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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역자가 후기에서 품었던 논픽션에 대한 의심은 나도 충분히 가지게 된다. 과연 그 주체가 이야기 속의 우고 디폰테인지 (그가 자신의 출생에 비밀에 대한 꿈은 정말 기발하여서, 읽는 도중에 '정말? 와~'하다가 구라라는 부분에서 완전 뒤로 넘어가게 웃었는데, 그런 솜씨라면 충분히 이야기를 만들고도 남을 듯 싶다), 아니면 아주 우연한 계기로 죽은남자로부터 고서본을 얻은 피어 엘블링인지가 더 궁금할 따름이다. ![]() ![]() (흥미롭게도 표지가 두 종류인데, 저자를 피터 엘블링으로 한 것과 우고 디폰테로 했다. 후자는 the story of my incredible life란 부제를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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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외출을 거의 안하는 관계로 베텔스만북클럽에서 추천도서로 내게 보내준 것이다. 카탈로그에 소개된 글을 보고도 재미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읽어보니 역시 괜찮았다. 중세시대의 이탈리아에 어느 시골 마을을 무대로 잔혹하고 난폭한 영주의 시식시종이 된 주인공 우고 디폰테의 자서전적 소설이다. 시식시종을 모든 영주가 둔 것은 아니란다. 결국 음식 때문에 독살을 우려한 영주만 시식시종을 둔 것이니 이것은 스스로 주변에 적이 많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 주인공 우고 디폰테는 유일하게 사랑해 주던 어머니를 잃고, 자신을 탐탁하지 않게 여기는 아버지와 형의 곁을 떠나 인생을 개척해 나간다. 거기서 아내를 얻지만 아름답고 착한 아내는, 아내를 쏙 빼닮은 아름다운 딸을 남기고 죽는다. 우고는 그 딸과 함께 우연한 일로 영주의 시식시종이 되고, 하루하루 살얼음판 같은 삶을 살아간다. 죽을 고비도 넘기고, 또 한 번의 사랑도 경험하고, 딸 때문에 영주의 장인이 될 뻔도 하면서 다채롭고 파란만장한 인생을 경험한다. 우고 디폰테는 삶을 사랑하고, 위험한 순간에는 재치로 위기를 모면하고, 어떤 순간에도 유머와 희망을 잃지 않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다. 시종일관 긴장감이 돌면서도 웃음이 끊이지 않는 참 재미있고, 독특한 작품이었다. 한 가지 의문은 이 책의 후기에도 씌어져 있지만, 이게 과연 실제 우고 디폰테라는 인물의 자서전 일까, 아니면 옮긴이(영역자)라고 되어 있는 피터 엘블링이 자신이 쓴 소설에 사실감을 주기 위해 꾸민 일일까이다. 어쨌든 이 책이 실제 인물의 자서전이든, 지어낸 소설이든 이미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책 속의 인물은 생생하게 살아있고, 내용도 박진감있게 전개되기에 누구라도 단숨에 빠져들어 순간순간 웃으며 중세의 한 시골로 여행을 떠나는 기분에 젖을 수 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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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떤 책에서 '새해 첫날의 행위가 그 한 해의 전체 행로를 좌우한다'는 속설에 대해 쓴 부분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뒤로는 새해 첫날 무슨 생각을 하며 무엇을 할 것인지 나도 모르게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젊은 시절 극단의 프롬프터로 일하고 있던 셰익스피어가 어느 해 새해 첫날, 올 해에는 꼭 주연급 연기자가 되어야지 하는 소망을 가지고 텅 빈 무대에서 혼자 연극을 했다는 예화가 어김없이 머리 속에서 떠오르면서 말이다.
그래서 올 갑신년 첫날에는 무엇을 하면서 보낼까 하다가 결국엔 지난 해와 똑같이 하루 종일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 물론 새해 첫날의 독서가 올 한해 전체 독서의 양과 질을 결정할지 모른다는 징크스 아닌 징크스 때문에 오랜 시간 심사숙고 끝에 책을 선택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인터넷의 신간 소개 코너에서 이 책의 제목을 발견한 순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너무나 간단히 이 책으로 낙점을 해 버렸다.
