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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참 좋아하는 나지만 이상하게도 단편집은 손에 잘 잡히질 않는다. 손에 잡아본 단편집중 지금까지 쉽게 읽었던 책이 없었던 것 같다. 김규나의 단편집 '칼'은 11편이나 되는 단편을 수록하고 있었고, 어두운 곳에서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표지의 여성을 보니 '단순 상쾌한 이야기는 아니겠구나'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200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가. 수상경력을 가진 작가의 작품들인 만큼 조금은 어렵지 않게 책을 대할 수 있을까~하는 기대를 내심 해본다. 단편이라는 것에 대한 내 편견때문일까? 그렇다면 내가 단편집을 어려워하는 이유가 무얼까? 이어지지 않는 이야기? 짧은 이야기속에 숨은 뜻을 헤아리지 못 하는 나의 무지함?? 글쎄.. 그것보다 내가 가장 우선적으로 꼽는 단편집과 친해질 수 없는(?) 이유는 '이야기는 다르지만 품고 있는 내용이, 뜻이, 문체가 너무나 같은 작가들의 색'때문인 것 같다. 분명 앞과 뒤의 작품은 내용은 틀린데 무언가 말하려고 하는 뜻이 비슷하고.. 작가의 문체가 너무 똑같아 다른 작품을 보고 있단 느낌이 안드는 그런 것....
찔릴 듯 날카롭고 부서질 듯 섬세한, 우리 시대 사랑에 대한 낭만적 보고서
표지 안쪽의 작가의 프로필엔 그녀의 나이가 없다. 하지만 함께 나와있는 작가의 사진을 보자니 어느정도 삶의 경험이 어려있을 듯 보였고 11편의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경험과 지식이 많은 작가'라는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았다. 요즘 소설은 사실과 소설의 경계가 모호할 정도로 생생하기때문에 상상만으로 이야기를 구성하기는 어렵다. 그런면에서 그녀의 작품들은 너무나 사실적이면서도 섬세하고 일상과 감정들을 자세히 그려내고 있다. 실제로 11편의 이야기에 나온 상황들을 마치 작가가 모두 경험해본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으니까. 하지만 뭐랄까.. 홍보문구에 있는 '우리 시대 사랑에 대한 낭만적 보고서'라는 것... 그런 이야기는 어디에 숨어있는 것일까?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여성이었고 결혼을 했거나 결혼을 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을 이뤘으며 그들이 이야기하는 사랑은... 무언가 아픔과 공황을 겪고 있는 중이었다. 표지의 어두침침한 분위기가 너무나도 잘 어울릴법한 이야기가 무려 11편이나.. 물론 인간의 이중적인 면들에 대해서는 상당히 공감한다. 하지만 이야기나 드라마에서나 자주 접하던 자유로운 성생활과 부부간의 불화들.. 그로인해 아픔과 상처를 받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 읽는 동안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고 할까? 작가의 문장력과 표현력은 정말 '칼'처럼 날카로왔지만 11편의 이야기가 계속되는 내내 나는 너무 힘들었던 것 같다. 단순히 책장이 안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런 상황들이 벌어지는 현실을 도피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너무 평화롭고 일상적인 내 삶에서 이런 우울한 부분들을 접하기가 쉽지 않아서 쉽게 동조할 수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의 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이 있다'는 식의 다른세계로 빠져들지 않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오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마무리 되고 있다. 책과 함께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작가는 어떤 경험과 마음이 있기에 이런 이야기들을 이리도 많이 탄생시킬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편집이 나에게 잘 맞지 않는다던 나의 고정관념을 이번에도 깨뜨리지 못 했고, 마치 같은 작품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우울함과 마무리..그리고 작가의 색이 짙은 문체가 이번에도 나에겐 고비가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평범하지 않은 여인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작가는 우리에게 조금의 희망이 남아있음을 보여주려고 했다는 것.
우리 눈에 보이는 별은 모두 과거야. 빛이 여행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니까. 저 별들 중엔 수명을 다하고 사라져버린 것들도 있어. 어쩌면 수백 년 후 미래의 누군가는 저 별에서 지금의 우리를 보게 될지도 모르지. 재미있지 않아? 이미 사라지고 없는데 손에 잡힐 듯 보인다는 것, 지금 여기 있는데 보이지 않는다는 것 말이야. < p 112> |
![]() 가끔 나는 책을 읽으면서 가장 중요한 정보를 놓친채 읽어내려가기도 한다. 바로 그 소설이 단편인지 장편인지도 생각지 않고, 그저 맞닥뜨리듯 읽다가, 어? 단편이었네? 이렇게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꼼꼼하지 못한 성격 탓인지라 그 의외의 놀라움이 기쁨이나 아쉬움으로 바뀌기도 하지만, 단편 소설을 장편 소설 못지 않게 좋아하는 터라, 이 책 역시 짬짬이 쉬어 가며 읽을 수 있어서 더욱 좋다고 생각을 하였다. 게다가 한편 한편의 작품이 모두 수준급이어서 이 책이 작가의 첫 소설집이라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팽팽하게 당겨진 줄만이 소리를 낸다.
하지만 팽팽함은 언제 끊어질 지 모를 불안을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당신은 아내가 행복한 줄 알았다.
