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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의 빈터> 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나는 사진작가 배병우의 작품들이 떠올랐다. 검은 곡선의 나무 그림자, 그 사이로 자욱한 안개, 동그랗게 뚫린 하늘, 그 아래 동그란 터. 숲 속에 있는 빈터라면 응당 그런 느낌이지 않을까 하는 이미지가 날아와 박혔다. 하지만 저자는 불현듯 펼쳐진 북유럽의 환상적인 전나무 숲에서 영감을 얻어 이 소설을 시작했다고 한다. 시작부터 어긋나는 것일까? 아니다. 우린 저마다 서로 다른 빈터를 가졌을 뿐, 영영 멀리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이야기는 공간을 만드는 일로 시작된다. 이제 막 동거를 시작하려는 진희와 민구는 오래된 시골집의 낡은 헛간을 고쳐 욕실을 만들려고 한다. 푸른색 타일을 고르고, 바닥과 벽을 고르게 정리했다. 욕조도 사두었다. 그들은 적어도 욕실에 있어서만큼은 희망에 가득차 있다. 어느날 앞산 빈터에 정체 불명의 인물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공간에 대한 생각이 떨쳐지지 않는다. 진희와 민구는 외부의 시선이 차단된 그들만의 공간을 원했고, 그 한가운데 욕실이 있었다. 욕실은 끝내 완성되지 못하는 결말을 맺고 마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절망적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타일이 반쯤 붙은 그 곳에서 그들은 좋아하는 온도로 몸을 담그게 되니까. 빈터라는 공간에 대해서도 그렇다. 어느날 정체불명의 늙은 남자가 나타나 헤괴한 짓을 함으로서 그들의 공간은 충분히 위협받는다. 하지만 낯선 남자의 정체가 드러나고 나서 그들은 봄이 오면 그곳에 전나무를 심어야 겠다고 다짐한다.
욕실과 빈터는 그들에게 있어 가장 안정적인 공간인 동시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지켜야할 마지노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삶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그 공간에 대한 희망을 버릴 수 없다. 울창한 전나무를 뿌리내리게 하는 것으로 생채기 난 희망을 다시 꿈꾸겠다는 의지가 단단하게 느껴졌다. “우리 내면의 황량한 빈터로 걸어 들어가는 일은 쉽지 않다.” 라는 작가의 말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안개가 자욱하던 내 안의 빈터에는 무엇을 뿌리내리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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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은편 전나무가 우거진 숲에 마음을 빼앗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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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빈터를 읽으며 집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미취학아동시절 내가 살던 방한칸짜리 집에서, 방 두칸짜리집으로 바뀌고, 동생이 태어나며 방 세칸짜리 집이되고, 마당이 있는 집이 되었다가 아파트로 되었다가, 그러다 독립을 하며 다시 방한칸이 되었다가 결혼을 하며 방 두칸이 되었다. 집은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인생의 흐름따라 집의 평수가 커졌다가 작아지기를 한다. 조금이라도 평수를 늘리기에 바둥거리는 삶을 살기도 한다. 바쁜 서울살이. 어느때는 매연으로 강건너 건물이 안보일정도로 탁한 동네에서 살지만 노년에는 마당이 딸린 전원생활을 꿈꾼다.
숲속의 빈터처럼 어느 한적한 마을 산속 한 터의 집에서 사랑하는 사랑과 함께. 숲속의 빈터는 집이 가지는 안정적인 포근함을 보여주다가 한순간 그것을 깨버리는 영화적인 극적인 장면전환이 시작된다. 마치 호러영화처럼 소설의 앞부분 서정적인 부분은 뒤에 나올 이야기를 준비하기위한 바람잡이인것이다. 너무나 마음에 들은 숲속의 집근처 멀리 내다보이는 한 공터에 한 건장한 남성이 나체로 수음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면? 그의 등장은 일상적인 삶에 큰 파문을 던진다. 더구나 그것이 귀신었다라는 이야기이다. 아무 생각없었던 집이 가진 히스토리. 살인사건들의 이야기가 묻어 있는 집이라면 초반 집이 가졌던 이미지를 쎄게 한대 친것이 아닐까. 짧은 소설이지만 꽤나 재미있는 반전 매력을 가진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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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나'의 이름은 고진희다. 시골에 살게 된 건 도로 위에서 우연히 바라보았던 전나무 숲이었다. 그 전나무 숲에 꽃혀 서울의
변두리에서 시골로 들어가면서 깡촌다운 깡촌에 들어가게 되다. '나'에게는 동갑내기 동거남 '민구'가 있다. 결혼하지 않았지만,
시골에 살아가려면 부부가 되어야 한다. 시골에서 '여보'라는 호칭은 진희와 민구 사이에는 여전히 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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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의 빈터>
