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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역 풍습에 “천자문(千字文)”에 씌인 천 개의 글자를 지인(知人)들에게 한 자씩 써달라고 부탁하여 완성하는 “걸자집(乞字集; 글자를 구걸하여 책을 만들다)”이라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주로 할아버지께서 손자의 학업과 건강을 위해 선물하던 풍습이라고 하는데, 글자를 써주게 되는 사람들도 아무나가 아닌 학문적 성취로 이름을 높은 사람이거나 무병다복한 사람들로 고르고, 글자와 함께 손자를 위한 덕담 한마디를 같이 받아 기록해둔다고 한다. 최근에는 연극배우 출신 영화배우 오지혜씨가 자신과 인연이 있는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한 특별한 방법으로 천자문(千字文)을 갖고 다니며 사람들을 만날 때 이들에게 천자문에 쓰인 한자를 한 글자씩 받는 방법으로 “걸자집”을 만들고 있다고 한 기사를 어떤 인터넷 신문에서 본 적이 있다. 이렇듯 이인의 “청춘대학”(도서출판 동녘, 2010년 7월)을 읽으면서 나는 그 옛날 금쪽같은 손자를 위해 스승님들을 찾아가 귀한 글씨를 받아내던 할아버지와 자신의 인연을 기억하기 위해 한 글자씩 모은다는 배우 오지혜의 걸자집이 계속 연상되었다. 20대 후반, 이제 사회에 발을 내딛을 나이의 젊은 청년이 이 시대의 참 선생님들을 한 분씩 찾아뵙고 자신과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따뜻하면서도 호된 가르침을 듣고 이렇게 책으로 엮어 방황하는 자신의 친구들에게 들려주는 것에서 일맥상통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이가 먹어가는 데 예전과 별로 다를 바 없다는 데서 오는 조급함과 실망감이 컸던 작가는 자신의 깜냥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 없다는 일들 앞에서 더욱 움츠려감을 느끼고는 선생님이 그리웠다고 한다. 휘청대는 젊음에게 토닥여주면서도 매섭게 호통도 쳐주시고, 어깨동무를 하면서도 같이 콧노래를 부르지만 헤맬 때는 이리로 오라고 손짓을 해주시는 그런 선생님을 말이다. 진짜 행복이 뭔지. 가장 아름다운 시기라는 젊음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하던 작가는 죽비처럼 어리석음을 꾸짖어주고 봄바람처럼 마음을 설레게 하는 선생님들을 만나기 위한 “사람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자신의 알을 깨고 나올 수 있게 밖에서 도와줄, 즉 “줄탁동시(啐啄同同時)” 역할을 해주실 그런 선생님들을 찾기 위해 신문이나 뉴스를 꼼꼼히 보면서 젊은이들에게 애정 어린 말을 하거나 관심을 보인 분들을 찾아 “하루 제자”를 청하게 된다. 그렇게 1년 동안 찾아가서 만난 선생님들의 말씀들을 묶어 낸 것이 바로 이 책 “청춘대학”이며 작가 가슴 깊숙한 곳을 묵직하게 건드렸듯, 이 책이 시대를 고민하며 좀 더 줏대 있게 살아가고자 하는 모든 젊은이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따끔한 회초리가 되어주길 바라며, 나이가 20대인 사람들이라는 생물학 나이를 떠나 모든 “청춘”들에게 이 책을 전한다고 서문인 “들어가며”에서 밝히고 있다.
책의 구성은 마치 대학 한 학년 커리큘럼처럼 1학기와 방학 2학기로 나누고 작가가 만난 선생님들의 “수업” 전에 선생님들에 대한 이력과 소개를 간략하게 하고 선생님들과의 대화를 다룬 후에 자신이 느낀 감상과 이해를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제목으로 소개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선생님들은 작가가 말한 것처럼 신문이나 방송 등 언론 매체 뿐만 아니라 그분들의 책을 통해서도 한번 씩은 들어봤을 유명한 분들이다. 시인이자 소설 “캔들 플라워”의 저자인 김선우는 젊은이들이 싸우는 것을 무서워한다고 하지만 촛불을 거피면서 싸우는 방식이 다양할 수 있고, 문화적일 수 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생각이 들며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개개인의 행복에 대해서 충분히 사유하고 연대해서 싸워야만 얻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고전 평론가이자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의 저자 고미숙은 20대들이 자신의 몸과 정신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자기가 길들여져 있는 조건, 가족과 제도, 학교를 포함해 모든 것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질문을 하고 일상을 재배치하라고 충고한다. 철학 아카데미 공동대표인 박남희는 철학을 삶에 녹여내는 방법으로 삶의 가장 기본인 정직성이 필요하고 이런 정직함이란 너나 할 것 없이 사라이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다는 자기 겸손함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겸손과 맞물린 정직에서 출발해야 철학사회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문화비평가인 이택광은 인문학의 위기는 현실 문제에 개입하는 인문학자들이 별로 없다는 데서 오는 것이며, 삶에 개입하기 위해 들어온 우리나 인문학이 지금은 사라져버리고 이른바 “인문학 오타쿠”들만 남아 있는 암담한 현실이라고 비판하면서, 인문학은 현실문제에 개입할 때 의미가 있으며.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인문ㄹ학이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시사프로그램 진행자인 김미화는 요즘 젊은 세대에게는 “아자!”하는 게, 즉 뭔가 자기 스스로 개척하고 찾아내야 하는 것이 부족하며 부모님이나 친구나 친척 눈치 보지 말고, 자신의 인생, 자신이 주인공인 삶에서 자신의 꿈을 위해서 자신이 간다는 생각을 하라고, 몇 번을 실패해도 젊으니까 괜찮으니 아자 하는 정신으로 도전해보라고 충고한다.