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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이제 로버트 버튼이라는 훌륭한 신경과학자의 탁월한 저술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원제는 On Being Certain. 봇물 처럼 쏟아지고 있는 뇌의 무의식의 기능과 부작용으로 인한 우리 인지의 한계에 대한 저술들 처럼 인지부조화, 중독, 학습, 보상 등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지만, 그 깊이와 설득의 간결함에 있어서 저자의 접근 방법은 주목해야 한다. 주목받는 신경과학자이자 작가로서의 능력을 겸비한 저자는 축적된 연구 성과와 생생한 사례를 통하여 우리가 안다는 것, 확실하다는 것에 대한 느낌과 그 느낌의 허와 실에 대하여 설명한다. 저자는 확신이란 하나의 정신 상태, 즉 분노나 자부심과 같은 하나의 느낌으로서,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객관적인 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즉, 저자는 '우리가 뭘 아는지를 우리는 어떻게 아는가?'라는 근본적이고 어려운 화두를 던진다. 저자의 주장과 같이 우리의 확신이 단지 느낌이라면, 과학적 연구 결과가 우리의 확신이 진실의 반영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면, 우리 뇌의 속임수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뇌가 나라면, 나를 속이는 나의 거짓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확신에 대한 오류는, 이원론과 인간의 자유의지와 같은 철학적인 명제를 논하지 않더라도, 과학의 발전이 그 발전을 이룬 우리들의 자만에 보내는 우연한 경고일지도 모른다. 확신과 자신감이 성공의 척도와 지렛대로 칭송받는 사회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우리들에게 '안다는 것'에 대한 진정한 사유는 불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확신에 대한 끊임없는 확인은 생각하는 사람으로서의 성숙을 담보하는 유효한 통찰일 것이다. 책 말미에 저자가 인용한 스콧 피츠제럴드의 '1급 지성을 가늠하는 기준은 두 가지 반대 관념을 동시에 마음에 담고서도 여전히 제 구실을 하는 능력이다.'라는 경구가 유일한 해결책일지도 모른다. 저자를 포함한 깨달음의 단서들을 제공하는 신경과학자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서문 1. 안다는 느낌 2. 우리가 뭘 아는지를 우리는 어떻게 알까? 3. 신념은 선택 사항이 아니다 4. 정신 상태의 분류 5. 신경망 6. 모듈성과 창발 7. 사고는 언제 시작될까? 8. 지각적 사고: 그 이상의 설명 9. 사고의 쾌감 10. 유전자와 사고 11. 감각적 사고 12. 확신의 양대 기둥: 이성과 객관성 13. 신앙 14. 마음에 대한 사색 15. 마지막 사고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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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조조님의 이벤트를 통해서 읽게 된 책입니다. 우리의 생각에 한계가 있다는 의미를 담은 것으로 보이는 <뇌, 생각의 한계>라는 제목이 관심을 끌었습니다. 어쩌면 “당신이 옳지 않을 때마저 당신이 옳다고 믿는 것은 왜일까?”라는 질문에 호기심이 일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일반인의 관심에서는 멀어져갔지만,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와 관련하여 우리사회를 폭풍 속으로 몰아넣었던 2008년 제2차 광우병파동의 핵심은 프리온과학에 있습니다. 프리온의 생화학, 의학, 수의학 등을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 ‘그렇지 않다’로 나뉘어 견해 차이를 좁히지 않는 바람에 일반인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잊을만하면 한번씩 각자의 주장이 옳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상대방이 과학적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고까지 이야기합니다. 제3자가 보면 두 집단이 과학적 견해보다는 각자의 신념에 따라 사고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과 관련하여 저자의 적절한 예를 인용합니다. “이와 같은 언쟁은 흔히 서로 다른 위험-보상 계산의 반영이다. 사형제도에 관해 생각할 때, 주요 고려사항은 고려하는 이가 무고한 사람이 처형될 것을 염러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눈곱만큼의 위험도 용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유전공학에 관한 언쟁에서는 흔히, 어느 정도의 위험을 용인하고 ‘우리는 어떤 판단의 실수도 적절히 통제할 수 있고 고칠 수 있다’고 믿는 쪽과 미끄러운 비탈길논지 즉, ‘일단 그 길을 내려가기 시작하면, 돌아올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일이 될 것이다’를 펴는 쪽이 맞붙는다.”
