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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가 이라크로 간 까닭은?"에 정답이 있다면...
""부시가 이라크로 간 까닭은?"에 정답이 있다면..." 내용보기
나의 우상 프리다칼로의 나라 멕시코에 꼭 가보리라 마음먹었고, '종속이론'을 배우면서 라틴아메리카의 아픈 역사와 그것이 나은 사상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고. IMF체제라는 경제 위기 속에서 아르헨티나 등 과거 남미의 경제 위기와 한국을 비교하는 이야기들이 회자되고, 칸쿤에서 이경해 열사의 비보가 전해지고, 그러나 애통해하는 농민들의 목소리보다 오히려 한-칠레 자유무
""부시가 이라크로 간 까닭은?"에 정답이 있다면..." 내용보기
나의 우상 프리다칼로의 나라 멕시코에 꼭 가보리라 마음먹었고, '종속이론'을 배우면서 라틴아메리카의 아픈 역사와 그것이 나은 사상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고. IMF체제라는 경제 위기 속에서 아르헨티나 등 과거 남미의 경제 위기와 한국을 비교하는 이야기들이 회자되고, 칸쿤에서 이경해 열사의 비보가 전해지고, 그러나 애통해하는 농민들의 목소리보다 오히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이 국익을 위해 빨리 체결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만 높게 들려오고. 이러저러한 이유와 계기들로 나는 라틴아메리카에 대해 알고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에 관해 많은 저서를 쓰신 이성형씨의 책들 중에서 제목을 보아하니 가장 '만만해보이는' 이 책을 통해 가장 먼저 갈증을 해소하기로 하였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은 그리 '만만한' 책은 아니었다. 곳곳에서 마주치는 역사학적, 정치학적, 사회학적, 철학적, 문화적으로 해박한 저자의 식견들, 머리를 지끈거리게 할 정도는 아니지만, 결코 술술 쉽게 읽혀버리지만은 않는다. 게다가 많은 역사책들이 외면해온 '승자가 아닌 자들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머리를, 마음을 괴롭힐 것이다. 이 책을 손에 잡는 순간, '콜럼버스'하면 흔히 떠올리는 생각과 이미지들은 깨끗이 버려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콜럼버스의 모험심에 관한 칭찬이 있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요, 유럽의 신대륙 개척이라는 위대한 역사를 드라마틱하게 서술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라면 모를까. 이 책은 7부로 나뉘어져있고 50개의 소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볼 수 있을 것 같다. 전반부에서는 '세계사'의 유럽중심주의를 비판하면서 16세기의 신대륙 개척의 폭력성을 지적한다. 아메리카가 발견된 것이 아니라 아메리카의 발견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발명된 것이었다. 그 발명을 위해 원주민들에게는 지식과 종교와 문명의 이름으로 폭력이 가해졌다. 그리고 후반부에서는 은, 설탕, 커피, 옥수수, 감자라는 물건을 중심으로 세계를 이야기한다. 은이 어떻게 전세계적으로 상업을 활발하게 만들었고, 은으로 인해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얼마나 비참해졌는지, 세계의 많은 '사람'들의 혀에 달콤한 설탕을 제공하기 위해 흑인 노예들은 '사람'취급도 받지 못하고 어떻게 그들의 삶과 역사를 파괴당했는지, 한 잔에 몇천원 하는 스타벅스 커피의 원료를 제공하는 농민들이 받는 돈은 얼마인지 고발한다. 옥수수 재배가 자연과 하나되지 못하고 돈과 하나가 되었을 때의 불행한 결과에 대해, 옥수수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경쟁에 대해, 안데스의 작물인 감자가 유럽에 들어와 유럽의 지도를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에 대해, 감자가 왜 구황작물로 빈곤한 사람들의 먹거리로 자리잡게 되었는가에 대해 쓰고있다. 이 모든 이야기들의 결론이자 저자가 주장하고자하는 바는 중심을 해체하자는 것, 아시아-태평양 시대에서 우리가 중심이 되자는 말이 결코 아니다. 다양한 시선에서 역사를 보자는 것이다. 그들의 시선으로 보지 말자. 그러나 우리의 시선으로만 보지도 말자. 지리에 약한 나는 속속 등장하는 지명들에 버리지않은 고등학교 교과서 지리부도를 옆에 펴 놓고 이 책을 읽었다. 유럽, 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그 대륙들보다 더 넓은 바다. 그동안 '세계사'라고 배워온 유럽의 역사는 그 커다란 세계에서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며, 내가 살고있는 이 나라 한국은 또한 너무 작은 일부분이다. 그 어느 곳도 중심이 될 수 없고, 중심이 되어서도 안된다. 중심은 없다! 그리고, 중심은 무수히 많다! 모두가 중심이 될 수 있다! 그 넓은 세계, 수많은 지역들 모두가 자신들의 긴 역사를 갖고 있고, 그 위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문화를 갖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들을 물리적으로 파괴하고 억압했으며, 나아가 '식민주의적 글쓰기' 속에서 배제하고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타자화하면서 "두 번 죽이는" 야만을 저질렀다. '입장 바꿔 생각하기'. 수없이 들어와서 더이상 새로울 것도 없는 이 말을 실천하기가 그렇게도 어려운 것일까. 다른 관점에서, 다른 입장에서 보면 모든 것이 달라보일 수 있다는 당연한 상식을, 그러나 잊기 쉬운 그 간단한 진리를 다시 지적해주는 책이다. "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이라는 질문을 다시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콜럼버스가 동쪽에서 온 까닭은? 어느날 갑자기,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쓰는 사람들이 배를 타고 와서는, 하느님과 예수 이야기를 하면서 믿으라고 하고, 살고있는 땅에서 내쫓으려 하고, 은을 캐라고 시키고... 대체 저들은 왜 우리에게 왜 그러는거지? 또는, 이렇게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부시가 이라크로 간 까닭은? 아마도 이 질문의 답을 위해서는 '은, 설탕, 커피, 옥수수, 감자'라는 주제를 대신하여 '석유'라는 제목의 텍스트가 씌어질 수 있겠지.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대륙만 발견한 것이 아니다. 콜럼버스로 대표할 수 있는 근대의 역사는 세계사를 '발명'해냈고, 세계 속의 수많은 차이들을 불평등으로 만들었고, 그것을 조장하는 '지식,지식권력'을 통해 우리의 사고를 길들였다. 이 책은 그것들을 해체한다. 평등한 세계사를 위하여.

