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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해 봐야 할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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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년 초반과 후반에 연이어 출간된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와 '마케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는 논란과 찬반의 대상이 되었다. 자극적인 주제와 저자의 독설이 어떤 이들에게는 되돌아 볼 자극제가 되었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강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두 책은 출간과 동시에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두 책으로 인한 뜨거운 논쟁이 잦아들 무렵, 3년 만에 '부족한 기독교'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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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년 초반과 후반에 연이어 출간된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와 '마케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는 논란과 찬반의 대상이 되었다. 자극적인 주제와 저자의 독설이 어떤 이들에게는 되돌아 볼 자극제가 되었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강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두 책은 출간과 동시에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두 책으로 인한 뜨거운 논쟁이 잦아들 무렵, 3년 만에 '부족한 기독교' 시리즈의 마지막 편인 '엔터테인먼트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이하 엔부기)'가 드디어 출간 되었다!

 

 3부로 기획된 '부족한 기독교' 시리즈의 마지막 권인 '엔부기'는 당초 계획보다 늦게 출간 되었다. 시간이 지나 두 책으로 인한 논란이 가라않았지만 이 책으로 인해 다시 논란이 일게 되었다. 어떤 이들은 기존의 두 책에서 느꼈던 저자의 강한 독설을 곱씹으며 또 시작이냐고 아예 책을 멀리 했다. 반면 어떤 이들은 전보다 많이 느슨해졌다며 구성과 필치에 아쉬워 하기도 했다. 어쨌든 이 책과 시리즈가 주는 자극에 대해 한번쯤은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음악과 록의 효과와 영향 등으로 이야기가 시작 된다. 이후 CCM - 이 책의 초반부에서는 CCM 과 워십송을 구분한다. 하지만 이후 내용 전개상 둘을 통칭한다. 따라서 저자가 둘을 구분하여 언급 하지 않으면 CCM 이라 할 때 주로 워십송을 가리킨다. - 에 대한 다양한 주장, 그것의 위치와 영향 등을 다룬다. 그 다음으로 예배와 찬양 등을 살펴보고, CCM 의 바른 위치를 모색하는 것을 끝으로 내용이 마무리 된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시리즈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논란의 여지가 다분하다. 특히 국내외 모 찬양인도자와 찬양을 거론하고 있기에 혼란이 예상된다. 따라서 저자의 말에 무조건 찬성하거나 반대하기보다는 주장의 당위성에 대해 많은 토론과 검증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저자는 록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그에 따라 록을 기반으로 한 워십송을 분명히 반대한다. 거의 모든 워십송이 록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현상황에서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록을 기반을 한 모든 워십송을 폐기하고, 다른 음악 장르를 이용하여 워십송을 만들어야 할까? 워십송의 바른 위치에 관한 저자의 세 주장 - '록을 기반으로 하는 한 워십송은 예배에 쓰일 수 없다', '워십송은 전도의 수단이나 하나님의 임재를 위한 흥분제로 쓰여서는 안 된다', '교회적 차원에서 워십송에 대한 선별 작업이 필요하다' - 중 몇몇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그렇지만 모든 부분에 대해 좀 더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외에 CCM 의 바른 위치를 찾기 위한 저자의 다음의 말들에 적극 동의한다. "CCM 은 지금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세상의 조류에 맞서 제시할 수 있는 분명 좋은 대안입니다. ... 우리의 CCM 종사자들이 더 뛰어난 음악적 수준으로 세상에 고급문화의 한 대안을 보여 주기 바랍니다. 하루 빨리 일반 가수들보다 더 뛰어난 가창력을 가진 CCM 가수가 나와 대중가요들을 훌쩍 뛰어넘는 CCM 곡들을 만들어주길 바랍니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귀한 사역이자 우리의 삶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 CCM 을 부르는 가수들은 가요를 부르는 가수들이 갖지 못한 신앙으로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번 책에 또 그러냐며 비난과 조롱을 보냈다. 반면 어떤 이들은 환영의 인사를 보냈다. 개인적으로는 저자의 각 주장들에 대해 동의하는 부분도 있고, 좀 더 생각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부분도 있었다. 어찌 되었든 CCM 과 워십송, 그리고 예배에 대한 저자의 고민과 그것들의 바른 길을 찾기 위한 저자의 노력에는 적극 힘을 보태고 싶다.

 

 혹자는 '부족한 기독교' 시리즈에 대해 저자의 독설을 - 다른 두 책에 비해 이번 책은 좀 약해졌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 문제 삼기도 하고, 혹은 근거가 빈약하다며 발목을 잡기도 했다. - 한편 이 시리즈를 비난하던 사람들에게 느끼는 의문과 아쉬움이 있다. 과연 저자가 국내외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유명한 학자였어도 그렇게 감정적으로 발목을 잡았을 것인가? - 저자의 글쓰는 방식 등 여러 부분에 있어서 아쉬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비전문가가 쓴 책임을 생각한다면 '엔부기'를 포함한 '부족한 기독교' 시리즈는 상당한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저자가 보다 전문적인 지식과 연구 방법을 통하여 책을 썼더라면 더욱 완성도 있는 시리즈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튼 누구도 지적하지 않았던 문제에 대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보이는 문제에 대해, 한국 교회의 병폐가 되어가는 문제에 대해 과감하게 칼날을 겨눈 저자의 용기와 노력에 다시 한 번 큰 박수를 보낸다.

