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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바쁘지 않으면 인터넷 서점의 신간 서적을 검색한다. 책들을 훑어보다가 우연히 발견한게 작가정신에서 나온 소설 몇 권이었다. 작가들의 이름과 작품 제목을 살펴보고는 작가정신에서 새로운 소설 몇 권을 발간했나보다 이렇게 생각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십여 년 전에 나온 소설향 시리즈가 새롭게 특별판으로 발간된 것이었다. 소설향 시리즈는 200페이지 정도의 중편소설로 시집 크기의 작은 사이즈에 가격도 시집 가격과 비슷한 팔천원 대다. 가방에 책을 넣어가지고 다녀도 부피감이 없어 어디든 가지고 다니기 좋은 책이다. 다만 함부로 다뤘다가는 찢길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책은 소중하니까.
퇴근후 집에 들어가면서 항상 우편함을 살피고 들어가는데, 만약 우리 가족에게 온 우편물이 아니면 오배송함에 넣어두곤 한다. 하지만 다른 우편물들과 끼어 들어왔을 때는 생각이 나면 밖에 나갈때 우편함에 넣어두는데, 만일 손글씨로 된 편지가 왔다면 나도 모르게 읽게 될까. 아니, 모르고 개봉했다면, 그 편지를 보낸 인물이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을까. 더군다나 몇 달 뒤에 편지를 보낸 소년의 엄마가 또 편지를 보냈다면 말이다.
'죽은 올빼미 농장'이라는 곳에 기거하고 있던 소년이 형에게 보낸 편지였다. 형의 안부를 묻고, 죽은 올빼미 농장에서 기거한다는. 아파트에 기거하고 있는 '나'는 '인형'과 함께 휴가를 받아 그 농장을 방문하기로 했다. 주소를 들고 아무리 찾아봐도, 혹은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올빼미 농장을 찾을 수는 없었다. 하룻밤을 묵고 다시 찾아보았다. 주소지를 샅샅이 뒤져 다시 찾아간 그곳에서 누군가 살았던 흔적이 있을 뿐이었다. 핑크색 대야 등이 들샘에 파묻힌 상태였다. 함께 간 인형은 그곳이 섬찟하다고 했다. 누군가 살았던 흔적만 있었던 곳이었다.
소설 속 '나'는 작사가로 보인다. 프러덕션에서 계약금을 받고 신인 가수의 노래에 사용할 가사를 쓰는 작가다. 작사를 쓰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어렸을 때 들었던 자장가의 가사를 기억하려 애쓴다. 근데 이상한게 함께 살고 있는 인형 또한 그 가사를 알고 있었던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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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인형의 존재가 의심스러웠다. 처음엔 느끼지 못하고 있다가 어느 순간에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 거야?' 라는 말이 자주 사용된다는 점과 인형과 대화할 때 대화에 사용하는 큰따옴표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나'의 주변 인물이라고는 프러덕션의 김실장과 그의 친구 민, 작곡을 하는 여성스러운 손자가 그 인물이다. '나'가 민의 아파트에 찾아가 그녀가 이끄는 대로 도시의 숲을 거닐던 장면이 떠오른다. 폐허가 된 아파트를 찾아 가 민은 사진을 찍는다.
이 장소에서 민이 하는 말은 참 의미심장하다. 무너져가는 아파트 건물이 죽은 올빼미 농장과 같다는 말이었다. 죽어가는 아파트, 이미 죽은 들샘이 있던 올빼미 농장. 그리고 재개발이 들어간다는 소식과 함께 아파트 건물 스스로가 곰팡이를 피어올린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타티아나 드 로즈네의 『벽은 속삭인다』라는 책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건물 스스로 죽어간다니. 건물도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것일까.
인형과 함께 어렸을 때 들었던 자장가의 가사를 찾아내는 일, 자장가의 가사 전체를 인형과 함께 기억해내고 그걸 신인가수 해이리에게 부르게 했다. 그 전에 몇 소절을 민에게 들려주었지만, 결국 추억을 가진 자만이 자장가의 가사를 기억해냈을 뿐이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회색빛 건물 아파트. 그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 우리의 대부분도 여전히 아파트 숲에서 살아가고 거기에서 생을 다할 지도 모른다.