[인상깊은구절]
"낙천주의란 우리가 비참할 때 모든 것이 잘 되어가고 있다고 주장하는 광기에 불과해." (P.196) "1955년 나는 마드리드, 파리, 베네치아, 피렌체, 로마, 나폴리, 아테네를 발견했다. 이미 1947년에 나는 뉴욕을 발견한 바 있었다. 1956년에는 런던, 안트베르펜, 브뤼셀을 발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쓴 시와 엽서 몇 편을 제외하고는 이렇게 흥미로운 발견을 이야기하고 있는 텍스트를 보지 못했다. 아마도 내가 이 유명한 도시들을 처음 방문했을 당시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 숙연한 침묵으로 이끄나보다. 이렇게 생각하니, 내가 태어났고 살고있는 대륙에 몇몇 유럽인들이 도착한 것을 우쭐대며 부르는 소위'아메리카 발견'이라는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구나. ..." 쿠바 작가 레타마르는 이처럼 '발견(dis-cover)'이 은폐한 덮개를 벗겼다.
p******e 2004.02.02.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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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도 잘 모르는데, 콜러버스가 서쪽으로 간 까닭을 어떻게 아느냐고요? 약 10년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500주년을 맞아 '1492, 콜럼버스'란 영화가 상영되었습니다. 제라르 드 빠라디유가 주인공인 콜럼버스로 분했고, 시고니 위버가 이자벨 여왕으로 출연했었죠. 우리는 재미있게 그 영화를 봤지만, 서구인의 시각으로 콜럼버스를 너무 미화한 것이 아니냐는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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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도 잘 모르는데, 콜러버스가 서쪽으로 간 까닭을 어떻게 아느냐고요? 약 10년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500주년을 맞아 '1492, 콜럼버스'란 영화가 상영되었습니다. 제라르 드 빠라디유가 주인공인 콜럼버스로 분했고, 시고니 위버가 이자벨 여왕으로 출연했었죠. 우리는 재미있게 그 영화를 봤지만, 서구인의 시각으로 콜럼버스를 너무 미화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갖기도 했습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은 서구인의 입장에선 '발견'이었고, 신대륙의 풍부한 귀금속과 천연 자원은 구대륙의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미국에서는 해마다 콜럼버스 데이를 기념하며, '인류의 위대한 발견'을 경축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콜럼버스의 발견은 신대륙 원주민의 고통과 수탈의 시작이었을 뿐입니다. 치아파스 원주민들은 '발견'이라는 미명하에 자행된 폭력에 저항하고 있습니다. 원주민의 입장에선 유럽인의 '침입'이었던 것입니다. 이책은 이러한 객관적인 시각에서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래로 자행되어온 수탈의 역사와 은, 설탕, 커피, 옥수수와 감자 같은 신세계의 자원이 어떻게 구세계에 영향을 미쳤는가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의 마르코스 부사령관은 "우리에게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우리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이 권력을 장악하여 혁명군으로 위치가 바뀌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기를 든 것은 단지 우리에게 귀를 기울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정복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새로운 세상을 제안하려는 것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 세상은 침략과 수탈의 세상이 아닐 것으로 믿습니다.
e***f 2004.06.05.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발명된 역사'를 뒤집어 보면 지리적으로 공정한 세계사가 보인다
"'발명된 역사'를 뒤집어 보면 지리적으로 공정한 세계사가 보인다" 내용보기
어린이들이 보는 위인전에 등장하는 콜럼버스의 이미지는 혁신, 용기, 모험 등이다. 누구도 감히 생각해 보지 못한 서쪽으로의 항해를 고안해 내는 혁신적인 발상은, 달걀의 모서리를 깨뜨려 세우는 일화와 함께 이미지화되어 있다. 그리고 누구도 시도해 보지 못한 서쪽으로의 항해를 감행하는 용기, 그리고 아메리카의 '발견'은 탐험가 콜럼버스의 상징이다. 콜럼버스의 위대한 탐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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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들이 보는 위인전에 등장하는 콜럼버스의 이미지는 혁신, 용기, 모험 등이다. 누구도 감히 생각해 보지 못한 서쪽으로의 항해를 고안해 내는 혁신적인 발상은, 달걀의 모서리를 깨뜨려 세우는 일화와 함께 이미지화되어 있다. 그리고 누구도 시도해 보지 못한 서쪽으로의 항해를 감행하는 용기, 그리고 아메리카의 '발견'은 탐험가 콜럼버스의 상징이다. 콜럼버스의 위대한 탐험을 계기로, 유럽은 곧 세계사를 이끌어가면서 근대화를 활짝 열어젖힌 중심이 되었다. 즉, 콜럼버스는 혁신적 아이디어와 모험적 기질을 통해 세계사의 흐름을 순식간에 바꾼 인물이다. 이러한 콜럼버스의 모습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배우는 세계사 교과서는 물론, 책, 언론 등 여러 미디어를 통해 재현된다.


