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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제국, 가야의 숨결을 되살린다'는 TV드라마 <김수로>가 인기인 모양이다. TV 시청으로 시간 빼앗기기 싫어 왠만하면 안보는지라 내용이 어떠한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 인구의 10% 정도가 김수로의 후손이라고 자처하는 현실에 시청률이 적어도 그 이상은 되겠구나 살짝 생각해본다. 한 분의 후손이 거의 600만명에 이르는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그렇게 많지 않을 듯하다. 항상 딴지나 걸던 이웃나라의 임나일본부 주장도 올 3월 '4-6세기에 일본의 야마토 정권 세력이 한반도 남부에서 활동했을 수는 있지만, 임나일본부라는 공식 본부를 설치해서 지배활동을 했다고는 볼 수 없다'며 한일역사공동위원회가 공표함으로써 다시 한번 가야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가야권에서 자랐고 현재 살고 있는 부산과 인접한 곳이 김해이며, 옆 동료도 김해김씨이고 앞동료는 김해에 살고 있으니 평소에 가야의 숨결을 느끼면서 살고 있는 셈이다.
'잊혀진 왕국 가야의 실체'라는 부제를 가진 "철의 제국 가야". 표지의 멋있는 봉황문양 고리자루큰칼(단봉문 환두대도)을 보고 유물과 유적 중심의 가야를 조명한 책인가 했는데, 읽어보니 동아시아 국제정세와 힘의 역학 속에서 김수로를 중심으로 한 철기 문명국가 가야의 탄생과 몰락을 더듬어 보는 내용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가야사, 특히 김수로의 뿌리를 알면 한족이 자랑스러워하는 한나라의 역사 상당 부분이 김수로 조상들에 의해 형성되고 또한 파괴되었을 가능성 때문에 중국인들이 큰 충격에 빠질거라고 하였다. 뭐~ 동북공정 등 자기 입맛대로 행하는 중국인들이 이정도에 놀라랴... 김수로의 조상은 한무제 때의 전투에서 잡힌 흉노족 김일제로 부터 시작하며, 한나라 황실의 명맥을 끊고 신나라를 세운 '왕망' 또한 김일제의 후손으로 보고 있다. 신나라가 멸망하면서 가야 땅으로 내려온 후손의 하나가 김수로 인 것이다. 가야 문명이 신라와 고려와 조선을 거쳐 대한민국에까지 계승되었다고 본다면 동아시아 문명의 주역이라고 자부하는 중국인들의 자긍심은 냉정한 현실 앞에서 굴절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는 저자의 감상이 조금 애교(?)스럽다고 하면 실례일까?
가야 왕국의 형성과정에 있어 이질적 4개 세력이 보여주는 파워게임은 흥미진진 그 자체이다. 가야 땅의 토착세력, 서기 42년에 유라시아 대륙의 북방에서 이주해 온 흉노족 출신의 김수로 집단, 서기 48년에 유라시아 대륙의 남방에서 이주해온 인도지역 출신의 허황옥 집단, 캄차카 반도 출신으로 추정되는 석탈해의 해상집단이 짧은 기간에 가야에서 펼치는 문명의 대결은 가야의 문화적 다양성을 내포하게하고 이는 곧 '철의 제국'으로 탄생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당시에 가야라는 땅이 국제적으로 꽤 선망의 대상이 되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짧은 기간 동안에 유라시아 대륙 각지에서 외래세력들이 경쟁적으로 밀려든 것을 보면 이곳이 어쩌면 '약속의 땅'은 아니었을까? 철 매장량이 풍부한데도 불구하고 아직 철기문명이 제대로 꽃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유라시아 동단 중간에 위치한 점이 선진적인 외래세력들의 구미를 당겼을 것이다. 유라시아 동단 중간에 위치한 가야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을 매개한다는 점에서, 또 유라시아의 남북을 연결한다는 점에서 탐낼 만한 곳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요즘 말로 하면 일종의 '가야 드림' 같은 게 형성될 만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제반 조건이 갖추어졌기에 가야 문명은 유라시아 최동단에서 가장 선진적인 문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210쪽)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허황옥 일행의 도래'가 우연이 아닌 두 집단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에 의한 '혼인을 위한 초빙'이라는 것이다.
한때 신라를 속국으로 삼았다는 부분도 재미있다. 신라 제5대 파사이사금이 두 소국(음즙벌국과 실질곡국)의 분쟁 해결이 곤란하자 '금관국 김수로'를 해결사로 초빙하였다는 대목에 정치적 의미를 두어 이를 유추하고 있다(226쪽). 가야연맹 맹주의 자격으로 신라를 방문하였겠지만 이후의 정치 판도는 서로 대립적이었다. 고구려의 남진정책에 맞선 백제와 신라의 틈바구니에서 고전하다가 서기 400년 가야와 왜국연합군이 고구려에 대패하면서 가야연맹의 힘은 해체되게되고 결국 신라에 흡수되면서 멸망하고 만다.
고구려, 신라, 백제에 가려있는 가야의 숨결을 더듬는 흥미롭고 재미있는 역사의 탐험이었다. 동아시아의 민족대이동이 가야에서 융합하여 철기문명으로 꽃 피었고, 멸망하고나서도 역사에서 사라지지않고 현재 대한민국 인구의 10% 정도를 차지하는 질긴 가야의 혼을 잘 느끼게하는 책읽기였다. 철기문명의 흔적(유물)이 좀 설명되었더라면 아쉬움이 조금 있었지만 매우 읽을만한 책이다.
사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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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오랜 지나온 역사를 배운다는 건, 그 당시의 시대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학문적인 효용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 살아가야 할 미래의 건전한 발전을 위한 그 기초가 되기 때문이기도 해서, 때로는 우리가 역사의 내용 앞에 진지해지기도 하며, 그것을 발판으로 새로운 것을 깨닫는 좋은 계기가 되는 것 같기도 하여 나름대로는 큰 의미가 있어 보이는 일처럼 생각된다. 사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천년이 넘게 흐른 고대부족국가의 상세한 역사를 다룬 다는 것이 어찌 보면 좀 무모해 보이기도 하고, 또한 얼마 되지 않는 역사의 유물을 가지고 그 당시 여러 가지의 내용을 명확하게 실증 분석한다는 것이 어려워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우리의 실제 역사를 그냥 아무렇게나 방치한다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고, 오늘날처럼 다른 여러 나라들이 자국의 역사를 왜곡하여 그 진실을 호도하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역사의 사실을 추적, 고증해 가는 것이 무척 힘든 과정이고 설사 난제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 해도, 결코 그것을 늦추거나 포기해서는 안 될 일이라 여겨진다.
