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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공부는 무엇일까, 하고 고민해보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 고민은 학생이라는 신분적 제약이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예전의 농경사회에서는 신기술의 적용이 아주 느린 형태로 진행되었다. 즉 일을 잘하거나 공부를 잘하는 것은 좋은 스승과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다면 그 다음 일은 쉽게 예측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힘이 세고 손재주가 있고 눈썰미가 있다면 뛰어난 농사꾼이 될 수 있고 부지런만 떤다면 그 마을에서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자격요건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공부를 통해서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그것을 창의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그것이 평생공부이고 재사회화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눈썰미가 뛰어나도 엑셀등을 배우지 않는다면 회사업무를 볼 수가 없듯이 우리네 공부는 끝이 없다. 지금의 사회가 멀티 태스킹을 원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이들에게 공부는 필수불가결한 사회가 되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는 의외로 젊은 아이들에게 씨알도 안 먹힌다. 왜냐하면 그 아이들은 지금 입시과목을 따라 잡는데도 힘이 들고 지치기 때문이다. 정재승 같은 사람들은 지금의 입시과목들을 공부하는 것은 현 시대의 창의성과 속도를 전혀 따라잡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입시과목이 기초가 되어 나중에 창의성을 발휘할 수도 있고 속도를 더 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구구단을 외우지 못한다면 결국 미적분도 풀 수 없는 것이다. 지금의 입시과목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예상 밖으로 후에 많이 사용된다. 게다가 입시과목의 내용과 그 질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 입시과목을 잘 수행했고 그것을 통하여 명문대를 들어간 사람들이다. 즉 지금 초중고생들이 하는 공부는 일종의 기초이고 그것이 현실적으로 잘 쓰이지 않는다고 창의성을 죽인다고 할 수는 없고 게다가 그 창의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입시기술자였던 것이다. 이 책은 그 입시공부에 문제점을 제기한 책이 아니다. 공부란 단순히 즐거움의 산물이 아니라 참고 이겨내야 하는 엉덩이에 땀이 흥건하게 나고 책을 읽다가 졸면서도 다시 일어나 맑은 정신으로 새롭게 그 책에 도전해야 하는 고된 일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허튼 소리를 하는 쪽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항상 이렇게 생각했다. 공부의 즐거움을 아는 나이는 30대가 지나야 알 수 있다. 단순히 시험에서 100점을 맞거나 누군가를 이겼거나 하는 그런 즐거움이 아니라 고독을 알고 남과의 비교 없이도 책을 읽는 즐거움을 알려면 이미 기초를 다졌어야 하는 것이다. 즉 기초가 없다면 공부의 즐거움도 없다.
만약 누군가가 기초를 쌓는 일이 즐겁다면 그가 바로 공부의 신인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은 기초를 쌓을 때 즐겁지 않다. 그래서 저자는 그 이야기를 우리의 아이들에게 사실대로 다양한 예를 들어가며 이 책에서 표현한다. 그런데 이 책은 중학생 이하가 읽기에는 그들이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가 너무 많이 나오고 일반인이 읽기에는 이미 고등학교 때 배운 이야기를 좀 자세히 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이 책은 고등학생이 읽기에 적당하다. 그러나 이 책의 타깃이 고등학생이라면 조금 문제가 발생한다. 이 책을 읽기보다 국영수 공부를 하는 것이 이익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딜레마는 이 책을 읽어야 할 사람들은 고등학생들인데 고등학생들이 이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저자가 보다 폭넓은 독자층을 예상했다면 이 책을 보다 넓고 깊게 썼어야 된다는 것이다. 개념설명에 더 시간을 들이기보다는 깊이 있고 풍부한 예시를 드는 쪽이 더 낫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은 저자의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최근의 젊은 축들은 엘뤼아르나 딜런 토마스의 시를 읽지 않긴 하지만-그래서 저자는 올드 스쿨(old school)이다-그렇기에 요새 젊은이들이 감성이 덜 풍부한지는 정확하게 말하기는 힘들다. 예전부터 항상 세월이 지날수록 노래들은 음란해진다고 했으니 시경 이후로 얼마나 음란해졌겠는가. 그래서 요새 젊은이들에게 그러한 시들이 먹힐까 하는 의문이 든다. 새 술은 새 가죽부대에 담아야 하지 않을까? 나도 고등학교 때 딜런 토마스와 보들레르를 읽었지만 그 당시에도 딜런 토마스를 읽던 애들은 학교에서 손꼽을 정도가 아니었나 싶다. 