신경학자 로버트 버튼이 신경과학 분야의 최신의 연구성과를 근거로 하여 우리가 확신하고 있는 ‘앎’이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지는 것이라기보다 사실은 의지로 조절되지 않는, 다시 말하면 감각적으로 형성되는 것으로 유전적 소인으로부터 신체감감의 오작동으로 인한 지각적 착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특히 과학자집단이 이러한 믿음이 때로 맹목적 확신으로 이어지는 오류를 저지르는 것은 본인 스스로가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하여 앎이 만들어졌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느껴지든지 간에, 확신은 의식적인 선택도 아니고 사고 과정조차도 아니다. 확신과 ‘우리가 뭘 아는지를 알고 있는’ 유사한 상태들은 마치 사랑이나 분노처럼, 이성과 무관하게 작용하는 무의힉적인 뇌의 기재들로부터 일어난다.”는 전제는 사고에 한계가 있다는 저자의 생각을 담고 있습니다. 스탠포드대학교의 사회심리학 교수인 레온 페스팅거의 주장처럼 사람들은 ‘내가 아는 것과 일치하지 않는 것을 하고 있거나, 나의 의견과 맞지 않는 다른 의견을 갖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괴로운 정신상태(인지부조화)를 해소하기 위하여 자신의 생각을 아는 것에 일치시키려는 경향을 가진다고 합니다.
우리가 사물의 아름다움을 마음으로 느끼거나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는 것은 다양한 감각계를 통하여 받아들여지는 정보를 토대로 하여 이성적으로 판단한 결과인 것입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말한 비트겐슈타인의 유명한 경구를 새겨둘 필요가 있겠습니다. 하지만 무언가를 이야기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우리에게는 우리가 아는 것만 보인다’는 괴테의 말을 새겨 내가 아는 것의 범주를 넓혀가기 위하여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논점의 근거들을 객관적 입장에서 분석하고 평가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됩니다. 다만 그 평가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논리를 개발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더욱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자는 최근 과학계와 종교계 간의 이슈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과학과 종교 사이에서 어떤 화해가 있으려면, 모두 기본적인 한계를 인정해야 할 것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만, 옥스퍼드대학의 리처드 도킨스교수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그가 지향하는 방향을 엿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신앙은 대단한 구실 즉, 증거를 생각하고 평가할 필요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단한 핑계다. 신앙이란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어쩌면 증거가 없기 때문에 존재하는 믿음이다. (…) 당신이 자신의 관점을 정당화할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을 존중하겠다. 하지만 만일 당신이 오로지 당신에게 그에 대한 신앙이 있다는 말로 당신의 관점을 정당화한다면, 나는 그것을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
“정신적 감각들이 우리의 사고를 일으키고 형성하는 그 근본적 역할을 주시함으로써, 다양한 지각의 한계들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사고의 본성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저자의 권고대로 『뇌, 생각의 한계』를 읽고서 내가 알고 있다고 확신하는 것들이 과연 틀림없는 근거를 가지고 있는가 되짚어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이 행운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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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의 신경과학에 대한 것을 잘 알고 있는 독자라면 이 글을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었을지 모른다. 꽤나 말랑말랑한 책들을 최근에 읽어서인지 정독을 요하는 이 책을 읽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어떤 것을 쉽게 설명해주기 보다는 신경과학, 뇌와 관련된 논점에 대한 저자 자신의 생각을 늘어 놓은 책이다. 역자 후기를 보고서야 이 책이 저자의 일기를 재구성했다는 것을 알고 아..하고 책의 구성 방식을 다시 보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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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생각의 한계'는 당신이 뭘 아는지 당신은 어떻게 아는가?’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 이 책은 학습과 기억, 의식과 무의식등 인지과학의 주요 소재를 통해 지식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 을 제시하고 있으며 우리의 마음과 뇌가 어떻게 기능하는지에 대한 분석과 인간행동에 관한 더 넓은 이해를 추구한 '인지과학' 입문서이다. 저자인 로버트 버튼은 서두에서 이 책을 저술한 목적을 "우리가 뭘 아는지를 아는 방식의 본질과 한계에 관한 논의를 일으키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접할 수 있는 '인지과학'은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배우는가를 연구하는 분야이다. 인지과학은 마음과 뇌를 이해하기 위해 신경과학, 심리학, 언어학, 인류학, 철학, 컴퓨터과학 등의 연구방법과 연구결과를 연결하는 학문으로 인지과학은 ‘마음의 과학’(Science of Mind)인 게 맞다. ‘인식’이 수동적 차원의 좁은 의미라면, ‘인지’는 보다 적극적 개념으로 ‘지·정·의(知情意)’의 대부분을 포함하는 능동적인 심적 활동이다.
