자신이 스스로 귀농하여 재래식 변기에 아침마다 싼 똥을 모아 퇴비를 만들고 농사를 지으면서 해답을 얻기 위해 자발적인 불편함을 무릅쓴다.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는 마하트마 간디의 말처럼, 오늘날 대부분의 석학들은 세계화의 대안으로 마을공동체 복원을 역설한다. 경영학자인 필자도 마을공동체야 말로 '노동-교육-경제-생명'을 연결하는 고리이자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에 그 어떤 위계 질서도 없이 서로 존중하고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적 시스템을 건설할 기반으로 본다.  

 

인간이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면서 마침내 자연을 정복하고, 드디어 자연까지 조작하고 창조할 수 있다는 오만의 극치에 이른 이 시점에 역설적으로 경제 위기, 고용 위기, 생명 위기, 생존 위기가 우리 모두를 옥죄어 온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된 해결책, 근본 뿌리를 건드리는 해답을 내놓으려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살 수 있는 관계로 초점을 모아야 한다. (p80)


나 또한 20여가구 남짓한 시골 마을로 귀농해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 텃밭을 가꾸며 땅과 생명의 신비에 감탄하기도 하고, 철마다 상추며 옥수수며 열무, 양파 등을 가져다 나눠 주시는 마을 이웃들을 보면서 '사는 맛'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막상 살아보니 시골 생활이 마냥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시골에 산다면서 라이프스타일은 여전히 도시적인 것을 못 벗어나고 있다. (솔직히 말해 나는 강수돌 교수처럼 부춧돌 식 재래식 변소를 짓고 매일 똥을 받아 밭을 일굴 자신은 없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지금의 농촌, 시골 마을도 마냥 정이 흘러넘치는 따뜻한 곳만은 아니다. 도시보다는 덜 하겠으나 마을의 공동체성도 많이 훼손됐으니 말이다.

 
정직의 경제, 나눔의 경제, 자립의 경제, 협동의 경제, 겸손의 경제, 감사의 경제, 배려의 경제, 순환의 경제는 가능할 것인가. 가능성 여부를 논하기에 우리는 너무 멀리 와 버린 것이 아닐까. 강 교수는 대안은 먼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고 말한다.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만 쳐다볼 것이 아니라 그 방향으로 실제 움직여 가면서 길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책에서는 이장이 된 교수의 시골 생활 정착기 뿐만 아니라 저자의 삶의 경영 철학을  배울 수 있어 좋았다. 저자의 말처럼 '사회적 실천 없는 개인적 실천은 자기 기만이 되기 쉬우며, 개인적 실천 없는 사회적 실천은 자기 실패로 끝나기 쉽다.'(p118) 초보 귀농인으로, 그냥 생활인으로 묻혀 살기보다는 뭔가 새로운 뜻을 도모할 꿈을 꾸는 나에게 이 말은 지금의 내 모습을 성찰할 자극을 준다. 


 

행복의 내용은 식의주 등 기본 생계의 해결과 더불어 높은 삶의 질을 누리며 사는 것이다. 나에게 삶의 질이란 크게 네 차원으로 건강과 여유, 존중과 평등, 따뜻한 공동체, 온전한 생태계이다. 행복의 방법론과 관련해 나는 "오늘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고 강조한다...(중략)... 때를 놓치지 않고 매 순간과 과정들을 충만하게 사는 한, 오늘 행복을 오늘 찾으면서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한, 불행이나 후회, 두려움이나 피해 의식 같은 것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중략)... 진정으로 행복한 미래 사회를 꿈꾸는 사람은 바로 지금, 현재에도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아무리 힘들고 치열한 싸움속에서도 유머와 위트, 해학과 익살 같은 것으로 유연하게 대처할 필요도 있다. 대안은 먼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기' 있기 때문이다. (p8~9)
 

 

 

 

