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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공기가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면, 초고속 인터넷으로 연결된 디지털 세계는 그야말로 인간을 초인으로 만들어준다. 현실의 내가 아무리 남루하더라도 온라인 게임 속에서는 영웅이 되어 적들을 물리치고 사람들의 찬사와 동경을 한 몸에 받을 수 있고, SNS에서는 누구도 부럽지 않은 완벽하고 세련된 일상을 전시할 수 있다. 집에 있든 어딜 가든 항상 새로운 컨텐츠로 가득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으니 일상은 따분할 틈이 없다. 재미없는 컨텐츠는 손끝으로 간단히 밀어젖히면 그만이다. 사람들과 시공간을 초월하여 소통할 수도 있고, 원하는 물건이 보이면 번거롭게 매장을 돌아다닐 필요 없이 터치 몇 번으로 집으로 배송할 수 있다. 물론 아직도 불편한 요소들이 많지만, 기술이 발달하면 개선될 것이다. 자유는 기술의 문제가 되었다. 기술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런가. 스마트폰은 광대한 정보의 바다를 헤집고 돌아다니는 모터보트와도 같다. 그 속도가 주는 쾌감에 한 번 적응하고 나면 일상의 느릿함과 번거로움은 도저히 견딜 수 없을 지경이다. 차라리 완벽한 가상 세계가 생겼으면 하는 생각을 하는 이들도 꽤 될 것이다. 어쩌면 이번 세기에 가능할지도. 그렇게 된다면 디지털 세계로의 대대적인 이주가 벌어질 것이다. 그 지경에 이르게 된다면 현실 세계는 단지 생체를 유지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잠깐씩 들리는 휴게소 정도로 취급될지도 모르지. 아직은 요원한 일이다. 더군다나 신체를 가진 존재인 우리는 어쨌거나 현실에 발붙이고 살아가야 한다. 인터넷이 아무리 빠르고 편리하다 해도 그 잠재력은 우리의 신체성에 의해 제약되어 있다. 좋은 삶을 위해서는 기본적인 신체적 필요와 욕구를 충족해야 하고, 애정과 인정과 소속이라는 심리·사회적 욕구가 충족되어야 한다. 이 모든 활동은 신체라는 매체를 통해 현실 세계라는 무대 위에서 타인과의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이뤄진다. 인터넷이 제공하는 경험은 아직은 어디까지나 대체물에 불과하다. 하지만 현실에서 필요와 욕구를 충족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는 이 대체물조차 간절해지기도 하는데, 이것이 심화되면 인터넷 의존으로 발전한다. 급기야는 현실 세계와 자신의 신체를 방치하여 인간관계와 건강을 망쳐버리기도 한다. 급기야 이번 생은 망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다시 한번 온라인 세계로 도피한다. 그곳에서 대안적 삶을 구상해보지만, 현실적인 기반과 유리되어 있기에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이뤄질 수 없다. 저자가 보기에 인터넷 의존은 크게 세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온라인 게임, 사이버 음란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그것이다. 이들에 대한 중독이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성은 현실 세계에서 실현할 수 없는 욕구와 갈망을 대리 실현시켜 준다는 것이다. 온라인 게임에서의 성공은 현실 세계에서의 사회적 인정을 대체한다. 사이버 음란물은 현실에서의 성적 욕망을 대체한다. 소셜 네트워크는 실제 만남을 대체한다. 하지만 이것들은 어디까지나 대체물일 뿐, 인간의 필요를 궁극적으로 해소해주지는 못한다. 여기서 비롯되는 미충족감은 대체물에 대한 더 큰 갈망과 집착으로 이어지고, 나아가 그 자체를 목적으로 여기게 됨으로써 중독에 이르게 된다. 이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든다. 즉 대체물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개인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고 부적응적으로 만들기에 실제 현실에서의 사회적 인정과 이성관계와 인간관계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다양한 디지털 미디어가 존재해왔지만,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은 미디어에 대한 병적인 의존은 거의 보고되지 않았다. 반면 어떤 미디어든 인터넷 기능이 결부된 미디어에서는 의존 행동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인터넷 자체가 지닌 특성이 중독을 야기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인터넷의 특징은 새로움성과 상호작용성이다. 컨텐츠가 제한된 오프라인 미디어와 달리 인터넷은 항상 새로운 컨텐츠가 업데이트된다. 또한 인터넷의 강력한 연결성은 타인과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한다. 인터넷의 이 같은 특성은 새로운 자극에 대한 추구, 가상 공간에서의 과장된 통제감 내지는 전능감, 타인과 연결되고 소통하고자 하는 친사회성 등 인간에게 내재된 다양한 기본적인 욕구를 손쉽고 빠르게 충족시킨다. 하지만 문제점은 역시 이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에 있다. 디지털 공간에서의 충족은 대체물에 불과하므로, 이것에 빠져드는 것은 마치 목이 마른 사람이 설탕물을 마시는 것과 같다. 이루어질 듯하다가도 끝내 충족되지 못한 갈망은 더 큰 불만으로 되돌아온다. 미디어 자체의 특성 외에도 충동성, 주의력 결핍, 우울증, 높은 불안 수준 등 개인적 요인이 인터넷 의존을 설명하는 요인이 된다. 