안다는, 친숙하다는, 낯설다는, 실제라는 느낌들은 복합부분 발작이나 관자엽 뇌 자극과 연관된 신경학적 호기심의 대상 이상이다. 정신적 기능들인 감정, 기분 또는 사고의 표준 범주에 깔끔하게 들어맞지도 않는다.(p.275)
이 책의 중심 메시지는 안다, 맞다, 확신한다, 확실하다느 느낌들이 신중한 결론도 아니며 의식적인 선택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정신적 감각들이다. 따라서 이렇게 느껴진 안다는 느낌은 결국 우리가 손 볼 수 없는 일종의 불수의적이고 통제할 수 없는 마음의 감각인 것이다. 인지과학이라는 샐운 분야애 대해 접근하는데 쉽지 많은 않았다. 그것은 사람의 두뇌와 마음, 인공물을 포함해 환경을 연결하는 ‘지식 활용의 과정과 내용’의 복잡함 때문일것이다. 저자는 확신은 이성적이라고 할 수 없는 감정인 사랑이나 분노와 같은 직관적이고 순간적인 판단이라고 말한다. 대박의 기회를 만났다고 생각하면 우리 뇌는 코카인을 흡입했을 때와 비슷한 상태가 된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런 상태에선 투자후보와 사랑에 빠지게 되어 비합리적인 결정을 하기 쉽다. 소설가의 감수성을 지닌 신경과학자가 쓴 책여서 일까? 비교적 읽기 쉽고 전문 용어들을 피해서 였는지 모처럼 만난 과학서여서인지 읽으면서 빠른 시간에 집중하게된 책이었고 뇌과학이라는 흥미있는 분야에 대한 매력에 빠져들게 한 책이었다. |
MBSR이 뇌의 어떤 기저에 의해 마음이 안정되고 심신이 단련되는지에 괸한 논문을 준비하면서 자료를 찾던중 "뇌, 생각의 한계-북 스토리"를 만나게 되었다.
'종교와 과학은 통합되어야 한다. 그 역할은 철학이 될 것이다. 새로운 것이 아닌 기존의 동양의 역철학이 해답이 될 것이다' - 캔 윌버 - "보이는 것만이 존재의 전부는 아니다" "진정한 해답은 감각영역이나 지적 영역이 아닌 초월영역에 놓여있다. 초월영역은 명상을 통하여 관조의 눈을 떴을때 그 모습을 드러낸다" 라고 말한 켄 윌버는 1970년 중반 '의식의 스펙트럼'으로 심리학계에 일대 지진을 일으키며, 현재 서양 지성사의 최고봉에 올라선 인물라고 한다면 신경과 의사인 로버트 버튼 박사는 임상현장에서 환자들을 치료했던 의사 캔 윌버라 말하고 싶다.