위대한 탐험가로 재현되는 콜럼버스의 이미지. yes24 검색화면


  그런데 이러한 콜럼버스의 이야기에서 하나 빠진 것이 있다. 콜럼버스가 '왜' 서쪽으로 가려고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동쪽에 이슬람 세력이 교역로를 막았다는 설명을 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럼 안 가면 되는 것 아닌가? 왜 그토록 콜럼버스는 동방으로 가기 위해 무모한 항해를 감행한지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속시원히 말해주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콜럼버스가 위대한 항해를 했고, 그것이 유럽의 전성시대를 열었다는 사실만을 주입식으로 이해했을 뿐이다.


  책 제목이기도 한 "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에 대한 저자의 대답은 단순하면서도 명료하다. "동쪽으로 갈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치 몇년 전 유행한 허무개그같은 답이다. 하지만 이 대답이 나오게 된 이면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면, 의외로 큰 의미가 있다. 유럽인들이 동양으로 가지 않으면 안될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15세기 당시만 해도 유럽의 문명발달 수준은 인도, 중국 등 동양의 그것에 비해 뒤쳐져 있었고, 동양의 발달된 문물을 수입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다. 동쪽으로 가는 길이 오스만 투르크 세력에게 막힌 이후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서회항로'를 개척하는 무모한 도전을 시도해서라도 동양의 우수한 문물을 얻어야 했다. 결국 유럽의 서쪽 항해는 고육지책이었다는 말이다.


  당시 서유럽은 아시아나 이슬람권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허약했다. 로마 시대부터 난징조약에 이르기까지 서구는 인도와 중국에 팔 수 있는 경쟁력있는 기술과 상품이 별로 없었다. 비단, 자기, 향료와 같은 고급 소비재에서 종이에 이르기까지 유럽은 동방에서 수입해야 했다. 유럽은 또 칭기즈칸과 티무르의 말발굽에 시달리기도 했다. 오스만 튀르크 세력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자, 서유럽은 새로운 향로무역 루트를 찾기 위해서 대서양으로 갔다. 풍요의 땅인 인도와 중국을 동쪽 루트를 경유하여 가기에는 힘이 부쳤기 때문이다.(p.13)