...그런데 겨울이 끝나 가면서 발 밑에서 살얼음 갈라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
18.19p 칼
설마 그런 사람은 없겠지만, 여러 책을 읽다보면 어떤 책은 아, 너무 쉽게 쓰여진 책 아닐까? 싶은 아쉬움이 들때도 있다. 그냥 허투로 결말을 내어버린다거나, 그냥 중언부언 말을 흐려 버리는 그런 글을 만날때의 난감함이랄까? 하지만, 이 책은 달랐다. 정말 공들여 썼다는 느낌. 그리고 작가의 내면의 깊이가 느껴진다는 그런 느낌이 진하게 배는 그런 책이었다. 띠지에 나왔듯 조선일보 신춘문예 심사평에서 윤후명, 서영은님이 "흔들림 없는 문장 속에 등장한 부검의의 존재, 섬세한 묘사, 죽은 당신을 통해 발라낸 우리들의 실존, 여태껏 등단 않고 어떻게 있었을까? 라고 말했듯. 정말 어디 계시다가 이제 나타나신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게 안으로 깊숙이 들어온 오후의 햇살이 칼날에 부딪혀 여자의 눈을 찔렀다.
여자는 칼에 찔리기라도 한 것처럼 한순간 몸을 떨었다.
115p 코카스칵티를 위한 프롤로그
탄탄한 문장력, 그리고 유려한 글 솜씨.
책을 읽다가 좋은 표현이 나오면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살짝 책을 접곤 하는데, 이 책은 그렇게 접힌 부분이 무척이나 많았고, 각 단편들마다 거의 매번 그런 접힌 부분들이 나오곤 했다. 그리고, 이런 글을 볼때마다 글을 쓴다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었다.
바다에서 갓 건져 올려 파닥이는 은빛 갈치처럼. 어둠 속에서 몸부림치는 그들의 상처 난 영혼이 느껴져 나는 소름끼쳤다. 헤어질 수 밖에 없었으리라. 사랑이란 반드시 간격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더이상 다가갈 빈 공간이 없다는 것은. 너무 먼 단과 나처럼 대화도 섹스도 이미 존재하지 않는 먼 사이만큼이나 위험한 것이다. 너무 멀어서. 혹은 너무 가까워서 사랑은 가끔 참을 수 없이 슬프다.
153p 거울의 방
단순히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것만도 나는 이렇게 어렵단 생각이 들고, 뭔가 흡족하지 않은 표현들에 아쉬움이 가득하기만 한데.. 김규나 작가의 표현들을 보면, 정말 딱 떨어지는 그런 표현들이 너무나 많다.
실체를 알려고 하면 할수록 두려워지는 것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배운 그날 이후, 나는 많은 것들을 애써 알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알고 싶지 않아도 알아지는 것들은 세상에 너무 많았다.
217p 테트리스2009
그녀의 나이가 43이라고 하셨던가? 여자 나이 마흔에 비로소 느끼게 되는 어느 경지가 있는 걸까?
예사롭지 않은 그녀의 표현들이 무척 마음에 들었지만, 사실 소설속 여주인공들의 삶과 사랑은 우울한 이야기들이 많아서 읽는 동안은 이입된 감정으로 힘든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실연을 겪고 있다거나, 아픈 사랑으로 상처받은 상황이라면, 다시 또 새로운 사랑이 찾아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녀의 책이 어쩌면 치료약이 될 수도 있겠지만, 평범하게 아기와 신랑과 살아가는 삶을 살다보니, 아픈 사랑으로 힘들어하는 이야기들이 사실 힘들게 느껴졌다.
나 또한 적지 않은 나이라고 생각해왔지만 아직도 순수한 사랑만을 꿈꾸고 지금의 이 사랑이 영원한 사랑이라 믿고 싶은 소녀같은 마음을 지니고 있기에 사랑이라는 그 이면에 숨겨진 칼날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는지 모른다.
아, 어리석은 당신. 당신이야말로 하늘이 정해준 나의 운명이었던 거예요. ..왜 진작 말하지 않았나요.
206p 차가운 손
어려서 읽었던 소공녀, 소공자가 아무리 해피엔딩이었어도 중간에 고난을 겪는 과정이 너무나 길었기에 읽는 내내 고통을 겪어야 했던 그런 느낌을 이 책을 읽으며 받았던 것 같다. 훌륭한 작가의 좋은 표현으로 술술 잘 읽히면서도 인상적인 그런 단편소설들이었음에도 행복하지 않은 그녀들의 사랑과 삶 이야기가 내게는 또다른 칼이 되어 꽂히는 듯 했다.
아직 상처까지 감싸안을 수 있는 성숙한 어른이 되지 못했다는 것일까?
따뜻하고 행복한 이야기를 더 좋아하고, 아이들 문학을 더 즐겁게 더 재미나게 읽는 것을 보면, 나의 미숙함에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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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밖 흐드러지게 핀 꽃을 외면한 채 햇빛 한 가닥 들어올 만큼 커튼을 젖히고 어디를 바라보는지 알 수 없는 공허한 눈빛, 아니 까만 눈동자가 보여지지 않은 채 코발트블루 빛깔의 짧은 원피스 차림에 묘한 관능미를 풍기며 허벅지를 고스란히 드러낸 그녀가,,, 거기 있었다.
