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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분명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알고 있는 줄 알았다. 분명 그렇게 믿었다. 그렇게 믿고 머리를 식힐겸, 표지 속의 아이도 오랜만에 만날 겸 책을 집어들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모르고 있었다.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톰소여, 빨강머리 앤과 더불어 우리의 친구였던 허클베리 핀. 그의 모험기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아이의 시선으로 교묘히 19세기 후반의 미국사회에 대한 모습에 대한 풍자와 노예제도에 대한 격렬한 비판을 담고 있는 이 소설은 결코 머리를 식히기 위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얼마 전의 미시시피 강 유역의 작은 마을. 허크 핀은 아버지의 학대 속에서 몰래 빠져나가 혼자 모험을 할 계획을 짜고 멋지게 성공한다. 그리고 그 여행길에서 만난 도망노예 검둥이 짐. 허크와 짐은 결국 함께 뗏목을 타고 모험을 떠나게 된다.
이 여행은 짐으로서는 자유를 찾아 떠난 목숨을 건 여행이었다. 언제든 백인들의 손에 잡히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 그러나 이 여행길의 허크와 짐은 그런 사람들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천하태평이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그것일 것이다. 아이의 눈으로 본 세상. 아직 진지하게 세상의 무서움을 겪어보지 않은. 그래서 그런지 허크는 상당히 쿨하다. 여과없이 세상을 받아들이고 받아들인 세상에 온 몸과 온 마음으로 반응한다. 허크의 눈을 통해서 재해석되는, 어른들의 눈으로는 당연했던 것들에 대한 비틀기가 더욱 와닿는다. 또한 소년이 주인공이기에 이 소설은 상당히 진지한 내용을 담아내고 있음에도 그 진지함을 교묘하게 소년들의 장난기 속에 감추어둘 수 있다.
그 장난기 속에 가장 진득하게 감추어져 있는 것은 바로 노예제도이다. 사람이 같은 사람을, 특히 프랑스어도 아닌 같은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당연히 사람취급하지 않는 사회. 그것에 대한 거리낌이라고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사회. 부리는 사람이나 부림당하는 사람조차 그것을 너무 당연시 하는 사회. 특히 이 소설에서는 나쁜 어른이란 존재하지 않다는 것이 노예제도에 대한 비판을 더욱 극으로 몰아넣는다. 이 소설의 어른들은 모두 착하다.(사기꾼들은 제외하자) 모두 길을 헤매는 낯선 허크 핀에게 음식을 가져다 주고 노예를 학대하는 어른 또한 볼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어른들은 노예제도 자체에 대해서는 어떤 의구심도 가지지 않는다. 노예들을 괴롭히지는 않을지언정, 메리 제인처럼 노예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것을 가슴아파할지언정 그들을 자유의 몸으로 풀어줄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아니 하지 못한다. 그런 생각은 가져본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쁘기 때문에 노예제도가 존속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한번도 노예제도의 당위성에 대해서 생각해 본적이 없을 뿐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어려운 결심을 허크 핀은 맞이하게 된다. 자신이 하는 일이 나쁘고, 지옥에 가야할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숨을 멈추고는 잠시 곰곰이 생각한 끝에 결심했어. '그래 좋아. 그렇다면 난 지옥으로 가야지.' 그리고 편지를 박박 찢어버렸어. p327
그리고 그런 노예제도와 비슷한 관계는 허크 핀과 그의 아버지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허크 핀의 아버지에게 허크 또한 노예와 다를 바가 없다. 허크는 6000불의 거금을 가지고 있으며 어쨌거나 허크 핀은 아버지의 소유다. 마크 트웨인은 불합리하고 부조리하며 폭력만을 일삼는 아버지에게서 탈출하는 허크 핀의 모습을 모험의 시작으로 삼으면서 어쩌면 이 노예제도에 대한 그의 생각을 미리 말하고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은 그 외에도 다양한 19세기 중엽과 후반 미국사회의 재미난 모습들을 보여준다. 법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가문과 가문간의 결투와 살인. 그리고 그것의 당연함. 아직까지 존재하고 있던 미신과 마녀들에 대한 이야기. 미시시피 강을 따라 다니는 증기선들. 마을을 떠돌며 설교, 공연 등의 사기를 치는 '왕'과 '공작' 같은 사기꾼들까지. 허크의 눈에는 이 모든 것이 신기하다. 그 당시 미국사회의 모습들을 허크의 눈으로 담아내며 재기발랄하게 토해낸다. 이 소설만으로도 당시 미국 남부 지방의 삶이 어떠했는지가 한눈에 보이는 듯하다. 이 점 또한 이 소설이 소년이 떠나는 모험담으로 가질 수 있는 좋은 점이다.
