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 때부터 시작된 추리소설에 대한 사랑이 식을 줄 모르는 딸이 주말에 빌려온 책이다. 두 권이나 되는 책을 이틀 만에 다 읽어버렸다. 그 딸에 그 엄마인건지, 대개 같은 책을 읽고 많이 이야기하는 편이다.
사도세자와 영조의 이야기는 한중록을 필두로 책으로, 드라마로 많이 이야기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때마다 보는 입장에서 다르게 쓰여 지는 것이 역사의 특성이기도 하여 독자의 입장에서 무엇이 진실인 지 궁금한 부분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은 소설 형식이니 꼭 진실이어야 하는 부담은 없겠지만 워낙 많은 참고 도서와 논문은 적어도 진실에 접근하려 노력은 하지 않았을까 짐작할 뿐이다.
이 책의 3일은 뒤주 사건이 있기 전의 일이다. 의심을 확인하기 위해 이중 삼중의 엄청난 음모를 꾸미고, 세자가 행동하지 않을 수 없도록 상황을 몰고 가서 결국에는 반역의 오명을 씌워 죽음으로 몰아가는 분하고 슬픈 내용이다. 책의 큰 줄거리는 사도세자가 아닌 사도세자의 측근들이 연쇄적으로 암살당하는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내용이다. 그리고 살인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좌랑 유문승이 사건을 조사를 하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죽은 자의 몸속에서 나온 한자로 된 암호는 하나같이 세자를 가리킨다. 암호를 풀어가며 조사하고, 살인자를 따라가며 배후를 밝혀내는 전개는 추리와 미스터리, 그리고 스릴러가 혼합된 한 편의 영화로도 충분할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사도세자의 무기고 이야기는 이덕일님의 <사도세자의 고백>에서도 살짝 나온 듯하다. 이로 인해 픽션이긴 하지만 어쩌면 정말로 진실이었을 지도 모르는 그 사건은 결국 사도세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있다.
영조가 출신부터 왕 위에 오르기까지 당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반면, 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조선을 꿈꾸어왔던 세자는 자식 이전에 영조 입장에서는 오히려 자신의 정권에 대한 경계심을 갖게 할 뿐이었다. 그 누구도 아닌 부모와 아내, 장인 등으로부터 버림받고 뒤주에 갇혀 죽어가는 순간까지의 분노와 한이 어떠했을 지 가늠하기조차 힘겹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욕망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이 순간도 권력으로 향하는 세력의 부정과 비리는 끊이지 않고, 세력을 쥐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현실을 보면 갑갑하기만 하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자욱한 안개 속을 살아가는 날들에 희망은 어디에 있을까? ‘결코 어둠은 밝음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건만,
역사를 아는 것은 ‘온고지신’에 있다고 본다. 잘잘못을 비판만하기보다 역사에 교훈을 얻어 보다 나은 미래를 계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정되는 교육과정이 떠오른다. 과목을 줄여 부담을 덜어준답시고 역사 과목을 선택으로 전락시키고 있으니 과연 자기나라의 근본도 모르고 국제화 시대에 자부심을 갖고 살아갈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솔직히 염려스럽다. |
|
진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순리도 보이지 않았다. 순리란 무엇일까? 그리고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시간이란 무엇일까? 전하께서는 선정전에서 뜨거운 열정을 쏟아내고 대비는 인생의 겨울을 준비하는 것. 그리고 언젠가 있을 즉위의 그날을 기다리는 것이 현재 구중궁궐의 순리였다. 그런데 그 순리가 깨지려 하고 있었다. 진리는 어느 곳에나 숨 쉬고 있지만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혜안(慧眼)을 가진 자는 드물다. 소수의 진실보다는 다수의 거짓이 판치는 세상에서 고요한 마음으로 평정을 유지하며 혜안을 갖춘 자는 더욱 드물다. 그리고 궁궐의 권신들 사이에서 그 혜안을 갖춘 자는 더더욱 드물었다. 배신자가 눈 밑에 붙어 있었다. 중관 한 채의 죽음으로 더 이상 간자(間者)는 없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일련의 살인 사건으로 간자의 존재를 확신하게 되었지만 누구인지 알 수는 없었다. 이미 죽어버린 자인지, 옆에서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는 자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배신자가 눈 밑에 붙어있었구나. 그런 배신자에게 너를 맡겼으니 이를 어찌할꼬... 대리청정한지 벌써 13년이 지났다. 그러나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사사건건 노론은 발목을 잡았다. 심사숙고하여 인사를 단행하고 각종 정책 방향에 대해 무거운 결정을 내리면 어물어물 망설이기만 하고 결단성이 없다며 옭아맸다. 고심 끝에 결단을 내리고 때를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제 소리만 한다고 언쟁을 벌였다. 전하께서 건강이 위태로워 아들이자 세자 된 도리로 종창을 치료하는 탕약 복용을 거부했을 땐 삼종의 혈맥을 언급하며 생각이 가볍다고 압박하더니, 의원의 진료를 받자 어찌 아비의 위태로움을 중히 여기지 않고 일신의 안위만을 위하는 것이냐고 질책했다. 조선은 노론의 나라였다. 그것도 강경 노론의 나라였다. 탕평책으로 아무리 절치부심해도 그들이 목줄을 쥐고 있는 탓에 한계가 분명했다. 하지만 노론이라 하여 차별하거나 멀리하지 않았음을, 소신을 갖춘 노론의 신하들을 가까이한다는 것은 그들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결국 노론이 아니라 강경 노론이 정권을 놓칠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안 된다. 