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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화원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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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화원의 향연-이야기 장자철학’은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세상밖에 있는 남화원, 무하유지향 이라는 고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이다. 장자와 노자, 공자, 맹자나 그의 제자들 혹은 이 고을에 사는 사람들이 주된 등장인물들이며 그들에 대해, 혹은 그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작가의 시각에서 풀어나가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남화원은 장자 책의 다른 이름이기도 한데 결국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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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화원의 향연-이야기 장자철학’은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세상밖에 있는 남화원, 무하유지향 이라는 고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이다. 장자와 노자, 공자, 맹자나 그의 제자들 혹은 이 고을에 사는 사람들이 주된 등장인물들이며 그들에 대해, 혹은 그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작가의 시각에서 풀어나가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남화원은 장자 책의 다른 이름이기도 한데 결국 남화원의 인물들의 생각이 곧 장자의 생각인 것이며 서문을 통해 보면 작가가 장자라는 책을 읽으며 떠오른 생각을 적은 것이라고 했으니 장자의 생각에 대한 작가나름의 결론을 정리한 것이 ‘남화원의 향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도 각 장의 개별이야기 마다 한자로 이루어진 원문과 원문에 대한 번역이 한페이지 정도로 짧게 담겨있고 그 앞에 펼쳐지는 이야기가 두세줄의 장자의 생각을 작가가 상상하고 덧붙여 만든 우화형식의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 장자 철학에 관한 이야기라고 해서 흔히 우리가 알고있는 ‘호접지몽’, ‘물아일체’, ‘무위자연’과 같은 장자 관련 개념들을 그의 일화와 함께 다루어 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보았는데 그당시 장자의 사유들이 어떻게 세상과 맞물려 사람들의 생활과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지 또한 장자나 노자와 대립되는 입장을 지닌 공자의 생각은 어떠한지 등을 현대의 작가가 재치있게 그려내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어린 시절 읽었던 이솝우화와 같이 풍자적이고 함축적인 간결한 전개의 여러 이야기의 모음이다. 각각의 이야기들이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는 것 같지만 그것의 깊은 의미를 발견해 내는 것이 장자 철학에 관해 문외한인 나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있던 하늘과 땅사이에서 살려고 하는 성인과 하늘과 땅 밖에서 소요하려고 하는 진인에 대한 개념이나 지혜와 덕보다 앞선 실천에 대한 것, 말과 의미와 사실여부의 구분,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에서 실제로 그것의 존재여부는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며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이 실체에 대한 앎이 아닌 그것의 인과론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 등 철학이라고 하는 것만이 고민해 볼 수 있는 문제들을 정리해 놓은 것은 공자의 유교문화로 사고하는데 익숙해진 우리에게 있어 발상의 전환, 사고의 다양성을 길러줄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책이라는 점에서 의미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세 번째 책갈피를 들추고 나온 장님들 이야기 부분이 가장 좋았다. ‘동일성’문제에 대해 다룬 이야기들이 많았는데 앞서 하루살이, 쓰르라미, 뱁새, 거북이가 등장하는 그들은 모두 동갑내기들 이라는 이야기에서 거북이는 나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이런 말을 한다. “누구에게나 다 있고 누구에게나 다 없는 그런 일은 있을 것 같지 않군. 그런 것이 꼭 필요할 것 같지도 않고.” 우리는 모두에게 공통되는 몇가지 개념들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중 나이로 나타나는 시간은 대표적인 모두에게 다 적용되고 또한 인정되는 개념이다. 그러나 하루만 살아가는 하루살이에게는 낮이라는 시간 개념만 있을 뿐 밤이 없고 겨울을 보지 못한 쓰르라미에겐 겨울이 없고 춥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또한 수백년을 살아가는 거북이에게는 숫자로 세는 나이가 의미없는 것이다. 결국 각자의 상황과 필요에 의해 있고 없음이 결정된다는 말이다. 이어지는 이야기에서는 장님들이 코끼리의 각기 다른 부분을 만지고는 코끼리라는 하나의 사물에대해 두가지 세가지 사실의 존재여부에 대해 논의한다. 마지막으로 ‘조삼모사’의 고사와 관련하여 3+4 와 4+3이 과연 같은것인지, 숫자적으로만 같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동일성을 유지하는 것인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결국 모든 일에서 답을 구하는 것 또한 동일성의 원칙을 따르는 것이며 그러므로 그저 생각할 뿐 어떤 결론을 내리는 일을 유보할 수 밖에 없고 그것이 대해 시비를 분명히 하지 않는 용기가 없는 것을 다행이라고 말한다. 평소 어떤 것의 절대적 동일성 보다도 상대적 동일성, 예를 들어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생각과 평가가 절대적이기 보다는 늘 상대적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 오던 나였지만 이 이야기 속에서는 시간이나 공간과 같은 보편적이고 개념적인 것들 또한 동일성의 원칙을 적용할 수 없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이야기를 읽고 동.서양 사유의 대표적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은 모든 사물에는 이데아라고 하는 중심과 본질이 있지만 세상사람들은 그 변화하는 현상만을 포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결국 서양사상의 대표주자인 플라톤은 궁국적인 하나의 본질의 존재에 대해 인정하는 반면이 동양사상의 대표주자인 장자는 어떤 것에 있어서도 하나의 원형이나 본질의 존재에 대해서 부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개방성과 다양성이 과거의 유산으로만 묻혀있기 보다는 다원화를 지향하는 현대에도 적합한 사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화원의 향연’을 통해 고전이 의미있는 이유는 이처럼 수세기에 걸쳐 세대를 관통하는 지혜를 전달해 주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q******s 2007.09.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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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생각]세상 밖의 이야기 - 남화원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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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道)를 도라고 말할 수 있으면 도가 아니다’라는 도덕경의 첫 구절에서 사람들은 ‘참을 수 없는 어려움’을 느낀다고들 한다. 그 말이 너무도 어렵고 난해하여 궤변론으로 유명했던 명가(名家) 철학자인 공손룡을 떠올리게끔 하기도 한다. 도가와 불교의 사유방식을 배우려면 이성이나 기존지식은 한쪽에 고이 모셔다 놓고 와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리고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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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道)를 도라고 말할 수 있으면 도가 아니다’라는 도덕경의 첫 구절에서 사람들은 ‘참을 수 없는 어려움’을 느낀다고들 한다. 그 말이 너무도 어렵고 난해하여 궤변론으로 유명했던 명가(名家) 철학자인 공손룡을 떠올리게끔 하기도 한다. 도가와 불교의 사유방식을 배우려면 이성이나 기존지식은 한쪽에 고이 모셔다 놓고 와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리고 이해했다고 해서 철학이 완성되었다는 것도 아니다. 경전은 단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므로) 그러나 동양적 사고방식을 서양철학의 사유로 측정하고 판단해서 같은 결론을 얻어낸다면 어떨까? 상당히 모험적이고 당돌한 이 생각이 ‘남화원의 향연’이라는 이야기 장자 철학을 읽으면서 떠올랐다.

