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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가벼워진다. 날아갈 듯하다. 풍경과 내가 하나된 듯하다. 온통 꽃잎 천지다. 어디선가 거름냄새가 나지만 그다지 역하지 않다. 친숙한 시골냄새로 다가온다. 지금은 단지 기억속에 남아있는 추억의 단편일 뿐이지만 대도시 생활에 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항상 이런 오래된 기억속으로 들어가고싶다. 이 책 제목만 보고는 필자는 ‘어딘가 부족함이 있는 사람’, ‘사회 부적응자’, ‘비겁한 사람’, ‘현실 도피자’일 것으로 생각하였다. 하지만 100페이지쯤 읽다 보니 이런 생각이 자연스레 사라져버렸다. 오히려 ‘용기있는 사람’, ‘멋진 사람’, ‘닮고싶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새 저자가 내가 되고 내가 저자가 된다. 책을 다 읽을 때쯤이면 시골의 삶이 멋진 그림으로 다가온다. “49세 이상의 수명은 덤”이라는 생각으로 시골로 내려갈 결심을 하고 결국 홍천강 중류를 택했다. 그리고 “세상이 혼란스럽고 삶이 번거로울 때 이상향을 동경한다”는 말을 몸소 실천하였다. 대학교수라는 현직에 있으면서도 쉬는 날, 방학 등 연평균 120일을 시골에서 보냈다고 한다. 낮에는 농사짓고 밤에는 글읽는 이른바 晝耕夜讀 생활을 해온 멋진 삶이다. 필자는, 농토를 가꾸는 사람은 남에게 보이기 위해 땀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마음속에 들어앉아 있는 地母에 대한 이해와 조물주에 대한 감사의 마음 때문에 땀 흘리며 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수확량에는 관심이 적고 오로지 노동을 통해 심신을 단련하는 데만 목적을 두었다고 한다. 필자에게 시골생활은 만사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귀중한 체험의 기회이다. “노동을 하는 동안에는 미움과 욕망의 고뇌를 잊을 수 있다”는 말이 진실이다. “세속의 뉴스보도를 보다가 우울해진 마음을 진정시키려며 적막한 시골로 가서 땀을 흘리는 것이 최선이다.” “가뭄으로 타들어가는 채소밭을 보면서 목마르다고 보채는 자식에게 물을 안먹일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때부터 이미 저자는 시골사람이 됐다. 그리고 퇴비냄새가 구수하다고 느끼게 되면서부터는 이미 적응이 끝난듯싶다. 땅콩 두 포대, 고구마 한 자루, 마른 고추 한 포, 물고추 네 상자, 토란 세 바구니, 토란 줄거리 세 묶음, 도라지 한 바구니, 늙은 호박 두 개, 솎음무 두 단. 그 무엇보다도 값진 수확이다. 허름한 집을 구입해 고쳐가면서 300여평의 논에 벼농사를 짓고 300여 평의 밭에 10여 가지 작물을 가꾸는 것이 필자의 시골생활 전부이다. 하지만 대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바로 자연과 맞닿아야 함을 의미한다. 한겨울의 폭설, 해가 일찍 지는 홍천강변 산골의 지형적 특징, 한여름 폭염과 되풀이되는 가뭄과 건조주의보, 광풍, 잊혀질 만하면 찾아오는 태풍, 유기농만 고집하여 생기는 병충해 그리고 밭을 망쳐놓는 야생동물, 심지어는 무단침입까지 모두 다 직접 극복해야 할 일들이다. 특히 가까운 사람들이 보여준 몰이해와 질시는 그 무엇보다 힘들었던 모양이다. “시골로 달려와 땅과 작물을 들여다보며 체력을 소모하고 마음을 쏟고 있으니 내 본업인 가르치기와 공부하기에 소홀하지 않을까 두렵다.” 그 마음을 알 것도 같다. 그리고 아무리 과소화된 농촌이라지만 동네사람의 인정을 받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작업복을 입고 마을에서는 밀짚모자를 쓰며 고무장화를 신어 외관상으로 동네사람이 되려고 했어도 실제로 토지를 구입하고도 그곳의 토지소유권을 인정받은 것이 무려 6년이 걸렸다고 한다. 어디에 살지 정하는 일에서부터 축대 쌓기․지붕 고치기․나무심기 등 잡일이 많은 집 가꾸기, 퇴비 만들기를 비롯하여 참깨․들깨․호박․고구마․고추․더덕․땅콩·오이․마늘․배추․무․토란․파․가지․목화 등 처음 해보는 밭농사, 그리고 논농사로 단계를 옮아가며 20여년 동안 정착해가는 과정이 생생하다. 허름한 시골집 수리에만 거의 다섯달이 걸렸다고 한다. 떠돌이 엉터리 목수에게 속은 얘기며, 집 아래에 관정을 못파게 막은 얘기도 실감난다. 몇 안되는 동네사람들과의 관계 등등 필자의 경험을 직접 듣는 듯한 단순 명쾌한 설명이 오히려 깔끔하다. 