백민석이라는 작가의 이름이 어쩐지 낯설지 않다 했더니, 몇 년전에 읽었던 그의 단편집 『혀끝의 남자』의 작가였다. 10년간의 절필 후에 첫 책이라고 했었고, 『죽은 올빼미 농장』은 절필 하기전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했다. 이 책 개정판이 작가에게는 많은 의미가 있는 책일 것 같았다. 다른 소설향 시리즈가 궁금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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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잘못 배달된 편지로 시작된 소설은 미스터리한 분위기였다. 배달된 주소는 맞으나, 수신인은 달랐다. 화자인 ‘나’는 그 편지 속 장소에 찾아가기로 한다. 한 번도 아닌 두 번이나 배달된 편지를 읽고 그 편지의 발송지를 찾아가지 않는다는 게 이상할 정도로 끌림이 있었다. 어디서, 왜, 누가 보낸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을 테지. 이 소설을 읽는 나도 그랬다. 그 시작을 찾아보지 않고서는 답답함이 계속될 것 같았다. ‘나’는 ‘인형’과 함께 편지 속 동생이 ‘죽은 올빼미 농장’이라고 이름 붙인 곳으로 간다. 하지만 그곳에 가서 더 혼란스러울 뿐이다. 주소가 맞는지도 알 수 없고, 그 장소가 맞는다고 알려준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소설은 ‘나’가 잘못 배달된 편지를 근거로 그 주소를 찾아가고, 그곳에 무엇이 있었을까 고민하는 시간에 현재 그의 모습을 같이 보여준다. ‘나’는 작사가다. 계약된 글을 써야 하고, 가끔 친구인 ‘민’을 만나 이야기를 하고 밤을 함께 보낸다. 동료로 보이는 작곡가 ‘손자’의 투정도 받아줘야 했고, 사무실에 나가 일정관리도 해야 했다. 꽉 막힌 듯한 일상을 보내는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소설 속 문장으로 표현되는 그의 분위기를 상상하면 그것도 이상할 게 없어 보인다. 그에게는 너무 자연스럽다. 답답할 정도로 보이는 좁은 그의 행동반경, 존재하는지 아닌지도 모르게 대화를 주고받는 ‘인형’, 여고생 신인가수의 집에 초대받고서도, 그 아이의 불법적인 행동을 보고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나약한 어른의 모습에 그가 어떤 사람인지 추측하게 된다. 자기 자신의 너머를 잘 보지 않는, 볼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 같다. 좁은 아파트 한 채가 그의 세상 전부로 보일 정도다.
지금 자기가 사는 곳, 그곳을 벗어난 장소와 사람에 대해 굳이 들여다볼 의미를 찾지 못하는 것. 어디로든 돌아갈 곳이 없고, 우리가 고향이라 부르며 회귀의 본능을 일으키는 곳도 없을 것 같은 그다. 그러면서도 항상 느끼는 공허감의 근원을 둘러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아니, 그 근원을 찾고 싶으나 찾을 수 없던 거였을까? 알 수 없다. 그 자신도 모르게 부유하듯 자기가 있는 현재의 자리에서 사는 방법만을 알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살면서 느끼는 어느 순간의 기쁨도 있을 테지만, 그렇게 살면서 찾아드는 감정의 고통이 더 클 것 같다. 주인공뿐만 아니라,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대부분이 그런 느낌이다. 작곡하는 ‘손자’는 동성 애인을 따라 현재의 삶을 정한다. ‘인형’은 현재를 잘 지내지 못하는 인물에게 적나라한 조언을 하면서 현재의 책임을 회피하며 정리할 방법을 부추긴다.
아무리 생각해도 돌아가는 방법을, 현재의 불완전함을 변화시킬 방법을 알 수 없다, 는 생각이 들게 하는 소설이다. 끝까지 모를까? 아니면, 언젠가는 알게 될까. 소설은 내내 그 불안함을 놓지 않게 한다. 처음부터 나오는, 그는 잊은 자장가를 자꾸 기억해내려 애쓰면서도 잘 떠오르지 않는데, 읽는 동안 그게 자꾸 마음에 걸렸다. 그가 그 자장가를 끝까지 기억해내지 못한다면, 그의 남은 오늘과 내일은 어떻게 흘러갈까. 그러다가 소설이 진행되면서 잊힌 자장가는 그 소절을 늘려간다. 한 줄씩, 한 단락씩. 그가 편지의 주소지로 찾아가 무언가를 더 찾으려 하면서 결국 들샘을 파내기까지 했을 때, ‘손자’가 발에 줄을 묶고 베란다를 향해 달렸을 때, 자장가의 남은 부분을 적어냈으면서도 그게 끝인지 알 수 없었을 때까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소설은 분위기를 바꾼다. ‘민’이 재개발로 허물어져 가는 아파트의 빈 곳을 보며 죽어가는 아파트라고 말할 때는 매번 어느 시간을 반복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태어나고 이별(죽음)하고, 다시 태어나고 이별하고. 낡은 아파트가 철거되고 새 아파트가 올라가듯, 우리는 계속 나아가듯 성장하지 못한 채로 나이라는 시간만 먹어가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러다가 들샘의 바닥을 파헤쳐 어깨너머의 인형 목소리를 던져 넣었을 때 어쩌면 돌아갈 방법을 찾은 건 아니었을까 하는 희망을 엿본다. 현실의 팍팍함도, 나아가지 못하는 마음의 유아성도 사라지게 할 어떤 시작점의 순간을 볼 기회가 이제는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고 맘에 따라선 변형도 시킬 수 있는 실체인 이 빈 땅은, 정작 무엇도 가르쳐주고 있지 않았다. 먼 길을 온 내게 정작 가르쳐주고 있는 건, 지금 보고 있는 것이 다라는 사실뿐이었다. 지금 보고 있는 것 외의 다른 것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사실뿐이었다. 빈 땅 외의 다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177페이지)
시간은 흘렀으나, 외모는 변했으나(늙었으나), 마음은 성장하지 못한 어른들의 소외감을 느꼈다. 아껴주지 못하고 진정으로 보듬어주지 못하는 자세를 가진 우리의 모습만 확인한 것 같다. 많은 것을 보고 살면서 모든 순간 잘 건너갈 방법을 배우는 것 같지만, 정작 우리 안에 자리한 서늘함과 위태로움을 모른 채로 세상을 산다고 착각하며 지내온 건 건 아닐까 하고. 살아가는 시간만큼 어디론가 가는 듯한 인생이지만, 정작 그 자리에서 매번 반복하기만 하는 걸음은 아니었을까 하는 순간들을 떠올린다. 그때마다 찾아오는 상실감을 우리 안에서 나갈 줄 모르고 쌓여가면서 그 크기를 키워갔을 거라고. 그렇게 절망하면서 읽어 가는데 조금씩 찾아오는 듯한 어떤 느낌. 그가 자장가의 구절을 하나씩 떠올릴 때마다 높아지는 기대는 인형을 들샘에 수장했을 때 정점을 찍는다. 퇴화하지 않고 진화하는 내면을 마주할 우리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게 한다. 현실에 적응할 수 있는, 결핍의 양을 줄여가는 내면의 성장을 불러올 것을... 여전히 미성숙하고 현실의 많은 부분에 힘들게 적응하는 모습이 남아있을 테지만, 현재를 사는 법을 보여준 것 같다. 농장이 있던 빈터, 사라진 들샘. 현재의 그곳 모습이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빈 땅에 채울 수 있는 것도, 그릴 수 있는 것도, 많다.
