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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다산 평전>을 위하여.......
"온전한 <다산 평전>을 위하여......." 내용보기
이제 1만원권을 초과하는 고액권이 나온다면, 등장인물로 유력하게 꼽을 수 있는 다산 정약용이다. 로부터 시작하여, 외 각종 문선을 엮어 낸 박석무(교수님이라 해야하나, 전의원님이라 해야하나)님이 새롭게 엮은 다산의 일대기라 해야겠다. 제목으로만 보기에는 오해 받을 소지가 있는데, 유배지에서의 일뿐만 아니라 고향 마현리에 조상이 정착하고 다산의 탄생에서부터 성장, 관직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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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1만원권을 초과하는 고액권이 나온다면, 등장인물로 유력하게 꼽을 수 있는 다산 정약용이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로부터 시작하여, <다산기행>외 각종 문선을 엮어 낸 박석무(교수님이라 해야하나, 전의원님이라 해야하나)님이 새롭게 엮은 다산의 일대기라 해야겠다. 제목으로만 보기에는 오해 받을 소지가 있는데, 유배지에서의 일뿐만 아니라 고향 마현리에 조상이 정착하고 다산의 탄생에서부터 성장, 관직생활과 유배, 해배 과정의 전 생애를 편년식으로 고찰하고, 중간중간에 학설과 시문학 해석을 곁들인, 저자의 다산에 대한 이제까지의 연구집성이라고 할 만하다. 현재 우리 역사상 최고의 사상가로 거의 정당한 평가를 받고 있는 다산이지만, 아직까지 완성된 평전이 없는 것이 의아하다. 지난 20~30년간 그의 유명한 1표 2서로 대표되는 경세서를 비롯하여 최근에 (별로 인기가 없을) 각종 경학 연구자료까지 속속 국역되어 출간되었고, 각종 연구서를 비롯하여 다종다양한 논설문선집, 산문선집, 시문집이 발간되고 있는 마당에, 아동들이 볼만한 위인전 수준을 뛰어넘을 격조있는 <평전>이 등장하지 않은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 10여년 전에 원로학자 고승제 님이 <다산을 찾아서(1995,중앙일보사="" 간)="">라는 평전 비슷한 책을 내신 적이 있는데, 방대한 내용에 비추어 서술이 난삽하여 크게 남는 점이 없었던 기억이 난다. 어찌 우리 후학들이 이렇게 게으르단 말인가. 수천년 전의 인물도 아니고, 자료를 남기지 않은 신선도 아닐진대, 다산만큼 치밀하게 자신의 행적을 기록으로 낱낱이 밝힌 성현의 <평전>한편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단 말인가. 물론 다산의 밝혀진 생애 뿐만이 아니라, 그의 방대한 사상과 문학이 이루어진 과정을 세세하게 천착해 나가고자 한다면 상당한 노력이 있어야 하겠지만, 각론은 착착 진행되는 터에 정작 총론 격인 <평전>이 갖추어지지 못한 점이 아쉽기만 하다. 박석무 님의 이 책자는 이제까지 다산에 대한 저자의 연구성과를 집성해 놓은 것이다. 최초에 서간을 譯하는 것으로 시작한 작업으로, 다산의 遺址를 답사해 다니면서 얻은 각종 자료를 충실하게 서술하고 있다. 박석무 님이 여태 발간한 다산 관련 서적을 읽어 본 독자라면 많은 부분이 예전에 실련던 것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것저것 쓸어모아 다시 주워담은 것은 아니고, 다산의 일생을 뭔가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은 성과가 있다. 당시의 시대상황을 요약하고, 특히 관계를 끊을 수 없는 천주교와의 관련성을 분명하게 밝혀 놓은 점은 확실히 새로운 서술이다. 대부분 관심이 덜한 해배된 이후 서거까지의 삶에 대해서도 촘촘하게 정리를 해 놓아서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있다. 오래전에 다산의 자찬(自撰)묘비명을 읽으면서, 정조대왕의 은총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부분을 보고 이건 너무 심한 것이 아닌가(너무 잘난 체 하는 것은 아닌가), 自撰이라기보다 自讚으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의구심을 가졌었는데, 쓸데없는 의심이 말끔히 사라지게 만든 것도 이 책의 미덕이랄 수 있겠다. 동시대인들의 증언, 다른 저술에서 보이는 한없는 겸손함을 채록하여, 그 화려한 묘비명 마저도 오히려 부족함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도록 한다. 이제껏 모르던 위인의 이야기 읽은 것은 아니지만, 통독해 나가는 과정에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주연)의 <인생은 아름다워="">란 영화가 자꾸 생각났고, 새옹지마의 고사도 떠올랐다. 정조대왕의 승하 이전에 다산의 인생은 얼마나 찬란하였던가. 그처럼 주군의 총애을 받으면서도 완성된 인격체를 갖출 수 있었던 관료가 우리 역사상 과연 몇명이나 있었겠는가. 하지만 단 하나의 사건(신유박해)이 그 이후에 그의 인생을 얼마나 궁지로 몰아넣었던가 생각하니 정말 영화같은 삶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다. 