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의 저자 프리드먼의 출세작이 바로 <베이루트에서 예루살렘까지="">다. 우리나라에서는 <렉서스>의 유명세를 타고 뒤늦게 번역됐지만, 실상은 <베이루트>가 프리드먼의 전공 분야이기도 하다. 유대계 미국인으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유대계 학교를 다녔고, 10년동안 중동에서 뉴욕타임스 특파원 생활을 했으니 말이다. 책에서도 이런 면목이 그대로 드러난다. 유대인이므로 이스라엘에 대한 애정을 감출 수 없다. 어려서부터 유대계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유대교라고 다 같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너무나 잘 안다. 유대계이긴 하지만 미국인이기에 이스라엘을 바라보는 미국인의 마음에 대한 이해도 깊다. 무엇보다 중동을 직접 취재한 특파원이기 때문에 현장감이 살아 있다. 덧붙여 다른 신문사도 아닌 세계에서 제일 잘 나가는 뉴욕타임스 기자였다는 점에서 고급 취재원에 접근이 쉬웠고, 그 덕분에 심층적인 뒷 얘기가 펼쳐진다는 점도 매력이다. 뉴스란 언제나 '오늘'의 모습만을 보도하기 때문에 '오늘 폭탄이 터져서 몇명이 죽었다'는 식의 보도가 되기 일쑤다. 두 사람이 신나게 싸우고 있다고 중계방송을 하면서도 이 두 사람이 권투 경기를 하고 있는지, 또는 무슨 원한이 있어서 싸우는지 조차 우리는 가끔씩 잊고는 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 책은 중동 문제를 시원에서부터 다룬다는 점이 무엇보다 큰 장점이다. 그렇게 문제의 시원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시작되는 여정은 라빈과 아라파트가 드디어 악수를 나누는 장면에서 끝난다. 물론 그 뒤에 있었던 라빈의 암살도, 그리고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테러와 복수전이라는 악순환은 제외돼 있다. 하지만 아쉬울 건 없다. 프리드먼은 이 모든 상황을 예견해 뒀다. 팔레스타인 자치국가가 탄생함으로 인해 희생을 강요당해야 하는 이스라엘 일부의 강력한 반발도, 자치국가가 완성돼 가는 과정에서 여러 단계에 걸쳐 맞게 될 어려움들까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증세에 대한 진단만 정확하다면, 앞으로 병세가 어떻게 진행될지도 내다볼 수 있는 법이니까 말이다. 프리드먼이 유대인이라는 점에서 이 책의 객관성을 우려하는 지적들이 있는데, 그 우려는 일단 접어둬도 좋을 듯 하다. 기자라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예견되는 지적에 대해서는 미리 대응할 줄 안다. 비난을 허용할만큼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유대인이기 이전에 미국인이다. 프리드먼 자신도 이 점은 간과한듯 싶다. 의도한 결과는 아니겠지만, 중동 분쟁에서 미국의 역할은 자세히 드러나 있지 않다. 간혹 등장하는 미국은 언제나 분쟁의 해결사 역을 도맡을 뿐이다. 분쟁의 원인 제공자로서의 미국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또한 미국이 분쟁 해결사로 나설 때 조차도 마치 전인류의 구원자로 자임하는 듯한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의 관계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이해 관게라는 렌즈를 통해 정확한 관찰을 하면서도, 미국에는 윤리라는 흐릿한 렌즈를 통해서만 본다. 의도했듯 의도하지 않았든. 하지만 애초부터 프리드먼이 미국인임을 알고 있는 우리에게 그런 점은 중요하지 않다. 미국의 역할은 우리 스스로 써넣을 대목이기 때문이다.베이루트>렉서스>베이루트에서>렉서스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