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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가진 것을 다 퍼주고 싶어하는 성격이기도 하다. 그러나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과는 1분도 못 견딘다.(그건 정말 고역이다) 그러다보니, 왠만해서는 사람을 싫어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뭐, 생각만큼 잘 되지는 않는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다 퍼주고 싶어하는 성격이란, 물질적인 것은 물론 정신적인 것까지 포함한다. 물질적인 것은, 큰 것은 아니지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 책, 펜, 옷, 가방 등등을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물건은 그것을 가장 잘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그 물건에 대한 덕이 제일 큰 사람' 이라고 정의한 것을 보고는 더욱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게는 크게 유용하지 않아도 내 친구가 더 잘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즉 그 물건에 대한 덕이 나보다 더 있는 사람이라면 서슴없이 건네준다.
정신적인 것은 별것이 아니고, 나와 함께 있는 사람에게 사정없이 쏟아붓는 관심과 배려를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물질적인 것보다는 좀 더 어렵다. 물질은 그냥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주면 끝이지만, 관심이나 배려는 상대방에게 알게 모르게 베풀어야 하는 것이다. 지나치면 숨막히고 부족하면 내게 불편함이나 불안을 느낄테니 말이다.
즉, 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약간 '방전하는' 종류의 인간이다. 물론 역으로 충전을 당하는 때도 많지만, 대개 나를 방전한다. 방전된 건전지는 주기적으로 충전을 해주어야 한다. 내 경우, 철저히 혼자 있음으로 인하여 충전을 한다. 혼자만의 시간이 없다면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될 것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방전할 수 있는 건강한 마음가짐도 지니지 못할 것이다.
혼자있음을 예찬하는 사람 중 한 명으로서,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반대로, 혼자서 자신의 인생을 풍성하게 가꾸는 사람들에게는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 그런 사람들 안에 어떤 색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을지 매우 궁금하다. 그런 사람들은 어김없이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만의 개성으로 세상과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세상과의 연결고리를 견고하게 지니고 있는 사람들은 절대 혼자 있음으로 해서 불안해지지 않는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비난하지도 않는다. 그건 사람이 가지고 있는 기질의 문제인 것 같다. 혼자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과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도 문제는 있지만, 더 치우친 경향으로 나누자면)은 서로에게 자신의 삶의 방식을 강요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존중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시모토 다카아키는 세계적인 소설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아버지다. '내 안의 행복'은 혼자있음을 지극히 예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 자신의 성격이 비사교적이기 때문일까. 그는 시종일관 혼자있음을 문제시하는 사회적 경향을 비판한다. 사람에게는 서로 다른 기질이 있고 그것을 무시하면 안되는데, 사교적인 사람들이 비사교적인 사람들을 '비정상'으로 몰아가는 사회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서 그 문제점을 지적한다. 그는 혼자있는 것에서 성공이 비롯된다면서, 누구나 혼자있어야 하는 때는 반드시 필요하고, 혼자 있는 사람들의 시간을 억지로 빼앗아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자신이 두 딸들에게 물려준 것은 별로 없지만, 절대로 방해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절대 딸들의 시간은 빼앗지 말자'였단다. 사소한 심부름같은 것은 하나도 시키지 않았고 딸들이 무엇을 하건 그냥 내버려두었단다. 그가 두 딸을 키운 방법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그의 두 딸은 잘 컸다. 한명은 만화가, 한명은 소설가ㅡ그것도 세계적인ㅡ이니 말이다. 그가 키운 방식이 그의 두 딸들의 기질과 잘 맞아떨어져서 참 다행이다.
어디서 봤는지, 누가 말했는지 기억은 잘 안나는데 이렇게 적어놓은 문구로 마무리 하자면.
고독 속에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은 야수나 신(GOD), 둘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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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도 잘 팔리는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아버지가 쓴 에세이집이다. 내 취향이 아니었던 그녀의 소설 때문에 그녀의 아버지의 글까지 주저하게 만들었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어떤 사람일까? 하는 호기심을 자극한다. (출판사도 그걸 아는지, 책표지도 ''내 안의 행복''이 아니라 ''요시모토 바나나의 아버지가 들려주는 내안의 행복'' )
내성적이고 고독을 좋아하는 성격 탓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그의 충고는, 내성적이고 혼자 있는 건 좋지 않으니 얼른 사람들과 어울리세요, 라고 충고를 거부한다. ''반드시 많은 사람과 교류할 필요가 있을까'' ''비사교적 성격이 연애에 불리할까'' ''의사소통법이 다르면 또 어떤가'' 하고..
