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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 아침을 여는 참새들의 수런거림, 조깅을 즐기는 노부부의 느긋한 발걸음, 어느새 하늘은 말갛게 열리고 있었다. 책장을 덮고 줄담배를 태우다가 은서가 잠든 침대로 향했다. 쌔근쌔근 숨소리에, 고요하게 몸이 그네를 뛴다. 네살배기 내 딸 은서. 꼭 껴안고, 조심스레 뽀뽀를 한다. 그리곤 한 시간 여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아빠가 미안해 시골마을에서 발생한 7살난 칼리와 페트라의 실종. 친구이기도 한 두 소녀는 우연히 같은 날 새벽 실종됐다. 단 하루동안의 탐색 과정을 보여주지만, 가족의 붕괴와 복원, 인면수심의 한 남자 대학생이 자행했던 성폭행 사건의 충격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얼마 전 뉴스를 통해 조두순 사건의 피해자 나영이가 배변주머니 제거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소식을 들었다. 일부 악마와도 같은 성범죄자들의 여아 폭행 사건이 연일 이어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딸아이를 가진 부모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면면을 뜯어보면 너무나 평범한 사람들, 심지어 일부 교사들까지 아이들을 괴롭힌다고 하니 세상 참 무섭다. 이제 4살인 은서가 훗날 이러한 모습을 보고 어떤 충격을 받을 지...
칼리는 4살때 말을 잃어버렸다. 별다른 증상이 없음에도 스스로 말문을 닫아버린 것. 이유는 알코올 중독자인 아빠 그리프에게 있었다. 아내의 과거를 늘 의심하는 그리프. 술만 마시면 도지는 폭력행위. 그런 속에서 만삭이었던 안토니아(칼리의 엄마)가 계단에서 굴러 유산을 하고 말았다. 이때 악마와도 같은 아빠의 음성이 귓가에 들린다. '니가 셋째를 죽인거야'라고. 은서만 보더라도 간단한 의사소통은 다하지만, 그 어린 것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까? 그때부터 침묵이 칼리를 찾아왔다. 자주 술먹는 모습을 보여줬던 나인지라 가슴 깊이 반성하게 됐다. 아빠가 미안해. 그리프를 대신해 칼리를 안아주고 싶었다.
아빠는 그저 병에 걸린 한 남자였다 페트라의 아빠인 마틴은 대학교 교수다. 뒤늦게 얻은 페트라는 그에게 보물 그 자체였다. 허나 총애하던 제자가 자신의 딸아이를 겁탈하고 죽이려 했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특히 구김없이 밝은 성격의 페트라는 말을 잃어버린 칼리의 유일한 친구였다. 눈빛만으로도 서로를 이해하고, 늘 칼리의 목소리를 대신했던 페트라는 우연히 칼리와 같은 날, 숲 속으로 끌려가 처참하게 성폭행을 당한다. 죽음의 문턱에 놓여있을 때, 마침 술취한 아빠에 이끌려 숲으로 들어온 칼리와 조우한다. 이어서 구조활동이 벌어지고, 결국 본의아니게 범인으로 내몰린 그리프가 경찰관의 총에 죽는다.
그리프가 죽자, 안토니아와 칼리, 그리고 칼리의 오빠인 벤. 이 세 사람이 새로운 가족의 출발을 알린다. 페트라와 벤의 소식을 알리기 위해 혼신을 다해 뛰어내려간 칼리가 입을 여는 장면이 극적이다. 3여 년을 굳게 다문 입에서 오빠 '벤'이 나왔기 때문. 후에 칼리는 긴 침묵의 무게를 뚫고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는다. 아니 그녀의 표현에 따르자면 되찾은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해서 내 목소리를 되찾았다라는 건 옳은 표현이 아닌 것 같다. 실제로 잃어버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코르크가 깊이 박혀 있는 병 같았다고나 할까. 때때로 그때 일을 떠올릴 때면, 나는 윌로우 크릭 숲을 날아다니는 잠자리의 몸처럼 우아한 손잡이가 달린 길쭉한 모양의 파랗고 비싸 보이는 향수병 안에 담긴 달콤한 향수를 생각하곤 한다. 바로 그 향수가 내 목소리이다. 내 목소리는 그 병에서 빠져나올 적절한 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지, 실제로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그저 사용해도 된다는 허락만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 허락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라는 것을 알아내는 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P445~446
상처는 대물림될까? 이젠 그 사슬을 끊자 이 소설을 읽으며 7살 칼리가 겪었을 깊은 상처와 고통을 하나하나 나의 과거로 치환시켰다. 비슷하진 않지만 늘 폭력의 고통에 놓여있었던 어린 꼬마. 나이가 들어서도 그 상처는 지워지지 않는다. 뼛속 깊이 각인된 고통에 신음하며, 적어도 내 딸에게는 그런 상처를 물려주지 않으리라고. 잘근잘근 입술을 깨물며 다짐해본다.
또 하나, 극악 무도한 어린이 성폭행 범죄자에겐 화학적 거세가 아닌 종신형에 처해 영원히 사회와 격리시켜야 한다. 자신의 딸을 생각한다면, 그 어린 아이의 창창한 미래를 생각한다면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페트라의 고통을, 지금도 여전히 공포와 고통 속에 몸서리를 치고 있을 가엾은 나영이에게도 어른으로서, 딸아이를 키우는 아빠로서 용서를 구하고 싶은 마음이다.