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의 저자이자 진보 지식인으로 유명한 홍세화는 젊은이들이 연대와 단결, ‘함께 하자’는 정신이 중요하게 제기되어야 하며, 같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같은 세대로서 느끼는 세대 감각이 필요하고 그런 점에서 기성세대에 편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만 계층 상승하겠다는 게 아니라 젊은 세대가 함께 사는 구조로 변화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변화경영사상가인 구본형은 취직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꿈을 얘기하는 것을 사치라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에게 인생을 너무 짧게만 생각하지 말고, 밥과 자기조재(영혼), 이 두가지를 화해시키기 위해 애를 서야 하며, 현실적인 문제에만 치중하게 되면 밥은 건질지 모르지만 끊임없이 공허할 것이라고 충고하며, 다양하게 살아가는 삶과 사는 방법에 대한 그림을 그려보라고 이야기한다. 교육 부총리를 역임한 학자 한완상은 요즘 섦은 세대들은 소시민적인 자족감에 빠져 있으며, 조그마한 자유, 자유롭게 연애할 수 있는 자유, 보고 싶은 영화를 보는 자유 등 이런 작은 자유에 매몰되지 말고 패러다임의 근본적 변화가 오는 시점인 이때야말로 젊은이들이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현대사학자 한홍구는 20대들이 국회의원도 나가고 정치 사회에 참여하여 청년실업 등 과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즉 자신들을 위한 정책을 만들고 동참하여 아래에서부터 바람을 일으키라고 이야기한다. 작가는 맺음말 “나가며”에서 선생님들을 만난 시간은 큰 축복이었으며, 그들과 나눈 시간은 자신의 삶에 굵은 마디로 자리 잡았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아직 아무에게도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시인이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으며 모두 함께 자신의 필명처럼 “까르르” 웃을 수 있을 때를 꿈꾸며, 지금은 사회의 그늘을 조금이라도 밝히고 싶어 조금은 날이 선 글을 세상에 던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는 자신보다는 덜 아프게 자신만의 길들을 찾기 바라며 사람들과의 귀한 인연도 놓지 않았으면 한다고 당부하며 이 책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소중한 씨앗이 가슴에 뿌려지길 바라고 용기를 내서 같이 세상을 향해 걸어가자고 말하며 끝을 맺는다.
작가가 전문 인터뷰어가 아니어서 선생님들의 인생과 철학, 주장들을 올곧이 끌어내지 못하고 주로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라는 교훈적인 주제에 한정되어 있어 읽는 맛은 떨어지긴 하지만 그래도 다양한 목소리로 들어보는 젊음에 대한 이야기는 한번쯤은 새겨볼 만한 그런 이야기들이다. 그중에서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이택광 선생과 조정환 선생의 촛불 논쟁을 다시 다룬 부분은 그당시 그 분들의 글들을 읽으면서 때론 동조하고 때론 너무 편협하다고 비판했던 그 당시 느낌들을 다시 상기시켜주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었다. 인터뷰집의 장점인 다양한 목소리를 재미있고 의미있게 담아낸 이 책 - 사실 이 책이 작가의 말대로 순수한 마음에 선생님들을 찾아 그들에게 가르침을 받은 것인지. 아니면 출판사 기획으로 진행된 인터뷰 책인지는 판단하기가 솔직히 어렵다 - 은 작가 또래인 20대 젊은이들이 우선 읽어보길 권하고 작가의 말대로 생물학의 나이를 떠나 아직도 가슴 한 켠에 무언가를 새롭게 해보고 싶은 열정을 가진 “청춘”들과, 갈 수 록 편안한 생활에 안주하고 변화하기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늙은 분”들에게도 신선한 자극이 될 수 있는 그런 책으로 추천해주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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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로 대변되는 요즘 사회.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이 넘쳐나고, 재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상위 5%밖에는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을 수가 없다. 그리고 오늘날 대학은 취업을 위해 브랜드라는 옷을 입혀주는 역할로 축소되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왜 왜 왜?
그런데 정작 곧바로 사회에 진출할 청년들은 이런 것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은지 오래다. 그래서 위기가 아닌 곳이 없다. 이공학계나 기초과학분야에는 학생들이 줄어서 위기고, 인문학은 살아가는 방향에 대한 자기 고민들이 없어서 위기다.
한번씩 삶을 뒤돌아 보는 것은 여유가 아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삶을 원하는지, 행복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어떻게 풀어가갈 것인지 판단하는 것은 꼭 인문학에서만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가는 인생이기 때문이다.
20대 후반에 남들처럼 각종 자격증에 스펙 쌓기를 위해 다양한 분야를 기웃거리다 무작정 인생에 대해 간절한 질문에 대답해 줄 선생님들을 찾아 다닌 사람이 있었다. 오마이뉴스 블로그에 '꺄르르' 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이인이 바로 그 주인공.
