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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더 15세 남자와 36세 여자의 로맨스. 그 남자아이가 성인이 되어서 그 시절을 어떻게 회상하게 될까. 사랑으로? 부끄러운 과거로? 소설은 15세 남자인 미하일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미하일이 간염에 걸려 몸이 쇠약해진 채 길거리에서 구토를 할 때 한나가 그의 손과 입을 닦아주고 토사물을 치워준다. 그녀에게 감사 인사를 하기 위해 찾아간 그는 스타킹을 신고 있는 그녀의 자태에 매혹된다. 그녀의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그는 다시 그녀를 찾아가게 되고 그의 마음을 읽어버린 그녀와 그는 첫관계를 갖게 된다. 육체적 경험이 없었던 어린 소년에게 그녀는 새로운 세계였고 그 후 미하일에게 그녀는 여자 혹은 사랑의 원형이 되어버린다. 그가 성인이 되어 다른 여자를 만나도 그는 한나에게서 받은 느낌을 찾고 싶어하고 그 때문에 결혼 생활조차 평탄하게 이어나갈 수 없게된다.
몸이 쇠약해져 학교를 쉬고 있던 미하일은 그녀를 만나면서 진급도하고 (공부를 하지 않으면 만나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에 미하일은 미친듯이 공부를 한다.) 몸에 대한 자신감도 갖게 된다. 한나는 그가 찾아오면 먼저 책을 읽게 한다. 책읽기는 둘의 사랑을 시작하는 단계가 된다. 가끔씩 보이는 그녀의 차갑고 고압적인 태도 앞에서 미하일은 당황하지만 그녀를 잃게 될까봐 매번 굴복하고 그렇게 둘의 관계는 이어져 갔다. 한나와의 세계와 친구들과의 세계를 오가는 미하일. 어느날 친구들과 수영을 하고 있을 때 멀리서 그를 바라보고 있던 그녀를 발견하고도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 아는채를 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날 그녀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그녀가 떠나고 난 후 그는 그리움에 잠 못 이루면서도 그녀에게 배신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스스로 배반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가 그녀를 다시 만난 것은 재판장에서였다. 그녀는 수용소 감시인이던 시절 유대인 여자들을 수용해 놓은 교회가 폭격을 맞아 불이 났을 때 문을 열어주지 않은 죄, 매달 60명의 여자유대인을 가스실로 보내는 선발을 한 죄등으로 기소되었다. 그것은 한나가 미하일을 만나기 전 다른 곳에서 가졌던 직장이었고 그녀는 그녀의 과거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하일은 알지 못했다. 한나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는 시인했고 하지 않은 일은 부인했으며 자신이 할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을 항변하며 자신이 어떻게 했어야 했냐고 판사에게 되묻는다. 감시인인 자신은 그들을 감시하는 게 임무였고 불이 나서 문을 열어주면 대혼란이 야기 될것이고 그러면 자신이 그들에 대해 책임을 다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다른 피고인들은 그녀의 시인 때문에 여러 가지 곤란에 빠지자 그녀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 씌우기로 한다. 그녀가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하는 것이다. 검사는 그녀의 필체와 보고서의 필체를 비교해보면 된다고 하며 그녀에게 재판장에서 글을 쓸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한나는 자신이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시인해버린다.
미하일은 그녀가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극심한 혼란에 빠진다. 문맹이라는 것이 부끄러워 죄를 시인한다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하나. 다른 사람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당사자의 의사보다 우위에 두면 안된다는 아버지의 말을 들어서일까 결국 그는 밝히지 않는다. 그녀는 종신형을 언도 받고 교도소로 수감된다. 그녀가 수감되고 그는 바쁘게 자신을 몰아대며 공부하여- 판사도 변호사도 검사도 자신에게 맞지않는다는 것을 한나의 재판과정을 지켜보며 깨닫고- 법제사 연구학자가 된다. 그는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지만 결국 이혼하고 잠 못이루는 많은 날이 지난 후 교도소에 있는 한나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된다. 그는 그녀가 수감된지 8년이 지난 후부터 18년까지 약 10년간 책을 읽어 카세트테잎으로 보내준다. 4년이 지난 후 그녀에게서 감사의 쪽지가 오기 시작한다. 그는 그녀가 글을 익힌것이 자랑스럽고 기뻤지만 그녀에게 쪽지도 편지도 보내지 않은채 계속 책 읽은 테잎만 보낸다. 테잎을 보낸지 10년이 다 되어갈 때 교도소에서 한통의 서신이 도착한다. 그녀가 사면을 받게 되었다는 것, 그녀와 연락이 닿는 유일한 사람인 미하일이 그녀가 일상에 복귀하도록 돕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그녀와 직접 만나게 되는 것을 불편해 하며 미루다 그녀가 나오기 일주일 전에 그녀를 찾아간다.