다시 일상으로, 가족의 품으로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던 은서가 눈을 떴다. 나와 눈을 마주치자 싱긋 웃는다. '아빠 안녕!'하고 이내 가슴팍을 파고 드는 녀석. 엉덩이를 토닥이며, 낮게 속삭였다. '은서야 사랑해 그리고 아빠가 미안해'라고. '아빠, 나 병아리 사줘' 하하하. 그렇게 은서를 1시간 가량 물끄러미 바라보는 나는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다. 그 어느 때보다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요즘. 이래저래 마음 속 생채기가 가득하지만, 이 소설이 전해준 감동이 적지않은 치료약이 될 것 같다. 내겐 가족이 있으니까. 나를 바라보며 말없이 웃어주는 은서가 있으니까.
PS) 근래 보기 드문 인상적인 표지다. 단 하나의 사진만으로도 '침묵의 무게'에 담긴 주제를 여실히 드러낸다. 침묵의 무게를 깨뜨린 건, 결국 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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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에게 있어 최악의 고통은 자식을 가슴에 묻는 일이라고 했다. 자식의 일 앞에서는 그 어떤 나약한 부모도 더없는 힘을 발휘하는 강자가 될 수 있으며, 세상에 그 어떤 못할 일도 없게 되는 것이 부모라고... 자식은 부모에게 그런 존재다. 솔직히 나는 아직까지 그런 경험을 하진 못했다. 부모가 되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주 모른다고 말하기도 좀 그렇다. 직접 낳아야만 부모는 아닌 것이니까... 거기다 한가지 더, 나는 부모가 단지 이름으로만 부모가 아니라, 부모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부모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식을 사랑하고 아껴 주되, 마음만을 퍼붓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입장에서 부모를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더불어, 그 아이들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하고 애써야 함은 물론이고...
일곱살짜리 여자 아이 둘이 어느날 새벽 사라진다. 둘이 같이 사라졌는지, 별개로 사라진건지 아무도 모른다. 그저 그 새벽에 잠옷차림에 맨발로 사라진 그 아이들이 걱정될 뿐이다.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사라진걸까, 아니면 누군가가 데려간 것일까. 그 누군가가 데려간 것이라면, 왜?, 누가?...
4살 때의 어떤 사건이 계기가 되어 선택적 함묵증을 앓고 있는 소녀 칼리와 그런 칼리를 너무 잘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친구 페트라가 동시에 사라졌다. 부모들과 보안관, 담당자들은 그 아이들이 사라진 집 근처의 윌로우 크릭 숲 속에서 아이들을 찾아 헤매인다. 그들의 바램은 오직 하나, 아이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이야기의 전개가 특이하다. 칼리와 페트라, 그리고 두 아이들의 가족들의 시선에서 차근차근 이야기가 그려진다. 주인공인 칼리와 페트라, 칼리의 엄마인 안토니아, 칼리의 오빠 벤, 페트라의 부모님인 필다와 마틴의 시선, 그리고 안토니아의 첫사랑이자 친구인 그 마을의 보안관 루이스의 시선에서 차근차근 순차적으로 그려지는 이야기들. 그리고 서서히 드러나는 사건의 진실과 그들이 외면했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들려올 때마다 우리는 한번 더 긴장해야 한다. 단순히 먹고 입혀주고 재워주는 것이 아이를 키우는 일이 아님을...
칼리의 선택적 함묵증. 종알종알 호기심이 많던 아이가 어느날 말을 멈춘다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그 진실은 딱 세사람 밖에 모른다. 칼리와 아버지 그리프, 그리고 엄마 안토니아. 그런데도 각자가 생각한 진실에만 멈춰있다. 칼리가 말을 멈추어야만 했던 이유, 엄마가 생각하는 이유, 더없이 나빠질 수 밖에 없는 길을 가는 아빠. 결국 칼리의 침묵은 부모의 일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부모라는 이름의 그들이 져야할 책임은 너무도 크다. 몰라서 그랬다는 변명 같은 핑계는 집어치워야 한다.
페트라의 주변을 살피지 못했던 이유. 더없이 사랑한다고 했던 딸에게 일어난 일이 자신의 무신경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는 아빠 마틴. 아주 아니라고는 못하겠다. 조금만 더 살펴보면 그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일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모든 일이 일어난 다음에는 그런 말들이 필요 없다. 그 이후로의 무신경은 버려야 할 것일 뿐이니까...
