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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주목하는 건 전쟁이다. 자국의 영토를 뛰어넘어 이웃 국가를 노략질하면서 제 힘을 과시하는 행위는 오늘날엔 지탄의 대상이나 과거엔 아니었다. 단 한 번도 침략을 일삼지 않았음을 자랑마냥 언급하는 우리의 가슴 속 한 편에는 강한 힘을 지닌 주권 국가에 대한 이유 모를 욕망이 잠재돼 있을 때가 잦다. 허나 갈등이 그와 같은 한 가지의 양상만을 지닐 리는 분명 없다. 과거처럼 직접적으로 총칼을 상대의 가슴에 겨누는 일은 드물어졌다. 대신 덜 폭력적인 형태의 제도를 통해 숱한 갈등을 다스리고 있다. 선거는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 할 만하다. 출마자들은 법이 정한 테두리 내에서 상대보다 자신이 우월함을 입증해 보일 기회를 부여 받는다. 선혈이 낭자했던 과거의 결투에 비한다면 상당히 평온한 분위기 속에서 선거는 진행되는데, 그와 같은 평온이 모든 결론이 내려진 이후로도 지속되는 일은 드물다. 결과를 부정선거라 칭하고 격렬히 반응하는 이들이 제법 된다. 그들은 선거를 경험하면서 모든 것을 잃었다. 우선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다 여겨지곤 하는 물질적인 부분에서 어마어마한 손실을 경험했다.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철새”라는 비난을 듣는 일도 잦으며, 상대의 약점을 교묘하게 파고들다가 역으로 내가 공격 받기도 한다. 자존심과 명성에 금이 간 경우, 재기는 쉽지가 않다. 권력의 최정점에 서 있던 이도 너무 쉽게 무너져내리고, 야인 신세가 되어 구천을 떠돈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선거는 민주주의의 탈을 쓴 ‘내전’과도 같다. 격화된다면 충분히 전쟁 이상의 파괴력을 뿜어댈 수 있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 까닭은 인류가 아직까지는 현명하기 때문 같다. 이 시점에서 정치에 관한 책을 읽을 때면 오묘한 기분이 들곤 한다. 혁명이라는 말을 사용하기에는 살짝 부끄럽기도 하지만, 정말 열심히 광화문 거리에서 목소리 높인 이들의 입장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자랑스러워할 만한 일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촛불 탄핵 정국’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혁신적인 이론. 출판사 서평에 가서 이와 같은 어구가 등장했다. 단순히 평해서, 지난 정권은 반민중 반민주에 해당했다. 사람들은 독재자 아버지를 지닌 대통령이 설마 60-70년대 식 정치를 펼치리라고는 상상치 못했다. 이분법적인 세계관에 입각했을 때 이미 달라진 세상을 뒤집기 위해서는 지각변동 이상의 충격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사고의 지나친 단순화가 부른 오해랄까. 우린 단순했고, 그 결과 민주주의 DNA를 단 1%도 타고나지 않은 인물을 오해했다. 이분법은 위험했다. 저자의 설명을 따라 그리스 시대로의 회귀를 시도했다. 현대 민주주의는 고대 그리스에 적잖이 빚을 졌다. 그런데 그리스는 항상 평온하지 못했다. 오히려 강대국 사이에서 한없이 여린 모습으로 겨우겨우 버틸 때가 잦았다. 이런 말을 해도 되려나 싶은데, 그리스 민주주의는 실체가 없었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오이코스와 폴리스, 즉 정치적인 것과 비정치적인 것이 교묘하게 중첩되는 가운데 끊임없이 긴장이 발생했다. 두 영역의 가운데 즈음에는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스타시스’가 존재했다. 한없이 모호하고 불안하지만, 이 지점은 분명 균형이었다. 인류는 균형점에 해당하는 스타시스를 주목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스타시스 대신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테러리즘이었다. 허나 테러리즘 또한 스타시스의 한 형태임을 우린 간과했다. 전 지구적 내전. 어떠한 표현보다도 마음에 와 닿는다. 그렇다면 홉스의 라바이어던 또한 모종의 균형점을 지칭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모든 권한을 절대군주에게 위임하는 형태의 사회계약 하에서만 평화는 유지될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사회계약이 성립하는 바로 그 시점은 스타시스다. 만인이 만인을 상대로 투쟁을 벌이는, 어느 누구도 다른 누구에 비해 절대적으로 우위에 서지 못하는 상태. 괴물이라 할 수 있는 ‘리바이어던’의 존재로 인해 생겨난 균형은, 홉스의 관점을 빌리자면 언젠가는 붕괴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여 있다. “베헤못이 뿔로 리바이어던을 쓰러뜨려 갈기갈기 찢어버릴 것이며 리바이어던은 지느러미로 베헤못을 쓰러뜨려 꿰찌를”, 바로 그런 시대가 도래한다면 세상의 시간은 종말에 도달하고, 모든 것이 침묵하는 가운데 메시아적 향연만이 드높이 찬양 받을 것이다. 인류의 시간이 지속된다면 스타시스 또한 끊이지 않는 것일까. 신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게 인간이라는 생각,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을 탐한 나머지 스스로가 위대한 줄 착각하고 추앙하는 형태의 권력이 끊임없이 도래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것이 오늘날 국가가 그리고 권력이 지닌 속성인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