김규나 작가의 첫 단편소설집 <칼>
짧은 소설 11편이 날을 바짝 세운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김규나 2010년 현재 마흔 둘,,, 단편 '내 남자의 꿈'이 2006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칼'이 200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이름을 알렸고 소설가가 되기 전, 영어 교사와 수필 작가로 활동했다. 아,,, 그렇구나. 깜찍, 발랄, 감각적인 칙릿 소설이 주를 이루는 요즘 뭔가 부족한 가벼움이란 목마름에 헐떡이던 내게 한줄기 달디 단 한 모금의 물처럼 나의 목마름을 단번에 날려준 단편집,,, 그래,,, 반갑구나. 그녀가 정말....
"살아가면서 늘 결핍을 느껴요. 모자라는 게 있으면 아쉬워서 어떻게든 채우려 했지요. 하지만 요즘 들어 그 결핍이 처음부터 그대로 두었어야 할 삶의 여백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무리하게 채우려 들다가는 상처만 커질 수 있으니까요."
김규나 작가는 자신의 소설이 '치유의 칼'이 되기를 바란다했다. 어쩌면 그녀는 뿌따뽕빠리의 귀환 속 등장하는 저 먼 페르세우스자리의 알골이란 별에서 우리 마음 속 날 선 슬픔을 치유하러 온 또 다른 우주 이방인일지도 모르겠다.
줄을 탄다. 11편 단편 소설 속 주인공들의 떨어질 듯 떨어질 듯,,, 저마다 자칫하면 베일 것 같은 날 선 슬픔을 담고 줄을 탄다.
누군가는 휘청거리는 줄 위에 머물며 자신의 생을 방관하고, 누군가는 휘청거리는 줄 위 슬픔을 머금은 채 내려서지도 줄 끝을 향해 내닫지도 못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휘청거리는 줄 위,,, 낙하한다.
소외된 인간들의 치밀한 외로움들,,, 이처럼 날 선 슬픔이, 상처가 내게 위로로 다가올 수 있음은,,,
아마도,,, 상처 입은 영혼들 속 사랑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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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분이 추천하고 단편이라서 접근 하기 편한 책이였지만 읽다보니 각각이 심오한 단편영화 또는 단편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에서 푹~ 허우적
단편의 매력은 주제의 간결함과 주제로 가는 길지않은 여러 장치들의 자연스러운 개연성. 그리고 마지막에서의 식스센스와 같은 반전 내지는 큰 울림이지 안을까 합니다
그러 면에서 본다면 작가님은 사랑이라는 주제에 수많은 현대의 스쳐지나가는 일상을 거슬리지 않게 잘 끌어 들여 작가 특유의 섬세함으로, 칼끝이 피부에 닿을 듯한 긴장감으로 마지막에 아...하는 가슴으로의 탄성을 느끼게 했습니다
작가님의 장편을 기대한다면 어떨까요 단편의 간결한 오묘함을 느끼게 해 주셨으니 장편의 인간적 사랑의 심오함을 읽게 해주심이 어떨가 합니다
저는 문학적 건망증이 심해서 칼의 단편을 기억의 저편에 벌써 숨겨 놓았습니다 그러니 꾸준한 작품 활동으로 독자인 저에게 문학적 건망증에 자극을 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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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특별함을 찾기란 생각보다 어렵다. 사람마다 취향이나 취미가 다르겠지만, 그 속에서 특별함을 찾는 것과 평범하면서도 일상적인 부분에서 특별함을 찾는다는 것은 아마도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해본다. 가끔 우리가 접하는 영화나 드라마 혹은 소설책에서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소재의 이야기를 각각의 장르에서는 자신의 색깔과 성격에 맞게 잘 만들고 구성하였기 때문에 일상에서의 특별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작품도 접해봤을 것이다. 이처럼 일상에서의 특별함이란 어쩌면 평범한 요일이지만 누군가의 생일이거나 기념일이라면 그것은 평범한 요일이 아닌 특별한 요일이 되는 것처럼 우리의 일상도 그런 것들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세상이 각박해지고 빠르게 변화하면서 주변을 둘러보기에는 더욱 어렵고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사회가 어느덧 자리를 잡아 버린 것 같아 씁쓸한 생각이 든다. 이기적인 사람에게는 주변 사람들이 없는 것처럼 베풀거나 타인과의 교류가 활발한 사람은 주변 인물이 북적이기 마련이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서 미래에 대한 계획도 할 것이다. 그렇다가 마지막에는 ‘죽음’이라는 것이 자리를 잡게 된다. 이것은 비켜갈 수 없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므로 자신의 죽음을 특별하게 포장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나 드라마 혹은 소설 작품에서 ‘죽음’을 소재로 다루고 있는 작품은 많다. 이야기의 시작이 죽음에서부터 시작하거나 이야기 중간에서 죽는다는 것 혹은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등 죽음을 소재로 다양하게 이야기가 그려지고 있다. 그런 죽음을 작가 《김규나》 씨는 어떻게 그려내고 있는지 궁금했다. 책 제목은 「칼」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읽기 전까지는 제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는 없었다. 이 작품은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모두 11편으로 되어 있었다. 