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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tons Tod-권력의 무상함 덧없음
"Dantons Tod-권력의 무상함 덧없음" 내용보기
프랑스 혁명의 마지막 절정을 극화, 대사 1/6이 당시 혁명가들의 연설문을 인용, 인물 갈등의 사실적 묘사, 독일 연극 최고 걸작, 절대 군주에 항거한 독일 반정부 운동을 한 요절한 작가의 대표작. *롤랑, 당통ㅡ>지롱드    로베스 피엘, 생쥐스트, 마라ㅡ>쟈코뱅당 1792,8월 당통, 지롱드당과 결별후 법무장관됨. 1792년 9.20 Valmy에서 연합군의 집중 포격에도 혁명군은 승리,
"Dantons Tod-권력의 무상함 덧없음" 내용보기

프랑스 혁명의 마지막 절정을 극화, 대사 1/6이 당시 혁명가들의 연설문을 인용,

인물 갈등의 사실적 묘사, 독일 연극 최고 걸작, 절대 군주에 항거한 독일 반정부 운동을 한 요절한 작가의 대표작.

*롤랑, 당통ㅡ>지롱드    로베스 피엘, 생쥐스트, 마라ㅡ>쟈코뱅당

1792,8월 당통, 지롱드당과 결별후 법무장관됨. 1792년 9.20 Valmy에서 연합군의 집중 포격에도 혁명군은 승리, 연합군(프로이센, 오스트리아,영국등)은 퇴각->괴테"새로운 세계사의 시작"이라고 했음.

9.21 마라, 로베스 피엘, 당통을 지도자로 국민공회의 발족으로 공화국이 되고 공포정치 시작.

1793

자코뱅당의 독재 공포 정치가 계속되고 그 사이 마라도 암살됨. 자코뱅의 온건파에 속한 당통은 혁명의 과격화됨을 막으려 노력.

로베스 피엘과 공식적 결별, 로베스 피엘 1794 3월 당내 과격파 에베르파 체포,처형, 이제 당통일파만 마지막 위협.

1794 3월 말 4월5일 당통 체포, 처형됨.

1794 6.8 로베스 피엘 권력 정점, 자코뱅 공포정치 계속되자 국민공회내 반 로베스 피엘 파 형성

국민공회가 로베스 피엘 체포, 7.28 처형(테르미도르 반동)

1795년 이후

국민공회 5명 총재가 정치, 새헌법 공포,선거제도등등....그러나 계속된 대외전쟁, 재정난 속에서 왕당파, 공화주의 좌파에게 공격당하고 군대의 힘을 빌려 어렵게 유지함.

시민들과 농민들은 혁명에 지치고 자신들의 권리를 보호해줄 강격한 지도자를 기대하는데

1799 11월 나폴레옹의 쿠테타로 국민공회 총재정부의 혼란함을 무너뜨리고 대혁명 끝남.(브뤼메르 18일 쿠데타,1792년 혁명정부가 전쟁을 시작하면 결국 군인 독재의 손에 혁명이 넘어가게 되리라는 로베스피에르 말이 맞아떨어졌다.

 

-역사속 인물 중-

 

*오를레앙(1747-1793)-오를레앙 공작으로 불려짐. 혁명직전 국왕이 소집한 3부회의 대의원이었으나 제3신분에 가담,1793년 국민회의가 국왕 사형결정시 찬성함. 그러나 그의 아들(후에 즉위한 루이 필릅)이 국외로 도피하자 체포되어 단두대 처형당함.

*루이 17세- 루이 16세,앙트와넷 아들, 1792년 17세 옥사로 기록되어 있으나 출생과 죽음에 대한 의혹 여전.

*Lusius brutus- 시저 암살한 마커스 브루투스 아님. 로마 전설에 따르면 로마를 타르크비니아 지배에서 해방시켰고 그와 더불어 집정시대 시작되었다. 자기아들을 역모를 꾀했다는 이유로 사형선고

 

내가 좋아하는 화가 다비드 | Art,Ballet 2005-10-07 18:51

http://blog.yes24.com/document/504883

*자코뱅 이름 유래-빨간모자-자코뱅 당원이 유니폼 처럼 사용한 모자, st.Jakob의 이름을 딴 도미니카회의 수도원이 이들의 집회장소였고 모임을 이 수도원 이름을 따라 Jakobinerklub.

 

CS009608 - French Portrait Painting of Georges Jacques Danton

작품 무대는 1794년 3.16~4.5 까지 상황(에베르 일파 체포,처형된 이후 부터 당통 처형되기 까지)

프랑스혁명이 파국을 치달으며 정점을 이룬사건이다. 당통 처형후 3개월만에 로베스피에르도 체포,처형됨.

프랑스 역사가 조르주 르페브르는 이렇게 말했다. “다스릴 수 없는 격정, 분별없는 부주의, 그리고 갑작스러운 포기…. 당통은 한마디로 다스려지지 않는 불덩이였다!” 

당통은 대단한 웅변가였고 온건파인 지롱드 당원이었다가 쟈코뱅에 가담해서 왕당파 제거에 앞선 과격한 혁명가였지만 끝없는 살육에 회의,염증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사치스런 생활과 창녀들과 어울리는 생활을 했고 이는 철저한 금욕적 도덕가였던 로베스피에르와 반대로 당통을 부도덕한 악으로 척결의 대상으로 혐오했다.

두 지도자와 그 추종자들의 반목, 대립, 당통 일파의 패배가 줄거리, 대사중 상당한 부분이 실재 연설문과 기록을 직접 인용한 것들이다. 

단어 바로 뒤에서 설명한 친절한 역자주. 당시는 고대 로마 역사를 많이 인용했음. 시간 순서대로 보면 몇달, 몇일 사이에 체포, 처형. 혁명의 혼란이 어느정도인지 광기의 절정이었음을 알수있다.

당시 연설 그대로 인용되었기도 해서 아름다운 문장과 적나라한 대사들이다.

 

k***9 2012.01.0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