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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을 읽는 사람이라면 늘 목요일을 기다린다. ESC가 나오는 날이기 때문이다. 특히 격주로 실리는 디자인면은 우리에게 디자인이라는 것이 수천만원짜리 콘셉트카나 미술관, 박물관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일상에, 지금 내 앞에 있는 머그컵 안에 있다는 것을 일러준다. 들려준다. 중요한 것은 가르치려는 것도 아니고 애써 알리려는 것도 아니다. 자분자분 자신의 생각을 지금 우리의 눈높이에 맞춰 세련되게 들려준다는 것에서 바로 디자인면의 매력이 있다. 그 중심에는 디자인칼럼 현시원의 극과 극이 있었다. 청소부의 옷과 우주복을 비교한다는 것, 비상구와 피라미드의 유적을 비교한다는 것의 발상의 전환도 신선했지만 우리 일상에 깃든 디자인을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새로우면서도 의미있는 일로 여겨졌다. 지금 여느 책에서는 베스트셀러가 된 물품들의 디자인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작가의 눈에 보이는 것은 셀러가 아닌 존재하는 무엇이다. 그의 눈에는 바르게 살자라는 구시대적 유물로 보이는 전근대적 돌덩이가 현존하는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반짝거린다. 더불어 맥아더 장군의 동상 앞에서 미술과 정치가 공존하고 길항하는 모습을 내재적인 관점에서 서술하는 깊이도 느낄 수 있다.
몇몇 대학의 교재로도 쓰인다는 소식을 듣기도 했다. 더 차분한 표지가 됐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의 말처럼 이것은 우리에게 또하나의 낯설게 하기가 될 수도 있겠다. 표지를 쓰다듬어 본다.
그의 공부가 더 깊어지기를, 그의 눈이 더 밝아지기를. 그래서 광화문에, 청계천에, 동대문에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출몰하는 괴물들을 한껏 조롱해주기를. 세계, 시민, 최고 등의 수사학적인 폭력들을 그의 발랄함으로 낯설게 만들어 주기를. 우리는 왜 거대한 콘크리트 앞에서 숭고를 강요받아야 하는지를 그가 자분자분 들려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기다린다.
그리고 사라지는 모든 것들을 그의 손으로 기록될 수 있기를 바래본다. 우리는 또 하나의 이야기꾼을 만났다. 굽힘없이 풀어놓는 그의 신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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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과 극이라는 방법으로 디자인 사물을 비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