『청춘대학』은 저자가 이 시대를 나름 진지하게 살고있는 17명의 선생님을 찾아 인생과 사회의 모순된 문제들, 그리고 같이 풀어가났으면 하는 질문을 인터뷰한 내용을 펴낸 책이다. 그래서 편의상 1학기, 방학, 2학기로 구분한 것이지. 이렇게 구분한 다른 특별한 의미는 없는 듯 하다. 책을 통해 선생님 한 분 한분 찾아 인터뷰한 내용을 축약한 것을 소제목으로 배치하고, 선생님의 간단한 약력소개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인터뷰 내용이 끝나면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코너를 통해 그 날의 소회를 간단히 정리하는 식으로 구성했다.
첫 시작은 <캔들 플라워>의 저자 김선우 선생님이다. 문학창작과 초청강연에서 선생님이 느낀 점을 밝히는 부분에서 나 역시도 공감이 갔다. 문학창작을 해야지 하고 의식을 갖고 있는 학생도 있지만 대부분 점수에 맞춰서 오고, 여기 와서 살 궁리를 하다보니깐 책을 읽지 않는 모순이 생긴다는 것. 큰 아들이 올해 문창과에 진학했는데 책에서 말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 읽고 아들 책상위에 살며시 가져다 두었다.
책을 통해 안타까운 부분도 있었다. 한홍구 선생님이 나오는 부분이었는데, 선생님은 아직 <워낭소리>를 보지 않았단다. 그 이유는 <워낭소리>가 히트했을 즈음 용산참사가 일어났기 때문이란다. 영화 관객이 300만 명이 넘었다는 기사를 보고 부아가 났단다. 소 얘기에 300만명이 울었는데, 용산참사 집회에는 3천명이 넘은 적이 없단다. 나 또한 한번도 가보지 못한 죄스러움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책은 꼭 청춘에 국한해서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사회적인 모순을 해소하여 보다 행복한 사회를 바라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든지 읽어봐야 할 책이다. 책을 관통하는 큰 흐름은 시대는 진보한다는 것이다. 흐름이 빠르고 느린 차이에 불과한 것이다. 흐름이 느린만큼 우리는 더 힘든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희망을 가지고 더욱 용기를 내서 세상을 같이 걸어가자고 말한다. 모두가 행복하기를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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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청년의 유쾌한 지성 탐방기 청춘(靑春)이라는 낱말이 주는 의미는 많이도 변했다. 이 말이 단지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에 이르는 나이 때만을 가리키는 나이 대를 구분하는데 한정된 말이 아님은 누구나 알고 있다. 80년대 중반 대학을 다닐 때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청춘이 주는 꿈과 희망이 담보된 싱그러움이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그 시대가 이 청춘의 꿈을 전부 실현시킬 수 있는 진보된 사회였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의 경제적 문제가 청춘 시기의 모든 것에 우선하지는 않았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오늘날, 청춘에 해당하는 20대의 현실은 여러 가지로 복합된 문제에 가로막혀 미래를 내다볼 희망을 저버리게 만들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는 당사자인 20대가 무엇보다 실감하는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딱히 해결의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20대 만의 고유한 문제가 아님도 익히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이는 특정한 연령층에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사회 문제인 것이다. 청춘의 한복판에서 살아가는 청년이 스스로의 미래를 개척하는 길에 나섰다. 이리저리해도 해답을 찾지 못하는 동년배들의 고민도 함께 끌어안고 해답을 찾기 위한 구도자의 마음으로 스승을 찾아 나선 것이다. 이 과정을 담아놓은 기록이 이 책 ‘청춘대학’이다. 저자는 스스로 평범한 20대라고 말한다. 이는 우리 사회 대부분이 안고 있는 현실의 문제에 노출되어 있다는 말일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의 행보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다. ‘청춘대학’ 이 책에는 우리나라 현실의 문제에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하고 뜻을 함께하는 이웃들과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지식인들이 등장한다. 저자가 찾아 나선 선생님들로 김선우, 고미숙, 강신주, 박남희, 이택광, 조정환, 김시천, 고병권, 김미화, 홍세화, 구본형, 우석훈, 한완상, 고은광순, 임지현, 한홍구 등이 그들이다. 면면이 이들의 삶을 살펴보면 저자가 이들을 통해 얻고자 하는 해답이 무엇인지 짐작할만하다. 저자는 이들과의 면담을 통해 자신의 문제에서부터 이 시대 청춘이 안고 있는 문제와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인문학의 위기, 촛불논쟁, 현실인식, 역사바로보기, 청년의 현주소, 직업선택, 행복이란 무엇인가 등 함께 풀어가는 이야기의 내용이 가볍지 않다. 근본을 찾아가는 이야기이기에 그렇지만 저자의 자신과 현실의 문제를 대하는 자세 또한 진지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무겁고 절망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그 속에서 희망을 찾아가는 것이다. 저자의 관심은 무엇을 어떻게 보고 그 해결방안을 찾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이들과 나눈 이야기의 대부분이 결국 현실의 모순이 무엇이고 그 모순의 출발과 현상 그리고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모색하는 것이다. 뜻을 품을 사람이 먼저 길을 나선 선배에게 듣는 경험과 그들의 지혜를 나눠 갖고자 하는 것이리라. 대담의 과정에서 대담자들의 관심사에 따라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결론은 ‘청춘인 자신들이 바로 가능성을 믿고 도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에서 보는 20대는 극과 극을 달리는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극도로 이기적인 모습에 겉모습의 치장에만 몰두하는 모습이 보이는 반면 이웃에 눈을 둘려 소중한 시간을 그들과 소통하며 더불어 잘 사는 사회를 꾸려가고자 힘쓰는 것이 그것이다. 이렇게 상반된 모습이 공존하는 것이 현실 청춘들의 모습이다. 그렇기에 긍정의 힘을 믿고 밝은 미래를 개척할 힘 또한 그들에게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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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에게 묻노라.
