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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권력이 만났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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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제는 예술과 정치의 만남입니다. 다비드는 신고전주의 양식의 대표적인 화가이고 그 시대 다른 화가들 처럼 주로 역사 사건과 신화를 소재로 그렸는데, 나중에는 적극적으로 정치 권력과 관계를 맺었지만 혁명전에 그린 신고전주의 회화에서 가장 훌륭한 그림 "호라티우스의 맹세"는 자신의 의도와 상관 없이도 정치 선전용으로 이용되었다. 그 당시는 로마로 공부하러 가서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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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제는 예술과 정치의 만남입니다. 다비드는 신고전주의 양식의 대표적인 화가이고 그 시대 다른 화가들 처럼 주로 역사 사건과 신화를 소재로 그렸는데, 나중에는 적극적으로 정치 권력과 관계를 맺었지만 혁명전에 그린 신고전주의 회화에서 가장 훌륭한 그림 "호라티우스의 맹세"는 자신의 의도와 상관 없이도 정치 선전용으로 이용되었다. 그 당시는 로마로 공부하러 가서 고전을 많이 공부했다. 다비드도 다섯번 도전 끝에 로마 대상을 수상하고 로마에서 역사와 고전을 공부하고 프랑스로 돌아와서 신고전주의를 완성했다. 나폴레옹은 미술에 대해 전혀 모른다고 다비드에게 말했다고 하는데 나폴레옹이 가장 좋아한 미술이 바로 신고전주의였다고 한다.


미술에서 신고전주의란 단순한 형태와 색을 추구하고 복잡한 구성을 없애서 바로크와 로코코의 복잡한 장식을 의도적으로 없앤다는 양식이다. 다비드의 그림은 프랑스 혁명과 연관되어 생각이나는 화가인 만큼 그 시기 가장 대표적인 프랑스 화가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혁명 정부 때 '마라의 죽음'이다. 1794년 혁명 축제 행사에서 그가 담당한 역할을 보면 20세기 독일 나치시대 건축가 슈피어를 연상케 한다.

다비드는 정치와 인연을 맺어 부와 영광을 누렸기 때문에 기회주의자이고 타락한 예술가로 평가 받는데 이것 때문에 평가가 안좋았지만 신고전 양식을 완성시킨 역사에 남는 뛰어난 화가임에는 틀림없다.

다비드와 나폴레옹은 서로의 필요로 운명적으로 만났다. 테르미도르 반동(이것도 책에 의미가 잘 설명 되어있다.)으로 정권이 바뀌고 공포정치를 하던 혼란스런 때 두번의 투옥으로 킬로틴에 설 뻔한 다비드는 다시는 권력과 상관없이 원칙을 따르는 예술가로 남겠다고 다짐하지만 곧 갑자기 등장한 나폴레옹을 만난 후 그의 매력에 빠져서 그의 사람이 되고 그가 영광스러울 때 프랑스 최고 화가가 되었고 그가 몰락 했을때 다비드도 벨기에로 망명해야 했다. 나폴레옹과 운명을 같이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화단의 나폴레옹이었다. 두 사람 모두 영광의 정점에서 그린 그림은 나폴레옹 대관식이다. 이 날 광경은 드라마였다. 이 그림은 매우 크게 제작 되었고 당시 사람들이 너무나 생생히 묘사 되어 있어서 그림만 보고도 누군지 알수 있었다고 한다. 2층에는 다비드 자신도 그려져 있다.(두번째 줄에 왼쪽 어두운 색 옷 입은 사람) 나폴레옹의 어머니도 그려져 있지만 사실은 대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나폴레옹과 함께했던 프랑스의 영광을 벨기에서 망명하고 있던 많은 프랑스 다른 사람들 처럼 끝까지 잊지 못했다.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을 패하게 했던 영국의 웰링턴이 나중에 브뤼셀에서 자신의 초상화를 부탁했지만 다비드는 저는 역사만 그립니다.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한다. 거절당한 후 웰링턴은 그의 아틀리에에서 말을 타고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을 그린 커다란 그림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이 대목에서 뭉클한 인간적인 감동을 느꼈다. 다비드가 의리와 지조는 있었다. 예술가의 재능이 정치 권력에 이용 되었고 자신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언제나 영웅을 숭배 했고 그래서 자신의 재능을 프랑스를 위해서 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그 과정에서 개인으로선 화단의 나폴레옹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영광과 부를 가진다.