작가정신에서 ‘소설향 시리즈’ 특별판으로 내놓았다. 이번에 출간된 다섯 권 모두 궁금했지만, 백민석의 <죽은 올빼미 농장>과 정영문의 <하품>이 가장 궁금했다. 어쩌다 <죽은 올빼미 농장>을 먼저 읽게 되었는데, 시리즈를 한 권씩 다 만나고 싶어진다. 짧고 매력적인 소설들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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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올빼미 농장
이 책은
소설이다.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기괴한 스토리를 가진 소설이다.
작가 백민식이 쓴 이 소설은 개정판이다.
작가는 개정 전의 소설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쓸 당시에 난 여러모로 안 좋은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내가 뭘 쓰려고 하는지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이 책을 냈고, 결국엔 마음의 빚으로 남았다.> (5쪽)
개정판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전체를 다시 쓰지는 못했다. 마음의 빚을 갚는다는 생각으로, 눈에 거술리는 부분들을 잘라내는 식으로 고쳤다.>(5쪽)
그렇게 해서 <죽은 올빼미 농장>의 개정판이 탄생했는데,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의 내용은
그런 소설이니만큼 궁금한 것은 이것이었다.
저자가 말한 ‘내가 뭘 쓰려고 하는지도 잘 모르는’이란 말이 의미하는 것처럼, 작가는 이번 개정판에서는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
개정 전 소설에서는 그것을 잘 몰랐다고 하는데 개정판에서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그래서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집중적으로 살펴보면서 읽었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잘못 배달된 편지의 발송지인 ‘죽은 올빼미 농장’을 주인공이 찾아가는 것부터 시작된다.
그것을 시작으로 하여 주인공은 인생의 여행을 시작하는데, 그것을 자기를 찾아가는 여행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문제는 그런 여행의 동반자다, 누구와 동행하는가
인형이라는 존재다.
맨처음 인형의 등장에, 잠시 혼란이 왔었다. 이게 진짜 인형(人形)인가, 아니면 인형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인가?
인형은 등장은 맨 첫 문장이다.
“농장에 놀러가지고 했을 때 인형은 좋아라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시큰둥해하지도 않았다.”(11쪽)
그렇게 등장한 인형은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반응하고 행동한다.
이게 바로 작가의 트릭이다.
작가는 일인칭으로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는 인용부호를 사용하는데, 인형과의 대화는 인용부호가 없다.
인형과의 대화 한토막
얼마나 깊이 잠들었는지 내가 오줌을 누고 세수를 해도 모르던데.
그랬어
차라리 거기서 녹아버리지 그랬어
나는 그런 수프는 정말 맛없을 걸, 하고는 웃었다. (29쪽)
다른 사람, 모텔 직원과의 대화는 이렇게 기록이 된다.
“근처에 저희 말고 다른 모텔은 없어요.”
“근처라면 얼만 거립니까?‘(30쪽)
그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진작 알아차리지 못했다. 거의 끝에쯤(162쪽) 가서야 그 인형이 진짜 인형이구나, 하는 판단이 들었고, 그럼 그동안 인형과 나누었던 대화는? 그게 자기 자신과의 대화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작가는 자아 속의 또다른 자아를 인형이라는 존재로 형상화 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진짜 살아 움직이는 사람과의 만남은 어떨까
민이라는 여인이 등장한다.
대학때 만나 관계를 맺은 이후로 주욱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여자다.
성적인 관계는 유지하되, 결혼은 하지 않는 관계. 그 둘이 만나 나누는 사랑도 대화도 늘 겉도는 느낌이 든다. 서로 깊숙이 빠지지 않은 것 같은, 그래서 편하지 않은 관계.
작가는 이런 관계를 통하여 무엇을 그려내고 싶었을까
방랑하는 마음, 정처 없이 떠돌아야만 하는 현대인의 방랑기질, 거기에는 그런 것을 부추기는데 한 몫을 하는 자신과의 자기 분열적 대화가 존재한다. 인형과의 대화다.