'시식시종'이란 범상치 않은 제목이 서양 중세시대에 대해 막연한 관심과 흥미를 가지고 있는 나의 취향을 자극했던 것이다. 우선 '시종'이라는 단어에서 이 책이 중세 봉건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엿볼 수 있는 책일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했다. 다음으로 '시종'을 수식하고 있는 '시식'이라는 단어 또한 예사롭지 않게 보였다. 그냥 시종도 아니고 시식시종을 두어야 할 영주라면 어떤 이유에서든 생명의 위협을 끊임없이 받고 있는 인물일 테고, 그렇다면 영주를 죽이려는 무리들의 암살 음모와 그러한 위기를 매번 슬기롭게 극복하는 주인공의 활약상이 그려질 거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시식시종이 중간에 죽는다면 그건 소설이 아니라 논픽션이 되어야 할 테니 우리의 주인공은 결코 독이 든 음식을 먹고 비참하게 죽는 일 같은 건 없을 것이고, 결말이 비극적으로 끝나는 소설은 읽지 않으려는 나 나름의 소설 선별 기준도 만족시켜 줄 거라는 최종판단까지 순식간에 내리고 만 것이다.
내 나름의 이러한 예측들은 대부분 맞아 떨어졌다. 중세의 농민들은 매우 비참한 생활을 하였고 생사여탈권 자체가 영주에게 달려 있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우고 디폰테도 원래는 평범한 농민이었으나 하루 아침에 폭군 페데리코 영주에게 붙들려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시식시종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소설은 하층민의 가난하고 고달픈 삶과 사치와 연락으로 가득한 상류층의 삶을 극명한 대비로 보여주고 있는데 여기에는 아무 거리낌없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버리는 저자 특유의 문체가 힘을 발휘한다. 이런 문체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 책을 단숨에, 정확히 말하자면 6시간 만에 읽을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페데리코 영주가 역설적이게도 자기가 고용한 시식시종에게 살해당하기 전까지 그를 죽이려는 암살 기도가 반복되면서 초반의 팽팽한 긴장감이 후반부까지 그대로 이어지는데 이 점 또한 이 책이 지닌 미덕 이라고 하겠다.
내가 미처 예상치 못한 것이 있다면 이 책은 상당히 배가 고파지는 책이라는 것이다. 어찌나 많은 요리와 그 요리를 만드는 세세한 레시피가 등장하는지……혹시 이 책의 저자가 부업으로 음식점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쨌든 2004년 첫날의 나의 선택은 아주 만족스러웠고 덕분에 올 한해는 이 책처럼 재미나고 흥미진진한 소설들을 많이 읽게 될 것 같다. [인상깊은구절] 거울을 보니, 그 속에는 피렌체나 베네치아에 팔라초를 가지고 있음직한 정신이 서 있었다. 한때는 죽음을 두려워했지만, 죽음과 맞서면서 삶의 목적을 발견했기에 더 이상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런 남자가 서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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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난 처음에 이 책이 무협지인줄 알고 봤다. '오오. 식인마의 이야기인가!?' 또는 '오오, 사령술계통인가봐, 배교 쪽인감!?' 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푸드 테이스터. 독을 감별하기 위해 먼저 음식을 맛보는 시종의 이야기였다. ... 그런데 내용은 거의 무협 수준의 격렬함이 살아있었다. 매일 매일 2번의 죽음과 마주하는 직업, 그것이 바로 시식시종.
이 책은 기괴한 경로-작가의 말이 진실이라는 조건 하에서-를 통해 출판되었다. 이 책을 영역한 역자는 이 책을 옛날 이탈리아에서 만난 같은 건물에 사는 허풍선이 남자에게 자신이 가진 것은 많지만 가장 귀한 것은 딱 하나다. 라고 하는 말을 언제나 듣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이 남자가 죽게되고, 정말 그 귀하다고 하던 하나를 역자에게 남겨주라고 했는데 그것은 아주 오래된 이탈리아어 도서였다. 당연히 가짜라고 생각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역자는 미국의 도서감정가들에게 진위를 물었고 정말 놀랍게도 그 책은 '진짜'였으며 감정가들은 돈을 줄테니 책을 판매하라는 권유까지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탈리아어에 조예가 있던 역자는 틈틈이 이 책을 번역했고, 드디어 이책이 나온 것이다. 그렇다, 이 책이 정말 진실이라면 이 것은 중세 이탈리아에 살았던 한 시식시종의 생존록이다. 왜냐하면 주인공과 저자가 같으니까. 그리고 역자는 단지 역자로 남기를 원했다. 그래서 이 책은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는 스토리다. 출판되는 뒷 배경부터가 이미 소설이다.