그런데 같은 시대 베토벤도 한때 나폴레옹에게 반해서 영웅을 작곡했다 하지않았나. 그 시대엔 많은 사람들이 나폴레옹에게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유럽에서는 사람들이 모이면 그의 이야기를 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예술가가 무조건 현실 정치에 참여치 말라는 것도 없는데, 어디까지가 예술가로서 잊지 않아야 하는지는 다비드가 좋은 예가 되겠다. 어쨌든 그의 작품들이 당시 정치 선전에 이용되어서 관람자들을 오도하는 문제가 있긴 했다.

 

책의 반은 나폴레옹의 인생이다. 그에 관한 책은 가장 많다고 한다. 그는 프랑스 혁명 때 많은 혁명가들을 제치고 쿠테타로 권력을 잡아서 프랑스를 위해 전 유럽과 싸웠던 전쟁과 혁명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거의 전쟁광으로 보일 정도이다. 끝까지 승리하지 못했지만 프랑스 군인들과 국민들은 끝내 그를 잊지 않았고 존경했다. 유배지에서 적국 사람들에게서도 존경을 받았다. 그가 프랑스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게된 이유는 프랑스를 위해 전제 왕조의 나라들과 싸웠기 때문이다. 당시 다른 유럽의 전제왕조 나라들은 루이 16세를 처형하고 선거로 평민 군인이 통령에 당선 되는 프랑스를 보고 자신들의 나라에도 프랑스의 혁명 정신이 들어올까봐 두려워했다. 그래서 유럽 국가들은 연합해서 프랑스에 전쟁을 선포 했고 나폴레옹은 국내 외에 많은 문제 때문에 전쟁을 안할래야 안할 수 없었던 점이 있었다고 이책은 말한다.

나중에 많은 역사가들은 아주 조그만 실수로 만약 워털루 전투 때 그 순간 나폴레옹이 그러지 않고 이랬다면 그가 너무 피곤 하지 않았다면 그가 누구를 시키지 않았다면 등등. 나폴레옹의 전쟁을 연구할 만큼 많은 연구의 대상이고 전술의 천재라고 한다. 아주 사소하게 보이는 것이 그날의 운명과 역사를 바꾸었다.

실재 적국과 수에서 많은 차이가 나는 군인으로도 승리를 거두었다. 그가 무리한 러시아 원정만 안했어도 운명이 달라졌을지 모른다. 그것은 참 허무한 승리였다. 19세기 후반까지 나폴레옹은 전 유럽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사람이었고 그의 등장 전과 후의 유럽은 달라졌다. 마지막까지 적대 국으로 싸웠던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나폴레옹이 죽은 후 몇 십년이 지난 1855년 앵발리드를 방문한 후 나중에 왕이 될 아들에게 위대한 사람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할 만큼 영국의 여왕도 존경을 표했다 한다. 재위 기간 중 거의 대부분을 파리를 떠나 있었고 업적 중 대표적인 것 하나는 나폴레옹 법전이다. 그 일부가 지금도 유효할 정도로 당시 유럽에서 가장 민주적이었고 합리적이었다. 

그의 등장으로 시민의 권리와 영향력은 커졌다. 그도 개인적인 영광을 추구했지만 과거 왕실의 부패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은 프랑스 국민들이 그를 원했고 워털루에서 패했지만 나폴레옹이 원했다면 의회를 해산하고 다시 독재 권력을 잡을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가 혁명의 완성자라고 볼 수 없지만 그를 통해 전유럽에 프랑스 혁명의 정신은 퍼졌고 시민들의 권리는 커지고 깨어나기 시작했다. 이 점이 평범한 독재권력자와 다른 점이라고 한다. 그는 평민으로서 황제가 된 사람이다. 그 당시 사회에서 보면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은 너무나 놀라운 존재였다고 한다. 프랑스 혁명 초기 때 등장한 유명한 혁명가들도 나폴레옹 앞에선 빛을 잃는다. 그가 사라진 후에도 유럽과 프랑스에선 그를 그리워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비드는 역사와 현실에 많은 관심을 가졌는데, 그래서 적극 현실 정치에 역할을 했고 그가 그때마다 좋아하는 사람들을 그리고 역사적인 사건들을 그렸다. 때문에 기회주의자로 비판 받았는데 그는 예술가로서 임무나 자세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곳에 더 충실했는지도 모른다. 당시 많은 사람들 처럼 나폴레옹에 빠진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항상 프랑스 최고 화가가 되고 싶어한 야심이 있었고 나폴레옹을 통해 그 목적을 이루었다. 

이 두 사람 이야기로 보는 프랑스 혁명기 예술과 정치 권력의 관계다. 