신경과 의사인 로버트 버튼 박사가 임상현장에서 환자들을 치료한 경험을 바탕으로 써 내려간 이 책은 확신이란 하나의 정신상태, 즉 분노나 자부심은 같은 하나의 느낌으로서 우리를 인도하는데 도움이 될수 있지만 객관적인 진실을 믿을 만하게 반영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체계적이고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내가 MBSR지도자 과정중일때 교수님께서 보여주었던 "농구-고릴라 비디오"의 예를 신경과학자이면서 소설가이기도 한 로버트 버튼 박사가 이 책에서도 인용하여 자세한 설명들을 덧붙여 놓았는데 우리 인간은 자신이 보고 싶은것만 보고 알고 싶어하는 것만 알려고 한다는 것이다.
뇌 라는 주제를 많이 다룬 전문가와 더불어 일반인도 누구나가 쉽게 읽을수 있도록 써 내려간 이 책은 지금 우리시대에 꼭 필요한 마음의 문제 무의식의 문제를 소설처럼 재밌게 접할수 있도록 써내려 갔다.
일본에서는 뇌를 주제로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이미 출간된 책들은 다시 업그레이드시켜 재 출간하는 것을 보면 우리 인간의 문제를 다룰때 뇌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이 여름 진정한 나를 알고 싶다면 나를 찾아 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뇌, 생각의 한계-북 스토리"를 꼭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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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선택의 문제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거라는 자명한 진리
과연 시간이 지나면 그 선택은 옳았거나 그릇된 것이었고, 내가 알거나 알지 못했다는 것을 말할 순 있지만, 과연 내가 알거나 알지 못했던 것일까? 어떻게 알고 어떻게 알지 못하는가? 앎이란 것은 지식일까? 앎이란 것은 진리일까?
홍상수의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는 잘 알거나 잘 알지도 못해 우여곡절을 겪는 주인공이 나온다. 주인공은 잘 알아서 선택하고 때론 잘 알지도 못해 선택하지만 결국은 일상을 살 뿐. 이데올로기, 신념, 믿음, 안다는 것에 대한 주인공의 조소는 결국은 현실을 사는 것이며, 현실이란 일상 속 진정함에서 삶이 이어진다고 말하는 듯 하다.
이데올로기, 신념, 앎, 믿음이란 확신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속에서 끝없이 영명하며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가로지르고 때론 들쑤시며, 끝없이 고뇌하게 한다.
그 안다는 확신. 이제 그만 따져볼 때도 되지 않을까? 너무 깊이 들어갔을 때, 그 안다는 확신이 나를 잡아먹고 날 놓아주지 않을 때, 그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는 조소는 '잘 안다는 확신'의 기만으로 날 오히려 가두지 않을까?
뇌, 생각의 한계는 안다는 확신에의 골몰로 선택을 두려워하고, 그 선택에 스스로를 옥죄며, 안다는 프레임에 갖혀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위해 생각의 틀을 깨는 작업을 해보는 책이다.
이 책은 안다는 확신의 양극단에 선 많은 사람들(리처드 도킨스, 말콤 글레드웰, 테레사 수녀 심지어 도스토예프스키 등 까지)의 사례를 보여주며, 그 흥미진진한 사례를 들여다봄을 통해 지금까지 해온 생각의 틀을 조금씩 깨는 작업을 실천한다. 또한 과학적 실험과 심리적 분석 틀로 '안다는 확신'이 나오기까지의 뇌의 작용을 명징하게 분석하며, 안다는 확신은 무의식적 뇌의 영역에서 결과되어지는 것이고, 안다는 확신의 기만의 늪에서 헤엄쳐 나와 조금 더 세상을 크게 넓게 여유롭게 보라고 말한다. 또한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며 서로를 향해 으르렁대는 사람들을 향해 결국은 누구나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선택을 하게 된다고 충고한다.
이 책을 읽으며, 생각의 한계를 조근조근 따져보며, 오히려 생각의 한계의 그 틀을 벗어나 더 넓은 사고로 확장할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혀를 내두를 정도로 촘촘한 재밌는 사례들 때문에 계속 멈추지 않고 읽으며, 그 끝엔 뭔가 묵직한 것을 깨달았다는 감동이 전해져 왔다.