언젠가부터 아이들의 장래 희망 1위가 '공무원'이 되었다고 한다. 내가 어릴 땐 과학자가 주를 이룬걸 감안하면 좀 더 현실적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웬지 씁쓸함은 감출 수가 없다. 세상은 변하기 마련이지만 꿈은 사라지고 현실만 남은 세상은 어떨 때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토익 점수를 따기 위해 고등학교 때 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는 대학생들을 보면 뭔가 잘못되어가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든다.
많은 사람들이 젊은이들이 뭘 해야 하고 청춘이 뭘 먹고 자라야 하는지에 대해서 많은 얘기들을 했다. 하지만 대부분 장년이라는 나이나 자신들의 위치를 감안한 충고아닌 충고들 뿐이다. 20대 후반의 저자는 직접 인터뷰를 하면서 그런 의문들을 하나하나씩 풀어나간다.
평범치 않은 이들의 평범하지 않는 질문과 대답을 눈으로 읽으면서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어떻게 살 것인가 보다'라는 질문은 '왜 살아야 하는가'로 바꿔봐야 하지 않는가였다. 사실 머릿속을 비우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해답은 이미 사회가 알려주고 있다.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가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후에 좋은 회사에 들어가서 결혼해서 잘 사는 것이다. 이왕이면 안정적인 공무원이 제일 좋다. 하지만 이런 삶에 더 없이 충실하게 사는 사람조차도 이렇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모범 답안을 내놓지 못할 것이다.
청춘이 중요한 것은 미래를 향한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꿈과 현실의 교차점에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어느 한쪽을 포기하면 다른 한쪽도 잃어버린 다는 것은 확실하다. 범상치 않은 사람들은 질문자에게 정답이면서 정답이 아닌 답변들을 해준다. 청춘아, 너는...이라고 시작되는 답들은 통제불능이고 예측 불가능이다. 하지만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하나같이 정답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대답은 한결같다. 청춘아, 너는 불행하게 살지 마라라는 것이다.
읽는 내내 정답이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허겁지겁 페이지를 넘긴 것은 정답이 아닌 정답들이 수두룩하게 널려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와 왜 해야 하는 가에 대한 본질적인 답변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청춘아, 너는 행복해야 한다. 청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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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大學)’
아마도 큰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고 해서 대학(大學)이라고 칭하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요즘 대학을 보면 과연 큰 가르침이란 것이 그곳에 존재하기는 하는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차라리 회사 맞춤형 휴머노이드를 대량으로 양산해내는 공장이 대학의 진짜 모습인 듯하다.
요즘 상황을 보면 소위 대학이라고 불리는 그 곳에서는 인간과 삶, 그리고 우리 공동체의 역사에 대한 깊은 성찰의 부스러기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그저 학점과 스펙의 족쇄에 묶여 자신의 상품가치를 극대화시키려는 몸부림들만이 처절하다. 큰 가르침을 찾기 위해 간 그곳에 큰 가르침이 없다면 어찌 해야 할까? <청춘대학>의 저자 이인씨가 300명이 넘는 사람들을 인터뷰한 것은 우리 시대의 대학에서는 얻을 수 없는 ‘큰 가르침’에 대한 갈증 때문이었다.
“선생님이 그리웠습니다. 휘청대는 젊음에게 토닥여주면서도 이따금 매섭게 호통도 쳐주시는 선생님. 어깨동무를 하면서 같이 콧노래를 부르지만 어디로 갈지 헤맬 때는 저 멀리서 이리로 오라고 손짓을 해주시는 선생님. 그런 분이 있었다면 지금 맞고 있는 폭풍우 속에서도 내동댕이쳐지진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죠. 존경할 만한 분보다는 저렇게 되진 말아야지 했던 사람들을 많이 만났던지라 ‘참선생님’이 간절했습니다.”
이인씨는 본명보다는 ‘꺄르르’라는 필명의 파워블로거로 잘 알려져 있다. 방문객이 천만 명이 넘을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는 그의 블로그에는 매일매일 ‘큰 가르침’을 좇아온 이인씨의 구도자적 발자국으로 가득하다. 그가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만난 300여명의 사람들 중에 그에게 ‘큰 가르침’이 되었던 열일곱 분 참선생님과의 인터뷰를 따로 엮어낸 것이 바로 <청춘대학>이다.