그런데 반대로. 소년이 주인공이었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장점들이 결말로 치달을수록 단점으로 다가온다. 소년 소설의 명명백백함이라고 해야할까? 이 소설의 결말로 치달을수록 짐의 안위는 분명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해야하거늘 그런 긴박함은 찾아볼수가 없다. 오히려 짐의 안위는 톰과 허크의 장난기로 더욱 위기를 맞는다.
'왕'과 '공작'은 분명 극악무도한 사기꾼이지만 거짓말도 제대로 못하는 허크에게 잘도 속아넘어갈만큼 순진하다. 검둥이 짐을 가둔 샐리이모네 식구들은 짐을 가두기만 했을 뿐 손님으로 접대하는 것인지 모를만큼 그 대접이 후하다. 악당이 악당이 아닌 모습은 소설 초반 톰과 허크가 친구들과 모여 갱을 만들자고 하고 소꿉놀이 할 때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사실상 이 소설은 허크 핀이 검둥이 짐을 구하고자 마음먹은 순간 절정에 도달하여 허크 핀이 찾아간 집이 톰소여의 이모네 집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난다. (허크 핀의 둘도 없는 친구 톰소여의 친척들인데 악당일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또한 결국 짐을 풀어주게 되는 것은 허크 핀에 의해서가 아니다. 짐은 이미 그의 주인이었던 왓슨 아줌마에 의해서 해방을 맞는다. 허크와 짐의 눈물겨운 투쟁은 부질없는 것이었으며 짐의 자유는 그의 주인이 하사한 것이었다.
물론 그 당시 너무도 당연한 것에 대한 위험한 도발에 대한 아주 좋은 마무리이자 노예제도와 미국의 모습을 풍자하기 위해서는 소년이 주인공인 것이 더 없이 좋은 선택이 되었지만 그것이 결말에 이르러서는 이 소설의 발목을 잡는듯한 느낌으로 다가온다는 점이 너무나도 좋게 읽은 이 소설의 결말로서는 살짝 아쉽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 오랜만에 가벼운 책 좀 보면서 머리좀 식히자는 나의 어줍잖은 생각은 이미 허크 핀이 짐을 만나면서부터 깨져나가기 시작했다. 대체 왜 헤밍웨이는 이런 소년의 모험담 이야기를 가지고 미국현대문학을 탄생시켰다고 했을까. 이제는 그 이유를 너무도 잘 알 것 같다. 너무나 익숙해서 몰라도 아는 것만 같은, 결말까지도 명랑한 허크 핀의 이야기 속에서 그 명랑함을 간직한 채 하고 싶은 얘기를 은근슬쩍, 그러나 우직하게 꺼내는.