 

칸트의 사유방식으로 생각해보는‘장자(莊子)’

 

‘남화원의 향연’의 ‘말의 덫’이라는 장을 보면 맹랑자와 무하자의 대화가 등장한다. 맹랑자가 소크라테스처럼 대화와 질문으로 어떠한 결론으로 이끌어가려는 사람이라면 무하자는 그 대화 상대라고 할 수 있겠다.

먼저, ‘불은 뜨겁다’는 말을 가지고 혼란은 시작된다. 맹랑자는 ‘불은 뜨겁다’라는 말이 있고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손가락을 입에 대고 ‘불’이라는 말을 해도 뜨거울 것이냐고 질문한다. 그러나 무하자는 ‘사실의 불이 뜨거운 것이지 불이라는 말 자체가 뜨거운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불’이라는 글자를 써 놓고 그 위에 냄비를 올려놓는다고 라면이 끓는 것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이에 대해 맹랑자는 ‘말은 의미만을 가지고 있되 사실은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것을 칸트의 감성과 오성으로 분석하면 숨겨져 있는 오류를 발견해 낼 수 있다.

감성은 수용능력을 말하는 것으로 시간과 공간이 이에 해당하며 이를 직관형식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오성은 자발적으로 사유 가능한 능력이며 이에 해당한 여러 논리적 판단들과 함께 범주형식이라고 표현한다. 감성과 오성을 정립한 후에 칸트는 그 형식들이 규범적으로 쓰일 수 있는 전제를 제시한다.