  이유야 어쨌든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혹은 도착 이후, 당사국인 스페인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모험항해를 나서기 시작한다. "그때도 지금처럼 사람들은 맘몬(돈)에 미쳐 있었다.(p.47)" 아메리카 항해가 위험하고 성공률이 극히 낮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황금이 넘쳐 나는 '엘도라도'에 도착하기만 하면 인생역전을 할 수 있다는 희망 하나로 많은 이들이 배에 올랐다. 마치 서회항로는 '벤처사업'이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스페인 정복자들은 아메리카 인디오(indigeneous라고 부르는 것이 더 좋다고 한다.p.134)에게 기독교인으로서 할 수 없는 노동착취 및 각종 만행을 범하였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인디오를 노예처럼 부려서 돈이 될 만한 자원을 약탈했다. 그리고 기존에 있던 문명을 철저히 파괴하고, 그 위에 스페인식 도시를 건설하였다.


스페인에 의한 남미 도시공간의 지배


  하지만 인디오들을 괴롭힌 것은 유럽인들의 직접적 폭력만이 아니다. 유럽인들과 함께 대서양을 건너온 구대륙의 병균은 인디오들에겐 치명적이었다. 인디오들은 병균으로 인해 급격한 인구 감소를 겪고, 노동력 부족을 겪은 유럽인들에 의해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가 유입되었다. 이들 흑인노예에 의해 사탕수수, 커피 등의 플랜테이션 농업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스페인 외에도 후발주자인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등의 국가들도 식민지 개척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러한 16세기 이후 식민지 개척을 통해서 유럽이 단숨에 세계의 중심으로 우뚝 선 것이 아니었다. 기존의 동아시아, 남아시아, 아랍 등에 형성되어 있던 네트워크의 일원으로 유럽이 편입되고, 유럽이 새롭게 개척한 항로를 통해 네트워크가 연결된 것일 뿐이었다. 동아시아, 남아시아, 아랍 등지의 여러 나라들은 오래 전부터 인도양, 서태평양 위에서 풍부한 물산을 교역하기 위한 네트워크를 조직하여 왔다. 콜럼버스의 항해 이후 대서양-태평양을 통해 '동방'으로 가는 서회항로가 개설되었지만, 이는 기존 네트워크에 추가된 새로운 항로로 볼 수 있다. 실제로 멕시코 아카풀코-필리핀 마닐라 항로는 스페인의 통제를 거의 받지 못했다고 한다(p.169). 그리고 이 항로를 통해 스페인의 은이 필리핀을 거쳐 중국으로 바로 흘러가기도 했다고 한다. 결국 아메리카의 물산을 구대륙과 연결시켜 준 것은 유럽인들의 항해 덕인 것은 사실이지만, 단지 유럽 중심의 일방향 네트워크가 아니라는 것이다


태평양의 마닐라 갤리온 선단 항로. 세계화된 무역 네트워크의 일원이었다.


  그리고 저자는 세계화된 무역 네트워크 속에서 구대륙 및 신대륙의 물산이 교환되고 지역이 변화하는 모습에 주목한다. 기존 세계사에서는 유럽 문명이 신대륙으로 전파된 것에만 주목하는 경향이 있지만, 저자는 남미에서 작물화된 감자, 옥수수 등에 주목한다. 신대륙의 감자가 유럽으로 전파되면서, 한랭한 러시아에 농업생산량 증대를 가져와 군사력 강화가 나타났다는 사실도 흥미로웠다(p.289). 옥수수가 유럽을 거쳐 중국으로 넘어온 16세기 이후, 중국 남부 미개간지를 지배하고 인구압을 가져왔다는 사실도 재미있었다(p.270). 이렇게 콜럼버스의 항해 이후 각 대륙의 물산이 교환된 사건을 'Colombian exchange'라고 하는데, 저자는 특히 무역과 물산의 네트워크와 지역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이렇게 직접적 경제침탈을 통해서 자국의 자본주의 경제를 성장시키고 난 뒤인 19세기가 되어서야 유럽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 되었다. 이후 유럽은 세계사를 그들의 입맛에 맞게 '발명'하기 시작한다. 