작가는 현대인의 마음을 그런 인물들을 통하여 탐구하고 싶었나 보다. 위에 언급한 인물 외에도 성정체성까지 흔들리는 인물 ‘손자’ - 손자(孫子)가 아니라, '손자 크리스티나'라는 가수의 이름에서 따온 – 이 등장하는 게 그 증거다.
다시 이 책은
이야기는 소설의 끝까지 어느 것 하나 속시원하게 매듭이 되질 않는다.
그래서 정형적인 스토리텔링적 요소를 기대하는 나 같은 사람의 입맛에는 만족스럽지 못한 채 끝이 나지만, 그게 현실인 것을 부정할 수 없으니, 이게 바로 현대 소설인가 보다.
작가는 이 소설의 끝을 이렇게 맺는다.
<우리는 각자 택시를 타고 돌아갔다. 나는 택시 뒷좌석에 몸을 묻곤, 이 택시가 나를 태우고 영원히 달려주었으면 ,,,, 하고 생각했다. 단 한순간도 멈추지 말고.>(194쪽)
그게 이 책의 마지막 장면이면서, 민이라는 몸까지 서로 나누는 여인과 헤어지는 장면이다. 해서 소설도 인간도, 인간관계도 스산하기만 하다. 그러나 인정하자. 그게 우리 모두의 현실이라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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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올빼미 농장 내 어렸을 적 친구는 앵무새들을 키우며 살았네. 울타리도 지붕도 없는 이상한 집에서… 인간은 생명을 유지하려는 에로스와 자신을 파괴시키고자 하는 타나토스 간의 긴장 속에 살아가는 존재다. 둘은 기계적으로 균형을 이루지 않고, 종종 한 쪽에 힘에 휘둘리기도 하면서 가능한 평형을 맞추려고 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시도는 거의 실패로 끝나게 된다. 에로스의 끝, 그곳에는 성적인 세계가 존재하고 타나토스의 끝에는 죽음의 세계가 존재한다. 너무나 강력한 에로스를 누리다가 상실해버린 사람은 그만큼의 빈 공간을 자기 파괴적 충동인 타나토스에 내주기도 하는 등 두 ‘에너지’는 표현되는 방식만 다를 뿐, 그 성질은 유사하다. 백민석 작가의 ‘죽은 올빼미 농장’은 에로스와 타나토스 사이 휘둘리는 인간의 작태를 관찰할 수 있는 재밌는 소설이다. 주인공이 자신에게 잘못 배송된 편지의 발송지인 ‘죽은 올빼미 농장’을 찾아나서는 것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도시에서만 자라왔던 그에게 농장은 기분 전환삼아 가는 곳이었다. 아파트먼트 키즈가 지니는 날 것, ‘자연’에 대한 동경이었을까? 하지만 농장에 대해서 알려고 하면 알수록 미궁에 빠지게 되고, 공교롭게도 그것을 기점으로 그의 일상이 균형이 어긋나기 시작한다. 스스로 ‘남자’임을 벗어나고 싶은 작곡가 후배, 부유한 아버지의 지원을 통해 가수로 데뷔하려는 여고생, 뽕짝을 벗어나 제대로 된 기획사를 차리고 싶은 김실장… 각자의 에로스들은 폭죽처럼 자신의 빛을 내며 섞여 들어간다. 그 중, 가장 크게 빛나고 싶었던 한 별은 이내 자신의 빛을 잃고 그 상실감은 그 주변에 거대한 블랙홀을 드리워 폭력과 죽음의 길로 자신의 발을 내딛는다. 자신의 모순을 버티지 못한 이의 죽음에 목도한 주인공은 ‘삶’이라는 모순과 미스터리 속에서도 어떻게 ‘살아가야하나’는 고민 속에서, 주인공 자신이 품고 있었던 모순도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를 얻게 된다. 200쪽에 약간 못 미치는 중편 소설에서, 그 짧은 분량치고는 많은 향기를 이 책 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여행, 무의미한 섹스, 해결되기는커녕 더욱 복잡해지는 미스터리 등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는데,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가 순례를 떠난 해, 상실의 시대, 해변의 카프카 등 하루키의 저작들을 재밌게 읽었다면 이 책이 이야기를 풀어놓는 방식에 큰 낯섦을 느끼지 않으리라고 본다. 정신병, 상실감 등 소설을 풀어감에 있어 주요 소재가 겹치는 게 이유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우리 주변에서 종종 목도하지만 우리가 애써 무시하고 넘어가는 ‘부조리’에 대한 조명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이 책을 높게 판단한다. ‘죽은 올빼미 농장’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샘이 말라버린 들판과, 주인공과 그의 오랜 친구가 들른 재건축을 앞둔 아파트 등 버려지고 방치된 ‘상실의 공간’들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들어나는 소설이었다. 그 농장과 아파트는 누군가의 터전이고 고향이라는 점에서, 태어는 났으나 결코 자신이 태어난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방황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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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페이지 정도 밖에 안되는 분량의 소설이라 흥미로우면서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했지만 책을 다읽고 리뷰를
쓰는 지금 두근거린다는 느낌은 죽은 올빼미 농장을 읽고나서 죽은 올빼미 농장, 이미
제목부터 심상치 않기는 했다. 200페이지 속에 담긴 이야기가 복잡하고 무서워봐야 한 권의 책을 쉼없이 읽으면서 결론적으로 알아낸 진실 한가지는 그러한 느낌을 주는 부분은 집착과도 같이 '나'가 죽은 올빼미 농장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죽은 올빼미 농장의 책은 끝이 났지만 '나'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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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말 큰 택배박스 하나를 받았다. 당연히 주소는 동호수가 크게 적혀져 있으니 확인을 했고 당연하다는 듯이 오픈을 했었다. 일단 주문은 한 것이 없었고 년말이니 만큼 한해동안 고마웠던 누군가가 선물을 보낸거라 생각하고 의심도 해보지 않았다.