아직도 허크베리 핀의 모험은 이미 어릴 때 봤다고, 다 알고 있다며 굳이 나이 먹고 그런 아이들 얘기를 봐야하냐는 사람이 있다면. 넌 아직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모른다고 얼른 다시 그들의 여행을 따라가보라고 등을 떠밀, 아니 나와 같이 가보자고 함께 오르게 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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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나마 어릴 적에 내 꿈은 ‘해적 선장’이 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장난감 블록 ‘레고’와 톰 소여, 허클베리 핀 등의 소설로부터 받은 영향 때문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당수의 동화들이 어린이를 위해 지어진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이 책 역시 당시 미국의 시대상을 그려내고 있다. 이 책 앞머리에는 경고문 한 장이 실려 있는데 요약한 내용은 이렇다. ‘이 이야기에서 어떤 동기, 교훈, 줄거리를 찾으려는 자들은 기소를 당하며, 추방을 당하고, 총살당할지어다.’ 피식 웃지 않을 수가 없다. 그만큼 저자가 이 책을 통해서 당시 민감했던 사회문제들을 다루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때문에 20대와 들어와서 이 책을 읽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어릴 적 추억을 회상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은 책 ‘톰 소여의 모험’에서 톰 소여와의 모험이 끝난 뒤의 허클베리 핀을 주인공으로 해서 내용이 전개된다. 강도들이 숨겨둔 금화를 찾아서 톰과 함께 부자가 된 허크는 폭력적인 아버지를 피해서 더글라스 과부댁 집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돈을 노리고 찾아온 아버지에게 끌려가게 되고, 산 속 오두막에 갇히게 된다. 답답하던 과부댁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행복하던 허크는 자신이 죽은 것처럼 가장해서 탈출을 하게 되는데 과부댁에 있던 탈출한 흑인 노예 ‘짐’을 만나게 되고, 짐의 탈출을 돕는 것으로 둘은 같이 모험을 한다. 주인공 허크는 당시의 미국인들, 그 중에서도 일반 민중들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겠다. 모험을 통해서 만나는 사람마다 이름을 바꿔 버리는 것을 보면서 그렇게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과부댁에서 지내는 허크는 예절을 비롯해서 갖가지 교육을 받게 되는데 너무도 답답해서 참지 못한다. 한편으로는 너무나 폭력적이고 무자비한 허크의 아버지 역시 당시 민중의 한 모습이고, 권위주의의 상징이라 할 수 있겠다. 상반된 두 세계 속에서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고, 모험을 택한 허크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미국인들의 개척정신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물에 빠져 길을 잃게 된 허크는 그레인저포드 가문 사람들에 의해 구출된다. 그레인저포드 가문 사람들은 오랜 세월을 걸쳐 셰퍼드가 사람들과 원수로 지내왔다. 이들은 서로를 죽이기 위해 애를 썼고, 얼마 전에도 몇 사람이 죽었다. 그런데 서로를 사랑한 두 가문의 젊은 남녀가 어느 날 갑자기 도망을 치게 됨으로써 두 가문은 살벌한 총격전을 벌이게 되고, 허크는 자신과 친구처럼 지내던 소년이 죽는 것을 봐야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이 에피소드는 두 가문의 사연이 자세히 소개되지 않아서 어떤 이유인지 알 수는 없지만 반목과 갈등이 넘쳐나던 당시 미국의 민감한 문제들을 그려낸 것이 아닌가 하고 짐작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여행을 하던 허크는 마을에서 사기를 치다가 발각되어 쫓기고 있던 한 늙은이와 젊은이를 구출하게 된다. 뻔뻔하게도 이 둘은 왕과 공작 행세를 해가며 허크와 짐을 부려먹으면서 같이 여행을 하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허크가 처음에는 이들이 진짜인 줄로 알고 있다가 나중에서야 가짜인 줄 알게 되는데 사기를 치는 것은 진짜 왕과 귀족들이 더 심할 것이라며 그냥 모른 체하고 같이 지낸다. 알다시피 미국은 왕정통치가 아닌데 이런 풍자를 한 것은 미국을 식민화 하려던 영국의 계급사회를 풍자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처럼 민주주의를 못 세우고 왕정에서 못 벗어난 국가들에게 대한 우월감인지는 모르겠다. 여행을 하면서 다니는 마을마다 왕과 공작은 사기를 치는 데 있어서 비상한 머리를 굴려보지만 매번 얼마 안가서 쫓겨나기 일쑤이다. 