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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니 답답함이 쌓여갔다. 그 답답함은 내가 내 자신 스스로에 느끼는 것으로 항상 디테일에 약한 내가 꼴보기 싫어졌다고 해야할까? 아무튼, 뭐 그런거.. 어렵지 않은 강의형식으로 한없이 친절하면서도 쉽게 설명해 주는 책의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강의를 따라 가다 보면 어김없이 막혀버리곤 하는 내 지식의 한계로 말미암아 느끼게 되는 그러한 답답함 말이다.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책은 지난 4년동안 "세미나 네트워크 새움(www.seumnet.com)"에서 진행해 온, <맑스주의 역사>에 대한 강의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으로, 맑스 직전의 사회주의에서부터 현재까지의 맑스주의 전체에 대한 흐름을 일반인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쉽게 설명하고 있다. 솔직히 책을 한 권 사서 읽고 난 후에, 다시 한번 정독하기란 참으로 쉽지 않다.(아, 내 경우에 그렇다.) 그러나 이 책은 다시 한번 정독하고픈 마음이 굴뚝같다. 그 이유는 물론 내 짧은 지식으로 인한 머릿속 혼돈에 기인하는 것이 그 첫 번째이겠지만, 그와는 별개로 이 책에서는 맑스주의에 대한 커다란 흐름을, 전체적인 윤곽을 짐작할 수 있도록 아주 친절히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며, 만약 한번 더 정독한다면 보다 더 명확한 개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매우 소장가치가 높은 소중한 책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또한, 개인적으로 이 책이 내게 소중한 이유라 한다면, 역시 스스로 간과하고 있던 부분, 무의식적으로 그냥 그렇게 넘어가고 특별히 신경쓰지 않았던 부분까지도 자연스레 일깨워 주며 나의 향후 태도와 자세에 대한 가르침을 주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책 속에는 우리가 어떤 주의(~ism)를 이야기하고 또 이를 이해함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인 역사성에 대한 충분한 인식을 필요로 함을 꼬집어 준다. 즉, 세상에 초월적이고 영원한 것은 없으며 모든 것은 역사적인 이해관계를 지니고 있으며, 역사의 변화와 그 원인에 대한 과학적 인식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물론 맑스주의, 레닌, 혹은 스탈린, 마오쩌둥에 대한 시대적 배경과 환경에 따른 역사적 인과관계 내지는 불가피성을 토대로 그 자체를 이해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요소이지만 비단, 책 속에서 설명하는 그 개별 사항에 대한 실체의 이해를 위해서 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바로 이 세상에서 보다 냉철하고 정확한, 그래서 최소한으로 의사결정의 오류를 줄이는 차원에서도 그 설명은 유효할 것 같다.
더불어, 나의 무지는 참으로 많은 부분을 왜곡해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가 있는데, 예컨대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주로 국정교과서에 의해 국가에 충성할 수 있는 '국민'으로서의 함양을 목적으로 교육받은 탓에) '프롤레타리아 독재', 여기서 '독재'의 의미가 그 어원과 해당 시대에 사용된 보편적 의미로는 현재의 독재권력, 독재자의 부정적 의미의 '독재'가 아닌, '지배' 혹은 '통치'의 가치판단이 배제된 의미의 단어였다는 것...(그럼에도 우리는 공산주의는 스스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주장하며 민주주의와 정면으로 반대되는 말도 안되는 억지 주장의 근거임을 고매한 윤리, 혹은 도덕, 사회 시간에 교육 받았고, 12년간 주입된 교육의 효과는 우리들의 무의식 속에 흑과 백을 자연스레 분리시키는 조건 반사적 사고를 충실히 행하도록 만들었다.) 또한, 스탈린에 대한 피상적으로 느낀 혹독한 평가는 전쟁의 위협에 대비해 국력을 쏟을 수 밖에 없는 외적인 강제가 스탈린 시대에 주어졌다는 것과 그로 인한 근본적 모순에 대한 해결이 선행되어야 함이 더 주요한 시대적 요소였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물론, 스탈린의 폭압정치와 권력투쟁 자체가 잘했다는 것이 아니라, 미-소의 대결을 전제로 하는 냉전시대 속에서의 환경적 요인이 더 커다란 영향을 미쳤음을 우리는 '역사성'을 토대로 사고하고 인식할 때 보다 명확한 평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맑스 이전의 사회주의에서부터 맑스-엥겔스의 초기/후기 사상, 제1,2차 인터내셔널, 러시아 혁명과 레닌, 코민테른과 스탈린, 그리고 중국혁명과 마오주의, 새로운 맑스주의라 칭하는 웨스턴 맑시즘, 아시아 공산주의에 까지 이르는 맑스주의에 대한 방대한 흐름과 맥락을 역사성에 비추어 잘 조명하고 있으며, 현재의 서유럽 사회민주주의의 형성 과정과 혁명적 사회민주주의, 공산주의로와의 갈림 등 일반인이 알기 쉬운 문체로 잘 설명하고 있는데, 내가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역시 제대로 된 리뷰를 쓰지 못하는 것 같아 많이 아쉽다.
