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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여 년 전, 신학생이던 나에게.. 교회 전도사님께서 본인이 보시던 성서원에서 나온 칼빈 주석을 한질 선물해 주셨었다.. 솔직히 당시에는 주석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고.. 그래서 책장 한 켠에 처박아 두었었는데.. 오랜 기간 꺼내 보질 않아 여기저기 곰팡이가 피었고..바퀴벌레의 흔적들이 있었다.. 한참 다른 주석들에 관심을 갖고 구입하던 시기라..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 책들을 헌책방에 내다 팔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어이없는 행동이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아무리 무식해도 그렇지 목회의 길을 갈 사람이.. 감히 '칼빈주석'을 내다 팔다니..부끄럽기 그지 없다..
이 책은 칼빈주석의 영문판을 번역한 것으로.. 칼빈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T.H. 파커의 책을 현대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하였다고 한다.. 타 출판사에서 칼빈주석을 번역한다는 소식을 듣고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는데.. 뜬금없이 규장에서 칼빈주석이 출간되었다고 한다..좋은 책을 빨리 만날 수 있어서 반가웠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다른 주석들과는 조금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성경 원어에 대한 의미를 학문적인 것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설명위주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한 편의 설교를 듣는 것과 같고.. 성경의 문장, 구절 하나 하나를 세밀하게 설명해 주고 있기 때문에.. 성경의 내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어떻게 보면 후대의 성경학자들은 칼빈의 연구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음에 틀림없다.. 칼빈의 노력과 말씀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하여 보다 세분화된 노력들이.. 오늘날 성경을 연구하고 배우는 사람들로 하여금 균형잡힌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안내해 주고 그것을 토대로 올바른 신앙적용을 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특별히 요한복음 1장에서 9장까지 정리한 칼빈의 요한복음 주석은.. 복음에 대한 적극적인 수호를 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해서, 복음에 대해서 확신을 갖지 못하는 초신자들이나.. 요한복음을 읽고 그에 대한 깊이 있는 가르침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유익한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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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칼빈 주석 - 서평 (규장 칼빈 주석 시리즈 신약 4) 지금 서평자가 다니는 신학대학원의 신학적 토대는 바로 칼빈신학이다. 그것을 다른 표현으로 개혁신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517년 마틴 루터를 시작으로 종교개혁이 이루어 졌다면 성경적인 개혁신학을 집대성한 이가 바로 칼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기독교의 초석을 놓은 인물로 칼빈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로, 제네바에서 목회를 잘 감당한 목회자로, 그리고 기독교 강요를 통해서 성경을 쉽고 정확하게 가르치는 교사로 그리고 성경의 내용을 주석한 성경학자로 한평생 귀하게 주님의 쓰임을 받은 인물이다. 기독교 강요와 함께 성경을 연구함에 있어서 기독교 최고의 주석 그 중심에 ‘칼빈 주석’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의 특징은 요한복음의 말씀을 성경 전체의 시각으로(tota scriatura)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도움이 된다. 즉 칼빈은 무엇보다 조직적인 성경 이해를 바탕으로 성경의 한권 한권의 말씀을 주석해 나간다. 우리가 흔히 코끼리의 비유와 같이 다리만 만지고서 기둥이라고, 코만 만지고서 호스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근시안적 잘못된 시각을 가질 수 있다. 그것은 성경 이해에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칼빈은 성경 전체의 종합적인 시각으로 각 권의 말씀을 이해하기 때문에 이런 오류를 막아주는데 귀한 내용을 제공받을 수 있다. 또한 칼빈 당시 세워진 귀한 교리들을 소개받을 수 있으며 목회적인 관점으로 성도의 유익을 위한 적용을 제시한다. 우리는 학자적인 관점으로 지적인 이해에서 머무르는 주석들을 적지 않게 보게 된다. 하지만 칼빈은 목회자요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요 성경학자로 우리의 삶과 관계된 주석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의 절대주권(칼빈 신학의 결정체) 사상을 통해 인간의 죄성과 그 안에의 구원을 설명하는 주님의 은혜와 절대적인 구원 섭리를 설명한다. 그것을 통해 인간의 노력과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할 수 있는 가르침을 준다. 특별이 요한복음 주석은 예수그리스도의 성육신을 가장 먼저 소개함으로 말씀의 근원되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심은 우리의 구원을 향한 사랑이라는 복음으로 1장을 시작한다. 이 책을 통해 칼빈을 소개함에 있어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택하신 그릇이 사도 바울이었다면, 계시의 암흑시대인 중세에 하나님 말씀에 밝은 빛을 비추기 위해 하나님이 선택하신 그릇이 칼빈이었다”는 표현은 참으로 귀한 표현이다. 종교개혁의 3대 주제는 바로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말씀이다. 이 시대는 성경을 성경으로 보지 않는 인간의 문서로 보는 시대 속에 살고 있다. 점점 성경말씀의 권위는 땅에 떨어져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경을 보지 않는 가운데 복음주의자들이 ‘성경의 완전 축자영감’을 신학적 주요 명제로 주창해봐야 무슨 소용이 없는 것 같아서 말씀의 암흑기가 바로 지금의 시대속에 다시 찾아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칼빈 주석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 되게 하는 주석을 볼 수 있으며, 완전 축자영감 된 성경답게 해석하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게 된다. 성경을 볼 수 있는 바른 접근에 있어서 어학의 도움은 성경의 헬라어 히브리어에 대한 이해, 그리고 교부들의 글(라틴어)을 통한 성경 이해의 바탕을 통해 성경을 바르게 볼 수 있는 능력이 된다. 그런 면에서 칼빈은 언어와 어학에 능통하여 수많은 문헌을 기초로 성경이해와 주석작업을 해나간다. 칼빈의 주석은 교회를 세우는 말씀의 든든한 기초를 제공해주고 있다. 자신의 건강을 어떤 면에서는 해치기까지 하는 수고와 열심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 칼빈주석의 특징이다. 그렇기에 받아 보는 저자들에게는 칼빈의 생명력이 심어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이 책은 심오한 성경 속에 보화를 발견하게 도와준다. 비록 방대한 내용과 천년의 간극을 통한 어휘사용과 그에 따른 이해의 어려움을 고백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한 장 한 장 넘기는 속에 귀중한 성경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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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에 오면서 지금까지 칼빈 주석을 항상 소장하고 싶었다. 하지만 절판이 되어서 새책으로는 구입할 수도 없었고 또 중고서적에도 잘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영어 원서도 생각을 했지만 나의 짧은 영어 실력으로 그것을 구입하기에는 무리였다.