일반 민중들을 등쳐먹고, 괴롭히는 권력자들이 민중에 의해 쫓겨나는 것처럼 말이다. 이들이 사기를 치는 모습을 보면 권력자들이 어떤 수단을 통해서 민중들을 선동하고 현혹하는 지 볼 수가 있게 된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검둥이 짐이 펠프스씨의 농장에 잡혀가게 됨으로써 시작된다. 이 책을 통틀어 가장 긴 에피소드 이다. 이 에피소드를 통해서 당시의 일반 사람들이 갖고 있던 흑인 노예에 대한 생각을 세밀하게 살펴볼 수가 있다. 짐을 구출하기 위해 펠프스 농장을 찾아간 허크는 깜짝 놀라고 만다. 이곳은 자신의 친구 톰 소여의 친척집이었고, 곧 톰 소여가 오기로 되어있던 것이었다. 허크는 톰 소여가 도착하기 전에 미리 만나 사정을 말하게 되고, 둘은 짐을 구출하기로 모의하게 된다. 짐을 도망치게 하는 것은 사실상 간단하다. 묶여있는 것을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톰 소여는 책에서 본대로 해야 된다거나, 시시하게 하는 것은 안 된다며 일을 어렵게 만든다. 결국 톰이 총상을 맞는 한바탕 큰 소동을 치룬 후에야 짐은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다. 도망친 것이 아니라 착한 검둥이로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은 이미 짐은 자유의 몸이었다. 짐의 주인이었던 과부댁이 짐이 도망친 후에 짐을 자유의 몸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모든 사건이 마무리되고 허크가 다시 여행을 하는 것을 기약하는 것으로 소설을 끝이 난다. 허크의 모험이야기는 너무나 재미있는 것이지만 이 이야기의 숨겨진 의미들을 찾아내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것이었다. 단편적인 에피소드들로 구성이 되어있지만 어느 것 하나 빼놓지 않고 상징적인 것들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냥 그러한 상징들이 어디어디에 배치되어 있는 지만 확인한 채로 의미들을 짐작할 뿐이었다. 자세히 알려면 미국의 역사와 민중사를 살펴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의미에서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말한 것처럼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걸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책의 의미를 찾고자 했다가 앞서 언급한 경고문의 말처럼 될까봐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과거를 살피고자 하는 후대의 사람들에게는 공소시효가 적용되지 않을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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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만화로 봤던 허클베리 핀의 모험과 축약본으로 읽었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천방지축 사내 아이의 모험담 정도로만 기억되었다. 아이에게 읽힐겸 구매해서 내가 먼저 읽었는데, 예전에 내가 알던 그 내용은 정말이지 빈 껍데기였구나..싶을 정도로 느끼는 바가 달랐다. 아이의 눈을 통해 발견하는 노예제도와 당시 미국 사회의 모순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무거운 주제들을 꺼내면서도 아이들의 장난과 모험으로 간접적으로 풍자하고 비틀어서 더욱 안타까움을 느끼게 했다. 작가 마크 트웨인의 저력이 아닌가 싶다. 번역도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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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언젠가 읽었다고 생각하고 쉽게 시작했던 책이었지만 쉽게 생각한 만큼 큰코를 다쳤다. 언젠가 읽었던 기억은 날조된 것이었고 쉽지도 않았으며 끝을 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작년쯤엔가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었을 때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청소년 문학, 청소년 필독서 등으로 손꼽히는 작품이기에 그만큼 익숙하고 친밀한 인상이 드는 책들이지만 막상 펼치고 보면 거칠기 그지없는 묘사에 "이게 내가 알던 그 책이 맞나" 의구심과 당혹감이 절로 든다는 점에서 말이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더더욱이 '동화'로 알고 있었는데 단순한 동화가 아닌 거의 '잔혹동화'에 가깝다는 사실에 충격적일 따름이었다. 모험 또한 단순한 청소년소설의 모험이 아니라, 미미국적 관습과 노예제에서부터 도망치는, 사실상 목숨을 좌우하는 여행이라는 점에 또한번 충격을 받았다.