이야기는 그렇게 어렵지도 않았지만 마음만은 내내 어려웠던 소설이다. 유치하게 들리겠지만, 정말 아이들은 부모들의 관심을 먹고 사는 대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모가 어른의 입장에서만 부리는 이기심이 아이들을 고통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이야기다. 칼리가 침묵 했던 것도, 페트라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던 것도 모두... 그 아이들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이 결국은 어른들이 만들어낸 것임을 알아야 한다고... 그 아이들의 마음 속에서 자라나는 그 어둠의 무게도 어른들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그 어떤 어른들도, 부모들도 완벽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시행착오도 실수도 할 수 있는 인간이니까... 하지만 한가지만 더 염려하면서 세상을 살아야 하는 존재임은 분명하다. 자신이 만들어낸 환경과 행동이 직접적으로 자신의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상당한 것이며, 꽤나 큰 행복과 상처를 동시에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뜬금없는 말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돈이 많고 적음의 행복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화목하고 웃을 수 있어야 그 영향이 그대로 아이들에게 간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안토니아가 결혼생활을 유지하고자 했던 이유가 자신의 아이들인 칼리와 벤에게는 불행을 가져왔을 수도 있으니까... 더이상 아이들의 시선, 작은 행동 하나하나를 외면하지는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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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마을에 두 아이가 사라진다. 책은 7살 정도인 두 여아가 실종되고 그들을 찾기 위해 경찰 및 부모들이 그들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그 마을은 멕시코와 접경인 거대한 숲을 가지고 있는 지역에 있다. 아이들이 그 숲에서 성장했고 그 숲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 곳에서 사라졌다고 생각을 하면서 숲의 이리저리 찾고 있다. 아이들을 찾으면서 벌어지는 사람들의 마음 흐름, 인간관계 등이 낱낱이 표현되어 있다. 사람들의 미묘한 감정의 흐름이 잘 표현되고, 욕망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야기가 등장하는 각 인물들이 화자가 되어 그려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 다른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래서 각 인물들의 마음이 잘 들여다 보인다. 또 사라진 두 아이들의 상황도 그들이 화자가 되어 표현되고 있다. 그래서 경찰이나 부모님들의 사건에 대하는 심리상황을 독자들은 더욱 잘 인지할 수 있다. 희곡의 방백과 같은 대사랄까? 독자들은 글을 읽어가면서 인물들의 모든 것을 아는데 정작 등장인물들은 서로의 모습을 모르는 상태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부모들의, 수사하는 사람들의 안타까움이, 그 절박함이, 아픔이 잘 표현되어 독자들에게 전달되고 독자들은 실종된 아이들 추적 행로를 스스로 그려보기도 하면서 따라갈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한 아이 ‘칼리’는 아버지가 데리고 숲으로 갔다. 아버지 ‘그라프’는 술을 많이 먹으면 나쁜 버릇이 드러난다. 가족들을 힘들게 하고 심지어 아이가 자신의 자식이 아니라고 병적으로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아이 엄마가 한 때 좋아했던 보안관의 자식이라고 생각을 하며 수시로 아이를 못살게 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날도 ‘그라프’는 새벽 일찍 낚시를 가지고 이웃과 약속을 해놓은 상태인데 ‘칼리’가 일찍 잠에서 깨어 밖에 나갔다가 그를 만났다. 그는 아이를 보자 의심병이 도졌다. 하여 그 아이를 데리고 숲 건너에 있는 보안관의 집에 진짜 아버지를 만나러 가지고 우격다짐으로 아이를 끌고 나선다. 하여 아이는 그 집에서 사라진 것이다. 결국 숲에서 아버지를 따돌리고 ‘칼리’는 혼자 숲속에서 방황하기도 한다.
또 한 아이 ‘페트라’는 자는 중에 누군가 창밖에 서있는 듯해서 그들에게 이야기나 하려고 밖으로 나갔다가 그들을 따라간다고 숲으로 들어갔는데 그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상황이다. 그리고 숲 속에서 지나간 행적을 떠올려 보면서 길을 찾고 있는 상황이 전개된다. 그러다 어떤 사람에게 상처를 입고 있는 상황에서 친구 칼리를 만난다.
아이들을 찾는 과정 속에 과거 가정의 일들이 속속들이 들어난다. 부부가 어떻게 엮여졌으며 과거에 어떤 일들이 있었고 자녀들은 어떻게 갖게 되었는지 등의 얘기들이 이야기된다. 특히 ‘칼리’는 후천적인 농아인데 부모가 싸우는 과정 속에 아기를 밴 엄마가 계단에 굴러 떨어지면서 아이를 잃는 상황을 목격하고 충격으로 그렇게 된다는 얘기까지 그려진다. 그리고 칼리의 엄마인 안토니아가 보안관 루이스와 어떤 관계였는지도 그려지고, 그런 가운데 아버지 그라프와 결혼하게 되는 얘기도 표현된다. 또 페트라의 엄마와 아빠가 아기가 들어서지 않아 고생한 얘기며, 엄마가 수면제를 먹고 자살기도까지 한 일도 얘기된다. 문제가 많았던 과거의 얘기들을 통해 아이들이 현재 상태와 그렇게 된 이유까지 알 수 있게 된다.
칼리의 오빠인 12살 난 벤은 그 숲에서 늘 놀았기에 그 공간을 잘 안다. 그래서 동생을 찾으러 혼자 숲속으로 들어간다. 그는 산길을 헤매다 피투성이가 된 페트라와 칼리 그리고 아버지가 함께 있는 것을 목도한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가 술을 많이 먹으면 이성을 상실하기 때문에 불신을 한다. 또한 아버지를 범인으로 생각을 한다. 아버지는 벤을 보고 도와줄 손길이 하나 늘었다고 기뻐한다. 하지만 벤은 상황을 판단하고 아버지에게 대항하면서 겨우 숨이 붙어 있는 페트라를 옮길 수는 없다는 생각에 아버지를 붙잡아 놓고 칼리를 현재 상황을 알리는 사자로 마을로 보낸다. 아버지와 벤의 상황은 서로에 대한 불신과 오해로 긴장감이 더해진다.
