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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 서양 제국주의는 제 세력을 한없이 팽창하기에 바빴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부작용이 부작용인지 대다수는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살았는데, 지배를 당하는 입장에 놓인 이름 없는 이들과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사고를 지닌 이들만이 현실이 잘못되었다며 변화를 부르짖을 뿐이었다. 그 과정에서 고려된 것이 지금은 실패로 여겨지곤 하는 사회주의이다. 자본주의가 충분히 발달한 국가에서 혁명이 도래해 궁극적으로 프롤레타리아가 권력을 손에 쥐게 된다는 게 이론의 핵심이었는데, 변화는 일어날 듯하면서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반동이 드셌고 그 과정에서 오래전에 이미 사망선고를 받았어야만 하는 전제세력이 기승을 부렸다. 혼란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차라리 절대권력을 꿈꿨다. 정치적, 경제적 혼란이 뒤엉키니 사람들은 일단은 제 자신의 삶이 안락하길 바라며 그릇된 믿음을 가꾸기 시작했다. 이성의 힘으로는 도무지 생각할 길이 없는 나치즘, 파시즘에의 동조가 바로 그것이었다. 1879년 태어난 레온 트로츠키는 세상의 변혁에 휘말린 운명을 타고난 인물이었다. 그가 성년이 되는 1900년대 초반은 마르크스의 이론을 현실에서 실천해보려는 이들의 움직임으로 전세계가 들끓던 시대였다. 러시아는 주변국과 비교했을 때 결코 발달했다고 볼 수 없는 경제상태와 정치상태를 고수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현실을 고민하는 뜨거운 가슴을 지닌 사람들은 그 땅에도 많았다. 처음에 트로츠키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에 자신이 일조할 수 있으리라는 일종의 영웅심리를 가지고 있었다. 젊은이라면 역사의 진보에서 한 몫을 담당하길 바라는 낭만적인 혁명주의를 어느 정도 견지하기 마련인데, 그 역시도 풋내기적 사고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이내 달라졌다. 직업혁명가가 되었고 정치범이 되었으며 혁명을 위해 살았고 결국 혁명으로 인해 죽었다. 인생 전반이 혁명이었던 인물이 바로 트로츠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헌신에 어울리는 대접을 이제껏 받아본 적이 없다. 역사는 권력을 손에 쥔 자의 몫으로 언제나 남는다. 성공하면 혁명이요 실패하면 쿠데타가 되는 것이라 했던가. 러시아의 역사에서 승자는 스탈린이었다. 그는 이론에 부합하지 않는 현실을 지닌 러시아에서의 혁명에 제 모든 것을 걸었다. 볼셰비키와 멘셰비키로 세력이 갈릴 때 그는 되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두 세력 사이에 서서 외로이 통합을 위해 노력했다. 그의 조직 능력은 탁월했다. 따라서 코민테른은 그의 재능을 높게 샀다. 하지만 어느 쪽에도 완벽히 속하지 않은 그의 사상적인 뿌리는 결국 그를 고립으로 몰아갔다. 이 책에서 만나볼 수 있는 연속혁명론과 스탈린주의에 대한 분석, 전략과 전술 그리고 당과 계급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당대로서는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고 한계를 지닌 이론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의 주장들은 스탈린과 그 추종자들에게 발밑에 든 가시와도 같은 것이었을 뿐이었다. 러시아와 중국, 앙골라, 쿠바, 베트남,... 연달아 시도된 변화에서 주체는 프롤레타리아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프랑스 혁명처럼 부르주아가 주체였던 것도 아니었으니, 당시로서는 이를 설명할 수 있는 적절한 프레임이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스탈린 체제에 대한 설명 부분은 더더욱 용인되기 힘든 것이었다. 권력을 손에 쥔 자들은 자신의 행보를 사회주의를 향해 있는 어드매라 주장했을 것이다. 하지만 트로츠키는 스탈린 체제로부터 파시즘의 또 다른 얼굴을 발견하고야 만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에 그는 아마도 깊이 동조했을 것이다. 이런 이론적인 기초 위에서 그는 이상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던 제3인터네셔널을 해소하고 제4인터네셔널을 창립하기 위한 움직임에 박차를 가했다. 쇄신의 움직임이 필요했던 것은 옳지만, 고립에 고립을 경험하던 그의 주장에 동조를 하는 세력은 그리 많지 않았다. 희망의 씨앗이라 말하기엔 너무도 허약했던 제4인터네셔널은 그의 비극적 결말을 많이도 닮아 있었다. 러시아는 이제 더 이상 사회주의가 아니다. 붕괴한 체제로 인해 러시아의 젊은이들은 술과 마약에 찌들어 제 젊음을 허비하고 있다. 중국 역시 여느 나라보다도 자본주의에 깊이 제 발을 담근 상태이다. 노동자가 주축이 된 혁명에 대한 기대감 역시 현실에서는 품기 힘든 것이 되어버렸다.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듯해 보이는 중국의 경우 노동계급은 투쟁에서 대중을 지도하는 어떠한 역할도 수행치 못했다. 그의 순진한 믿음을 현실은 매정하게 배신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잊지 않고 있다. 어쩌면 이는 그가 실패자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권력을 장악한 혁명가들은 이후 철저히 권력의 노예가 되어버렸고 ‘독재자’의 지독한 표상을 대표하는 인물이 되어버렸다. 반면 트로츠키에게는 그리 될 기회가 전혀 주어지지 않았다. 그는 혁명의 순수성을 상징하는 인물로 영원히 역사에 남는 행운 아닌 행운을 거머쥐었다. 실패자였기에 그는 마르크스의 진정한 후계자로 영원히 불릴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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