각각의 이야기는 우리의 일상에서 일어날 법한 일을 평범하게 그려내고 있지만, 그 평범함 속에서 담담하게 특별함으로 포장하는 작가의 글솜씨에 놀랐다. ‘사랑’으로 시작된 감정이 안겨주는 고통과 심리나 상처 등 감정을 잘 표현하고 있었다. 어둡고 깊은 지하공간의 바닥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습한 공기나 냄새를 햇볕이 내리쬐어 건조하게 하여버리는 작가 특유의 문제나 표현으로 여자의 시선에서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이 책의 제목인 「칼」이 의미하는 것은 칼날이 날카로운 것처럼 우리의 현실이 날카롭고 나중에는 그 칼날로 자신마저 다치게 될지도 모르거니와 타인에게도 그 날카로움이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 담겨 있는 각각의 단편을 읽고 나면 이 작품의 제목이 무엇을 말해주고자 하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작가 《김규나》 씨의 작품은 처음 만났다. 그녀는 단편 「내 남자의 꿈」이 2006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고 2007년에는 단편 「칼」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소설가 된 것이다. 처음 만나는 작가이기도 하고 작품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작품을 읽으면서 여자의 시선으로 그리고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지 못한 평범함에서 특별함을 이끌어 냈고 그 특별함 속에 존재하는 사랑, 상처, 심리적인 표현 등 많은 부분을 단편에서 보여주고 있다. 이 단편에서 등장하는 등장인물의 삶은 사랑 속에 존재하는 불안과 배신이라는 존재감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한다고 해서 모두가 행복한 것이 아님을 그리고 사랑한다고 해서 그 사랑이 끝까지 유지되는 것이 아님을 그녀의 날카로운 문제와 항상 존재하지만, 평소에는 잘 느끼지 못하는 외로움이라는 감정까지 우리 내 삶의 모습이나 감정까지 잘 보여주고 있기에 그녀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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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표지에서 느껴지는 느낌이 있는가?...한 여인이 조금은 허술한 또는 편안한 복장을 한체 창가에 앉아 햇볕을 쬐며 밖을 내다보고 있다..시간적으로는 하루중 오후 4시정도의 느낌이 든다...계절로는 개인적으로 늦가을쯤이 아닐까 생각해본다..왜냐믄 쓸쓸해 보이니까....그러한 느낌을 가진 표지이미지를 생각하고 이 소설을 접한다면 소설이 주는 감성에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물론 나의 입장에서는 그랬다.
단편집이다..총 열한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작품인데...대부분의 단편의 감성과 주제는 표지에서 느껴지는 그러한 싸아함과 별반 다르지 않다..그러니까 그걸 글로 풀어보라면 뭐라고할까?...인간의 소통과 부재에 대한 감성의 배반으로 인한 배신과 권태의 상관관계에서 펼쳐지는 증오와 사랑의 파노라마속에 한가닥 희망의 불씨를 지피기 위한 작가의 을씨년스러운 일상속 허구여행?????...적고 있는 나도 뭔 말인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말로 표현하고 설명하기 참 어려운 작품이다....상당히 여성적 감성으로 집필된 작품이니 결혼 10년차의 고정관념에 살짝 물들어버린 중년남성의 입장에서 설명해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하지만 느껴지는 부분은 싱크로율 80%이상은 된다는 점...이게 이 작품의 장점이 아닐까 싶다.
단편이어서 좋다는 의미를 이 작품에서 제대로 살려낸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단편을 읽는 맛이 상당히 매력있다. 딱 필요한 만큼의 느낌과 감성이 들어있는 분량의 단편...그동안 단편을 보면서 의미없이 나열된 문장이나 짧은 내용에 너무 많은것을 담으려는 철학적이고 사고적 허세를 많이 보아왔지만..이 작품에서는 그런 과한 주제는 들어있지 않다..단지 생활에서 일상에서 평범한 또는 평범하지 못한 여인 그리고 남자가 느끼는 감성이 들어있을 뿐이다. 사랑속에 권태를 담고 배신을 담고 불륜을 담고 증오를 담고 고통을 담고 죽음을 담고 그리고 희망을 담는 그러한 일상적인 내용이라는 거쥐....말로는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는것들이다...인간의 소통에 있어 권태롭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하나하나의 단편을 읽어나가다 보면 어느새 다음으로 넘어가게 되는 거쥐...대부분의 단편들은 대동소이한 주제와 감성을 지니고 있다.
다시 표지로 돌아가보자....짧은 머리의 도시녀인같은 그녀의 모습에서 허무함과 권태로움이 심하게 묻어난다...게다가 그녀의 옷차림 역시 뭔가 빠진듯한 일상의 허술함이 보여지기도 한다. 편안하다고 말하기에는 색채감이나 스타일이 난닝구스탈은 아니지 않는가?...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녀의 다리가 잘 빠졌다...응???....약간은 에로틱한 끈적거리는 감성까지 보여주는 그녀의 모습에서 이 작품속에 투영된 인물들의 이미지를 떠올려볼 수 있겠다..그리고 그녀들의 감성들까지....배경적 색채감이 주는 느낌도 작품속 감성에 한몫을 하는 듯하다. 딱히 좋은 색감의 표지는 아니었지만 책과 함께 느껴보는 감성에 충실한 괜찮은 표지는 아닌가 싶다...거창하게 추상화스럽고 이쁜 표지들도 좋지만 이런 작품적 느낌이 물씬 풍겨나는 표지도 괜찮다...난 그렇다..