혼자 있는 시간은 자신만을 진주를 품는 시간이며,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많이 느끼고 생각한다는 것이 그의 의견. 병적인 혼자 있기는 경계해야 하지만, 혼자 있기 좋아하고 고독과 가까운 사람들은 과거에도 계속 존재해 왔으므로.
2차대전에서 패전을 경험한 전후 세대로서 911테러에 관해서 언급하는데, 테러가 나쁘다는 것에 대해서 그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제시한다. 불과 반세기 전에 가미가제 특공대에 대해서 그들과 동일선 상에서 보기 때문이다. 그건 그도 일본 침략에 동조했던 사람이었고 그의 가까운 사람들도 그런 맥락에서 비난받아야 하느냐에 대한 거부감으로 느껴진다.
''대만과 사할린도 일본의 보호를 받고'' 라는 가사가 실린 기미 가요는 일본의 제국주의와 식민지 지배의 합리화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가사를 외우고는 있지만, 절대로 부르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부를 노래가 없다라고 말하는 부분은 연민을 불러 일으킨다.
그러나 일본이 다른 나라를 침범하고 제멋대로 전쟁을 일으키고 피해를 주고 식량을 수탈하는 것은 분명 침략이라고 인정하면서 그 전쟁은 내 주위에 있었던 사람들의 목숨도 앗아갔다. 역사 속에서 그들이 없던 사람을 취급당하는 점에 분개하고 침략전쟁의 장본인이기에 당연히 죽음으로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되느냐.. 말할 때는 일본인과 인식의 차이를 깨닫게 했다고 할까.
개인의 의지와 상관 없이 태어난 시대에 운명이 좌우되는 지점이 있는 것은 인정한다. 미국인이 싫다기 보다는 지금 미국 내에 정책을 좌우하는 정치인, 부시 행정부와 무기회사들을 역학관계에 분노해야 옳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라는 테두리 안에 사람들을 그들과 한통속으로 묶는 것은 부당해보이기도 하고 그들의 무관심과 무지는 질책받아야 옳아 보이기도 하다. [인상깊은구절] p. 18 지금 나에게는 딸아이가 둘 있다. 나는 언제나 ''이 아이들의 시간을 방해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으로 아이들을 키웠다. 아이들이 공부를 하든, 놀고 있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멍하게 앉아 있든, 그것은 오직 아이들만의 시간이기 때문에 나는 사소한 심부름이나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용건으로 그 시간을 단절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았다. .... 나는 딸아이 둘이 집안에서 무엇을 하든 그 시간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아이들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대신 내가 직접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에 가서 장을 봐오기도 했다. 물론 다른 면에서는 부족하기 그지없는 아버지였지만, ''아이들의 시간을 방해하지 말자''라는 철칙만은 꼭 지켰다. p. 19 사회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는 사람의 유형은 두 가지다. 성격이 몹시 소극적이거나, 원만한 사회생활보다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그 첫 번째, 그리고 정도를 넘어 병적으로 혼자 있기를 원하는 사람이 그 두 번째이다. 전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으므로 특별히 문제될 일은 없다. 그들에게는 혼자만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p. 67 일본의 전후작가를 대표하는 다지이 오사무는 소설 속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학교는 커닝을 하든 뭘 하든 어쨌든 졸업만 하면 되는 곳"이라고 말했다. 또한 다케다 다이준은 "대학을 중퇴한 사람이 아니라면 신뢰할 수 없다"고 말했다. 괴설 같지만 작가 나름의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나온 말일 것이다. 오히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무조건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해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믿는 부모들보다 훨씬 정직하고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닐까? p. 92 보통 노인은 이미 대부분의 인생을 살아왔고 남아 있는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으므로 ''언제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할 것 같지만 사실은 정반대이다. 생명력과 가능성이 무한히 남아 있는 젊은이가 오히려 생명에 대해 집착하지 않는다. 자칫 잘못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상당히 무모하고 위험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으로 옮긴다. 이렇게 활력이 넘치는 시기에는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마 생명력이 과도하게 넘쳐나기 때문인 듯하다. 인간은 생명력이 충만한 때는 죽음에 대한 공포나 두려움이 사라져서 뜻하지 않게 죽음 가까이로 다가가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