저자는 마지막 글귀에서 맑스주의를 그것이 생성되고 실천으로 옮겨진 역사적 구체성을 떠나 이해하려는 접근은 전적으로 비맑스적이며, 맑스주의가 역사적이라는 것은 단일한 맑스주의란 있을 수 없고 최소한의 동일성을 공유하는 상이한 복수의 맑스주의들이 존재한다는 의미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이러한 맑스주의들이 어떤 점에서 같고 어떤 점에서 다른지, 그 차이는 왜 발생하며 이 차이들의 실천적 의미는 무엇인지를 알기 위한 접근방법은 역시 맑스주의의 역사를 통해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
오늘 날 본격적인 신자유주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그 야만적인 억압과 가혹한 착취(동의 안할 사람들도 있겠지만..)에 많은 고통과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적어도 지금 우리의 사회가 아주 공정하고 착하고 올바른, 그래서 살기 좋고 나날이 행복한 그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현상과 구조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대안들이 그동안 제시되어 왔고,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고 유력한 대안이었던 맑스주의에 대해서 이를 참조하고 적용하려는 시도는 그리 다수를 차지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어떠한 정치적 견해들도 시간적, 공간적으로 절대적인 보편 타당성을 지닐 수는 없을 것이며, 현재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되는 여러 주장들 역시 부분적인 수용과 보완을 통한 발전적 대안을 모색해 나가는 것이 어쩌면 상식이 아닐까 싶다. 그러한 측면에서 맑스주의는 너무나 가혹한 심판을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저자의 이야기는 충분히 공감하고도 남음이 있다. 특히, 한국과 같은 가슴 아픈 현대사의 특수성은 더더욱 반공주의에 대한 세뇌로 점철되어 왔으니 맑스주의에 대한 가혹한 심판의 문제가 극도로 부각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서양 고대철학 전공자가 저자에게 '왜 아직도 낡은 맑스를 공부하느냐'고 비웃듯 물었다는 이 형용모순적 물음이 일반적 대화속에 실현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 사회의 현실이며 안타까움 그 자체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이 현대 생물학과 다르다고 해서 아르스토텔레스가 아무런 가치 없는 낡은 사상가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듯이, 유독 맑스주의에 대한 가혹한 심판에서 벗어나 보다 유용한 대안으로 활용될 수 있는 옥석을 가려내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은가 싶다.
목욕물을 버리려다가 아이까지 함께 버리는 오류를 범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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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대단한 책이 하나 나왔다. ‘세미나 네트워크 새움’에서 활동하는 한형식 씨가 자신의 강의를 정리해서 출간한 <맑스주의 역사 강의>가 그것이다. 물론 대단한 책이라고 했을 때, 그 ‘대단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과 그 단어를 듣는 사람의 사이에 떠올리는 이미지가 판이할 수 있다. ‘대단히’ 만족스러운 책도 있지만 ‘대단히’ 실망스러운 책도 있지 않겠나. 그래서 이 책이 왜 대단한지에 대해서 약간은 자세하게 설명을 해야 할 것 같다.