이는 일종의 상징적 폭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스 로마 문화가 르네상스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아랍 문화 영향을 제거한다던지, 콜럼버스 신대륙 '발견' 이후 유럽은 세계의 중심으로 도약하여 주변지역을 지배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외에도 여러 유럽중심의 역사 발명이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유럽인들의 입맛에 맞게 왜곡되고 발명된 역사


  결국 저자는 유럽 중심으로 '발명'된 기존 세계사의 관점을 뒤집어 보자는 주장을 한다. 즉 유럽은 물론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 등 여러 대륙이 지리적으로 공정한 세계사의 구성원이므로, 각 지역의 세계사적 공헌을 편향됨 없이 공정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책의 논리에 대해서 승자 측에서 바라보면, '패배한 후진국들의 열폭'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과거에 누가 문명에 우위가 있었든간에, 결국 서구가 나머지 지역에 비해 선진국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의 역사적 싸움에서 패배한 남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 등의 국가들은 왜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는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는걸까? 승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 책의 논리는 패자가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고 열등감을 표출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편으로, 패자 입장에서 보면 과거에 승리할 수도 있었던 싸움에서 패배하게 된 원인을 분석해 본다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승자가 과거의 '싸움 이력'을 승자 위주로 개편하는 역사왜곡에 대해 정의롭지 못하다고 보는 비판의 의미도 있다. 이렇게 기존 유럽 중심의 세계사를 해체하여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좀 더 지리적으로 공평한 세계사를 지향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담고 있다.


  이 책은 개인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먼저 이 책은 나에게 책 한권 이상의 깨달음을 주었다는 점이다. 한권을 읽은 후에 느끼는 지적 성장이 이전의 다른 책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쉽고 맛깔나게 써 진 책을 통해 저자의 관점에 공감할 수 있었고, 덕분에 이 책은 개인적으로 세계를 보는 관점을 정립하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양서'를 쓴 저자는 최근에 고인이 되었다. 저자는 살아있는 동안 우리나라에서 독보적인 라틴아메리카 전문가였지만, 살아있는 동안 능력에 대한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요절하였다. (관련기사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32723.html) 저자가 고인이 되기 전에 제돈 주고 책 한번 사지 않았단 점이 괜스레 미안해진다. 예전에 읽었던 책이지만, 뒤늦게라도 리뷰를 쓰면서 고인의 명복을 빌어 본다.



