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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중국의 역사와 역사가들 - 오카다 히데히로
"[책]중국의 역사와 역사가들 - 오카다 히데히로" 내용보기
<중국의 역사는 '정통'의 역사이다.>황제, 도시, 한자가 성립된 서기전 221년 진 시황제의 통일을 '중국'의 기원으로 본다.그러므로 중국문명에서 최초의 역사서는 서기전 100년 전후에 쓰인 사마천의 「사기史記」가 된다.사기의 첫머리에 실려있는것은 「오제본기五帝本記」편이다.오제란 황제를 비롯한 다섯명의 신화 상의 군주인데 그 다섯명이 천자(황제)가 되어 천하를 통치했다
"[책]중국의 역사와 역사가들 - 오카다 히데히로" 내용보기


<중국의 역사는 '정통'의 역사이다.>

황제, 도시, 한자가 성립된 서기전 221년 진 시황제의 통일을 '중국'의 기원으로 본다.

그러므로 중국문명에서 최초의 역사서는 서기전 100년 전후에 쓰인 사마천의 「사기史記」가 된다.


사기의 첫머리에 실려있는것은 「오제본기五帝本記」편이다.

오제란 황제를 비롯한 다섯명의 신화 상의 군주인데 그 다섯명이 천자(황제)가 되어 천하를 통치했다는것이 이 편의 내용이다.


여기에서 천하는 한무제의 지배가 미쳤던 범위를 가리키므로, 곧 중국이 된다.

그리고 황제의 업적으로 서술하고 있는것은 한무제의 업적과 겹친다.


말하자면, 신화 속 황제와 현실의 무제를 연결시켜 이것을 '정통'이라는 관념을 만들어낸다.


정통은 중국문명역사관의 근본이 되어,

'시대를 막론하고 한명의 천자만이 천하를 통치할 권리를 갖고있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변화가 있어도 그것을 인정하거나 기록되지 않고, 

역사는 사기의 구조에 따라 천명을 물려받았을 황제에 대해 

한무제 시대와 기본적으로 동일한 천하를 서술하는것만이 역사가 되었다.




<현실을 왜곡하는 삼국지>

삼국지는 진나라 시대에 쓰인것으로 「위서」, 「촉서」, 「오서」의 세부분으로 이루어져있다.


위서에는 본기에 해당하는 「기記」가 있는데, 실제로는 황제가 되지 않았던 조조를 무제라 칭하는것을 시작으로 역대 황제들의 업적을 서술하고있다.

촉서와 오서는 「기」가아니라 모두 '열전'에 해당하는 「전」으로 이루어져, 실제로 황제였던 촉의 유비, 오의 손권을 모두 황제로 인정하지 않고 신하와 같은 수준으로 취급하고 있다.


하나의 천하에 3명의 황제가 존재하는 것은 정통의 구조에 부합하지 않기때문이다.

그래서 위나라만을 정통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한(漢)을 계승한 촉을 '한'이라 칭하지 않고 있는것도 같은 맥락이다.



<북방민족이 세운 왕조>

진 이후 '오호십육국'시대와 그에 이어지는 '남북조시대'


오호란 한족의 북방에 거주했던 선비나 흉노등과 같은 5개의 종족을 가리키는데, 

이들은 진의 화북지방을 점령하고 16개의 국가를 세워 그 중에서 선비족이 화북을 통일하고 북위를 건국하였다

진의 한족은 장강유역으로 이동하여 송이 되었다.


그리하여 중국에서는 북방민족이 세운 북위와 한족이 세운 송이 대립하게 되었다.


이후 북위는 송을 멸망시키고 중국을 통일하였다.(수)

한족이 아니라 북방민족이 중국을 부흥시킨것이다. 

이어 당도 마찬가지로 북방민족이며, 여진족의 금,  몽골족의 원으로 이어진다.

고대의 흉노족, 선비족, 여진족, 몽골족, 만주족 등도 모두 중화민족의 일부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들의 정통을 중화와 한인으로 지정하고, 북방의 유목제국을 이적으로 취급한다.

이것이 '중화사상'이다.






m******5 2019.10.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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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문명에서 역사의 출발
"중국 문명에서 역사의 출발" 내용보기
15~16쪽   한자의 '史'는 '中' 밑에 '又'를 써넣은 합성어이다. 中' 은 덮개와 자루가 달린 그릇을 나타내는 상형문자로, 이 그릇에 글자를 쓰기 위한 목간 木簡(가늘고 기다란 나무판)을 넣는다. '又' 는 오른손을 나타내는 상형문자로, '又' 에 '口' 를 덧붙이면 '右' 자가 된다. '又' 와 '右'는 발음이 동일하다, 말하자면, '史'의 의미는 오른손에 문서꾸러미를 들고 있는 사람
"중국 문명에서 역사의 출발" 내용보기

15~16쪽

 

한자의 '史'는 '中' 밑에 '又'를 써넣은 합성어이다.

中' 은 덮개와 자루가 달린 그릇을 나타내는 상형문자로, 이 그릇에 글자를 쓰기 위한 목간 木簡(가늘고 기다란 나무판)을 넣는다.

'又' 는 오른손을 나타내는 상형문자로, '又' 에 '口' 를 덧붙이면 '右' 자가 된다. '又' 와 '右'는 발음이 동일하다,

말하자면, '史'의 의미는 오른손에 문서꾸러미를 들고 있는 사람, 즉 기록을 담당하는 관리이며 사무관이었다. '史', '事', '使' 는 모두 동일한 의미에 동일한 발음이다. 따라서 '史' 의 본래 의미는 관리가 쓰는 장부이지, 우리가 지금 말하고 있는 의미에서의 역사는 아니다. 매일 장부에 사건을 기록하는 관리가 '사관 史官'이고, 사관의 기록이 기초가 되어 중국 문명의 역사와 문화가 발생했던 것이다.

 

서기전 221년 진 시황제의 통일이 엄밀한 의미에서 '중국'의 기원이 된다. 중국 문명의 3대 요소인 '황제'와 '도시' 그리고 '한자'가 이때 나타났기 때문이다.

 


 

중국 역사를 좀 알고 읽었다면 더 재밌었을 텐데, 아쉽다.

 

'친히'도 있고 '붕어'도 자주 나와 좀 어색하다.

y*****s 2012.02.22. 신고 공감 0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