그날그날의 경험을 일기로 정리하여 귀농을 꿈꾸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위안이 될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큰 도움이 될 듯싶다. 귀농을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읽어볼 것을 권하고싶어진다. 여름철 매주 쉬는 날이면 뭔가에 홀린 듯 가곤 하던 낚시도 접고 지난 며칠 동안 꼼짝없이 들어앉아 단숨에 이 책을 읽어내려갔다.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내가 귀농을 결심하고 실제로 겪어왔던 것처럼, 20여년 세월이 스쳐지나간다. 하지만 아무나 돌아갈 수 없다. “라디오에서는 주말 날씨가 맑아 나들이하기에 좋겠다는 보도가 나오는데 농촌에서는 하늘만 쳐다보며 애태우고 있다”는 필자같은 마음이 들어야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핑계같지만 필자처럼 1년에 120일을 투자할 만큼 도시생활이 헐렁하지 않다. 바쁠 때면 휴일조차 출근해야 하는 샐러리맨이니. 그러니 결국 필자의 삶은 내겐 소설같은 생활일 뿐이다. 부럽다. 그런 여유(?)가 있는 것이 아주 부럽다. 필자는 논문지도를 받는 대학원생들이 노력봉사(?)도 해줄 수 있다. 지도교수님이 부탁하는데 무거운 돌, 높은 담장이라도 쌓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내겐 마음의 여유도 없을뿐더러 초등학교 다니는 딸 한명뿐이다. 물론 제자도 없다. 더군다나 한총련 집회로 연휴를 얻을 기회도 없다. 도시생활이 쉽지 않다.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들어온지 26년째다. 직장생활도 16년째 접어들었으니 길면 앞으로 10년. 제2의 인생을 준비하라는 권유가 자주 들어온다. 그럴 때면 마음 한켠을 점령하는 것이 시골생활이다. 그래서 나도 필자 흉내를 내보기도 한다. 굳이 농사를 짓자는 것이 아니다. 아내의 동의를 구한 뒤부터 바로 이곳저곳 다녀보고 있다. 천안도 가보고 용인도 가보고 김포도 가보았다. 제법 구체적인 계획까지 갖고 있지만 아직은 용기가 부족한 모양이다. 어쨌거나 시골로 내려갔을 때의 상황을 상상해본다. 칠흙같은 어둠이 무섭지 않을까? 그렇다면 환하게 불을 켜놓자. 외롭지 않을까? 바깥세상과의 연결선을 유지하자. 밤에는 뭘하지?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뭐지?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시작이 반이다.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아파트부터 내려놓자. 내일은 부동산에 들러야겠다. 혹시 내가 10년 뒤 정착할 수 있을 곳인지 낚시터 주변부터 둘러봐야겠다. 그리고 자연을 온 몸으로 받아낼 수 있는 필자의 지혜를 배워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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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밭갈고 밤에는 책을 읽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 그게 어떤 삶인지를 알 수 있게 해 준 책이다. 처음 책을 펼쳤을 때보다 책장을 넘겨갈수록 더 마음이 끌렸다. 이렇게 살아가시는 분도 있구나 싶어서. 나 홀로 알량하게 자만했던 내 처지를 살짝 나무라시는 것 같기도 했고.(그게 기분 나쁘다는 느낌이 절대 아니었음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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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남의 일기를 읽은 것은 어릴 적 [안네의 일기]와 우리 아들 초등학교 시절 일기말고 내가 쓴 것이나 읽었을까 거의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다. 일기체로 되어있는 글들을 별로 좋아하지않는다. 이 책도 처음엔 마찬가지였다. 정리해서 그냥 글로 써주면 좋을 걸 왜 이린 중간중간 끊어지기도 하면서 해마다 반복되는 일상을 20번이나 써야할까하면서 투덜댔다. 비슷한 일상만큼이나 생각도 반복되어서 같은 얘기가 몇번씩 나오기도 하는지라 궁시렁궁시렁거리면서도 결국 20년 세월을 다 넘겨보았다. 