하지만 18년간이라는 유배 기간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이 방대한 다산의 학술을 과연 얼마나 구경할 수 있었겠는가. 아마도 정조대왕이 10년만 더 재위했더라도 다산은 분명 번암 채제공을 능가하는 우리나라 제일의 명재상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서 한 구석에 '정조~순조 때의 명신, 각부 판서와 대제학, 좌우 영의정 역임', 이라고 이름 석 자를 올렸겠지만, 다산과 다산학은 영원히 세상에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까지 우리 가슴에 살아 숨쉬고 있는 聖賢의 반열에 오르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에 이르러 '새옹의 말' 고사를 떠올림은 아주 사리에 맞지 않는 일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몇 가지만 지적함으로써 향후 누군가에 의해 완성될 <다산 평전="">을 위한 하나의 제언으로 삼고자 한다. 첫째, 좀 더 객관적인 역사자료를 많이 확보해야 하겠다. 다산이 남긴 수많은 서술로부터도 그의 인격에 대하여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이지만, 동시대인들이 평가한 다산이 어떠했는가 좀더 면밀하게 수록하여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다산의 면모를 확연히 보여주는 것이 옳겠다. 둘째, 인생 역경과 아울러 다산 사상의 전모가 소상히 파악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하여는 그의 문학과 경학, 경세학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지식이 필요할 것이다. 세째, 家系에 대하여 좀 더 상세한 자료가 있었으면 한다. 특히 손암 정약전은 다산의 평가에 의하면, 인격적으로나 학문적으로 오히려 더 나은 형님으로 표현되는데, 다산의 일에 연루되어 억울한 장기유배를 당한 분이다. 다산이 유배지에서 독서하고, 사색하고, 저술에 몰두할 동안 더 형편이 어려운 흑산도에 안치되어 이렇다 할 연구활동도 어려웠으리라 짐작된다. 유배의 정황, 다산의 형님에 대한 한없는 애정과 존경심을 감안하여 다산 평전에서는 정약전만이라도 꼭 정당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어야겠다. 그 외에 다산의 직계선조, 방계 숙부,조카, 직계 후손, 외가쪽까지 포함하는 가계도와 각자의 약력 정도는 충분히 조사할만한 가치가 있는 자료일 것이다. 이 책에 대하여 몇마디 하자면, 첫째, 자료의 출처를 분명하게 표시하였으면 좋겠다. 편지글을 인용할 때 그냥 편하게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등으로 나타낸 것이 많은데, 언제 어디서 작성된 편지인지 명백히 적시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다른 인용문이나 사진들도 출처를 명시하고, 국역문인 경우에는 저자 직역인지, 인용인지 분명히 구별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둘째, 참고문헌목록과 색인이 생략되어 있는데, 어인 영문인지 알 수가 없다. 이 책을 통하여 다산학에 입문코자 하는 독자도 더러 있을 터인데, 이제까지의 연구성과를 집성한 참고문헌목록을 빼먹은 것은 좀 문제가 있을 것 같다. 그냥 기행감상문 수준으로 멈출 생각이 아니라면 다음 판부터라도 두 가지는 챙겨주었으면 좋겠다. 그 외에 책은 전체적으로 잘 만들어져 있는 것 같다. 요즘 주로 워드프로세서 편집을 하는 세상에 이처럼 오탈자가 적은 서적은 근래에 보기 드믈었다(교정 실력은 예전의 활판인쇄 시절보다 많이 퇴보한 듯). 다른 리뷰어가 지적했듯이 문장이 중복된 부분이 한군데 있고, 148쪽에 문과 합격 연도가 1798년(실제는 1789년)으로 되어 있는 것 밖에 별다른 하자를 발견하지 못했다. (한자는 실력이 안되어서 자세히 살펴보지는 못하였다) 우리나라에 예로부터 인재가 귀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알아 봄'을 만난 사람이 드믈 뿐이다. 어인 까닭인가? 실력으로 겨루기보다 동류끼리 서로 派黨을 짓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정조대왕 승하 후에 몰락했던 남인 시파는 끝까지 살아남아서 거의 1세기 뒤 대원군 때 다시 중앙무대에 복권하게 된다. 예전에는 사분오열 찢어지기는 하였으도 지조는 있었던 모양이다. 하루저녁만에도 당적을 이리저리 잘도 옮기는 철새 정치인들은 요즘 새로나온 변종인 듯 싶다. 어느 젊은 철모르는 국회의원이 최근 한 대학교 강연에 가서 '30,40 대 명민했던 사람도 늙으면 쓸모 없으니 60대 이후는 고려장 해 버리라'고 주장했다가 일파만파 파문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40대 이후에도 할 일이 많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어느 통신회사 카피를 내세울 것도 없이 지극한 정성만 있으면 나라사랑하는 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다산이 유배생활 18년(40~50대 전부)의 경륜이 없었더라면 어찌 지금 후대에 이야기 거리가 있었겠는가. 그 국회의원은 과연 다산이 40세 이후에 무엇을 하였는지, 한번 찬찬히 생각해 보길 바란다. '뭣 때문에 다산 같이 낡은 시대 사람을 돌아보아야 하느냐(동학혁명 피해자도 아직 구제 못했는데...)?' 반문한다면 그때는 정말 '할말없슴'이다........