60대인 한나. 그는 그녀와 같이 있게 되어 기쁘다면서 글을 읽게 된걸 축하한다, 그런데 유대인에게 한 일을 재판 전에는 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없느냐고 묻는다. 그녀는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는 어느 누구도 그녀에게 해명을 요구 할 수 없다고 말한다.
미하일은 그녀가 출소하는 날 찾아가지만 그녀는 그날 새벽에 목을 매 자살을 했다. 그녀의 돈을 유대인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소녀에게 전해달라는 말을 남긴채. 그녀가 있었던 감방 벽에는 미하일이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상을 받던 사진이 붙여져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미하일에게 어떤 직접적인 말도 남기지 않았다.
미하일은 소녀였던 유대인 여성을 찾아가 한번도 한 적 없던 자신과 한나의 이야기를 하고 그녀의 유산을 유대인 문맹자를 위해 기부하기로 한다.
한나는 자신의 약점을 숨기기 위해 인생을 도망치듯 살았고 약점을 극복했지만 소통하지 못했다. 독일은 나치시대를 거치면서 유대인 학살이라는 역사적 오명을 남긴 나라다. 직접적으로 학살을 했든 학살을 방관했든 그 시대에 저항하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으로 전후세대로 하여금 손가락질을 받는 세대가 바로 한나로 대변된 것일지도 모른다. 한나의 문맹은 그 사실을 숨기면 더 큰 죄가 되는 것이다. 그녀가 유대인이 죽어갈 때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랐다는 것이 결국 죄가 됐듯이. 또한 문맹은 서로 소통할 수 없으므로 다른 여러 문제점을 키울뿐이었다.
전후세대로 대변되는 미하일은 그녀를 사랑하면서도 여전히 그녀와 현재적 연결을 하려들지 않는다. 이해하고 싶으면서도 죄를 묻고 싶은 딜레마에 빠져있다. 그는 그녀가 글을 깨우쳐 소통을 원하는 편지를 보냈을 때 단 한번의 답장도 하지 않는다. 미하일은 평생 그녀에게서 떠나지 못했지만 그녀의 변화를 인정하지도 수용하지도 못했다.
사랑이야기로 읽히면서도 다른 많은 이야기로 읽힐 수 있는 둘의 이야기는 수치심과 배반감, 죄책감으로 대표되는 한나와 미하일의 약점이야기이다.그것은 인간이 사랑이 갖고 있는, 인간의 역사가 갖고 있는 약점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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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 과제로 읽게 된 책. 인물 설정 자체로 모임에서 다양한 해석을 했던 이 책. 서른 여섯살인 한나와 열다섯 살 소년인 미하엘과의 단순한 사랑이야기인듯 하지만 사실은 더 깊은 역사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부모 세대의 잔혹한 독일 나치에 대해 정죄하는 자녀들. 하지만 그 손가락질은 다시 자신들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알기에 자녀들은 수치심에 몸을 떨면서도 그 사실을 부인하기 위해서 더 거세게 타인을 판단 한다. 그들이 그 부모들의 자녀들이므로. 오랜 세월이 흘러 여기 주인공 한나도 이 소년을 만나기 전에 유대인을 관리했던 여자 간수로써 역사의 심판대 앞에 서 있는 것. 역사를 전공하여 학생으로써 재판자리에 참석했던 미하엘은 아연실색한다. 자신이 사랑했던 그녀가 나치였다고? 그런 추한 죄를 저질렀다는 말인가? 하는 부끄러움과 수치는 또한 그런 그녀를 자신이 사랑했기에 결국은 자신도 같은 죄인인가? 라는 부분에서 당황스럽다.
작가의 질문이 그런 우리들에게 깊은 폐부를 찌른다. "If you love someone who is guilty, do you become entangled in their guilt? And can we choose who we love?"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중에 죄를 짖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 질문에 대답은 당연히 아니라고 하면서도 우리들은 죄인을 마치 죄인이라는 갑옷을 입고 태어난 사람들처럼 선을 긋고 나와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고 단언한다.