 

 저자가 '부족한 기독교' 시리즈를 통해 지적한 문제둘이 앞으로 한국 교회에 더더욱 깊이 뿌리 내리고, 언젠가 분명 논란거리로써 수면 위로 떠오지 않을까 싶다. 부디 그때가서 수술하여 큰 고통을 겪게 되는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작은 딱지만 앉은 지금 전문가에 의한 점검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f********3 2010.09.12. 신고 공감 4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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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만드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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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만드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소리는 진동이 없는 0 헤르쯔(Hz)에서 무한대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류의 진동을 가집니다. 이 것을 정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마귀가 소유한 주파수 또는 마귀가 점령한 주파수는 있을 수 없겠지요. 그 소리의 조합을 이용한 음악도 따라서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물의 결과입니다.   칼을 들어 비유를 해봅니다. 칼을 이용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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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만드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소리는 진동이 없는 0 헤르쯔(Hz)에서 무한대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류의 진동을 가집니다. 이 것을 정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마귀가 소유한 주파수 또는 마귀가 점령한 주파수는 있을 수 없겠지요. 그 소리의 조합을 이용한 음악도 따라서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물의 결과입니다.

 

칼을 들어 비유를 해봅니다. 칼을 이용해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이 때 칼을 든 사람은 죄인이 됩니다. 같은 칼로, 사람 대신 물고기를 얇게 저며내면 그것은 더이상 죄악의 도구가 아닌 회칼이 됩니다. 다시 그 칼을 사람에게 향할 수도 있겠지요. 대신, 이번에는 외과의사가 잡고 있습니다. 죄악의 도구가 아닌, 수술용 칼이 됩니다.

 

칼이 죄악 자체가 될 수 없는 이치처럼, 음악의 장르가 교회에서 비롯되지 않았다해서 음악 자체를 죄악시하는 것은 칼을 죄악시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요? 그 음악속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나요? 저자가 말하듯 찬송가에 있는 음악만 들어야 할까요? 그렇다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 찬송가도 있었나요? 가장 완벽한 상태는 지금의 유태인들이 그러하듯이, 아니면 무슬림들이 그러하듯이, 성경구절을 불경외우듯 암송하는 창법이 가장 경건한 모습일까요? 여기에 대한 대답은 찬송이나 CCM (또 심지어는 세상 음악을)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감동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확실합니다. 음악은 도구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침소봉대라는 말이 있지요. 작은 것을 부풀려 큰 것 처럼 보이게 하려고 한다는 뜻이지요. 저자가 쓴 시리즈 세권을 모두 읽었습니다. 학교 도서관에 다행히 세권다 있어서 금새 다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이 세권을 읽고 한마디로 평을 하자면, '침소봉대'입니다.

 

오늘의 우리 교회는 많은 문제들과 씨름하고 있습니다. 그 문제들을 정말로 이겨내고 싶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그르고의 판단이 아닙니다. 신앙인으로서 우리안에, 교회로서 우리 안에 하나님이 계신가 입니다. 어떤 싸움도 하나님이 없이 우리 스스로 이겨낼 수 없습니다. 아직, 그것을 깨닫지 못하였다면, 아직 복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크리스천 아닐까요? 세상에서까지 손가락질하는 교회를 향한 비판을 봐도 그렇습니다. 목회자가, 장로가, 그리고 평신도가 하나님이 그 안에 계셨다면 일어나지도 않았을 문제가 아니었을까요?

e****g 2012.08.30.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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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먼트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옥성호의 부족한 기독교 3부작 시리즈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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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주말 MBC 뉴스데스크를 보면, 이것이 바로 '엔터테인먼트에 물든 부족한 뉴스'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한 뉴스가 부족하다는 판단에는 엔터테인먼트가 지배하는 세태에서도 포기하지 말아야 할 뉴스의 본질, 뉴스의 방향성이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을 것이다. 옥성호의 부족한 기독교 3부작 시리즈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마케팅에 부족한 기독교", 이 책을 순서대로 읽
"엔터테인먼트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옥성호의 부족한 기독교 3부작 시리즈 03" 내용보기

요즘 주말 MBC 뉴스데스크를 보면, 이것이 바로 '엔터테인먼트에 물든 부족한 뉴스'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한 뉴스가 부족하다는 판단에는 엔터테인먼트가 지배하는 세태에서도 포기하지 말아야 할 뉴스의 본질, 뉴스의 방향성이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을 것이다. 옥성호의 부족한 기독교 3부작 시리즈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마케팅에 부족한 기독교", 이 책을 순서대로 읽어오다보니 이 대장정을 통해 그가 정말 말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 것 같다. 교회가 예배의 본질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심부기에서는 사랑 뿐 아니라 공의라는 본성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이 죄악을 미워하시는 것을 망각한 채, 신비주의와 '긍정의 힘, 잘 되는 나'와 같은 기복신앙에 빠져 있는 한국 교회를 비판했다. 마부기에서는 성장을 위해 복음을 왜곡 시키면서까지 마케팅 기법을 도입하는 메가처치(어떤 작은 교회들도 마찬가지)를 비판했다. 이 책에서는 예배에서 구원의 기쁨이나 성령을 통해서가 아니라 음악에 기대 감정적 열광을 불러 일으키려고 인간적인 노력을 하는 엔터테인먼트에 물든 한국 교회의 부족한 모습을 비판하고 있다.

