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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작가들의 중편을 부담없는 가격가 가벼운 제본으로 담고 있는 소설향 시리즈가 있다. 몇년 전 이 출판사는 '한국 현대 소설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중편 소설의 가치를 되살려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단편의 미학과 장편의 스토리텔링을 다시 선보이고자 (출처 소개글)' 5권을 특별판으로 개정 출판했는데, 그 중 하나다. 얼마 전 읽은 백민석의 <죽은 올빼미 농장>과 표지가 비슷해서 찾아보았더니, 이 시리즈의 소설이었다. 여러 개의 문학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최초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는 평가만으로도 일단 한 번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겠다. 특별판 말고도 이 소설향 시리즈가 좋은 게 일단 중편 분량이라 단편보다는 깊이있는 작가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데다가, 분량이 짧으니 그닥 궁합이 안맞는 작가라 하더라도 끝까지 읽을 수 있다. 유튜브 영상과 SNS 등을 주요 매체로 접하게 되어 손글씨 쓰기는 물론 글자만 길게 읽는 일이 점점 힘들게 되어 가는 세대에 중편 소설은 좋은 선택이다. 짧고 가벼운 면에서야 단편이 더 나을테지만, 이상하게도 단편이 제공하는 텍스트에서 집중할만한 서사를 발견하기 힘든 경우가 종종 있어서.. 아무튼 이 시리즈 중의 하나인 죽은 올빼미 농장으로 만난 백민석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어서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도 찾아 읽게 되었다는게 중요한 사실이다. 정영문의 하품을 읽으면서 이 작품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이유중 하나가 한국 소설 중에서도 형식적으로 파격적이어서가 아닐까 싶었다. 읽었지만 작품이 어떤 이야기, 어떤 서사를 담고 있는지를 옮기기는 어려울 거 같다. 왜냐하면 그런 게 없으니까. 이 작품은 예전에 조직 폭력배나 사기꾼이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두 남자가 우연히 길에서 만나 주고받는 만담같은 대화로 시작해서 그 대화로 끝난다. 배경이나 심리 묘사가 없고, 다른 등장 인물들도 전무하여 오직 대화로만 이루어진 이 소설은 마치 소극장의 연극을 보고 있는 듯하고,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들을 연상시킨다. 오로지 두 사람의 대화 속에 모든 것이 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의 대화가 과거의 어떤 서사를 말하는 게 아니라 그저 서로를 깎아내리기에 바쁘다. 어찌 보면 그냥 아주 친한, 너무 친해서 아무 격의도 없고 그저 서로를 깎아내림으로서 자족하는 두 사람의 농담 같은 대화를 보는 듯하지만, 화가가 있고 화자의 생각속에서 그들이 하는 말은 농담이 아니다. 그 대화도 자네 그런가 하는 노인들의 대화체로 이루어져 있어서, 무슨 번역서를 읽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게다가 대화에 어떤 맥락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직역위주의 번역서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서로 맥락 없는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하품은 지루하고 권태로울 때 나온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그들의 대화는 일상의 권태를 그대로 반영한다. 한 때, 아무런 죄도 없는 사람을 죽이는 것을 직업으로 혹은 낙으로 여기며 살았던 자신들의 과거를 희화화하는 순간마저도 두 사람이 만난 이 시간의 비루함을 이기는 방법은 서로를 향한 모욕과 무시 밖에 없다는 듯 두 사람의 대화는 자신의 미러와 같이 똑같이 닮은 상대방을 향해있다. 내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던, 그것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웠던,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이, 다시 말해,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다는 명백한 사실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이 옳을, 이 삶, 그것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나 마찬가지인지도 모르겠어. 그 시작에서부터 무산된 이 삶은 살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인지도 모르지. 