r*****0 2013.05.23. 신고 공감 0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서구 중심의 역사깨기
"서구 중심의 역사깨기" 내용보기
현대에 접어들면서 유럽중심주의에 의해서 편협하게 해석되어 왔던 역사를 공정하게 재해석하자는 수정주의적 입장은 하나의 일정한 흐름을 형성한 듯 보인다. 서양 제국주의의 이념적 허구를 비판한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필두로 하여 안드레 군더 프랑크의 ‘리오리엔트’와 같은 도발적인 주장에 이르기까지 이성과 계몽이라는 미명하에 억눌려 왔던 소외된 주제를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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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 접어들면서 유럽중심주의에 의해서 편협하게 해석되어 왔던 역사를 공정하게 재해석하자는 수정주의적 입장은 하나의 일정한 흐름을 형성한 듯 보인다. 서양 제국주의의 이념적 허구를 비판한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필두로 하여 안드레 군더 프랑크의 ‘리오리엔트’와 같은 도발적인 주장에 이르기까지 이성과 계몽이라는 미명하에 억눌려 왔던 소외된 주제를 다루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일환으로서 유럽 중심주의를 비판하는 수정주의적 입장은 이른바 역사적 타자를 재조명함과 동시에 이들에 대한 변호사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의 일환으로서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진 이성형씨가 편찬한 ‘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이라는 책은 전문적 지식과 서정적 문체로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는 유럽의 시각에 물들어 우리가 보지 못했던 아메리카의 역사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서 세계화 시대를 맞아 정치적으로 그리고 지정학적으로 모두에게 공정한 세계사의 서술을 시도하고 있다. 그는 단순히 서양 역사를 뒤집어 반대로 해석하기보다는 중심을 해체하여 모든 것을 지방으로 만들어 놓고 세계사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는 본문에서 에드워드 사이드를 인용하여 단선율의 그레고리안 성가가 아니라 여러 개의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며 진행하는 대위법으로 세계사를 해독해 보자고 강조하고 있다. 이 책 역시 박노자의‘하얀 가면의 제국’과 마찬가지로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동서고금의 다양한 역사지식을 종횡으로 다룬 저서로써 독자로서는 가벼운 에세이에서 재미를 맛보며 동시에 역사 상식을 건질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독서의 보상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던 유익한 책이었다. 저자는 지배 권력이 암묵적으로 행하고 있는 의제 설정 기능의 위험성을 제시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그 동안 타자라는 이름으로 소외되어 왔던 제3세계, 유색인, 원주민에게 역사의 돋보기를 들이대고 다양한 시선을 확보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을 만 하다. 왜곡되지 않은 사회 여론의 형성을 위해서 대중 매체의 다양성이 확보되어야 하듯이 실체에 가까운 역사를 바라보기 위해서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해야 한다는 저자의 견해에는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견을 가지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내용적 측면에서 살펴볼 때에도 이 책은 비단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 국한되기 보다는 자본주의에 따른 세계화의 빛과 그림자 그리고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제시함으로서 과거와 현재의 단절을 이루기보다는 긴 호흡으로 역사를 볼 수 있는 안목을 제시해 주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과거 유럽이 축적된 자본을 통해 고도의 산업기술의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원동력의 근간에는 제3세계 특히 아메리카에 대한 착취가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것의 연장선상에서 자신들의 공고한 위치를 유지하기 위하여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주변부 국가들에게 가해지는 보이지 않는 착취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이를 통해 독자는 과거의 진실에 대한 고증과 이에 대한 반성이라는 역사의 본래 의미에 덧붙여 제반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역사의 사회적 책임과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참여 의식을 고취해 주었다. 책의 초반 1,2부에서는 아메리카의 세계 역사 편입과 그의 정복에 따른 역사적 논쟁을 소개하는 데에 치중하였지만 제3부에서 7부에 걸쳐 주요 무역 거래 제품을 중심으로 내용을 전개해 나아가는 방식은 책을 읽는 색다른 즐거움을 주었다. 언뜻 보면 앞의 주제와 연관될 것 같지 않은 일상사 중심의 서술 속에서도 달콤한 미각 자본주의에 가려져 있던 검은 땀방울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시도 역시 신선하다. 개인적인 측면으로는 제3세계에서 손꼽히는 저명한 역사철학가인 엔리케 두셀, 윌터 미뇰로, 롤프-트륄로의 저술을 일견 접해볼 수 있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가 비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제3세계의 연구에 대한 우리나라 학계의 역차별적인 무관심속에 혹시나 내포되어 있을 지도 모르는 우리안의 오리엔탈리즘에 대해서 진지한 성찰과 반성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저자는 맺음말에서 아시아 - 태평양 시대를 맞아 유럽 중심의 역사학에서 과소평가되어왔던 아시아, 특히 중국과 그 주변의 역사적 위상을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물론 이러한 역사에 대한 재조명이 자의적인 해석에 근거하는 국수주의와 같이 편협한 성격의 것으로 혹은 제2, 제3의 타자를 생성해 내는 또 다른 중심주의로 발전해서는 안 될 것이다. 위 저서와 같이 그동안 주목 받지 못했던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지역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작업은 분명 한쪽으로 너무 치우쳐서 가라앉을 지도 모르는 배의 균형을 잡는 일이 될 것이다. 배의 균형을 잡는 이러한 과업은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할 것이며 그것을 수행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상깊은구절]
"1955년 나는 마드리드, 파리, 베네치아, 피렌체, 로마, 나폴리, 아테네를 발견했다. 이미 1947년에 나는 뉴욕을 발견한 바 있었다. 1956년에는 런던, 안트베르펜, 브뤼셀을 발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쓴 시와 엽서 몇 편을 제외하고는 이렇게 흥미로운 발견을 이야기하고 있는 텍스트를 보지 못했다. 아마도 내가 이 유명한 도시들을 처음 방문했을 당시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 숙연한 침묵으로 이끄나보다. 이렇게 생각하니, 내가 태어났고 살고 있는 대륙에 몇몇 유럽인들이 도착한 것을 우쭐대며 부르는 소위 ''아메리카 발견'' 이라는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구나
u*****l 2006.01.1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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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간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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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간 이유는 모두가 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일어난 일들도 많은 부분들이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 혹은 은폐된 것, 알려졌으나 그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는 것들은 없는 것일까. 있다. 물론 있을수 밖에 없다. 서양인들에 의해 쓰여지고 서양인들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책들만 번역해서 읽어왔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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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간 이유는 모두가 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일어난 일들도 많은 부분들이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 혹은 은폐된 것, 알려졌으나 그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는 것들은 없는 것일까. 있다. 물론 있을수 밖에 없다. 서양인들에 의해 쓰여지고 서양인들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책들만 번역해서 읽어왔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단지 서양인에 의해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이 겪은 고난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오리엔탈리즘의 관점으로 바라본 '인더언' 이라는 존재의 굴레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리고 우리가 잘 모르던 신대륙의 서쪽, 즉 아메리카 대륙을 경우하여 마닐라로까지 이어지던 무역로와 그 무역이 중국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이야기 한다. 그리고 정복의 결과와 아직도 이어지는 수탈에 대한 저항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도 잊이 않는다.
s***g 2005.11.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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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중남미 역사를 통해 세계사를 거꾸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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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에 연재되었을때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으로 이 책을 필독 목록에 적었는데 이제야 보게 되었다. 저자의 역사 서술이 약간 산만하기는 하지만 재미를 끌어내는 능력은 훌륭하다. 서유럽의 산업혁명에 중남미의 감자와 옥수수를 통한 농업혁명이 크게 기여했다는 것, 아편전쟁을 통한 침탈 이전에 마닐라를 중심으로 세계 무역망이 이미 활성화되어 있었다는 것, 왜구의 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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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에 연재되었을때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으로 이 책을 필독 목록에 적었는데 이제야 보게 되었다. 저자의 역사 서술이 약간 산만하기는 하지만 재미를 끌어내는 능력은 훌륭하다.