YES마니아 : 플래티넘 x******0 2012.04.21. 신고 공감 0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행복'은 내 안에, 자연의 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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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강수돌은 전국적으로 꽤 유명한 농촌 이장이다. 농부가 대부분인 이장 중에 대학교수를 겸업으로 하는 이는 흔한 일이 아니다. 그가 이장이 된 사연은 드라마틱하다. 마을 앞에 초고층아파트가 건설된다는 사실을 그가 동네에 알렸고 이를 감추는 동시에 허가에 필요한 주민들의 동의서를 조작한 이장의 비리가 드러났다. 이장은 자연히 물러났다. 당연히 재선거가 불가피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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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강수돌은 전국적으로 꽤 유명한 농촌 이장이다. 농부가 대부분인 이장 중에 대학교수를 겸업으로 하는 이는 흔한 일이 아니다. 그가 이장이 된 사연은 드라마틱하다. 마을 앞에 초고층아파트가 건설된다는 사실을 그가 동네에 알렸고 이를 감추는 동시에 허가에 필요한 주민들의 동의서를 조작한 이장의 비리가 드러났다. 이장은 자연히 물러났다. 당연히 재선거가 불가피했고 주민들은 마을을 아끼는 마음과 ‘똑똑한’ 그에게 이장을 맡기게 된 것이다. 그것이 2005년 이었다. 그는 올해 6월까지 임기를 성실히 마쳤다.(보통 2년인 임기를 고려하면 3번 연임한 것이다)


‘시골에 사는 교수’라 하면 보통 호기심 어린 눈으로 관찰하게 된다.(그래서 이런 제목의 출판이 가능한 것이다) 마을사람은 더했을 것이다. 그의 이름을 밝히면 동네에서 처음 보던 어른들도 “아, 위에 새로 집짓고 산다는 교수양반”한다는 것이다. 처음 그가 이장을 만났을 때 시골에서 자연과 더불어 농사지으면서 사는 것이 최고라 맞장구쳤다 한다. 그런 이장이 돈을 앞세운 개발의 광풍 앞에서 문서를 위조하는 모습을 보고 실망하였다 한다. 허나 우리 주변에 흔한 모습이다. 그를 손가락질하기 전에 나를 다시 돌아봐야 할지 모를 일이다.


개발은 한적하고 고요한 시골마을에 커다란 상흔만 남겨놓는다. 내가 시골로 향하던 2006년 이전에 인근 동네에 골프장을 건설하는 것이 이슈였다. 농사짓는 곳의 땅을 팔아서 골프장을 지으면 농지를 터전으로 살던 사람은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 그들은 골프 치러오는 사람들의 왕래가 주변 서비스업의 활기를 가져올 것이고 지역에 지원하는 세금으로 생계에 지원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감언이설이 실현된 경우는 거의 없다. 골프장을 짓는 이가 지역주민을 생각해서 짓겠나. 자신의 이익에 방해가 되지 않으라고, 건설 이후에도 거치적거리지 말라고 인심 쓰듯 하는 지원이 있을 뿐이다.


도시의 재개발이나 골프장건설, 경마장 건설, 카지노 건설 모두 시작단계에서 찬성과 반대로 편을 갈라서 사이좋던 이웃을 원수로 만들어 놓고 건설이후엔 주민들은 나 몰라라 하는 것이 정해진 수법이다. 언제 그 시설들이 지역민에게 풍성한 일자리라도 주던가. 농사짓던 노인들이 할일이 또 무엇이 있을 것인가. 기껏 꽃 심고 풀 뽑고 하는 일들은 연속적이지 못하고 중간 브로커가 끼면 노동단가도 낮아서 농사짓는 것보다 낫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개발을 반대하는 논리엔 자연을 존중하는 마음이 있다. 작물을 재배하는 것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 땅과 하늘이 하는 일이고 이에 사람이 어우러져서 사는 것뿐이다. 다양한 문화적 체험을 자신의 삶과 연관해서 풀이하는 지은이는 이 책을 통해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이 아니라 깃들어 사는 것’이라 한다. 언뜻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허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연을 대하는 진심을 엿볼 수 있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위대한 자연을 존중하는 마음이 별로 없다. 어깨동무하는 모습은 주고받는 친구와 가능한 일이다. 감히 자연에 손을 걸칠수야 없지 않은가.


그냥 받아먹기만 하면서 경건한 마음으로 대할 줄 모르는 태도다. 그래서 깃들어 산다는 말을 택했다고 한다. 밥상위에서 늘 외치는 “똥이 밥이 되고 밥이 똥이 되는” 자연의 순환과 지속가능함에 대한 철학을 몸으로 실천하고자 시골에 터전을 잡았다. 아이들 셋도 모두 그곳에서 키웠다. 교육은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자연 안에서 내면과 인간성, 다양성을 자연에서 키워나가는 교육이다. 이것을 화학농교육과 유기농교육으로 비유한다. 유기농법이 “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처럼 자녀에 대한 부모의 조건 없는 사랑이 충분한지를 핵심으로 삼는다. ‘나는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 속에서 자신의 내면적 욕구나 느낌에 솔직하게 반응하게 된다.