내게 있어 삶이 의미있었던 것은 그것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한에였을 뿐이야. 그가 말했다. 나는 누가 삶의 의미를 따지면 하품이 나온다. 얼른 그 주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다 쓴다. 내가 저 문장을 만났을 때, 그러니까 '내게 있어 삶이 의미있었던 것은 그것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한에였을 뿐'이라는 멋진 문장을 만났을 때, 서로에 대한 모역만이 주가 되는 의미없는 소설이라 할지라도 서사 없는 소설이라 할 지라도, 의미없음을 확인하는 의미가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어쨌든 두 사람의 대화는 서로를 헐뜻고 무시하면서도 서로에 대한 증오나 혐오가 묻어있지는 않다. 둘이 함께 같이 살 생각까지 했다는 대화가 나오는 걸로 봐서 그들은 참을 수 없는 상대방의 존재가 맞지 않는 옷 같이 착한 아내와 함께 사는 것보다 자신들의 삶에 더 적합하다는 데까지 생각이 이르렀던 모양이다. 그들은 그 비루함에 있어서 서로를 구분하지 못할만큼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 어떤 때는 우리가 서로 구별이 안 갈 정도로, 한 사람으로 여겨지기까지 했어, 우리의 비루함이, 우리를 우리답게 만들어주었던 비루함이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었던 것 같아, 그가 말했다. 게다가 두 사람의 대화는 때로 푸흡 하고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는 만담 수준에 다다른다. 둘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 상대방이 하는 말은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대화는 끝나지 않는다. 이러한 만담 속에 그들이 이제 둘을 하나로 묶었던 비루함 마저도 박제된 과거가 되어 정체되고 고여 있다. 그들은 '아무런 문제도 없는 상태가 계속되는 게 두'렵ㄱ, '변화하지도, 진화하지도 않는, 전개도 반전도 없는, 다만 끈질기게 유지되는 생이 있을 뿐'이다. 그 '운명의 매듭을 저주 속에서 풀어가고 있는'데, 때로 이러한 중얼거림이 서로 대화가 아니라 둘이 서서 각자 중얼거리는 인상도 받는다. -- 내 모습을 두고. 자네의 얘기가 나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조금도 자네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는 모양이지, 내가 말했다. -- 미안하지만 그렇다네, 그가 말했다. -- 괜찮네, 자네의 그런 점이 마음에 드네. 내게는 내가 원할 때 나를 놀려주는 사람마저도 없거든, 내가 말했다. -- 내가 자네를 노렸다고, 자네의 목숨을, 그가 말했다. 그는 귀가 나보다도 더 먹어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계속해서 서로를 향한 모욕을 계속한다. ? 나의 가장 좋지 않은 점은 뭔가, 그가 말했다. ? 가장 좋지 않은 건 자네의 좋지 않은 점 중 어떤 것이 아니라 바로 자네 자체라는 생각을 했네, 내가 말했다 사실 친한 친구들끼리 이런 농담은 크게 모욕거리가 되지 않겠지만, 그게 진담일 때는 사정이 다르다. 그둘이 상호 인터랙티브한 대화를 하고 있을 때는 서로를 모욕하고 무시할 때다. 나는 자네와 함께 있는게 수치스럽다고 말하니, 수치를 느끼고, 그 수치를 더욱 더 잘 느끼기위해 얼굴을 감싸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의 '수치가 만족스럽지 않았고 더욱 더 잘 느끼기를 바랐다'. 그들이 우연히 만난 곳은 동물원이었는데, 그들의 대화는 화자의 상대방이 코끼리 우리를 향하면서 끝난다. 그 일그러진 풍경을 자신의 여름의 모습으로 깨달으며, '하루로부터 다른 하루에까지에서 또 다른 하루로 옮겨 가는 것이 허공을 내디디는 것처럼 아찔하게 느끼며' 글은 맺는다. 밤과의 거리는 너무도 멀고, 내가 그것으로 다가가지 않으면 그것과의 거리는 결코 좁혀지지 않을 것 같군, 하고 중얼거리며 다시 눈을 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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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크기~ 하지만 여러 가지 상상과 생각을 마구마구 하게 만들기 때문에 그것에 특별한 매력을 느끼고 마주할 수 있었던 책 [하품]!!! 정영문 작가의 글줄의 힘까지도 이 작지만 강한 여운과 의미를 남기는 이야기들로 인상적으로 만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게 만들어주는 책이 된다고 할 수 있겠어요~
작은 크기여서 어디서든 휴대하기가 참 편한 이 책이기에 가방에 넣고서 이곳저곳 가고 싶은 곳, 또 읽고 싶은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장소에서 꺼내서 보고 또 보곤 하는데 시간과 장소, 그때 그때마다의 기분에 따라서 이 책을 마주하는 의미가 참 남다르다는 생각을 길고 또 길게 해보게 만들어주니 더욱 특별한 책으로 다가오곤 합니다.