 

내용(직관)없는 사고는 공허하고 개념이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즉, 감성과 함께 하지 않은 오성은 공허하고 오성과 함께하지 않은 감성은 맹목적이라는 말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제 ‘불은 뜨겁다’라는 말에 담긴 오류를 지적하며 맹랑자가 했던 말을 분석해보자.

 

말은 의미만을 가지고 있을 뿐 사실은 가지고 있지 않다.

 

말은 어떠한 선언이나 명제를 뜻하는 것이므로 ‘판단’이라고 생각해보자.

의미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개념'만을 가지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으며 사실은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은 ‘직관’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즉, 개념만을 가지고 있되 직관은 가지고 있지 않은, 직관 없는 개념의 판단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말은 의미만을 가지고 있을 뿐 사실은 가지고 있지 않다.

= 개념만을 가지고 있을 뿐 직관은 가지고 있지 않은 판단

 

이것은 이미 칸트가 공허하다고 입증한 것이다. 만약 내 앞에서 장작불이 타고 있고 그 불 가까이에 간다면 나는 그 불을 뜨겁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불’이라는 개념을 생각하고 그것이 ‘뜨겁다’라는 판단을 내렸다고 해서 불이라는 말 자체를 한다고 마술처럼 뜨거움이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경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시간과 공간의 직관 형식을 갖지 않은 오성의 제멋대로 판단인 것이다. 직관 없는 사고의 비슷한 예인 ‘황금 산’과 마찬가지다. 황금산은 충분히 사고할 수 있는 개념이다. 둥근 삼각형이 이미 개념 자체에 모순이 있는 것을 안다면 사고할 수 있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황금 산이 개념에 머무를 뿐 우리가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감성의 형식으로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황금산은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인식할 수 없다.(존재하지 않았다.) 불은 나의 생각에 의해 말로써 표현되었을 뿐이지 아직 시·공간적으로 인식된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단순히 말에 지나지 않은 불이 뜨거울 순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모기가 태산을 짊어지고 바다를 건넜다.’는 말도 오류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인식될 수 없다. 인식이 불가능한 이유는 그 개념을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줄 감각자료들이 없기 때문이다. 모기가 태산을 짊어지고 바다를 건너는 모습은 우리는 볼 수도, 소리를 들을 수도, 냄새로 맡을 수도 없다. 그것은 단지 직관 없는 오성의 오류일 뿐이며 고삐 풀린 이성의 망동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맹랑자가 말하는 ‘말(판단)’은 위에서 전제했던 일반적인 의미로서의 판단이 아니다. 즉, 감성과 오성에 합동작전에 의해 내린 판단이 아니라 감성의 굴레를 벗어 던진 판단이다. 장주의 호접몽이 나 라는 존재와 나비라는 존재의 구분을 벗어던진 것처럼, 도가적 사유는 인식의 속박을 신경 쓰지 않는다. 그것을 염두하고 ‘말=판단, 의미=개념(오성), 사실=직관(감성)’이라는 공식을 이용한다면 맹랑자의 다음 대화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말에는 사실(직관)은 있을 수 없네.

; 우리, 인식이라는 멍에를 벗어 던지세

 

그러므로 어떤 말도 그 자체로서는 거짓말이 될 수 없다는 것이네.

; 그렇다면 우리는 모든 것이 참인 세계에 닿을 수 있다네!

 

자네가 거짓말이라고 하는 것은 아직도 말에서 사실을 찾고 있는 때문이라고 생각하네.

; 만약 아직도 인식과 구분을 찾는다면 그 진실한 세계를 볼 수 없을 것이네.

 

그러나 인간 사회에서는 인식이나 직관 없는 판단은 불가능하므로 맹랑자와 무하자는 이것을 안타까워한다.

 

무하자 그러나 말(판단)은 실제로 사실(직관)과 무관하게 사용될 수 없지 않은가?

 

맹랑자 그렇지. 그래서 말이 있는 한 오해가 생기고 속아 넘어가는 거짓말이 없을 수 없지.

 

인간이 말을 할 수 있게 태어난 것은 불행한 일이다.