우리나라의 고대부족국가 중 하나였던 가야를 알게 되었던 것은, 중등교육과정을 거치면서 교과서에서 잠시 수박 겉핥기식의 내용만 본 기억이 아마도 내겐 전부 일듯 싶다. 그 당시 최대 철의 생산지로 한때 부흥 했다가 신라와 백제 사이에서 더 이상 크게 확장 하지 못하고 멸망했던 불운의 국가로 기억된 가야를, 그나마 지금에서라도 이 책으로 다시 상세히 볼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겐 꽤 흥미롭게 다가왔다. 여러 고대국가의 출현에 관한 이야기를 보면 과학적 근거와는 너무 다른 내용으로 점철되어 있어서, 사실 누구에게나 큰 괴리감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모든 신화가 그렇듯이 과장된 그 겉모양에 관심을 두기보다, 그 시대의 문헌과 유물에 의한 고증의 내용을 보고 그 윤곽을 이해했으면 어떨까 싶다.
이 책은 우리가 가볍게 다루거나 쉽게 잊혀져버릴 수도 있는, 가야의 실체를 찾아 그 동안 우리가 몰랐거나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았던 많은 내용들을 담아냈는데, 특히 중국 문명의 기초인 한나라의 문명이 북방 흉노족이었던 김수로의 조상들에 의해 형성되었다는 내용은 매우 충격적이기도 하며 흥미롭다 하겠다. 대부분의 고대국가가 그러했듯이 가야 역시 토착세력의 기반위에 북방외래세력의 결합에 의해 그 발전의 토대가 이루어졌음을 이 책은 밝히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가 단일 민족이 아닌 아주 오래전부터 다민족국가임을 내포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어서 한편으로 보면 의아스럽기도 하고, 그 당시 여러 세력들이 유라시아 대륙의 곳곳에 이주했다는 내용에 의거해서 보면 당연하게 보이기도 한다.
가야는 원래 작은 여러 개의 토착세력으로 존재해 있다가, 북방에서 이곳으로 이주해왔던 외래세력(김수로)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쉽게 융화되어 하나의 부족국가로 탈바꿈 하는 계기를 맞았으며, 가야에서 실권을 쥔 김수로는 한때 해상세력을 이끌고 가야로 새롭게 이주해왔던 석탈해 집단을 신라로 몰아내고, 지금의 인도로 추정되는 아유타국에서 온 허황옥 일행을 받아들였다. 따라서 가야는 고대 국가로서 그 구성의 주축은 토착세력과 외부세력인 김수로와 허황옥의 세 집단이 하나로 뭉쳐 만들어진 나라라고 할 수 있겠다. 가야가 비교적 짧은 시기에 고대국가로서 급속하게 발전한 이유는, 그 당시 철기 문명의 확산으로 인해 철의 자원을 많이 보유한 까닭에 있으며, 가야는 이를 바탕으로 내부적으로는 비옥한 토지에서의 잉여 농산물 수확과 외부적으로는 신라를 속국으로 만들고 일본과의 연합을 주도 하면서 한반도의 남단에 독자적 세계를 구축하게 된다. 그러나 고구려의 남하정책과 신라와 백제로부터 많은 침략을 받으며 그 세력이 급속도로 약화되고 결국 고대국가로의 완성을 채 보기도 전에 멸망하고 만다. 가야의 멸망에는 여러 가지의 이유가 있겠으나, 연맹 수준에 머물러 중앙 집권체제의 강력한 하나의 국가로 만들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보여 진다.
가야는 520년의 역사를 가진 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다른 고대 국가의 역사내용에 비해 극히 비중이 적게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가야가 오늘날에 그 의미를 갖는 것은 철기 문명을 바탕으로 국내 최초의 현해탄 중심 국가였다는 것이고 또한 가야의 일부세력은 다시 신라의 중심세력이 되어 신라의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으며, 그 후손이 지금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그 동안 너무 몰랐던 가야역사의 모든 것을 다룬 책이어서, 우리의 역사 시각을 조금 더 확장시켜주는데 큰 도움을 주는 책이 아닌가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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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의 [철의 제국 가야]는 가야사에 대한 세 가지 기본적인 의문에 답변하고 있다. 가야의 건국세력은 누구인가? 가야와 신라와의 관계는 어떠한가? 일본의 야마대국邪馬臺國은 가야의 분신인가? 이 세 질문의 답변을 한데 모으면 가야는 우리에게 제국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먼저 가야의 건국세력에 대해 저자는 한반도의 토착세력(아도간을 비롯한 9간), 흉노족 출신의 김수로 집단, 남아시아 출신의 허황옥 집단을 가야연맹 성립의 핵심세력으로 간주한다. 가야의 정치질서가 9촌에서 6국으로 재편된다는 점과 김수로가 토착세력의 혼인동맹을 거절한다는 점은 연맹성립의 주도권이 김수로 세력에게 있음을 말해준다. 그 이유로는 우선 우수한 철기문화와 해군력을 꼽을 수 있다. 김해 김씨의 시조가 흉노족 출신이라는 점이 무엇보다 흥미롭다.
가야와 신라의 관계는 초기부터 적대 관계였다. 김수로와 석탈해 간의 권력다툼과 이에 패배한 석탈해 집단이 신라로 이주해 집권세력으로 성장했다는 점에서 그런 '원초적인' 적대관계를 상정해볼 수 있다. 힘의 역학관계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신라가 더 우세했지만 김수로가 집정하던 초기에는 신라가 한 때 속국이었던 때도 있었다. 비록 6년이라는 짧은 기간 밖에 유지되지 않았지만 가야는 신라 내부 문제의 해결사 노릇을 하곤 했다.
저자는 가야가 야마대국이라는 분신을 일본 규슈에 건립했다는 점에 긍정적인 편이다. 그리고 야마대국 여왕 히미코가 김수로의 딸이라고 주장하는 역사연구자 이종기의 견해에 동조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가야-왜-백제의 삼국연합으로 고구려-신라에 대항했다는 점을 들어 가야를 '현해탄 제국'의 위치까지 격상한다.