책의 제목을 접하고 '숲 속의 빈터'는 어떤 의미일까 상상을 해보았다. 울창한 숲 속에 있는 빈터는 무언가 부족하고 상처 받은 흔적을 은유하는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또한 빈터는 무언가를 채울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빈터는 하나의 여백으로 빽빽함에서 벗어나 하나의 여유 공간의 의미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책의 첫 장에 있는 '작가의 말'을 읽고 최윤 작가가 작품을 어떤 시각으로 보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 내면의 황량한 빈터로 걸어 들어가는 일은 쉽지 않다.......어떤 때, 작품 쓰기는 빈터에 나무를 심는 것이다'. 책을 읽고 '작가의 말'을 다시보니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숲 속에 황량한 빈터로 남아 있는것은 주변과 어울리지 않고 숲을 상처나게 한 흔적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책 속에 등장하는 조대완은 군대 주임상사로 제대한 40대 후반, 아니면 50대 초반의 인물이다. '가벼운 정신 이상자'나 '노망난 늙은 남자'라고 동네 사람들은 지칭하고 있다. 거의 십여 년 전에 마을 사람들 다수를 총으로 살해한 경력이 있기 때문이다. 제약회사 사보 편집 일을 하는 '민구'와 서울 위성 도시에 위치한 작은 종합 검사실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는 '고진희'. 이들은 서른살 동갑내기이다. 15가구가 전부인 시골마을로 이사를 온 민구와 고진희는 결혼을 하지 않고 이곳에 살림을 차리며 새로운 미래를 꿈구고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로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은 우리가 원인을 제공하고 만든 결과의 산물이다. 그러하기에 매사에 행동과 생각을 똑바로 해야만 한다. 자신이 행한 과거와 현재가 앞으로 다가올 미래이기 때문이다. '숲 속의 빈터'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우리들에게 새로운 느낌과 가르침을 주고 있다. 민구와 진희가 이야기한 것처럼 숲 속의 빈터는 수도 없이 널려 있기에, 봄이 되기 전에 전나무를 심어버리는 것은 어떤가. 우리 마음의 빈터를 황량하게 내버려 두지 말고, 잘 가꾸어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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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중에서 우리 내면의 황량한 빈터로 걸어 들어가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그 빈터를 가로지르지 않으면 그 자리에 전나무 숲을 키울 수도 없다.
결말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 궁금해졌다. 평온한 일상이 경고도 없이 타인의 침입을 받는다면 우선은 도망가고 볼 것이다. 두 사람은 안식처를 찾았다 했지만 그곳에 들어가기를 꺼리고 있다. 하지만 아직 거처를 옮기지는 않았다. 한적하고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곳에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여자 역시 그걸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거리감은 꽤 있었지만 저 멀리서 무슨짓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충격이였다. 하지만 일상에서 아무일도 벌어지지 않고 그랬던것처럼 하루를 지내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모른다. 때론 벼락맞은 듯한 일들이 벌어질때면 일상의 평온함을 감사하게 여기지만 그러지 않고서는 다소 따분한 생각이 든다.
아직 충격에서 헤어나질 못해서 직접 겪지 않았음에도 한참 충격이였다. '아 뭐지?' 하면서 말이다. 어떤책에서 탄력회복성에 대해서 읽었는데 이것이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머리로는 괜찮아 하지만 몸으로는 100m를 1분에 뛰고 있는 기분이 든다. 이걸 뛴다고 할 수 있을지. 두 사람도 다른사람의 따사로운 시선이나 불필요한 말에 대해서 신경쓰고 싶지 않아서 시골로 내려왔다. 그것뿐만 아니라 여자의 개가 목숨의 위협을 받아서 결정을 내린것이다. 그녀가 집에 없는 동안 개소음으로 인해 이웃의 불만이 심했던 것이다. 그녀는 투덜거렸지만 개를 혼자 방치하는 것은 안쓰러운 일이다. 남자친구와 자연스럽게 부부처럼 내려와서 전원생활을 꿈꿨던 것이다. 삭막한 도로를 달리다 갑작스레 눈앞에 보여진 풍경이 그녀를 향해 자꾸만 손짓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디를 가도 비슷한 풍경이다. 도로위의 차는 왜 그리 많은지, 정신이 아찔하다. 언제부터인지 도시의 살풍경에 숨이 막힐지경이다.
두 사람이 살집에는 욕실이 없어서 욕조도 놓고 타일도 바르고 공사를 시작하면서 행복한 모습이 그려졌다. 이상하게 멀어서 그런건지, 시공하는 아저씨가 자꾸만 오기를 꺼려한다. 주변 사람들도 뭔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진다. 예전에 이사갈 집을 구하러 아파트 인듯 아닌듯한 곳을 간적이 있는데 차에서 내리자 마자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두 부자도 우리를 쳐다보았다. 사람들에겐 높지 않지만 개인적으론 높은 11층을 올라가는데 뭔가 걸리적거리는 마음이랄까. 누군가는 그 집에 살고 있겠지만 알 수 없는 섬뜩한 느낌만 받고 왔다.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은 그녀가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일을 알고 있다. 되려 두 사람을 이상한 취급한다. 살기좋은 우리 동네를 니네가 이상한 동네로 만드냐 이거다. 사람마다 무엇을 보는냐에 따라서 하는 말이 다르다. 그게 참 재미나다.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수군거릴지언정 앞에다 대놓고 으름장은 놓지 않는데 대놓고 둘러치는게 나은지, 뒤에서 속닥거리는 게 나은지 알 수 없다.
<이책은 출판사에서 제공 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