하지만 작품들이 대부분 여성적 감성과 일상의 삐딱선을 너무 내세운 경향이 있다. 세상이 물론 그렇다. 현실과 이상은 다르고 사랑은 언제나 정으로 변해버리는 모습에서 권태는 늘 찾아오지만 그것을 책에서까지 느껴보는게 기분적으로 그렇게 즐겁지만은 않더라..몇몇편은 색다른 감성과 주제을 보여주었더라면 조금더 멋진 작품이 되었을텐데.. 라는 생각을 해본다... 김규나 작가의 다른 작품들은 접해보지 못했지만 독자들과의 감성적 진동파를 일치시키는 재주는 뛰어난 작가가 아닌가 싶다..그게 남자인 경우에도 말이쥐....우찌보면 난 페미시스트인 듯 하다...정말??.ㅋㅋ..아님 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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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작가의 작품을 만나는 것은 무척 기쁜 일이다. 매너리즘이나 작가의 흔한 잘난척 대신 어딘가 때묻지 않은 순수함과 틀에 박히지 않은 과감함을 기대할 수 있으니.
김규나의 첫번째 소설집 [칼]은 200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칼]과 2006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내 남자의 꿈]등 11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조선일보 신춘문예라면 분명 내가 읽었을 터인데 기억이 없다-_-)
하지만 김규나의 작품은 신인 작가의 어설픔보다는 능숙하고 세련된 문체로 다가온다. 몰입도가 상당하다.
특히 표제작인 [칼]은 하룻밤 사랑을 불태웠던 남녀가 시체와 부검의로 만난다는 독특한 설정과 남녀주인공의 끊어질 듯 위태로운 삶과 그 너머 실존의 문제까지 매우 뛰어난 수준의 작품이다.
하지만 작품들의 수준이 고르지 않고, 조금 더 친절했으면 하는 작품도 더러 있는 걸 보면 역시 신인 작가의 작품인 것 같기도 하고.
[뿌따뽕빠리의 귀환]은 유쾌하면서도 서글픈 블랙코미디이고, [복어]는 여자의 심리를 섬세하게 잘 포착한 작품이다.
[달, 컴포지션]은 진부한 설정과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것, [코카스칵티를 위한 프롤로그]는 뭔가 불친절한 설명에 납득이 가지 않고, [차가운 손] 역시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 상황 설명에 대해 조금만 더 친절하게 다듬었다면 좋았겠다.
우리 시대 사랑에 대한 날카로운 보고서, 정도라고 해두자. 상처받은 이들의 현실은 냉정하지만 그 속에서 실존의 의미를 찾아 떠도는 주인공들은 애잔하다.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한 심리 묘사와 도도한 문장들이 날카롭게 파고들며 전체적으로 잘 읽히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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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과 책표지 때문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책이었다. 제목도 날이 잘 서있는 칼에 손을 대는듯 섬뜻 했지만 책표지의 여인이 책의 분위기를 모두 말해주는듯 했다. 책을 읽기전에 지레짐작으로 11편의 단편이 여자들의 시선으로 날카로운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자 하는듯했다. '칼'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만으로도 그 날카로움은 짐작이 되고도 남음이지만 사전적인 정의를 찾아보았다. 칼 : [명사] 물건을 베거나 썰거나 깎는 데 쓰는 도구. 날과 자루로 이루어져 있다. 무엇을 잘라내고 싶었던걸까?
하룻밤 사랑을 나눈 남녀가 사체와 부검의로 만나게 된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의사가 되려고 했던 그녀는 아버지가 환자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사랑했고 자랑스러웠다. 단순한 의료사고였지만 매스컴에 대서특필되며 한순간에 무너진 아버지의 모습에 그녀는 동정도, 감상도 의료사고도 있을수 없는 부검의로 전향하게 된다. 하지만 의료사고보다 더 무거운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다. 수석바이올리니스트였던 그남자도 자신의 일상과 삶이 평온하고 안정적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연히 행복할 거라 생각했던 아내가 이혼을 요구해 왔다. 팽팽하게 잘 조율된 줄에서 아름다운 소리가 나는 바이올린, 그러나 조율이 잘 못되는 순간 아름다운 음도 기대할 수 없고 심지어 끊어지게 된다. 잘 살아왔다고 믿었던 남자에게 닥친 이 순간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각자의 아픔을 지닌 남녀가 단 하룻밤을 만났을 뿐인데 서로의 아픔을 다독여주는 것 같다. 남자가 죽음을 선택하기 전에 조금만 더 일찍 아픔을 나눌 수 있었더라면... 부검을 위해 날카로운 메스를 들었던 여자와 사체가 되어 돌아온 사람이 함께한 공간은 어쩌면 죽은자를 위로하는 그런 행위였을지도 모르겠다.
남자친구의 아이를 임신하게 된 여자. 그런 여자에게 남자친구 K는 결혼하자고 하지만 아이에 대한 의무와 책임으로 평생을 함께하기엔 그 둘에겐 사랑이라는 믿음이 없었다. 그리고 임신했다는 말을 하는 순간 남자에게 들었어야 했던 말은 '결혼하자'는 프로포즈가 아니라 '사랑해' 아니었을까? 사랑에 대한 표현이 날이 잘 선 칼을 만지는것 처럼 날카롭게 묘사되어있다. 이별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묘사했지만 실제로 살아가는 인생의 진실에 대해서는 '아이까지는 잘라내지 못했다'고 이야기 하고있다.