철학자 강신주, 수유+너머의 고미숙과 고병권, 방송인 김미화, 경제학자 우석훈, 역사학자 한홍구, 언론인 홍세화, 사회학자 한완상 등 참선생님들과 만나면서 이인씨는 대학시절 학점과 스펙만을 추구하던 시절에는 얻을 수 없었던 ‘큰 가르침’을 얻어나간다. 독서방법, 인문학 정신, 생활 속의 철학, 인터넷 문화와 파시즘, 다중지성, 고전 읽기, 행복한 삶 등 다채로운 주제를 넘나드는 대화만 눈길을 끄는 것이 아니라, 각 대화가 끝나고 이인씨가 자신의 내면에 일어난 변화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글들은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이인씨 자신이 느끼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필자는 <청춘대학>을 읽으며 저자 이인씨가 자신이 만나온 사람들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철학자 강신주와의 만남 후 앎은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거듭나도록 이끄는 길이라고 고백하는 모습에서, 수유+너머의 고미숙을 만난 후 몸과 마음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는 모습에서, 경제학자 우석훈을 만나 그의 ‘명랑좌파’ 기운을 받아 안는 모습에서 이인씨는 그가 만난 사람들을 조금씩 닮아가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대학(大學)이 아닌가! 꼭 멋드러진 캠퍼스가 있어야, 짜여진 강의 시간표가 있어야, 학사모를 쓰고 졸업장을 받아야 대학이 아니다. 큰 가르침이 있는 바로 그 곳이 대학이다. 자신만의 대학을 찾은 이인씨는 자신이 꿈을 발견했노라고 고백한다.
“이제는 다행히도, 이루고 싶은 꿈이 생겼습니다. 아무에게도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시인이 되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말해봅니다. 사랑을 노래하고 신나게 춤추며 아름다운 사람들과 도란도란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풍악을 울리며 재미있게 살기엔 세상 곳곳에 아직 눈물이 넘쳐납니다. 누군가가 흐느끼고 있는데 옆에서 ‘꺄르르’ 하는 건 예의가 아니죠. 그래서 모두 함께 꺄르르 웃을 수 있을 때를 꿈꾸며 지금은 조금은 날이 선 글을 세상에 던지고 있습니다. 사회의 그늘을 조금이라도 밝히고 싶거든요. 언젠가는 사랑의 노래를 쓸 테지만 이에 앞서 사랑할 수 있을 만한 사회를 꿈꾸며 땀 흘리는 것, 이것이 제가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이 책 <청춘대학>에는 한 젊은이가 참선생님들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꿈을 찾아나가는 ‘큰 가르침’의 길이 펼쳐져 있다. 인생의 길을 찾는 청춘에게 조심스럽게 권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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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바쁘고, 혈기 왕성하며, 생각이 많은 청춘. 우리는 그 청춘에 무엇을 하고 사는가? 한국에 사는 청춘들은 그 시간을 마음껏 누리지 못하고, 그 시간을 '자신'답게 살지 못하고 떠나보내고는 후회하는 일이 많다. 생각을 키우고, 미래를 제대로 사는 힘을 얻는 게 청춘일진데 너무 쉽게, 보이지 않는 강요에 밀려 수동적으로 사는 게 우리들의 청춘의 모습 아닐까.
한 청춘이, 자신과 같은 청춘을 위해서 이 책을 발간했다. 청춘들에게 조언을 해 줄 사람들을 찾고, 그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많은 쟁점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것이다. 이미 많은 책들과 글, 강의를 통해 알려진 분들을 찾아다니며, 그는 자신이 가야할 길에 대한 의문을 풀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질문은 가끔 원초적이기도 하다. 이 책은 청춘에 대한 물음을 갖는 이들에게, 혹은 방황한 이들에게 필요해 보인다.
우리의 청춘들은 자신의 삶을 어떻게 표현하고 살까? 취업에 갇혀, 돈에 갇혀 점점 무거운 삶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신을 잃어버린 채 그 뻘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청춘의 명랑함은 그들의 특권이다. 특권을 누리지 못하면, 결국 지나간 후에 땅을 치고 후회하며 살게 된다. 가장 명랑하게,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인생을 살아야 할 청춘. 우리는 그때를 잘 살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는 이들의 말이다.
이들은 사회에 문제를 제기한다. 바꿔나가려고 노력한다. 목소리를 높인다. 그리고 공부를 한다. 이러한 과정들은 모두 주체적인 생각에서 나온 것이며, 사회에 대한 성찰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각과 사유가 맞물려, 자신의 올곧은 생각을 끝까지 밀어붙이며 젊음이들을 독려한다. 생각한대로 살고, 말한대로 살기 때문에 그것이 어렵지만, 그 속에서 얻고 알게 되는 많은 것들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청춘들에게 할 말이 많다.
공부 좋아하는 고미숙 선생님은, 나 자신에 대한 공부를 하라고 말한다. 공부는 끝과 시작을 함께 한다. 공부는 죽을 때까지 이루어내야 할 숙제. 공부로 자신을 다스리고,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고, 살아갈 힘을 배우라고 말이다. 공부하지 않으니, 세상이 살아가는대로 살 수밖에 없고, 남이 살아가는 길을 쫓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이다.
뼈아픈 말이다. 생존에 몸부림 치는 청춘. 누구를 탓해야 할까? 아니 탓하는 게 의미가 없을까? 결국, 하나만 믿고 하나만 추구하며 살아온 세월은 시대를 퇴보하게 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은 화려하고, 자본으로 만들어낸 세상은 편리해졌지만 그것만 쫓는 청춘들은 더 큰 걸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청춘이 해야 할 진짜 공부는 놓치고 사는 게 아닌지 생각해보게 하는 말이다.
