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처가 열반에 들기 직전, 힌두의 신들과, 그를 따르던 제자들과, 세상의 모든 동물들이 그에게 경배를 드리러 찾아왔다고 한다. 딱 한 동물만 빼놓고는 모두가. 그토록 간 큰 동물은 다름 아니라 고양이. Elizabeth Coatsworth의 고전 The Cat Who Went to Heaven은 바로 그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이다. 뒤늦게 극락에 가고 싶어한 고양이에 관한. 주인공은 집안 일을 아주 늙은 하녀 할멈과 단 둘이 가난하게, 아주 찢어지게 가난하게 사는 수백 년전 일본의 화공. 아무도 그림을 사지 않아 끼니를 거르는 때가 흔하다. 고픈 배를 움켜쥐고 할멈이 장에서 돌아와 식사를 차려주기만 기다리던 화공 앞에 할멈은 고양이 한 마리를 사서 돌아온다. 예나 지금이나 고양이는 늘 요물이라거나 신물이라는 통념이 널리 퍼져있었나보다. 배고픔에 화공은 버럭버럭 화를 내지만 결국 할멈을 용서한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 고양이는 세 가지 색깔이 뒤섞인 행운을 가져다 주는 고양이란다. 그래서 이름도 Good Fortune으로 짓는다. 정말 삼색 고양이가 행운아였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고장에서 가장 큰 사찰의 지주가 부처님 열반하실 때 모습을 담은 그림을 그려달라고 청한다. 이 그림만 제대로 그려주면 화공은 이제 명성과 부를 한꺼번에 움켜쥐게 될 터. 그는 오래오래 명상에 잠긴다. 부처님의 삶과 가르침을 떠올리면서. 영감이 물밀듯 밀려오는 가운데 그는 부처님의 얼굴, 그 앞에 늘어선 경배 행렬을 차례차례 그려나간다. 화공이 명상에 침잠하면서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바와 하나되는 과정을 묘사하는 대목은 탁월하다. 예술적 영감의 순간을 이렇게도 포착하는구나 탄복을 금할 수 없다. 이제 화공은 부처님 앞에 경배드리기 위해서 하나씩 모습을 드러낸 동물들만 그리면 그림을 끝낸다. 말, 사슴, 코끼리, 호랑이... 삼색 고양이 Good Fortune은 화공이 한 가지 동물을 화폭에 담을 때마다 그의 곁을 서성인다. 말없이 화공을 쳐다보는 고양이의 눈길은 점차 절망으로 차오른다. 부처님의 행적에 있는 바 그대로 고양이는 정녕 경배에 참여하지 않았던 오만함 때문에 그림에서조차 부처님 곁에 서지 못하게 되는 것일까? 화공은 고뇌한다. 성공에의 길로 자신을 이끌어 줄 그림을 고양이 모습 없이 완성할 것인지, 자신의 곁을 맴도는 측은한 고양이의 소리없는 애원을 받아들여 아무도 원치 않을 그림을 완성한 뒤 영영 실패한 그림장이로 주저앉을 것인지.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또는 "측은지심" 과 같은 가르침은 신도의 여부를 떠나서 도덕률의 근본이라고 나는 믿는다. 게다가 이러한 자비의 실천 덕목은 일회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나는 믿는다. 실패했더라도 미워하지 말 것. 실망스럽더라도 버리지 말 것.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고, 주고, 또 주고. 만약 그렇게 함으로써 지금 당장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쾌락의 양이 줄어들지라도... 그러나 과연 우리는 우리에게 두 번째, 세 번째 기회를 주는가? 기회를 몇 번 주는 것이 최선인가를 따지는 데 바쁜 나머지 우리에게 허여할 수 있는 기회의 숫자는 점차 줄어들고, 종국에 가서는 단 한 번의 기회조차 사치스러운 것으로 만들고 있지 않는지... 자비란, 측은지심이란, 동정도 아니고, 배부른 자의 덕목도 아니다. 그건 인간이 다른 인간과 함께 어울려 진정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연결고리이자 우리의 구원을 향한 첫 걸음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