숲 밖에서는 어린아이 유괴에 대한 전문적인 사람들이 일의 해결을 위해 찾아오고, 각 집에 대한 상황 조사가 행해진다. 그 조사에 큰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이 보안관 루이스다. 루이스도 이 일에 깊이 관여되어 있는 사람으로 그곳에 보안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즉 칼리와 벤의 어머니인 안토니아와 사랑을 했던 인물로 현재에도 그 가족의 의지의 대상이 되면서 아이들의 아버지로부터 의심을 사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그들은 조사를 바탕으로 해서 실질적으로 숲을 탐색하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그때 칼리가 숲에서 뛰쳐나온다. 그리고 엄마의 품에서 한 마디 한다. 벤이라고. 그것이 또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벤이 사고를 친 것처럼 오해가 일어나 페트라의 아버지로부터 얻어맞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결국 ‘칼리’의 전언으로 페트라와 벤이 어디에 있는 지 알려지고 그들은 구조가 된다. 그 와중에 ‘칼리’의 아버지는 어딘가로 떨어지고 범인으로 오해를 받기도 한다. 아이들의 치료가 진행되면서 페트라를 의식불명으로 몰아간 자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그 사람은 죽음으로 처리된다. 또한 ‘칼리’의 아버지도 그런 상황에서 가족들과 어울려 화해를 하면서 생활이 이루어지는 설정이 어렵게 되니까 그런지 몰라도 죽음으로 처리된다. 그 후 모두 정상의 일과로 돌아가면서 가족들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워 보게 하는 글이다.
이 글은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다. 읽으면서 참으로 매력적이란 생각을 했다. 한 장면을 표현할 때도 여러 사람의 눈으로 본 것을 각자의 눈으로 말하게 함으로 독자가 입체적으로 이해해 나갈 수 있게 만든다. 가령 주인공 ‘칼리’가 숲 속을 헤매다 부모의 품으로 귀환하는 장면에서 칼리의 생각은 물론이요 어머니의 눈으로 본 생각, 또 루이스의 입장에서 보는 생각, 벤의 입장에서, 페트라의 아버지 마틴의 입장에서 본 바 등으로 나누어서 그려주고 있기 때문에 장면이 너무 실감나게 표현된다. 상황에 따라 달리 표현될 수 있는 것을 통해 전체적인 모습으로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실 때 그 한 편의 죄수가 외친 내용을 어디에서 들은 사람이 기록하였는가에 따라 달리 표현된 것과 같은 기법일 듯하다.
참으로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다. 기법적인 면도 그렇고 가족들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내용도 그렇다. 가족 속에 부모의 역할이 참으로 중요함도 생각해볼 수 있는 글이었다. 많이 읽으면서 가족의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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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시작 가족. 가족에 대한 책을 읽다보면 옛날에 내가 아이로 있었을때의 생각이 나고 또 내가 부모로서의 나를 뒤돌아 보기도 한다. 그 모든 것들이 편하지는 않는다. 나는 어떤 부모인가? 만약 아이가 이처럼 아무 흔적없이 사라졌을때 나는 아이에 대해 너무 방관하지 않았나 하고 자책하게 될까. 밤에 잠들었던 아이가 이처럼 새벽 이른 시간에 사라지면 난 어떻게 행동할까. 책의 첫장을 열면서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게 되었다. 책 속에서 칼리의 아버지 그리프를 보면서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술 좋아하시는 아버지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일일이 다 말할 수 없지만 사춘기 시절과 성년이 되고서도 아버지가 있는 집이 불편했다. 마음대로 친구 데려오기도 겁났었다. 술 드시면 왜 그렇게 엄마를 괴롭히고 큰소리를 냈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 시절 날마다 가출을 꿈꾸었고 혼자 자립해서 조용히 살고 있는 나를 꿈꾸었었다. 실행을 하지 못하고 결국엔 결혼하고 나왔지만 말이다. 나 뿐만 아니라 여동생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아버지가 싫었고 미웠다. 되도록이면 안보고 살고 싶었을 정도였다. 아마도 그래서 나는 책으로 침잠했는지도 모르겠다. 자매들이 다 책을 좋아했지만 그 취미 역시 아버지를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나이가 드셔서 많이 수그러들었고 예전과는 많이 달라지셨다. 그래서 아버지는 내게 언제나 애증의 존재랄까. 칼리와 벤의 아빠 그리프가 정말 미웠다. 아마도 칼리처럼 미웠을 것이다. 술 마시는 걸 그렇게 자제하지 못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침묵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너무 아팠다. 아예 말하지 못하는 아이가 아니라 재잘재잘 예쁜 말을 했을 그런 아이를 어느 한마디로 말을 못하게 만들어버린 그리프는 정말 나빴다. 아이들에게 모든 사랑을 다 주었던 안토니아도 별로 반갑지 않았다. 안토니아 자체는 좋은 엄마지만 무언가 다른 행동을 했어야 했다고 생각되었다. 선택적 함묵증(특정한 장소 또는 상황에서 말을 하지 못하는 병)으로 인해 말을 못하는 칼리에게 페트라는 둘도 없는 친구이다. 말이 필요없는 마음을 나누는 영혼의 친구인 것이다. 어느 날 새벽 이른 아침에 이 소녀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유괴와 성폭행, 이런 기사를 볼때마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나는 정말 가슴이 철렁해진다. 남의 일 같지 않고 우리 아이들이 그 대상이 될수도 있다는 사실에 먼저 놀래고 마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나 키우지 않는 사람도 물론 심하게 놀랄 것이다. 유괴나 성폭행을 한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안면이 있다는 사실에도 모든 사람을 안심할 수가 없게 만든다. 사람들과 너무 친하게도 지내지 말아야 하나 사귐에 있어서도 폭이 점점 좁아질 수도 있는 문제다. 아이들에게 자꾸 주지시키지만 이렇게 전혀 생각지 않은 사람에게 당할수도 있다는 것. 책에서도 언급되었지만 부모의 부주의도 다시한번 생각해 볼 문제다. 칼리가 침묵할 수 밖에 없었던 큰 이유에서 가족이란 어떤 존재인지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가족이라는 말로 가족들에게 상처주지 않는지. 사랑한다는 이유로 아프게 하지 않는지 마음이 아프다. 나는 아이들에게 너무 무심하지 않는지 나를 한번 생각해 본다.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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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잠시 조용하지만 지난 봄 유난히도 아동 성폭력 사건들이 많았다. 그 뉴스들을 볼때마다 아직 어린 둘째 생각에 어떻게 키워야 할까 걱정이 많이 되면서 놀이터에도 내년 보낼 학교 등하교시간에도 마음을 놓을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밤길 조심하라는 그런 걱정에서 이제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까지 성폭력 사건에서 안심할수 없는 사회라니 아예 아이를 키우지 말라는 소리와 다를게 뭐가 있나 싶기도 했다. 물론 남자아이라고 안심할 것도 아니지만 아직 어리게만 보이는 둘째를 내년에 학교에 보내놓고 등하교시간에 따라다닐 생각을 하니 직장을 다니는 엄마들은 얼마나 불안할까 싶어 답답해진다.