중년부부의 위기를 보여주는 단편이랄까? 이런 모습들을 읽을 때면 결혼에 대한 불신만 쌓이게 되는것 같아 그닥 읽고 싶진 않았다. 왠지 보아선 안된것을 본 듯한 찝찝한 기분이랄까? 부부는 서로를 바라보지 못하고 한 가정이라는 틀에서 아이들 때문에 산다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외도를 했었지만 결국 가정으로 돌아오고 남편이 집착하는 핸드폰 게임의 테트리스처럼 탈출하지 못하고 무한반복되는 그런 삶을 갈아가는 것 같다. 과연 결혼이란 무엇일까?
김규나의 책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평범하지 않다. 깊은 아픔을 간직하고 있거나 그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자신에게 더 깊은 상처를 내는 여성들도있다. 보통의 단편들은 잘 읽지 못하는 편이었다. 뚝뚝 끊기는듯한 흐름과 다음장으로 넘어갈 때의 전환들에 익숙해지지 않음일 것이다. 책을 다 읽은지는 몇일이나 되었지만 막상 글을 쓰려니 풀어내 지지가 않아서 고생했던 단편소설이었다. 아마도 단편이라는 글 하나하나에 너무 집착했음 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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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의 묘미는 한정된 분량 안에 이야기를 얼마나 제대로 담아내느냐에 있을 것이다.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고 욕심을 내다 보면 기승전결의 흐름이 없이 이야기의 소개에 그치게 될 것이고, 분량에 얽매이다 보면 독자들에게 어떤 재미나 감흥도 없는 그저 밋밋하고 짧은 이야기에 그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200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작가인 김규나의 첫 번째 단편 소설집인 “칼”(뿔, 2010년 7월)은 11편의 짧은 이야기들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마치 한권 한권 장편소설을 읽은 것처럼 이야기의 전개와 묘사가 뛰어나서 오랜만에 단편 소설을 읽는 맛을 제대로 느끼게 해준 그런 소설이다.
책에는 표제작이자 작가에게 200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을 안겨준 “칼”을 시작으로 총 11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각 단편들에는 하나같이 상처입고 때론 버림받기까지 한 소외감과 상실감으로 고통받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하룻밤 찰나의 사랑을 나눈 남녀가 시체와 부검의로 마주하게 되는 “칼”, 자신의 이야기를 가로챈 친구에게 여자까지 뺏기고 만 남자 이야기인 “뿌따뽕빠리의 귀환”, 무능한 남편 대신 생활전선에 나섰지만 점점 남편과 가족들에게 소외당하는 아내의 이야기인 “테트리스 2009”, 어린 시절 엄마에게 버림받고 할머니 손에 자라다가 훗날 커서 다시 엄마를 만나 같이 살게 되었지만 그런 엄마를 미워하는 “퍼플레인” 등 모두가 가슴에 큰 상처들을 앉고 살아가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들이 간직하고 있는 상처에 대한 사연이 소개되고, 그런 상처를 준 또 다른 등장인물과의 갈등이 극에 달한 후 자살(죽음), 체념, 반항, 이혼 등 이야기는 각각의 방식으로 결론을 맺는다. 각 편당 20~30페이지의 짧은 분량 안에 작가는 등장인물의 소개와 각각의 사연들, 그리고 갈등의 고조와 해결이라는 이야기의 서사를 치밀하고 충실하게 담아내고 있어 한편 한편이 읽는 맛이 모두 다르게 느껴지고, 마치 11편의 장편을 읽는 듯한 그런 묘미를 느끼게 한다. 11편 중에서 개인적으로는 표제작인 “칼”과 마지막 편인 “바이칼에서 길을 묻다”가 인상적이었는데, 그중 “칼”을 소개해본다. “당신”이라 지칭하는, 차가운 시체가 되어 부검대에 오른 “그”와 시체의 얼굴을 알아보고 놀라는 부검의 “그녀”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그들은 이렇게 재회하기 사흘 전 금요일 밤 나이트클럽에서 만나 하룻밤을 같이 보내며 찰나의 사랑을 나눈 그런 사이였다. 그녀는 의사를 “하늘이 내려준 직업”이라며 감사해하는 의사 아버지가 단순 의료 사고로 결국 폐인이 되는 것을 보고 의료사고가 걱정이 없는 부검의가 되어 3년째 국과수에서 근무하고 있다. 오케스트라 수석 바이올리니스트로 안정되고 잘 “조율”된 삶을 살고 있었던 “당신”은 행복한 줄로만 알았던 아내의 불륜을 알게 되고는 바이올린 줄이 끊어지는 그런 충격을 받는다. 정기 공연이 있던 날 연주 중에 바이올린 줄이 끊어지는, 아내의 불륜에 이어 두 번째 줄이 끊어지는 충격을 받은 “당신”도 그날 저녁 나이트클럽으로 향하게 되고, 당신은 그곳에서 그녀를 만나게 되고는 서로에게 강렬히 끌려 호텔에서 하룻밤 사랑을 나누게 된다. 외박 후 들어간 당신의 집, “서로 힘들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라는 아내의 한마디에 연습실에서 괴로워하던 당신은 팽팽하게 조여진 마지막 줄만은 당신 손으로 끊고 싶어했던 순간이 바로 지금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는 약을 입에 털어 넣고는 아내에게 다가가다가 그만 수석에 머리를 부딪혀 죽게 된다. 당신의 시체를 부검하면서 그녀는 당신과의 하룻밤을 떠올리고, 부검이 끝난 후 그녀는 갑자기 잊고 있었던, 잊으려고 애썼던 아버지가 견딜 수 없이 보고 싶어진다. 다음 주검 앞에 선 그녀의 발이 휘청거리고 손이 바르르 떨리는 걸 아무도 알지 못한다.