앞선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보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저자가 가야의 성립과 쇠망에 답변하기 위해 유라시아 대륙의 두 차례 민족대이동을 언급한다는 점이다. 제1차 민족대이동 시기는 유목세력 흉노족과 농경세력 한나라간의 충돌에 기인한다. 흉노족 김일제의 후손인 김수로가 철기문화를 이끌고 가야 땅으로 내려온 것도 이런 거시적 배경에 기반한다. 제2차 민족대이동 시기는 5호16국 시대와 맞물리고 남북조 시대에서 절정을 맞이한다. 저자의 논점은 대만 기상학자 류자오민의 [기후의 반역]에 근거하는데 이에 따르면 동북아 기후의 한랭화는 유목민족의 남하를, 유목민족의 남하는 한족의 남하를, 한족의 남하는 월족의 남하를 가져왔다고 한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5호16국의 혼란을 틈타 자국의 성장을 도모하지만 가야연맹은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정체되고 마는데, 이것이 가야멸망의 가장 큰 원인이다. 장수왕의 남진정책에 대응하던 와중에 백제와 신라는 가야를 압박하고 결국 가야는 신라에 의해 병합되고 만다.
저자가 가야에 던진 의문은 정치와 외교에 편중되어 있고, 문화와 사회에 대한 논의는 미약하다. 이런 가야사 담론상의 편중은 사료의 부족에도 기인하지만, 흉노족 김일제의 후손 이야기와 김수로의 정체성 논의에 집중한데서도 기인한다. 중국 한족 문명의 기초를 흉노족 김일제의 후손들이 형성했다는 주장은 비약적이라고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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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야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다. 가야국의 낭랑공주와 고우려의 호동왕자의 사랑이야기 정도…? 그만큼이나 가야는 알려진 바도 거의 없거니와 우리나라의 국사 교육에서도 거의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고대 왕국이다. 나 또한 가야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알려고도 하지 않았었다. 아무래도 교육의 영향이 컷던 탓이겠지. 그러던 중에 이 책을 만났다. 국사에서조차 잘 찾아보지 않으면 모르겠을 정도로 비중도 없던 가야라고 하는 고대 왕국에 대해서 책을 따로 할애해서 만들어 냈다고 하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나는 신선했다. 전혀 모르고 있던 것에 대해서 알아가는 것 만큼이나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것을 찾기는 힘드니 말이다. 이 책의 내용은 그런 가야에 대해서 상세하게 파헤쳤고 몇몇 문헌들을 근거로 내용을 이어가고 있지만 약간의 환타지가 가미되었음을 부정하기 힘들어 보인다. 역사 쪽의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는 신빙성을 따질 바가 아니겠지만 비약한 바가 없지 않다고 본다. 책의 앞쪽에서 밝힌 바 가야에 대해서 가장 신빙성 있는 자료로 [가락국기]를 꼽았는데 이 [가락국기]의 전문은 전해지지 않고 일연 대사가 쓴 [삼국유사]에 그 내용이 요약되어 있을 뿐이기 때문에 더욱이나 그랬다. 고대사는 연구하기 어려운 분야라고 하는 이유가 근거할만한 자료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라는 사실 때문이니 어쩔 수가 없는 부분이기도 할 것이다. 우선 이 책은 가야라고 하는 고대 왕국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삼국(고구려,신라,백제)보다 더 앞선 문명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김수로를 중심으로 한 철기 문명국가로서의 가야를 당시 동아시아 국제적 정세에 맞춰서 그 탄생과정과 멸망하기까지의 내용들을 서술하고 있었다. 중국 한족 민족의 기초를 흉노족 김인제의 후손들이 형성했으며 이후 그 일파가 한을 멸망에 이르게 해 신나라를 세우고 이후 후한의 반격으로 한반도 남부로 이동했는데 그 집단이 김수로 집단이며 토착 세력과 연대하여 가야를 건설했다고 하는 이야기로 시작이 되는 조금은 믿기 힘든 이야기들이지만 나는 그만큼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었었다. 누군가는 말할 수도 있다. 너무 이야기들을 비약시킨 것이 아니냐고… 하지만 약간의 과장이나 비약을 나는 나쁘게만 생각하지 않는다. 때로는 겸손이 독이 될 수 있듯이 우리 나라의 역사들은 어떤 책에서 봤듯이 조금은 지나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경직되어 있는 것 같다. 혹자는 예전 일제시절의 일본인들이 구축해 놓은 역사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안타까운 현실이라고도 이야기한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 나라의 역사를 좀더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이런 책들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아주 기쁘게 생각한다. 일제시대의 일본인들이 심어줬던 역사적 열등의식들의 잔재가 이런 방식으로 없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는 내 친구의 평에 의하면 약간의 국수주의가 가미된 몽상가… 라고 하지만 그다지 바꿀 마음은 들지 않는다. 다른 나라를 깍아내리고 배척한다면야 못써먹은 국수주의자에 불과하겠지만 내 나라를 자랑스럽고 대단하다고 자부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동안 삼국(고구려,백제,신라)의 역사에 가려져서 별로 알려지지 않았고 이 책의 제목처럼 잊혀졌다는 말이 어울렸던 가야라고 하는 고대 왕국의 긍정적이고 흥미로운 역사적 탐구에 동참해 보는 것도 올 여름의 더위를 잊을 수 있는 재미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현재 진행중인 중국의 동북아공정이나 일본의 역사왜곡들에 대한 뉴스가 나올 때마다 짜증이 일었던 내 속을 조금은 식혀주었던 재미있던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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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에 대한 이야기는 철을 제외 하면 많은 부분을 알지 못한다. 