그리고 이 책은 시식시종이라는 직업과 하인이라는 직업, 그리고 중세 이탈리아의 권력자들이 가진 힘과 권력에 대한 자세한 표현들이 있다. 그리고 영주와 그 주변에서 벌어지는 한 인간의 생존을 위한 투쟁과 권력 암투, 그런 미칠것 같은 상황에서도 피어나는 사랑의 균형이 매우 절묘하다. 어떤 상황에 있어도 인간은 살기 위해 힘쓰고, 단지 먹는다는 행위에 혹시 독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 하나로 얼마나 많은 고뇌와 고통이 뒤따르는지 알 수가 없다. 스트레스는 역시나 건강의 적이다.
시종의 이야기라기보다는 한 인간의 정치판 생존기로도 보이는 이 책은 중세 권력자와 가장 가까이 있던 시종의 눈으로 내용이 풀어진다. 그리고 그들 하인들 간의 알력 또한 매우 흥미롭다. 이 이야기가 실화하면 정말 주인공은 대단하다. 그는 결국 자유를 얻었으니까. 이 이야기가 소설이라면 정말 작가는 대단하다. 이 이야기가 진실이라고 해도 독자는 놀라지 않을테니까.
문체와 단어는 현대에 맞추어 많은 교정이 이루어졌지만 그 맛과 내용만은 살아 숨쉬고 있다. 일단 읽어보자. 처절할 정도로 힘든 한 남자의 생존과 자유의 쟁취를 보며 하나의 쾌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현대에 고통받고 자유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이 주인공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니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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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식시종이라는 말이 낯설었다. 물론 시종의 종류가 많겠지만 그중에서도 시식시종이란 말이 주는 느낌이 좀 의아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주인이 음식을 먹기전에 먼저 음식의 맛을 보아야 한다는 시식시종. 결국 그 음식에 독이 들어있나 없나를 확인하기 위하여 주인보다 먼저 시식을 해야하는 시종이다. 책속의 배경은 중세의 이탈리아이다. 책속에서 많은 음식들을 소개하고 있지만 나는 왠일인지 이탈리아라는 말속에서 피자만 생각난다. 이런!.. 각설하고 가난한 소작농이었던 주인공 우고는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내야 했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형 비토레만을 편애하던 아버지가 있었다. 형과 아버지로부터 모진 구박을 견디다 못한 우고는 가출을 하게 되고 처음으로 사랑하게 되는 여인에게서 딸 미란다를 얻게 되면서부터 그의 인생 이야기는 시작되어진다. 시식시종이란 직종이 뭐하는 것인지도 모른 체 그저 죽음을 면하기 위하여 가야만 했던 영주 페데리코의 성에는 그가 살아왔던 시간들이 무색할 정도로 판이한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주인공 우고는 우직하다. 영리하지도 못하다. 낙천적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듯 보여지는 그의 일상속에는 늘 아슬아슬하게 넘어가야 할 삶의 곡예들이 펼쳐져 있다. 산을 넘으면 또 산이 있듯이.
성 베드로의 발톱, 엘리야의 머리카락, 에메랄드 귀고리, 상아반지...... 부적의 종류는 많고 많았다.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음식을 먹어야 하는 시식시종들이 몸에 지녔던 부적들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내게는 참으로 크게 다가왔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보면서도 맛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운명이란 어쩔수 없는 아이러니다. 늘 배고픈 그들이 그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음식을 입에 넣을 때마다 죽음의 공포를 느껴야하니 맛을 음미할수도 없는 상황이다. 우습게도 그 장면을 떠올리며 행복과 불행은 늘 함께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우고의 삶 역시 그와 똑같이 기쁨이 오면 반드시 슬픔이 그 뒤를 따라오는 식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생활에 적응해가며 나름대로 삶을 받아들이려 노력하는 그의 모습속에는 우리 모두의 삶이 내포되어 있는 듯 하다. 주변으로부터 가히 독살을 당하고도 남음직한 포악한 영주 페데리코의 음식을 시식하는 하루 하루를 살아내면서도 커가는 딸 미란다를 위한 그의 정성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그 자신이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딸을 향하는 그의 사랑은 절대적이라고 말할만 하다.