위 특질들이 높을 때 인터넷 의존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인터넷 의존을 높이는 사회적 요인들도 꼽을 수 있는데, 가족관계와 친구·연인 관계 등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거나 소외를 겪는 이들도 인터넷 세계로 도피할 가능성이 크다. 이외에도 인터넷 접근성이 얼마나 용이한지와 같은 인프라적 조건이나, 지나친 성과 지향적 문화 역시 현실에서의 피로감에 지친 이들을 인터넷으로 몰아넣는 조건이 될 수 있다. 특히 현실에서 놀 거리를 완전히 잃어버린 채 학업 성취의 압박에만 시달리는 수많은 아이들이 게임에 빠져드는 것에 대해, 저자는 부조리한 현실 사회에 대한 ‘무의식적인 반란’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까지 말한다. 인터넷 의존이 발생하는 데는 중독자 개인이 의지가 약하고 무능해서만이 아니라, 그들을 가상 세계로 몰고 가는 불가피한 사회 구조적인 원인이 있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치료사인 저자는 다소 진지한 의미에서의 중독에 초점을 두고 있어서 상태가 꽤 심각한 사례들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본문에 등장하는 생생한 사례들도 식음을 전폐하고 게임을 하다가 사망하는 사건, 강제로 인터넷을 끊어버리자 부모를 권총으로 살해하는 사건 등 그 정도가 실제 마약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질 정도로 충격적이다. 따라서 그에 대한 치료적 개입을 서술하는 4장의 내용 역시 다소 전문적이다. 이것을 일반인이 실제 일상생활에서 적용하기는 어려워 보이고, 전문 치료사들이 인터넷 중독자들을 어떻게 구별하고 치유하는지 그 과정에 대한 전반적인 스키마를 형성하는데 참고할 만하다. 치료보다 중요한 것은 예방이다. 저자는 디지털 미디어가 가득한 세상을 살아갈 아이들을 걱정하면서, 아이의 성장 발달 과정에서 어른의 역할을 강조한다. 특히 발달 초기는 신체를 통해 세상과 풍부하게 소통해야 하는 시기다. 아이는 세상을 직접 보고 듣고 만지면서 세상에 대한 실감을 형성하고 타인과 교류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신체성에 기초한 감각-운동 협응의 발달이 이후의 인지발달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일찍이 피아제가 강조한 바 있다. 디지털 미디어를 접하기 전에 신체라는 ‘아날로그’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겪어내고 세상과 타인에 대한 표상을 형성할 수 있는 탄탄한 토대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디지털 미디어를 지나치게 일찍 접하는 것이 해로운 이유는 컨텐츠 자체의 유해성보다도 거기에 매달려 있느라 기초적인 신체·정서·인지적 발달이 방해받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디지털 미디어는 지나치게 빠르고 편리하고 비인격적이어서 아직 이를 비판적으로 활용할 판단력이 형성되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균형 잡힌 심성 발달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아이들도 직관적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터치스크린에 그림이 그려지는 원리는 어지간한 어른들도 모른다. 디지털 미디어에 익숙한 채 성장한 아이들은 현실의 기본적인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데서부터 혼란을 겪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다고 무작정 미디어를 죄악시해서는 안 된다. 현대 사회에서 디지털 미디어를 완전히 배제하고 살 수 없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아이에게나 어른에게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미디어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 능력, 즉 미디어 리터러시다. 이는 미디어를 기술적으로 능란하게 사용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것에 의존하거나 지배되지 않고 바람직한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현실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미디어 활용 능력은 계속 중요해지겠지만, 발달 단계를 무시한 조기교육은 폐해를 불러오기 마련이다. 인간 본유의 신체성을 유념하고 이해해야 한다. 신체란 우리의 이상과는 무관하게 그 자체의 논리를 따라 움직이는 자연(nature)이니까. 도시화로 한 번 압축된 현대인의 시공간은 디지털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또 한 번 대폭 압축되었고, 한나절 단위로 움직이던 인간의 신체 리듬은 초 단위의 리듬을 따라잡지 못해 각종 마찰음을 일으키고 있다. 인지 발달 장애, ADHD, 디지털 번 아웃, 그리고 디지털 중독,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더 나은 기술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 하고, 여기서 인간의 신체성은 다시 한번 소외된다. 기술에 신체와 정신을 의존할수록 우리의 신체성은 쇠약해지고, 이를 다시 기술력으로 극복하려 한다. 이러한 악순환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디지털 기술을 영위하는 주체이자 근간인 신체성이 완전히 고갈될 때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