많은 도움이 된 책이었다. 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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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책들은 저자의 수고와 노력으로 이루어진 결과물일 것이다. 그러나 책을 읽는 내내 이 책을 쓰기 위해서 저자가 얼마나 많은 고심을 했을지에 관해 이렇게 많은 감탄을 하면서 읽었던 경험은 그리 많지 않다. 한 마디로 대단하 수고의 결과로 만들어진 책이다. 이 책의 모든 페이지들은 저자가 정교하게 짜맞추어진 논리적 결합을 통해서 한발 한발씩. 한가지 한가지 논리를 늘려가면서 우리의 뇌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이해를 늘려가는 과정이다.
이 책에 실린 뇌의 비밀에 관한 모든 연구를 저자가 혼자서 다 한 것은 물론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런 여러가지 연구결과들 중에서 저자의 생각에 올바르다고 생각되는 결과들을 추리고, 그것을 뇌과학에 대해서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일반 독자들에게 어떻게 '이해시켜야 할지' 를 두고 저자가 기울여야 했을 수많은 고민들의 결과로서 일반인인 내개 마침내 '그렇구나... 뇌는 이렇게 해서 우리를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만드는 구나' 라고 이해하게 만들기 까지는 실로 무한하다고 할만한 노력이 기울여 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단순히 '뇌는 이렇게 저렇게 움직인다.' 고 말하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우리에게 답을 제시하는 책이 아니라, 우리들에게 자신의 논지를 설득시키는 책이다. "뇌가 이렇게 작동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이 이런 예들을 통해서 볼때 정당하지 않겠습니까?" 책의 매 페이지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또 다른 과정으로 진행을 반복한다. "앞의 논의를 근거로하여 다음 사항을 생각하면, 뇌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게 작동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겠지요?"
단순히 '뇌는 이렇게 작동하는 법이다.' 라고 말하는 책과, 이런 저자의 수고를 통해서 뇌가 작동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책의 차이는 엄청나다. "그건 그런가 보구나" 와 "아하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로 설득력이 있어보이는 구나!" 의 사이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앎이라는 단어로는 비슷하게 보이지만 실로 대단한 차이가 아닐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목적을 위해서 저자는 이 대단한 수고를 한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약간의 수고를 감내하지 않으면 안된다. 매 단락을 읽을 때마다 새로운 깨닳음을 얻는 기쁨이 찾아오지만, 매 단락을 읽을때마다 저자의 논지에 집중하는 수고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노력은 저자의 설명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기 위해서 치루어애 할 정당한 수고로움인 것 같다. 왜 흥미롭고 재미있는 쉬운 읽을 거리들을 두고, 저자뿐 아니라 독자들까지도 그런 수고를 해야 할까? 그것은 바로 이 책이 다루는 것이 우리들 자신의 뇌와 우리들 자신의 마음이 작동하는 방식에 관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안다는 것을 아닌가. 어떻게 나의 뇌가 나를 규정하는가. 어떻게 감각과 경험이 판단을 만들어 내는가... 수많은 의문들이 이 책 속에서 자신의 답을 가지고 우리들에게 이해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무척 알고 싶었던 질문이고, 무척 기특한 대답들이다. 존재론적 고민을 과학적인 방식으로 속 시원하게 풀어낼 수 있는 매우 값진 책이기에 독서의 수고로움을 독서의 기쁨이 압도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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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신문에서 과학을 좋아하는 어떤 학생이 추천하는 글을 보고 알게 된 책이다. 제목에서부터 묵직한 내용의 포스를 풍겼던 이 책은 뇌에 관심이 많은 나의 호기심을 부추기기에 충분했다. 이 책은 인간의 사고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뇌과학의 입장에서 설명한다. 뇌의 신경망이 어떻게 습관, 믿음, 판단들을 만들고, 어떻게 안다는 느낌을 만드는지를 예시, 인용 등을 통해서 설명한다. 그래서 쉽지 않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재밌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나는 여러 번 감탄을 하면서 이 책을 읽었다. 