그게 잘난 척의 척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네 학교와 사회의 분위기가 그런 것들을 읽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가 최근의 시험이 서술형으로 바뀌는 것을 환영한다고 했을 때(나도 환영한다) 드디어 우리의 중고생들이 책을 제대로 읽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책을 꼼꼼히 읽지 않으면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우리네 삶을 제대로 관찰하지 않으면 좋은 글을 쓸 수 없고 당연히 논리적으로 글을 쓰기도 힘들다. 이 책에서는 논리적 글쓰기에 대해 좋은 팁들이 꽤 있다. 그 팁들을 아주 쉬운 말로 표현해서 읽고 나면 도움이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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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구나 인생이라는 삶의 과정을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언젠가는 한번 공부와 부딪치게 마련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이 현실을 보면 공부의 단순한 외형적인 부분만을 가지고, 심지어 사람의 됨됨이 까지 그 잣대를 들이대어 평가를 하는 것 같아서 사실 씁쓸한 기분이 들긴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것이 정녕 공부를 잘하고 못함을 가름하는 완벽한 기준은 분명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 다소 위안을 삼았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난후 지금의 나의 마음은 그런 위안 보다는 오히려 공부의 본질을 이 책에서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아 한편으로 가슴 뿌듯한 생각이 든다. 물론 공부를 잘하고 못하는 것을 가려내는 일이 어떤 과제를 수행함에 있어서 때로 필요한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배움의 진정한 의미를 곰곰이 되새겨 보면, 공부라는 것이 단순한 평가의 의미에서 탈피하여 어떤 분야나 나이에 상관없이 성숙한 우리 삶의 완성을 위하여, 주어진 삶이 다하는 날까지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하는, 인간의 중요한 지적활동이라는 인식으로 받아들여지고, 또 그것이 다른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하게 우리의 가슴속에 깊게 자리 잡아졌으면 싶다.
예전에 비해 오늘날의 공부과정은 익히고 습득하는 그 시기가 빨라졌으며, 그 범위도 상당히 넓어졌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유에는 시대의 발전에 따른 다양한 실용적 학문의 필요성이 대두되기도 했고, 공부를 통하지 않고는 복잡한 우리의 현실에 결국 뒤쳐질 수밖에 없다는 우리의 절박한 인식이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삶에 중요한 도구인 공부를 어떠한 방식으로 받아들일 것이며, 또 그것을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 그리고 그 목적을 어디에 둘 것인지에 대해 깊이 한번 생각 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의 공부에 관하여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이 그 부족한 부분을 찾기 위한, 그래서 자연과 세계와 사물들을 이해하며 깨달음으로서, 결국 하나의 전인적인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하며 그렇기에 죽는 날까지 멈출 수 없노라고 한다.
이 책은 두 가지 공부, 즉 글공부와 인생 공부에 관한 저자의 오랜 실제 경험과 공부를 통해 그가 알게 되었던 것들을 모두 담아, 새로운 꿈을 꾸면서 공부를 시작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내용이 담겨진 책이다. 그는 오늘날 우리의 어린이와 젊은 청춘들을 가리켜 ‘호모 스투디오수스 라고 말한다. 많은 시간을 공부에 투자하는 그들에게 공부에 휘둘리지 말고 올곧게 공부하고 공부가 무엇인지를 먼저 가슴깊이 새겨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공부의 깊은 의미를 먼저 알게 된 뒤에야 진정한 공부가 시작된다는 말로 보여 진다. 특히 이 책에 저자가 공부와 관련한 것 중 눈에 띠는 것은, 저자가 전문분야의 풍부한 경험 에 의해서 나온 것인지는 몰라도 역사적 장르별 책 읽기라든지 글을 논리적으로 쓰는 법이 적혀져 있는데, 그 내용은 아마도 이 책을 읽는 많은 이들에게 좋은 학습이 될 것 이라고 여겨진다. 또한 저자는 책을 눈과 머리로 시작하여 가슴으로 그 내용을 느끼며, 손을 이용하여 그것을 표현하는 이를테면, 책의 내용이 우리의 온몸에 스며들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공부가 단순한 상식의 존재가 되지 않도록 하는 저자의 애정 어린 충고처럼 생각된다. 따라서 그의 생각을 빌어 우리가 그 동안 해왔던 공부 그리고 앞으로 배워야 할 공부에 대해, 우리는 얼마만큼 열정을 갖고 또 그러할 의지를 갖고 있기는 한 것인지를 이 책을 통해 고민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로 인해 동화의 재미에 빠져, 50년을 넘게 문학 인생으로 살아온 저자는 공부를 통해 자연의 세계와 사물을 보는 눈을 떴다고 한다. 결국 공부란 것은 단기간 내에 우리에게 어떤 진리의 깨달음을 주는 것은 아니며, 오랜 시간 동안 공부를 향한 각고의 노력과 분투만이 그러한 결과에 도달 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으로 본다. 