그래서 이 책에 손때가 묻을 만큼 이렇게도, 또 저렇게도 만나고 또 많은 것들을 느껴보려 하고 그렇게 하게 됩니다. 그리고 더불어 많은 지인들에게도 즐겁게 소개해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게 만드는 책이 되기도 하고요~
이 책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면, '한여름'이라는 시간적, 계절적 배경이 지금의 독서 시절과도 잘 맞아 떨어져서 그 기분을 만끽하는 느낌을 가져볼 수 있기에 더욱 좋더라고요~ 더불어 지난한 '한여름' 가운데 일상이 가지는 나른함과 권태로움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고려해볼 수 있어서 더욱 특별하다는 생각을 저절로 가질 수 있었습니다.
'여름날'에 느끼는 힘겨움 속에서 대화를 나누게 되는 시간~ 그 대화가 그렇게 행복할리가 없지 않은가라는 예측처럼 서로에게 상처를 주게 되는 이야기들로 난무하기에 더욱 나의 이야기가 되는 느낌으로 이 책의 스토리에 빠져들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권태로운 일상과 불평불만이 가득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 그것이 나른한 문체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작가 특유의 삐딱하게 바라보기가 반영된 문체로 다가오기에 낯설지만 그로 인한 희열감이 남다른 책 이야기를 만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특별한 여름날의 이야기들을 이 여름에 집중하여 깊이있게 들여다보기를 해볼 수 있는 시간을 던져주는 이 책에 감사하고 또 공감하면서 그 감동들을 절절하게 느껴볼 수 있어서 더욱 좋았습니다. 자신을 사뭇 돌아보게 해준는 시간을 선물받는 기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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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문 저의 『하품』 을 읽고 사람들의 삶을 바탕으로 작품을 그리는 작가들은 대단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내용을 가지고 특별하고도 멋진 작품을 만들기 때문이다. 어쨌든 우리 독자들은 이 작품들을 통해서 그 작품을 만난 순간부터 이렇게 독후감을 쓰는 순간까지 함께 할 수 있다는 인연을 갖고 있다. 우선 이 소설은 서점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단권의 중편소설이다. 한국 현대소설사에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작품을 선보이고자 특별 판으로 출간한 작품이라고 한다. 한무숙문학상, 동인문학상, 대산문학상을 잇따라 수상하여 문학상 최초 그랜드슬램 달성으로 화제를 끈 저자의 중편소설이다. 내 자신 육십을 진즉 넘어섰다. 그래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온갖 여러 일들을 겪어오면서 나름대로 잘 순응하면서 이겨내 온 삶이었기에 소설 작품하면 솔직히 조금은 흥미와 함께 그래도 뭔가 확 끌리는 것이 있어야 하는 주제가 마음으로 다가선다. 이런 내 자신에게 최근 관심을 갖고 임하는 것 중의 하나가 인생 이모작이라는 것이다. 즉, 인생후반부에 대한 관심을 갖고서 열심히 준비하자는 마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이해하는 것이고, 그에 대한 방법으로 다양한 관련 교육과 함께 사람들을 아는 일이다. 이런 일환으로 이 책도 포함할 수 있다는 자체가 너무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 왜냐하면 우리가 보통 어떤 일을 하면서 하품이 나오는 경우에는 대개 자신의 몸 상태가 그리 좋지 않은 경우 등이다. 따라서 이런 경우 등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면 아주 특별한 체험의 시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내 자신이 부러 노력하지 않는 한 나와 다르지 않는 특별한 사람들의 삶을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하기란 쉽지 않는다. 작품 속에서도 “뭘 하고 있나.”,“내 인생을, 응시하고 있는 걸세.”,“못 하는 말이 없군.”등의 생각이 들 정도로 책의 크기는 손바닥만 할 정도로 작지만 다른 소설에 비해서는 조금은 특이한 모습을 느끼리라 믿는다. 동물원을 배경으로 하여 주인공인 '나'와 '그'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스토리로 되어 있다. 예약된 만남이 아니라 우연히 동물원에서 한때 알고 지내던 서로의 만남! 서로의 화합의 만남이기보다는 일방적인 반가움이었고... 그러나 앞뒤가 맞지 않는, 무의미한 대화는 끝없이 이어진다. 