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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학에서... 왜 세가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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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때도 호흡이 중요하다. 빨리 읽어치우는게 더 맛있는 책이 있는 반면, 지루함을 각오하더라도 곱씹어가면서 읽어야 할 책도 있다. 소설 등의 이야기 류라고 해서 반드시 전자도 아니고, 난해할 수 있는 인문/사회과학 서적이라고 후자도 아니다. 이 책은, (역자의 언급을 그대로 인용해서) 들뢰즈의 부수물로 취급되곤 했던 가타리의 저작으로, 과문한 나로서는 생경할 정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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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때도 호흡이 중요하다. 빨리 읽어치우는게 더 맛있는 책이 있는 반면, 지루함을 각오하더라도 곱씹어가면서 읽어야 할 책도 있다. 소설 등의 이야기 류라고 해서 반드시 전자도 아니고, 난해할 수 있는 인문/사회과학 서적이라고 후자도 아니다. 이 책은, (역자의 언급을 그대로 인용해서) 들뢰즈의 부수물로 취급되곤 했던 가타리의 저작으로, 과문한 나로서는 생경할 정도의 주제인 '생태학'이라는 화두를 담고 있다. 89년쯤 작성된 팜플렛이라고 하는데, 그 뒤에 역자가 덧붙인 글들이 조금 있다. 그래봤자 작은 판본으로 한 100여 페이지가 채 못되는 분량이다. 항상 그런건 아니지만, 책을 한 10여페이지 읽다보면 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감이 잡히곤 한다. (소설의 경우는 더 늦는게 일반이고..) 이 책을 보면서, 광범위한 내용을 간략히 정리한, 그리고 나름대로 독특한 시선으로 정리한 것이란 인상이 들어 여유있게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일이 너무 바빴고, 출장도 다녀와야 했던 관계로... 계획보다도 더 여유를 가지고 읽게되더라. 그러다 보니... 호흡의 리듬을 잃고 말았다. 쩝... 하여간, 이 책이 쓰여졌던 시기와 지금을 비교해볼때, 소련의 몰락과 BRICs 국가들의 발흥과 같은, 그리고 몇건의 전쟁과 관련된 정세변화를 제외하고는 현재에 적용이 되어도 거의 문제 없을 정도로, 지구적 생태문제와 관련된 정치경제학적 문제지적을 잘 하고 있다고 보여졌다. 그래서 찬찬히 보려 했는데... 아다시피, 가타리와 생태주의는 그다지 연결점을 찾기가 쉽지 않을것 같다. 내가 이 사람의 '분자혁명'은 못봤지만, 그래도 들뢰즈와의 공저라고 하는 무지막지한 책 두개를 접해보긴 했고, 네그리와의 공저와 하트와의 공저도 본적이 있지만, 그렇다고 거기서 별반 특별한 생태주의적 지적을 발견한 기억은 없다. 하지만, 80년대 초부터 프랑스 내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다고는 하더라... 하여간 가타리... 기존에 알려진 그에 대해서는 다음 역자의 글을 참고하는게 좋을 듯 싶다. "가타리는 기호론적 실체들이야말로 이제 전적으로 언어학이나 기호학의 관할에 속하지 않는 하나의 화용론의 틀 속에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약하자면 가타리는 통사적 계통수(나무) 모델에 대해 분석적 화용론 및 분열분석을, 모델이 아니라 '리좀'을 대치시킨다" 으... 리좀, 고원과 앙띠에서 참 고생했던 건데... 하여간에 정신분석학과 기호학이 가타리의 키워드라고 하겠다. 그러면서 주체의 재발견/구성에 대한 이야기들... 그러면서 권력이야기. 그런 이가 생태학에 대해 뭔가 이야기를 했다는데... 일단 예상할 수 있는거, 근본주의자들과는 당연히 거리가 있을 것 같았다. "주의해 두고 싶은 것은, 나는 이 새로운 생태학적 문제 설정이 색다른 부자적 파열선들을 '관할'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전혀 아니라는 점이다. 단지 이 생태학적 문제 설정이 색다른 분자적 파열선들을 횡단하는 테마설정을 요구하는 듯 싶을 뿐이다." 역시나... '분자적 파열선의 횡단'과 같은 어휘가 나오게 된다. ^^ 이러면서 생태문제에 '주체'의 문제를 강하게 개입시키는데, "생태-논리는 더 이상 헤겔적인,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적인 변증법이 그러하듯이 대립물을 '해소'하려고 하지 않는다. ..... 개인적이고 집합적인 주체성이 '칩거하고' 집합적인 목적에 대해서 마음 편하게, 있는 그대로의 창조적 표현이 우선시되는 재특이화의 시대도 있다. 강조해두고 싶은 것은 이 새로운 생태철학적 논리가 예술가의 논리와 유사하다는 점이다." 왜 이런 이야기가 나오느냐... 그건 가타리가 보는 생태문제의 핵심이 "주체성과 그 외부의 관계가 일종의 내부 파열과 소아적인 퇴행이라는 전반적인 움직임에 말려 있다"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이정도 파악하고, 호흡을 잃었던 것 같다.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은 없고... 단, 왜 세가지 생태학이냐? 사회생태학, 정신생태학, 환경생태학의 세가지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구성하진 않는다. 근본주의적이 흐름에 대한 경계, 그러니까 환경생태학만은 아니다라는 기반위에서, 피상적인 (심하게 비약하자면 구조주의적인) 사회생태학의 부족함을 주체의 재구성으로 보강하려는 3가지 갈래의 전략, 그것의 동시적 전개를 목표로 한다고 말해야 할 듯하다.