우리가 사는 지금의 이 시대는 공부와 등지고 살 수 없는 현실이 되어 버렸다. 매일 새로운 내용을 다룬 정보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이제 그 속도는 점점 빨라져 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피상적인 지식의 습득에만 얽매여 전인적 존재가 되기를 거부하고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서있는 건 아닌지, 노년의 나이에도 오늘도 여전이 공부에 열정을 다하는 저자의 겸허한 자세와 의지를 담은 이 책에서, 앞으로 배워야 할 공부는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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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구 떼바구 강떼바구'
도대체 무슨말! 읽으면서 알았다. 이야기를 시작할 때, '이바구'는 경상도 말로 이야기이고 나머지는 '떼바구'나 '강떼바구'는 재미난 말장난, 소리장난인 이라는 말이라는 것을... 할머니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했나보다.
그런데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지 못한 나는 아이들에게 "옛날 옛적에--"로 시작했다. 책에서 그렇게 시작했으니까?
책을 좋아했던 한 소년은 이야기에 재미를 느꼈고, 책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서 책을 읽게 되었는데, 공부할 나이가 되니 책보다는 공부를 하라는 말에 공부하는 척하면서 책을 읽고, 밖에서 책을 읽고 들어가는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 일까? 대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쳤으니.... 나이가 들어도 책을 손에서 떨어지지 못하였던 것이다. 저자의 책 사랑과 더불어 끝없이 공부하는 마음이 책 속에 녹아 들어 있었다.
우리나라 공부의 열기가 미국에도 전해지고, 열심히 공부하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모습을 본받기를 바라는 미국의 오바마대통령도 있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공부는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지금도 열심히 공부하는 청소년들을 보면 그들의 노력에 격려하고 싶어진다. 이런 열기는 비단 우리나라 청소년들을 길러주시는 부모님들의 열기만하지는 않을 것이다. 공부란 때가 있다고 하지만, 요즘 세상에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해야 되는 것이 공부라고 생각이 든다. 공부라는 책상에 앉아서 하는 것만이 아니라, 생활전선에 들어가서도 일에 도움되는 공부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하는 공부는 강요하는 사람이 없어도 스스로 하는 것이다. 공부의 효과는 스스로 할 때가 가장 많이 나오니, 가장 알찬 공부를 하는 것이다.
미셀 위도 낮에는 골프을 하고 대회도 나가지만, 밤에는 공부를 한다고 한다. 멀리 있어도, 시험을 인테넷을 받아서 보고, 대회기간 중간에도 틈을 내어 공부를 하였다니, 공부하는 것은 노력과 그에 따르는 공통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앞을 보지 못하는 김현아씨의 이야기 또한 공부의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자신의 장애가 있더라도 그것은 노력에 의해서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진다. 물론 그녀의 어머니의 정성어린 애정과 노력이 따랐겠지만, 본인의 의지가 없었다면 그것은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잠을 자지 않기 위해 조식을 손에 물 대접을 받친 채 온밤을 지새웠고, 귀양을 가서도 정약용은 끝없이 공부하고 그에 따른 책을 지필하게 된 것이다. 역경이 왔다고 그대로 무너지는 결국은 자신의 의지가 약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면서 반성을 하게 되었다.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다고 이대로 무너지면 안 되는구나를 배웠다. 나이가 많아도 끝없이 노력해서 71살에 고등학교 졸업장을 쥔 분에 비하면 아직도 젊었고 노력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던 것이다.
공부하는 나이가 정해진 것은 없다. 다만 현대에 맞는 방법을 찾으면서 끝없이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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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열규교수님이 학창시절 선생님 몰래 교과서사이에 동화책, 소설책을 끼워놓고 '도둑 읽기'하던 일을 회상하실때 저도 초등학교때 선생님몰래 동화책을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펴던 기억이 떠올라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교수님의 '읽기론'은 저도 대부분 긍정이 됩니다. 과거 선비들의 독서 이야기를 하시면서 읽기를 강조하실때는 선비의 고고함을 떠올리며 경건한 마음을 배우고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시를 가슴으로, 머리로 읽고 느끼는 것이라 말하시는 부분에서는 이게 시의 재미인가 고개도 끄덕끄덕 하게 되었고요.