무의미한 말과 말이 주고받는 대화의 향연, 고독의 고백가로서, 뭔가 복잡다단한 현대에서 있을법한 특별한 주제의 글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내 자신 우리 속에 내재된 다른 인간적 숙명 속에서 '새로운 생성'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시간 나는 대로 반복해서 읽으리라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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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 어쩌면 작가의 의도된 행동은 아닐까 생각될 정도이다. 정영문 작가의 <하품>은
1999년에 출간된 소설이며, 다시 우리 곁에 등장하였다. '나'는 이유없이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필이면 그 날, 동물원에서
우연히 알게된 사내를 만나게 된다. '나'는 그 상황에서 빠져 나와야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상대방은 나와 대화하지 않으려는
'나'의 모습에 대해 이기적인 행동이라 말하고 있었으며,'나'는 그와 대화를 시작하게 된다 여기서 '나'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상대방과 대화 하지 않고 빠져 나온다면 상대는 나를 이기적인 사람이라 생각할 것이다. 소설 속에서 '나'는 미움 받을
용기가 없엇으며, 의도치 않게 상대와 대화할 수 밖에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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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품>이란 책은 크기가 손바닥만 합니다. 겉표지가 반투명으로 비치는 종이로 싸여져 있습니다. 예전 국민학교 시절엔 기름종이라고 해서 국어 교과서에 붙여서 따라쓰기 연습을 했었다는... 기름종이로 이 책을 감싼 것이 의도된 설정이라면 매우 훌륭합니다. 얼핏 형태는 보이지만 안개처럼 희미하게 보이는 효과. <하품>은 정영문 작가의 소설입니다. 스토리는 단순합니다. 배경은 동물원, 등장인물은 단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 아침부터 기분이 이유 없이 별로였던 '나'는 우연히 동물원을 갔고, 그 곳에서 한때 알고 지내던 '사내'를 만납니다. 그 사내는 '나'를 반갑게 아는 체 하지만 '나'는 그가 반갑지 않습니다. 무시하는 '나'를 붙잡는 그. 두 사람은 벤치에 앉아 시덥잖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서로 무시하는 대화가 끝없이 이어집니다. 이를테면, 그는 "그래,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지, 그런데 그게 언제 였지?" 같은... 이토록 답답한 대화를 그들은 왜 하고 있는 건지... 처음에 이 책을 펼치기 전에는 너무 얇아서 금세 읽겠구나 싶어서 잠자리에 펼쳤다가 두어 장을 넘기지 못하고 하품을 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결국 세 번에 나누어 다 읽어냈습니다. 그리고 책 뒷편에 실린 작품해설은 읽지 않았습니다. 정영문 작가의 <하품>은 문학상 최초 그랜드슬램, 한무숙문학상, 동인문학상, 대산문학상 수상 작품이라는 것을 다 읽고 난 뒤에야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수상작품이라고 해서 이 소설이 더 훌륭해보이거나 더 가치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것은 심사위원이나 평론가들이 할 일이고, 책을 읽는 독자는 그저 책을 읽으면 될 일이니까. 자, 이제부터 한낱 독자의 소감을 적어보겠습니다. <하품>은 제목 그대로 하품을 유발하는 소설입니다. 재미 위주의 소설을 원한다면 절대 보지 마세요. 불면증이 있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소견일뿐, 심각한 불면증은 의사에게 진료받으시길. 그런데 왜 수면유도제와 같은 책을 끝까지 읽었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마치 소설 속의 '나'와 같은 심정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소설 속의 '나'는 우연히 그를 만났고, 원치 않는 대화를 이어가면서 그를 비난하고 무시하지만 점점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그들은 과거에 함께 일한 적이 있었고, 그때도 마음은 맞지 않았지만 손발은 잘 맞았던 훌륭한 짝패였다고, '나'는 말합니다. - 어떤 때는 우리가 서로 구별이 안 갈 정도로, 한 사람으로 여겨지기까지 했어, 우리의 비루함이, 우리를 우리답게 만들어주었던 비루함이 우리를 하나로 묶어 주었던 것 같아, 그가 말했다. (29p) 딱 이 느낌입니다. 