e****s 2004.09.23.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끝없이 꿈꾸는 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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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가타리. 그의 행보는 눈으로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숨차다. 트로츠키적 성향의 집단에서 활동하기도 했고, 정신분석적 측면에서도 제도 요법이라는 무언가를 남겼고,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는 생태 운동에까지 몸을 담았던, 어쩌면 그의 육체는 그의 열정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토록 빨리 식어야만 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는 20세기를 가장 열정적으
"끝없이 꿈꾸는 변혁" 내용보기
펠릭스 가타리. 그의 행보는 눈으로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숨차다. 트로츠키적 성향의 집단에서 활동하기도 했고, 정신분석적 측면에서도 제도 요법이라는 무언가를 남겼고,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는 생태 운동에까지 몸을 담았던, 어쩌면 그의 육체는 그의 열정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토록 빨리 식어야만 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는 20세기를 가장 열정적으로 살아간 사람들 중 하나로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그의 환경생태학은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적 운동들이 지닌 한계를 명확히 함과 동시에 모든 모순을 꿰뚫는 새로운 형태의 운동을 제시해 준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의를 지닌다. 무엇보다도 ‘환경’이라는 화두 속에 이토록 다양한 범주를 담아낼 수 있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환경생태학은 모든 질서의 붕괴와도 맞물려 있었다. 남성중심적인, 운동조차도 남성중심적인 세상 속에서 그는 운동 자체의 전복도 필요함을 이야기했다. 모든 영역에 걸친 철저한 탈중심화. 그것은 운동 자체의 생존을 위해 환경생태학이 이루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역설적이기도 우리네 운동은 살기 위한 숭고한 죽음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그렇게 그는 기존의 노동운동에서는 외면되던 여성과 이민자의 문제를 제기한다. 물론 이들 문제는 가타리 이전에도 많은 이들로부터 제기되긴 했었다. 하지만 그 문제를 제기하는 시각 안에 내포된 남성중심적인 관점을 어느 누구도 극복하지 못했기에, 페미니스트는 결코 여성되기 속에 충분히 연루되어 있지 않았으며, 이민자들의 문제 역시 타자의 관점에서만 제기되어 왔다고 카타리는 말한다. 이들 문제는 분명 다원화된 사회만큼이나 다양하고, 그 문제의 해결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신봉했던 핑크빛 미래와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하지만 가타리는 이 모든 문제를 다루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신자유주의’라는 공통된 주제를 발견하게 될 것이며, 그렇기에 우리는 궁극적으로 신자유주의에 맞서 싸우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과거와 같은 정체된 의미의 무언가가 결코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과학 기술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으며, 사람들은 끊임없이 생산성의 향상을 꿈꾼다. 그렇기에 우리는 매 순간 끊임없이 창조되는 생태학적 지표 위에서 매 순간 투쟁의 전선을 그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러한 투쟁은 생의 전 영역에 걸쳐 일어나야만 한다. 기존의 지배 질서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수많은 사회 기제들-가족, 정신병원, 교도소, 학교 등-의 대대적인 재건이 가타리의 철학을 실천하는데는 필수적이다. 이러한 아름다운 파괴를 위해 우리에게는 일방적인 모방 아닌 스타일 전이를 통한 창조성의 회복이 절실하다. 이러한 개개인의 실천은 내 안에 깃들어있는 자본주의적 질서의 전복을 의미하며, 더 나아가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사회 질서의 변혁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가타리의 철학은 개인(미시)과 사회(거시)를 연결짓는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하겠다. 1년 전쯤이던가. 페이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내게 적지 않은 한숨을 남겨주었던 책이 있었다. 결코 점령할 수 없었던 <천개의 고원>이라는 책을 부여잡고는 한동안 말을 잃었던 적이 있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여전히 나에게 그런 존재이다. 다가가기 힘든,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멀어져만 가는 이들. 결코 가까워질 수 없을듯한 밀고 당김 때문에 어쩌면 많은 이들이 그들의 철학에 매료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달의 사락 q*****2 2004.08.28.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