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은 스키마스크 뒤에 숨겨졌을 그의 하얀 얼굴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멕시코에서 원주민들의 목소리를 묵묵히 대변하는 사람으로 나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세상 어느 곳에서도 보기 힘든 지독히도 기나긴 싸움 속에서 어쩌면 난 지난 날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던 좌파의 희망을 발견하고자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전 세계를 위협하는 신자유주의적 흐름에 대한 저항으로, 권력에 맞서는 아름다움으로 나는 그를 기억하고 싶었다. 무엇이 진실입니까? 내가 꿈꾸었던 또 하나의 유토피아는 이 책과 함께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순박하기 짝이 없는 웃음으로, 무력 아닌 다른 어떠한 것으로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해도 받아들여지지 않기에 이 길을 택했노라고 말하는 이들의 얼굴은 다 허상이었던 것일까. 그는 그저 언론 플레이에 능하고 또 하나의 권력에 안주하길 바랬던 인물이었단 말인가. 만약 그랬던 것이었다면, 세상 모든 이들을 향한 그의 사기 행각은 참으로도 치밀했다. 세계의 수많은 지성인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던 순수함이 거짓이었다는 생각에 나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마르코스와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이 가지고 있던 문제점은 어쩌면 많은 운동에서 보여지는 지나친 엘리트주의였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원주민들의 이익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의 움직임은 하부로부터 태어난 자생적인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을 이끄는 이들 중 원주민은 아무도 없다. 하얀 피부를 가진, 멕시코 원주민들과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이들에 의해 조직은 움직인다. 높은 문맹률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택하고 있는 노선은 마르크스-레닌주의였다. 원주민들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었기에 싸움을 결심했다. 그들은 그 싸움이 자신들을 위한 것이 아님을 결코 알지 못했다. 조직에의 참여를 거부하였기에 평생 일구어온 땅을 잃은 이들도 있었다. 금주령을 어겼다는 이유로 사형에 처해진 이도 있었다. 평화를 위함이 아닌, 싸움 그 존재 자체를 유지하기 위한 강압적인 흐름들, 그것은 다름 아닌 목적전치였다. 자신을 반대하는 어떠한 목소리도 용납하지 않는, 어느 순간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 내의 권력에 안주해버리게 된 권위주의적 모습은 결국 동료들의 외면으로 이어졌다. 스스로 고립을 자초한 것이랄까. 차마 그가 지난 세기를 달구었던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돈키호테적 발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체 게바라를 비롯한 순수한 혁명가들이 항상 간직했던 휴머니즘이 존재치 않는 듯 했다. 그가 사용한 것이 국가 체제를 위협하는 폭력이었다는 사실이 그에게 휴머니즘이 결여되어 있음을 이야기하는 증거는 아니다. 그가 원주민을 위한 싸움을 한다고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원주민을 배척했다는 사실이 나의 마음에 적지 않은 상처를 남겼다. 그는 원주민들의 기저에 존재하는 기독교적 신앙에 대해 어떠한 고려도 하지 않았다. 그가 지닌 제 2의 체 게바라가 되고픈 열정이 원주민들의 순수한 열정을 잠재웠을 뿐이었다. 시점에서 그의 투쟁이 무엇을 위한 투쟁인지 진실로 묻고 싶다. 무엇이 진실인지, 그가 진실로 꿈꾸는 세상은 무엇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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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차적 완벽성을 추구하는 자유주의자에 의해 씌여진 이 책은 경중을 떠나 사실 자체를 열거하는 지루한 구성으로 이루어져서 독자에게 독서 피로를 가져다 주네요...
또한 혁명의 관점이나 대의적인 관점이 아닌 절차적인 관점에서 평가한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의 오류와 실수들을 탄생의 역사적 의의와 목적과 동일하게 다룸으로서 세계화된 신자유주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주는 메세지마저 상당부분 퇴색하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2000년 3000km의 대장정 끝에 도착한 사파티스타를 환영하더 수많은 인파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런지...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의 부사령관 마르코스 한사람이 과도하게 중심에 있었다는 비판하고 나아가 대안을 제시했었더라면 좋았겟다는 생각이 드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