내가 이 책을 끝까지 읽은 이유. 그들의 비루함을 비난하면서도 나라는 사람 역시 내 안의 비루함이 싫어서 그들을 밀어낸 것이 아닐까라는. 우리는 멋진 영웅이나 신나는 모험 이야기에 끌리지, 이런 비루한 대화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새로울 것이 없는 이야기, 오히려 내 안의 비루함을 끄집어내는 이야기라서. 소설 속의 '나'는 그와 헤어지면서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다시는 자네를 보고 싶지 않네."라고 말합니다. '나'에게는 그와의 만남이 '한 눈에 들어오는 이 흐릿한, 일그러진 여름 풍경' 같기 때문에. <하품>은 소설 속의 '나'처럼 투덜대면서 읽게 되는, 그러나 한 번 읽게 되면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는 그런 소설입니다. 그건 마치 우리의 일상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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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하품’이라는 중편소설이 실려있는 책이다. 중편소설은 단편소설보다는 내용이 다채로우면서도 장편소설처럼 길지 않아 부담을 덜 갖고 읽을 수 있는 길이의 소설이다. 흔히 소설은 기승전결에 다양한 장소와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 소설엔 단 두 사람만이 존재 한다. 물론 그 대화 안에는 다수의 사물이나 사람이 등장하지만 일단 화자는 두 사람이다. 두 사람의 대화만으로 한권이 중편소설이 진행된다고 보면 된다. 한 장소에 두 사람의 대화내용으로 시작해서 끝나는 이 소설은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대화의 소재나 내용이 매우 요상하면서도 찝찝하고 도대체 두 사람은 어떤 사이인건지 궁금함을 자아낸다. 깊이 있게 많은 뜻을 전달하려는 것 같지만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어느 오후 동물원 가는 길에 아는 사람을 만나 잠시 벤치에 앉아 나누는 만담같이 어지러운 대화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 이 소설은 소설향시리즈 중 한 작품으로 쓰여진 시기는 1999년이다. 소설향시리즈 중 몇 작품을 읽어 보았는데 다소 내용이 엽기적이고 퇴폐적인 경우도 있었다. 이 작품도 노멀하지는 않다. 일단 형식부터가 그렇고 액션이 없이 한 장소에 머물며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 내용이나 감정선이 이렇게 다채로울 수 있다는 것은 기존의 소설과는 달리 나에게 산뜻한 느낌을 전달해 주었다. 끝부분에 해설을 실어놓아 소설의 이해를 돕지만 그렇게 깊은 이해를 하려면 인생을 더 살아야 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한번만 읽어서는 이해하기 어렵겠다는 느낌도 받았다. 하품을 할 정도로 지루한 대화를 이어가는 두 사람은 과거에 어떤 불길한 일에 함께 동참했던 것으로 보인다. 좋은 인연은 아니었던 것 같다. 말 같지도 않은 말을 서로 럭비공을 주고 받듯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 별 의미없는 말 같기도 하면서 핵심은 삶의 무료함을 말하는 것 같다. 죽지 못해 산다. 이미 반은 죽어 있다는 등 삶에 대해 무기력하고 무의미한 토론이 이어진다. 더럽고 이해하지 못할 행동들을 하면서 썩은 사과를 나눠먹는다. 차안과 피안을 오가는 대화내용 속에 어쩌면 둘 중 한 사람은 이미 죽어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신의 삶의 끝을 회상하듯 말을 하고 아니면 죽은 혼과 살아있는 백이 생전에 함께 했던 일에 대해 끔찍한 회고를 하는 내용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쉬운 내용은 아니다. 한번 읽어서는 이해하기 힘들고 저자의 다른 작품을 함께 읽어보며 작품세계를 천천히 탐미해 보는 것이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에 더 빠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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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참 맛있게 먹는데 나는 어쩐지 비위에 맞지 않아 반 도 못먹는 음식이 있다. 그날의 기분 탓 일 수도 있고 원래 내 취향이 아니라서 그럴 수 도 있지만, 이런 경우 기분 탓을 하기 보단 취향에 안 맞다고 단정하고 다시 찾지 않았다. 