YES마니아 : 로얄 k****1 2004.11.06. 신고 공감 6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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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을 지키며 충실히 산 삶의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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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와 겹친 이번 연휴에 사놓고 뜸들이던 책을 읽었다. 마음 속의 새해를 맞이하는 흔연한 기분으로 만난 다산, 익히 알던 면모에 몇몇 새로움을 더하는 즐거움도 매우 컸다. 책은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라는 제목처럼 지은이의 먼저 책인 의 연장선상에 있어 보인다. 애초 다산의 전기가 새로 나왔다는 기대감을 앞세우며 책을 연 필자로서는 우선 제목에 왜 또 '유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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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와 겹친 이번 연휴에 사놓고 뜸들이던 책을 읽었다. 마음 속의 새해를 맞이하는 흔연한 기분으로 만난 다산, 익히 알던 면모에 몇몇 새로움을 더하는 즐거움도 매우 컸다. 책은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라는 제목처럼 지은이의 먼저 책인 <다산기행>의 연장선상에 있어 보인다. 애초 다산의 전기가 새로 나왔다는 기대감을 앞세우며 책을 연 필자로서는 우선 제목에 왜 또 '유배지'란 말이 들어가야 하나 의아스러워 했었다. 크게 보면 유배지를 전보다 더 자세히 추적하면서 다산 자신의 언급들(그의 시와 문)을 배치해 재구성한 전기물의 외양을 띠게 했다. 머리말에서 '다산의 일대기를 정리할 단계'라고 지은이도 언급했듯이 이 책은 분명 독자들의 바램을 어느정도 시의적절하게 해소해주는 좋은 읽을거리라고 하겠다. 특히 앞부분에서 천주교 문제로 형제 동료들과 유배를 떠나야 했던 과정을 먼저 서술한 점은 극적인 흥미를 더해주고, 다산을 이해하는 데에서 깊이 있는 접근을 가능하게 해준 것으로 생각된다. 그 대목을 읽으면서 다산에게는 순교한 정약종의 사상적인 철저함이라든가 손암(현산) 정약전 형님과의 학문적 병진이 매우 중요하다는 깨달음이 가능해졌다. 마치 러시아의 레닌이 형님의 죽음을 겪고 난 후 치열한 삶으로 러시아혁명을 승리로 이끌어갔던 것과 마찬가지로, 다산의 치열한 학문적 집대성에는 그런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다산의 전기로서는 뒤로 갈수록 더 허술해지는 느낌이다. <자찬묘지명>이라든가 시로 표현되는 다산 자신의 말로 그의 생을 요약하고 지은이가 동어반복식으로 해설하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산 속에 들어가서 다산을 보는 느낌이 들게 된다. 좀더 객관적인 조망 속에서 충분히 언급되는 다산의 전기를 기다리게 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 전기물은 그 인물의 다방면의 연구성과들이 집적되면서 항상 새 성과들을 토대로 다시 쓰여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산이 누구인가?! 호한한 그의 유저들을 학문적으로도 아직 다 살펴보고 평가해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에서 우리 독자들의 바램은 한참동안 앞으로도 목마른 상태로 있을밖에. 더구나 우리의 '근대'라든가 '실학'이라는 아카데미의 학술적 쟁점들도 문,사,철의 각방면에서 한동안은 더 긴 연구의 집적을 필요로 하고 있다면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사람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삶의 방식을 가르쳐주는 스승이 있게 마련인데, 다산이야말로 우리시대의 사표가 아닐 수 없다. 조선시대의 지식인상을 흔히 '선비'라는 말로 표현하지만, 선비 치고 원칙을 지키지 않은 삶을 산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에겐 지금 그런 원칙을 지키는 삶이 절실하게 보여져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그중에서도 치열한 학문정신을 드높이 보여준 다산의 경우, 우리시대의 최고 스승상으로 자리매김될 수 있도록 보다 객관적이고 자세한 면면을 보여주는 전기가 못내 아쉬운 것이다. 편집자에게도 한마디! 책 후미에 연보와 주요인물해설, 역사용어풀이 등을 붙인 것은 좋으나 색인을 달지 않은 것은 결정적인 실수로 보인다. 또 318쪽에 "그러다가 최근에는 영일군이 포항시와 통합되어 포항시 장기면으로 바뀌었다."란 문장이 2번 거듭 나온다.