내가 몰랐던 지식을 알게 된 즐거움도 있었지만 무거운 주제로 어떻게, 이렇게나 글을 재밌게 쓸 수 있는지 놀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자는 책의 대부분의 내용에서 직감, 육감, 직관, 확신 등은 그저 정신적인 감각일 뿐이라며 확실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비판하고 확실성의 허상을 설명하다가 마지막엔 “우리는 과학이 우리 자신에 관해 알려주고 있는 내용을 염두에 두는 한편, 비과학적이거나 불합리한 믿음들의 긍정적인 이익들을 용인해야 한다.”며 급마무리를 한다. 맞는 말이긴 했지만 책 내용으로 볼 때 뜬금없는 결론처럼 느껴졌다. 이 책을 읽고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저자의 주장대로 살면 얼마나 피곤할까?’라는 것이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옳지 않을지도 모르고,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아는 것이 아니라 느낌일 뿐이라는 의심이 든다면 과연 이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나 할까란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살면서 “내가 생각하는 건 모두 분명하고 확실해.”라고 고집하는 건 확실히 문제가 되지만 그렇다고 신념이나 확신 같은 게 없는 것도 문제가 있지 않나 싶다. 이 세상에는 분명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존재하고, 어떠한 신념은 기적을 일으키기도 하며, 남이 봤을 땐 어리석고 말도 안 되는 믿음처럼 보이더라도 그 믿음이 그 사람에겐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데 도움이 되고 전진할 수 있는 동기가 되어서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저자와 같은 사람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사람들은 확신을 추구하며 살아갈 것이다. 아니,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미래가 불안할수록 더 점술가를 찾아가는 사람들처럼 확실성을 추구하는 게 인간이고, 아는 체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원래 인간이지 않던가. 항상 불확실성의 불쾌함을 견디고 어떤 의견이 맞을 가능성에 따라 그 의견을 분석하며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염두에 두고 살면 좋겠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그 확신이 잘못된 것이란 걸 알았을 때 (내가 알고 있던 게 잘못된 것이란 걸 깨달았을 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되돌아보고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의사나 과학자와 같이 모든 판단에 근거가 필요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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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난해한 책이다. 무엇을 얘기하는 것인지 알겠다가, 중간에는 한참을 헤매다, 끝에 가서야 이 책의 정체를 대충 파악했다. 이해한 바대로 이 책을 간단히 평하자면, 우리가 알고 있다는 것은 과연 어떻게 알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이 책은 결국은 불가지(不可知)에 상당히 근접하고, 또 절충적인 결론으로 맺고 있다. 물론 저자라면 이런 나의 간략한 정리에 상당히 불만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겨우 그 정도를 얘기하자고 이 복잡한 논증을 펼친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에라도 말이다. 하지만 책을 읽는 입장에서, 또 어떤 이유가 되었든 이 책의 모든 문장들을 확실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정리는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해해야만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내용을 이해한 만큼만 좀더 풀어서 정리하면 이렇다. 우리가 친숙하다거나 경험했다고 여기는 '느낌', 즉 '안다는 느낌'은 그 느낌과 관련된 추론이나 의식의 작용 없이도 쉽게 유발될 수 있다. 그러니까 '안다는 느낌'은 매우 허약한 것일 수 있는데, 객관적 진실(기억이나 사고라는 측면에서)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에 관해서 강력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객관적인 진실이 없이도 '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어떤 보상 체계가 존재하기 때문인데, 그것은 바로 뇌의 물질적, 화학적 작용이다. 