며칠후 걸려온 인터폰, 그 택배박스를 찾는 거였다. 알고보니 쇼핑몰에서 주소를 잘못 쓴 거였다. 그제서야 이름을 확인해보니 우리 이름이 아니었다. 워낙 택배가 집에 많이 오니 벌어진 일이었다. 이런 식의 일들은 자주 일어나는 법이다.
여기 이와 비슷한 사건이 하나 더 있다. 분명 자신의 집으로 제대로 배달되어온 한통의 편지. 아무 생각없이 읽고 났더니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주소는 맞지만 자신에게 온 편지가 아닌 것. 이럴때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그냥 버리던가 아니면 반송함에 넣을 것이다. 여기 이 편지를 잘못받은 주인공은 반송함에 넣는 대신 자신이 편지를 모아두는 박스에 던져 두었다.
자신의 일을 하며 시간이 흘렀다. 또 한통의 편지가 날아온다. 지난번 편지가 동생이 형에게 쓴 편지라면 이번에는 그 엄마가 쓴 편지였다. 궁금증이 생긴 나는 동생이 보낸 편지속에서 언급된 농장이름을 기억하고 [올빼미 농장]이라는 곳을 찾아가 보기로 결심한다. 가깝지도 않은 강원도 고성. 달랑 편지봉투에 적힌 주소 하나만으로 찾을수 있을까?
그래도 '농장'이라고하니 어느정도 규모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 주위에 가서 물어보면 다들 알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대가 의심으로 바뀌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한순간에 무너져내린 기대감. 생각보다 농장을 찾는 일은 어려웠다. 주위의 사람들이 모를뿐만 아니라 그나마 찾아간 읍사무소에서도 정확하게 모른다는 것이다. 단지 주소를 바탕으로 약도를 그려줬을 뿐. 나는 차를 주차해두고 걸어서 그곳을 찾아가보기로 결심한다. 내가 그곳에서 찾은 것은 기대했던 그 농장이 맞을까.
다른 책에 비해 얇고 작은 책은 가지고 다니기 편하게 효율성을 높였다. 학교 다닐때 들고 다니면서 보던 문고판을 연상시킨다. 가방 어디에 넣어도 거부감없이 들어갈 포켓사이즈이기도 하다. 자극적인 이야기 없이 흘러가지만 충분히 호기심은 발동한다. 제대로 된 소재를 선택해서 읽는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극시킨 덕분이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우리는 작가가 의도한대로 올빼미 농장을 찾아서 전진할 것이며 그곳에서 무슨일이 일어났는지를 찾아보게 될 것이다.
작사를 하는 주인공이 쓴 가사를 읽는 것은 또 하나의 재미를 주는 덤과 같은 존재이다. 끊임없이 기억하려고 노력했던 그 자장가의 가사마저도 그러하다. 실제로 그 자장가가 어떠했는지 그가 가사를 주었던 여고생 신인가수 해아리의 목소리로 듣고 싶어졌다. 가냘픈듯 몇시간을 노래해도 끄덕없다던 그 아이의 목소리로 말이다.
