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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가 정해진 공식 이상의 무엇을 보이지 못하고 그저 경박한 질주나 영화화를 염두에 둔 얄팍한 복선 공사에만 치중한다면, 소설 단계에서 벌써 속셈을 간파한 냉정한 독자들의 외면으로 실패하기가 십상이다. 데니스 루헤인의 솜씨를 그저 가볍게만 보기 힘든 것은, 분명 은막에의 변용을 강하게 예비하고 있는 듯한 치밀한 구성과 제작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 '그딴 건 중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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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가 정해진 공식 이상의 무엇을 보이지 못하고 그저 경박한 질주나 영화화를 염두에 둔 얄팍한 복선 공사에만 치중한다면, 소설 단계에서 벌써 속셈을 간파한 냉정한 독자들의 외면으로 실패하기가 십상이다. 데니스 루헤인의 솜씨를 그저 가볍게만 보기 힘든 것은, 분명 은막에의 변용을 강하게 예비하고 있는 듯한 치밀한 구성과 제작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 '그딴 건 중요하지 않다'고 선언하듯 순수 언어 예술의 요구 또한 충실히 순응하고 있다는 점에서이다. 빼어난 속도감과 캐릭터의 선명한 부각은 속물적 계산으로 오해 받을 수 있을 만큼 잘 발휘되었으나, 또한 (정신병이나 기억 일반에 대한)심도 있는 사색과 통찰, 오랜 고민의 산물일 듯한 앞부분 닥터 쉬한의 독백 배치 등은 그의 진정성에 대한 의구를 싹 걷어버릴 만큼 정직하고 성공적인 시도이다. 따라서, 이 좋은 소재를 영화로 옮길 연출자라면 어지간한 센스와 역량을 갖추지 않고서야 도리어 원작의 성취도에 부끄러워질 만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겠다.


overqualified. 아니, 그렇다고 해서 어디까지나 스릴러의 범주를 넘지 못하는 이 정도 원작에, 무려 마틴 스콜세지까지 동원될 필요가 있었을까? 물론 그는 1993년에, (어느 기자의 말을 빌리면) '대중 서비스 차원에서' 안 하던 스릴러 제작에 몸소 나선 적이 있고, 적잖은 상업적 성공을 거둔 '케이프 피어'가 바로 그 결과물이기도 했다(로버트 미첨이 나온 1950년대물의 리메이크임도 잘 알려져 있다). 누가 강제 동원을 해서가 아니라, 물론 노장 본인의 의욕과 동기에 의해서였겠지만, 그의 지난 이력과 숱한 걸작의 분위기를 감안할 때, 마치 2006년의 '디파티드'처럼(공교롭게도 이 역시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리메이크작이다) 뭔가 어울리지 않는, 종전의 의식 있는 거장으로서의 그를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팬들에게 작으나마 우려의 한 자락을 던지는, 나이와 무게에 맞지 않는 행보나 아닐지 하는 묘한 우려와 섣부른 실망이 겹치는 선택이 아니었을까 하는 점 분명 없잖아 있었다.


영화는 평이 좋은 편이다. 어딜 가 봐도 평균보다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있고, 구체적인 소감도 비슷비슷한 게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의 좋은 모범이라는 식이다. 동원된 배우의 면면도 화려하고, 개별 장면 역시 누가 그 아니랄까봐 좋은 감각으로 공들여 찍은 티가 완연하니 당연하다. 설사 그런 기술적인, 혹은 스펙상의 장점이 없었다 쳐도, 연출로 그저 평균만 해도 그 감독과 그 배우들의 이름값 덕에 설마 욕이야 먹겠는가? 보고 나서 뜻밖의 전개와 묘한 결론적 암시에 정신이 멍해질 만하니, 어찌 보면 상업적으로 약은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기까지 하다.


허나 냉정히 생각해 보자. 이 영화가 받는 그 많은 칭찬과 갈채 중에, 과연 얼마나의 비중이 순수히 영화 쪽의 공으로 돌려져야 할까? 긴장감 넘치는 전개와 뒤통수를 치는 반전은 영화 이전에 이미 원작이 터질 듯 장전해 놓은 실탄과 내실의 미덕이 존재하지 않았나? 그 내러티브의 교묘한 스텝 전개에 스콜세지가 추가로, 독창적으로 기여한 바가 얼마나 될까?