따라서 버튼은 우리가 알고 있다는 것은 정말 알고 있는 것이 아닐 경우가 많으며, 우리는 믿는다고 해야 하는 경우가 더 설득력 있고 옳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그 믿음에 대해서도 회의적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여기서 믿음이란 종교에서의 믿음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과학 활동, 예를 들어 종교와 가장 강력한 대척점을 그리고 있는 진화론에 대해서도 이는 적용된다. 당연히 버튼은 진화론에 대해서 '믿고' 있으며, 다윈의 사고에 대해서는 찬사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그는 창조론을 '믿는'(과연 이 단어를 앞의 것과 같은 것으로 봐야 하는지 의문이 들지만) 이들의 사고도 물질적 근거를 가지고 있으며, 과학의 설득력 있는 증거로도 그것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며, 과학은 말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식이다. "'안다'가 '믿는다'로 바뀐다고 해서 과학적 지식이 무효화되는 것은 아니다. 힘들여 얻은 사실이 명료한 것에서 개연성 높은 것으로 이동할 뿐이다." (279쪽) "과학은 그것의 완전무결함을 유지하는 동시에 '합당'하지 않은 인간 본성의 여러 측면들을 온정적으로 존중해야 한다." (282쪽) "우리는 과학이 우리 자신에 관해 알려주고 있는 내용을 염두에 두는 한편, 비과학적이거나 불합리한 믿음들의 긍정적인 이익들을 용인해야 한다." (283쪽) 솔직하게 말해서, 인지과학 개론서 같은 책이 이런 결론에 이를지는 몰랐다. 과학의 온정적 태도라든가, 비과학적, 불합리한 믿음들에 대한 용인 같은 것은 충분히 용인할 수 있는데, 그게 이 책의 주제이고, 결론이라는 게 조금 당혹스럽다. * 그런데, 더 당혹스러운 것은 이 책을 읽게 된 계기, 바로 『1.4킬로그램의 우주, 뇌』에 실린 정재승 교수의 강연에서 언급한 내용(http://blog.yes24.com/document/8271687)이 내가 읽은 이 책에는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찌된 일일까? (2015.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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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교육을 통해 배운 지식? 경험을 통해 얻은 정보? 사람이나 사물을 보고 떠오른 느낌? 혹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 우리가 안다고 말하는 것들, 믿는 것들 그것은 모두 확실한 진실일까? 그 확신은 일련의 뇌의 활동들을 통해 일어난 것일까, 아니면 다른 그 무엇일까? 소설가의 감수성을 지닌 신경과 의사 로버트 버튼은 [뇌, 생각의 한계]를 통해 아는 방식의 본질과 한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공통된 장소, 공통된 시간, 공통의 사건에 대한 기억도 사람마다 다르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엔 살구나무가 없다. 그런데 내 친구들은 학교에 살구나무가 있었고 나도 같이 살구를 먹었다고 말했다. 나를 제외한 친구들의 기억이 동일하니 나의 기억이 잘못된 것일까?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뇌의 문제로 인해 지워지거나 채워진다. 혹은 의도적으로 왜곡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의 기억을 확신한다. 괴테는 ‘우리에게는 우리가 아는 것만 보인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본다. 안다는 것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일까? 예전에 근무하던 회사에서 얼마간 일해 달라는 연락을 받고 망설였던 적이 있다. 오랫동안 그 일을 하지 않아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나도 모르는 순간 그 일을 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손이 일을 하고 있었다. 안다는 것은 나도 모르게 몸에 배어있던 학습과 경험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그 일을 알고 있는 것일까? 저자는 임상의를 하며 만났던 사례들과 다윈, 도킨스 등 과학자들의 견해, 종교(혹은 신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통해 아는 방식과 본질의 한계에 대해 답을 찾아간다. 안다는 것, 안다는 느낌은 신경학적으론 뇌 활동의 결과물이고 나의 경험과 시행착오의 결과물이고 나의 이성과 감성의 총체적 작용이기도 하다. 저자는 절대적 ‘앎’과 확실성을 주장하는 것에서 물러나 다양한 지각의 한계를 인정하고 사고의 본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불확실한 것들을 통해 사유하는 것, 배우는 것 그것이 바로 앎일 것이다.
이 책을 읽었지만 전부 안다고 확신할 순 없다. 나 역시 내가 알고 싶은 것들만 기억했을 것이다. 반복해서 읽고 사유하다보면 ‘앎’에 조금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