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문인 중 한 사람인 이러한 의혹이 아무 근거가 없는 것이라는 걸 나중에 대략 이렇게 요약되는 많은 공통점들에도 불구하고 이 두 사람의 생애는 많이 다르니 참으로 기이하다. 허생이 비록 가난한 서생이지만 나름대로 자신의 뜻을 펼쳐보기도 하고 그로 인해 세간의 인정도 받게 되고 마지막에 가서는 자신이 뜻한 바대로 살아가는 비교적 성공적인 삶을 누린 반면, 당대의 명문가에서 태어난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스스로를 세상에서 어긋나 있고 시대에서 벗어나 있는 자로 여기는 이러한 ‘아웃사이더’ 의식이 외부로 향하게 될 때, 당대의 부패한 권력 앞에서 고통 받는 힘없는 민중들이나 사회의 그늘진 구석에 웅크린 불우한 소수자들에게로 시선이 가 닿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겠다. 특히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서얼이라는 출신 성분 때문에 관직 등용의 기회가 애초부터 봉쇄당한 서얼출신 인재들에 대한 그의 관심과 애정은 대단했다. 그가 친하게 지냈던 나는 큰 고을의 수령이 되었는데, 마침 자네가 사는 곳과 가까우니 어머니를 모시고 이곳으로 오시게. 내가 의당 절반의 봉급으로 대접하리니 결코 양식이 떨어지는 지경에는 이르지 않을 것이네. 자네와 나는 처지야 비록 다르지만 취향은 같네. 자네의 재주는 진실로 나보다 열 배나 뛰어나지만 세상에서 버림받기는 나보다 심하니, 이 점이 내가 언제나 기가 막혀 하는 일일세. 나는 비록 운수가 기박하기는 해도 이천 석짜리 벼슬을 여러 차례 하여, 오히려 달팽이가 침 바르듯 스스로 적실 수 있지만 자네는 입에 풀칠도 면하지 못하는구려. 세상의 불우한 사람은 모두 우리들의 책임이네. 밥상을 대할 때마다 부끄러워 문득 땀이 나며, 음식을 먹어도 목에 넘어가지 않으니 빨리 빨리 오시게. 비록 이 일로 비방을 받는다 해도 나는 전혀 개의치 않겠네. (57~58쪽) 세상에 불우한 사람이 존재하는 건 바로 내 책임이라는 인식은 지식인으로서의 양심에서 우러나온 진심 어린 고백일 테지만, 사실 그 책임 소재를 따지자면 당시 부패한 지배 권력과 편협한 사회 구조 그리고 고루한 철학에 물든 시대 정신 등을 거론해야 할 것이다. 이 책에서도 몇 편 소개되고 있는 날카로운 비판 의식과 강력한 개혁 의지로 가득 찬 그의 글들은, 이처럼 삶의 고비마다 그가 마주친 부당한 사례들에 대해서 깨어있는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서 면밀하게 관찰하고 깊이 있게 사유한 바를 적은 결과물일 것이다. 지식의 공유와 실천을 주장하고 있는 「학론(學論)」, 출신이나 배경이 아니라 재능에 따라서 공정하게 인재를 등용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 「유재론(遺才論)」, 사사로운 이해관계만을 앞세우는 패거리 문화가 횡행하는 정치 풍토를 질타하고 있는 「소인론(小人論)」 등이 바로 그런 글들이다. 그 중 내게 가장 인상적이며 큰 울림을 준 것은 백성, 특히 호민들이 지닌 혁명성에 주목하고 있는 「호민론(豪民論)」이었다. 천하에 두려워할 만한 것은 오직 백성뿐이다. 백성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수해나 화재, 호랑이나 표범보다 더 크다. 윗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바야흐로 그들을 업신여기고 길들여서 모질게 부려먹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대저 이루어진 것을 즐기느라고 항상 보는 것에 구속되어 있는 자들은 순순히 법을 받들어 윗사람들에게 부림을 받으니, 이는 항민(恒民)이다. 항민은 두려워할 만한 자가 못 된다. 매섭게 빼앗겨서 살갗이 벗겨지고 뼈골이 부서지며 집안의 것을 다 내놓고 땅의 소출을 바쳐서 끝없는 요구를 제공하느라 근심스레 한탄이나 하면서 윗사람을 원망하는 사람은 원민(怨民)이다. 원민도 꼭 두려워할 만한 존재는 아니다. 푸줏간 안에 자취를 감추고 몰래 다른 마음을 키우며 천지 사이를 흘겨보다가 요행히 시대의 변고라도 있으면 자기가 원하는 바를 팔고자 하는 이는 호민(豪民)이다. 대저 호민은 매우 두려워할 만하다. 호민은 나라의 틈새를 엿보고 일의 기미가 기세를 탈 만한 것인가를 엿보다가 논두렁 위에서 팔을 휘두르며 한 번 크게 외치면 저 원민들은 소리를 듣고 모여들며 도모하지 않았어도 함께 소리를 외친다. 