가야사에 대한 연구는 아마도 절대 왕권을 가지지 못한 나라여서 인지 많은 역사적 자료를 가지지 못하고 있으며 유물과 다른 나라의 기록을 근거로 우리는 가야라는 나라의 역사를 배우고 있는 듯하다. 개인 적으로는 가야라는 나라의 성립과 500년 가까이를 이어온 그 역사가 궁금하기도 하였고 당시의 강대국 신라, 백제의 틈 속에서 어떻게 긴 시간을 버티며 국가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는지 궁금하기도 한다. 모두들 영토 확장을 모토로 삼아서 움직이고 있을 즈음에도 건제 하였던 가야는 결국 신라에 의해 멸망을 하지만 500년이란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야에 대하여 너무 모르고 있는 듯 하다. 한반도 남단의 중심에서 그 역사를 어떻게 만들어 갔는지 궁금증을 해결해 볼 만한 책을 한 권 선택해 본다. [철의 제국 가야]는 가야의 생성에 관한 즉 건국에 관한 부분을 많이 다루고 있으며 가야의 멸망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 지어진다. 책은 가야의 건국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세력을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김수로를 중심으로 한 북방세력, 가야 지역을 중심으로 살아가던 토착세력, 김수로와 결혼을 통하여 가야 건국의 한 축을 이루는 허황옥 세력, 마지막으로 김수로에게 밀려 신라로 넘어가 왕이된 석탈해 세력으로 구분하여 진다. 이 네 세력은 석탈해를 제외한 세 세력의 합세로 인하여 가야의 건국 초기 기틀을 다지게 되는데 각 세력의 특징을 살펴보면. 김수로는 간략하게 책의 내용을 소개하면 북방 민족으로 철기 문화를 가지고 있었던 인물로 가야에 이주하여 토착 세력과 융합하여 가야를 건국하는 인물로 이야기 되어져 있다. 김수로의 이주는 시대적 배경으로는 한 나라의 건국과 신나라의 멸망 그리고 그 후손으로 추정되는 김수로의 남하로 인하여 그의 출신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즉 신나라라는 나라를 건국하여 지배하던 세력이 한 나라에게 패망하여 이주하는 도중에 선택한 땅이 가야 였으며 가야는 풍부한 철광석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철을 만드는 기술이 부족하여 토착 세력과 융합하는 힘으로 철제 기술을 나누어주고 토착 세력과 융합하여 가야의 건국의 기초를 만들게 된다. 허황옥은 인도 혹은 중국의 남부지방으로부터 유입된 인물로 추정이 되며 그는 김수로의 세력과 전략적으로 결혼을 통하여 국가의 기초와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는 인물로 볼 수 있다. 좀 특이한 점은 허황옥의 도래가 가까운 한 반도의 주변이 아니라 인도 혹은 중국을 기원으로하는 민족의 특징을 가지고 있어, 가야시대의 해외 교섭력이라 던지 활동 역역을 역으로 유추해 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석탈해는 해양세력을 대표하는 중심인물로 역사적 기록은 신화적으로 묘사되어 둔갑술로 김수로와 실력을 겨루다 결국 신라로 추방당하는 인물로 추정이 된다. 역사적 기록을 보면 석탈해를 몰아내기 위해 동원된 배의 숫자가 500척이라고 하니 당시 가야의 해양활동을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그런데 이 석탈해라는 인물은 아직 국가적 기반이 약했던 신라로 이주하여 그 곳에서 왕으로 추대되어 결국 신라와 가야는 건국 초기 적대적 관계를 형성하는데 초기 역할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이렇게 건국에 대한 이야기와 이주 세력에 대한 근거를 따라가다 보면 가야의 유물들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이국적인 요소들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가야의 세력은 한반도에 국한 하지 않고 일본에 영향을 주었다는 설을 포함한다면, 가야의 위세는 당시 주변의 다른 나라에 비하여 조금도 떨어지지 않는 상황이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저자는 가야의 힘이 어느정도였는 지, 설명을 하면서 신라가 가야의 속국이 었을 가능성을 기록을 통하여 제시를 한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가야의 왕이 신라의 내정 문제에 대한 심판관으로 등장하는 시기의 역사적 사실은 충분히 가야가 신라에 영향력을 미치고 우월적 지위를 가지고 있었음을 이야기하기에 부족함은 없어 보인다. 이렇게 성장하고 긴 역사를 자랑하던 가야는 어떻게 멸망의 길을 걸어가게 되었을까? 결국 선진 문물을 가지고 가야 땅에 이주한 선조들의 진취적인 틀을 잊어버리고 세상의 동향과 변화 그리고 분열이 결국 가야를 멸망하게 만들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강성하던 철기문화와 해양세력에 대한 힘에도 불구하고 내부적 분열과 절대 왕권을 가지지 못한 부분에서 서로의 이득을 생각하다 만들어진 가야의 멸망은 어쩌면 삼국 시대에 조금은 다른 국가의 형태를 지니고 있었던 가야의 슬픔이었을지 모르겠다. 나라는 이렇게 멸망을 하였지만 가야는 아직도 우리민족의 가슴 속에 남아 있는 것 같다. 삼국을 통일한 주축 세력의 피에도 그리고 현대를 살아가는 김수로의 후손이 우리나라 인구의 10%를 차지한다고 하니 말이다. 이런 가야의 숨결을 조금더 다가서고 조상의 모습을 잘 이해하는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숨겨진 나라 같은 가야에 대한 연구가 조금 더 이루어 진다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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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대사의 변방에 있었던 가야에 대한 조명이 방송과 서적 등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즈음애 잊혀진 왕국 그리고 비밀의 왕국이라는 베일에 쌓여있던 가야의 실체에 좀 더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파헤쳐간 책이 출간됨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동아시아의 허브로써 고구려 백제 신라와 패권을 다툰 가야왕국이 출현하고 융성하고 사라져간 약500년의 역사를 묻혀있던 사료와 고증을 바탕으로 아시아의 맹주였던 가야를, 그리고 오늘날에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가야민족의 혼을 살려내고 있습니다.