 

미학을 좋아하고 미적 교육을 공부하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 음악 미학이라고 할 수도 있을 이 내용들이 가볍게 읽히지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미'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상적 아름다움은 현실을 잊게 하고 도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아름다움만을 최고로 여기는 것은 유미주의이다. 하나님의 본성이 사랑과 공의임을 생각할 때, 예술도 아름다움 뿐 아니라 숭고함까지도 갖추어야 좀 더 온전한 '미'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복음에 하나님의 은혜, 예수님 부활의 기쁨과 더불어 하나님의 심판과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으심까지 갖추어져야 온전한 복음이 될 수 있듯이 말이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정말로 바로 드러난다면 하나님은 그랜드캐니언이 주는 그런 장엄함과 아름다움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경이롭게 다가오실 것입니다. 우리 머릿속에 적용이니 활용이니 하는 생각이 들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라져 가는 자신감을 키워 주려고 오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불쾌한 경험으로부터 우리를 씻어주려고 오시지도 않는다. 다른 말로 하나님은 우리 스스로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는 그런 뻔한 해결책을 주시려고 우리에게 오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갖고 있는 욕망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우리 앞에 낱낱이 드러내시며 우리가 말하는 소위 우리의 필요들이라는 것이 얼마나 하잘것없는지를 우리 앞에 환히 보여 주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새로운 것들, 너무 크고 위대해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 저 높은 곳에서도 차마 꿈꾸지 못할 그런 정도로 우리를 채우기 위해 오신다." p.249-250"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말하는 워십송과 ccm은 내용과 형식이 빈곤하더라도 예배 시간에 회중이 감동만 받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무책임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 요즘 세대에 쉽게 다가가겠다는 이유로 워십송이 기반하고 있는 록 음악은 인간의 육체에 있어서도 정신에 있어서도 복음을 담을 수 있는 적절한 그릇이 아니다. ccm 공연에서도 잘 사용하는 기법인 록 음악의 기반은 드럼 비트와 큰 소리, 같은 리듬과 가사의 반복이다. 이러한 음악 자체가 인간의 신경을 흥분하게 한다. 찬양 여러 곡을 공연 관람을 하듯이 흥분해서 뛰면서 부르고 난 후, 설교 시간에는 진이 빠지고 멍해지는 현상을 저자는 신비주의적인 집단 최면이라고 표현한다. 우리 세대의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경험해 봤음직한 상황인데, 여지껏 이것이 나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으니 충격적이다.  

 

위와 같은 록 음악의 특성 때문에 이러한 음악 형식에는 인간의 죄 된 속성과 십자가 사건이라는 구원에 대한 일련의 내용을 담기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음악을 만들어 놓고 단순히 필요한 성경 구절만 따와서 가사를 만들게 되고, 이러한 내용의 빈곤이 복음의 왜곡을 가져온다. 워십송으로 복음을 접한 사람은 형식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왜곡된 복음을 접하게 되고, 이러한 가벼운 회심은 지속적으로 신앙 생활을 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그런데 이미 저자가 마부기에서 주장한 바 있듯, 미국의 실용주의적인 구도자 예배들은 이러한 ccm의 사용을 정당화하려고 노력한다. 저자는 그러한 주장이 잘못된 이유를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위와 같은 문제의식을 제기한 후 저자는 치료할 수 있는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인간의 노력으로 은혜를 받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주권을 드리는 예배를 드리자는 것이다. 예배의 본질은 하나님께 멋진 공연을 보여드려서 기쁘게 해드리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뜻대로 전적으로 내려주시는 은혜를 인간이 받는데 있는 것이다. 그리고 찬양은 그 은혜가 감사해서 그 후에 나오는 반응이 되어야지 지금처럼 예배의 주인공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주권을 가진 예배란 초대교회처럼 말씀과 성례가 중점이 된 예배이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성례를 통해 예수님을 기억하며 같은 하나님 안에서의 공동체를 세워갈 수 있다.