침묵의 무게는 그런 분위기속에서 주제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은 책이다. 2009년 <뉴욕타임스> 베스트 셀러였고 가족의 의미와 책임을 일깨워주는 소설이라고 소개하고 있기도 하다.
어느날 새벽 두 소녀가 사라지고 이들을 찾기위한 두 가족의 노력이 시작된다. 특이하게 이책의 전개는 사건이 진행되는 순서대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닌 각 단락이 등장인물의 이름이고 사건이 전개 되는 순서대로 인물들의 관점에서 서술되어진다. 그러다보니 각 인물의 특성과 생각이 고스란히 전해오고 읽는대로 사건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분위기가 덜 느껴지는 것같기도 하다. 문제는 사회적으로 많은 논란이 되고 문제가 되고 있는 아동 성폭력 사건으로 시끄러운 요즘 이런책이 나왔다는 사실인데 생각처럼 결말이 불행한것은 아니라는 것이 좀 위안이 된다. 예상은 두 소녀가 사라지는 순간 결국 성폭력과 살해되는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죽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두 소녀가 죽는 것은 아니니 좀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너무도 씁쓸한 결말이 있어 마음도 아프고 아이들 키우는 데 더 조심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나오는 인물은 칼리와 페트라 두 소녀와 칼리의 아버지 그리프와 엄마 안토니오, 오빠 벤, 페트라의 아버지 마틴과 엄마 필다, 그리고 부보안관 루이스가 등장한다. 인물들 중에서 그리프는 집을 몇달씩 떠나 돈을 버는 생활을 하면서 돌아와 있는 기간엔 술을 늘 먹는 알코올 중독자로 가족들을 괴롭힌다. 이때문에 가족들은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고 셋이서 편안히 사는걸 원하기도 하지만 칼리는 선택적 함묵증이란 병을 가지고 있다 네살때 아버지로부터 어떤 말을 들은 이후 말을 하지 않아 학교에서 불편함을 겪으며 살지만 이를 엄마는 왜 그런지 이유를 모르고 힘들어한다. 칼리가 말한마디 하지 않지만 이를 잘 알아주고 이해하는 건 페트라다. 이둘은 어릴때부터 서로 말하지 않아도 서로 잘 알아채 누구보다 친한 단짝 친구인데 이날밤 두 소녀가 사라진 것으로 인해 페트라의 부모와 칼리의 엄마는 서로 아이들을 찾는 와중에 트러블을 겪기도 한다.
두소녀가 사라지고 부보안관인 루이스에게 도움을 청하면서 이들의 관계와 네사람의 개인적인 삶이 어떠했는지 조금씩 드러나는데 루이스는 안토니오의 옛 애인이지만 결혼한 몸으로 가까이 살면서 부인에게 오해를 받는 인물이다. 나로서도 결혼할뻔한 여자가 가까이 산다면 그런 생각들을 했을 것 같지만 그게 좀 심한 편이다. 그리프또한 칼리가 루이스의 아이라고 생각한데서 비롯된 사건이니까 말이다. 결과적으로는 실종이 아닌 그리프가 칼리를 끌고간 것이지만 아버지가 자신의 딸에게 이런 행동을 한다는 것도 이해가 안되기는 마찬가지다.
칼리의 아버지가 술을 마시는 장면이나 안토니오가 참아주는 것들을 보면서 이런 가정에서 과연 아이들이 제대로된 생각을 가지고 자랄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온한 가정에서 자라야 올바른 생각을 가질텐데 싶어 나 또한 아이들에게 잘 하고 있는 것인지 가족간에 사랑이나 화목한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 책에서 없어진 소녀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에 가정 폭력을 일삼는 사람이라 아내와 딸, 아들 이렇게 세사람은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고 차라리 없어졌으면 하는 바램도 은근히 바라고 있지만 표현하지는 않는다. 어쩌다 아이가 놀이터에서 잠시 눈에 띄지 않아 십여분 이상을찾은 적이 있는데 그때의 마음이란 무엇으로도 표현하기가 힘들다 간혹 놀이터나 사람많은 곳에 갈때마다 혹 아이를 잃어버리지는 않을까 걱정을 하며 졸졸 따라다니기도 하니 이렇게 아이들이 없어져 찾게 된다면 얼마나 힘들까 감히 상상하기조차 힘든다.