첫째, 이 책은 ‘대단히’ 쉽다. 맑스주의 역사를 다룬 책이라고 한다면 무척 어렵고 난해한 책이라고 지레짐작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한형식 씨의 강의 녹취를 바탕으로 내용을 구성했다는 이 책은, 바로 앞에서 저자의 강의를 듣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맑스 이전의 공상적 사회주의부터 시작해서 맑스 엥겔스의 초기 및 후기 사상을 거쳐 제2인터내셔널 시절의 논쟁들을 족집게 과외처럼 짚어주고, 러시아 혁명과 레닌, 그리고 스탈린을 거쳐 중국혁명과 마오주의를 넘나드는 역사적 과정들이 이 책에는 마치 잘 만들어진 한편의 다큐멘터리 필름처럼 펼쳐진다. 이렇게 폭넓고 다양한 주제들의 구슬들을 하나로 꿰어서 멋진 목걸이로 만드는 저자 한형식의 내공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둘째, 이 책은 ‘대단히’ 관점이 좋다. 이것은 어쩌면 필자의 주관이 들어간 평가일지도 모르겠지만, 특히 스탈린을 다룬 부분에서 고개가 절로 끄덕였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스탈린이라는 단어를 접했을 때, 히틀러라는 단어를 접했을 때와 비슷한 반응을 나타내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스탈린의 이미지는 냉전시절 철저하게 서방측에 의해서 빚어진 인공물이라는 사실을 간과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 같다. 이 책에서는 스탈린이라는 소련의 지도자를 러시아 혁명 과정에서 일어났던 다양한 논쟁 속에서 조명하면서 그동안 스탈린에게 씌워졌던 오해와 편견의 가면들을 하나씩 벗겨낸다. 팩트들을 담담하게 서술하면서 합리적인 결론과 판단을 이끌어내는 저자 한형식의 불편부당함은 이 책의 가치를 더욱 빛낸다.
셋째, 이 책은 ‘대단히’ 시의적절하다. 무슨 맑스를 다룬 책이 시의적절하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소련과 동구권 사회주의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북한이나 쿠바 같은 몇몇 사회주의 국가들이 그나마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시대에 맑스주의의 역사를 다룬다는 것은 그저 옛 향수를 그리워하는 좌파 지식인의 사변놀음 아니냐고? 지금 미국의 뒷마당이었던 라틴 아메리카는 그야말로 사회주의 열풍이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 얼마 전에 한국을 방문한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 에콰도르의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 등 민주적으로 선출된 중남미의 대통령들은 공공연하게 21세기 사회주의를 주장하면서 무상의료 무상교육의 복지 천국을 실현해 나가고 있다. 비단 중남미뿐만 아니라 전 세계 각지에서 막가파식 신자유주의 거품경제의 후폭풍을 거치면서 이제까지와는 다른 좀 더 평등하고 정의가 살아있는 세상을 추구하는 움직임이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다. 일본의 자민당 정권이 무너진 것도, 미국에서 흑인 대통령이 탄생한 것도 이런 시대적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최근에 마르크스 <자본론>이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지 않은가.
넷째, 이 책은 ‘대단히’ 유연하다. 맑스주의를 하나의 형이상학적 사고틀, 그러니까 고정된 이데올로기 체계로 보지 않고 물적 토대의 변화와 역사적 논쟁의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는, 펄펄 살아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사상으로 파악한다. 이런 유연함 때문인지 이 책의 마지막 장은 맑스주의의 전통 속에서 아시아 공산주의의 위상을 조명해보려는 의미 있는 시도를 보여준다. 물론 본격적인 연구를 담은 것은 아니지만 아시아 공산주의의 일반성과 구체성을 맑스주의의 전통 속에서 풀어보려는 진지한 고민은, 앞으로 저자 한형식의 후속 작업에 큰 기대를 갖게 만든다.
필자의 편협함 때문인지 아니면 오해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요즘에는 패션좌파, 강남좌파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좌파 사상이 그 무슨 유한계급의 액세서리 정도 취급을 받는 것 같다. 물론 그런 방식으로라도 진보적 좌파적 사상이 알려지면 필자로서는 대환영이다. 하지만 맑스주의는 단순히 액세서리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철학이다. 액세서리에 맞는 책도 필요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철학이라는 위상에 맞는 책도 필요하다. 그런 위상에 맞는 ‘대단한’ 책이 나와서 정말 반갑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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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권 짜리로 쓰여 졌으면 더 좋았을만한 책 - ‘맑스주의 역사강의’(한형식 지음 / 그린비 출판)을 읽고서 제목이 ‘맑스주의 역사강의’인데 맑스주의라는 이론 또는 사상의 역사를 다루었다는 뜻인지 맑스주의에 기초한 역사해설서라고 보아야 하는지 헷갈렸다. 