난무하는 비속어와 욕설, 비판적이고 비관적인 어조들 모두가 다시 생각해도 쉽지 않다. 풍자에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건 꼬집힌 곳이 유독 아파서일 것이다. 몇 년 후 다시 읽으면 생각이 바뀌었을지, 그땐 이 책을 조금쯤 더 가볍게 볼 수 있을지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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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독서 모임의 책은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었다. <걸리버 여행기>처럼 모두 아동 도서로 축약한 내용을 읽었던 터라 이번 기회에 전체 내용을 읽기로 했다.
허클베리 핀은 더글러스 과부댁에 양자로 생활하며 교육을 받지만 제도나 관습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는 자유로운 아이다. 어느날 허크의 몫으로 큰 돈이 생겼다는 소문을 들은 아버지가 허크를 찾아오고, 아들을 오두막에 가두고 돈을 내놓으라며 폭력을 행사한다. 허크는 오두막을 탈출할 계획을 세우는데 마치 자신이 죽은 것처럼 위장하고 우연히 발견한 카누를 타고 미시시피 강을 따라 내려가 잭슨 섬에 숨어 살게 된다. 이 섬에서 더글러스 부인의 여동생인 왓슨 부인의 흑인 노예 짐을 만난다. 짐은 왓슨 부인이 자신을 팔아넘길거라는 말을 듣고 도망친 상황이었다. 허크와 짐은 뗏목을 타고 자유를 찾아 떠나기로 한다. 짐과 도망치는 과정에서 허크는 노예의 탈출을 도와주는 일이 큰 죄를 저지르는 것처럼 느끼지만 짐과 우정을 생각하며 그가 자유의 몸이 되도록 도와준다. 결국 이들은 각자의 자유를 찾으며 소설은 끝난다.
읽고 난 느낌은 비속어와 거친 욕설이 등장하고 모험의 수위도 거칠어서 아이들이 동화로 읽기에 적절한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그 당시 미국의 인종주의, 인간성을 어린 소년의 눈으로 서술한 것이 오히려 신랄한 비판으로 다가왔다. 그냥 소년이 눈에 담긴 세상일 뿐인데 말이다. 그리 유쾌한 세상은 아니지만 뗏목을 타고 미시시피 강을 따라 하는 모험은 뗏목을 타고 하는 모험은 재미있었다. 어른들이 만든 세상과 제도에 부딪히고 맞서는 허클베리의 모험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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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트웨인의 본명은 새뮤얼 L. 클레멘스다. 1835년 11월 30일 미주리 주 플로리다 마을에서 태어났다. 마크 트웨인이 쓴 소년 모험 이야기의 대부분은 추측건대 열두 살 때 아버지를 잃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해야 했던 그의 현실 혹은 판타지가 반영된 소설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인쇄공인 형을 돕고 3년간 여행비를 모으기 위해 미국을 여행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배운다. 그 후 미시시피강 증기선의 도선사(배 정박 유도 전문가)를 만나 수로안내업을 배우기 시작했고,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꽤 돈도 벌고 명성도 쌓아갔다.
그의 필명 마크 트웨인(Mark Twain)은 도선사 시절에 배운 깊이 두 길, 안전수역을 의미한다. 그의 작품 중에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은 《톰 소여의 모험》일 것이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톰 소여의 모험》의 스핀오프 격이다. 톰 소여는 종종 허클베리를 통해 소환되고, 흑인 노예 짐도 등장한다. 《톰 소여의 모험》은 장난기 가득한 톰이 동네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건 사고에 가담하고 해결하는 모험을 다루고 있다. 말썽만 부리고 다니는 것은 아니고 나름의 정의를 지키는 악동이라 할 수 있다. 위선으로 가득한 기득권과 체계에 반하는 일종의 근거 있는 방향이라 할 수 있다. 톰 소여는 자기 보다 한 수 위 허클베리 핀을 동경하고 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주인공 허크는 어머니는 없고 술주정뱅이 아버지만 있다. 허구한 날 외박에 집에 있는 시간이 없다. 잦은 폭행과 고된 일을 시키는 통에 거의 고아나 다름없다고 할만한 소년이다. 허크는 더글러스 과부댁의 양자이며 짐은 그 여동생 왓슨 아줌마의 노예다. 허크는 그 가정에서 교육을 받으며 보살핌을 받는데 답답함을 느낀다. 하지 말라는 것, 지켜야 하는 것은 왜 이리 많은 건지. 오랜만에 돌아온 아버지는 허크를 오두막에 가두고 탈출하던 과정에서 샐리 아줌마의 노예 짐을 만난다. 짐도 탈출했던 것. 둘은 자유 주, 남부를 향해 떠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지역의 인간 군상을 목격한다.