난잡한 당파 싸움에서 이긴 자들에게 권력이 오롯이 돌아가는 정치는 더 이상은 안 될 일이다. 무리 지어 권력에 줄을 대느라 여념이 없는 피고름 같은 관리들을 쳐내야 한다. 명분을 가지고 민초들을 보살펴야 백성이 살 수 있고, 조선이 살 수 있으며, 후세가 살 수 있다. 조선은 흑이 아니면 백을 선택하라 종용하고 있다. 그러나 노론의 천하도 맘에 들지 않고, 소론의 천하 역시 달갑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조선을 꿈꾸어야 하는가? 막연하게 좋은 세상일 올 것이라 꿈만 꾸는가? 기존의 질서 체계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땅이 넓다고, 백성이 많다고 대국은 아닌 법. 조선은 우리의 방식으로 대국이 될 수 있다. 그 어떤 나라에도 조아리지 않을 조선을 꿈꾼다.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꿈, 오랜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죽을 때까지 포기 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려면 조선 지배계층의 생각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결코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세자가 움직였다. 그런데 대체 어디에서부터 어긋난 것이었을까? 새로운 시대의 깃발이고자 했으나 구시대의 덫에 걸려버렸다. 의심과 오해가 반복되는 증오의 덫에... 부디 후세들은 혜안(慧眼)을 갖도록 도광양회(韜光養晦)해야 한다. 희망의 빛이 사라져버린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부가된 실록이 소설을 실제 역사로 여겨지게끔 만든다. 사체 부검실에 와있는 듯한 생생한 해부, 마치 불과 몇 십년 전인 듯 그려진 18세기 조선 사회의 모습. 저자가 섭렵한 참고 도서와 논문, 학술지의 목록을 보고 놀라울 뿐이다. 이 소설을 쓰기 위한 저자의 노력과 진정성이 느껴졌다.
사도세자에 대한 내용을 다시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저자가 참고한 목록을 참고해야겠다. |
|
결국 정권 아니 왕권을 위한 탐욕은 부자지간의 정리보다 더 중요하고 비중이 있었던 것일까? 가족의 관계에서 부자지간은 영원히 오이디프스의 저주처럼 서로를 이해하고 화합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사도세자의 죽음을 해석하는 많은 글 중에서 [사도세자 암살 미스터리 3일]은 이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마무리 된다. 사도세자를 따르는 사람 그가 왕에 오르면 죽음으로 몰릴 아니 권력의 변두리로 몰릴 사람들에 대한 많은 의심과 당파의 험악한 당쟁의 상황 속에서도 사도제자가 만들려 하였던 세상은 결국 그의 아버지에 의하여 좌절되고 조선에서 최악의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으로 마무리 되어진다. 1권의 추리적 이야기의 전개에 이어 2권은 그 전개의 실마리를 해결해 나가는 정말 범인이 누구인지 누가 나를 도와주고 누가 나를 배신하였는지를 말하여 주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야기는 전개되어 진다. 한자 암호를 풀이하는 과정이 역시 열쇠를 푸는 중심축이라 한다면 이 한자 암호를 통해서 한발 한발 사도세자에 다가서는 유문승의 고민이 조금씩 조금씩 가중 되면서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 나가게 된다. 역사적 인물을 중심으로 쓰여진 팩션은 역사적 사실과 그 해석에 중심을 두고 보는 독자들고 역사적 해석이 우리 역사의 중심축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많은 역사학자들의 눈 때문에 역시나 많은 검증작업을 거치게 되는 것 같다. 기본 틀을 벗어나지는 못하지만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된 팩션은 작가가 바라보는 인물에 대한 느낌을 잡아 둘 수 있기 때문이다. 연약하고 정신병적 질환이 있었으며, 의심 많고 왕재의 재목이 아니라 기록된 많는 기록 속에서 저자는 사도세자의 강인한 의지와 믿음 그리고 그의 지도력을 보여 주려 하고 있다. 비록 실패로 끝난 왕세자로 머물렀지만 그는 어쩌면 조선의 임금중에 가장 위대한 임금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많은 중신들의 험담 속에서도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맞서는 대범함과 그리고 치밀함 그를 따르던 당파에 상관없었던 인물들을 본다면 말이다. 역사는 가정이 없다고 한다. 가정을 하는 것은 무의미 하다는 뜻 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쉬움이 계속해서 남는 이유는 그의 아들 정조가 보여준 행적이다. 아버지를 따르며 보여 주었던 그의 효심과 행적 말이다. 두 권의 책을 모두 읽었다. 아쉬움과 약간의 분함, 정의가 항상 이겨야 하는 착한 심성 덕분인지 정의가 이기지 못하는 이런 결말을 알고 있었음에도 사도세자의 죽음은 왕권과 비도덕성과 탐욕에 가득찬 권력욕에 물든 사람들의 작품일 것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왕을 스스로 옹립한 세력이 가지고 있는 절대 권력에 대한 불 복종 그리고 자신들의 말을 잘 들을 것이라 여기는 자를 왕으로 옹립하는 왕을 선택하는 조금은 이기적 당파 싸움이 어쩌면 이런 역사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을지 모르겠다. 아쉬움이 남아 있는 역사도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언제든 우리는 그 역사의 흐름에서 역 방향이 아닌 순 방향으로 움직일 준비를 하여야 한다. 순방향의 역사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역사의 흐름으로 말이다. |
|
결코 어둠은 밝음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