이제 성폭력 사건은 성인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도 그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으니 딸을 키우는 부모들은 늘 걱정과 불안함을 떨쳐버릴수 없는 것이다. 이런 일들은 사회적인 대책도 필요하지만 어디까지나 부모의 몫이니 늘 조심 또 조심해야 할것 같다. 이책을 읽으면서 느낀 거지만 성폭력 사건과 같은 불행한 사건들은 낯선 이가 범인인 경우도 많지만 주위 사람 안면이 있는 사람이 범인인 경우도 많은 것 같다
딸이든 아들이든 키우기 위험한 세상에 살고 있어서 더더욱 부모가 잘 살피고 사회적으로 모든 아이들을 지켜야 하는 책임을 가지게 되는 요즘이다. 사건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해결이 되는 전개가 아니라 등장인물의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대로 움직여지기 때문에 초반엔 살짝 지루한 면도 있지만 일단 해결 기미가 보이면서부터는 재미있다.. 반전이 정말 생각도 못한 곳에서 일어나 책을 읽는 재미가 더해지지만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이야기다.
'이제 더이상 아이들을 혼자 두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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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물살을 타듯 언론에서 연일 보도되는 내용은 아이를 방치한 채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이나 아동 성폭력 등 힘없는 아이들이 피해자가 되어 자행된 범죄들이었다. 아들을 가진 부모들보다는 아무래도 딸 가진 부모들이 이런 언론의 보도로 더욱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만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 소설이 바로 '침묵의 무게(The weight of Silence)'이다. 16년간 교사생활을 했고 현재 교사들에게 교과과정을 지도하고 학생들을 전문적으로 후원해주는 코치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 헤더 구덴커프의 작품은 크게는 자녀 학대와 아동 성폭행을 다룬 소설이다.
선택적 함묵증(특정한 장소 또는 상황에서 말을 하지 못하는 병)을 갖고 있는 칼리와 칼리의 소울 메이트인 페트라의 실종을 풀어나가는 이 소설의 방식은 그동안 보았던 다른 소설들과 차별성을 보인다. 3인칭의 객관적인 시점에서 제3자의 입장으로 바라보거나 단독 1인칭의 시점에서 타인의 입장은 배제한 채 이끌어가는 소설들과는 달리 이 소설은 소설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는 소설 밖에 나가있지도 않고 소설 내부에서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고르게 파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윌로우 크릭 숲으로 들어간 두 아이를 찾아나서는 과정에서 두 가족의 모습은 확연한 차이점을 보인다. 먼저 칼리의 엄마인 안토니아의 모습을 보자.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 그리프와는 달리 아이들에게 한없이 자애롭기만 한 안토니아는 아이들에게 엄마이자 친구와 같은 존재다. 주사가 심한 그리프와 헤어지지 못하고 사는 단 하나의 이유는 아들 벤과 딸 칼리가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 대한 관대함과는 달리 아빠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고 지키는데는 지극히 소극적인 모습에서 이 가정은 원만한 가정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반면 페트라의 아버지 마틴은 사라진 딸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결국은 사랑하는 딸에 대한 마음보다 자신의 무력함이 더 크기에 슬플 수 밖에 없지만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딸을 찾으러 다니는 일 뿐이다.
칼리가 깊은 침묵 속에 침잠하게 된 것, 이 커다란 짐을 짊어지고 가게 만든 건 남이 아닌 자신의 가족이었다는 사실, 페트라가 아동 성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 밖에 없었던 것도 바로 낯선 이가 아닌 아는 사람으로부터였다는 사실에서 이제까지 아동을 대상으로 한 학대 문제와 성폭력들을 되돌아보니 소설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가 지금 글을 이 순간 어느 곳에서는 누구보다 귀한 대접을 받고 소중하게 자라야 할 어린이가 어른으로부터 학대를 받고 있을 것이며, 두려움 속에서 구해달리며 눈물로 소리칠 것이다. 칼리의 '침묵'이 결국엔 소울 메이트 페트라를 위한 커다란 외침이 되었듯, 가장 힘없는 어린 영혼들이 더 이상 상처 받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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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좋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고, 또 세상에는 모든 갖은 이유를 들어 자신을 합리화하며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책을 읽다가 울컥!! 눈물이 났다. 세상에 이런 일이 끔찍한 일들이 있을까 싶은 일들이 버젓이 뉴스, 신문, 인터넷을 통해 순식간에 알려진다. 빠른 정보는 경각심을 일깨우기도 하지만 그 빠른 정보와 쉴 새 없이 나오는 뉴스에 피해자와 피해 가족들의 고통이 묻어져 나오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해지고 주위를 둘러보며 불안하고 불편한 안도아닌 안도를 하게 된다.
여기 두 명의 한참 맘껏 뛰어 놀며 다른 걱정은 하지 말아야 할 일곱 살 여자 아이 둘이 있다. 아이들 이름은 칼리와 페트라이다. 그저 평범하게 잘 놀고 웃고 하는 단짝 친구들이다. 다만 칼리가 3년째 말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 뿐이다. 그러나 둘에겐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의 마음을 마음의 눈과 귀로 읽기 때문이다.