시대적인 배경을 통하여 귀족층과 평민층이 너무도 다르게 살아가는 모습을 아주 담담하게 잘 보여주고 있지만 우리의 주인공 우고는 그런 차이조차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음이다. 각종 음식들과 곁들여지던 귀족층들의 대화속에는 위선과 허울뿐인 그들의 모습이 비쳐지기도 한다. 간혹 볼 수 있었던 중세의 이야기를 다루었던 영화속의 장면들이 떠올라 고개를 끄덕거리게도 한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내게 다가왔던 느낌 하나를 지울 수가 없었다. 이 책속의 내용은 단순히 중세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기보다는 어떤 종교적인 의미를 많이 숨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하나님을 찾으며 끝도없이 기도를 하게 되는 우고의 모습과 우고에게 고통과 좌절만을 안겨주었던 형 비토레를 적그리스도라 불렀던 우고의 말속에서 종교적인 상징을 얼핏 보았던 까닭이다. 또한 그에게 다가왔던 여인들, 아그네스와 헬레네의 역할 그리고 그의 곁에 머물며 가끔씩 그를 시험에 들게 하는 딸 미란다 역시 종교적인 냄새를 풍기고 있음이다. 비토레를 통해 보여주었던 광란의 의식속으로 분연히 딸을 구하기 위하여 뛰어들었던 우고의 모습과 비토레의 최면에 걸린 채 자신들이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는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던 마굿간의 사람들.. 마녀재판을 생각나게 하는 시식시종들끼리의 시기와 질투...어쩌면 작가는 우고 디폰테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는 존재를 빌어 자신이 말하고 싶어하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 종교적인 색채가 상당히 짙게 베어 있다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었다. 책의 카피에서 보이듯이 픽션인지 논픽션인지를 가늠할 수가 없다. 어찌보면 아주 훌륭한 상상속 인물인듯도 하고 어찌보면 정말 힘겹게 세상을 살아낸 한 남자의 이약기같기도 하고... 독자의 상상에 맡긴다, 뭐 이런류의 질문이 느껴지기도 한다.
자신이 그토록 무서워하던 독을 이용하여 페데리코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던 우고.. 결국 모든 고난을 이겨낸 우고 디폰테는 자신의 삶을 찾게 되고 그토록 사랑하던 딸 미란다에게도 행복한 삶을 선사해준다. 우리의 삶이 그렇게 해피앤딩으로 끝날 수만 있다면 좀 좋을까? 그많던 삶의 언덕을 넘고 넘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을 수만 있다면 그것은 정말 행복한 삶이리라. 작가의 가감없는 직설적인 문체를 보면서 삶의 의미는 안개속에 갇혀진 것처럼 흐릿한 것은 아닐거라고 생각해본다. 그렇기에 우리의 어깨가, 우리의 가슴이 무거운 까닭이리라...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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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34년 봄, 형과 아버지의 갖은 구박과 기아에 시달리던 소작농 우고 디폰테. 어느 날 그는 곧 죽을 '시식시종'의 자리를 대신하기 위한 목적으로 어린 딸과 함께 영주에게 끌려간다. 폭군인 페데리코 영주에게는 적이 너무 많아 항상 독살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는데…….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직책을 맡은 우고는 불운한 환경에 지혜롭게 적응하고 재치와 상상력, 두둑한 배짱으로 독살의 음모를 여러 번 극복해낸다. 마지막이 더욱 흥미로운 책. 도서관에 빌려가는 이 없이 축쳐져 꽂혀 있는 걸 보면 책을 고르는 사람들을 붙잡고 막 권하고싶은 책. ㅎ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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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도 80%
편하게 배깔고 저녁때 집에서 봤다면 아마 밤새 다 읽어버렸을 책.
능청맞고 머리 좋고, 무엇보다 운이 정말 좋은 시식 시종 우고의 이야기. 소재와 배경이 주는 신선함과 다양한 캐릭터들이 벌이는 요란법석한 이야기들이 마치 중세를 배경으로 한 뮤지컬 한 마당을 본 것 같은 즐거움을 준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건, 수많은 요리들의 성찬. 이태리 요리를 잘 알지도 못하고 거기다 옛날 요리들이라 어떤 요리인지 알 수는 없지만, 우고의 입을 빌려 늘어 놓은 요리에 대한 묘사를 보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입술에 혀로 침을 묻히게 되고 만다.
개인적으로는 주인공 우고 보다는 우고가 시식시종으로 일하는 페데리코가 더 재미있는 캐릭터라고 생각된다. 살인을 밥먹듯이 하는 사이코에서 사랑에 빠져 시를 짓는 부드러운 모습까지...
