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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라고 무시하면 안 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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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인데도 어린이가 이야기흐름을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라면 그닥 <쓸모>가 없다고 본다. 아니 어려운 이야기흐름은 둘째치고 낯선 소재로 인해 즐거움은커녕 억지로 교훈을 깨달아야 한다면 더더군다나 <쓸모>가 없는 책이라고 본다.     이 책은 수학을 잘 못하는 주인공이 '어떤 사건'을 겪으면서 수학을 잘하게 된다는 내용이 큰 줄거리다. 또 그 '어떤 사건'을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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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책인데도 어린이가 이야기흐름을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라면 그닥 <쓸모>가 없다고 본다. 아니 어려운 이야기흐름은 둘째치고 낯선 소재로 인해 즐거움은커녕 억지로 교훈을 깨달아야 한다면 더더군다나 <쓸모>가 없는 책이라고 본다.

 

  이 책은 수학을 잘 못하는 주인공이 '어떤 사건'을 겪으면서 수학을 잘하게 된다는 내용이 큰 줄거리다. 또 그 '어떤 사건'을 통해서 <오래된 물건을 함부로 다루면 안 된다>, <오래된 물건이라도 잘 살펴보면 참 쓸모가 많다>는 교훈을 뽑아낼 수도 있다. 그리고 '어떤 사건'을 이끌어가는 매개체, 즉, 소재가 바로 우리에게 친숙한 <도깨비>이니 이 책은 참으로 좋은 주제와 좋은 소재가 만나서 좋은 교훈을 주는 이야기가 될 뻔 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요즘 어린이들에게 <도깨비>는 참 낯선 존재이다. 서양에서 들여온 '몬스터'라고 불리는 괴물과 각종 혐오스런 귀신들이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서는 우리 전래이야기를 통해 내려오는 <전통적(?) 귀신들>의 성격마저 변질시켜 놓은 마당에 뜬금없이 <오랫동안 쓰지 않는 물건은 도깨비가 된다>는 이야기소재는 참 낯설게만 느껴질테고, 또 <도깨비가 된다>는 의미가 <괴물이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까 우려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전통을 살리는 것은 좋은 일이다. 전통적인 소재로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고 널리 읽히게 하는 것은 더욱 좋은 일이다. 그러나 먼저 전통과 친숙해지지 않으면 성공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전통이 왜 좋은지도 모르는 판국에 무조건 전통만 앞세운다면 밑도끝도 없이 애국심만 강조하며 국산품애용을 강제하던 시절과 다를 게 없다. 또 체력은 국력이라며 국민체조를 강제로 외우게 하던 시절과도 다를 게 없다.

 

  다시 말해서, 이 책이 전래적인 소재인 <도깨비>를 내세우고 있지만, 책 속에 등장하는 어린이들마저 <도깨비>를 <서양괴물> 취급하며 무서워서 벌벌 떠는 존재로 그리고 있다. 또 도깨비를 등장시켜서 <오래된 물건을 함부로 다루면 벌을 받는다. 그러니 어떤 물건이라도 소중히 다루고 함부로 버리지 말아라. 그러면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라는 교훈을 주고 있는데, 그것이 하필 주인공이 어느 날 갑자기 <수학공부>를 잘하게 되고, 엄마가 하는 칼국수집의 음식맛이 하루아침에 좋아져서 <장사>가 잘 된다로 이어지니까 참 어색하다.

 

  이를 도식화하면, 주인공이 수학을 싫어한다. 어느 날 오래된 주판을 학교앞에서 줍는다. 주인공이 그 주판을 부수어 버린다. 그 뒤부터 주판알이 주인공을 괴롭힌다. 도깨비로 추정되는 암산이랑 함께 주판을 복원한다. 주인공이 수학을 잘하게 된다.

 

  또 엄마가 할머니가 손수 일구어 놓은 칼국수집을 물려받는다. 할머니 손맛에 끌렸던 단골손님들이 엄마의 기계로 뽑아낸 칼국수맛에 실망해 발길을 끊는다. 아빠는 엄마에게 손님이 끊긴 까닭을 할머니가 쓰시던 홍두깨를 버렸기 때문이라고 채근한다. 엄마는 내 가는 손목으로 어떻게 힘들게 손수 국수를 밀겠냐며 아빠를 타박한다. 손님은 뚝 끊겨서 장사가 안 된다. 어느 날 엄마가 버린 할머니의 홍두깨를 아빠가 몰래 가지고 와서 국수를 직접 민다. 할머니의 손맛이 살아난 칼국수집은 장사가 잘 된다. 이런 식이다.

 

  아주 엉터리 이야기는 아니다. 충분히 맛깔나게 살려낼 수 있는 이야기구성이고, 소재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저학년 어린이를 독자층으로 삼았는지 이야기가 너무 짧고, 이야기가 짧으니 <비약적인 이야기구성>이 되고 말았다. 다시 말해, 주인공이 <수학을 잘하게 된 까닭>이 없고, <엄마의 장사가 잘 된 까닭>이 미흡하다. 이를 좀더 다듬어서 주인공이 주판으로 인해 엄청난 고생을 한 뒤에 머릿속에 주판이 그려지면서 수학연산을 보다 쉽게 깨우칠 수 있는 과정을 좀더 세세히 그려냈으면 좋았을 테고, 엄마의 칼국수 장사가 잘 된 까닭도 게으른 아빠가 직접 할머니 홍두깨로 열심히 밀며 부지런해졌기 때문에 가족이 화목해지고 장사일도 더욱 부지런히 해서 결국 장사를 잘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좀더 덧붙였다면 아주 좋은 이야기책이 되었을 것이다.

 

  어린이책은 <쉬운 책>이 절대 아니다. 읽을 분량이 적어서 휘릭휘릭 읽어내기에는 참 쉬울 지 몰라도, 어린이책을 한 권 만들기까지 들인 엄청난 시간과 공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른다. 어쩌면 전문적인 책을 펴내는 일보다 더욱 어려운 일 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참 <수준>이 낮을 거라고 지레짐작하기 때문에 어린이를 대상으로 만든 거의 대부분의 것들의 <수준>까지 낮잡아 보는 것은 아닐까? 그러고 보면 우리 주변의 어린이가 구매할 물건들은 세련되고 훌륭한 물건도 참 많지만 참으로 조악하면서 볼품없이 대충 만든 유치한 물건들이 참 많다. 하다못해 맥도날으흠~에서 어린이셋트를 주문하면 공짜로 주는 장난감도 참 조악하기 그지 없다. 또 문방구에서 파는 값싼 어린이용품도 참 조악하기 그지 없다. 갓난아기를 위한 유아용품은 그렇지 않잖아요. 너무너무 훌륭하잖아요. 그런데 왜 어린이를 위한 물건들은 형편없나요? 이상해요.

 

  어쩔 수 없이 이 책을 가지고 수업을 해야 할텐데, 줄거리는 냅다 버릴 생각이다. 훌륭한 주제만으로 수업할 테다. <전통적인 우리의 도깨비>에 대해서, <오래된 물건이라고 함부로 버리면 벌 받는다>는 교훈을 통해 '재활용'과 '아껴쓰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작정이다.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z******8 2011.02.08. 신고 공감 5 댓글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