책은 맛있다!, '냠냠' 이라고 책의 맛을 설명하실땐 그래서 이 책이 맛의 풍미를 높이기 위해 종이냄새가 더 강하게 나는건가 하고 입가에 미소를 배어물었습니다.
후반부에 '창작론' 같이 글짓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실때에도 아 좋은 팁을 가르쳐 주시나보다. 하고 내심 반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책 읽기의 중요성, 즐거움을 신나게 설명해주시더니 마지막엔 정보화사회에선 정보가 최고다. 라는 결론으로 마무리되는 것 같아서 벙- 쩌버렸습니다.
스스로도 너무 옛날 이야기만 하는 것 같아서 최첨단 정보화사회에 맞춰 마무리를 써주신 걸까요? 제 경우에는 오히려 책에 대한 더욱 깊은 고찰을 방해하는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 다 좋았는데 결론이 마음에 안들어!' 라고 징징거리는 것 같지만 매번 주제가 바뀌는 에세이를 모아서 편집한 책의 한계인지. 아니면 에세이를 쓰시면서 교수님이 최첨단의 길에 눈을 뜨신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지게에 바퀴를 달려고 한 헤프닝으로 가볍게 웃고 넘어가겠습니다. 정말 조금만 더 심했으면 용의 머리를 했지만 뱀의 꼬리를 가진 괴상한 생물이 되어버릴 뻔 했습니다.
제 생각에도 교수님의 책에 대한 사랑은 나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선배님의 경험을 먼저 읽고 즐거운 마음으로 손뼉을 치고 싶었습니다. 저도 열심히 읽다보면 그렇게 책을 맛있게 먹을 수 있겠지요. 냠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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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 앞에, 거기 꽂힌 책들 앞에 다리를 펴고 편하게 앉아서 그 하고많은 낯익은 구면들이 던지는 정겨운 눈짓을 즐거이 받아내는 삶! 그렇게 책을 더불어서 살아갈 수는 없을까? 그래서 그 책들을 향해서 "책님들이시여, 고맙습니다!" 하고 머리를 조아리면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불어드는 탓일까? 문득 주위에서 일어나는 냄새, 묵은 책갈피에서 일렁이는 향태가 그윽하게 우리를 감쌀 것이다. (p. 91)
서가에 가득 꽂힌 책들과 그 특유의 냄새~~~ 이 구절을 읽다 보니 대학 때 은사님의 연구실이 생각난다. 자주 가 본 것은 아니지만, 갈 때마다 불이 꺼져 있었기 때문에 책 특유의 냄새가 더 잘 났던 것 같다. 책을 많이 보셨기 때문인지 등도 약간 구부린 상태로 책을 보거나 컴퓨터를 하고 계시다가 우리가 똑똑 노크를 하면 쓰윽 고개를 돌리셨었는데...... 엄청나게 많은 책에 싸여 마치 책 속에서 책을 밀치고 고개를 내밀고 인사하시는 것처럼 보였다. 교수님의 연구실은 정말 책이 넘쳐났다. 서가에 가지런히 꽂기에는 책이 너무 많아서 꽂힌 책 위에 다른 책을 눕혀 놓았고, 또 바닥에도 무릎 놓이로 여기 저기 책이 쌓여 있었다. 우리끼리 "저 많은 책들 중에서 필요한 책을 어떻게 찾으실까? 어디에 있는지 아실까?" 하고 소곤거리기도 했었다. 대학을 졸업한지도 벌써 10년이 되어가니, 교수님의 연구실도 변하는 강산처럼 새롭게 변했을까? 다음에 친구와 함께 찾아뵙고 인사드려야지, 그리고 그 책들도 잘 있는지 살펴봐야지~~
'공부'라는 책을 통해 저자인 김열규 교수님께서 얼마나 책을 사랑하고 즐겁게 공부하셨는지 엿볼 수 있었다. '책님들이여, 고맙습니다!'라니...... 나는 책을 보다가 잠들거나, 학창시절 쉬는 시간 10분 동안 잠을 잔 것을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해서 부끄럽게 여겼는데, 저자는 책을 보다가 잠드는 것이야말로 공부를 하다가 잠깐 자는 잠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잠이라고 말한다. 나도 이제 누군가 책상에 엎드려 깜빡 잠이 들어 이마에 책 자국이 새겨지면 그걸 놀리지 말고 정말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봐야겠다. 책이 주는 달콤한 선물을 잘 누렸냐고 얘기하는 여유를 가져야겠다.
