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만에 대한 혐오와 두려움은 인간으로 하여금 사회를 무의식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는 일일이 언급 불가능한 다양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으며, 지식인들은 더 나은 사회 모델을 구축하기 위한 설계도를 끊임 없이 작성 하고자 한다. 반면 예술가들은 이 사회를 더욱 이해 불능의 상태로 이끄는 사건-기계이다. 예술은 일상의 궤도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을 일으키고자 하고 이론은 이러한 예술을 통치하고자 한다. 일찍이 수전 손택은 "해석은 지식인이 예술에 가하는 복수"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같은 미국인 빅토리아 D. 알렉산더의 '예술 사회학'은 사회학적 방법론으로 예술을 해석하고자 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예술은 해석되어질 때 그 가치가 풍부해질 수 있을까? 이러한 시도는 예술의 사건성을 이론이라는 추상적 모델로 후퇴 시키는 것은 아닌지 의심 받곤 한다. 그렇더라도 예술에 대한 이론의 해석이 사건성의 손실이 아니라 X내지는 +의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놓이길 바라며 텍스트를 읽어 보고자 한다.
저자는 고독한 천재의 창조성의 산물이라는 고전적 예술관이 시대착오적임을 주장하고 예술이 사회적 구성물임에 주목하여 예술의 생산, 분배, 소비 과정 등 보다 실질적인 예술계의 구성 체계를 사회적 맥락에서 살펴보는 것이다. 즉, 사회학적 이론에 예술을 대입해보는 것이다. 그는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예술 사회학의 최신 연구 성과를 집약적으로 정리하였고, 비판의 치밀함도 보여 준다. 예술과 사회의 관계는 어떤 방식으로 파악해야 할까?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앞서 그의 방법론인 '사회학'과 연구 대상인 '예술'이 각각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사회학이란 무엇인가? 동어 반복인지는 모르겠지만 '사회에 대한 이론'이다. 그렇다면 우리를 위한 이론의 과제는 무엇인가? 이 점을 분명히 밝히기 위해선 미국의 사회학자 왓슨이 제시한 이론과 실재에 대한 은유가 유용하다. '실재'라는 영토는 무한한 복잡성을 지니고 있으며 명확히 드러나지 않고 불확실한 상태로 머물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실재에서 살아가기 위해 '상식'이라는 지도를 습득하게 되는데, 이 지도는 실재의 면모를 파악하고 예측하기에는 극도로 단순해서 실재를 정확히 이해 할 수가 없게 된다. 여기에서 이론의 위치가 밝혀지는데 그것은 상식이라는 지도보다 더 자세한 지도이다. 이 지도는 영토가 될 수는 없지만 영토의 사용설명서와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물론 현대 사회의 모습은 이렇게 단순하게 도식화 시킬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아이러니한 비평가 보드리야르는 보르헤스의 '영토보다 더 큰 지도가 영토를 뒤덮는다는 우화'를 우리에게 상기시키며 지금의 사회는 가상(여기서는 이론. 관념의 가상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이 실재를 압도하는 '하이퍼리얼'의 시대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사회학을 포기할 수 없다. 사회학은 여전히 과거에 일어난 변화를 분석하고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주요 발전의 방향을 이해하는 주된 사명을 수행하고 있다. 사회학은 중요한 실용적 함의를 갖는 학문이다. 우리는 사회학적 사고를 갖게 되면서 그저 사실들 만을 축적하는데 매진하지 않고 이를 해석하는데 의미를 둔다. 이 결과 세부 구조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문화적 차이를 인식하는 다양한 관점을 이용할 수 있게 되며, 사회의 작동원리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작동원리도 알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저자가 사회학적으로 분석하고자 하는 예술이란 무엇을 가르키는 지를 파악하여야 한다. 예술이라는 용어는 정말로 다양한 사용 범위를 지니고 있다. 예술은 어떠한 대상에 적용되는 용법인가? 작가는 이 단어의 모호함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 "왜 발레는 예술이지만, 프로레슬링은 예술이 아닌가?" 많은 예술가와 이론가들이 예술을 정의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명확한 규정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사실, 예술을 추상적인 언어로 정확하게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예술의 정의'는 사회적으로 정의되므로 모든 시대를 아우르는 정의가 없기 때문이다. 이 '사회와의 관계'가 저자가 강조하고픈 예술의 속성일 것이다.