왜냐하면 궁금해서다. 이번해에는 이렇게 했는데 그럼 다음해에는 어떻게 변했을까하는 궁금증이 생겨서일것이다. 그렇게 아주 조금씩 변한 것 같더니 결국 20년이 지나고나니 처음 시작할 때와는 꽤 많은 부분에 변화가 생겨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서글픈 것이 별로 좋아지지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처음의 황량함이 그리울 정도로 개발의 붐을 타고 망가지기 시작하는 자연의 모습이 후반부에 많이 나와서 속상했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웃으로 나타나는 사람들도 왠지 밉상인 사람들만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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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를 쓰는 사람을 보면 참 부럽다는 생각이
삼풍백화점 붕괴라든지 북한군 장교의 미그기
도둑들의 나쁜 습성과 남의 산과 논의 작물을
생각보다 낭만적이지 않은 농촌생활을 볼수 있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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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살던 사람이 도회지에 오면 회색 시멘트와 붐비는 차,시끌벅적한 사람들의 오가는 소리에 정도 없고 갑갑하면서 새장에 든 새마냥 삶의 활력이 나지 않을 것이다.반면 갑갑하고 삭막한 도회지를 벗어나 한적하고 공기 맑은 산골마을에 적을 두고 산다면 처음엔 여러가지로 더 발달된 문명의 혜택과 시시각각 접할 수 없는 정보원의 부족으로 시대에 뒤지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과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아 선뜩 귀농을 결정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홍천강 중류 협곡에 터를 잡고 농부로 변신한 역사지리학자의 두메 산골 생활은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은 연장 다루기,논과 밭,채마를 기르는 일,시골 사람들과의 교류가 만만치 않았을터이고 마음 고생도 만만치 않았으리라.부창부수라고 했던가,최교수님은 부인과 죽이 척척 맞았는지 한쪽에선 고추,땅콩 모종을 하면서 고랑을 일구고 비닐을 덮씌우며 씨를 뿌리고 묻어 주면서 영농기법을 하나 하나 익혀 나간다. 이농향도라도 했던가,1990년대초 역시 시골에는 젊은이들은 꿈과 이상,돈벌이를 위해 시골보다는 나은 도회지로 떠나고 늑수구레하고 거무잡잡한 촌부들만 먼 하늘을 바라보는 한적한 시골에 그는 자연과 호흡을 나누고 진정한 귀농의 모습을 20년 가까이 기록으로 남겨서 독자들에게 다가 온다. 세상이 혼란스럽고 삶이 번거로울 때 사람들은 흔히 이상향을 동경하는데 사람마다 이상향에 대한 기준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이중환의 택리지에서 언급한 선조들의 이상향은 지리.생리(生利).인심.산수를 꼽고 있다.아무리 돈이 많고 풍요로워도 마음과 몸에 병이 생긴다면 그 얼마나 불행한 일이 아닐까? 대학교수직에 재직하면서도 서울과 강원도 홍천을 오가는 그의 이중적인 생활이 고달플거 같지만 그가 전해 주는 농부로서의 변신은 조금씩 변신해 나가고 자연이 주는 혜택에 그저 감사함과 농부들의 순박하고 꾸밈이 없는 자급자족의 생활에 적응해 가면서 사시사철 흘러가는 시간과 자신이 풀을 매고 씨앗을 뿌리며,산채를 뜯고 열매를 거두며 직접 손수 섭생하는 모습이 그리 불편하게만 전해져 오지 않는다. 지난 20년간의 농촌의 삶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그만의 귀농일기가 생생하고도 꾸밈이 없는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하고,일기 한구석마다 그날 그날 일어났던 중요 이슈도 읽을 수가 있어 잊혀진 사건과 소식들을 되새겨 보는 시간이 되었던 것도 잊을 수가 없다. 