한국 고대왕국의 발전은 한민족 토착세력과 외래세력의 연대로 이루어졌음을 고조선과 고구려 등 고대왕국들 건국일화들을 사례로 알 수 있습니다. 고조선의 건국 과정은 토착세력과 북방세력의 결합으로 이루어졌고, 고구려 또한 외래세력인 고주몽과 토착세력인 연타발 집단의 정략적인 연합을 통해 건국되었습니다. 이렇게 고대왕국들의 건국과정에서 나타난 토착세력의 힘을 무시하지 않는다면 고대왕국 가야 또한 김수로와 허황옥 둘 만이 건국의 주역이 아니라 무시할 수 없는 가야의 토착세력과의 공존위에 세워졌음을 알게 합니다. 가야는 9간이라는 아홉 추장의 지배를 받던 비옥한 땅에 외래세력인 김수로의 등장으로 가야의 건국신화는 시작됩니다. 월등한 철기문명으로 보유한 북방 외래세력의 출현은 토착세력에게 위기감을 주기에 충분한 위세와 힘을 보여주었던 것 같습니다. 6개의 황금알에서 탄생한 신화는 김수로 집단과 토착세력의 이해관계와 지지과정을 신화적으로 보여주는 일례로 어떠한 무력충돌도 없이 타협을 통하여 가야를 건국하기에 이릅니다. 하늘에서 온 사람들이란 말은 즉 북방에서 온 사람을 이르는 말로 하늘에서 내려온 황금알 6개의 도래가 정치적인 건국신화로 재창조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금관가야를 다스리는 김수로와 대갸야, 소가야, 아라가야, 고령가야,성산가야를 다스리는 5군주 체제의 연방국가였던 가야는 토착세력의 눈에는 낯설고 가공할 만한 존재로 인식되었기에 토착세력은 무기력하게 김수로의 정치적 패턴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나라에 붙잡힌 흉노족 김일제의 후손들이 조정의 실권을 잡고, 뒤이어 신나라를 세웠다가 남부로 이동하여 가야국을 세웠다는 역사적 추적에 놀라움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김수로가 흉노족 출신이라는 사실을 여러가지 문헌과 사례를 토대로 증명해내고 있습니다. 북방민족의 유물들이 가야국의 지배하에 있던 김해지역에서 출몰한 증거들로 미루어 충분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또다른 외래세력인 석탈해 집단의 출현은 김수로 에게는 부담이 가는 경계해야할 대상이었습니다. 아마도 캄차가 반도의 어로집단인 석탈해와 김수로의 대결에서 석탈해는 신라로 추방을 당하게 되지만 이것이 신라와 가야를 이어주는 인연으로 이어지고 가야가 멸망하게 되는 시발점이 된다는 것은 가야 문명의 건설 초기에 문명에 동참하고자 했던 개척자인 석탈해 집단에게 신라로의 추방은 이후 석탈해가 신라의 권력을 오르고 가야와 적대적인 관계를 가지면서 기어이 가야를 멸망시키지만, 신라의 주요 관직을 장악한 엘리트 집단은 역시 가야인의 핏줄이라는 사실은 가야는 비록 역사에서 사라졌지만 가야의 혼은 신라의 혼이되고 그 신라의 혼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역사의 커다란 수레바퀴를 보게되는 경이적인 경험을 하게 합니다. 우리나라 10 퍼센트의 성씨를 차지하고 있는 단일성씨인 김해김씨가 김수로의 후손들이라는 점은 김수로가 다스렸던 가야왕국의 혼이 현대에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 그리고 또 다른 제 3의 세력인 허황옥 집단 신생 가야의 건설에 동참하게 되는 배경에는 신나라 멸망 이후 반체제 운동이 만들어준 인연으로 아유타국의 공주라는 보주태후 허황옥과 김수로는 비밀리에 접촉을 하면서 두 외래집단의 혼인을 통한 결속으로 신생 가야를 철기문화로 꽃피우게 하는데 일조하게 됩니다. 인도반도의 아유타국이 어디인지 확실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허황옥이 인도인 이라는 사실은 허황옥 집단의 이동경로로 추정되는 곳마다 발견되고 있는 쌍어문의 출현으로 알 수 있었습니니다. 북방민족과 남방의 문명이 가야라는 복합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집단으로 형성되고 발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가야문명이 가지고 있는 절대적인 힘과 주변국들과의 조율은 동아시아의 허브로써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한때는 신라와 백제 그리고 일본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부각되기까지 했던 가야 500년의 역사는 기후변동에 따른 북방 유목민족의 남하로 시작되게 됩니다. 흉노족,갈족,선비족,저족,강족의 유목민족의 남하는 양자강 유역으로 밀려나게 된 한족의 남하를, 그리고 한족의 남하는 베트남인의 조상인 월족의 남하를 가져오게 됩니다. 중국의 정치적,군사적인 소용돌이 속에서 국제적인 고구려의 남진정책은 국제정세에 대비를 하지못한 가야라는 희생양을 만들게 됩니다 김수로 사후 금관가야의 몰락과 대가야의 붕괴는 중앙집권체체를 도입하지 못한 가야의 분열을 가져오게 됩니다. 금관가야의 마지막 국왕이자 김유신의 증조부인 김구해는 자신의 신변을 인정받는 조건으로 신라에 항복을 하게 됩니다. 이로써 512년의 짧지않은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가야의 역사적인 의의는 실로 거대한 유라시아 문명의 축소판이라고 할 만합니다. 다양한 문명이 융합되어 발전한 철기문화는 현해탄의 중심국가로써의 위상을 떨쳤던 것입니다. 일본과의 문화적인 교류가 순조롭게 이루어졌던 가야문명 이후로 신라와 백제의 일본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는 일본에서 한반도를 침입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는 시초가 되고, 나아가서는 한.일 양국간의 적대적인 관계를 일으킨 요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가야와 일본의 순조로운 교류를 통하여 가야 유민들이 일본에서 새로운 분신을 남길 수 있었던 것도 역사적인 큰 조류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베일에 가렸던 왕국 가야는 더 이상 역사속에서만 비밀리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단일민족 이라고 부르는 자긍심은 역사적인 고증앞에서 무릅을 꿇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민족의 융합으로 세계의 중심에 섰던 가야제국의 후손으로써 중요한 지정학적인 위치에 있는 한반도에서 펼쳐졌던 역사의 파노라마를 알게 된다면 겸허한 자세로 세계정세와 국민의 목소리 그리고 주변국가들과의 유대를 더욱 공고히 해야할 것입니다. 가야제국의 혼이 대한민국의 혼이되고 우리국민의 혼으로 유전되어 더욱 활발하게 동북아의 주체가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Oztoto's Cook n Book http://blog.naver.com/oneyefishlu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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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드라마 선덕여왕의 열화와 같은 인기와 더불어 그 당시 신라시대의 역사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급 높아지게 되었다. 미실, 사다함, 비담, 알천, 미생.... 드라마가 아니었다면 평생 몰랐을 이름들이 드라마와 함께 너무도 친숙하게 다가왔다. 물론 그 드라마가 정사를 그대로 담지는 않았을지언정 그러한 드라마들이 한국의 고대사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켜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일일 것이다.
