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0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10.0
  • 50대 0.0
리뷰 총점
거장(巨匠)은 나무보다 숲을 바라보고, 한순간 기적은 천만금이 아깝지 않다.
"거장(巨匠)은 나무보다 숲을 바라보고, 한순간 기적은 천만금이 아깝지 않다." 내용보기
의연한 예술가는 인류 역사에 걸쳐 찾기도 어려운 판인데, 유독 20세기 작곡가들만 나치입당이나 소비에트 찬양 등의 굴레를 쓰는 까닭은 ? 또한 희망이 없어 보이는 21세기라서 그런지, 주소비품인 18-19세기 작품들은 그 자리를 물려주긴 커녕 ‘정격연주’라는 형태로 기나긴 수명을 자랑하고 있다. 20세기 작품으로는 기껏(?) 말러나 스트라빈스키의 대중화가 진척된 정도 ? 이런 가
"거장(巨匠)은 나무보다 숲을 바라보고, 한순간 기적은 천만금이 아깝지 않다." 내용보기
의연한 예술가는 인류 역사에 걸쳐 찾기도 어려운 판인데, 유독 20세기 작곡가들만 나치입당이나 소비에트 찬양 등의 굴레를 쓰는 까닭은 ? 또한 희망이 없어 보이는 21세기라서 그런지, 주소비품인 18-19세기 작품들은 그 자리를 물려주긴 커녕 ‘정격연주’라는 형태로 기나긴 수명을 자랑하고 있다. 20세기 작품으로는 기껏(?) 말러나 스트라빈스키의 대중화가 진척된 정도 ? 이런 가운데 비교적 최근(!)인 1975년에 사망한 20세기 예술가 쇼스타코비치, 스탈린과 소비에트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이 팔자기구한 작곡가의 작품을 소비한다는 건 무슨 의의가 있을까 ? 그의 교향곡을 즐겨듣기는 하나, 아직도 쇼스타코비치의 세계는 이해하기 어려워 훗날 러시아어 학습에 성지순례라도 해야할까라는 생각이 간혹 든다. 단 어떤 작품이건 어떤 연주자건 “Dmitry Shostakovich"라는 글자가 새겨진 음반을 올려놓는 순간, 스피커에선 차가운 바람이 분다. 바라보기만 해도 눈물이 울컥 나올 것 같은 북쪽 나라에서 희망없는 체제와 역사를 한하듯 끊임없이 불어닥치는 무채색 삭풍은 더 이상 차가워질 수 없고, 얼어붙은 난로 속에 혼자 뜨거워지는 열풍의 향기만 이국적 동경으로 나비처럼 어른거리는‥ 그리고 유명한 왈츠 조곡 2번에서처럼 자리에 앉아 목재 탁자 위에 손가락을 탁탁 치면서 뭐라 알아들을 수 없는 혼잣말을 지적으로 중얼거리다가 탁 멈추고 술집 밖으로 뭔가 열중하듯 나가버리는 작곡가의 초상이 겹쳐진다. 18세에 작곡했다는 교향곡 1번은 거쉰 음악처럼 선율, 음색, 주제, 악기구성이 자유분방하며 특기 타악기의 역할이 선명해 ‘쇼스타코비치의 청년기’라는 인상이 확연하다. 작곡가가 ‘체제와 이념’에 부자연스럽게 얽혀드는 세월이 흐른 뒤, 2차 세계대전의 거대한 굴곡 ‘레닌그라드 공방전’을 기념했다 알려진 교향곡 7번. 정말로 소비에트 승리 찬가인지 아니면 ‘파시즘’을 증오한 작곡가의 애환이 담겼는지는 신만이 아시겠지만, 얼어붙은 총탄과 검붉은 혈흔이 러시아적 애수를 따라 흘러 결코 유쾌하지 않은 해방으로 마무리되는 교향곡 7번. 최근에 작곡된 작품으로 ‘고증’ 문제로 걱정할 필요가 없을 지언정, 이런 복잡한 역사적 배경이 얽혔기에 텍스쳐 그대로 연주할 건가, 아니면 외적 배경을 고려해 서사적으로 풀어낼 것인가, 아니면 체제에 저항했을지도 모르는 작곡가의 풍자를 담아낼 건가 더더욱 복잡하다.(* 그에 비하면 원래 나폴레옹 찬양으로 작곡된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은 행복한 편이다.) 지휘자와 악단 선정에서도 ‘러시아 지휘자, 러시아 악단’라는 품질보증표시까지 따라붙는다. 