그러나, 삶에 있어 절대라는 장담은 하지 않는 것이 살아가는데 유리하다는 걸 알고부터는 여지를 남겨 둔다. '다음에 니가 먹을 때 한 입만 먹게 해 줘 봐~' 그래서 취향에 안맞았던 게 아니라 내가 제대로 그 맛을 몰라서 그랬구나를 알게 된 음식이 늘어가고 있다. 피(육즙이라고?^^)가 질질 흐르는 스테이크, 고약한 냄새로 썪은 걸 왜 먹지 싶었던 두리안, 코를 쥐어 짜면서도 또 먹게 되는 홍어... 정영문의 문학이 그렇다. 내로라하는 문학상이라는 문학상을 다 탄 작가인데 이 뭔가? 이건 어쩐지 재미가 없을 뿐더러 지리멸렬하기까지 하지 않나 싶었다. 내 취향이 아니어서 그런가? 싶으면서도 문학상을 줄 땐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텐데 내가 수준 높은 글을 읽어낼 줄 아는 깊이가 부족하거나 그의 문장 맛을 제대로 알기엔 그날 기분이 좋지 않아 그랬겠지..애써 속상함을 감추며 다음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드디어 '하품'이 내게로 왔다. 일단은 양이 많지 않아 질리지 않게 얇고 날렵한 모습으로! 오후의 동물원에서 우연히 만난 두 남자가 세 시 십사 분을 지나 네 시가 되기 전 헤어질 때까지의 이야기다. 이전에 잠깐 같은 일을 했었던(아마도 그 일이란게 청부살인 비슷한 떳떳한 일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두 사람이 지난날을 회상하거나 서로를 조롱하거나 의미없는 일상의 이야기로 대화를 이어 나간다. 주제도 없고 맥락도 없고 그때 그때 생각나는 일과 사람들과 자신들의 근황을 비 맞은 중처럼 중얼거리다가 맞받아 치다가 어두운 내면으로 침잠되어 간다.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도 하품을 하지만, 읽는 독자도 하품이 나올 법한 지리멸렬한 대화이고 극적인 사건이 없는 전개다.
그렇지만, 이 얇고 날렵한 책이 가진 무게가 만만찮음은 책을 읽을 수록 알게 된다. 휘리릭 넘어가는 책도 아니고 휘리릭 넘길 책도 아니다. '비루한 두 인간'이 서로를 멸시하고 조롱하면서도 끊임없이 서로를 위로하고 관심의 소멸에서 비껴 갈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썪은 사과를 나누어 먹고 코끼리에게 줄 강냉이를 아낌없이 내어 주면서 아직은 삶의 경계 안에 있는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 그들이 하는 대화의 대부분이 하품만 나오는 말꼬리 잡는 얘기라 할지라도 생각해 보자- 우리라고 누구와 거대담론으로 조국의 위기를 걱정하며 우국충절의 결의를 다진 대화를 한 적이 있었던가를! 누구에게나 자기가 하는 말이 자신에게는 가장 절실하고 중요한 일에 관한 것들이 아니겠는가? "아무런 문제도 없는 상태가 계속되는 게 두려워. 변화하지도, 진화하지도 않는, 전개도 반전도 없는, 다만 끈질기게 유지되는 생이 있을 뿐이지..." 그들의 중얼거림은 비루한 인간들의 무기력한 대화가 아니라, 깨달음의 경지에 올라선 선사들의 경전같은 말로 읽히기도 했다. 내가 무얼 읽었든 무얼 느꼈든 이전보단 훨씬 편한 마음으로 정영문의 작품을 마주했다는 것이다. '못하는 말이 없다'고 핀잔을 받을 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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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색다른 책을 만났습니다. 『하품』 '하품'이 주는 의미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기 전에 왠지모르게 '권태로움', '지루함'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특히나 이 소설, 중편소설이라고 하였습니다. 단편소설이나 장편소설은 많이 접해보았는데 사실 중편소설은 조금 낯설기만 하였습니다. 단편이 주는 짧지만 강한 여운에서 벗어나, 장편이 주는 긴 호흡과는 다른 무언가를 선사할 것만 같은 중편소설. 이 책을 빌미로 중편소설로의 매력을 느껴보고자 합니다. 책을 펼치자마자 등장한 두 남자. 권태로운 오후, 동물원에서 우연히 만난 그들의 대화가 시작됩니다. 그 상황에서 빠져나오고 싶은 '나'의 말과 행동. 그리고 그 둘의 서로를 무시하거나 비꼬는 대화 속엔 무료한 일상 속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빗대어져 있는 것 같아 읽으면서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았습니다. 특히나 저에게 인상깊었던 문장들. -나의 삶은 어느 한순간, 작은 충격에도, 아니, 아무런 충격이 없이도 완전히 무너져내릴 수도 있는 허술한 구조를 갖고 있는 것처럼 여겨져. 