저 항민 역시 살기를 구하여 호미, 고무래, 창자루 등을 가지고 가서 그들을 따라 무도한 놈들을 죽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진나라가 망한 것은 진승(陳勝), 오광(吳廣) 때문이었고, 한나라가 어지러워진 것 또한 황건적 때문이었다. 당나라의 쇠미함에 왕선지와 황소가 그 틈을 타서 결국 이 때문에 사람과 나라를 멸망시키고서야 그쳤다. 이는 모두 백성을 모질게 대하여 스스로를 봉양했던 허물인데 호민은 그 틈을 탈 수 있었던 것이다. 대저 하늘이 임금을 세우는 것은 백성을 기르기 위함이지 한 사람으로 하여금 위에서 방자하게 눈을 부릅뜨면서 도저히 채우지 못한 엄청난 욕심을 채우도록 하자는 것은 아니었다. 진나라와 한나라 이래의 재앙은 당연한 결과였지 그들의 불행이 아니었다. (199~201쪽) 이 글이 자못 불순하게 읽히는 것은 이러한 일반론에 이어서 당시 시대 상황에 대한 주의 깊은 관찰과 날카로운 비판을 아울러 함께 펼쳐 놓고 있기 때문인데, 그로부터 4세기가 지난 뒤에 이 글과 마주친 한 평범한 독자의 마음까지도 뒤흔드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 사이에 문물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세상이 돌아가는 사정은 그때나 지금이나 그다지 크게 변한 게 없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 단지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옛 사람의 글에서 읽어내는 세상이 지금 세상과 그다지 다를 바 없음을 발견하는 일이란 몹시도 서글픈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옛 사람의 글들을 찾아서 읽는 것이겠다. 특히나 삶의 모습에 이르러서는 ‘그다지’가 아니라 ‘조금도’ 변한 게 없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닮아 있으니 더욱 그렇다. 이 책에서도 돋보이는 글들은 이처럼 지금 우리들 삶의 모습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일상의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생활 속에서 길어낸 자잘한 생각들을 보여주고 있는 글들이다. 점 치러 다녔던 일을 적은 일화, 꿈과 해몽에 대한 나름대로의 의견, 구전되어 내려오는 이야기를 적은 글, 자화상을 그리듯이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쓴 노래, 책을 읽거나 그림을 보고 적어 놓은 짧은 감상문, 너무나 일상적인 삶의 세목들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 이런 글들을 읽고 있노라면, 그가 쓴 『홍길동전』이 연상시키는 혁명적인 이상 세계를 꿈꾸는 비범한 혁명가 처마엔 빗물 쓸쓸히 떨어지고, 향로엔 가느다랗게 향기 풍기는데, 지금 친구 두엇과 함께 소매 걷고 맨발로 방석에 기대앉아서 하얀 연꽃 옆에서 참외를 쪼개 먹으며 번우한 생각들을 씻고 있네. 이런 때 우리 여인(汝仁, 종놈에게 우산을 가지고 대기하도록 해 놓았으니 가랑비쯤이야 족히 피할 수 있으리. 빨리 빨리 오시게나. 모이고 흩어짐이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런 모임이 어찌 자주 있겠는가. 흩어진 뒤에는 후회해도 돌이킬 수 있겠는가. (60~61쪽)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이 편지를 받자마자 마누라의 따가운 눈총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친구를 찾아나서는 한 사내의 입가에 가득 퍼지는 흐뭇한 미소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 얼마나 좋을 것인가!