책을 다 읽고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으니 내가 워낙 무식한 것인가? 아니면 책의 의도가 불분명한 것인가? 그 이유는 이 책 ‘맑스주의 역사강의’가 당연히 전자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책을 다 읽고나니 사실 후자로서도 손색이 없을 듯 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맑스주의를 공부한다고 하는 말 자체가 사실 좀 막막하다. 야심차게 ‘자본론’부터 보면 되는건가? 아니면 최근 맑스주의를 재해석 아니면 재창조하고 있다는 들뢰즈나 지젝이나 뭐 그런거부터 보면되나? 사실 막막한 것이 사실이다. 과거 80년대나 90년대초반까지 대학신입생들이 선배들 손에 이끌려 세미나에서 순서대로 보던 책들의 목록, 그리고 토론꺼리들도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황당한 것은 그런 맑스주의 세미나 커리들이 사라진 것이 소위 운동권들의 손에 의해서 자행되었다는 사실 이다. 정치적입장에 따라 정파가 나뉘고 진보운동의 기초가 되어왔던 맑스주의에 대한 기본공부는 커녕 각자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자기들의 입장들을 주입시키기에 바빴던 것이다. 그 입장의 논거가 되는 이론들도 시시각각 변하기 마련이니 이제 맑스주의는 중요한게 아니고 각 정파들의 이론체계와 논거만 중요해진 시대가 한참을 흘러갔다. 그냥 정파적 입장없이 맑스주의를 공부해보면 안되나? 그래서 역사속에서 사상과 이론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자 아쉬운 점이 바로 그것이다. 장점이라면 이 책 ‘맑스주의 역사강의’는 어떠한 사상과 이론도 해당 시대의 치열한 고민속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 사상과 이념이란 그 시대를 초월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해간다는 사실을 역사적 배경과 이론가, 실천가들의 현실적 고민들을 설명해주며 그들의 고민에 독자들을 다가가게 만든다. 그런 측면에서 맑스주의 공부라는 것도 해당시기 왜 그런 이론과 사상들이 나왔는지 해당시기의 치열한 고민과 문제의식을 알지 못하면 의미가 없어진다. 세계를 해석하는게 아니라 변화하겠다고 한게 맑스주의인데 해당시기 현실의 고민과 문제의식을 제거해버린 텍스트만으로서의 맑스주의가 가능은 하단 말인가?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에서 역사속에서의 맑스주의와 현실을 변화시키고자 했던 운동이념으로서의 맑스주의의 본질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런 장점이 아이러니하게도 아쉬운 지점이 되기도 하는데 그것은 이 책이 두 권이나 세권짜리로 쓰여졌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만약 두 권이나 세권짜리 책으로 기획되어 더 풍부한 역사적 사실과 배경에 대한 설명이 곁들여 질만한 분량이 확보되었다면 맑스주의 사상의 변화발전이나 계승에 대한 역사강의이자 동시에 훌륭한 세계사 강의도 될 수 있었을텐데. 팩트와 통계만을 강조하는 요즘 역사책들에 어느순간 지루함을 느끼는 와중에 ‘민중의세계사’나 ‘다시쓰는 한국현대사’와 같은 선명한 입장의 역사책이 그리워질 때쯤 맑스주의에 입각한 훌륭한 세계사 역사강의 책이 한권쯤 등장하는 건 충분히 멋지지 않을까. 특히 이 책 중간중간에 저자가 보여주는 역사적 배경에 대한 친절하고도 차분한 설명솜씨를 보면 그 아쉬움은 배가 된다. 가끔 책이 더 두꺼웠으면 하는 아쉬움을 갖게 하는 책을 만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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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때, 무작정 읽었던 사회과학 서적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책의 내용을 얼마나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변증법,유물론,맑스,레닌,마오,,,그 이후에는 알튀세르,그람시까지..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들을 바탕으로 이책을 읽어나갔다. 맑스의 이론에만 치중했던 다른 책과 달리 제목에서도 말해주듯 맑스주의의 역사를 설명해주고 있다. 맑스 이전부터 중국의 마오사상 및 웨스턴 맑시즘까지 맑스주의의 역사를 어렵지 않게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의 아시아 공산주의사는 그 내용이 짧음에도 불구하고,독자들에게 흥미를 유발하기에 충분한 언급이었다고 생각한다.
내용도 어렵지 않았다. 특히 이론이 탄생하게 된 배경 설명은 이론 자체를 이해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된거 같았다.더구나 마지막에 저자 스스로 책 한권으로 알기에는 부족한 것들을 채울만한 권장 도서 목록까지 게재해주는 수고도 하였다.
저자에게 '왜 하필 지금 맑스주의냐'고 물었다는 "고대서양철학"교수이야기는 지금의 정서를 말함과 동시에 맑스주의도 하나의 철학사조로써 충분히 연구하고 실천에 옮길만한 가치가 있다는 의미로 받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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