다 쓰러져 가는 기와집 지붕 위엔 쇠비름등 잡초가 우거지고 둔탁한 것으로 나무 기둥이라고 칠라치면 우두둑 무너질거 같은 고가를 얻어 등기를 내고,새 집처럼 보수하고 밭 뙤기를 구입하여 부인,아들 2명과 함께 일구어 가는 모습에 시골의 참맛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고,그가 20년간 산골 오지에서 투박한 시골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실천적인 자세와 학자로서의 학문에 정진하는 자세가 몸에 배였기 때문일 것이다. 손에 흙 한 번 제대로 묻히지도 않았을 저자는 질척질척한 땅을 거닐며 산골 생활을 손수 체험으로 옮긴 그의 남다른 귀농생활과 성실한 모습에 색다른 감동을 얻어갈 수가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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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초에 책을 사서 지금까지 읽었느니 근 한 달이 걸렸다. 이런 책을 한 달 씩 읽을 게 있나 싶지만 잘 읽힌다고 단숨에 읽을 책은 아닌 것 같다. 한 20년에 걸쳐 읽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의 경우 아버지께서 평생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계시고 더러는 주말에 가서 뵙는 처지라 농사의 물정이 그렇게 낯설 것은 없어, 이 책에서 생짜 농부의 농사분투기라는 측면을 분명히 보고 있지만, 간혹 농사외적인 말씀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보는 시선은 분명히 학자의 것이라고 느낀다. 자연과 농토와 현지의 농사꾼들에 대한 태도는 겸손과 겸양을 갖춘 선비의 것이다. 자식과 국토와 나라와 인민에 대한 태도는 마땅한 책임을 안고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의 것이다. 수십 년 전인 것 같은데, 태풍 글래디스인가 셀마인가가 경북 북부 지방을 강타했을 때, 아버지의 농토가 물에 잠기고 일부는 유실되었다. 강둑은 하천 관리하는 정부에서 쌓고 정비해주었지만 자갈밭으로 변한 땅을 다시 농토로 만드는 것은 모두 한 농부와 그 가족의 몫이었다. 아마 그때 아버지의 생각은 “천년 후에는 강이 다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에콜로지스트의 생각은 아니었다. 다시 농토를 만들고 그 땅에다 작물을 심고 길러 자식이든 자신이든 먹여 살려야 하고, 그러니 그 강의 유역에 또 논밭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최교수의, 농부의 관점과는 다르지만 정당한 통찰은 그가 “그냥 농부”가 아니라 “주말 농부, 여전히 촌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농부”라는 사실에서 유래하지 않을까? 따라서 나는 이 책이 농사짓는 사람, “한평생 농부”의 글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애초 최교수의 글 쓴 의도나 책으로 나온 이유도 그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농사꾼의 경제생활이 온전히 담겨있기는 어렵다. 이 책은 그만큼만 생각하며 읽어야 한다. 나는 나의 아버지만한 농사꾼을 본 적이 별로 없다. 평생 산밭을 쪼아 먹고 찧어 먹었다. 쓰노 유킨도의 “소농론”에서 읽었듯이 역사적으로 그렇게 오랜 동안 쪼고 찧어 온 농토에 구현되어있는 인간 노동의 양을 생각하면 눈물겨운 것이다. 아버지의 농부병에 각인된 평생 농부의 지식이나 자연에 관한 사색도 예순 다섯살 넘은 사람들만 사는 마을에서 그들이 죽으면 다 사라진다. 그 농부들이 가꾼 땅들도 자연으로 돌아간다. 최교수의 주경야독일기 같은 글을 “한평생 농부”는 거의 남기지 못했다. 주경(晝耕)만으로도 보통 허리가 휘기 때문이다. 농부병이 심한 아버지는 앓는다. 앓으니 지난 세월 고생한 것이 다 서럽다. 그 서러운 소리를 다 들으려니 힘이 부쳐 자식인 나는 요즘 고향행이 뜸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늘 잊지 못하고 붙들고 있던 생각이 아버지를 기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날이 올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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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쉽게 물러설 수 없다는 팔월의 고집이 남은 어느 날.