바뀌길 기다리는 것은 청춘의 자세가 아니다.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청춘의 자세다. 정부를 비판하고, 시민의식을 갖고, 사회구조를 비판하며, 그 사이에서 반성하고, 공부해서 알아내는 것이 그들이 말하는 청춘의 모습이라고 할 것이다. 과연 우리는 귀담아 듣고 있는가. 귀담아 듣지 못한 세상이 된 것을 언제까지만 탓하고 있을 것인가. 대학에 가고도 대학생답지 못하게 살아가는 청춘들은 과연 무엇을 찾고 있는가. 결국, 남들이 가는 길을 나도 똑같이 갈 수밖에 없다는 하찮은 변명은 이제 그만할 때가 되었다.
이 한 마디로 청춘이 해야할 일들이 다 요약된다. 대기업에 취직하고 공무원이 되어 돈 많이 벌고, 안정된 삶을 산다는 비슷비슷한 꿈에서 벗어나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내가 원하는 것을 찾는 시간을 가져야 할 청춘. 나를 사랑하고, 꿈을 꾸는 삶을 살기 위해선, 공부하고, 찾고, 갈구하라는 그들. 입아픈 말들이 청춘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이 책을 읽으며, 눈을 뜨는 청춘이 있다면 그것으로도 족하다. 왜 그들은 하나같이 하나의 이야기에 몰두하고 있는지, 의문을 가져보길 바란다. 경험과 깨달음으로 전해지는 진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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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5월 5일 두리반에서 <방 있어요>와 <자기만의 방> 영상 상영회 및 토론회가 있었다. (2010/05/05 - [생각하기/정치사회비평] - Fly, Hendrix, Fly 2010년 봄 번개, 그리고 <방 있어요?> (수정판)) 한참 그 준비가 있을 때 나와 함께 준비하던 Jiva는 정치 사회 블로그 중에서 썩 괜찮은 블로그가 있다면서 꺄르르 이인의 블로그를 소개시켜 주었다. 행사를 준비하는 동안에는 그 블로그에 들어가보지는 않은 것 같고, 그 후에 한 두 번 가본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아무런 인상도 받지 못했다. 행사 당일 이인은 우석훈과 이택광을 취재해 갔고, 그것들을 정리해서 블로그에 올렸던 것 같다. 그리고 7월 언젠가 김선주의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라는 책에 대한 포스팅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이건 걍 '훈장질'이어서 댓글을 남겼던 기억이 난다. (http://blog.ohmynews.com/specialin/337793) 물론 그는 내가 주장한 것이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라며 넘어갔다. 착하고 선한 세계에 대해 내가 별로 감수성이 없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블로그였다. 어쨌거나. # 이인이 출간했다는 <청춘대학>을 읽는다. 처음 프롤로그에 쓰여있는 문장부터 불편했다. "넓은 가슴과 따뜻한 마음으로 꼭 끌어안아주면서 힘내라고 등 토닥여주는 선생님이 있다면, 젊은이들의 삶은 크게 달라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큰바위 얼굴처럼 마음을 절로 훈훈하게 해주는 어른들을 찾아뵙고 귀한 말씀을 들어보고 싶었어요"(p.13). 마치 '큰 스승'이 있다면 지금의 문제가 많이 해결될 것이라는 논법에서 이미 본인이 다른 글에서는 누차 강조했던 '비판의식'은 어디에 갔는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주체적 사고'는 어디에? 물론 모든 사람은 누구에게든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선생님'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밝혀지지만 그가 지칭하는 '선생님'은 단순히 그보다 나이가 많고, 이미 알려진 '명사군'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가 만났던 '선생님'들은 절대다수가 철저히 '훈장질'을 멈추지 않는다. 물론 이러한 '태도'의 문제로 그들을 오롯이 평가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외려 구체적으로 그것들을 따져묻는 것이 '비판적 독서'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처음 만난 시인 김선우는 "386세대는 길거리에서 짱돌과 화염병을 들고 싸웠지만 지금은 싸울 수 있는 조건이 훨씬 좋아졌어요. 다양한 방식으로, 문화적으로 싸울 수 있는 토대가 생겼어요. 토대가 생겼는데 왜 활용을 못해, 왜 활용을 안 하지? 안타까워요"(p.27). 물론 386세대가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인의 통상적인 대꾸는 "선생님, 잘 배웠습니다." 식이다. "어느새 촛불시위는 끝났고, 전과 별로 다르지 않는 세상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왜 세상의 엉망은 쉽게 변하지 않는 걸까요? 선생님과 만나며 사회의 부조리함에 저의 무관심과 침묵이 있었다는 걸 새삼 반성하고 또 반성합니다"(p.35). 그의 반성의 골자를 보자. '무관심'과 '침묵'이다. 물론 이런 식으로 현재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부조리에 대해 진단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많은 편이다. 하지만 이러한 진단들이 대체로 어디를 향해, 무엇을 겨냥해서 돌아오는가? 김용민의 '20대 개새끼론'에는 충정이 있다. '무관심'과 '침묵'을 뚫으려는 의지가 있다. 하지만 "왜 '무관심'과 '침묵'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생략된 체, 결과로서의 '무관심'과 '침묵'에 대해 질타하거나 성찰하자는 태도가 만들어내는 일련의 행동들은 늘상 '무지한 대중'에 대한 비난으로 귀결되곤 했다. 