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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코젤렉의 개념사사전5 -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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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만>평화Friede는 인도 게르만어의 어근 pri-(사랑하다,보호하다)에서 기원한 것으로,사회적으로 폭력행위가 중지된 상태를 의미하며, 오직 법률 공동체 내에서만 가능했다.곧 평화와 법은 긴밀하게 결합되어,법의 영향력이 미치는 국내에서는 폭력이 배재된 반면, 법의 영향력이 없는 국가간에는 폭력이 불가피했다.<기독교신학>이후 기독교신학을 통해 우주적 질서가 적용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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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만>

평화Friede는 인도 게르만어의 어근 pri-(사랑하다,보호하다)에서 기원한 것으로,

사회적으로 폭력행위가 중지된 상태를 의미하며, 오직 법률 공동체 내에서만 가능했다.


곧 평화와 법은 긴밀하게 결합되어,

법의 영향력이 미치는 국내에서는 폭력이 배재된 반면, 법의 영향력이 없는 국가간에는 폭력이 불가피했다.


<기독교신학>

이후 기독교신학을 통해 우주적 질서가 적용되었는데 

특히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독교에 스토아 사상을 접목하여, 

평화는 역사적 구속을 넘어 절대적으로 통용되는 질서이므로 신의 평화를 완전한 평화로 지정했다.

반면 인간의 평화는 불완전한 평화이므로 시민의 합의에 따라 완전성을 갖추게 된다.


<중세>

중세의 평화는 공공의 유익을 추구하는 세속적인 게르만적 이념요소와 

영원한 안락을 추구하는 신학적인 기독교적 이념요소들이 관철되어

영원한 목적으로 복종하는 사람들을 이끄는것이 된다.


그런데 가톨릭 교파의 분열이 일어나면서 평화도 분열이 일어나서

이단자에게는 평화가 없었고 말살을 당해야 했으며,

정의롭고 참된 평화는 전쟁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18세기>

그러나 30년 전쟁을 겪으면서 국가간에는 다시금 안전이 중시되고, 여러 관점에서의 평화가 논해진다.


칸트를 필두로 한 계몽주의 평화는

이성에 의한 합법적인 정의의 상태로서의 평화를 내적평화라고 규정짓고, 내적 평화와 외적평화는 서로 연결되어있으므로, 

먼저 국내평화의 구조를 변화시키면 국제평화는 이루어진다고 했다.


경제적,공리주의적 합리주의의 평화

아담스미스의 경제이론에 힘입어 상업과 제조업이 통치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정세에 따라

무역의 자유에 의해 보증되는 것이 된다.


프랑스혁명가들이 추구한 평화는 무력이나 정치적 계산에 의해 형성된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박애로부터 이에 반대되는 것들(절대주의 국가체제)이 먼저 제거되기만하면 '조화'에 의해 저절로 생기는 평화였


<19세기>

19세기에 들어서면 평화는 '국가들 간의 평온한 관계의 복구'(평화조약의 체결)을 의미하게 된다.


그러나 국가 내부는 사실상 분쟁상태로 드러났고, 계약으로 체결된 국가간의 평화는 단순한 휴전으로 드러나면서,

불공평한 정치상황의 토대위에서 지속된 평화는 표면상의 평화일뿐이라는 비판의 시각이 나오게 된다.

더불어 국력신장 또는 민족적 이익을 위해 전쟁은 필요하다는 확신에 의해


부패한 평화를 벗어나 신선하고 호쾌한 전쟁을 일으키는것이 큰 영향력을 갖게 되고 , 전쟁 및 무기 기술의 발전은 이것을 뒷받침해준다


<현대>

그러나 핵무기가 동반된 세계전쟁을 겪으면서 

평화는 추상적인 관념이나 부차적인 조건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존립을 위한 기본적인 조건이 되어버렸고, 

이를위해 '국가들간의 지양된 폭력행위'라는 냉전이라는 개념이 창안된다.


m******5 2018.02.2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