여유 있게 즐기면서 보기엔 정말 좋은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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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인 ‘시식시종’은 한자어 ‘試食侍從’으로 적어 놓고 보는 것이 낫다. 시식은 음식의 맛이나 요리 솜씨를 보려고 시험 삼아 먹어 봄, 이라는 뜻이고 시종은 고용되어 일하는 남성, 정도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니까 소설 ‘시식시종’은 지체 높은 이에 의하여 고용되어 고용주가 음식을 먹기 전에 미리 음식을 먹어보는 일을 하는 남성에 대한 이야기, 라고 잠직하면 된다. ”... 페데리코한테 내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결코 진실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이야기가 재미있으면 사람들은 굳이 그 안에 숨은 진실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어쩌면 요나도 고래한테 먹힌 것이 아니라 반대로 고래를 잡아먹은 것인지도 모른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살아서 십자가에서 내려오셔서 동굴에 숨은 것인지도 모르고, 소크라테스도 농담을 하면서 독배를 마신 게 아니라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했을지 모르는 일이다.“ (p.136) 다만 문제는 시식시종을 고용한 이가 다른 사람에 의하여 독살을 당할 위험이 다분한 인물이라는 데에 있다. 시식시종은 매번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음식을 먹어야 한다. 음식을 먹지 않을 수는 없다. 고용주인 페데리코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전임 시식시종의 혀를 잘라서 개에게 먹으라고 던져준 이다. 전임 시식시종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 우고는 전임의 말로를 보았고 어떤 경우에서든 시식을 거부할 수 없다. “... 그 많은 하인들 중에 하루에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세 번씩 목숨을 내거는 자가 시식시종 말고 또 누가 있을까? 말이 났으니 말인데, 시식시종은 가장 용감한 기사보다도 용감하다.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달아나는 기사들도 많다는 말을 들었는데, 시식시종은 달아나지 않는다...” (p.210) 《시식시종》의 주인공이면서 이를 직접 쓴 우고 디폰테는 1500년대 중세 이탈리아 코르솔리 지방에서 양치기의 아들로 태어났다. 하지만 자신을 낳은 엄마가 죽고 큰아들만은 편애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그래도 나무꾼의 딸인 엘리사베타를 만났고 잠시 행복하였다. 하지만 엘리사베타는 딸 미란다를 낳다가 죽었고, 우고가 시식시종으로 딸과 함께 성으로 들어갈 때까지 두 사람은 겨우겨우 먹고 살았다. “살아오면서 나는 성경이나 그리스 로마 신화가 사실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글로 적혀 있으니 당연히 사실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막 내가 적은 글을 읽고 있자니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던 일을 사실인 양 속이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 알게 되었다.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고, 비통하게 만든느 것이 얼마나 쉬운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재능은 이 세상에 있는 금과 은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귀중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는 자는 자신의 세계에서만큼은 신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p.253) 죽음을 지척에 두어야 했지만 우고는 딸과 함께 페데리코의 성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미란다는 아름다운 처녀로 성장하였고 우고는 몇 번의 죽음의 위기를 가까스로 벗어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우고는 페디리코의 신임을 얻었고, 페데리코는 우고의 딸인 미란다를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기로 한다. 이렇게만 보면 양치가에서 왕비의 아비라는 지위까지 수직 상승하는 이야기인가 싶지만 과연... “... 시간은 앞으로 나아갈 뿐 절대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다. 지나간 일은 결코 돌이킬 수 없다. 따라사 페데리코는 미란다와 결혼할 것이고 나는 더 이상 시식시종 노릇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정해졌으니 그렇게 될 것이고, 만약 톰마소가 그 일을 방해하려 든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수염에 걸고 나는 녀석의 불알을 끊어놓고 말리라!” (p.364) 《시식시종》은 우고 디폰테라는 중세 이탈리아 시식시종이 직접 쓴 수기이다, 라고 이 필사본을 직접 번역한 피터 엘블링은 밝히고 있다. 그래서 책은 우고 디폰테 지음, 피터 엘블링 영역이라고 설명된다. 그런데 이 또한 과연... 일종의 페이크 다큐, 라고 보면 비슷한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이탈리에서 수기를 발견했고 이를 자신이 직접 영어로 옮겼다는 피터 엘블링의 말이 거짓말인 줄 알지만 그렇다 치고, 읽으면 된다. 우고 디폰테 / 피터 엘블링 영역 / 서현정 역 / 시식시종 (The Foodtaster) / 베텔스만 / 419쪽 / 2003 (2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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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식시종이란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왕의 음식에 독이 들어있는지를 미리 먹어보는 내시와 같다.