[인상깊은구절]
형님의 죄상을 캐묻는 대목에 이르자, 위로는 임금을 속일 수도 없으나, 또한 아래로는 아우가 형의 죄를 증언할 수도 없다고 하면서 형(정약종)이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오직 한 죽음만이 있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아울러 자기에게는 잘못된 형(病兄)이 한 분 있지만, 형제 사이라는 천륜은 애초에 무거운 것이니 어떻게 자기 혼자 선하다 하겠느냐며 함께 죽여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j****1 2004.01.23.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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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법열 - 진보(進步)와 걸음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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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박석무 선생이 번역한 [유배지에서 온 편지]란 책을 읽으면서 학문하는 이의 치열함에 마음을 다잡은 적이 있다. 이 책 역시 다산선생의 준열한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총 558쪽에 이르는 약간 많은 분량이지만 8시간 이틀에 걸쳐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다산의 수많은 저서를 읽고 이책을 쓴 박석무는 다산의 글맛과 더불어 나에게 읽는맛을 더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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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박석무 선생이 번역한 [유배지에서 온 편지]란 책을 읽으면서 학문하는 이의 치열함에 마음을 다잡은 적이 있다. 이 책 역시 다산선생의 준열한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총 558쪽에 이르는 약간 많은 분량이지만 8시간 이틀에 걸쳐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다산의 수많은 저서를 읽고 이책을 쓴 박석무는 다산의 글맛과 더불어 나에게 읽는맛을 더해주었다. 다산 정약용을 수식하는 말은 너무도 많다. 나는 한가지만을 말하겠다. 다산은 뛰어난 시인이다. 다산의 시는 벼슬살이와 귀양살이, 즉 주류와 비주류를 다 경험한 이의 녹록치 않은 실재가 들어있어 현대의 공허한 민중시와는 다른 풍모를 지니고 있다. 다만 학자 특유의 자기과시(물론 500여 권의 저술을 한 사람은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되지만)만 뺀다면 금상첨화겠다. 하지만 그것은 다산의 뛰어난 글맛에 비하면 작은 티에 불과하다. 나는 다산의 책을 읽으면서 학문하는 사람이란 얼마나 수많은 자기성찰이 필요한가를 곱씹었다. 다산이 저술한 책은 너무 방대하다. 정치, 경제, 문화, 의학, 과학 등 그야말로 한 사람의 양으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 한마디로 르네상스적 인간인 다산의 모든 저작에 관통하는 단어는 '실학'이란 말로 압축할 수 있다. 그것을 아우르는 사상이 이 책에 고스란이 들어있다. 현실에서 통용되는 학문을 통해 민중의 아픔과 고통을 체감하려는 다산의 '실사구시'가 많은 저서를 양산하게 된 동기가 된 듯 하다. 다산은 주자학과 자신의 실학을 통해, 그는 비록 한자로 책을 썼지만 진보와 걸음의 차이를 많이 보여주었다. 천자문이 학동에게는 다소 어렵다는 것을 논증적으로 보여주었고, 理와 氣에 사로잡힌 공소한 주자학의 관념을 현실에 상응하고 필요한 학문으로 바꾸려 애썼다. 나는 그것을 進步와 걸음의 차이로 생각한다. 이책은 책을 가까이 하고, 학문을 하는 사람은 꼭 읽을만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학문하는 이의 치열성이 어느 한 곳 배이지 않은 곳이 없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편집의 문제성이다. 318쪽을 보면 한 문장이 중복되어 나온다. 하단부에 있는 "그러다가 최근에는 영일군이 포항시와 통합되어 포항시 장기면으로 바뀌었다."라는 문장이 한 번 더 나온다. 내가 구입한 책이 제1판 1쇄라서 그런지 2쇄부터는 꼼꼼한 교정이 요구된다.