 

책을 읽는 동안 예배를 드릴 때 찬송가의 가사를 유심히 보게 되었다. 낭만주의 시대에 많이 만들어졌다는 지금의 찬송가들의 가사는 정말 신학적인 깊이와 메시지가 분명해보였다. 가사를 읽고만 있어도 은혜가 되고, 가사에 말씀이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주장이 납득이 되었다. 그에 비해 워십송이나 ccm을 돌이켜보았을 때 정말 얼토당토 않은 가사가 많았구나 싶었다. ccm이나 최신가요의 음색이나 분위기를 떠올려봐도 영, 육의 건강에 참 안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부족한 시리즈 3부작이 모태신앙이라 더욱 당연하게 여겨졌을 한국 교회 분위기의 부족한 부분에 대한 눈을 뜨게 해 주어서 즐거운 독서가 되었다. 물론 때때로 교회에서, 케이블 기독교 채널에서, 인터넷에 보이는 한국 교회의 부족한 모습을 대할 때는 점점 더 울컥 하게 된다. 저자가 제시한 부분들에 대해 한국 교회 내에서 건전한 논의들이 활성화 되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방언에 대해 궁금하기도 하고, 방언을 어떻게 보아야할지 고민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저자가 썼다는 "방언, 정말 하늘의 언어인가?"도 조만간 읽어보고 싶다.

 

심부기, 마부기에서 텀을 두고 오랜만에 나왔다는 이 책에서 저자의 어조가 많이 유해졌음을 느낀다. 특정한 누군가를 예로 들어 비판할 때에도 신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여전히 구체적인 사례와 명쾌한 문체는 책을 술술 읽게 한다. 다양한 책들을 잘 짜 맞추어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당당하게 제시하는 통찰력도 여전하다. 요즘 개인적으로 겪고 있는 일 때문에, 어쨌든 특정한 공동체에 몸 담고 있는 사람이 그 공동체의 바른 본질과 방향성을 위해 왜곡된 공동체의 모습을 비판 할 때 어느 정도까지, 어떤 자세로 비판하는 것이 가장 지혜롭고 서로에게 좋을지 생각한다. 정말 그 공동체를 사랑하기 때문에 공동체가 제대로 된 방향성을 찾아가기 위해 비판하려는 것이라면 싸우려거나 화내거나 따지는 듯한 태도가 아니라 서로의 입장을 경청하고 존중하는 자세를 기반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멀리 보았을 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한 비겁한 타협이 아니라, 옳은 것은 옳다고 주장하되 서로가 win-win하는 그 지점이 어디인지 고민한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o****2 2011.08.04.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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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M과 예배에 대한 통찰력이 돋보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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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성호의 부족한 기독교 시리즈가 이미 재작년에 완간되었단 사실을 얼마전에야 알았다. 심리학~ 과 마케팅~ 편을 흥미롭게 읽고 3권을 기다리고 있던 시기가 이미 5년전이던데...3권에 대한 반응은 1,2권만큼은 아니었지만 2시간 10분여에 걸쳐 단번에 읽으면서 저자의 체험과 지식으로부터 나온 열정적인 책이란 생각이 든다.교회에서 특히 예배에 사용되는 음악에 대해 전문가는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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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성호의 부족한 기독교 시리즈가 이미 재작년에 완간되었단 사실을 얼마전에야 알았다. 심리학~ 과 마케팅~ 편을 흥미롭게 읽고 3권을 기다리고 있던 시기가 이미 5년전이던데...
3권에 대한 반응은 1,2권만큼은 아니었지만 2시간 10분여에 걸쳐 단번에 읽으면서 저자의 체험과 지식으로부터 나온 열정적인 책이란 생각이 든다.
교회에서 특히 예배에 사용되는 음악에 대해 전문가는 아니지만 저자의 의견에 상당부분 동의하고 또 CCM이 동시대에 유행하는 음악을 이용해 복음적인 접근법을 쓰는 음악이긴 하지만 CCM의 불분명한 위치와 과도한 유행따르기에 대해서는 저자만큼 비판적 위치에 선 편이다.
하지만 단정지을 수 없는 부분도 없지 않다.
그의 글이 좋은 내용과 교계의 반성을 촉구하며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자는 시도로 지어졌음에도
교계에선 오히려 선을 긋는 느낌도 받는다.
그의 진정성은 책을 다 읽어봐야 하는데 과연 그만큼의 독자들이 있었을까?
고 옥한흠 목사님의 아들이란 호기심때문에 반응했던 나였지만 이 책들을 내팽겨칠만큼 '악한' 책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데도 그런 선입견에 빠진 이들이 있는 것 같다. 교회를 살리고 예배를 살리는 그의 바람이 많은 크리스챤들에게도 전달되어지기를 소망한다.

 

j******6 2012.11.01.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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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 찬양 점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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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섬기고 있는 장로교(고신) 헌법에 보면 목사의 직무 중 하나로 "찬송을 지도하는 일"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실상 말씀 사역자 중에 찬송에 대해서 성도들에게 가르쳐 주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나도 청년부 팀장 모임에서 한 팀장으로부터 현대 교회의 찬양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뭔가 자신 있게 말하기가 힘들었던 경험이 있다. 찬양 가사에 대해서는 가르침을 줄 수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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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섬기고 있는 장로교(고신) 헌법에 보면 목사의 직무 중 하나로 "찬송을 지도하는 일"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실상 말씀 사역자 중에 찬송에 대해서 성도들에게 가르쳐 주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나도 청년부 팀장 모임에서 한 팀장으로부터 현대 교회의 찬양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뭔가 자신 있게 말하기가 힘들었던 경험이 있다. 찬양 가사에 대해서는 가르침을 줄 수 있지만, 음악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찬양을 통해 은혜 받고 있다고 여기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그들에게 그들이 부르는 찬양에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하려면 제대로된 근거를 가지고 해야 한다. 그런데 성도들을 지도하는 데 지침으로 삼을 만한 책이 별로 없다. 그런 상황에서 옥성호씨의 이 책이 나와서 내심 반가웠다.