어느 날 새벽 두 아이는 잠옷차림에 신발도 신지 않은 채 사라지게 되고 경찰이 집중적으로 수사를 시작하게 된다. 수사과정에서 밝혀지는 칼리의 가정사는 알콜중독자 아버지 그리프로 인한 폭력으로 얼룩져 있음이 밝혀지고 오빠 벤과 칼리가 무수한 폭력과 협박에 시달렸음이 알려지고 칼리의 침묵은 고통으로 인한 선택적 함묵증이었음이 밝혀진다. 엄마 안토니아는 아이들의 아빠라는 이유로 참고 또 참고 살았고 아이들이 이렇게까지 깊은 상처를 받았을 거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었다. 두 아이의 실종사건에 칼리의 아빠 그리프가 개입되었을 가능성에 페트라의 부모는 분노하게 되고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가게 된다.
'침묵의 무게'는 칼리의 엄마 안토니아, 오빠 벤, 칼리, 페트라, 페트라의 아버지 마틴, 부보안관 루이스의 관점이 번갈아가며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아이들의 실종사건을 중심으로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님과 형제의 고통과 아픔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아동이 실종되면 가장 먼저 부모를 의심하게 되고 집안사가 낱낱이 파헤져지게 된다. 그 와중에 가족들과 아이들은 고통의 시간을 견디어하며 사건해결을 위해 견뎌내야 한다. 안토니아 역시 자신의 잘못된 결정으로 아이들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되었음을 사건을 통해 깨닫게 되고 페트라의 아버지 역시 자신의 집에서 아이를 잃어버리고 페트라의 가해자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아동관련 사건은 항상 큰 분노와 좌절감을 동반한다. 도대체 어떻게 대처를 해야할지 막막하기 그지 없고 법집행은 느리게만 진행되는 것 같다. 설사 법집행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그 죄는 아이들이 받은 고통과 상처에 비해 적은 형량을 받는 것 같아 분노하게 된다. 또한 아이들이 받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어떻게 치유를 해주어야 할지, 그 마음의 상처가 회복이 되기는 하는 것인지 끝없이 묻게 되고 안타까운 마음만 가득하게 된다.
칼리의 오빠 벤은 생각한다. '우리 엄마는 그게 문제인 것 같아. 해야 할 말을 해야 할 때에 하지 않는 거.' 402쪽
아이들에게 너무나 헌신적인 엄마였지만 아빠의 폭력, 폭언 앞에서 아이들을 방어하고 보호하지 못하고 결혼생활을 유지한 선택에 대한 아이들의 마음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페트라 업지 마틴 역시 자신의 사랑스런 딸 페트라에 다가오는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고 죽음직전까지 가게 했다는 죄책감을 갖고 있다. 이렇듯 사건은 아이들의 고통과 상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과 주변 세계를 송두리째 암흑으로 바꿔버리게 된다.
다만 바라게 되고 다짐하게 되는 것은 더 이상 상처받은 사람들을 가십거리로 만들어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누구도 장담 못하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또한 사회, 정부와 학교에서 적극적으로 피해를 받은 아이들과 가족들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얼마 전까지 떠들썩했던 사건들을 보면서 사건만 보았지, 그 상처받은 아이와 가족들한테까지는 미처 마음이 가지 못했던 점이 낯부끄럽게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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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많은 일들이 펼쳐지고 있다. 그만큼 다양하고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신문의 1면을 장식하고 있을때 우리의 마음은 콩당콩당거려서 어떻게 다독거려야할지 막연하기만 할때가 있다. 특히 최근의 어린아이들의 잔인하기 그지없는 성폭행의 기사를 만날때마다 우리아이의 얼굴을 다시 한번 바라보게 된다. 그만큼 세상이 믿을수 없는 사회가 되었기에 더욱더 안타깝기만 하다.
[침묵의 무게]가 우리에게 안겨주는 것은 이런 사회적인 믿음을 저버리는 일과 많은 오해가 만들어지면서 발생하는 일들을 말하고 있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중요하지를...... 어쩌면 바로옆에서 일어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7살 칼리와 페트라 두 여자아이가 어느날 밤에 실종이 되었다. 그리고 그 실종된 아이들을 찾아가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각각의 등장인물들의 시선에서 이야기하고 있어서 다소 같은 상황을 되풀이되는 내용을 담기도 하지만 각자의 내면에서 생각하는 부분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어서 좋다. 4살이후로 엄마의 유산을 보고난후 실어증에 걸려버린 칼라, 그리고 말을 한마디도 못하는 칼라를 이해하고 옆에서 도움을 주면서 진정한 친구가 되었던 페트라의 실종은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던일이다. 알콜중독자인 아버지에 의해 끌러 숲을 헤매게 된 칼라와 누구인지를 알고 있는 어른을 따라 나섯던 페트라의 실종..... 아이들의 잃어버린 부모의 입장에서 안타깝고 뭐라 말할 수 없는 마음을 직접적으로 만날수 있지만 당해보지 않은 입장에서는 그마음을 다 이해하지 못할거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가족의 믿음을 저버리는 아빠의 행동때문에 가족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한가족의 행복을 고스란히 사라지게 한다. 비록 아빠의 죽음으로 가족에게는 또 다른 웃음을 찾게 되었던 칼리의 가족이다. 실어증에 걸려있지만 페트라를 구하기위해 말을 다시하게 되는 칼라의 마음이 참 이쁘다. 아빠에 의해 고통을 받았지만, 그덕분에 친구인 페트라를 구할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비록 그동안 어른들의 말과 행동때문에 힘들었지만 그래도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칼리의 마음은 우리어른들이 본 받아야하는 부분이것 같다.