난 그걸 이인이 모르고 표현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만약 그걸 몰랐다면, 그는 지금의 현실에 대한 '비판적 사고' 어쩌고 이야기하기에는 조금 곤란하다는 생각이다. 대화의 결들에서 많은 선생님들이 하는 이야기 중 하나는 "세상이 물질 만능주의에 찌들어간다"는 식의 도덕적 담화였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마치 IMF 터지고 나서 신자유주의가 도래하고 나서야 그런 시대가 온 것 같지만,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은 내 부모가 20대였던 60년대에도 이미 늘상 주장되던 것들이다. 전혀 새롭지 않다. "박남희: 교육이 바뀌길 바라죠. 교육이 바뀌면 다른 것도 바뀌어요. 교육 시스템이 목적 지향으로만 나가고 있어요. 교육 철학이 부재한 교육이죠"(p.96). 박남희의 이런 주장은 어떠한가? 마치 '에센스'를 채우면 지금의 문제가 손쉽게 해결될 것인데, 그게 '부재'했기 때문에 작금의 사태가 벌어졌다는 '손쉬운' 진단들이 판을 친다. 애당초 이인은 논쟁에 대한 정리나, 어떤 입장에 대한 나름의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계획이 없는 듯하다. 그 절정은 이택광-조정환 논쟁에 대한 평이다. "어떤 주장이 더 맞는지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죠. 다만, 한가지로 모이는 게 있습니다. 촛불은 그저 몇 사람들이 불꽃놀이를 한 게 아니라 현대사에서 커다란 사건이라는 거죠. 촛불이 어떤 의미였는지 되새겨 보는 시간이었으면 합니다"(p.147). 정말 '이게 뭔가요?'싶다. 그냥 말을 하지 않고, 수도원에 가서 신부님과 수녀님들만 만나고, 좋은 암자에서 은거하고 계시는 선승과의 대화만을 가지고 책을 쓴다면 이런 식의 비판은 바로 '비난'일 테고, 난 이런 식으로 그의 글에 대해 꼬집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그가 만난 사람들은 한국사회 '논쟁'의 최전선에 있는 경우도 있고, 그들의 첨예한 입장 차이가 한국사회를 바라볼 때 구체적으로는 엄청난 차이들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인은 "그들 모두 훌륭한 선생님들이십니다." 식이다. 뭐든 뭉뚱그려 많이 알면 장땡이라는 것인가? 그런 태도는 구본형과 김미화의 말을 들을 때도 나타난다. 먼저 김미화의 말. "우병률씨의 <딜리셔스 샌드위치>를 보면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자기 집, 아파트 한 공간에서도 이룰 수 있다는 게 나와요. 젊은 친구들이 너무 겁내지 말고 새로운 창의력으로 신선한 사업을 구상해보면 좋겠어요. 부모님이나 친구나 친척 눈치 보지 않고요. 사실, 볼 필요도 없어요. 내 인생인데"(p.219). 참으로도 우아한 발상이다. '아파트 한 공간, 자기 집' 자체가 '불가능한 미션'인 것이 현재 젊은이들 '평균'의 상황인데, 여기에서 '내 인생'을 이야기할 때 이인은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이 정도면 괜찮다. 하지만 구본형의 경우를 보자. "기업들이 사람 뽑는 기준을 바꾸고 있어요. 이런 초점으로 기업의 인사 정책이 옮겨가고 있기 때문에 꿈을 크게 갖고 마음가짐에 투자한 사람들에게 기회가 있을 거라고 봐요"(p.251). 끝없는 경쟁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꿈을 갖기'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에 대한 언급은 없이 "구본형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니 일자리도 문제지만, 젊은이들에게 꿈이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드네요"(p.257) 하고 '결과'에 대한 문제제기만 할 따름이다. '왜'는 여기에서도 생략되고 만다. 도대체 이 인터뷰집의 목적은 무엇인가? 지금 '젊은이들'에게 바라는 바는 뭔가 하면서 상심하게 만들고야 만다. 자기계발서를 비판하는 이유도 모르겠고, 다시 자기계발서의 레전드인 구본형을 '선생님'으로 모시는 이유도 모르겠다. 범인들은 모르는 '선수들' 혹은 '신선들'의 리그는 다르기 때문일까. # 마지막 결론을 보면 무릎을 탁 치며. "역시!"하면서 책을 집어던지게 된다. "더 배우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수도승처럼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몸과 삶을 바꾸면서, 더 멀리 보고 깊게 생각하면서 책을 펴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공부하고 생각한 것들을 사람들과 나눈다는 마음으로 블로그를 하고 있고요. 모든 게 다 그렇듯 블로그란 매체에도 빛과 그림자가 있습니다. 한계를 잘 알지만 그럼에도 될성부름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오늘도 글을 쏘아올리고 있습니다. 언젠가 제 글이 누군가의 가슴을 다독여주고 달구길 바라면서요" (pp.390-391). 걍 열심히 마음 공부를 하시라는 말을 하면서 이 책을 누구에게도 빌려주지 않고 조용히 숨겨두겠다는 결심을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 발생하는 문제가 '소통'의 부재에서만 발생했다면 난 이인에게 무릎을 꿇고 마음공부를 함께 하겠다고 말을 할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을 보고는 그럴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임지현과 한완상, 그리고 고미숙, 고병권의 말에서 건질 게 많았지만, 사실 그건 다른 그네들의 책을 봐도 될 일이다. # 질문 하나를 던져보자. 이 책을 읽은 젊은이들이 어떤 다른 '호기심' 혹은 '동기부여'를 받게 될까? 그렇게 되지 않는다에 90% 확률로 걸겠다. 이 책을 추천하지 않는다. 