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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여행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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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여행의 기록       여행은 사진으로 기록된다. 관광지에 가서 찍는 한 컷의 사진을 보며 여행 중이던 그 순간으로 되돌아간다. 사진에 나온 나와 배경에 보이는 관광지 혹은 풍경들에는 그곳에 오기 까지의 기억과 다시 다음 장소로 이동할 때까지의 추억이 담긴다. 하나의 표정으로 박제되지만 그 표정들 앞뒤에는 언제나 이야기가 남겨진다. 때로는 잘못 나온 사진이 여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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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여행의 기록

 

 

  여행은 사진으로 기록된다. 관광지에 가서 찍는 한 컷의 사진을 보며 여행 중이던 그 순간으로 되돌아간다. 사진에 나온 나와 배경에 보이는 관광지 혹은 풍경들에는 그곳에 오기 까지의 기억과 다시 다음 장소로 이동할 때까지의 추억이 담긴다. 하나의 표정으로 박제되지만 그 표정들 앞뒤에는 언제나 이야기가 남겨진다. 때로는 잘못 나온 사진이 여행을 선명하게 한다. 잘못 찍었던 순간의 상황들, 다시 찍으려고 카메라를 만지작거린 기억은 사진이 잘 나오기 까지 추억이 기록되는 하나의 방법이다.


  여행을 기록하는 또하나의 방법이 있다. 노래를 들으며 여행하는 것이다. 여행을 준비할 때면 하나의 앨범을 준비한다. 평소에 좋아하던 앨범을 고를 수도 있지만 여행을 시작할 때는 꼭 새로운 앨범을 찾는다. 여행지에서의 추억이 온전히 기록되게 하기 위해서다. 관광지를 들를 때, 목적지에서 다음 목적지로 이동할 때면 노래를 듣는다. 일행이 같이 가는 경우가 아니라면 귀에는 거의 이어폰이 꽂혀있다. 노래와 함께 사진을 찍기도 하고 가만히 앉아 풍경을 바라보기도 한다. 고요한 풍경을 바라볼 때면 귓바퀴를 감싸는 노래가 풍경을 덧칠한다. 노래의 색으로 덧입혀진 순간은 나의것이 된다.

 

  올해 1월에 여행을 떠났다. 4주간 배낭을 매고 홀로 유럽을 떠돌았다. 여행지를 돌아다니는 동안 친구가 되어준 건 노래들, 정확히 말하자면 앨범 한 장이었다. 이병률의 컴필레이션 앨범 <끌림>. 같은 제목의 책을 보고 여행 직전에 앨범을 샀다. 여행하는 동안 이름을 모르는 가수들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탱고, 팝발라드 등... 4주 동안 앨범에 들어있는 33개의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다. 새로운 풍경이 나올 때 마다 앨범에 있는 노래들로 덧칠해갔다.

 

  여행이 끝나고 몇 개월이 지났다. 일상이 너무 질퍽하다. 하나의 일이 끝난 뒤에는 또다른 일이 밀려온다. 때로는 맹렬한 기세로 방파제를 덮치는 파도처럼 견디기 힘든 일들이 몰려온다. 일상(日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것들이다. 그럴 때면 집에 돌아오는 길에 노래를 듣는다. 내가 기록한 여행의 기록을 가만히 되짚어 본다. 어두운 밤길을 걷고 있자면 몇 개의 풍경이 떠오른다. 이탈리아에서 만났던 집시의 노래가 생각나고 프라하에서 봤던 야경이 되살아난다. 노래는 그림을 그려주지 않지만 온몸으로 그때를 느끼게 해준다.

  최근 며칠간 <끌림>을 자주 듣게 된다. 일탈하지 못하는 나의 쓸쓸한 반항이리라. 그래도 이 앨범이 있어 다음 여행을 생각하게 된다. 다음에는 어떤 노래를 가져갈까. 그곳에서는 어떤 색이 입혀질까. 이병률의 <끌림> 하나의 기록이다, 여행이다, 쉼이다. 이 앨범에 심보선의 시를 바친다.

  

 

 결점 많은 생도 노래의 길 위에선 바람의 흥얼거림에 유순하게 귀 기울이네 그 어떤 심오한 빗질의 비결로 노래는 치욕의 내력을 처녀의 댕기머리 풀 듯 그리도 단아하게 펼쳐놓는가 노래가 아니었다면 인류는 생의 완벽을 꿈도 꾸지 못했으리 강물은 무수한 물결을 제 몸에 가지각색의 문신처럼 새겼다 지우며 바다로 흘러가네 생의 완벽 또한 노래의 선율이 꿈의 기슭에 우연히 남긴 빗살무늬 같은 것 사람은 거기 마음의 결을 잇대어 노래의 장구한 연혁을 구구절절 이어가야 하네 그와 같이 한 시절의 고원을 한 곡조의 생으로 넘어가야 하네 그리하면 노래는 이녁의 마지막 어귀에서 어허 어어어 어리넘자 어허어 그대를 따뜻한 만가로 배웅해주리 이 기괴한 불의 나라에서 그 모든 욕망들이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새카만 재로 소멸하는 그날까지 불타지 않는 것은 오로지 노래뿐이라네 정말이지 그러했겠네 노래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생의 완벽을 꿈도 꾸지 못했으리

                         심보선, <노래가 아니었다면> 전문

 

g********1 2011.07.0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