그리고 올해는 신라에 이어서 가야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이 드라마 때문일 것이다. 방송 역사상 최초로 짐작되는 가야 역사에 대한 드라마. 당연하다. 우리는 심지어 국사시간에도 가야에 대한 부분은 어물쩡 넘어가고 말뿐이니까.
가야. 이 드라마가 방송되기 이전. 혹은 이 드라마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가야라는 나라는 그저 신라와 백제사이에 껴 있는 지리적 위치때문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가 신라에 먹혀버린, 가야왕국의 유명한 인물이라곤 김수로 왕이 전부인, 중앙집권제로 나아가지 못하고 연합의 형태로 나라가 존속되었던 고대 국가.
이게 전부일 것이다.
이런 가야가 드라마의 영향으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그 동기가 어찌되었던 간에 반가워할만한 일이다.
더불어 출판가에서도 가야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책이 늘어나고 있다.
역사의 아침에서 나온 <철의 제국 가야> 역시도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가야의 탄생과 철기 문명에 포커스를 두고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철의 제국 가야>는 크게 두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가야왕국의 탄생에 대한 부분과 가야 왕국의 주변 국가에 대한 영향력을 포함한, 가야가 어떤 나라였는지에 대한 부분으로 나누어볼수가 있다.
1장 토착세력, 2장 김수로 집단, 3장 석탈해 집단, 4장 허황옥 일행에 대한 부분에서(각 장의 제목이 이렇게 재미가 없지는 않다) 가야라는 나라가 김해지방에서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지에 대한 부분을 다룬다면, 5,6,7,8장에서는 가야라는 나라의 생성이 갖는 의미와 그들의 상징과도 다름없는 철기라는 문명을 토대로 주변국가와 어떤 관계설정을 주고 받았는지, 그럼으로써 어떤 국가를 세웠는지와 어떻게 멸망했는지까지를 다루고 있다.
가야사 전반에 대해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어찌보면 가야에 대해 일반 대중들이 가장 궁금한 부분인 국가의 건립에 대한 부분, 가야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였는지에 대한 부분이 자세히 나와있어서 오히려 일반 독자가 가야라는 나라에 대해 처음 접하기에는 더욱 좋은 포지션을 취하고 있는 좋은 입문서이다.
특히 책의 기저에 흐르고 있는 한가지 사실. 대한민국은 단군으로부터 이어져온 하나의 민족이다 라는 그릇되고 허황된 진실에 대해서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하는 부분은 너무나도 매혹적이다. 물론 직접적으로 밝히는 부분은 서문이 전부이지만 이미 가야라고 하는, 당시의 다민족국가의 얘기를 통해서 우리는 충분히 대한민국은 단일민족 국가라는 그릇된 인식을 깨어낼 수 있다.
애국심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 애국이 다른 나라에 대한 모(侮)국이 되어서야 곤란하지 않겠는가. 애국과 타국에 대한 모국은 분명 다른 얘기이다.
이러한 부분들에 대해서 이 책에서 느껴지는 가야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충분히 그것을 다시금 짚어볼 수 있으며 그 부분에 대한 역할만 하더라도 이 책은 충분히 그 값어치를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대한민국의 고대사를 단순히 한반도로 그 범위를 묶지않고 한반도의 역사가 유라시아의 역사속에서 어떤 관계를 맺어왔고 그에 따라 한반도의 역사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에 대해서 폭넓은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게 한 점 또한 이 책의 매력이다. 주로 외교라는 부분으로만 역사속의 관계를 한정해왔던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역사책의 관점에서 벗어나 일반 대중에게도 민족의 대이동과 그에 따른 역사적 귀결을 독자들에게 이해하기 쉽도록 전하는 부분은 위에 언급한 단일민족에 대한 부분과 더불어 이 책의 백미로 꼽는 부분이다.
물론 책에 아쉬운 부분도 존재한다. 나만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흐르는 '대한민국의 고대사는 위대하다' 기조이다. 책에서도 물론 조심스레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김수로가 김일제, 왕망의 후손이라고 추측하는 부분 - 물론 추측에는 문제될 것이 없다 - 가야가 건국 초기에는 신라의 상국이었을 것이라는 점 가야세력이 후에 신라를 지배했으니 가야와 신라가 합해져서 삼국통일의 역량을 발휘했다는 등의 부분에서 가야가 이렇게 대단한 나라였으니 모두 놀라시고 경배하라~ 라는 분위기가 행간에서 읽힌다. 물론 실제로 그러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 와중에 한가지 거슬리는 점은 가야를 내세우기 위해 다른 부분들을 깎아 내리는 듯한 느낌이 조금 아쉽다는 것이다.
철의 제국 가야. 가야는 어떻게 건국되었을까. 건국 과정에 허황옥, 석탈해는 어떤 역할을 하였을까. 석탈해는 어찌하다가 가야에서 신라로 가게 되었을까. 가야는 왜 철의 제국으로 불리게 되었을까. 가야와 일본의 관계는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을까. 정말 김수로왕의 아들 딸이 일본으로 가 나라를 세웠을까.
우리는 가야에 대해 너무도 모르는 것이 많다. 실제 역사학적으로도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너무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몇년도에 어떤 일이 있었고 가야에 어떤 왕이 있었는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가야라는 나라는 어떤 나라였는지, 우리의 역사에 가야라는 왕국이 생각보다 의미심장하게 존재했다는 사실에 대한 환기, 그리고 가야라는 나라를 통해서, 우리의 단일민족 역사관이 얼마나 그릇된 것인지를 알게 된다면 일반 대중의 입장에서는 충분할 것이다.