나와 함께 끝없이 동행하던 "인형"의 존재에 대해서는 읽는 사람들마다 더욱 다양한 의견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어진다. 이 책을 독서토론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꼭 한번쯤은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존재가 바로 이 '인형'일 것이다. 주인공과 인형, 나와 인형은 어떤 관계였던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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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석 작가의 『죽은 올빼미 농장』은 중편소설 시리즈인 작가정신 소설향 시리즈 가운데 한 권이다. 중편치곤 제법 되는 분량의 소설은 2003년에 나왔던 작품으로 이번에 다시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처음 시작은 미스터리 느낌이 물씬 풍긴다. 이렇게 시작된 스토리는 상당히 음산하고 조금은 괴기스럽기도 하다. 아울러 암울한 판타지적 요소 역시 없지 않아 ‘뭐지?’하는 느낌을 줄곧 받게 된다. 아파트 키드로 태어나 서울을 떠난 적이 없는 주인공 ‘나’는 어느 날 ‘죽은 올빼미 농장’이란 곳에서 보내온 편지를 받게 된다. 잘못 배달된 편지였다. 그리고 줄곧 잊어버렸던 그에게 몇 년이 지나 ‘죽은 올빼미 농장’에서 또다시 두 번째 편지가 도착한다. 물론 잘못 배달된 편지였지만, 이미 두 편지의 내용을 읽은 ‘나’는 그곳에 대한 궁금증을 품게 되고, 그곳을 찾아간다. 그런데, 이미 그곳은 30여 년 전에 폐허가 되어 버린 곳. 그곳엔 아무도 살고 있지 않다. 조사해본 결과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어떻게 폐허인 곳의 주소에서 죽은 사람들이 ‘나’에게 편지를 보낸 걸까 이처럼 소설은 미스터리하고, 일견 괴기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정작 작가는 왜 이런 편지가 왔는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다시 말해 미스터리를 해결하고자 함에 관심이 없다. 이 의문의 장소이자 괴기스러운 장소 ‘죽은 올빼미 농장’을 끊임없이 떠올리고 연관시키는 작업을 통해, 작가는 지금의 ‘나’가 성숙하기 위한 통과의례를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다. 작사가인 ‘나’는 끊임없이 어린 시절 들었던 자장가에 집착한다. 무의식 속에 침잠되어 있던 자장가는 조금씩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고. 그렇게 결국 완성된 자장가와 함께 ‘나’는 그의 곁에서 언제나 함께 했던 ‘인형’을 그곳 ‘죽은 올빼미 농장’에 수장하게 된다. 여기 ‘인형’이란 존재 역시 괴기스럽다. 과연 ‘인형’은 무엇일까? 그 이름처럼 어린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인형을 의미하는 걸까? ‘나’가 여전히 유아기적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의미하는 걸까? 스토리 속에서의 ‘인형’은 인격을 가진 존재로 묘사된다. 그렇기에 처음엔 ‘나’와 동거하는 여인인가보다 싶었지만, 어느 순간 ‘인형’은 ‘나’의 동심이 만들어 낸 실체가 없는 허상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분명 인격이 있는 존재처럼 묘사되고 있는데, 그렇다면, ‘인형’이 행한 일들은 다중인격을 가진 ‘나’가 행한 걸까? 모를 일이다. 어쩌면, 여전히 성숙지 못한 ‘나’가 집착하는 ‘상상친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실체가 없는 ‘상상친구’이지만, 이미 상상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인격을 부여받고, 실체 아닌 실체를 가진 현실 속의 ‘상상친구’는 아닐까? 그렇다면, 이런 ‘인형’을 ‘죽은 올빼미 농장’에 수장하는 것은 아직 털지 못한 유아기적 모습을 털어버리는 통과의례라 여길 수도 있겠다. 소설 속에서 또 한 가지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아파트 키드’에게 고향이란, 자연이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이젠 철거되어지고 새롭게 세워지게 될 재개발 지역? 그래서 이젠 사라져버린 곳일지도. 아님, 이미 인적이 끊겨버린, 그러나 여전히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삶 속에 신비하게 개입하게 되는 미지의 땅 ‘죽은 올빼미 농장’일까? 아무튼 모를 일이다. 어쩌면, 언제나 편하게 만나주고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여자 친구 민과 같은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소설 『죽은 올빼미 농장』은 쉬운 소설, 아니 친절한 소설은 아니다. 친절하지 않기에 도리어 여러 질문을 던지게 되고, 이리저리 생각하게 하는 소설, 『죽은 올빼미 농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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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신 출판사의 소설향 특별판 소식을 듣고 어떤 책인지 궁금했었다. 백민석 <죽은 올빼미 농장>, 함정임 <아주 사소한 중독>, 정영문 <하품>, 최윤 <숲속의 빈터>, 이응준 <전갈자리에서 생긴 일> 모두 5권으로 구성된 소설향 특별판, 그중에서 백민석 작가의 죽은 올빼미 농장을 먼저 읽게 된 것이다. 책 부피를 보며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려니 생각했었는데, 내 생각이 너무 앞서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었다. ![]()