작가 프로필을 보니 이번 단편과 수필집, 여러 작가들과 함께 작업한 작품들은 있지만 아직 본격적인 장편은 없는 듯하다. 이번 단편집에서 장편을 연상케 하는 인물 설정과 서사적 전개와 결말에 있어 녹록치 않은 필력을 보여주었듯이 그녀의 장편 소설 또한 훌륭한 재미와 감동을 우리에게 선사할 것으로 기대가 된다. "내가 쓴 한 줄이 당신의 심장을 따사롭게 어루만져 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그녀의 바램이 올곧이 담겨진 그녀의 장편을 벌써부터 만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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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유난히 파란색보다는 바닷빛깔이라고 표현하고 싶은 색의 드레스를 입고는 앉아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인지 화를 추스르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왠지 모를 사악함이 엿보이는 표정을 한 채 창백한 얼굴로 창 밖을 응시하고 있는 표지를 바라보며 처음 든 생각은 음산하다 였다. 책을 다 덮은 후에 곧바로 서평을 쓰려고 펜을 들었으나 책에 대한 평은 쉽사리 써지지가 않았고, 그 때마다 펜을 놓기 일쑤여서 금세 포기해버리고 있다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써야할지 막막한 것은 그 전이나 지금이나 혹은 그 후에도 똑같고, 똑같을 것만 같아서 이제는 안되겠다 싶어 펜을 들었다. 서평을 쓰기 전 김규나 작가의 이름을 작게 읊조려 보았다. 그리고는 그녀가 자유분방하게 써내려간 책 앞에서 손을 가만히 얹어놓고 눈을 감아본다. 아뿔싸, 책의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다. 역시 단편의 한계일 수밖에 없다. 열 한편의 단편을 읽으며 내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단편들도 여럿 있었고,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해하고 싶을 정도의 단편 역시 있었다. 단편에서 작가가 시사하려는 바를 오롯하게 이해하기란 왠지 모를 숙제처럼 남고, 그 속에서 시사한 바를 찾아내지 못하면 그것을 알아낼 때까지 읽어야만 속이 풀리는 경우도 늘상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김규나의 <칼> 속에 나오는 단편들은 하나의 단편이 모여서 또 다른 하나의 프레임을 만든다. 사랑의 양면성에 상처 받으면서도 결국은 사랑을 갈구하고, 그것을 치유하며, 선택이라는 기로에 빠지게 되는. 그 틀의 이름을 나는 '인생'이라는 애매모호한 단어 속에 합집합으로 남겨두고 그것을 포스트잇에 적어 책의 첫 장에 적어 붙인 다음 책을 덮을 수 있었다.
'칼'이라는 단어는 매우 아이러니하다. 나를 아프게도 함과 동시에 나를 보호하기 위해 피치 못하게 상대방을 아프게 찌를 수도 있는 양면성을 띠고 있다. 지만 나는 이 책의 첫 단편으로 선택된 <칼>이라는 이야기를 읽으며 작가가 말하려는 그 단어는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저 당신을 부검하기 위해 여자가 든 그 메스를 제목으로 갖다붙인 것이라면 나는 매우 큰 실망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또한 이 단편은 나에게 혼동을 주었다. 내가 위에서 말한 '인생'에 전혀 부합하지 않기 때문일런지도 모르겠다. 글쎄, 어쩌면 그걸 죽음이라는 것조차 '인생'이라는 프레임 속에 넣고 싶지 않은 내 이상한 욕심이 작용했을런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상처에 찌들어 더 이상 상처받을 공간조차 허용할 수 없던 당신은 결국 자살이라는 최후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어 이미 이 세상 사람으로 돌아올 수 없고, 당신을 부검하던 그 여자는 메스를 들고 또 다른 시신을 부검하러 간다. 사실 나는 그녀가 당신의 아픔을 끌어당겨안아 안아주고 어루어만져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건 독자만의 욕심이었던가. 그저 그녀는 직업으로서의 임무를 다했을 뿐 당신을 끌어안아 준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드는건 비단 나뿐일까. 독자인 내가 당신을 끌어안아주고 싶은 충동을 일게 만든건 작가의 강도 높은 의도일까, 아니면 의도치 않은 우연일까.