그리고 <철의 제국 가야>가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충분히 일반 대중들이 가야에 대해 다가가기에 좋은 책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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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기문명이 보급된 사회에서는 새로운 문화현상을 통찰하고 해석해줄 새로운 철인들을 요구했고, 새로운 철인들은 철기문명을 어느 정도 경험한 이후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며 등장했다. 그들이 환영을 받은 것은 새로운 문명에 맞는 이념을 제시했기 때문이며, 그것이 당시 대중의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헤겔은 [법철학 강요]에서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 무렵에야 비로소 날기 시작한다"라고 말했다. 이는 세상사의 복잡한 변동이 가라앉은 어스름한 시점이 되어야만 비로소 냉정하게 세계를 통찰할 수 있는 철인이 출현한다는 뜻이다. 그의 말대로 인류가 철기 문명을 어느 정도 경험한 뒤인 '어스름한 시점', 즉 기원전 6세기 이후로 '미네르바의 부엉이들'이 비로소 나타났고, 인류는 그들에게 환호와 갈채를 보냈다. 그리고 그들이 지금까지도 여전히 난공불락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인류가 아직도 철기문명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고전의 창시자들이 살던 시대와 오늘날 우리가 사는 시대에 철기문명이라는 공통점이 있기에, 그들이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사상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187쪽(강조는 인용자)
지금 문화방송에서는 주말 드라마로 [김수로]를 방영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이제까지 봐온 드라마의 수가 어마어마한데 가야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는 이 드라마가 처음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가야에 대한 현대인들의 관심은 저 보이지 않는 밑바닥에서 고요하게 잠자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사실은 알고 계시는가. 한국인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이들이 가야의 후손들이라는 사실을. 저 멀리 옛 기억을 더듬어보면 가야라는 나라가 한때 잘 나갔던 나라임에는 틀림없다, 허나 망한 나라라는 것! 이게 고등학교 시절, 가야에 대해 배웠던 전부가 아닌가. 얼마 전 방영을 끝낸 문화방송의 [선덕여왕]에서 김유신이 가야의 후손으로 등장하며 가야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씩 나오기는 했다. 그때부터 가야가 대체 어떤 나라였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우연이 아닌 것처럼 김종성의 책 [철의 제국 가야]를 집어들게 됐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김수로가 가야를 통합했다는 것도 아니요, 현대 한국인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대단히 많은 숫자의 인구가 이들의 후손이었다는 점도 아니다. 한민족은 한민족이 아니었다는 사실, 이게 가장 가슴을 두드린 대목이었다. 역시 교육의 힘이란 무지의 힘과 대결하면 막상막하! 삐약삐약 병아리 흉내를 내면서 베레모를 쓰고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이제까지, 나는 학교에서 한민족이란 말을 대체 몇 번이나 들었는지 일일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듣고 또 들으며 성장해왔다.
"우리는 잡것이 아니라고! 하나의 핏줄 아래 온전히 그것을 지켜온 한민족, 한민족이라고!"
하지만 어린 머리에도 이해가 되지 않았던 사실은 역사 속 이야기를 들어보니 절대 한민족일 수가 없는데 왜 자꾸 한민족, 하나의 핏줄,이라고 하는지 도통 어른들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김종성은 그 역사 이야기를 심플하면서도 담담한 어조로 들려주며 있잖아, 사실 우리가 한민족이었다는 사실은 개뻥!이라고 말한다.
한민족이 정말로 하나의 혈통으로만 이루어졌다면, 다민족적 측면이 강했던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는 한국사에서 제외해야 할 것이 아닌가. 고구려와 발해의 사례에서 잘 드러나듯이 한민족은 결코 단일민족이 아니다. 여러 민족이 융합되어 한민족이라는 또 하나의 아이덴티티를 형성했던 것이다. 이 점은 다른 한민족 왕조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한민족의 고대왕조들은 하나같이 토착세력과 외래세력의 결합으로 건국되었다. 각 왕조가 최소한 두 개 이상의 종족 혹은 민족의 결합에 의해 형성되었던 것이다. 이런 엄연한 사실을 숨기고 단일민족 관념을 사회적으로 주입시켜 국가적 통합을 달성하겠다는 발상은 국민들을 지나치게 무시한데서 나온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구든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한민족이 단일민족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도 단일민족 관념을 주입하려 한다면, 이는 도리어 한민족에 대한 민족구성원들의 신뢰를 약화시키고 나아가 민족의 단결을 저해할 것이다. 7쪽(강조는 인용자)
현대사회의 흐름은 어떻게 나아가고 있을까. 외래세력이라고 해도 다 같은 외래세력이 아닌 것이다. 이 '외래세력'이라는 단어 자체에 힌트가 있다. 힘이 있는 외국에서 온 사람들과 약소국에서 온 외국인들을 대하는 대한민국 시민들의 태도는 어떨까. 아니,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하기 전에 나부터 돌아보면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민망하다. 진심은 그런 게 아니라고, 겉으로 보이는 태도는 그들이 어디에서 오건 다를 바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유럽국가에서 온 이들과 아프리카와 다른 동아시아에서 온 이들을 바라보는 내 시선과 호기심은 불과 얼음처럼 다른 빛을 띠고 있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반성하고 또 반성할 일이다. 외지에서 온 낯선 이들을 바라보는 호기심은 똑같지만 그 배경에는 철저한 계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내 시선과 마찬가지로 통합되기 이전의 가야에서 살았던 내 먼 조상들 역시 낯선 곳에서 온 김수로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호기심과 철저한 계산이 뒤따르고 있었을 것이다. 북방에서 온 김수로를 하늘에서 온 천자라고 본 이유는 김수로가 갖고 있던 철기 생산의 기술력이었다. 하여 가야 통합의 건국과정에서 토착세력의 이해관계는 김수로 집단과 밀접하게 닿았던 것이다. 김수로가 가야를 통합하고난 후에도 석탈해 집단의 등장과 퇴출이 있었고 허황옥과의 혼인은 결혼 그 이상의 의미, 권력의 오고감이 있었다.
철기문명은 하나의 혁명,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농경사회의 철기의 보급이란 농업 생산성의 증대로, 이 넘치는 농산물은 잉여 생산물의 증대와 가족 협업의 공동작업의 등장을 낳게 했고 이 모든 과정으로 인해 국가 권력은 강화되었다.