[인상깊은구절]
"명(命)과 도(道) 때문에 성(性)이라는 명칭이 있게 되었고, 자기와 남이 있기 때문에 행(行)이라는 이름이 생겼으며, 성과 행 때문에 덕(德)이라는 명칭이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성만 가지고는 덕이 될 수 없는 것이다." - 503쪽
m*******g 2003.10.1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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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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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책이다. 요새 같은 전문가적 지식인이 아니라 聖人이라는 인격과 지식의 통합적 완성을 추구했던 선인들 가운데 최정점에 도달했다 할 수 있는 다산의 풍모를 느낄 수 있다. 다산이 겪었던 유배에 대해 동병상린의 정치적 이력을 가진 박석무 저자의 따뜻한 해석이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다산은 유학의 고전뿐 아니라, 의학,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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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책이다.

요새 같은 전문가적 지식인이 아니라 聖人이라는 인격과 지식의 통합적 완성을

추구했던 선인들 가운데 최정점에 도달했다 할 수 있는 다산의 풍모를 느낄 수 있다.

다산이 겪었던 유배에 대해 동병상린의 정치적 이력을 가진 박석무 저자의

따뜻한 해석이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다산은 유학의 고전뿐 아니라, 의학, 법학, 공학 면에서도 이론과 실무 경험이

풍부한 르네상스적 지식인이었다는 점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유사하다.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권력의 최정점을 향해 승승장구 하다가

천주교 탄압의 소용돌이 속에서 하루 아침에 폐족의 신세로 전락한 후

일생을 학문에 정진하여 다산학의 일가를 이뤄냈다는 점에서는

궁형이라는 치욕을 안고 평생을 사기 집필에 혼신한 사마천을 떠올리게 한다.

재테크나 어학공부가 자기계발이라고 착각하는 이 시대에 참된 공부를

해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곁에 두고 읽어야 할 책이다.

x****e 2008.10.2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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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고·호독·호아의 다산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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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무 선생의 이 책은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다산의 생애와 시문, 그리고 다산의 경세학을 이해할 수 있는 훌륭한 지침서다. 다산학이 반주자학, 반성리학, 반봉건, 반부패의 일관된 이론으로 봉건사회에 대한 비판적 주장임을 알려주는 양서가 아닐 수 없다.   저자는 최근 한 다산학 강의에서 호고(好古)·호독(好讀)·호아(好我)의 '3호정신'을 강조한 바 있다. 이런 정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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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무 선생의 이 책은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다산의 생애와 시문, 그리고 다산의 경세학을 이해할 수 있는 훌륭한 지침서다. 다산학이 반주자학, 반성리학, 반봉건, 반부패의 일관된 이론으로 봉건사회에 대한 비판적 주장임을 알려주는 양서가 아닐 수 없다.