 

인간이 판단을 한다는 것은 물자체를 그대로 인식할 수 없는 인간이 인간에게 주어진 감성과 오성의 형식을 가지고 자의적으로 재단하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가치’라는 것이 생겨났다. 인간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선한 것이고 불리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악한 것이다. 그 기준은 철저히 인간 편향된 것이고 왜곡된 것이다. 마치 원음을 녹음하여 시디에 담아 재생하면 원음이 그대로 재생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디지털 신호로 원음을 흉내 낸 신호들이 재생되면서 실제와는 다른 왜곡이 발생하는 것처럼. 가치라는 인위적인 것이 생겨난 이상 충돌과 파괴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인간의 본성이 그것을 허락하기 때문이다. 노자와 장자가 공자를 그토록 조소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올바르지 못한 가치 판단으로 혼란을 겪는 인간사회를 바로 잡기 위해 예와 악으로써 교화할 것을 주장하는 공자. 본문에서도 표현된 것과 같이 사람 마음이 다 똑같지 않은데 일부러 잡아 당기거나 잘라 내어 예라는 액자를 씌우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장자가 생각하는 공자는 ‘노나라의 프로크루스테스’라고나 할까?

그러나 그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만약 완수된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예전의 무질서와 혼란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왜냐하면 춘추전국이 근 천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는데 그것으로부터 도가 철학자들은 인간의 본성을 충분히 간파했기 때문이다. 만약 인간이 교화된다 하더라도 인위적인 예로써 가능한 것이었다면 인위적인 가치들은 항상 충돌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다시 춘추전국의 참상이 재현될 것이다. 인위적인 것, 인간중심적인 것이 어떠한 파괴를 불러일으켰는지 이미 우리는 쌓고도 남을 실례들을 보유하고 있다.

이제 지나온 모든 가치들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시각을 정립하려고 노력하는 인류에게 도가철학은 하나의 길을 제시해 줄 것이다. 호젓한 산보를 즐길 수 있는 한적한 길. 헤겔이 우파니샤드를 침대 맡에 놓아두고 잠들기 전 탐독하면서 지혜를 얻었던 것처럼 우화와 선문답으로 가득한 이 책으로부터 독자들은 그 길을 먼저 걸어볼 수 있다.

r*****s 2007.09.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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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화원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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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화원의 향연' 이라는 제목을 잘 이해하기가 어려워 사전을 찾아봤다. '향연'이라는 말은 특별히 손님을 대접하는 잔치 라는 뜻인데, 이를 종합해 보면 남화원 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잔치 라는 의미가 된다. 이 책의 주된 배경은 '남화원'이라는 비현실적인 공간이다. 그리고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위대한 사상가로 꼽히는 공자, 맹자 뿐만아니라 노자, 묵자등 내로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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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화원의 향연' 이라는 제목을 잘 이해하기가 어려워 사전을 찾아봤다. '향연'이라는 말은 특별히 손님을 대접하는 잔치 라는 뜻인데, 이를 종합해 보면 남화원 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잔치 라는 의미가 된다. 이 책의 주된 배경은 '남화원'이라는 비현실적인 공간이다. 그리고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위대한 사상가로 꼽히는 공자, 맹자 뿐만아니라 노자, 묵자등 내로라 하는 쟁쟁한 사상가들이 등장한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때, 무언가 신비스러운 공간에서 일어나는 전래동화 같은 이야기가 주로 소개되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책 내용중 사람의 간을 회로 쳐서 먹는 도창이라든가, 노자가 무를 파는 내용이라든가, 동물들이 사람들을 욕하는 내용과 같은 것들은,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주로 다룬다는 점에서 전래동화와 비슷한 면모를 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는 그리 단순한 전래동화의 나열은 아니다. 이야기들이 단편으로 읽기 쉽게끔 나열되어 있어서, 비교적 빠르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야기의 내용이, 허황되고 우습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필자로써는 이해하기 힘든 구절들이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야기들이 짧지만 제각기 상징을 담고 있고, 독특한 사상이 투여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책에서 인상깊었던 점은 중국에서 떠받드는 사상가인 공자를 허례허식을 중시하는 어리석은 인물로 그렸다는데 있다. 그것도 노자나 묵자로부터 직접적으로 질타를 당하기도 하고 그의 행동은 '남화원'이라는 이색적인 공간에서는 다 부질없고 우스운 것이 되어 버린다. 공자는 항상 어두운 얼굴을 하고, 세상을 구하려고 천하를 돌아다니며 결국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이러한 내용은 이전에는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들이다. 왜냐하면 유학을 떠올릴 때면, 공자는 너무나 위대하고 대단한 인물이라서 감히 함부로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신적인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사상이 모두 옳다고 생각하는것은 아니지만, 감히 그가 그르다고 생각하고 말할 엄두도 못내었던 필자에게,  이 책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책에서 공자더러 '선생은 근심을 할 뿐, 소임은 한 가지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오.~~ 천하를 근심하는 일이 선생의 일이라면 근심하는 것으로 그치시오. 그 밖의 소임은 선생이 할 일이 아니오'라고 질타하는 부분이 나온다. 또한, 인상깊었던 구절이 있었다.