자신도 일류대학을 나와 교수를 하지만 이렇게 반문한다.


만약 자녀들이 ‘무조건’ 일류 대학에 가기를 원한다면 이렇게 물어 보자. 과연 일류 대학 나온 사람들 중 자기 자신이나 가족의 안위를 넘어 온 사회가 행복해지도록 진지하게 노력하는 이들은 도대체 몇 퍼센트나 될까? 나아가 우리나라를 망가뜨리는 사람들 중 일류대 출신의 많은가,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은가? 대답이 뻔하다면 도대체 왜 우리는 아이들이 무조건 일류대에 가기를 갈망하는가? 대답을 찾자면 두 가지다. 하나는 일류대 출신이 갖는 기득권 때문이요, 다른 하나는 그걸 갈망하는 부모 자신이 가진 열등감 때문이다.


욕심을 버리고 내려놓아야 더 만족할 수 있다는 가르침에 충실하고자 직접 집짓기에 동참했다. 작은 귀틀집을 짓고 흙 속에서 산다. 이반 일리치를 인용한다. “우리가 평생 동안 끊임없이 수집하는 가구나 기타 물품들이 우리에게 내면적 힘을 주지는 않는다. 이 물건들은 불구자의 목발 같은 것이다. 우리가 편의품을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그 물건들에 대한 우리의 의존도는 더욱 커진다.”그의 말은 더 많이 큰 것을 가지고자 하는 이들, 마음과 몸과 생활 방식에서 가난한 자들에게 일갈한다.


결국 ‘소박한 자연품안의 삶’이다.


사람은 대개 자신의 삶을 마감할 때 세 가지를 후회한다고 한다. 첫째 다른 사람들에게 좀 더 따뜻하게 해 줄 걸 하는 후회, 둘째, 인생을 좀 여유롭게 살 걸 하는 후회, 셋째,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걸 하는 후회가 바로 그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만을 위해 아등바등 사는 사이에 평생이 다 흘러버린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나뿐인 이 소중한 인생을. 경쟁과 시기, 질투등에서 조 비껴서 내면을 성찰하고 보다 큰 만족과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삶의 기쁨과 관계의 즐거움을 일상적으로 느끼며 날마다 작은 행복을 만들며 살아가는 인생, 그런 삶과 그렇게 사는 삶들이 필요하다. 그런 사람들이 자연 속에서 겸손하고 건강하게 더불어 사는 공동체, 전국 방방곡곡, 세계 구석구석마다 창조하는 일이야말로 간디와 장지오노의 철학이 우리에게 던지는 숙제가 아닐까?


농촌의 삶은 국가가 버린 농업을 ‘새로보기’ 한다.


한국의 식량 자급률은 25%내외다. 나머지 75%는 외국에서 수입해 해결한다. 대단히 위험한 구조다. 그나마 자급률 중 90% 이상은 쌀농사이고, 그것도 100% 수입에 의준하는 석유를 이용해야 가능한 수치다. 따라서 석유 빼고 쌀빼고 보면 진짜 자급률은 5%밖에 안 된다.


지금부터라도 농민을, 존중하는 정책을 써야 한다. 진정으로 우리가 스스로 먹고 사는 길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연구하는 정책자들이 되어야 한다. 핸드폰과 자동차를 팔아서 매분기 기록을 경신하는 대기업에 몰아주기위해 농업을 희생시켜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 책은 그의 자연과의 삶을 정리한 일기다. 현재 학교에서<녹색평론>을 읽고 토론하는 수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매주 마을 아이들과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는 그가 과거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얻은 기득권을 내려놓고 시골 흙집에서 살게 된 것은 시대흐름에 대한 ‘저항’이다. 몸소 실천하고 행동하는 지성의 삶의 본질에 대한 성찰, 모순된 경제시스템과 그릇된 가치관에 대한 지적, 올바른 삶에 대한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YES마니아 : 골드 s******e 2010.08.0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