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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여름, 공원관리인인 나. 아치스에서의 삶이 담긴 이 책은 조산아였는지 모른다. 작가에게 지금 문제가 되는 책은 구상 중이거나 집필중인 책뿐이다. 흔히 고전이란 만인이 칭송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다. 나의 글은 고전이 되고 싶지가 않다. 글과 삶을 통해서 자연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이다. 할 수 있는 동안 우리에게 주어진 이 멋진 지구를 즐겨라. 이 책의 원제는 ‘사막의 고독 Desert solitaire’, 삶과 여행은 고독의 즐김이 아닐까 생각된다. 모압에서 첫날 아침. 자연은 자연이고, 인간은 인간일 뿐이다. 자연물의 인격화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일이다. 나는 벌거벗은 자아가 비인간적인 세계와 하나가 되면서도 온전하게 개성을 유지한 채 살아남는 신비주의를 꿈꾼다. 내가 광대한 정적 속에 묻혀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태고적 신비를 간직한 곳에 있는 나, 혼자. 나는 가장 가까이 있는 인간과 32km 이상 떨어져 있다. 이곳을 내리 누르고 있는 정적으로 미루어 1천년 동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장소이다. 하지만, 관광산업은 국립공원의 위협이 되고 있다. 100만년 동안 버려두었던 아치스가 마침내 개발된 것이다. 다수의 미국인들이 자동차를 이용하는 사치스런 생활에 너무 깊이 빠져 있어서 잠시 동안이나마 자전거나 말을 타거나 걷는 불편을 견디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이곳에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흔적 남기기 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의 인간의 욕망, 수많은 사람들이 일확천금을 노리고 이곳으로 몰려왔다. 그 한때 분 금광과 광석의 바람 속에서 부를 일군 사람은 누구일까? 대부분의 부는 채광이 아니라 광권과 광산회사의 주식을 매매하는 데서 나왔다. 속지말기를 바란다. 황금의 유혹에 한번 걸려들면 당신은 탐광자가 되어 평생 이 사막을 헤매게 된다. 보통사람들도 평생 들인 습관을 깬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독을 즐기는 사람도 외로움을 느끼는 때가 있다. ‘인디언 보호청’ 이 기관의 장기적 목표는 인디언을 백인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카우보이와 인디언은 사라져가고 있다. 죽어 없어지거나 또는 서서히 전혀 다른 존재로 변해가고 있다. 왜 그들을 변화시켜야 하나. 우리만 변화된 것을 만족할 수 없는지. 아니면 그들의 문화를 하위의 문화로 보고 그들을 구원해주겠다는 거짓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인지도. 사막은 물이 부족한 것이 아니고 아주 적당하게 있을 뿐이다. 산맥은 사막의 바다에 떠 있는 섬이다. 하지만, 문명의 상징이며 중심인 도시는 또한 강제수용소의 기능도 할 수 있다.깃털이 없는 짐승들 가운데 오직 사람만이 스스로 시간의 노예가 되어 열기를 부정하며 자기 업무를 계속하려고 한다. 자기 스스로 광증의 순교자가 되어 조용히 고통을 견디는 것이다. 햇빛은 사이키델릭 불빛처럼 환각적이고 전기를 띤 건조한 공기는 마취제와 같다. 자기 고장에 있는 강이나 시내의 물을 마음대로 마시는 것이 두렵다면 그곳은 이미 사람이 살만한 곳이 못 된다. 황야는 사치품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에 꼭 필요한 필수품이다. 나와 사막이 있을 뿐이다. 나는 무신론자가 아니라 지구교도이다. 어려움과 귀함이 제거될 때 탁월함이 어떻게 될까? 지금의 이 풍경을 다시는 보지 못할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죽음, 그의 떠남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그만큼의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고, 오래된 것은 가고 새것은 오게 되어있다. 투구니키바츠(산) ‘태양이 머무는 곳’에서 나는 작고 유한한 보잘것없는 존재를 벗어날 수 없는가 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한 발견을 새로이 하는 기분을 맛보고 싶었던 것이다. 방문객들은 들소 떼처럼 도시에서 떼거지로 몰려온다. 미국은 위대한 나라다. 그것이 사실이기만 하면 무슨 말이든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도 그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모르몬교도들은 20세기의 막바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19세기의 풍경을 생각나게 해준다. 문명은 인류역사의 강력한 추진력인 반면, 문화는 대개 삶의 진전을 끌어내리는 경향이 있는 제도와 기구의 불활성덩어리, 쉽게 말하면, 문명은 사르트르, 문화는 콕토이다. 요즘 핵물리학의 고위사제들은 바늘 끝에서 몇 개의 전자를 회전할 수 있느냐를 놓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사물에 이름을 붙이고 싶어 안달을 하는 것은 사물을 소유하려고 안달하는 것만큼이나 나쁜 것이다. 이성은 열정의 노예이며 노예여야 한다. 우리가 떠나는 것을 고마워한다 구! 부제인 반문명주의자의 자연예찬, 자연예찬은 맞는 것 같고, 그렇게 반문명주의 같지는 않다. 그는 일관되게 이 아름다운 곳을 인간들이 망가뜨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주장한다. 