아마도 중국의 열하기행을 다녀온 직후였을 텐데, 최영준 선생님을 뵙고 싶다는 일념으로, 한길사를 따라 홍천으로 향했다. 최영준 선생님의 저서, 《홍천강변에서 주경야독 20년》때문이었다. 그건, 알량한 머리가 아닌 정직한 몸을 밀어서 쓴 글이었다. 책 곳곳에 묻어나는 땀냄새와 삶의 향기가 그것을 대변하고 있었다. 사랑방이 먼저 사람들을 반겼고, 문틈으로 녹색 셔츠를 입으신 선생님도 보이고, 정겹고 소박한 정원의 모습하며, 일기를 쓰고, 글을 쓰는 사랑방을 보는 순간, 내 눈에 가장 먼저 띈 것은 핸드밀이었다. 아, 나도 이런 집의 핸드밀이 되고 싶다... 본가의 모습 일부다. 아궁이와 장작, 저들은 언제나 인간을 위해 몸을 사른다. 아궁이와 장작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집 바깥에는 더 없이 좋은 '시크릿 가든'이 있다. 물론 비밀 따윈 없다. 자연은 비밀을 간직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모를 뿐이고, 무심할 뿐이다. 최영준 선생님께서 시크릿 가든의 이모저모를 말씀해 주신다. 저렇게 성모상을 놔뒀더니, 다른 사람들이 저곳을 어찌하지 못하더라는 말씀. 책에도 그 얘기가 나온다. 막걸리와 맥주를 품은 천연냉장고도 있고, 연못은 푸르구나. 아, 좋다. 보랏빛은 언제나 내 마음을 뺏곤 한다. 잠시 마음을 뒀다. 넌, 여기서도 날 반겨주는구나... 옥수수를 삶기 위해 선생님께서 직접! 그 모습을 담으면서, 생각했다. 나도 저런 촌부가 되고 싶다. 그 어떤 따도남(따뜻한 도시 남자)도 범접할 수 없는 기품과 품격이 있지 않나? 사모님의 작업실이 있고, 장독대가 줄을 서 있다. 아, 예술이 함께 하는 공간이로다. 8월의 정원에서 펼쳐지는 파티. 연간 몇 억원 이상을 처발라준 화폐들을 위한 VVIP파티, 국민세금을 동원, 고귀하신 지경부 공무원들과 대기업 직원간 이너서클 결성 맞선 파티, 따위의 천박함과는 아주 다른, 파티. 파티라면 이 정돈 돼야지~ 뭣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 중의 하나. 최영준 선생님과 손정리 선생님이 함께 자리한 문패. 예술적 동맹이자 결합으로 함께 하는 두 사람. 책에도 나오는데, 낙담할 일이 있어도 서로를 다독이고, 자연과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며 서로 깊어지는 그 관계. 지나치게 부를 축적하는 데 집착하지 말며, 그들의 세계와 공간을 만들어가는 부부의 다짐이, 저 문패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했다. . . . 나는 그것을 아주 어설프게나마 글에 담았다. 아래에 있는 글이 그것이며, 최영준 선생님께서 계속 건강하시길, 그리하여 선생님 바람대로, '하루하루 진정한 촌사람으로 변해 가'시길. 선생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진짜' 삶을 살고 싶은 생각을 부르는 20년의 기록
《홍천강변에서 주경야독 20년》을 읽고, 방송사의 일기예보는 말한다. 날이 맑아서, 나들이하기 좋은 날씨라고. 물론, 다 생각해서 해주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듣자하니, 시소가 한쪽으로만 기울어 있다. 기상 캐스터의 예보는, ‘도시’ 사람들만 ‘시청자’로 삼는 듯하다. 농작물은 비가 오지 않아 바싹바싹 타들어가는 마당일 수 있는데. 날이 맑아도 가슴에 애를 키워야하는 사람들에게 소외감을 안겨준다. 의도한 바는 아니겠으나, 야속하다. 그러니까, 정말 도시 사람들은 모른다. 여기 이 말에 맞장구를 쳤다. “건조주의보가 발령될 정도로 봄 가뭄이 극심하니 맑은 하늘을 보아도 즐겁지 않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계절의 변화를 제대로 느끼지도 못하고 가뭄의 괴로움도 모른다. 비가 오면 우산을 들어야 하는 일이나 습한 대기가 짜증나고 질퍽한 도로를 다닐 때 바짓가랑이와 신이 젖어 끈적거리는 일도 귀찮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맑은 날을 축복하는 모양이다.” 《홍천강변에서 주경야독 20년》. 농부가 된 역사지리학자 최영준 교수의 농사일기다. 말하자면, 선비노릇을 하던 그가 ‘이농(離農)’ 아닌 ‘이도(離都)’에 나선 기록이다. 눈이 갈 수밖에 없다. 지금 나는 마음을 토닥토닥 다지고 있다. 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갈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시티키드’로 태어나 자랐고, 아직 도시에서 생을 버티고 있지만, 나도 당장이나 조만간은 아니지만, ‘이도’를, ‘귀농’을 꿈꾸고 있다.