이탈리아 중세의 한 책을 발견했다는 식으로 프롤로그를 풀어가는 작가는 마지막에 가서는 그것마저 진짜인지 허구인지 알 수 없게 만든다.
독특한 소재이기는 하나 배경만 다를 뿐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같아 약간의 흥미 외에는 별다른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그런데 이것을 역설적으로 생각해보면 그 시대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것이 없고 동양이나 서양이나 정치를 한다는 것은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요, 그들이 폭군일 경우에는 그 정도가 더함을 알 수 있다.
음모와 배신, 인간의 절망과 희망이 담겨있는 한 소시민의 눈으로 바라본 거창하지 않은 중세 역사를 허구적으로나마 재미있게 알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이런 류의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좋은 읽을거리가 되리라는 생각도 든다.
책이란 어떤 기대를 가지고 보느냐,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이 작품을 한 남자의 인생역전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죽음의 나락에서 시식시종으로나마 살아남아 어린 딸을 먹여 살리려는 아버지의 가련한 몸부림이 처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예나 지금이나 자식은 애물단지라는 것도 알 수 있고...
아무튼 중세로의 가벼운 여행을 작은 괴기스런 방법으로 하고 싶다면 이 책을 보시길 권하는 바이다. [인상깊은구절] p14 예전에는 배가 고프다는 것밖에 몰랐다.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자 배만 고픈 게 아니라 마음까지 고팠다. 아니, 마음이 더고팠다. p17 "원한을 품은 자는 원한에 파묻힐 것이다.“ p18 "저 구름에 내 지난날을 실어 보내리라.“ p25 '자신을 웃길 수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다.‘ p135 "단테가 말하길, 명성은 바람과 같아 날아가는 즉시 잊혀진다네.“ p208 “... 페르라르카는 ‘나는 아침에 먹은 것을 저녁에 소화한다. 그리고 소년 시절 배운 것을 어른이 되어 사색한다.’...” p269 너무 낮게 나는 새는 제일 먼저 사냥꾼의 화살에 맞는 법이거든. p321 '작은 친절로 이루지 못할 것은 하나도 없다‘ - 키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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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논리와 해석을 동반하는 책을 읽고 난 후에는 머리를 가볍게 할 만한 책이 필요하다. 가벼운 소품집이나 에세이, 소설이 딱 좋다.
그리하여 읽게 된 시식시종. 물론 읽고 싶다 생각해 고른 책이지만 쟁여두었다가 실제로 읽게되기까지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그렇지만 일단 첫 장을 펼쳐 읽기 시작하면 몇 시간 후에 마지막 장을 덮게 된다. 대개의 소설이 그렇듯이.
아. 이 책은 소설과 자서전의 애매한 경계에 놓여있다. 책의 표지에는 피터 엘블링이 '옮겼다'라고 되어 있는데 그가 손에 넣은 필사원본이라는 것이 아무래도 미심쩍기 이를데 없다. 게다가 원작자가 살던 지역은 역사에서 사라져버렸다니! 게다가 소작농에서 시식시종이 된 주인공이 그리스 신화에 대한 지식을 그리도 풍부하게 갖추고 있기가 어렵지 않을까. 뭐, 판단은 독자 각각의 몫이다.
덧붙이자면, 이 책을 '옮긴' 피터 엘블링은 어렸을 적 나를 열광하게 했던 '아이들이 줄었어요'의 시나리오를 썼다. 타고난 이야기꾼이 그저 얌전하게 남의 이야기를 옮기기만 했을라고.
아, 시식시종이 무엇인지부터 이야기 했어야 했다. 시식시종은 말 그대로 '시식'을 담당하는 시종으로, 영주가 음식을 먹기 전 미리 음식을 먹어보는 직업이다. 물론 우리의 주인공 우고 디폰테가 원했던 직업은 아니지만. 게다가 그가 섬기는 영주는 포악하기 이를 데 없어서 원체 적이 많은지라 누구라도 그를 독살하고자 하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닌 상황.
그리하여 전체적인 스토리를 요약하자면 우여곡절 끝에 시식시종이 된 우고 디폰테가 매일매일 두세 번씩 죽음의 위기를 넘기면서 끝까지 살아남는 이야기다.
그 과정이 아슬아슬, 흥미진진하기 이를 데 없어서 책을 펼쳐 읽은 지 딱 두 번만에 이야기의 끝을 봐버렸다. 중세 이탈리아에 로망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조금 더 재미있을만한 소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