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은 히포크라테스 흉상의 등장으로부터 시작한다. 흉상은 낡아서 흠집투성이이며 위에 “나는 내 능력과 판단에 따라 환자를 위해 치료할 뿐, 결코 그들의 상처나 질환을 위해 시료하지는 않을 터이다.”라고 적혀있다. 이것은 히포크라테스의 “비록 위협을 당할지라도 나의 지식을 인도에 어긋나게쓰지 않겠노라”는 양심적인 선서와는 어찌보면 반대되는 것으로 보기에 어떤 문맥적 의미를 떼어놓고 가져온 문장으로 이 소설이 가지는 아이러니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소설은 극단적 계급사회인 군대를 전면에 내세워 생명을 손에 쥐고 있는 군의관들의 무책임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 세상의 위엄을 갖춘 어떤 것도 고발당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송문집의 생각을 통해서 이것이 결국 권력의 무책임과 책임 전가의 문제성을 고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의사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송문집을 삶과 죽음의 사이에 방치시킨다. 그리고 자신들의 손에 쥐어있는 생명을 두고 송문집을 위협한다. 생명을 손에 쥔 권력은 차에 깔린 환자를 차에 뛰어든 것으로 그의 생명의 문제를 왜곡시킨다. 이것은 결말에 이르러 환식이 위궤양 환자로부터 받은 진통제를 문집이 먹고 죽음을 당할 때에 자신들의 무책임한 실책을 문집의 자살로 떠넘기는 것과 같다. 이는 권력의 실체이다. 그들은 왜곡시키고 은폐하며 자신들의 권위가 주저 앉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송문집은 군의관은 의사가 아니며 총살권을 가지고 있는 상관이라고 말하고 있다. 처음 등장한 히포크라테스의 흉상이 낡고 왜곡된 언어로 표현되었던 것처럼 권력은 진실한 권위를 잃어버리고 이를 흉기로 이용할 뿐이다. 이는 이론으로부터 변질된 사회의 구조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 소설은 뛰어난 의학적 리얼리티를 확보하고 있는데 독자는 이러한 전문적 의학 용어가 쉽게 와닿지는 않는다. 이 소설이 전문적인 의학 지식을 활용하고 있는 것도 환자나 독자들이 알 수 없는 지적 영역을 권력으로 설정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소설이 송문집의 후송에서 후송으로 반복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이 그의 치료와 후송의 묘사로 되어있기 때문에 읽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지만 소설이 가지고 있는 현학적 질문에 대한 답은 쉽게 찾을 수 없었던 것이 아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