내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던, 그것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웠던,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이, 다시 말해,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다는 명백한 사실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이 옳을, 이 삶, 그것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나 마찬가지인지도 모르겠어. 그 시작에서부터 무산된 이 삶은 살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인지도 모르지. 내게 있어 삶이 의미 있었던 것은 그것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한에서였을 뿐이야, 그가 말했다. - page 60 ~ 61 -나는 삶과의 모든 투쟁에서 패배했어. 그리고 앞으로의 패배 또한 장담할 수 있어, 그가 말했다. 나의 삶에서 가장 성공적인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 패배지. 하지만 그 패배로는 뭔가가 모자란 듯한 느낌이 들어. 나는 마치 내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나쁜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는 기대로 살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 -이제 그만하게, 자네에게, 자네의 패배에 졌네, 자네는 자네의 힘이 닿는 한 나를 힘들게 하려는 것 같군, 내가 말했다. 나는 화가 치밀었다. - page 97 자신의 삶에 대한 회의적인 그들. 하지만 그들의 대화를 보면 그런 일상에서의 탈출을 하고자 몸부림치는 모습이 그려지는 것 같아 책을 읽으면서 왠지 그들이 안타깝게 느껴졌었습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또 만나세, 오늘처럼, 어제처럼, 어제의 어제처럼, 그 까마득한 옛날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이 장소에서, 그 시간에, 그래서 그동안 수없이 했던 얘기들을, 아니면 아직 하지는 않았지만 지금껏 한 얘기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얘기들을 하세, 할 얘기가 도무지 없을 것 같지만 또 있겠지, 그가 말했다. -아니,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다시는 자네를 보고 싶지 않네, 내가 말했다. - page 106 또다시 반복될 무료하고 지루한 일상. 그 속에 그들의 이야기는 '하품'이 되어 우리에게 전달되었습니다. 그래서일까. 저도 그들에게 이야기를 전합니다. -나도 자네들을 보지 않길 바라네. 왠지 우리들의 모습, 나의 모습이 그려지는 것 같아 안타까웠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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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오려고 할 때나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이 무료할 때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이 책은 길을 가던 두 인물의 만남으로 이어지는 거의 궤변스러운 이야기들을 또 한편으로는 작중 화자가 두 인물이지만 실제로는 한 사람이고 그이의 내면속 삶을 초월할 수는 없지만 초연하게 삶을 살아갈 수는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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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소설과 친해지자는 계기로 기세좋게 펼쳐 든 책! 단편보단 많은 분량이었지만(단편은 보통 예닐곱개씩 묶여 발간되니까~) 도리어 시집정도의 만만한 두께는 나를 더 방심하게 만들었다. 허나 첫 장부터 내용이 예사롭지 않다. 언제가 배우기는 했었나 싶을 정도로 어렴풋이 기억나는 부조리극?의 느낌과 흡사했다. 이 책은 소설임에도 한정된 공간에 두명의 대화가 주를 이루기 때문에 마치 희곡같은 기분이 든다. 연극으로 만들면 마니아층이 여러번 볼 것 같은 느낌의 희곡...... 녹색 벤치의 양 끝에 걸터 앉은 두 늙은 남자의 황당무계한 대화! 대화가 진행될수록 뭔가 자꾸만 허물어 지는 느낌들...... 허나 내 입장에선 이게 대체 뭔소린지 맥락이 잘 안잡혔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희곡 '인간'도 두 남녀가 나오는데... 이상하네... 그건 참 잘 읽혔는데...... 결론적으로 나에겐 어떤 부조리극이나 시집보다 더 어려웠다. 비교하자면 시 가운데서도 '이상'의 시(오감도)를 접했을때처럼 당황함 + 난감함에 사로잡혔다. 역시나...... 저자는 서울대 심리학과를 졸업했다고 한다. 심리학 전공... 아! 그래서 이런 책을 쓸 수 있었구나......