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낸 절친한 친구들을 모두 서울에 둔 채 머나먼 타국에 나와 살고 있는 나의 처지로서는 이제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 저절로 부러운 마음이 차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참 우연찮게도 이 책을 거진 다 읽어갈 무렵, 서울의 고등학교 동창 친구로부터 출장으로 이곳을 잠깐 방문하게 된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그리고 또 며칠 뒤에는 고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또 다른 친구 한 명도 역시 출장으로 여기 오게 될 것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 동안 가족들이나 한국에서 내가 몸담았던 직장의 동료들 몇몇이 방문한 적은 있었어도 내 친구들이 찾아온 적은 한번도 없었는데, 이번 11월 중순에 1주일 간격으로 두 명이나 온다고 하니 이 무슨 경사란 말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꼈던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을 누추한 내 집이지만, 서울에서 온 친구와 마주 앉아 포도주 한 잔 나눌 때를 기다린다. 그때 내가 풀어놓을 이야기 보따리 속에는 필히 |
|
허균,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하여 소설 홍길동의 저자로 잘 알려진 허균(許筠, 1569~1618)은 자유분방한 삶, 파격적인 정치가, 사회모순을 비판한 문신 겸 소설가, 시대의 이단아 등으로 불리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뿐 아니라 오랜 시간이 지난 오늘날에 여전히 주목받고 있다. 허균에 대한 이러한 다양한 시각은 그만큼 허균의 삶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하지 못한 결과라는 반증이 되기도 한다. 허균(許筠, 1569~1618)은 자는 단보(端甫), 호는 교산(蛟山), 학산(鶴山) 등을 주로 사용한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문학가다. 문과에 급제했으며 여러 벼슬을 거치는 동안 부침이 많았다. 1617년에는 인목대비 폐모론을 주장하며 대북파의 일원으로 왕의 신임을 받았으나, 광해군 때인 1618년에는 반란을 계획한 것으로 지목되어 처형당했다. 다양한 시문을 남겼으며 ‘홍길동전’과 ‘호민론’, ‘탕무혁명론’, ‘유재론’등의 개혁사상가의 면모를 보이는 글과 우리나라 식품사와 관련된 최초의 저술로 꼽히는 ‘도문대작’ 등 수많은 글을 남겼다. 이 책 ‘누추한 내방'은 허균의 글들 중에서 척독을 따로 분류하고 자신의 일상과 벗들과의 교류 등을 주제로 한 산문, 읽기와 쓰기에 관련된 독서론 그리고 호민론과 같은 혁명적 사상가의 의식이 뚜렷하게 보이는 논설과 기타 다양한 글을 가로 뽑아 엮은 책이다. 허균이라고 하면 그동안 단순하게 소설 홍길동의 저자나 여류 문인 허난설헌의 동생, 파란만장한 삶을 산 불우한 선비라는 식으로 이해하는 범위를 벗어나 허균이 직접 쓴 산문을 통해 그의 일상과 더불어 뚜렷한 미래지향적 가치관을 가진 개혁사상가의 삶을 보다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허균의 글은 언제나 변화무쌍하면서도 신선하여 좋다. 피를 토하는 혁명가의 모습이 들어있는가 하면 어느새 다정다감한 남편의 웃음이 흐르기도 하며, 샌님의 말투가 배어있는가 하면 벗을 불러 술을 마시는 풍류재자의 몸짓이 보이기도 한다." 허균의 글을 번역한 김풍기의 허균의 글에 대한 느낌을 전하는 글이다. 허균의 글을 통해 허균이 가진 감정과 의지가 발현되고 때론 좌절되는 순간마다 어떤 생각을 하였는가를 보는 맛이 참으로 좋다. 이와 더불어 허균의 심정을 짐작하거나 이후 행적과 연결시키면서 자신의 독특한 시각으로 허균을 이야기하는 번역자 김풍기의 해설 또한 허균의 글만큼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글이다. 두 글을 나란히 놓고 읽어가는 재미가 보통이 아니다. 한 개인을 바라볼 때 다른 이들의 시각이 아닌 본인의 글 속에 담긴 감정과 의지를 바탕으로 알아가는 것이 기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허균의 삶을 그의 글을 통해 알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허균이 모든 사람들이 차별 없이 살아갈 세상을 꿈꾸며 바라보았을 하늘과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는 400여 년이 지난 오늘의 하늘이 다르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