서유럽의 산업혁명에 중남미의 감자와 옥수수를 통한 농업혁명이 크게 기여했다는 것, 아편전쟁을 통한 침탈 이전에 마닐라를 중심으로 세계 무역망이 이미 활성화되어 있었다는 것, 왜구의 수장은 중국인이 훨씬 많았다는 것 등의 내용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k****9 2015.04.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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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중심주의를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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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승자의 입김에 의해 기록되어지며 강대국의 논리에 의해 지배되어진다. 항상 그렇듯이 주류의 영향력이 비주류의 영향력보다 우위를 점하는 것을 볼때, 과연 우리가 배워왔고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세계의 문명사가 공정한 시각에서 다루어진 것일까 하는 의문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와 같은 전제를 설정하여 결론부터 언급하자면 이 책의 저자는 우리가 초등학교 부터 지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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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승자의 입김에 의해 기록되어지며 강대국의 논리에 의해 지배되어진다. 항상 그렇듯이 주류의 영향력이 비주류의 영향력보다 우위를 점하는 것을 볼때, 과연 우리가 배워왔고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세계의 문명사가 공정한 시각에서 다루어진 것일까 하는 의문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와 같은 전제를 설정하여 결론부터 언급하자면 이 책의 저자는 우리가 초등학교 부터 지금까지 배워왔던 서양과 세계에 대한 지식이 지정학적으로 편파적일 뿐만 아니라 부분적으로는 왜곡된 지식이라고 단언한다. 그와 같은 결론이 가능한 것은 16세기에 먼저 근대성을 경험한 서구에 의해 나머지 사회는 서구로부터 근대성을 받아들이게 됨으로써 역사학 뿐만 아니라, 철학, 문학, 사회과학 등 다방면으로 서구 중심주의의 편향적 사고방식으로 인식될 수 밖에 없었음을 이야기 하고 있다. 즉 이러한 서구 중심주의에 입각한 서구적 가치는 '서구의 충격'(Western impact)에 의해 주변부로 확산되어가고 이러한 확산주의는 곧 근대화와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면서 비롯된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도 이러한 서구 중심주의 사상은 자칫 서구의 가치를 아시아나 동구적 가치보다 한 수 위에 두게 됨으로써 그 주변부의 민족이나 국가는 문화적, 지정학적으로 종속적이거나 부속적인 열등한 존재로 전락하게 될지 모른다는 염려를 갖게 한다. 아마도 그러한 결과는 이미 예나 지금이나 우리가 접해 온 학문의 세계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저자는 우를 범할 수 있는 이러한 편향된 시각을 지양하고 역사가 보다 다양한 시선에서 읽힐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아시아의 관점, 라틴 아메리카의 관점과 같은 국가별 지정학적 차이 외에도 비주류에 속한 인종적, 종교적 관점과 서구가 주류로 편입되기까지 징검다리 역할을 담당했던 소외된 피지배 계층에 이르기까지 우연을 가장한 고의적 행위로 배제되어 왔던 비주류의 관점에서 세계사를 재해석하고자 탈 중심의 역사적 서술 방식을 지향하고 있다. 발명과 발견이라는 미명아래 은닉과 은폐로 말미암아 이제껏 오도되어 온 세계사는 "세계화만이 살길"이라는 오늘날 지구촌의 행동양식을 감안하더라도 좀 더 "정치적으로, 지정학적으로 공정해져야" 비로소 "세계화"에 대한 정당한 인식도 가능해지리라는 이유에서이다. 발명과 발견, 교역을 통한 자본의 이동, 기호식품과 식량 생산의 근원지를 통해 살펴 본 이면의 역사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실제적인 비주류의 주류로서의 역할이 드러나게 된다. 아프리카 노예와 대서양 노예 무역이 없었다면, 아메리카가 지닌 잠재적인 경제적 가치는 결코 실현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주류의 미각 자본주의에서 비롯된 설탕과 커피의 역사도 노예제와 식민주의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내포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힘을 가진 자가 힘 없는 자의 문명을 찬탈하고 지배함으로써 오히려 얻게 된 구황작물로서 식량의 기능을 수행했었던 옥수수나 감자의 역사적 배경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따라서 균형 잡힌 정당한 세계사에 대한 인식은 16세기에 근대성을 먼저 경험한 서구 중심의 세계사가 그 이전, 우위를 선점하고 있었던 비주류 - 서구의 관점에서 보면 - 의 문명세계에 대한 정당한 고찰을 전제로 해야 함을 일깨워 주고 있다. 지난 2월 한림대 한국학 연구소가 개최한 "21세기 한국학,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심포지엄 관련 기사를 접해 보면 이러한 저자의 논고가 충분한 설득력을 갖추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한국은 16세기 이전까지 유럽과 직접적인 관계도 없는데, 유럽사의 시대구분을 받아들여 중세 봉건제를 서술하고 있다. 적어도 16세기까지는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사회였다는 사실을 토대로 시대 구분을 다시 할 필요가 있다." 국내 한국사 연구자들은 좌, 우를 막론하고 고대, 중세, 근대 등 유럽사의 시대구분 방식을 따르고 있다. 이런 유럽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이 미야지와 히로시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교수란 일본인 연구자에 의해 제기되었다는 사실은 그래서 흥미롭다. 옴팔로스 증후군(Omphalos syndrome)에 빠지지 않은 민족이 있을까? 자신이 사는 곳을 '세계의 배꼽'이라고 생각하는 그 버릇 말이다.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코스코)도 '세계의 배꼽'이라는 뜻이며, 아스텍 제국의 중심 테노치티틀란도 신의 점지에 의해서 '세계의 중심축'에 건축된 도시라고 신화는 전하며, 중국의 '중화사상'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세계의 정복사는 이러한 '배꼽들의 충돌'이기도 하다. 양서의 긍정적인 효과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중의 하나가 세상을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을 주는 것이라면 이 책은 그러한 긍적적인 효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좋은 책이라고 사료된다.