 

 

  이 책을 통해서 새롭게 배운 것 중의 하나는 CCM과 워십송의 구분이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크리스찬으로서 세상을 향해 부를 노래와 예배 중에 부를 노래의 구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는 세상을 향해 부르기에는 너무나 종교적이고, 예배 중에 부르기는 너무나 세속적인 노래를들을 불러왔던 것이다.

 

  또 하나 새롭게 인식하게 된 것은 음악의 장르는 중립적이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음악 전문가들의 반론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가 아주 공들여 논증한 바에 따르면 '록'이라고 하는 장르는 그 태생과 음악적 특성상 찬양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동안 찬양의 가사에 대해서는 고민을 많이 했는데 정작 음악 장르에 대해서는 무비판적으로 수용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부분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고, 또한 음악 전문가들의 활발한 토론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시리즈의 앞의 두권도 그렇지만, 이 책도 결국 결론은 하나님의 말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맺고 있다.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은혜의 방편은 들려지는 말씀 선포와 눈에 보이는 성례의 바른 집행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찬양은 그러한 방편을 통해 받은 은혜에 대한 반응이어야 한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한국 교회에서 찬양이 마음의 문을 여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는 찬양이 단순히 설교를 위한 보조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혹자들은 옥성호씨가 평신도이기 때문에 그의 글에 전문성이 없다고 주장하며 무시한다. 하지만 옥성호씨의 이 씨리즈들이 전문가가 보기에 미진한 부분들이 있다고 해도, 한국 교회에 잠복해 있는 문제들을 드러내 공론화 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그가 목회자나, 찬양 사역자가 아니기 때문에 더 자유롭고 객관적으로 글을 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 때문에 그가 잃을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이 책을 통해서 저자가 무엇인가 자기 이득을 챙기고자 하는 의도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의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와 관련된 전문가들은 그의 책을 무시하기에 앞서, 평신도도 알고 있는 문제점들을 본인은 혹 모르고 있지는 않았는지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 책으로 인해 한국 교회 찬양에 대한 활발한 토론이 일어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q******n 2010.10.2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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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중 가장 덜 논리적인 책이었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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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저자는 록이라는 음악 장르가 태생적으로 사람을 흥분시키며 중독성 있는 호르몬을 분출(57)케 하는 ‘부정적인 영향’(57)을 초래하는 음악이기에 이를 찬양이라는 이름으로 예배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록에 기반한 찬양들이 예배를 대체할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지면서 결국 복음/성경의 메시지가 점차 희석되고 있다는 것.
"시리즈 중 가장 덜 논리적인 책이었다. 아쉽다." 내용보기

1. 요약 。。。。。。。          

 

     저자는 록이라는 음악 장르가 태생적으로 사람을 흥분시키며 중독성 있는 호르몬을 분출(57)케 하는 ‘부정적인 영향’(57)을 초래하는 음악이기에 이를 찬양이라는 이름으로 예배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록에 기반한 찬양들이 예배를 대체할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지면서 결국 복음/성경의 메시지가 점차 희석되고 있다는 것. 저자는 이런 경향의 원인을,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교회가 자신을 세상에 맞추어 변형시키려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2부에서는 성경에 기초한 바른 예배의 정의와 형태에 관해 말하면서, 바른 예배 찬양이 가져야 할 요건들을 제시한다. 또, 예배 음악과는 다른 차원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소명을 드러내는 한 방식으로서의 음악(저자는 CCM을 이렇게 정의한다)의 필요성을 바르게 인식하고 이를 위해 음악적 재능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분발해야 한다는 요청이 덧붙여 있다.

 

 

 

2. 감상평 。。。。。。。        

 

     재미있게 읽었다. 이번 책은 앞서의 책들보다 더 잘 드러나는 부분인 ‘교회 안의 음악’에 관해 다루었기에 사람들에게 보다 쉽게 읽힐 것 같다. 최근의 ‘이상한’ 찬양들에 대해 뭔가 불만이나 불안감을 품고 있었던 이들이라면 이 책의 논지 중 어떤 부분은 상당히 명쾌한 조언을 제시하고 있으니 읽어볼 만하다.

 

     나도 저자의 주장처럼 그리스도인들이 만들고 향유하는 음악들을 예배를 위한 것과 예배 이외의 목적을 가진 것으로 나누어서 보아야 한다는 데 동의하고, 전자의 경우는 예배라는 일종의 의식에 맞게 제작된 것을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한다는 부분에도 찬성한다. 저자의 말처럼 성경 구절 한두 개를 떼어 내서 가사에 집어넣었다고 해서 모든 게 ‘찬양’이 되는 건 아니니까. 찬양이란 말 그대로 상대를 높이는 것이지, 그것을 하는 행위자 자신의 만족과 위안을 위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저자가 말하는 주요 주장에 동의를 함에도, 책 자체를 보면 좀 아쉬운 점이 많다.