소위 국립공원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이런 곳들도 곧 인간의 욕심에 의해 사라질 것이다. 모든 것을 개발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모든 것을 개발할 필요도 없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자연스러움을 글로 표현하는데 그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이 아니라서 그런지 아니면 이런 풍의 글이 익숙하지 못해서인지도. 자신이 일하고 산 곳에서의 일기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혼자 살면서, 자연을 바라보며, 느끼며, 함께 한다. 그가 그린 삽화는 산과 암석들의 사실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이런 생활이 너무나 익숙하지 못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기에, 이런 삶을 이해하기에 우리는 아주 조금의 피상적인 상식 밖에 없기에 이해하기가 힘들 것이고 느낌을 느끼기가 어려울 것 같다. 그렇게 명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두렷한 자연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공감할만하다. 자연은 한번 변화되면 복구되기가 힘들다. 그리고 굳이 변화시킬 필요가 있을까? 시대가 진보하고 자연의 소중함을 느끼지만, 우리 모두 스스로 돈의 노예가 되는 한 이 자연에 대한 생각을 지키기는 힘들 것 같다. 자연은 자연적으로 있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 우리는 이 자연을 조금, 잠시 빌려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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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생활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단지 이책을 보고 감동을 받을 뿐이다. 갑갑한 도시에서 자연으로 탈출하고 싶다는 욕망은 꿈틀거리지만 쳇바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은 낙타가 바늘귀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지 않을까.
그의 책은 황량한 사막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을 기록하고 있는 듯 하지만 말하고 싶은 것은 자연으로 돌아가되 자연을 건드리진 말라는 이야기다. 태고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아치스 국립공원에서 레인저였던 그는 오로지 개발에만 몰두하고 있는 정부의 개발 정책의 모순을 꼬집는다. 그는 특히 자연 그대로 보존 되어야할 아치스에 도로가 포장되고 자동차들이 넘쳐나는 것을 경계했다. 그의 염려는 현실이 되었다. 그가 걱정하고 있는 것은 우리 현실에도 그대로 맞아 떨어진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에 더욱 공감이 간다. 우리나라의 국립공원도 개발과 자동차에 멍들고 있다. 어떻게든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생각은 결국 자연을 파괴하는 일이다. 그는 벌써 그 사실을 이 책을 쓰기 시작한 1956년 여름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이나마 갑갑한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가 직접 그린 아치스의 풍경이 멋지다. [인상깊은구절] 평생 아스팔트와 송전선의 경계를 벗어나보지 못한 사람도 황야를 지키고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우리는 황야에 발을 들여놓든 들여놓지 않든 간에 황야를 필요로 한다.우리는 그곳에 갈 필요를 느끼지 않더라도 피난처를 필요로 한다. 예를 들면 나는 평생 알래스카에 가보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곳이 거기 있다는 사실을 고맙게 생각한다. 우리가 희망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도피의 가능성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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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데이비드 쾀멘'이라는 자연생태학자(내지는 서술가) 를 매우 좋아한다.
'붉은 태양'과 '몽키 렌치 갱' 이라는 소설도 있는데 아직까지도 국내에는 번역되어 있지 않다. 좀 더 작가에 대해 알아보고 싶은데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
| 다양한 책들에서 언급되었던 에드워드 애비의 글을 읽기는 처음이다. 애비는 그 책들에서 언급되었던 것보다 더 큰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나 스코트 니어링, 존 뮤어, 웬델 베리 같은 자연주의자나 환경주의자들과는 다르다. 그들보다 강하고 분명하며, 자유로워 보인다. 야생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서 실천했던 애비의 글을 읽는 동안 그의 자유로운 행동과 철학에 마음이 따뜻했다. 단지 그 야생의 배경이 미국이라는 것이 약간 걸리지만 글을 읽기에는 상관없었다. 거칠고 투박한 듯한 그의 글쓰기가 오히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몰입하게 했다. 아무튼 그는 논란의 중심에도 있었지만 자유로웠다. 그 자유는 야생이라는 자연이 그에게 준 선물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