허크는 여행을 좋아한다기 보다 구속되는 삶이 싫어 탈출을 시도한다. 계획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되는대로 하고 싶은 대로 이동할 뿐이다. 일종의 방랑벽이라고도 할 수 있다. 유목 활동한 인류가 정착하며 적응한 듯 보이지만 유전자에 각인된 방랑, 진정한 자유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대리만족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당시 흑인 노예 제도에 반기를 들고 짐을 구출하고 도와주는 허크의 인간성 반할 수 있다.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마음이 시키는 일을 머리로 생각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는 아이다.
주변에서 교양인으로 만들려는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부하고, 자신의 직관에 따라 움직이며 정의를 잃지 않고 존엄성을 실천하는 인간이다. 결혼해 가정을 꾸린 짐과 나이, 인종을 넘어 진정한 친구가 되는 감동이 큰 소설이다. 그를 구하기 위해 위험을 자초하는 것은 당시로서 지옥에 떨어질 일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남북전쟁 직전의 상황을 이해해야만 한다.
마크 트웨인의 소설은 서부에서 자랐으나 동부 여성과 결혼해 동부 생활에 염증을 느낀 상황에 반영된 듯 보인다. 그곳의 사람들을 보며 권위와 계급 사회를 비판하거나 유머와 풍자를 통해 자기만의 방법으로 해소했다. 특히 허크가 누군가에게 계속해서 상황을 보고하고 이야기하는 형식, 즉 구어체를 선보인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허크와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반영한 비속어, 토속어를 섞어 실감 난 이입을 돕는다. 아마 소설가로서의 능력뿐만 아닌 강연자로서의 자질도 반영된 말하는 듯한 문체를 천착한 그의 재능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검색하다보니 동명의 영화가 1993년 제작된 적이 있었다. 보지는 못했지만 기회가 된다면 관람해보고 싶다. 반지의 제왕의 프로도로 유명한 '일라이저 우드'가 허크를 '코트니 B 반스'가 짐을 연기했다. 감독은 <미이라> 시리즈, <지.아이.조-전쟁의 서막>으로 우리나라에 알려진 '스티븐 소머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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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클베리 핀의 모험이나 톰소여의 모험은 모두 어릴적 유치원 시절에나 보던 책들이다. 그때 보았던 책들이라 자라고 나서는 그 내용도 어렴풋 했고, 성인이 되어서 보는 책이 아니라 그저 동화책이라고 생각했다. 잘못생각한 편견이었던 것이다. 이 책을 이제 와 다시 보게 된 이유는 그저 세계문학에 대한 갑작스러운 욕심이 났기 때문이기도 하고, 오에 겐자부로의 <읽는 인간>이나 김훈의 '광야를 달리는 말'이라는 글을 읽었을 때 허클베리 핀을 두 작가가 또한 표창원 교수 역시 이 책을 추천하는 글을 보았다. 감명깊게 읽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들이 나와서이다. 이토록 한국과 일본의 큰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책이라니 어찌 다시 보지 않을 수 있으랴. 이 책을 다시 만나는 기쁨이 크다. 동화책인줄로만 알았던 책을 성인이 돼 다시 만나는 기쁨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