솔직히 아이들 앞에서 말을 조심한다고 하지만 그렇지 못할때도 있다. 그 한마디의 말때문에 고통받을 생각을 미처 못한체...... 가족들간의 소중한 관계에 대해 전반적으로 생각케 한다. 서로를 믿어주고 서로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그런 가족의 모습을 갖기를 바라면서 아무도 함부로 믿지 말라는 그런 이야기가 약간은 서로 언발런스하게 적용되는 것 같다. 침묵의 무게만큼 서로에게 믿음을 갖는다면 이세상도 정말 살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으로 이책에 대한 여운을 갖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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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인 침묵의 무게는 이 책의 주인공인 칼리라는 이름의 소녀가 어떠한일이 계기가 되어서 말이라는 것을 읽어 버리고 살다가 자신을 도와주던 친구를 위해서 다시 말을 하게되는 계기를 말하는 것도 같고 주인공의 어머니인 안토니아가 자신의 외로움과 싸우고 가족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꼭 필요한 말들을 하지 않고 못 본척 넘어가는 경우를 보고 자란 아이들의 마음의 상처와 안토니아 자신이 당한 마음의 상처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볼수도 있겠다.
책의 주인공중의 한명인 칼리는 어머니가 아버지와의 싸움으로 말미암아서 동생을 유산하고 피를 흘리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는데 그러한 상황에서 당시 4살인던 칼리는 공포를 느끼고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데 이러한 칼리를 아버지가 위로를 해주어야 하는데 술을 마시고 아내를 다치게 하고서도 그에 대한 분노를 당시 어린 칼리에게 풀어내는데 그러한 충격으로 칼리는 그후로 말을 읽어버리고 아무런 의사표현도 이야기로 못하는 처지에 빠지고 만다.
그러한 딸을 위해서 병원에 다니고 치료를 하려고 노력을 하지만 어린 칼리의 마음의 상처는 낮지를 않고 학교에서 상담을 담당하는 선생님과 친구의 도움으로 학교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데 어느날 새벽에 일어나서 아버지의 손에 이끌리어서 숲으로 들어가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칼리의 오빠도 등장을 하는데 술을 먹고 소리를 지르는 아버지를 피해서 친구네 집에서 자고온날 칼리는 말을 잊어 버리고 어머니는 동생을 유산을 하면서 온 집안이 슬픔에 빠지자 그러한 일이 자신이 아버지를 피해서 친구네 집에서 자고오는 바람에 집안에 문제가 생기고 동생인 칼리가 갑자기 실어증에 걸렸다고 생각을 하면서 동생을 무척이나 위하는 오빠가 된다.
전체적으로 내용은 글의 머리에 책의 주인공들의 이름이 있고 내용은 그들의 시선과 생각 그리고 상황을 담고 있는데 이러한 내용의 전개가 조금 번잡한 읽기를 유도하는 경우도 있는데 서로다른 사람의 생각과 상황을 계속 해서 따라 가면서 글의 큰 줄기를 잡으려고 노력을 해야 해서 읽기가 어려운 생각도 든다.
내용을 1인칭 이나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풀었다면 또다른 이야기가 되었을 것 같은데 작가는 한가지 일을 가지고 그 상황에 처한 각자의 생각과 그러한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노력을 하는 사람들의 노력을 자세히 그리려고 이러한 방식을 채용한것 같은데 그래도 산만한 느낌이 드는것은 어쩔수 없다.
내용을 요약 하면 친한 친구이자 같은 마을에 사는 7살 두소녀가 새벽에 집에서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하고 그 사건에 대처를 하는 소녀들의 가족의 이야기와 사건 해결후 그러한 사건에 대해서 후회를 하고 반성을 하는 가족의 모습을 볼수있다.
칼리의 어머니가 아버지와 이야기를 하여서 가족간의 문제를 해결할 생각을 안하고 자신들의 일은 자신들이 풀어나가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이웃의 도움을 거절하고 살았는데 사건을 당하고 나서 후회를 하는데 이러한 것을 보면 가족간의 일이라고 숨기려고만 할것이 아니라 문제가 있으면 주변의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 문제를 해결하여야 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두어린이가 관련된 서로 다른 방향의 사건이 같은 장소를 배경으로 벌어지고 이러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동원이 되지만 전문가라고 파견된 사람들은 가족의 아픔을 위로하지 않고 상처를 내는 행동을 하여서 전문가라는 말이 부끄럽게 만들고 사건을 해결하는 사람은 다른사람이 되어 버리고 표지 사진에 나오는 목걸이를 가지고 있는 아이의 사진이 사건 해결의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그동안 말을 못하던 아이가 친구를 위해서 하는 말 한마디가 문제를 일으키고 그러한 문제 때문에 사건에 관계가 되어 있지만 사실상은 무관한 한 인물의 문제를 불러 일으키고 그동안 잘 해왔다고만 생각을 하고 있었던 일들이 실제로는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고 그 문제에 대해서 눈을 감고 있어서 큰 사건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고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는 계기를 가지고 가족의 유대와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소설의 마지막이 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소설과 같은 아동 성폭력 사건이 많이 발생을 하였는데 앞으로는 이러한 사건이 그만 생기고 마음 놓고 아이들이 뛰어놀수 있는 그러한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