 

저자는 최근 한 다산학 강의에서 호고(好古)·호독(好讀)·호아(好我)의 '3정신'을 강조한 바 있다. 이런 정신은 다산의 기본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 특히 호아는 우리 것을 아끼고 좋아한다는 것으로 한국의 문화적 주체성을 달리 표현한 말이기도 하다. 다산의 반주자학과 반성리학은 이런 문화주체성의 발현인 것이다.

 

"주머니 속에 갇힌 듯 무지몽매한 조선 사람들, 기상과 뜻을 펴지 못하고 움츠린 모습이 너무도 불쌍하다. 진짜 성현인 공자나 맹자는 저 멀리 있는데, 보통 수준도 아닌 시시한 학자를 최상으로 존경하며 패거리 학파나 만들고 당파로 갈려 싸움질이나 하는 꼴들이 너무도 밉다. 그저 외국 것만 너무 숭상하면서 자기 자신을 상실한 채 살아가는 모습이 처량하다." (137쪽)

 

"당파 싸움에까지 깊이 스며들어 정치의 도구가 되어버린 성리학, 진리가 무엇인지 묻지 않고 자기 파에서 주장하면 무조건 옳은 성리철학이고 남의 당에서 주장하면 무조건 바르지 못한 성리학이라고 싸움을 벌이고 트집이나 잡던 성리학, 그런 공리공담(空理空談)의 거짓 학문을 타파하지 않고는 시대의 고난을 해결할 수 없다고 보았다. 나라는 가난에 찌들어 온 나라가 기아에 허덕이건만, 그러한 나랏일에는 눈을 감고 이(理)니 기(氣)니 떠드는 공리공론의 성리학에서 벗어나 실용학문으로 사상의 변혁을 일으켜야 한다는 충정이 다산에게는 있었다."(325쪽)

 

경학에 있어서 다산은 주자의 공허한 관념론적 주리론과는 다르게 인의예지란 행동과 일에서 실천된 뒤에야 그 본뜻을 찾는다는 실천윤리와 관계윤리를 강조했다. 인에 대한 이런 독창적 해석도 사상적 주체성의 발현이라 평할 수 있다.

 

"주자는 천을 이(理)로, 인을 생물지리(生物之理)로, 중용(中庸)의 용을 평상이라 해석하여 관념적인 세계관으로 유학을 체계화했다. 주자와는 달리 다산은 인을 이로 보지 않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다하는 행위 개념으로 새롭게 해석했다. 주자는 인이란 "사랑의 이치(愛之理)요, 마음의 덕(心之德)"이라고 했지만, 다산은 인이란 글자 모양대로 사람(人)이 둘(二)이라는 뜻으로 두 사람 사이에서 상대방에게 최선을 다해 섬겨주는 행위로 해석하여 행동이 배제된 경학의 해석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 분명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491쪽)

 

다산은 민중의 대변자적 역할에 충실했다. 이른바 '일표이서'에서는 맹자처럼 민본원리와 민권의식을 강조했다. 물론 다산은 서구식의 민주주의자는 아니다. 백성을 어떻게 돌볼 것인가? 관이 아전을 어떻게 규율할 것인가? 이를 논한 것이 바로 유명한 [목민심서]로 목민관의 부임, 율기, 봉공, 애민의 도리를 설한 경세서다. 다들 잘 알겠지만 베트남 통일의 아버지 호치민이 가장 애독한 다산의 저서가 바로 [목민심서] 다.

 

다산은 [목민심서] 곳곳에서 목민의 정신은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고 언제나 민중의 힘을 자각하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산이 2년 반 동안 곡산 군수를 지낼 때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이계심 판례'를 통해 몸소 보여준 바 있다. 다산은 "통치자들이 밝아지지 못하는 까닭은 백성들이 자기 몸을 위해서만 교활해져서 폐막을 보고도 통치자에게 항의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세상이 부패해지는 이유를 밝히면서, 잘못에 항의할 줄 아는 이계심은 통치자가 천금을 주고 사야 할 사람이라고 극찬하기에 이르렀다. 저자는 '바를 정'이야말로 목민심서의 근본 정신이라는 일침을 잊지 않는다.