"그게 그렇게도 마음에 걸리니?" 하지만 그녀는 나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나는 그 누구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 누구도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런저런 일을 하게 만들었는지 알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어. 그리고 넌 알거야. 너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 누구도 너한테 해명을 요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야. 그렇기 때문에 법정 역시 나한테 해명을 요구할 수는 없었어. -p.210
남녀간의 사랑을 넘어 역사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이 이야기에서 저자는 방금전 한나의 말처럼 역사를 심판하는 지금의 자녀세대들은 정작 그 부모를 알지 못하며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하고 싶었던것일까?
18년간의 수감생활이 끝나는 날. 하루만 지나면 다시 미하엘과 만남을 가질 수 있었던 한나가 결국은 자살을 택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그녀의 사랑과 삶은 결국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삶으로 끝난 것이 아닌가 하는 씁쓸함도 함께 묻어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결국 인간의 삶이란 누구에겐가 이해받고자 하는 순간 그것 자체가 모순이 아닐까?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한다. 내가 어떻게 타인의 삶을 이해할 수 있을까? 순간에 지나지 않는 그 부분을 보면서 늘 타인을 판단하는 한계를 안고 있기에.
결국은 한나와 미하엘은 사랑했다고 했지만 진정으로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는 여운이 남는다. 인간의 삶이 결국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푸념내지는 절망 앞에서 그러기에 사람들이 여전히 지금도 누군가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답답해 하는 생활 속에서 사람은 이해해야 할 것이 아니라 그저 알아야 할 사람인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한다. 그렇다면 자기 방식데로 바꾸려하기보다 인식하고 그 사람으로 대해줄 수 있으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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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한나의 악의 평범성에 관한 소설이다. 나는 열다섯에 간염 환자이다. 몸이 약하고 부끄럼이 많다. 우연히 그녀를 만나게 되고, 나에게 잘해주는 그녀에게 점점 빠진다. 그녀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점점 커져갔다. 하지만 이름조차 몰랐다. 한참 후 이름이 한나이고, 서른 여섯살이라고 알게된다. 한나는 나를 꼬마라고 부르며 책읽기를 시켰다. 왜 책읽기를 좋아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를 위해 책을 읽어주고 기쁨을 느낀다. 어느날 그녀는 사라진다. 그녀를 다시보게 된 것은 법정에서였다. 그녀는 교회안에 사람들을 가두고 나오지 못하게 만든다. 교회안에사람들은 모두 불타 죽는다. 왜 그랬을까? 그녀는 문맹을 숨기고자 거짓 증언을 한다. 문맹은 숨기고 싶은 자기의 치부이다. 결국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나는 결혼 후 몇년만에 이혼을 하게된다. 사회 부적응자. 그녀에게 책읽기를 녹음해서 감옥으로 보내고 애틋함을 유지한다. 그녀는 18년동안 감옥에서 보내고 모범수가 되어 출소를 앞두게 된다. 악의 평범성의 뒷모습이 꼭 악이지는 않다. 상상하기는 싫지만 아이히만의 가정의 아이의 입장이라면 어땠을까? 아이가 느끼기에 아빠가 그런 악인이라고 느낄까? 아이히만 재판에 이의는 없다. 이미 검거했을 때부터 정해진 결과였다. 악의 평범성으로 결론 맺어진 이야기에 나는 더시상 신경쓰지 않았다. 악이라는 단어로 이미 감정과 사고의 소모는 끝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일에 만일 그 사람시 나의 아버지이거나 애인이라면 어땠을까? 그렇다고해도 악의 평범성으로 설명이 될까? 마치 어린왕자의 여우처럼 길들여지기 전과 후가 다르다. 아이히만을 나는 모른다. 친분도 없다. 하지만 소설속의 한나처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악의 평범성에 눌려 개인적인 감정을 끊을 수 있을까? 한나는 재판의 결과로 모든걸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은 나에게는 '없다'는 대답이 나온다. 사람들은 악인을 쉽게 판단한다. 생각에는 두가지 시스템이 존재한다. 제1시스템은 무조건적인 반사처럼 에너지 소모가 적고, 빠르게 도출되는 생각이다. 제2시스템은 노력을 기울여야하고, 에너지 소모가 많고, 기존의 행동과는 다른 생각이다. 언론,책,유명한 학자에게 악의 평범성으로 주홍글씨의 낙인찍힌 사람에게 대중은 제1시스템의 생각만 작동한다. '더 리더' The Reader 의 한나를 보면서 제 2시스템의 생각을 하게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