 

 

     저자는 음악이 가지고 있는 엄청난 힘에 관한 이야기로 본론을 시작한다. 음악은 단순한 멜로디만으로도 우리 마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나아가 행동에까지 영향을 미친다.(39) 어떤 사람의 마음에 변화를 일으켜 그의 행동을 달라지게 하는 것, 일반적으로 이런 작업을 ‘교육’이라고 부른다. 즉 저자의 말대로라면 음악은 교육을 위한 매우 효과적인 도구이다.

 

     그런데 또 다른 곳(181)에서 저자는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동안 진짜 중요한 것을 노래로 배운 게 있’느냐고 반문한다. CCM을 통해 부드럽게 복음을 전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주장에 대한 반론인데, '그러니 좀 더 진지하게 말로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을 내포하는 것 같다. 아니, 음악이 그렇게 마음과 행동에 영향을 끼치는데 말과 함께 음악과 노래를 사용해서 안 될 이유는 또 뭔가?

 

     그리고 저자의 말과는 달리 우리는 살면서 중요한 것은 노래로 다 배웠다. 유치원을 가면 서로 도와야 하며, 사랑해야 하고, 길은 횡단보도로 건너고, 양보하고, 효도하고, 성실해야 한다는 내용들을 다 노래로 배운다. 유대인들은 쉐마라고 불리는 신명기의 성경구절을 노래로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시편을 노래로 암기하며, 초대 기독교 공동체에서도 복음의 핵심적인 내용들을 일종의 노래로 만들어 불렀다.(예컨대 빌 2:1-12 같은)

 

     물론 오늘날 예배에 사용되는 음악들이 이런 복음의 내용을 제대로 담지 못하고 있다는 저자의 지적에는 백번 공감한다. 그런 노래들을 예배시간에 사용하는 것은 지양해야 하고, 정말 엉뚱한 내용을 담고 있는 노래들이라면 그 외의 시간에도 부르지 않는 게 옳다. 그런데 저자의 좀 과격한 입장에는 ‘록’이라는 음악 장르에 대한 비판적 견해가 좀 많은 영향을 끼친 것 같다. 흥미롭게도 저자는 ‘음악은 그저 음악일 뿐’이라고 하면서 그 자체에 선하고 악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47) F단조는 악하고 C장조는 선하다고도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동일한 사람이 몇 장 뒤에 가서는 특정한 비트와 코드 패턴, 그리고 큰 소리(저자가 말하는 록의 특성들이다)에는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부정적인 영향’(57)은 그것을 듣는 이들이 반복해서 찾게 된다는 것 말고 별다른 것이 제시되지 않는다.(아, 청력에 문제를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있긴 하다) 심지어 저자는 ‘음악은 그냥 음악일 뿐이다’라는 주장에 다시 문제를 제기하면서 ‘도와 솔은 중립적이지만 이런 음계가 합쳐져서 화성을 만들고 리듬을 이루고 멜로디가 더해지면 더 이상 음악은 중립적이지 않다’고 말한다.(99) 앞서의 논리와는 모순되는 주장이다.

 

     이 책에서는 록이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 매우 대략적으로 특정한 호르몬의 분비를 촉진시켜 일종의 중독상태를 일으킨다는 식으로 설명되어 있는데, 여전히 이 부분에 관해서는 충분한 의학적 연구 결과가 없는 것으로 안다. 참고로 프랭크 갤럭 등이 쓴『위험에 처한 교회음악』이라는 책에서도 비슷한 우려를 더 상세하게 표하고 있지만, 이 책처럼 주관적인 느낌과 경고 수준을 넘어서지는 못한다.

 

     요컨대 이 록이라는 특정한 음악 형식이 주는 메시지가 얼마나 강한지 거기에 어떤 거룩한 가사가 붙어 있더라도 그것을 무효화시킬 수 있다는 저자의 견해(113)는 주관적 견해를 일반화하고 있는 듯하다. 결과적으로 이 세상의 어떤 부분(록과 같은)은 악하다는 식의 이원론적 세계관을 주장하는 건 아닌가. 그건 성경적인가?

 

     이 외에도 2장의 ‘CCM 옹호론에 대한 반론’은 저자가 잘 만들어 놓은 허수아비 때리기에 그치고 있고,(거기 나오는 상대방처럼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위로와 격려, 축복을 주제로 하는 노래들에 대한 비판의 일환으로 복음을 나쁜 소식으로, 그래서 예배 음악에는 죄에 대한 강조만이 강하게 드러나야 하는 것처럼 주장하는 부분(143-144)은 하나님이 하신 일들마다가 경외와 감탄으로 기쁘게 노래했던 구약과 신약의 전통과도 어긋나 보인다. 성경 어디에도 기독교인들/하나님의 백성들을 집단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처럼 그리고 있는 부분은 없다.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 안에서 자신들을 새롭게 발견하고,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기뻐하며 서로를 축복하는 이들이 아닌가.