 



z***a 2012.07.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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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벤자민 프랭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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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이 일생동안 거쳐간 거취를 쫓은 책이다. 만약 정약용이 걸은 정신적인 길에 대해 알고 싶다면 추천할만한 책이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길 정약용을 한국의 레오다르도 다빈치라고 한다. 나 역시도 영역을 불문한 그의 재능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었지만, 그에 대해 좀 알고 보니 벤자민 프랭클린에 더 가까운 것 같다. 그의 실용적인 태도뿐만 아니라 현실 속에서 검약하는 도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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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이 일생동안 거쳐간 거취를 쫓은 책이다. 만약 정약용이 걸은 정신적인 길에 대해 알고 싶다면 추천할만한 책이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길 정약용을 한국의 레오다르도 다빈치라고 한다. 나 역시도 영역을 불문한 그의 재능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었지만, 그에 대해 좀 알고 보니 벤자민 프랭클린에 더 가까운 것 같다. 그의 실용적인 태도뿐만 아니라 현실 속에서 검약하는 도덕적인 면 등 모든 면에서 흡사하다.

가끔 이처럼 역사에 대해 생각하면 모든 닫힌 가능성들에 대해 상상하게 된다. 만약 정조가 그렇게 일찍 죽지 않았다면. 정약용의 형 정약종이 천주교에 빠지지 않았다면, 그가 유배를 가지 않고 더 많은 기회를 가졌더라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그랬다면 그는 그렇게 많은 분야에서 훌륭한 저술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고, 다산 학파는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면에 조선은 근대화의 발판을 다졌을 것이고, 식민지 지배를 받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정약용에 대해 인상깊었던 점은 그의 실용적인 태도와 공리에 이바지하려는 인간됨, 가족애 등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정조와의 문답이었다. 정조는 성균관에 자주 발걸음을 하면서 유생들에게 직접 문제를 내고 답변을 듣기도 할 정도로 학문이 높았다는데, 이기론에 대해 정조가 질문하자 정약용이 한 대답에 대해 크게 칭찬하고 상을 내렸다고 한다. 정약용은 남인이므로 이황의 입장에 찬성해야 하지만, 그는 그의 생각대로 이이의 주장에 가깝게 답변했는데, 그 답변이 참으로 명쾌하기 그지없었다.

남인들은 그를 변절자라고 했고, 그의 일생동안 그와 가까웠던 사람들이 그를 밀고하여 죽음의 지경까지 몰고 갔지만, 그는 인간에 대해 변함없는 믿음을 가지고 목민관을 세웠다. 그렇지만 그의 목민정신을 이어받은 공직자는 오늘날 찾아보기가 너무 힘들다. 오늘날의 목자들은 모두 강물에 귀를 씻고 초야에 묻혀 있는 것인가.

a*****a 2009.01.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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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선생의 진정한 면...훌륭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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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민심서나 소설 목민심서를 통해 정약용 선생의 모습은 독자라면 누구나 마음에 울컥 치솟는 심정으로 그릴 수 있으리라. 일세의 명문장가이자 실학자 그리고 따뜻한 아버지였던 다산 선생... 소설 목민심서나 그냥 목민심서에서는 다산 선생의 모습을 그냥 겉으로 상상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박석무님의 이 책의 수많은 다산 선생의 시들을 보니 더욱 인간적이었고, 수수했던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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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민심서나 소설 목민심서를 통해 정약용 선생의 모습은 독자라면 누구나 마음에 울컥 치솟는 심정으로 그릴 수 있으리라. 일세의 명문장가이자 실학자 그리고 따뜻한 아버지였던 다산 선생... 소설 목민심서나 그냥 목민심서에서는 다산 선생의 모습을 그냥 겉으로 상상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박석무님의 이 책의 수많은 다산 선생의 시들을 보니 더욱 인간적이었고, 수수했던 모습이 실제적으로 떠오른다. 또한 역사적 사료를 찾아 직접 다산선생의 유배지를 기행하면서 문득 느꼈던 심정까지 적어놓은 작가의 세심한 배려속에 독자까지도 그런 행보를 해보고 싶게 끔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소설 목민심서에서 볼 수 없었던 모습을 더할 수 있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인 거 같다.
a******0 2005.01.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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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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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1,2>로 시작해 정민의 <다산어록청상>,<다산 선생 지식경영법>, 1표2서 중 <목민심서>, 박혜숙이 다산의 산문을 편역한 <다산의 마음>,황인경의 <소설 목민심서> 그리고 이 책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에 이르기까지 아직은 바탕공부에 그치고 있지만, 나의 다산 사숙은 계속된다.   다산 관련서를 검색하면 빠지지 않는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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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1,2>로 시작해 정민의 <다산어록청상>,<다산 선생 지식경영법>, 1표2서 중 <목민심서>, 박혜숙이 다산의 산문을 편역한 <다산의 마음>,황인경의 <소설 목민심서> 그리고 이 책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에 이르기까지 아직은 바탕공부에 그치고 있지만, 나의 다산 사숙은 계속된다.