꼭 감은 눈 속으로 퍼진 어둠에 쩍쩍 금이 갔다. 사선으로, 직선으로, 빗금으로, 갈라지고 부러지고 흩어진 빛의 실금들이 스스로 발광하며 심해를 헤엄치는 괴생물체처럼 살아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생각이 빛을 따라 유영했다. 깊었다. 빠져나올 수 없었다. 오직 빛의 유희만이 현란하게 어둠을 희롱했다. 빛의 실체를 잡으려고 손을 허우적거렸다. 눈을 뜨고 빛을 직시하는 순간 빛은 처참히 해체되고 분해될 것이다. 눈을 뜰 수 없었다. 어둠에 갇혔다. (p45)
나는 단편을 다 읽고 나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들 중 하나는 단연 <달, 컴포지션>이었고, 완성도 또한 높았다고 평가하고 싶다. - 평가하는 건 독자의 몫이므로 - 이유는, 그 단편에서만큼은 인생의 현주소를 나타내주고 있는 가장 여실한 이야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때문이었다. 당신에게선 항상 똑같은 냄새가 나. K의 손이 등을 토닥였다. 당신을 기억하게 하는 건 이 따뜻한 냄새야. K가 내 머리카락에 코를 묻으며 말했다. (p40) 던 그들의 달콤했던 사랑이 악취를 풍기며 썩어가기 시작했다. 아이를 낳던 날 K는 결혼했다. 아이가 생겼다는 것도 당황스럽지만 더 끔찍한 현실은 내 아이를 가진 여자가 당신이라는 거야, 말하고 돌아선 K였다. 결혼하자는 K의 제안을 거절한 건 나였다. 프러포즈는 아이에 대한 의무와 책임, 그리고 임신한 섹스파트너에 대한 예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K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나 또한 그를 사랑한다고 믿지 않았다. 임신이 되지 않았다면 그럭저럭 잘 지냈을 관계였다. 그러나 일주일에 몇 시간 함께 잘 지내는 것과 결혼은 달랐다. (p41) 아니, 처음부터 사랑이 아니었을런지도 모르겠다. 그녀 자신이 사랑이 아니었다는데 내가 사랑이라고 구태여 고집 피울 이유는 없다. 우리는 사랑에 상처를 받으면서도 그것을 끊임없이 갈구한다. 하지만, 결국 그것은 또다시 상처를 주기에 더이상은 사랑이라 이름 붙이고 싶지 않은 처음부터 무형의 단어인지도 모르겠다. 결말을 예상할 수 있는 강렬한 한 줄, 그래서 뻔히 보이는 결말.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잡고 놓을 수 없는 이유는 이것처럼 책 표지를 설명해주는 것은 없을거란 생각이 들어서인지도 모르겠지만, 단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위와 같은 작가의 문장력을 이유로 꼽을 수 있겠다. 세상의 힘겨움을 깨달은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편하게 살아온 나 역시도 가끔은 깊은 심연에 빠져 허우덕댈 때도 있었고, 그것에 대한 답답함에 숨이 턱까지 막혔던 적도 적지 않았다. 그 때의 감정들이 심연에 쌓여 올라올줄 몰랐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수면에 떠올라 있었다. 나만 그런게 아니었다며 그동안 많이 힘들었다며, 작가가 등을 다독여준다. 그녀의 품 속에서 그 때에 참았던 깊은 울음을 토해낸다.
온갖 생존 위협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 당신과 내가 있다. 그러나 생존자에게도 행성에서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다. 삶의 유한성은 우리를 초조하게 만들고, 소통은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며, 사랑에 대한 열망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살아내는 건 투쟁이다. 그러므로 우주의 유전자를 진화시키는 임무를 수행하느라 오늘도 힘겹게 뛰고 있는 당신은 나의 위대한 동지이다. 때로 당신이 아플 때, 당신이 울고 싶을 때 당신을 위로하는 것들ㅡ철학과 종교, 음악과 미술, 의학과 과학, 경제와 문화, 그리고 수많은 소설과 시ㅡ그 분주하고 촘촘한 시간 속에서 잠깐만이라도, 내가 쓴 글 한 줄이 당신의 심장을 따사롭게 어루만져줄 수 있다면 좋겠다. 오늘도 살아남은 지구인. 당신을 사랑한다. - 작가의 말
단편을 읽을 때에는 한 편의 이야기를 다 읽고 다음 이야기를 맞이하기 위해선 그 편의 이야기라던가 분위기를 리셋하고 나서야 그 다음 장을 펼쳐야한다. 하지만 하나부터 끝까지 이야기만 달랐을 뿐, 이 책은 표지에 대한 첫 인상만큼이나 음산했고, 어두웠고, 시니컬했다. 하지만 그 중 단연 희망을 볼 수 있었던 것은 <바이칼에 길을 묻다>라는 단편뿐이었지만, 그런 드라마같은 억지스러운 스토리를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언급하기엔 조금 꺼림칙함이 남는다. 아마 작가의 말을 읽지 않았더라면 나는 전에 읽었던 단편들은 생각해내지 않고 마지막의 단편을 읽으며 남은 꺼림칙함을 안고 책을 덮었을런지도 모르겠다. 비록 단편이라는 틀 안에서 허우덕대느라 작가에 대한 매력에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맛배기만 봐버린 기분이 드는 것도 같다. 그녀의 또 다른 작품을 기대해본다. p145 , 오타 11번째 줄 - 단의 곁에 다가가 그의 팔짱을 껐다. - 팔짱을 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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