이렇듯, 예술의 정의는 사회와의 관계에 따라 유동적으로 바뀌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에 저자는 '예술'의 개념을 포괄적으로 제시하고자 노력한다. 예술 사회학에서는 순수 예술을 너머 대중 예술, 민속 예술, 하위 문화의 예술 그리고 예술/비예술의 회색지대에 놓여 있다고 판단되는 것까지 예술의 범주 아래에 놓고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렇다면 저자가 예술과 사회를 관계 맺기 위해 제시하는 이론의 모델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접근의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제시 되는데, 그 것들은 각각 반영적 접근, 형성적 접근, 문화의 다이아몬드 이론적 접근이다. 반영적 접근과 형성적 접근은 서로 대립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이에 중재된 시각으로서 저자가 중요시하는 문화의 다이아몬드 이론이 제시된다. 문화의 다이아몬드 아이디어를 발전시킨 사람은 웬디 그로스올드지만 저자는 이 모델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이 책의 중심에 가져다 놓는다.
각각의 모델의 중심 전제와 그 난점에 대해 살펴보면, 반영적 접근은 예술이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관점으로 예술을 사회에 대한 정보로 파악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술은 사회를 반영하되 복잡한 방법으로 반영한다. 여기에서는 반영의 대상이 너무도 불분명하여 작품이 사회의 어떤 측면을 반영했는지 구체화하기 힘들다는 문제가 있다. 이와는 반대로 예술 작품이 사회에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는 것이 '형성' 접근 법이다. 그러나 형성적 접근에 대해서도 많은 비판이 존재한다. 세 가지의 주요 비판을 들 수 있는데 첫째, 사회에 대한 예술의 영향력 측정에 있어 심각한 방법론적 문제가 있다. 둘째, 관중은 다면적일 뿐 아니라, 생각하는 인간으로 구성된 집단이다. 셋째, 문화 비평은 그 자체로 엘리트주의의 산물인 것처럼 보인다.저자는 이 두 가지 관점이 매력적이지만, 결점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여기서 중재된 시각으로 제시되는 것이 문화의 다이아몬드 이론이다. 간단히 말해 다이아몬드는 연처럼 한 점에서 돌려진 사각형이다. 각각의 꼭지점은 (1)예술 생산물 (2)예술 창작자 (3)예술 소비자 (4)사회를 의미한다. 네 개의 꼭지점은 서로를 연결하는 여섯 개의 선으로 이어져 있다. 일반적으로 문화의 다이아몬드는 이러한 점들 간에 관계가 존재한다는 생각을 설명하는 발견적인 도구나 은유가 된다. 저자는 문화의 다이아몬드에 있는 네 개의 점이 예술을 사회학적으로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는 것을 강력하게 제안한다. 이어서 이 모델을 토대로 예술을 분석해 나간다. 그의 다이아몬드는 기존의 것과 약간 다른 부분이 있는데 예술의 의사소통의 측면을 강조하기 위해 문화의 다이아몬드 가운데에 '분배'라는 개념을 포함시킨다. 이러한 도식은 사실 예술과 사회는 직접 연결될 수 없으며, 예술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통해서만 사회와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구조는 책의 전반적 흐름에 전제되어 있다. 순서는 먼저 문화의 생산, 다음으로 문화의 소비, 마지막으로는 예술 그 자체에 집중한다. 먼저 문화의 생산을 다룬 부분을 들여다 보면 가장 관심이 가는 부분은 하워드 베커의 '예술계'라는 개념을 이용하여 예술가라는 천재는 사회적 구성물임을 밝히는 부분이다. 천재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인정하는 '천재'만이 '천재'로 불린다는 내용이다. 예술가들은 자신이 사회와는 독립된 주체라고 일컬어지길 원하지만 사회적으로 구성된 관념에 기초하지 않고서는 자신을 예술가라고 칭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훌륭하지 않은 예술가들은 사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자들인가? 작가가 들이대는 이러한 칼날은 예술 행위를 사회학적으로 절단하는 행위이다. 애초에 예술가들은 자신이 천재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며 사회적 인정을 갈망하지 않는 아비투스를 지니고 있는 경우는 분명히 존재한다. 여기에 저자는 한 발 물러서서 사회가 어떻게 특정 유형을 지지하거나, 혹은 지지하는 데 실패하는지, 그리고 재능은 어떻게 정의되는지에 대한 것은 사회학적으로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덧붙여서 사회학적으로 예술가를 바라보는 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예술 자체를 평가 절하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는 언급을 한다.