1) 스콜세지의 장기 중 하나는 음악의 활용이다. 특히 '굿펠라스'에서 잘 드러났듯, 심오한 서사 외에도 압도적인 배경 음악의 배치는 (그러잖아도 긴 그의 영화에서) 마치 장중한 오페라 한 편을 본 듯한 무게감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허나, 이 영화에서 구스타프 말러의 작품들은, 물론 그 의도야 피로 범벅이 된 그 끔찍한 장면들과의 기막힌 대조를 표현하는 데에 있었겠으나, 그 수법과 모멘텀이 너무도 진부하여, 보는 이에게 원초적 혐오감만 가중시킬 뿐이다. 말러의 음악은 마치 어울리지 않은 도색영화에 삽입된 클래식 명곡처럼, 반어적 효과 창출이 아닌 물과 기름처럼 따로 노는 불협화음만 낳을 뿐이라서, 이미 그 의도를 충분히 알아 듣고, 그리 큰 인상을 받지 못했음을 점잖게 암시하는 청자에게, '아니 그럴 리가? 다시 한 번 들어 볼래? 니가 이해력이 딸리는가 보다'며 눈을 똥그랗게 뜨고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는 늙은 벽창호를 떠올리게까지 한다.

2) 선명한 붉은 피로 특유의 미학 세계를 펼치는 데 능했던 연출자로는 그 나이 또래인 브라이언 드 팔마가 있었다. 이 사람 역시, 처음부터 소재로 한계가 있던(누가 피를 보고 지속적으로 감동을 받겠는가? 듣기 좋은 노래도 한두 번인 법인데)'피' 하나를 두고 재탕 삼탕을 하다 결국 한계를 만난 케이스인데, 그런 좋은 선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콜세지는 유독 늙막에 들어 어울리지도 않는 피의 향연을 지겹게 반복적으로 화면에 펼치고 있다. 잔혹한 장면과 대조를 이루는 씬, 예를 들어 대니얼스가 죽은 아내와 만나는장면 같은 건 팀 버튼 작품의 갖가지 영감을 좀 뻔뻔스럽다 싶을 만큼 따온 게 내 눈에는 유독 거슬려 보였다. 왜 그는, 말년에 들어 별 독창성도 없이 얕은 수준의 모방으로 새로운 기법(자신에게)을 시험하려 드는 걸까? 그에게 시간은 거꾸로 가기라도 하는 걸까?

3) 디카프리오가 맡은 대니얼스 역은, 원작의 터프 가이 경찰관이 보이는 깊이가 느껴지지 않고, 젊은(혹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떨치려 분투하는, 그러나 분투에 그칠 뿐 결국 악몽에 굴복하는, 그가 오래 전부터 맡아 왔던 그렇고 그런 역들을 그대로 떠올리게 해 당혹스러웠다. 처음부터 미스캐스팅이라는 생각이었는데, 영화 내내 대니얼스가 보이지 않고, 늙은 디카프리오만 계속 보여 몰입을 방해했다.

4) 레이디스의 등장 장면은 어찌 보면 사이코 단골이었던 드 니로 연기의 묘한 모방으로, 스콜세지 입장에서 보면 자기 패러디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장되고 부적절한 연기에 분장은 역효과를 낳았고, 아주 작정이라도 한 듯 간투사의 반복(왜 한번만 해도 되는 '헤이'를 꼭 두 번이나 집어넣을까? 디카프리오의 대니얼스도, 닥터 내어링과의 대화 장면에서 공연히 신경질적 반응으로 추궁하듯 huh를 반복한다. 귀에 거슬릴 뿐더러 진부하기까지 하다)으로 시각적 혐오감에 청각 요소까지 더하는 중이다.

5) 관록이 빛나는 막스 폰 시도의 닥터 내어링 연기가 그나마 돋보였다. 다만 오히려 더 부각되어야 할 닥터 콜리의 몫이 영화에선 축소되거나, 내어링에 나뉘어진 느낌인데, 이는 벤 킹슬리의 연기적 한계에 기인하는 탓이 적지 않다. 


보는 이에게 부담을 주는 경우는 대체로, 시연자가 자신의 장점을 발휘하기보다, 평소에 부족했던 부분을 이번 기회에 보충하여, 열등 컴플렉스를 떨치려는 계기로 삼으려는 의욕이 너무 강할 때 발생한다. 안 해도 되는 걸, 지금 그 상태로도 충분한 걸 왜 굳이 무리하여 '둔갑'을 시도하는 걸까? 노장의 명성이 고이 지켜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나라고 다를 것이 없지만, 사람은 그 연륜에 어울리는 처신이 따로 있다는 것 역시 쉽게 무시할 상식은 아니다. 이런 영화는 솜씨 좋은 다른 후배에게 메가폰을 잡을 기회를 주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뿐이다. 더불어, 잔혹한 장면은 보는 사람뿐 아니라  찍는 이 본인을 위해서도 좀 삼가서 제작, 삽입하였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아직 소설만을 읽은 입장이라면, 그냥 소설에만 만족해도 충분하다는 점 알려 드리고 싶다. 세평이란 부질 없는 것이라, 언제 반대 방향으로 바람이 바뀔지 알 수 없다는 것도 함께.


s****o 2012.12.30. 신고 공감 0 댓글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