한국 사람들이 가장 후회하는 것 중에 No.1은 '공부 좀 열심히 할껄~~~'이라고 한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단연 1위이며, 특히 70대 이상의 할머니들은 더 많이 후회하신다고 한다. 그 할머니들은 자신의 게으름으로 공부를 안 하신 것이 아니고 주로 가정형편과 사회 분위기 때문에 못하신 것일 것이다. 자신을 희생하며 공부할 기회와 시간을 포기했는데, 우리 사회는 공부를 얼만큼 했느냐에 따라 주어지는 혜택과 삶의 환경이 너무나 차이가 나니 후회가 된 것이리라. 특별한 재능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사람은 무엇을 얼마나 공부했느냐게 따라 직업도 삶의 방식도 달라지니 공부는 참 대단한 존재이다. 하지만 저자도 공부는 머리 쓰기이고 머리 짜기라고 말하듯이 공부는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엉덩이로 하는 것이다.'라는 말처럼 하루 아침에 되는 일도 아니고, 노력하고 또 노력해도 끝나지 않는다. 저자처럼 공부에 푹 빠져 사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은데, 이 책을 보아도 당장 공부로 대학입시가 결정되는 청소년들의 갈등은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 한국통에서 나아가 지구통이 되기 위해 영어도 공부하고 세계의 문화와 역사를 공부하라고 했으니 우리 청소년들은 과연 공부할 것이 더 늘어나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도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틈을 내어 책을 읽고, 무언가를 공부하려 애쓰고 있다. 나의 삶을 돌아보니 내가 직업을 가지고, 우리 아이들과 도란도란 살 수 있는 힘도 공부가 주었는데, 그렇다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책상에 앉아서 책만 읽으라고 말하고 싶지 않으니...... 우리 아이들도 공부하느라 학교에서 늦게 오고, 잠 못자고 하면 가슴 아플 것 같은데, 과연 우리 딸내미들은 공부를 즐기며 할 수 있을까? 공부에 대해 공부해도 공부는 역시 힘이 드는구나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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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진짜루~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았다. 가르치는 일이 좋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내 공부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일을 업으로 삼은 셈이다. 물론 더~어럽게 바빠서 내가 하고픈 공부는 뒷전이 되긴 했지만 말이다 T .T)써글~
가끔 애들에게 애들 같은 질문을 받는다. "공부가 재미있나요?",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 할 수 있나요?" 질문이 짧으니 대답도 짧게 한다. "응!", "잘~" 무척 성의없는 답변이라 실망스러울지도 모르겠으나 <김열규 교수님>조차도 이처럼 말씀하셨다. 사실 조금더 길게 답변하셨으나 내용은 짧으나 기나 같다.
지금부터 김열규 교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김열규 교수님은 공부란 이런 거라 말씀하셨다. 공부가 더럽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그렇게 힘든만큼 고통스러운만큼 꼭 보답을 받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이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이셨다. 공부는 절대로 한 만큼 보상해주고, 또 절대로 배신하는 일도 없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노력과 헌신, 열정, 그리고 교양을 주문하셨다. 지당한 말씀이다.
김열규 교수님은 이런 것도 공부라고 말씀하셨다. <머리>로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가슴>은 뜨겁고 저미도록 부풀리라고 하셨고, <손>은 부지런히 놀리며, <몸과 다리>로도 느끼고 생각하라고 말씀하셨다. 곰곰이 곱씹어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씀이시다.
재밌는 말씀은 책꽂이에 책을 꽂아만 두어도 공부며, 책상을 끌어안고 달콤한 잠을 자는 것도 공부고, 책 가지고 놀기만 해도 공부라 하셨다. 이것도 충분히 공감하는 내용이다. 내가 그랬으니 말이다.
김열규 교수님은 공부의 기본은 읽기와 쓰기라고 말씀하셨다. 과욕은 금물이라지만 읽는 것만큼은 양껏 욕심을 부려도 세상 책이 동이 나지도 않고 지식이 철철 넘친다고 하여도 전혀 살찔 염려를 할 필요가 없단다. 그만큼 많이 읽으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무엇을 읽어야 좋을까? 수십, 수백 년이 지나도 한결같은 책을 읽으라신다. 바로 <고전>이다. 괴테의 것이나 두보의 것 같은 것 말이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또 읽어도 읽어도 물리지 않는 책이 바로 고전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이나 윤동주의 <서시> 같은 것도 그런 것일테니 말이다.