그런데 이번에 규장에서 칼빈 주석 시리즈를 다시 오늘의 시대에 맞게 다시 내놓는다고 해서 너무나 감사했고 기뻤다. 그 누구보다도 열정적인 신학자이면서 목회자였던 칼빈 주석의 재 등장은 분명히 오늘의 목회자들에게 너무나도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칼빈 주석은 그 시대를 반영한 주석(교황권에 반대해서 성경적 근거로 비판한 주석)이지만 또한 그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날에도 적용할 수 있는 탁월한 내용을 담고 있다. 책을 번역 편집한 오광만 교수(이하 편집자)는 칼빈의 요한복음 주석의 특징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칼빈의 요한복음 주석에서 시종일관 느껴지는 것은 복음 수호와 복음변증에 대한 칼빈의 열심이다... 공관복음과는 다른 요한복음의 독특한 관점을 존중하면서 칼빈은 이런 신학적 해석을 우려내고 있다.”(p. 8,9) 편집자는 요한복음 주석을 가장 먼저 번역한 것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칼빈 자신이 공관복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그리스도에 대해 알고 싶다면, 먼저 요한복음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배워야 한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p.9) 이 책은 요한복음 1장에서 9장까지의 주석이다. 이 책을 읽으면 그 당시에 활동했던 이단들이나 교황권의 횡포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 주석서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칼빈은 원문해석과 더불어 교부들의 다양한 해석들과 고대 그리스 로마 문헌의 다채로운 인용을 잘 실어서 우리의 이해를 잘 돕고 있다. 먼저 요 1:1-5절의 주석에서 칼빈은 세르베투스에 대항하여 이렇게 주석하고 있다. “누구보다도 교만하고 무가치한 인간인 세르베투스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일에 개입하셨을 때에야 비로소 영원한 말씀이 존재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마치 하나님께서 눈에 보이게 일하심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알리시기 전에는 그분이 존재하지 않으셨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요한복음 기자는 여기에서 세르베투스와 전혀 다르게 가르친다. 즉, 요한은 말씀이 시간 창조와 더불어 존재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요한은 말씀이 태초부터 존재했다고 말함으로써 그 말씀이 모든 시간을 초월하고 계심을 주장한다.”(p. 22) 칼빈은 하나님의 무한한 선함과 긍휼을 잘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칼빈의 의도를 읽어내기 위해서는 정말 믿음이 요구된다. 38년 된 병자의 사건에 대해서 칼빈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먼저 4절의 물의 동함에 대해서 다른 주석들은 물의 동함이 실제로 가능한가아닌가에 집중한 반면 칼빈은 본문 그대로를 받아서 하나님의 섭리로 이해한다. “물이 움직인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어떤 물체들을 자유롭게 사용하시며, 그 일의 결과에 대해 그분 스스로가 인정을 받으셔야 한다는 명백한 증거이다.”(p. 221) 7절의 주석에 대해서 칼빈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더욱이 이 사례에서 우리는 인내를 배워야 한다. 38년은 꽤 오랜 시간이다. 그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는 이 가련한 사람에게 자신의 복을 내리지 않으시고 도움 베풀기를 미루셨다. 그러나 사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그 사람에게 복을 주시기로 결정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무리 오랫동안 기다리게 하실지라도 우리는 고난을 받아 괴로움에 신음하면서도 기다림에 지쳐 탈진하는 말아야 한다. 우리의 만성적인 고난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일지라도, 우리 하나님께서 그 능력으로 모든 장애를 쉽게 제거하시는 놀라운 구원자이심을 늘 믿어야 한다.”(p. 222,223)
칼빈 주석의 특징을 또 한군데서 찾아볼 수 있는 대목은 바로 우물가의 여인 본문이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 그 목적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는 예수님에 대해서 칼빈은 4장 7절에서 이렇게 주석하고 있다. “주님은 갈증을 해소하고자 하는 자신의 필요보다 먼거 그 여자의 구원에 관심을 두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은 자신이 목마르다는 사실을 잊은 채, 눈에 보이는 물과 영적인 물 사이의 유비를 사용하여 자신에게 물 한 잔 주기를 거절한 그 여자의 마음에 하늘에 속한 복음으로 생수를 공급하셨다.”(p. 170)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목마름)을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그분의 영혼 사람에 대한 신적인 본성을 너무나도 잘 표현한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칼빈의 주석은 학문적이지만 또한 목회적이라 지금 우리 삶에서 적용하기에도 좋은 책이다. 계속해서 나올 주석서에 대한 기대가 크다.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서 살았던 신학자이면서 목회자 칼빈의 목소리가 다시 이 시대에 살아 들려오는 듯 하다. 칼빈이 살았던 시대처럼 우리 시대에도 개혁이 필요한 것 같다. 칼빈이 부르짖었던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국 교회에 울려 퍼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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