 

 

     문제는 예배 음악을 엉뚱하게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있다. 감정적 충동을 성령의 은혜라고 가르치는, 감정만 뜨거워지면 그게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선 것이나 그분을 바르게 예배한 것이라고 설명하는, 감정을 고조시키기 위한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찬양인도자들이 문제 아닌가. 여기에 인격적으로 그분을 만나기 위해 성경을 읽고 깊은 기도를 하기보다는 컵라면 끓이듯 손쉽게 노래를 듣고 있으면 저절로 거룩해지는 것인 양 착각하는 게으른 신자들도 문제가 있고. 근본적인 원인은 교회를 좀 더 잘 팔리는 상품으로 만들려는 욕심, 그래서 사람들을 모이게 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할 자세가 되어있는, 준비되지 않은 목회자들일 거고. 이런 차원에 이 책은 전작인 ‘마케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와 거의 같은 주제를 공유하는 부록에 가깝다. 주제의 발전에 딱히 눈에 띄지 않는다(물론 이 말이 이 책이 나쁘다거나 가치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아쉽다. 세 번째 책에 대한 과도한 부담감이, 이 시리즈에 속한 앞서 두 권의 책과 비교해 이 책을 가장 덜 논리적이고 쫓기는 듯한 느낌을 주도록 만든 게 아닌가 싶다. 어쩌면 이 주제에 관해 저자 자신이 ‘잘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개인적 경험’(26)들을 자주 삽입했기에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짤막한 글이라도 자주 써 본 사람이라면, 잘 안다고 생각하는 이야기일수록 생각보다 잘 쓰기는 힘들다는 데 공감을 표할 것이다) 주관적 신앙 경험과 견해를 일반화하기 위해선 좀 더 조심스럽고 폭넓은 연구 과정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엔 곱씹어 볼만한 내용들이 많으니, 차분히 읽어본다면 후회하진 않을 것이다.

 



p*********n 2011.10.01.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그리스도인의 옷, 찬양
"그리스도인의 옷, 찬양" 내용보기
분명 책의 내용이찬양을 통해 감동을 많이 받는 나 같은 교인에게는 편치 않은 주제이다.말씀과 예배보다 찬양예배를 통해 더 충만함을 느끼면서도신앙생활을 해 오는 동안 전혀 문제를 느끼지 못했다.지나치게 감성적인 삶의 모습이 신앙생활에 전반적으로 깊이 스며있음을 깨닫게 해준 책이다.또한 지적과 충고가 믿음없음과 동일시되는 현재 교회에서점점 균형을 잃어가는 예배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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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책의 내용이
찬양을 통해 감동을 많이 받는 나 같은 교인에게는 편치 않은 주제이다.
말씀과 예배보다 찬양예배를 통해 더 충만함을 느끼면서도
신앙생활을 해 오는 동안 전혀 문제를 느끼지 못했다.
지나치게 감성적인 삶의 모습이 신앙생활에 전반적으로 깊이 스며있음을 깨닫게 해준 책이다.
또한 지적과 충고가 믿음없음과 동일시되는 현재 교회에서
점점 균형을 잃어가는 예배의 모습이 이렇게 적나라하게 표현되는 책을 읽게 되어 감사하다.

현재를 살아가는 나에게
현재의 모습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아가는 나에게는,
이 책을 통해 만나게 되는 시대적인 찬송의 특징과
하나님을 섬기는 다양한 시대의 사람들의 모습이 새롭고 신기하다.

시대적인 특성을 유행으로 받아들이게되고 그러다보면 늘 전통과 대립하게 되니
나같은 흑백주의자에게는 늘 전통과 유행 둘만 남게 된다.
전통과 유행 둘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고 느껴질때면
나에게 편하게 느껴지는 것에 점수를 더 주게 되고 더 옹호함으로
그것을 옳은 것으로 주장하게 되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가 아닌,
사람이 좋아하는 예배, 사람이 편하게 느끼는 예배로 변해간 건 아닌지
이 책을 통해 스스로에게 묻게 됐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찬양이 나를 위한, 나를 위로하며 사랑하자 고백하는
자기 고백적인 찬양이 주를 이루었음을 알게되었고,
오래전 찬송가들이 왜 그렇게 은혜로운지도 새삼 알게됐다.

아직까지는 어딘가 초보자의 글솜씨가 느껴지는 신선한 느낌의 글이다.
세련된 느낌은 부족하지만 넘치는 열정이 느껴지는 옥성호씨의 책을 두권째 읽으며
저자의 날카로운 비판의식과 많은 연구를 통한 결론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책 말미에 나오는 저자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어느 공동체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견제와 균형이 필수적이고
대안을 발견하기위한 비판과 지적은 분명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어느곳에서도 잘 쓰이지 않는 말이 어쩌면 교인들 사이에서 쓰이는 건 아닌지...
 '좋은 게 좋은 것이다'라는.

이 책의 모든 부분에 대해 전적으로 공감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깊이 고민하고 결단해야 할 부분이 많음을 느낀다.
스스로의 신앙생활을 점검하게 하고 문제제기를 하게 하는 책이다.
찬양 사역자와 성가대장을 맡고 있는 직분자들이 꼭 읽었으면 좋겠다.