죽은 올빼미 농장이라는 왠지 으스스 한 느낌을 주는 책 제목, 역시 책 내용 또한 머릿속을 복잡해진다. 작품 속의 ‘나’는 두 통의 편지를 받게 되고,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들의 이름을 만나게 된다. 더 이상한 것은 ‘나’라는 인물이 대화를 주고받는 대상이 인형이라는 것이다. 작품 속의 ‘나’는 어떤 사람이기에 인형을 상대로 말을 하는 것일까? 보통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형은 자신의 감정이나 느낌이 없는 존재가 아니었던가 말이다. 이 책 속에서 등장하는 ‘나’란 사람은 소통의 부재를 경험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의 인형의 등장에서 짐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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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죽을 때까지 성장하며 깨닫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며 살고 있다. 나이가 서른이면, 아니 마흔이면 철이 들어 제 몫을 감당하는 줄 알고 살았는데, 나이를 먹는 다고 해서 모두가 철이 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다. 모양은 어른인데 내면은 아이에서 별로 성장하지 못한 사람, 바로 이 책에 등장하는 ‘나’란 인물이 그런 것 같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고 했던가?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픔이나 성장 모두 내가 겪어야 다음 단계의 성숙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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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중에 들린 채로 유아기를 보내는 아이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마주하게 되는 규격 유리창들, 아이들에겐 너무 까마득한 건물들, 차고 축축한 모래들, 공장에서 찍어낸 놀이기구들……. 그리고 그런 것들에서 유아기의 아이들이 갖게 되는 생애 최초의 감각들. 손끝에, 발바닥에, 시선에 닿게 되는 최초의 어떤 느낌들. 생애 최초의 실감들. 인형도 그 비슷한 얘기를 했었다. 아파트촌의 황혼빛은 너무 묽다는 것이었다. -112쪽 ![]()
컴퓨터 모니터? 스마트폰? 사람이 사람을 보며 마주 앉아 대화하는 것이 아닌 sns.에서 누군가의 반응을 기대하며 이끌어내는 글들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 한국문학 중편소설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작가정신의 소설향 특별판~ 판에 짜인 듯한 성장과정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모습, 회복을 촉구하는 갈망이라고 해야 할 것만 같은 이야기... 인공의 자연에서 나고 자란 인간의 성년식을 그린 책이라는 출판사의 책 소개 글이 인상적이다. 우리가 소통해야 할 대상은 과연 무엇이란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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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작가정신은 한국 현대 소설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중편소설의 의미와 가치를 되살려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단편의 미학과 장편의 스토리텔링을 다시 선보이고자 소설향 시리즈 중에서 5편을 골라 특별판으로 출간하였는데요. 그 중 충격적인이고 자극적인 소재로 한국 문단에 나타난 '백민석' 작가의 《죽은 올빼미 농장》을 개정판으로 만나보았습니다. 작가의 말에도 적어놓고 있듯 가수와 노래가 나오지만 직업적인 설명이나 대중음악을 주 소재로 다루지 않습니다. 뽕짝이나 트로트라 불리는 대중음악 작사가인 주인공 '나'와 주변 인물들, 정체를 알 수 없는 인형까지. 이제는 당연한 주거형식이 된 아파트에서 자연과 이질감을 느끼면서 벌어지는 삶과 죽음, 인간과 그 외의 존재들의 뒤섞임을 담아내고 있는 독특한 소설이죠.
같이 살고 있는 인형과 나는 어릴 적 듣던 자장가를 생각해 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좀처럼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 자장가는 앵무새가 등장하는 독특한 가사를 갖고 있는데요. 삼 년 전 받았던 편지와 이어지는 내용의 두 번째 편지를 받는 순간 뭔가가 잘못되았다는 의심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실수였지만 편지봉투를 뜯지 말아야 했습니다. 편지를 뜯는 순간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듯 물리적인 힘으로는 해결하지 못할 다른 세상이 열려버린 것 같은 느낌. 점입가경으로 난센스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버렸으니까요. 그 후 주인공은 다른 세계에서 딸려 들어온 것 같은 곤란한 상태로 '올빼미 농장'으로 찾아갑니다.
하지만 주소지와 일치하는 그곳은 들샘이 말라버린 산 중턱의 직사각형 모양의 공터. 그곳은 원래 무엇이 있었는지 모를 것들이 뒤섞여 을씨년스럽기까지 합니다. 그 후 올빼미 농장은 잊은 채 지내 던 중 같은 프로덕션에서 일하는 '손자'에게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급격하게 이상해지는 손자는 작곡적인 영감을 잃어버린 채 백인 애인에게 집착하기 시작하죠. 남자지만 스스로 아이를 갖고 싶어하고 외국으로 떠날 거라면서 행패를 부리는 등 서서히 타락이 이어질 때쯤 주인공에 집에서 최후를 맞게 됩니다.
초반부터 등장한 '인형'의 존재는 손자의 죽음으로 풀립니다. 주인공은 아파트에서 태어나 시골, 흙, 황소 따위는 모르는 전형적인 '아파트먼트 키드' 이며 세속적인 어른을 거부하는 소년 같은 존재입니다. 어른이 된 후에도 어릴 적 지내온 인형과 어디든 함께 하죠. 인형의 정체가 손자의 죽음 이후 밝혀져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는 원혼, 귀신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이는데요. 어쩌면 인형은 자신이 만들어낸 허상, 또 다른 분신일지도 모릅니다. 후반부 , 자장가의 가사를 함께 기억해 낸 인형을 자기 손으로 제거하고자 하는 주인공. 인형은 주인공의 성장을 막는 보이지 않는 장막이자, 30년 전 일어난 올빼미 농장의 원혼을 달래 줄 제물이 됩니다. 인공적인 것들에 둘러싸여 자연을 모르고 지내온 요즘 현대인들에게 올빼미 농장은 일종의 통과의례입니다.
환상과 현실의 느슨한 경계의 주인공을 격려하는 유일한 존재는 대학 동창 '민'인데요. 그녀를 통해 주인공은 씻김굿을 하듯 소멸할지 모를 인생을 가까스로 건져냅니다. 철거예정인 아파트가 서서히 자살하고 있다는 비유는 소스라치게 아름다워 소설의 전박적인 그로테스크 한 분위기와 잘 어울립니다.
2000년 대 '엽기'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며 사회 곳곳에 다양한 문화를 양산하기도 했는데요. 10여 년이 지난 지금 읽어보아도 특유의 염세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잊히지 않는 소설입니다. 가방에 쏙 들어가는 포켓형의 사이즈와 가벼움이 소설의 내용과는 대비되는 묘한 느낌도 있습니다.