아스팔트나 시멘트가 아닌 땅을 밟고, 반딧불이로 밤을 밝히며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꿈. 텃밭에서 상추와 고추를 키우고, 고구마와 땅콩을 캐서 이웃과 나눠먹는 꿈. 농약과 제초제 없이 논과 밭에서 농작물을 자라게 하는 꿈. 이웃들과 자연 요리를 차려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는 꿈. 노동의 중간에 오두막에서 늘어지게 한 잠 자는 꿈. 논두렁을 텀벙거리며 맨발로 뛰는 꿈. 이슬 젖은 숲길을 산책하는 꿈. 내가 볶은 커피를 손님들과 함께 마시며 두런거리는 꿈. 고로, 땅의 남자가 되는 꿈. 허위나 허식이 아닌 ‘레알’ 삶을 사는 꿈. 농부가 되는 길 이 책, 일기체다. 생생하다. 1990년 4월부터 2009년 12월26일까지, 20년의 기록이다. 논골마을에서 쓴 일기가 바탕이다. 그런데, 훔쳐보는 느낌이 아니고, 함께 공유하고 싶은 순간이다. 논밭을 일구고, 축대를 쌓으며, 지붕을 수리하면서 함께 밥을 나눠먹고 싶은. 책을 읽는 내내, 종종 나는 책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버스에서 주로 책을 보며 종종 그랬다. 혼자 발그레 웃고, 눈을 훔치며, 차창 먼 곳을 바라봤다. 아, 좋다. 나도 이랬으면 좋겠다. 사실 그렇다. 도시가 점점 힘겨워진다. 자본이 구획한 경쟁구도. 공존과 공생보다는 공멸에 다다르는 구조. 너는 누구편인지 묻고, 편을 갈라야 직성이 풀리는 체제. 아이들을 사탄의 시스템으로 몰아넣는 어른들. 다이내믹? 개뿔! 살수록 힘들어지고 새까맣게 변하는 마음. 최영준 농부의 시작도 그랬다. “어느 때이건 교수직을 지키는 의미가 약해지는 날 망설임 없이 떠나려고 시작한 일이 이 농사짓기이다.” 아, 그렇구나. 내 미망이 희석되고, 꼭 해야 할 일을 매듭짓는 날 망설임 없이 떠나려면, 나도 준비를 해야 하겠구나. 뭣보다, 그는 어줍지 않은 지적 허영심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다. 그러니까, 진짜 선비요, 제대로 된 농부의 마음이 아닐까. 감히 나는 그렇게 보았다. “농사는 결코 선비가 해선 안 될 일은 아니다. 전에 어떤 사람에게서 학자가 연구하지 않고 어찌 땅이나 파는 천한 일을 하느냐는 핀잔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나는 농사일이야말로 가장 좋은 수신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농사라는 노동, 농사라는 예술 농사는 물론, 고된 일이다. 농부의 손자였던 나는, 할아버지, 큰아버지를 통해 듣고 품고 있었다. 뭣보다 억울하고 부당했던 건, 농사일에 대한 세간의 인식이다. 겉으로는 농사가 중요하답시고, 실은 무시하고 경멸한다. 자신들이 먹는 건, 돈만 주면 ‘그냥’ 나오는 줄 안다. 동네의 한 졸부는 작업복 차림으로 나서는 농부 최영준 부부를 보고 “또 노동하러 가는구먼!”하고 비웃었단다. 내가 아는 노동은, 그 자체만으로는 신성하다. 최영준 농부도 이를 확인해준다. 노동 하는 동안 미움과 욕망과 고뇌를 잊을 수 있고, 무아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했다. 부모는 자식에게 일하는 습관을 가르치고, 땀 흘려 일하면서 심신을 단련하기를 권한다. 특히 미처 몰랐던 농사의 새로운 면모를 알려준다. 눈이 번쩍 뜨이는 순간이다. 농사가 고된 ‘노동’이라고만 알고 있는 무지한 자들을 위해 그는 말한다. 농사는 창작이자, 예술이라고. 