이렇게 철기문명의 등장은 '더 평등했던' 그리고 '더 공동체적이었던' 농경사회의 성격을 바꾸어놓았다. 이 문명을 받아들인 농경사회는 '덜 평등하고' '덜 공동체적'인. 그래서 '더 불평등하고' '더 중앙집권적인' 새로운 사회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철기문명이 '환경 파괴적'이라고 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183쪽
가야가 야마대국의 분신인지 또한 아직 불확실하지만 확실한 것은 가야라는 고대 국가는 한반도에 살고 있는 현대인이 알고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이가 있었고 힘이 있었으며 개방적인 나라였다는 점이다. 주말 드라마 [김수로]를 비롯해서 가야를 배경으로 한 더 많은 이야기가 다양한 형태로 등장한다면 가야에 대한 더 많은 읽을거리 또한 풍요롭게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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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의 최고의 철기 문명국의 하나였던 가야에 대한 사료가 희소하여 가야에 대한 실체규명은 단편적으로 언급된 역사기록과 유물, 신화를 근거로 추정해야 하는 경우 많다는 저자의 고뇌가 가슴에 와닿는다. 이는 비단 가야만의 문제가 아니라 고조선, 삼한, 삼국시대, 발해에 이르기까지 우리 고대사 전체가 안고 있는 문제이다. 심지어 우리 기록보다 타국의 기록, 나아가 왜곡 폄하된 것이 분명한 일본서기의 기록을 참고하여야 하니 우리 사학계의 고충이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우리의 고토 대부분이 중국과 분단된 조국의 북녘에 있는 한계점 역시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중국은 자기네 땅에 살았던 민족이 누구냐에 개의치 않고 영토 중심으로 중국사를 이야기한다면 역사의 주체가 누구냐 즉 우리 민족이냐에 따라 우리 역사를 이야기하는 차이점이 있다고 하며 이래서 중국이 동북공정에서 고조선과 심지어 고구려, 발해까지도 중국 변방의 역사로 편입시키려 하는 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철의 제국 가야사는 가야의 철기문화의 우수성, 건국의 주체 세력에 대한 증명(토착세력, 김수로, 허황옥, 내쳐진 석탈해), 신라, 왜, 백제, 고구려와의 관계, 대외교류사, 쇠망사를 다루고 있다. 이 주제는 전에 읽은 이야기 가야사와 비슷한 맥락이나 이 책은 그 논의의 범주가 이전의 책을 뛰어넘는다. 이전에 제기된 한의 권력가문 김일제의 후손이 신라 왕가의 김씨라는 것을 넘어 김수로 역시 김일제의 후손이라 비정한다. 석탈해도 일본 동북쪽에 위치한 캄차카반도에서 도래한 도래인이라고 비정한다. 아직은 100% 역사적 사실이라고 할 순 없겠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가야 건국의 또 하나의 세력인 허황옥은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로, 가야시대의 유물은 아니지만 현존하는 쌍어문이 인도와 허황옥이 경유한곳으로 추정되는 태국과 중국에서 발견되고, 가야의 분신이라고 추정되는 왕국에서도 동일한 유물이 발견되며, 또한 인도의 드라비다어와 우리 말의 유사성을 근거로 이동 경로를 비정한다.
김일제의 후손인 김수로, 인도 아유타 왕국의 공주 허황옥, 캄차카반도의 탈해의 이동경로를 고려하면 그 당시 얼마나 많은 민족의 대이동이 있었나를 파악할 수 있고 가야는 그야말로 다양한 문명이 결합하여 탄생한 문명국이란 이야기다.
가야는 한때 신라를 속국(동양에서는 속국이 자주권은 인정받았다는 설명이 일본과 조선이 맺은 조약 등을 예시하며 설명)으로 삼았고 일본에 분신 왕국을 열고, 왜,백제와 더불어 신라와 고구려에 대항하였고 해상무역의 중심으로 도약하졌지면, 기후가 한랭해져 또 다른 민족의 대이동으로 중국의 5호 16국시대가 열린 기회를 이용 고구려가 북경 인근까지 진출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북위가 중국의 북쪽을 통일하여 위진남북조 시대가 되자 고구려 장수태왕의 독트린으로 남진정책을 펴자 고구려, 신라, 백제의 틈바구니에서 가야는 멸망의 길을 걷게 된다는 것이다.
가야는 멸망이후에도 금관가야 왕족이자 김일제의 후손인 김유신, 역시 김일제의 후손인 신라 김씨 왕족이 신라를 지배하고 오늘날에도 김해김씨가 대한민국의 최다 성씨로 이어지고 있다.
철기문명의 전파 경로를 추적해보면 유목민족의 이동 혹은 침략으로 수많은 민족의 대이동이 있었고, 철기시대의 전파된 지역의 가치관이 크게 변화되고 중앙집권적 권력이 태어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청동기를 농기구로 활용하지 못했던 반면에 철기는 전쟁무기로도 대적할 자 없었지만 농기구의 혁명을 불러와 농업 생산량의 획기적 증가를 가져와 비옥한 농토를 기반으로 한 농경국가의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룩하게 된다. 씨족, 부족사회가 해체되고 바야흐로 국가다운 국가가 성립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철기 문명 전파기에 공자, 맹자, 노자, 장자, 석가모니,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의 동서양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대사상가들이 탄생한 것도 이즈음이란 것이다. 아직도 우린 그들의 사상에 큰 영향을 받으며 살고 있는 것이 놀랍지 아니한가. 말이다.
철기 전파의 시기에 아주 많은 지역에서 天孫신화가 많이 등장한다. 天을 北이라 할때 북방민족이 남하하여 새로운 국가를 세우는 이념적 기저가 되는 것이 천손신화라 할때 한반도에도 북방의 민족이 유입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가야의 건국전에 고조선이 한에게 멸망후 한반도로 유입된 고조선의 유민이 신라나 가야, 삼한의 지배세력이 되었을 가능성은 없겠는가? 여기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드라마에선 정견모주가 도망쳐 올때 고조선 유민에 대한 언급이 조금 나오지만..
미스터리한 왕국 가야, 더 많은 유물과 기록이 발굴되어 가야사가 우리 역사의 주역으로 우뚝 서는 그날이 당겨지길 빈다. 사료의 부족으로 다양한 주장들이 봇물처럼 나오고 있다. 어떤 비정은 정말 사실이었으면 하는 부분도 많고 너무 앞서 나간 부분이 없지 않나 싶기도 하지만 가야사에 대한 저자의 천착이 빛나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