어떤 목사님의 말씀을 통해 들었다.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양식이요,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호흡이요,
찬양은 그리스도인의 옷이라고.

내가 좋아하는, 내 맘에 드는 옷이 아닌,
하나님이 기뻐하실 옷을 입고 싶다.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보실 옷을.

 

m*****j 2011.04.07.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엔터테인먼트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엔터테인먼트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내용보기
부족한 기독교 시리즈 3부작 중 마지막 권이 출간되었다. 저자는 , 1부에서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를 , 2부에서는 [마케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를 논했었다. 그리고 마지막 3부에서는 , [엔터테인먼트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에 대한 이야기를 마련하였다. 일단 이 책의 핵심 주제는 우리가 흔히 찬양 예배 때 부르는 'CCM' 이 과연 교회 음악으로서 적합한 것인지 ,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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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기독교 시리즈 3부작 중 마지막 권이 출간되었다.

 

저자는 , 1부에서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를 , 2부에서는 [마케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를 논했었다. 그리고 마지막 3부에서는 , [엔터테인먼트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에 대한 이야기를 마련하였다.

 

일단 이 책의 핵심 주제는 우리가 흔히 찬양 예배 때 부르는 'CCM' 이 과연 교회 음악으로서 적합한 것인지 , 그리고 그렇지 않다면 그 문제점은 무엇인지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더 나아가 , 성경적으로 바른 찬양은 무엇이며 , 바른 예배는 무엇인지 , 그리고 우리는 어떤 자세로 그 예배에 임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자세히 다루고 있다.

 

사실 , 이 저자의 3부작 책들은 , 꽤나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는 부분이 많다.

 

뭔가 , 핵심적이고 바른 교리들이 잘 녹아져 있고 이 책 속에서 그러한 부분들이 언급될 때가 많아서 바른 신앙을 회복하는데 일견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 그에 반해 뭔가 주장을 끌어 나가는 스타일이 체계적이지 못하고 , 허술해 보이는 부분들도 종종 보인다.

 

하지만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한 번쯤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 한국 기독교과 '인본주의 심리학' , '마케팅' , '엔터테인먼트' 로부터 부정적인 영향을 받은 부분이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부분이 있을 수도 있음을 ..... 그러한 여지는 남겨 두는 게 좋을 것 같다. 그 모든 영역을 전면 거부하는 극단주의자의 견해를 이 책의 저자는 지니고 있는 것 같은데 , 그게 과연 진정 지혜롭고 바른 길일지는 의문이다.)

 

그래서 , 이 책에서 이야기 하는 요즘 히트를 치고 있는 CCM 에 대한 비판적인 고찰을 들어 보는 것은 상당히 신선한 느낌을 가져다 줄 것이다.

 

이렇게 'CCM' 만을 화두로 하여 쓰여진 비판서가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 , 이 속에서 우리는 기존의 찬양 예배를 돌아 보고 너무 '콘서트 화' 되어 버린 우리들의 '예배' 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찬양의 문제점' 을 통해 , 더 나아가 '예배의 문제점' 까지 파고들면서 , '예배의 본질' , '진정한 예배' 에 대한 고민들도 많이 다루고 있다.

 

사실 , 이 저자는 체험이 많다. 그래서 어린 시절 교회 수련회 등을 다녀 보면 흔하게 경험할 수 있는 '광란?의 밤' , '결단의 시간' 등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이다. 그리고 , 그러한 분위기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 거침 없는 말투로 그러한 문제점들을 지적해 내고 , 다양한 비유를 사용함으로써 이해를 돕고 있다.

 

그래서 책 자체는 지루하지 않고 ,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때론 고개를 끄덕거리며 , 동의하기도 하고 때로는 머리를 갸우뚱 거리며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이 책의 저자의 말마따나 , '생명 주께 있네' , '지금은 엘리야 때처럼' , 등의 찬양들이 굉장히 문제가 많은 찬양이라면 , 수 많은 교회들은 충격에 휩싸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저자의 이러한 논리는 , 자신이 주장하고자 하는 '진정한 예배' , '참다운 교회의 모습' , '찬양의 위치' 등을 전면에 내세우기 위해 , 반대편에 서 있어 보이는 모든 것들을 다 무너 뜨리려고 하다 보니 , 필연적으로 극단적인 모양새를 띄게 된 건 아닌지 조심스레 예측해 본다.(그러한 찬양 속에는 성령님의 임재가 없고 , 그 찬양이 문제 투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게 아직도 신기하다.)

 

하지만 , 저자가 말하는 '본질적인 부분들' 은 꽤나 동의가 되고 , 공감이 되는 부분이 많다.

 

그리고 , 분명 모든 부분을 설명해 낼 수는 없지만 , 우리가 분위기에 취해서 , 음악에 취해서 '성령님의 임재' 를 잊고 살아가는 경우들이 많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들에 대한 '주의 환기' 로서는 최고의 책이 아닐까 싶다.

 

비판적으로 읽되 , 귀한 지식이 담겨 있음에 또한 동의하여 우리도 또한 극단적 사고의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YES마니아 : 로얄 p*****5 2019.01.0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