처음에 이 책을 읽는 내내 말리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하며 읽어서 인지 어지럽기만 했다. 도저히 서평을 쓸 수 없는 상태였다! 하는 수 없이 다시 책을 펼친다. 헌데 이게 웬일? 두번째 펼쳐드니 부답감이 조금 가라 앉더니 은근 재미까지 있는게 아닌가? 말장난 같은 대화들이 머릿속에서 유영할때면 내가 연극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 배에 힘을 딱 주고 크게 읽었다. 그랬더니 진짜 장난처럼 읽었더니 술술 읽히는 것이 아닌가? 신기했다.
낙타와 타조의 '타'를 기반으로 우스꽝스럽다는 말도 안되는 공통점을 찾으며 두 등장인물이 닮았다고 우길때는 진짠가? 싶어 검색창을 돌리기도 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마치 아는 것처럼 모르는 체를 한다는 표현은 우리들의 삶과 참 많이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자우리에 팔을 집어 넣었다 동물원지기에게 걸려 된통 욕을 들은 이야기나 노래를 부르며 요요를 능숙하게 다루는 아이의 뒤통수를 갈겨 장난감을 빼앗는 일화는 시큰둥하게 재밌었다. 하지만 요요를 뺴았으며 전혀 모르는 노래가 슬프게 여겨져 무작정 무찔러야 한다는 압박에서 한 행동이라는 고백은 전혀 시큰둥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는 이런 적대감을 본능적으로 몸속 깊이 품고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렇기에 아주 작은 충격, 아니 어쩌면 전혀 충격이 없음에도 어느 순간 무너져 내려버리는게 아닐까? 문득 맨 첫장 초고 후 작가의 말이 가슴에 맺힌다. 나는 나를 허물며 나의 허물어짐을 구축해가는 걸까, 아니면 그 허물어짐과 함께 허물어지고 있는걸까, 그리고 그것들 사이에는 어쩐 차이가 있는 걸까......
완전히 도리를 다하며 살 수 있는 게 아니라면 꼭 도리를 다하며 살 필요가 없다는 말도 기억에 남는다. 콧털을 뽑으며 이런 말을 내 뱉을 수 있는 그같은 사람이라면 도리에 얽매이지는 않겠지만 나는 완전한 도리에 묶여 나를 가두고 산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비록 뽑을 코털은 없지만 어찌할 도리없이 뽑을 수 있는 다른게 뭐가 있지? 어딜 뽑아도 상관없는거 아닐까? 마찬가지로 중력은 모든것을 지배하고 있다해도 이미 일어난 일,일어날일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거나 일년에 하루만 만우절이 아니어야 한다거나 하는 내용들은 이상하게도 공감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삶과 죽음에 관한 생각들은 확살하게 나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할만하겠다. 두려운 결말을 끝없이 지연시키는 것이 삶이라든지... 삶과 죽음이라는 추가 실린 평행을 이루고 있는 저울 한쪽에 모래알 하나가 더해져 쓰러지는 것이 죽음이라든지 하는 것! 그래 삶과 죽음은 모래 한톨의 차이였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