 

다산 관련서를 검색하면 빠지지 않는 저자가 바로 이 책의 저자 박석무였는데, 그래서 꼭 한 번은 이분이 쓴 다산을 읽어보고 싶었다. 게다가 다산을 유배지에서 만난다는 제목은 일종의 답사기 형식으로 돌아본 다산 관련서라는 같아서 더욱 기대했더랬다. 

 

뚜껑을 열어보니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처럼 역사서의 성격이 8할이고-아암과 다산의 관계에 관해서는 이덕일과의 해석차이가 크게 눈에 띄지만 다른 부분은 대동소이하다- <다산어록청상>처럼 다산의 글을 통한 80년대 사회에 관한 소고를 밝힌 부분이 2할이다. 그런데 이 혼합이 좀 매끄럽지 못한 인상을 받았다. 7부로 구성된 책인데, 5부에서 예고없이 답사 형식의 문체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전체를 1부와 2부로 나눠, 각각 과거의 다산과 현대의 다산을 다뤘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전체적으로 내용이 얽혀있는 부분이 대여섯곳 되는데, 그래서 깔끔한 맛은 좀 떨어지지 않은가 생각한다. 괜히 분량이 늘어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다산연보와 주요인물 설명, 역사용어 풀이를 제외해도 분량이 530쪽이나 되기 때문이다.

 

다산의 시를 인용하고 번역한 것은 좋았으나 이 또한 몇몇 부분에서는 '잉?' 의아할 정도로 어색하게 느껴졌던 부분이 있었다.

<하담의 이별(荷潭別)>을 번역한 예를 들면,

'아버님이여 아시나요 모르시나요

어머님께선 아십니까 모르십니까.

집안이 갑자기 무너져버려

죽고 살아남는 이 지경이 되었어요.

이 목숨 비록 부지는 했지만 (중략)

이 세상 사람 대부분

다시는 아들 낳았다 기뻐하지 않겠네요.'

에서 보이는 문체의 어색함이 그것이다. 

 

장점들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되겠다. 저자는 답사경험을 통해 다산의 오늘을 살려냈으며(비록 그것이 주(主)를 이루지는 않지만) 우리의 현재를 돌아보게 한다. 가령 천진암을 천주교의 성지로 주장하거나 심지어 다산을 천주교인으로 끌어들이는 현상들이 그렇다.

 

또한, 답사와 연구를 통한 지명의 유래 설명은 꼼꼼하고 치밀했다. 가령 강진은 두 고을(강?+탐진;밑줄 그은 부분을 못 찾겠다)을 합치면서 앞 글자와 뒷글자를 붙여 만든 이름이라는 설명 등이 그 예다. 

 

정약전의 유배지 흑산도 玄山을 '현산'으로 읽었을 것인가, '자산'으로 읽었을 것인가에 대한 점은 이전에 읽은 책들과 차이가 난다. 박석무는 '현산'을 쓰면서 이 것이 학자들 간의 토의를 통한 합의라고 했다. '아무려면 어때' 하고 넘겼으나, 정약전의 '자산어보'인가, '현산어보'인가와 관련된 문제이긴 하다.

 

(부언)

내고향 보길도에 유배됐던 고산 윤선도의 6대 후손이 다산이다. 우리 할머니 또한 해남 윤씨로 고산 윤선도의 후손이니 나 역시 다산과 티끌 만큼의 연은 있는 셈이다. 

e***7 2010.02.1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