[인상깊은구절]
내가 이 책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나는 역사가 다양한 시선에서 읽힐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중략) 둘째, 유럽이 세계사의 시작과 종착역이 된다는 유럽 중심주의는 오늘날 사회과학과 인문학 전 영역에서 도전을 받고 있다. (중략) 셋째, 사람들은 이제 '아시아-태평양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한다. (중략) 넷째, 우리에게 낯선 무역과 물산의 역사를 다루고자 했다. (중략) 다섯째, 설탕과 커피는 미각자본주의의 총아이지만, 노예제와 식민주의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중략) 여섯째, 아메리카 대륙은 유럽과 아시아 농민들에겐 구황작물로 유명한 옥수수와 감자를 전파한 원조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세계사에 기여한 부분을 자주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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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정말 뿌듯하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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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중심의 역사관, 알고는 있었지만 그것이 어떤 것인지 몰랐던 것을 이 책을 보고 조금 알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배울 때에서는 슬쩍 넘어간 부분이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는 것을. 아직 미숙한 지라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서양역사관에 대한 비판의식 쪽은 솔직히 별로 느끼질 못했습니다; 단지, 이 책을 보고서 아메리카 발명 이후의 세계의 경제 발전과 역사 발전의 가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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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중심의 역사관, 알고는 있었지만 그것이 어떤 것인지 몰랐던 것을 이 책을 보고 조금 알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배울 때에서는 슬쩍 넘어간 부분이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는 것을. 아직 미숙한 지라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서양역사관에 대한 비판의식 쪽은 솔직히 별로 느끼질 못했습니다; 단지, 이 책을 보고서 아메리카 발명 이후의 세계의 경제 발전과 역사 발전의 가닥을 잡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감자나 설탕에는 별로 중점을 두지 않았는데, 하나의 아이템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머릿 속에 정리가 된 것이 이 책을 읽은 가장 큰 수확-_-! 이성형님, 언제나 좋은 책을 내주시는 까치글방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r******t 2003.11.2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