쓰기는 나 자신과의 대화와 같은 것이다. 깊고도 깊게 써볼 필요가 있다. 2010년부터 객관식 시험을 줄이고 <서술형 답안>을 요구하는 시험을 50% 이상 반영토록 하였다. 정말 찬성할 일이다. 이제야 진정으로 애들이 공부다운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여기부터는 내멋대로 질주합니다 객관식 시험은 공부가 아니었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아니라고 답하겠다. 왜냐면 객관식은 <깊이 생각하는 힘>을 억제하는 시험이기 때문이다. 간혹 객관식 시험을 치르면서도 깊이 사고하고 모든 것을 아우르며 공부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문제가 요구하는 범위까지만 공부하게 한다. 다시 말해, 학년별로, 또 수준별로 <사고의 한계>를 정하고서 거기까지 알면 통과시키는 식이다.
폐해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이들이 관심있는 분야라도 만나면 마음껏 깊이 공부하도록 냅두질 않고, 얕은 수준의 다른 공부를 넓게 하게 만드니 말이다. 초등학교에서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둥, 한창 창의력이 발휘되는 시기에 <한계의 틀>에 가둬 두는 격이다.
또 올백이 수두룩빽빽 나오게 만든다. 만점을 받았다는 것은 초등, 혹은 중고등 수준에서 충분하다는 것이지 <모든 것>을 다 안다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애들은 물론, 부모님들까지 만점에 만족하다가 중고등에서 성적이 떨어지면 부랴부랴 학원을 뺑뺑이 시키기 일쑤다. 애초에 옳게 공부하는 방법을 습관화하지 못했는데 쪽집게 학원이 뭔 소용일까? 대학 들어가는 것으로 끝이다. 이래서 우리 나라에 세계적 인재양성이 안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더 많지만 마지막으로 <과목당 변별력>이 없으니 학생들이 이수해야할 <과목수>만 잔뜩 늘려놓은 셈이다. 너도나도 웬만큼 공부하면 국영수사과 만으로는 수학능력을 검증할 수 없으니 다른 과목에서까지 변별력 검증을 해야 한다. 사실 <예체능> 같은 것은 선수가 아닌 이상 <교양> 수준으로 <건강한 신체와 예술적 감수성을 함양> 시키는 정도가 옳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도 학생들은 내신을 위해서라면 코피 터지게 운동해야 하고, 미술학원, 피아노학원에 등록해야만 한다. 과연 어느 나라에서 우리와 같이 공부하는지 묻고 싶다.
이 책의 재미는 읽다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는 것 잠시 흥분을 해서 책에서 언급하지 않은 내용까지 질주하고 말았는데..참 한심해서 그런다. 길게 말할 것도 없이 <공부는 즐기면서 해야 한다>는 내용의 책이다. 더도 덜도 할 것 없이 딱 그 말을 하고 싶으셨던 걸게다. 나는 이 책을 그리 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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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뒤 <에필로그>에 이런말이 있어요. 세상이 정체되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 한, 내가 배우고 익혀야 할 것들은 나날이 늘어만 간다. 그래서 나도 나날이 바빠져만 간다. 이렇게 나의 공부는 죽는 날까지도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아니, 죽는 날까지 나는 공부를 멈출 수 없을 것 같다. 교수님께서는 앉아서만 하는것을 공부라 하지 않으시고 삶의 배움 모든것을 공부라 하셨네요. 그러니 평생에 공부를 멈출 수 없을 것이라 하셨구요. 먼저 교수님의 공부(工夫)란 무엇인지는 책의 처음 부분에 나옵니다. 한자로 工은 손이 아닌 머리로 뭔가를 따지고 캐서 좋은 생각을 만들어 내는것을 의미하고 이 경우 머리를 도구로 사용해서 좋은 생각을 익히고 빚어내는것을 공의 의미라 했구요. 夫는 두건이나 관이나 모자를 쓰고 있는 남자를 가르키는 말이라했네요. 둘이 합쳐서 교수님은 이렇게 풀어주셨어요. 공부는 머리를 써서 위대한 사람이 되도록 애를 쓰는 것이다. 라고요. 그리고 공부의 원칙으로는 '더도 말구 덜도 말고 꼭 머리 노동한 것만큼만 얻는다'라고 하셨네요. 공부는 어쨌떤 우리 신체중 머리의 노동이라고 할 수 있겠고 뒤로가면 가슴으로도 공부를 하는것도 있다하셨어요. 가슴으로 하는 공부는 감정을 통한 사람의 표정, 인상을 읽을 수 있는것이고 또 시, 음악, 미술과 같은 예술을 공부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하셨네요. 맞는 말인것같아요. 이렇게 교수님의 설명을 찬찬히 보니.. 공부의 뜻이 이렇게 심오하고 깊고 광범위한지 몰랐네요. 단순히 시험보고 외우고 읽고 알아가는것만을 생각했었는데, 삶의 사소한 부분을 터득해가는것도 공부이지요. 