겉과 다른 속을 가지고 있는 성장을 거부하는 현대인을 쏙 빼닮은 주인공은 인공적인 공간, 이름도 모르는 낯선 이들 사이에서 안정감을 느낍니다. 누구든 익명의 아이디로 타인이 될 수 있는 사회에서 진정한 나는 누구인지 본인조차도 알 수 없을 때가 많죠. 수많은 가면을 바꿔가며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시사점을 던져주는 소설입니다. 결국 인간은 억겁의 세월을 통해 서서히 마모되고 시들어가겠지만 결코, 사라지지는 않고 기생하는 무서운 존재한 존재입니다. 자연을 등한시하고, 타인 관계 관계를 가볍게 여기는 모든 인간의 성찰이자 반성이 담뿍 담긴 소설입니다. 오랜만에 읽어 본 한국작가의 중단편은 단조로운 일상에 새로운 자극이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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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향 특별판으로 출간된 #현대소설
죽은 올빼미 농장
백민석 지음. 작가정신 2017
[소설향 특별판]으로 출간된 <죽은 올빼미 농장>은 1990년대의 한국문학의 뉴웨이브를 이끌며 새 문을 열었던 백민석 작가의 중편소설이다.
이작품은 아파트먼트 키드의 내면적 성장소설로, 작가는 '죽은 올빼미의 농장'을 동원하여 아파트먼트 시대의 황폐한 내면을 보여준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왠지 책제목 소개글을 보다보면 페허같은 삭막한 도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이 떠오르곤 한다.
오랜만에 만나는 현대소설 ~ 아파트먼트 세대의 황폐한 내면을 담고 있다고 하니
어떠한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할뿐만 아니라 얇은 두께의 5개의 단편으로 이뤄진 중편소설이라
부담감없이 집어들기 좋은 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한장 한장 읽어 나나기 시작하면서
절대로 가볍지만은 않은 소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처음 잘못 배달된 편지로 시작되는 이야기로 살짝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두번이나 배달된 편지 주소는 맞으나 수신인이 달랐다. 우연히 뜯어 보게된 계기로 인하여 편지를 돌려주러 떠난다.
<죽은 올빼미 농장>은 주인공인 '나'가 들려주는 이야기로 다섯편의 단편이 이어진 중편 현대소설이다. 다섯편이 독립적인듯 하면서도 이어지는 이야기로 왠지 모를 오싹함을 느끼게 되었으며 현실의 문제점을 콕콕 집어 이야기한 것을 읽을때는 참으로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처음 책의 두께감에 가볍게 읽기 좋을거란 생각보다는 주제가 조금은 무거운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한번 읽기 시작하면 쉽게 시선을 뗄 수 없는 매력을 지닌 책이 아니었나 한다.
우연히 잘못 배달된 편지를 받고 그것도 우연히 내용을 보고 난뒤 그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소설속 '나'는 잘못 배달된 편지를 근거로 그 주소를 찾아가게 되고 그곳에 가면 무엇이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는 책속의 주인공 '나'는 작사가이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함께 해본 '인형'과 함께 편지속에 적힌 이름 죽은 올빼미의 농장을 찾아 고성을 떠나 농가가 가장 많이 몰려 있는 마을을 찾아가 수소문을 하면서 짐작 가능한 하나의 장소를 발견하지만 이미 이십삼년전에 사라져 폐허나 다름 없는 곳으로 전략하고 말았다. 이곳이 과연 편지가 알려준 장소인지 의구심이 들면서 과연 실존하는것인지 의아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작사가인 '나'는 계약된 글을 써야하고 동료로 보이는 작곡가 '손자'의 투정을 받아주어야 하며, 친구인듯 연인 관계를 유지하는 '민', 가수 지망생 소녀와의 이야기를 만나다보면 이들과 죽은 올빼미의 농장하고는 어떠한 관련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뇌리에서 떨어지지 않으며 왠지 책을 읽다보면 더욱더 미궁속에 미스터리함 속에 빠져들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지 않는 현대소설 <죽은 올빼미 농장>을 읽다보면 왠지 '나'가 그 가운데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면서 도대체 이책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인지 처음엔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하지만 반복해서 읽다보니 어른이라는 껍데기를 쓴채로 어른인척 살아가는 '나'가 보이는것이 아직 어른의 모습은 하고 있으나 진정한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아이가 내면에 존재하여 어른인척, 아무렇지 않은척 살아가고 있는 '나'와 마주하면서 조금은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게 이끌어 주는 현대소설이 아닌가 한다.
'죽은 올빼미 농장'은 현실에 부재한 공간이면서도 내면의 익명적인 공간으로 주인공 '나'의 내면적 성숙을 이끌어 내는 하나의 장치 였습니다라고 저자는 말하는것이 처음 책을 읽고 난후 크게 공감이 되지 않았으나 한발 물러서서 다시 읽어보면서 그 말에 공감을 할 수 있기도 했으며, 미처 성장하지 못한 어른아이는 불안함과 두려움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만큼 이책을 통해서 '나'와 마주하며 나를 더 신경쓰고 나를 사랑하면서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해 나가는 시간을 가져보아도 좋을듯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