잘 정리된 이랑과 고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라고. 아하, 맞아! 탐스러운 농작물이 일렁거리는 논밭을 보고 사람들은 감탄한다. 감탄이 예술의 전제조건이라면, 농사는 예술, 맞다. 더구나, 농사는 하늘이 내려준 일이다. 자연이 일구는 활동이다. 우리는 자연 앞에 늘 감탄하지 않나. 비, 바람, 햇빛, 안개 그리고 다른 생물들이 함께 합작하는 예술품. 최영준 농부는 적극적이다. 대부분 사람은 모르는 것에 덤비려면 불안해한다. 피하려 한다. 하지만 알면 두려움이 줄어든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그는 극복하면서 창작을 하고 예술을 한다. 시간을 견뎌낸 것이 예술이라면, 나는 그의 20년에도 예술이라는 말을 붙여주고 싶다. 책을 보며 응원했다. 조금씩 틀을 갖춰가는 농사가 쉽게 으스러지지 않기를. 아무렴, 예술은 점점 더 빛을 발했다. 자체발광. 물론, 농사는 로망도 낭만도 아닌 철저한 현실이다. 새로운 삶에 대한 성찰 책은 말하고 있었다. ‘진짜’ 선비와 농부는 다르지 않구나. 그의 농촌행은 자본주의 도시문명을 혐오한 단순한 현실도피가 아니었다. 다른 삶 혹은 새로운 삶에 대한 성찰이자, 실천이다. 교수에서 농부가 되는 과정에서도 알 수 있다. 현실적 감각은 떨어진 채 학문에 매달리던 ‘샌님’은 확연히 달라졌다. 토양이 젖었을 때 파종하면 씨앗이 썩어 발아율이 떨어짐을 알게 된다. 퇴비가 썩는 냄새가 구수하다고 느낀다. 삽날에 잘려 반 토막이 난 고구마에서 삐져나오는 진액이 마치 피 같아서 마음이 쓰리다. 황사 날리는 봄날,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파종시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며 밭에 나간다. 내가 아는 농부는 그렇다. 누구보다 땅의 힘을 믿고, 바람, 해, 비, 별 등 자연이라는 큰 선생의 뜻을 받들고 합일점을 찾는 사람이다. 그래서 자연의 위대함을 잘 알고, 사람이 가진 결함과 연약함을 잘 안다. 관념적이라고? 맞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을 통해 지원군을 얻었다. “사실이 아닌 것은 한 줄도 적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으로 시작된 일기를 통해, 한 샌님 교수가 변화된 ‘좋은 예’를 만났다. 뭣이든,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쉽게 일할 수 있는 ‘제초제’를 마다했고, ‘농약’을 거부했다. 처음 논골에 왔을 때, 전 주인이 화학비료를 많이 사용한 탓에 땅심이 없었다. 토양은 딱딱했고 지렁이도, 미생물도 언감생심. 그는 퇴비의 효과를 확인하면서 여성의 화장품 사용도 이해를 한다. 올바른 영양공급은 단기간 효력을 나타내는 화학비료가 아니라 효과가 더딘 유기질비료라는 것을 알아챈다. 그건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들은 위장전입을 해서 일찍 토지 등기를 마쳤다지만, 그에게 그런 것은 없다. 합법적인 절차를 밟겠다고 5년 이상의 세월을 보낸다. 시간을 견뎌내면서 열매는 맺는다. 진짜 삶을 살게 하는 ‘관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자본이 오가는 사고파는 관계가 아닌, 물건만 사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나도 생산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다. 