그리고 공부는 마라톤과 비유하시면서 템포를 잘 조절해서 끈질기게 끝까지 해야한다고.. 그래서 공부는 중노동 같은것 이라고도 하셨어요. 하지만 공부는 배신하지 않으므로 일단 공부를 하면 지적인 펀드를 가입하는거랑 마찬가지로 원금이 줄거나 깎이는 일은 절대없는 안전한 저축형 펀드에 비유하셨네요. ㅋㅋ 정말 좋아해서 하는공부, 끊임없이 관심을 가졌던 분야는 절대 잊을 수가 없고 수익이 사라지지가 않죠. 교수님께서는 당부하시네요. 공부는 언제 어디서나 속도와 기동성에 치우쳐서는 안된다며.. 처음에 말씀하신대로 마라톤인것처럼 템포조절을 잘해서 속도를 잘 유지해서 느긋하게 끈기있게 줄기차게 하는것이 공부의 필수라며.. 모바일 시대일수록 클릭한번으로 방대한 자료 습득과 클릭으로 수고함 없이 많은 자료를 얻을 수 있는것을 경고하시네요. 이렇게 되다가 공부가 졸속이 될까봐.. 끈질기게 캐고 따지는 일이 없이 소홀해질까봐요. 그러구보니 저도 정보를 터치하는 인간인 호모핑거의 시대로 바뀌면서 책을 읽는것보다 컴퓨터를 통해서 정보를 습득하는 속도가 빠르고 쉬워졌죠. 그래서 머리를 안쓰다보니 외우는것도 별로 없게 되었어요. 내가 외우지 않아도 클릭한번에 금방 자료를 찾을 수 있고 검색할 수 있으니깐요. 그렇기 때문에 멀티 시대를 향한 우려로 "공부는 언제 어느 경우에나 주체적이라야 한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라야 한다. 우리 각자가 알아서 제 힘으로 다그쳐서 해야 하는것이 공부이다. 노트북에서 혹은 스마트 폰에서 보조 자료를 얻어내되 최종적인 해결책이나 답은 공부하는 사람 본인이 스스로 찾아야 한다. 인간은 로봇, 인간 모바일, 인간 스마트 폰이 되어서는 안된다." 라구 말씀을 하신 구절이 인상깊네요. 제가 그렇게 살아왔는데.. 느리게 다소 바보같아 보이는 듯이 그렇게 습득을 해나가야 겠습니다. 책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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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정보화시대의 공부(工夫)하는 방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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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공부 공화국! 그러나 알맹이가 없다?! 어느 시사 프로에서 대한민국은 공부 공화국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었다. 자율성이 있는 공부가 아닌 테스트로 사람을 판단하고 사람을 가리는 나리인 것이다. 학창시절 제일 듣기 싫은 잔소리는 예나 지금이나 ’공부해라’일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공부에 얼마만큼 시간을 들일까? 내가 공부 해온 14년간의 계산이 122,640시간 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우리가 먹고 자고 한 시간만 얼추 빼고도 71,540시간이다. 우리는 그동안 수없이 “열심히 공부해라.”라는 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왜 그리도 공부란 것에 미쳐서 해방이 되질 못하고 있는 것일까? 『공부, 그것은 나의 불안전한 부분을 채워나가는 것.』 공부工夫라는 한자를 분석해보면,「머리라는 도구를 써서 일하는 위대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머리를 써서 위대한 사람이 되도록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행위가 공부인데, 이는 입신을 위한 것과 수신을 위한 것으로 구별할 수 있다. 김열규 교수는 원래 공부가 수신의 의미가 강조된 것인데, 오늘날에 와서 입신이 더 중요해졌다고 이야기하며, 개인의 진학과 취업도 중요하지만 여기에 매진하느라 수신을 위한 공부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을 이 책을 통해 전한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책이라는 것에 열중을 하게 되었을까? 더 넓은 세상을 움직이기 위한 배움? 스투디움의 4대 의미 노력 * 헌신* 열정* 교양 이러한 여러 가지를 애쓰고 노력하며 부지런하게 관심을 쏟아 부으면서 마음을 바치는 거다. 그러한 것에 열정을 부으면서 집념, 열중을 해가며 학문으로 교양을 갖추는 것이 바로 4대 원칙이라 한다. 《 공부는 노력이고 헌신이고 열정 이니라! 》 공부의 유래와 특징, 장르별 읽기의 역사도 담았다. 아울러 비판적으로 글 읽는 법, 글쓰기의 기초와 논리적으로 글 쓰는 법 등의 공부 기술과 정보기술(IT) 시대에 필요한 공부법도 제시했다. 그의 첫 공부 스승인 할머니의 옛날이야기 에서부터 국문학의 세계로 안내해준 시문학의 가르침까지, 공부와 함께 한 삶의 이야기가 곳곳에 들어 있다.