이 책의 '청춘대학'을 다니면 겪게되는 것은 자신이 '허당'이 되었다는 자책일 뿐이다. 덩달아 '20대 저자론'이라는 담론의 밑천이 이제 다 된 거 아닌가 싶다. 자기 연구 없이 계속 '저널리스트' 혹은 '블로거' 또는 얼뜨기 '비평가'로 엉거주춤 있을 때 그들에 대해 자꾸 '예찬'으로 낚아대는 좌파/진보 미디어에 대해 열받기 시작한다. 이제 정말 '허당'들을 가려낼 때가 된 것 같다. 그래 떠올랐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못 죽이는 '허당'들의 책을 돈주고 살 필요까지는 없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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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문제는 바로 세대의 문제이지 나이의 문제가 아니다. 젊은이라는 이름으로 세워지는 잣대라면 누구라도 자유롭지 못하다. 누구라도 20대였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그런즉, 현재 20대들의 문제는 그들이 갖는 시대적, 환경적 특수성에서 기인한 것이고 그것에서 출발해야 할 터이고, 그 외에 일반적으로 가지는 편견과 오류를 모두 배제한 상태에서 이야기 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작업은 생각외로 힘들다. 교육정책이 자꾸만 흔들리고 근간을 잡지 못하는 것과 그 이유가 비슷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변화다. 예전과 다르게 요즘 세대들은 10년이 아니라 바로 아래위 학년, 20살과 25살만 해도 그 생각과 사고가 다르다. 개인적 의견으로 이는 바로 20대의 가치관과 현실 사이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과거 생활고와 경제발전의 줄다리기 시기를 살았던 어른들이 보기에는 현재 20대의 가치관과 현실관이 너무나 동떨어져 보일 것이다. 문제인 즉슨 이것이 그들이 20대이기 때문이 아니라, 급속도의 경제성장기 이후 1980 이후에 태어나 너무나 급변한 환경을 살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의 논의는 가치관의 문제라고 하지만 현실의 문제와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다. 현실을 통해 만들어진 가치관, 혹은 그것을 여실히 반영한 가치관이라고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 대한 진단과 해결책의 출발점 또한 현실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책에서는? 책의 저자는 대학을 졸업한지 얼마되지 않은 평범한 20대 청년이다. 여느 평범한 대학생들 처럼 스펙쌓기에 여념이었지만 어떤 계기로 그는 인생에 깊은 고민을 하고 수도승처럼 살기로 결심을 한다. 다행히 그의 주변에는 사람이 많았다. 그는 많은 사람들, 선생님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과정을 통해서 인생의 길을 찾았고, 지금도 찾고 있다. 길은 한번이라도 가 본 사람이 잘 알고, 새로운 길을 갈 때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그 조언을 구해야 좋은 길을 택할 수 있는 법이다. 여기서 다양한 사람이란 다양한 분야를 뜻한다. 다분히 많은 사람을 만났다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다. 여기서 들은 소리가 저기서 들은 소리와 별반다를바가 없다면,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인생의 길을 찾는 것도 그렇다.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는 것도 좋지만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기껏 시간들여 여러사람과 만나 이야기해서 나온 결과가 인생의 참된 가치란 이런 것이다. 라고 한다면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 것인가? 그것은 단지 위안과 위로에 그칠 뿐 그 이상이 되지는 않는다. 20대가 불행한 세대인가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 경제위기의 세대라고 하지만 과거의 세대에게 비견할 것이 못된다. 오히려 지금의 그들에게는 보다 넓은 기회가 주어져 있고 이는 기회의 양적인 면만이 아니라 그 질과 종류의 면에서도 훨씬 다양하다. 각종 문화적인 혜택에서도 그렇다. 과거에 비해서 20대들이 도전할 수 있는 컨텐츠가 무궁무진하다. 또한 과연 대학이 취업준비 학교로 전락하였는가에도 동의하기는 힘들다. 오히려 과거에 비해서 대학은 다분히 변화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속도도 빠르다. 학생들 또한 그렇다. 더이상 수동적이 아닌 능동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고 자신만의 영역을 쌓아가는 학생들이 많다. 대학에서도 그에 발맞추어 실용적인 학문을 위한 다양한 학과를 개설하고 능력있는 교수를 초빙해 경쟁력을 쌓고 있다. 현실적인 여건에서 이러한 변화에 발맞추지 못하는 대학들은 도태될 것이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진정한 학문의 요람으로 자리를 잡아갈 것으로 기대가 된다. 과도기는 이미 지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10대, 20대 들은 단지 10년 전의 그들과 또 다르다. 진실한 청춘대학으로서 그들에게 도움이되는 길에 대한 충고가 되려면, 보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고 현실적인 부분에 대해 좀 더 폭넓은 진단 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여러가지 대안과 방안을 다방면에서 보여주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