다음으로는 문화의 소비를 다루는 부분을 살펴보겠다. 이 부분에서는 예술이라는 2음절의 단어가 얼마가 다면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지 살펴 볼 수 있다. 그는 프로레슬링까지도 예술일 수 있다는 주장을 한다. 그의 예술 범주에는 다양한 예술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러한 내부에서도 예술은 고급과 저급으로 나뉘게 된다. 순수, 대중 그리고 민속 예술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인가? 이는 예술의 구분을 전제 조건으로 생각하는 기존의 예술 사회학 관점에 대한 중요한 문제 제기다. 한편으로는 다양한 범주의 순수 예술로 구성된 '고급'예술이 있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의 '고유한' 민속 예술과 상업화된 '대량' 또는 대중 예술로 구성된 '저급' 예술이 있다. 몇몇 학자들은 이 두 가지 범주 사이의 구분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사회학적 분석이 필요 없다고 주장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구분 역시 분석의 필요성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동일한 의문을 갖은 사회학자들의 의견을 정리하며 예술의 향유에도 계급적 구별이 존재한다고 하는데, 그 구별이란 "우리들이 향유하는 예술 형식이 다른 사람들이 향유하는 예술 형식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을 통해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기 원하는 권력 집단들에 의해 제도화된, 역사적으로 규정된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피에르 부르디외의 '구별짓기'가 상기되는 대목이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다양한 사례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현실에서 어떠한 문제가 발생하는지를 살펴보고 저자가 제시한 이론의 모델들도 그 사실들을 이해해 볼 수 있게 된다. 제시된 사례들은 사회와 예술과의 관계를 밝혀야 하는 이유를 더 분명히 제시해 주는데, 어린이 책에 인종 차별이 반영된다는 사실이나 텔레비전의 폭력적 영상이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등 조금 더 적극적으로 현실을 이해할 수 있게끔 인도해준다. 저자는 사례를 적극 이용하여 예술이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닿아 있음을 보여 준다. 이 책 안에서는 로맨스 소설, 서부 영화, 헤비메탈, 랩 음악 등이 예술로서 진중하게 다루어야 할 사례로 제공된다. 이는 예술에 대한 우리의 고전적 관념을 해체 시키는 역할을 한다. 미술을 전공하는 입장에서 보기에 예술을 다루는 글에 순수 미술이 다소 적게 다루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저자는 현대 미술에 관한 최신의 사례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의 센세이션 전이 불러 일으킨 논쟁을 마지막으로 소개하며 미술 취향자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고 있다.