특히 노트북과 스마트폰 등 IT 기술의 총아들이 전하는 정보가 책이 담당했던 자리와 역할을 맡는 현상에 대해 “21세기의 또 다른 르네상스”라고 평가하면서도 “공부는 언제 어디서나 속도와 기동성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 끈기와 줄기참이 공부에는 필수”라고 강조한다. 『원래 공부는 수신의 의미가 강조된 것인데, 오늘날에는 입신이 더 중요해졌다』며 『우리 스스로가 교양과 영혼을 돌보지 않고 현실적인 이해득실에만 매달린다면 그것은 ‘인간 포기’를 의미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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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라는 것은 태어나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한치의 여유도 없이 계속되는 작업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김열규 교수의 지식 탐닉기인 <공부>를 읽으며 평소 내가 공부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바와 비교해 보았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공부는 결코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하는 작업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감각기관을 총동원해서 정보를 습득하고 사고하는 과정을 거쳐 밖으로 결과물을 내보내는 작업이니까요. 그중 정보를 얻고, 내보내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읽기와 쓰기라고 말합니다. 읽기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아마 말이 필요없을 것입니다. 저자가 읽기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 부분은 저도 깊이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장르별로 작품을 소화해내는 저자만의 독특하고 독창적인 방법은 많은 경험이 담겨진 진한 국물과도 같습니다. 공부한 것을 밖으로 표현하는 방법인 쓰기에 대해 저자는 논증적인 글쓰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수필이란 방식도 자신이 공부한 것을 밖으로 표현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는 글쓰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공부하는 자세를 말함에는 자세를 바르게 하고 주위의 방해와 어려움을 이겨내야 함을 강조하며 조식과 정양용의 경우를 예시하고 있습니다. 간혹 공부하는 자세가 왜 그리 중요할까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김열규 교수님의 말씀을 제 방식대로 해석해 설명해 보겠습니다. 요즘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귀에는 MP3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고, 눈으로는 책을 읽으며, 입으로는 영어를 말하고, 손으로는 수학문제를 풀고 있습니다. 의자 밑 다리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바쁩니다. 생각하기 나름입니다만 한번에 여러 공부를 할 수 있는 최첨단 공부법처럼 보이지만 실상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익히는 경우는 드뭅니다. 공부하는 방법이 아무리 옛날과 다르다고 해도 김열규 교수님이 말하듯 바른 자세로 공부하는 것은 단지 머리속 알맹이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몸을 바르게 하고 인성을 배워가는 것임을 다시금 떠올리게 합니다. 시대가 변해감에 따라 공부하는 방법도 변해갑니다. 전자기기를 이용 빠르고 간편하게 정보를 습득하고 변용해가는 과정을 보면 공부에도 새로운 방법의 시도가 있어야 할 것처럼 보입니다. 저자는 새로 등장한 터치세대의 공부법을 반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점에서 만큼은 저자와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빠르고 간편하게 얻을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성이 주어지며 쉽고 간단하게 얻은 정보인 만큼 수명이 짧아 나의 몸과 마음을 살찌우는 공부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마음껏 공부할 수 있다는 건 인생 최대의 복이라 생각합니다. 김열규 교수님의 지식 탐닉이 멈추지 않고 계속되기를 빌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