나는 옷이 남루하지만 선생은 마음이 남루하니 어찌된 일이오?
선생의 근심은 한 가지도 해결된 것이 없고 정신은 천 갈래 만 갈래로 흩어져
내 옷보다도 더 낡은 걸레 조각이 되어 가고 있으니, 천시를 머리에 얹고
지리를 발바닥에 깔고 사단을 도포자락에 매어 달고 다닌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오?

  어쩌면 이것은 단순히 가치관의 차이인지도 모르겠으나, 이 책은 주로 도교 사상의 자연스러움과 위대함을 독자들에게 알리는 데에 목적이 있다고 사려된다. 그러면서 그러한 사상을 직접적으로가 아니라 아주 간접적이고 미묘하게 설파하고 있는데, 그러한 예로는 "사람은 멍청이"라는 이야기에서 특히 잘 드러난다. 이 이야기에서는 오리, 학, 뱁새, 황새가 나와 사람들을 풍자한다. 사람은 누구를 흉내내거나 부러워하는 일을 즐겨하며, 서로를 비교하는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면, 아무런 문제가 생길것이 없는데 사람들이 비교하기를 좋아하고, 그것을 같게 만들려고 욕심을 부린다. 이 대목에서 고개가 절로 끄덕여 졌다. 필자 역시 일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남과 비교하기를 좋아하고, 남과 다름을 한탄하기도 하고 남을 따라 살려고 애쓴적도 많이 있었다. 이러한 것은 마음의 고통을 줄 뿐이고, 진정 나를 위해 사는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리의 대사 중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사람은 모르고 있는 거야"라는 대목이 인상깊었다.
  이와 같이 책에서는 주로 이야기를 중심으로, 독자로 하여금 깨달음을 얻게 하고 있다. 그리고 이야기 끝에 중간 중간에 섞여있는 격언들이 한번쯤 우리 인생을 돌아볼 만한 구실을 제공하고 있다. 재미로 가볍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과연 인생에서 중요한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좋은 책이다. 

i*****i 2007.09.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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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나와 관계없는 리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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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폈을 때 느껴지는, 알수 없는 느낌. 저자 서문에서부터, '이 책은 나와 관계없는 글이다.' 라고 쓰신 저자의 당당함. 그렇다. 그것이 바로 장자가 원하던 글쓰기 방식일 것이다.   송항룡 선생님은 거침없는 필력으로, 현시대적인 언어로 장자의 상념세계를 풀어나가셨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초심자가 장자에 대한 것을 읽기에 이 책은 약간 부담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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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폈을 때 느껴지는, 알수 없는 느낌.

저자 서문에서부터, '이 책은 나와 관계없는 글이다.' 라고 쓰신 저자의 당당함.

그렇다. 그것이 바로 장자가 원하던 글쓰기 방식일 것이다.

 

송항룡 선생님은 거침없는 필력으로, 현시대적인 언어로 장자의 상념세계를 풀어나가셨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초심자가 장자에 대한 것을 읽기에 이 책은 약간 부담이 되지 않을까 싶다.

 

주석서가 있다는 느낌도 없이 책이 진행되다가 미주에 주석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느껴지는 배신감은 뭐라 형용할 수 없었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초심자에게 어렵고, 전문가에게는 송항룡 선생님의 필력을 느낄 수 있었던' 그런 느낌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p****n 2007.09.1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