다비드의 대표적인 그림과 스케치와 별로 유명 하지 않는 그림들, 같은 시대 다른 화가들의 잘 볼 수 없던 그림이 많아서 그 시대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인쇄도 좋고 내용과 볼거리 다 드문 굉장히 훌륭한 책입니다. 그러나 책 겉이 좀더 튼튼하고 빨리 닳지 않았으면 합니다. 겉이 금방 헌책 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각 시대 예술내용을 알고 싶은 욕구도 생기게 하고 다시 읽어보고 싶은 매우 훌륭한 책입니다.

[인상깊은구절]
예술가의 창조성은 환경, 그가 속한 사회, 성장배경, 교육과정, 친구 예술가들과의 교류, 자신에게 영향을 준 예술가 등과 밀접한 관계 가 있다. 동시대에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은 예술가들 두세 사람의 생 애를 함께 알아보고 그들에게 영향을 끼친 요소들까지 살펴 본다면 예술가의 미적 관점은 물론 미술사까지 더욱 이해하게 될것이 다. .....이런한 자료를 총체적으로 사용해 미술사를 이해한다면 이 보다 더 바람직한 일은 없을 것이다.

k***9 2005.11.30. 신고 공감 4 댓글 3
리뷰 총점 종이책
신고전주의의 고갱이를 보여주다
"신고전주의의 고갱이를 보여주다" 내용보기
신고전주의만큼 대표작의 유명세에 비해 찬밥 신세인 미술 사조도 없을 것이다. 자연주의처럼 미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름은 들어 보았을 정도로 유명한 대표작이 없으면 억울하지나 않지, <나폴레옹의 대관식>,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마라의 죽음> 등 누구나 한 번은 보았을 법한 그림이 여러 점 있는데도, 막상 신고전주의 자체는 꽤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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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전주의만큼 대표작의 유명세에 비해 찬밥 신세인 미술 사조도 없을 것이다. 자연주의처럼 미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름은 들어 보았을 정도로 유명한 대표작이 없으면 억울하지나 않지, <나폴레옹의 대관식>,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마라의 죽음> 등 누구나 한 번은 보았을 법한 그림이 여러 점 있는데도, 막상 신고전주의 자체는 꽤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어떤 시대보다도 권력과 밀접한 관계에 있었고, 권력의 후원을 대대적으로 받았다는 것이 후대에는 독으로 작용한 것이다. 신고전주의만큼 권력을 정당화하는 주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낸 미술 사조는 없다. 부분적으로는 당대의 사건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작품으로 만들기 시작한 사회적 변화와도 관련이 있지만 말이다.

 

<다비드의 야심과 나폴레옹의 꿈>은 신고전주의의 권력지향적인 성격을 변명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곧이곧대로 들이댄다. 다비드의 그림이 어째서 개인보다 국가를 우선하는 메시지를 그려냈는지, 고대 시대를 배경으로 한 그림에서 당시 프랑스의 남성 위주 사회를 어떻게 반영했는지, 그리고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황제 시대를 나타낸 대표작들을 연이어 그린 다비드가 어떤 자세로 그 작품들을 그렸는지를 말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 우리나는 의외의 일면과 마주하게 된다. 신고전주의 전반은 어땠건 적어도 대표 화가인 다비드는, 권력을 좇은 게 아니라 시대를 좇았던 것이라는 점을 말이다.

 

다비드는 당대 시대의 흐름에 충실했고, 급변하는 시대 정세에서 활발하게 정치에 참여한다. <마라의 죽음>은 프랑스 대혁명에서 다비드가 어떤 입장을 취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저자 말마따나 목욕하다가 살해당한 마라를 순교자의 죽음으로 승화시켜 그려낸 다비드는, 암살자의 편지 내용을 살짝 왜곡하는 등 세심한 '조작'도 잊지 않았다. 다비드의 유명작들은 지극히 정치적이다. 심지어 고대 로마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도, 당대에 통용되던 정치적 메시지를 담아냈다. 적어도 감상자들은 그런 메시지를 다비드의 작품에서 읽어냈다. 다비드 작품의 변천사를 당대 역사와 연계해 보면 이렇게나 흥미로울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보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제목이 보여 주듯, 이 책은 비단 다비드뿐만 아니라 나폴레옹에 대해서도 적지 않은 비중을 할애하고 있다. 나폴레옹은 교육과 선전의 효과를 예리하게 꿰뚫어보고 있었고, 프랑스 대혁명의 제일선에서 참가했던 다비드를 황제 전속 화가로 기용한다. 나폴레옹이 다비드에게 어떤 그림을 주문했는지, 다비드가 나폴레옹을 주제로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는 신고전주의 시대 권력이 어떤 회화를 원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신고전주의는 당대의 권력층을 직접적으로 옹호하는 그림을 다수 그렸기 때문에 기술적 성취와 유명세에 비해 폄하되었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당대 권력층의 예술적 이해관계를 도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p*******1 2010.06.13.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