그런 가운데 낭만주의적 성향을 띠었고 게다가 ‘West Side Story'라는 뮤지컬도 작곡했으며 미국인이까지한 ’번스타인’, 그것도 미국의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기용한 이 음반, 어찌 보면 ‘난센스’일지도 모른다. 쇼스타코비치는 단지 ‘대미 선전용’ 방미 과정 중, 젊은 번스타인을 만나 칭찬했다는 기록만 있을 뿐인데‥ 하지만 뚜껑도 열어보아야 알고, 평론과 별점이 어떻든 음반도 들어보아야 안다지 않는가. 이 음반에서 거둔 성과는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연주에서 거둔 성공, 그 이상이다. “러시안 강박증”과 “소비에트 원죄”를 벗겨낸 연주의 성공은 쇼스타코비치의 전 인류적 보편성을 입증했다. 번스타인이 능통한 미국 현대음악과 비슷한 성향인 교향곡 1번의 연주도 훌륭하지만, 20세기 후반에서 21세기 초반까지 적잖은 지휘자들이 시도했고 최근에는 게르기에프까지 도전한 교향곡 7번 연주를 들으면 “쇼스타코비치다, 번스타인이다, 시카고다”라는 탄성을 지르고도 남을 게다. 1악장에 등장하는 볼레로 비슷한 ‘침공 주제’는 물론 군악대 같은 러시아 쪽 연주보다 박력이 떨어지나, 거장의 손길은 그런 말초적인 부분보다는 작품 전체의 음색과 템포를 거대한 흐름으로 연결짓고 우리가 느끼는 오싹함을 구현하는데 더 가지 않았나 싶다. 말년의 번스타인답게 전체적 템포는 느리지만 대륙이 융기하는 장관처럼 지루하지 않다. 전 악장을 관통한 기쁨과 슬픔, 분노와 체념의 굵은 물결과 거센 바람에, 일개인에 불과한 우리의 목덜미는 눈 시리도록 하얀 어둠 속 설원으로 얼어붙는다. 타 지휘자 연주에서는 지루했던 부분조차 이 거장의 은총에 는 생생한 일체로 모이고, 형용불가하고 그 이후도 기약 없는 그 거대한 역사는 마침내 고막을 넘어 피부까지 밀어닥친다. 관현악 작품이라면 타 음반도 감동적인게 많다. 하지만 북방에 순수하게 홀로선 대역사의 빙하같이 이 음반이 독보적일 수 있던 배경엔 오케스트라의 역량도 한몫했다. 제 아무리 신들린 번스타인이 그 흐름을 지휘봉과 손과 발과 신음소리로 되살렸던들, 배수의 진을 친 결사대처럼 온 기력을 소진시켜 연주한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아니었다면 타 지휘자들의 쇼스타코비치 도전은 더욱 쉽지 않았을까. 3악장에서 차갑도록 시린 현악기의 감촉, 섬세하면서도 어머니의 손길처럼 맹렬하다. 비장한 선율이 숨 막힌 전율을 낳고, 이에 질까봐 정력적이면서도 탄력 있는 타악기 장단은 현악기의 우수어린 기색에 시대적 긴장을 곳곳에 새긴다. 베를린 필이나 빈 필조차 대적하기 어렵다는 “시카고 금관”은 명실상부한 오케스트라의 ‘엔진음’으로서 종말까지 신들리듯 돌격해나간다. 경고하건대 처음 듣는 분은 임산부나 노약자가 아닐지라도 4악장의 마지막 투티 부분 (대략 16분 경) 직전에 볼륨을 절반으로 줄이는 게 좋을 지도 모른다. 그 어떤 음반에서도 경험할 수 없었던 거대한 투티의 클라이맥스는 예상 못한 노도 같아 혹자 종적 직전 마지막 폭격처럼 밀어닥친다. 번스타인씩 극단적 해석이 강력한 시카고를 만난 이후, 모든 바람이 한데 뭉친 소용돌이의 뜨거운 열점으로 일체를 잊는다. 템포가 늦춰지면서도 오케스트라의 신들린 합주, 티끌 한 점 남기지 않고 주위 잡음을 깡그리 태우고 태양이 죽음을 맞이하듯 점점 커져나가다 마침내 소멸한다. 일상으로 돌아온 그 정적 어딘가에 있을 블랙홀이 두렵다. "번스타인의 명반 중 열 손가락, 동 작품 명해석 중 다섯 손가락, 그리고 시카고의 명연 중 “V"자 손가락 안에 단연 들어가고 남는 이 음반, 프로듀서 한노 링케가 세공한 “오디오 파일”급 음질도 한몫하였지만, ‘시카고’ 심포니가 아니었다면 탄생할 수 있으리라 보지 않는다. 텐슈테트 지휘 말러 교향곡 1번 연주(EMI)에서 느꼈던 건조한 광기는 허상이 아니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