도시적 삶이 힘들고 팍팍해서가 아니고, ‘레알’ 삶을 살고 싶다는 꿈틀거림. 아마, 거기엔 이 책의 문학적 태도도 일조할 것이다. 단순 일기가 아니다. 일기 문학이다. 담백한 글쓰기임에도, 감탄을 때론 자아낸다. 가령, 이런 문장이다. “하루 이틀 사이에 우리 집 주변의 식물들이 꽃잔치를 벌일 판이다. 꽃의 개화에 뒤질세라 연못 속에서는 화려한 비단잉어들이 율동을 펼치는데, 참 볼 만하다. 지난주까지 깊은 물속에 숨어 있던 놈들이 제 세상을 만난 듯 수면 위로 뛰어오르며 화려한 비늘을 번쩍인다.” 캬~ 농촌생활, 멋들어지구나, 하는 환상을 심어줄만하다. 하지만, 그것보다 삶과 문명을 성찰하고 탐구하는 태도야말로, 더욱 문학적이다. 주변사람과 맺는 관계도 문학적 질서와 구성을 따르는 듯하다. 그러면서 나와 내 주변의 관계를 생각하게 만든다. 내가 맺어야 할 것은, ‘인맥’이라는 이름의 출세(이권)지향적 관계가 아닌, ‘살림’의 관계로구나. 죽음이 아닌 살림. 사람에게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 자연이나 다른 생물과 함께 맺는 관계. 아, 그렇지. 나는 우주의 일원이자, 지구의 작은 점이지. 그렇게 확인하고 마음에 박는 계기가 된다. 솔직히 말해, 책에서 가장 부러웠던 건, 세간의 ‘결혼적령기’를 넘어, 아직 결혼하지 않은(못한?) 아저씨로서, 저자와 뜻을 함께 하는 아내. 같은 가치를 품은 동맹이자 연대의 파트너. 제초제, 농약 사용하지 말 것을 신신당부하는 아내에게 타박을 받는 건, 얼마나 복인가. 낙담할 일이 있어도 서로를 다독이고, 자연과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며 자신들의 세계와 공간을 만들어가고, 깊어지는 관계라니. 부럽다. “오늘 아내와 나는 앞으로는 남과 다투지 말고 지나치게 부를 축적하는 데 집착하지 말자고 했다. 또 내가 가진 것은 현명하게 지키고 부당하게 내 것을 빼앗으려는 자에게는 단호하게 지키되, 도움을 구하는 선한 이들에게는 망설임 없이 주자고 다짐하였다.” 그런 관계망 속에서 땅심 없던 논밭은 무공해 유기농 옥토로 바뀌고, 지인, 제자, 친구는 물론 독자들의 세계까지도 넓어진다. 농부학자. 농부로서, 농경인으로서, “하루하루 진정한 촌사람으로 변해 갈 것”이라고 말하는 저자에게서 나는 내 꿈에 용기를 한 뼘 보탠다. 나도 차곡차곡 쌓는다면 언젠가, “이래 사는 내가 좋다”고 자신 있게 말할 날이 오리라. 돈을 향한 탐심과 속 좁은 야망과 출세를 향한 학습된 이기심을 털어내고, 미친 속도와 경쟁의 폭주기관차에서 살짝 뛰어내려도 잘 먹고 잘살 수 있음을 나는 확인한다. 그는 뭣보다 거목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인재들은 하나의 거목과 같은 위인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 성장하여 기둥․서까래․널판자로 쓰일 보통의 인간입니다.” 나도 잉여가 아닌, 인재가 될 수 있구나. 그래, 다행이다. 아, 나도 그날이 오면, ‘농사일기’를 써야겠다. [파주 독후감대회 응모작] |
| 처음으로 출연하셨다는 라디오 방송을 들었습니다.선생님목소리에서 그연세에 흔히느낄수 없는 겸손함과 단정하심에 마음이 끌렸습니다.인터넷에서 뵌 얼굴에서 또한번 놀랐습니다.중고등학생인 딸과 아들에게 선생님 얘기를 들려주려`홍천강변에서주경야독20년`을구입했습니다.건강하십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