저자는 예술의 사회적 맥락이 아니라 예술 자체에는 집중하지 않는 것인가? 이러한 뻔한 비판이 나오기 전에 그는 '제 13장 예술, 바로 그것'이라는 목차를 준비해 두었다. 여기에서는 예술 자체에 대한 가치를 수사적으로 표현하기 보단 예술 작품의 분석 방법을 제시한다. 기호학적 분석, 구조주의적 분석, 포스트 모던적 분석 등 다양한 예술 분석 방법이 제공되는데, 요약하면 예술 작품의 의미는 관객과 그들의 관념과 분리될 수 없고, 텍스트와 텍스트의 구조와도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 역시 예술이 사회적 산물이라는 저자의 기본 전제를 확인 시켜 주는 듯 하다. 저자는 뛰어난 예술 작품에 대해 간단한 언급 이상은 하지 않는다. 그는 많은 작품이 그들 자신의 체계 안에서만 '더 뛰어날 수' 있으나, 어떤 작품은 그들의 장르적 경계를 초월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이러한 작품들, 즉 자신의 체계에 한정되지 않는 서로 다른 분야에서도 다채롭고 좋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야말로 진정으로 위대한 예술 작품일지도 모른다는 말과 함께 저자는 예술 그 자체에 대한 논의를 마친다. 즉 보편성의 경쟁적으로 우월한 가치에 대한 언급이다.
이 책은 제목에 부합하는 '예술 사회학' 그 이상, 이하도 아닌 것 같다. 저자는 미학이 아닌 사회학으로 본 예술에 대한 연구 성과의 종합 선물 세트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이론 체계 안에서 예술이 빛날 자리가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그의 분석은 사회학이라는 분야 안에서 예술이라는 독특한 현상에 대한 분석일 뿐이지 예술을 위한 자양분이 될 수 있는가 또한 미지수이다. 애초에 많은 이론이 동일성과 필연을 다지기 위해 존재하지만 예술은 우연과 돌발로 이루어진 것이다. 우연과 돌발의 우주적 필연 앞에서 이론이 할 수 있는 일은 추상적인 예측 밖에 없다. 차이를 생산하고자 하는 예술가와 그들의 복잡성을 그물망으로 포획하려는 이론가와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모순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론으로 인해 예술에 대한 손실이 있을 것이라고도 단정지을 수 없다. 유머에 대한 해설이 웃길 수도 있고 충격의 해설 자체가 충격적일 수도 있는 그 가능성은 열어 둘만 하다.; 예술의 지도는 만들어 봄직 하다!
예술과 이론적인 틀의 바람직한 관계는 무엇일까? 나는 예술에 대한 사회학적 방법론을 동원한 분석이 사회학적 모델의 홍보를 위한 예술의 차용일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을 갖고 있다. 예술이라는 실재는 그 자체로 존재 가능한 완전체이지만 이론적 틀은 자신의 분석이 실재를 더 완벽한 실재로 만들어 줄 것이라는 감언이설을 내뱉는다. 자꾸만 실재를 결여로 파악하여 단순화 시키려고 하는 이성의 고질적인 경향이다. 이는 저자가 자신이 원한다고 밝힌 '총체성'이 내파 되는 지점이 아닌가 싶다. 예술은 이성적 판단이 중지 되는 그 어떤 영역이다. 저자는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의 거대 담론에 대한 해체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면서 이론의 총체성을 추구한다고 밝히지만 완벽은 한계에 다름 아니다. 완벽한 완벽은 존재할 수 없다. 우리는 여기서 변별적 관점이 요구된다. 이론화의 극단은 상징계와의 유일한 결합이 될 것이며, 수 많은 오인과 위조된 열정을 동반할 것이다. 저자는 글의 결론에서 이 책이 사회학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 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하며 글을 맺는다. 나는 저자의 사회학적 총체성에 대한 갈망이 이외의 아름다움을 손상시키지 않길 바란다. 그래도 예술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는 아직 속단할 수 없으며 나는 이론의 횡포에 대한 우려의 시선을 갖고 있을 뿐 완전히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다. 이러한 연구는 유용한 개념도 많이 만들어서 세상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기에 지속되어야 하며 상생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더욱 적극적인 모색이 필요하다는 것이 내 마지막 결론이다. 더불어 예술의 사회학적 연구가 척박한 한국 사회에서도 이러한 연구가 구체화되어 문화가 척박한 이 땅에 활기를 불어 넣어 주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