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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엔 2차 세계대전 당시에 '홀로코스트'를 당한 유대민족에 대한 불쌍한 마음을 가졌더랬다. 나 어릴 적만해도 '이스라엘'은 식민지 조선과 같은 억압과 수탈, 그리고 학살을 당한 '동병상련'을 가진 국가였기에 그들의 아픔이 곧 나의 아픔과 같은 느낌마저 들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렇게 배웠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그들'이 모진 고난의 세월을 이겨내고 '자신들의 국가'를 세운 것에 대해서 배울 점이 많다고 말씀하시곤 하였다. 그리고 <탈무드>는 꼭 읽어야 하는 '필독서'의 반열에 올려놓고,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책이라는 수식어도 함께 주입시켜주곤 하셨다.
그러나 커서 '이스라엘'을 바라보니, 마냥 달가운 나라만은 아니었다. 로마제국의 핍박을 받고 '디아스포라'를 당한 것에 대한 해석도 참으로 다양하다는 것에 새삼 놀랐고,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예루살렘'에 자신들의 국가를 세운 앞뒤 맥락도 그닥 떳떳하지 못한 방법이었다는 것에 의구심만 깊어 갔으며, 오늘날에 '중동지역'의 평화를 해치는 장본인이라는 현실을 마주할 때면 '분노'마저 치밀어 오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지금의 이스라엘은 더이상 '희생자 코스프레'를 해서는 안 되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현재에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저지르는 만행을 계속 한다면 말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탈무드>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더랬다. 그들의 지혜는 그들이 겪은 고난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과 그럼에도 현재 이스라엘이 저지르는 '자국이기주의'적인 행보를 어떻게 '균형'있게 가르칠 수 있을지 말이다. 과거의 사실만 가르친다면 결국 나와 같은 고민에 빠져버리고 말테고, 현재의 사실을 중점적으로 가르치기에는 <탈무드>가 내포한 의미들과 서로 상충할테니 말이다. 그래도 결심을 내렸다. '있는 그대로'를 가르치자고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이러한 역사를 거쳐서 지금 이러고저러고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탈무드>에 담겨 있는 '참지혜'만을 쏙쏙 뽑아내고 그들의 '안 좋은 면모'는 걸러내도록 가르치려 한다.
그렇다면 <탈무드> 속에서 배울만한 점은 무엇일까? 이런 내용들은 이미 우리네 '교과서' 속에서도 잘 추려져 있다. '우애 좋은 형제' 이야기나 '공주의 병을 고친 삼형제' 이야기는 국어 수업시간에 '교과서지문'으로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굴뚝 청소하는 아이'나 '지구본이 기울어진 이유'와 같은 우스개 섞인 이야기도 모두 <탈무드>에서 만날 수 있는 익숙한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들의 교훈은 욕심 부리지 말고 남에게 베풀며 사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후회할 짓을 하고 살면 안 된다는 교훈 또한 강조하고 있어서 배울 점이 많은 이야기들이다. 더구나 '솔로몬의 판결'에서는 아기의 진짜 어머니를 찾는 과정을 살피며 '인간의 행동'을 엿보며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배울 수도 있다. 이처럼 <탈무드>는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될 만큼 뛰어난 책임에 틀림없다.
한 유대인이 경찰서에 와서 호소했다. "어떤 사기꾼이 우리 회사의 수금 사원이라고 속이고 다니면서 우리 회사의 거래처 이곳저곳에서10만 프랑이나 되는 돈을 수금해 도망쳤습니다. 10만 프랑이면 우리 수금 사원 열 명이 뛰어다니면서 수금해도 좀처럼 걷을 수 없는 큰돈입니다. 어서그 사나이를 잡아 주십시오." 경찰관이 친절하게 말했다. "염려 마십시오. 그 사기꾼을 꼭 잡아서 감옥에 넣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유대인이 펄쩍 뛰며 외쳤다. "감옥에 넣다니, 그건 안 될 말입니다. 나는 그 유능한 사람을 우리 회사의 수금 사원으로 채용할 생각이거든요." (164쪽, <유능한 수금사원> 편)
그런데 <탈무드>에는 좋은 지혜만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유대인들은 '돈'에 대한 집착이 남다르다는 생각밖에 할 수 없는 '나쁜 지혜'도 함께 담겨 있다. 셰익스피어의 소설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샤일록이 '악덕 고리대금업자'로 등장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나 어릴 적에는 이 작품을 읽고 유대인을 함부로 매도하는 셰익스피어를 나쁜 작가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다른 민족이 유대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딱 그정도라는 사실을 커서 깨닫게 된 셈이다. 아닌 게 아니라 <탈무드> 속에는 이런 유대인들의 '집착'이 남다르다는 내용을 곧잘 접할 수 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많다. 로마제국에 의해 '강제 이주(디아스포라)'를 당하고 집도 땅도 없이 떠돌아다녀야 하는 유대인으로서 어쩔 수 없이 '생계형 고리대금업자'가 될 수밖에 없었고, 그 때문에 주변 '기독교인'들에게 탄압과 무시를 받아서 생겼기 때문에 마냥 '유대인의 잘못'이라고 탓할 수만은 없다고 해명하기도 한다. 십분 공감이 가는 해명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유대인은 어떤가? 과거의 고난을 교훈 삼아서 '가난한 이웃나라'에 배려를 하며 그들의 지혜를 나누어 인류 공영에 이바지 하고 있는가? 난 이 지점에서 꽉 막히고 만다. 마치 2000년 동안이나 받은 고통에 응당한 대가인듯이 주변국에 해코지를 하고 있는 이 현실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종교 갈등' 등 다른 이유를 찾아보려고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난 이런 현상을 '유대인의 고집'이라고 가르치려고 한다. 고집스러움은 어떤 고통과 고난이 닥쳐도 이겨낼 수 있는 마지막 보루가 될 수 있지만 고난 끝에 찾아온 풍요로움과 행복을 이루었다면 '고집스러움'을 내려놓을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리고 오직 자신만이 옳고 다른 사람은 그르다는 '배타주의'는 절대로 있어선 안 된다고 가르치려 한다. 유대교는 자신들만이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선민의식'이 강한 종교이다. 그래서 타 종교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자신들만이 '절대선'이라는 그릇된 가치관을 갖게 만들기 때문에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도 가르치려 한다. 내 종교(신념)가 중요하면 다른 종교(신념)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기본'을 가르치며 마무리하련다.
<탈무드>에서 배울 수 있는 지혜 가운데 '내가 소중하듯 남도 소중히 여겨라'는 없는걸까? 분명히 있을 것으로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