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엘리자베스는 소녀에게 살아있는 존재이상으로 소중한 인형이다. 이 책의 몇몇 장면만 본다면 엘리자베스는 소녀의 어린 동생쯤으로 생각하기 쉽다. 언제나 꼭 껴안은 모습, 그래서 그들의 그림자는 둘이 아니라 하나로 보인다. 그들의 친구는 사람대신 병 속의 개구리, 거북이, 그리고 강아지 피피이다. 피피에게 물리기 직전 엘리자베스의 표정이나 팔에 이빨자국이 생겨 치료를 받을 때 얼굴이 가려진 엘리자베스는 그냥 사람의 모습인 듯 느껴진다. 유태인이었던 소녀의 가족은 어느 날 조용히 독일을 떠난다. 의심받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두고, 소녀의 인형까지 그대로 두고 떠난다. 소녀는 혼자남은 엘리자베스를 그리워하며 슬퍼한다. 세월이 흘러 소녀는 어른이 되고 엄마가 된다. 그녀의 딸은 여섯 살 생일선물로 품에 안을 수 있는 인형을 원했고, 그녀는 인형을 하기위해 노력한다. 그녀에게 엘리자베스 이후에 다른 인형이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맘에 드는 인형을 사는 것은 그녀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옛 물건 파는 가게에서 한 인형을 발견한다. 그녀는 처음에는 엘리자베스를 알아보지 못한다. 냄새를 맡고, 인형의 팔에서 피피가 물었던 자국을 발견한 후,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인형을 다시 품에 안는다. 이제 엘리자베스는 그녀의 손녀가 돌본다. 그들은 함께 어떻게 엘리자베스가 그렇게 많은 세월이 흐른 뒤, 넓은 바다를 건너 그녀를 찾아와, 마음의 상처를 아물게 해주었는지 생각한다. 이 책은 작가 클레어 니볼라가 자신의 어머니의 이야기를 쓰고 그린 작품이다. 어머니는 사랑하는 것을 두고 떠나야했던 세상 모든 어린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했고, 책의 첫 장에는 엘리자베스를 껴안고 있는 어머니의 어린 시절 사진이 실려 있다. 글도 어머니가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이다. 그림은 섬세하고 예쁘다. 옷이나 카펫에 그려진 정교한 무늬들은 피피가 엘리자베스를 물었을 때를 제외하고, 어지럽거나 산만해 보이지 않으며 여성작가의 아름다운 솜씨를 돋보이게 한다. 그들이 친구였던 거북이가, 오래 살아왔고 앞으로도 영원히 살아있을 것처럼 보였듯이 엘리자베스도 그들에게 대물림되는 영원한 친구가 되어줄 것 같다. |
| 이 책에 손이 간 첫번째 이유는 그림이 고급스러워서입니다. 세계명작류의 그림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이 책은 한장 한장이 세련되고 특별한 느낌을 주어서 책 크기가 좀 더 컸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을 정도입니다. 이 책의 스토리는 독일에 살고 있던 유태인 가족이 모든 것들을 다 남기고 도망치듯 부랴부랴 독일을 떠나서 살아야만 했던 슬픈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여섯살 저희 아이에게 우리 나라의 역사도 아닌 외국의 역사까지 설명해주면서 이해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어서 대충 뭉뚱그려서 이 그림책의 분위기를 전달해주는 정도인데 그것만으로도 감동적입니다. 그 감동의 뒤에는 이 이야기가 픽션이 아닌 작가의 어머니의 실제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을 증명하듯이 책의 앞장에는 작가의 어머니가 어렸을 적 엘리자베스 인형과 찍은 흑백사진까지 실려 있습니다. 상황이 얼마나 다급하고 쫓기는 신세였으면 그토록 사랑하고 애지중지 아꼈던 인형을 두고 떠나야만 했을까 하는 상황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그림책에는 특별히 문장이 많지도 않고 적절한 수준이라서 그림책을 혼자 읽는 것에 재미를 붙인 아이들에게 좋을 정도인데 문장 하나하나에는 작가가 얼마나 고심해서 절박한 상황을 표현하려고 애썼는지 드러나 있습니다. 특히 인형을 좋아하는 여자아이라면 이 책이 훨씬 마음에 와 닿을 것입니다. 어른이 된 이 책의 주인공은 바다 건너 미국땅 한 중고품 가게에서 엘리자베스와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고 엘리자베스 인형은 주인공의 집에서 대를 물려 소중한 인형으로 남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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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 그림책비평 2024.7.23. 그림책시렁 1398 《엘리자베스》 클레어 니볼라 강연숙 옮김 느림보 2003.10.20. 우리말 ‘발자취’를 한자말로는 ‘역사(歷史)’라 하고, 영어로는 ‘history’라 합니다. 한자말 ‘歷史’는 “걸으며 겪은 하루를 적는 붓”을 가리킨다면, 영어 ‘history’는 “그놈(he)이 임금님이란 우두머리 자리에서 보낸 삶·이야기”를 가리킵니다. 여러모로 보면, 우리로서는 ‘역사·히스토리’ 모두 부질없어요. 우리로서는 ‘발자취’를 살피면서 ‘이야기’를 돌아볼 노릇입니다. 《엘리자베스》를 읽고서 한참 곰삭였습니다. 이만 한 그림책을 헤아려서 그려내는 이웃나라 붓끝이 있어서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윗내기나 우두머리 발자취도 ‘역사’일 테지요. 우스꽝스럽고 철없는 자취를 보여주기에 ‘역사·히스토리’입니다. 이와 달리, 어질고 참하며 즐겁고 아름다운 길과 살림살이를 밝히기에 ‘발자취·이야기’예요. 수수한 어머니 한 분이 걸어온 길이 따사로이 사랑입니다. 작은 순이 한 사람이 살아온 나날을 들려주는 이야기가 즐겁게 눈물이요 웃음입니다. 배움터에서는 무슨 ‘역사·히스토리’를 가르치면서 외우라고 시키는지 돌아봐요. 배울거리가 없는 죽음글이 바로 ‘역사·히스토리’라고 느껴요. 이제 우리는 삶과 살림과 사랑과 숲을 포근히 속삭이는 ‘발자취·이야기’를 서로 들려주며 새길 때입니다. ㅅㄴㄹ 《엘리자베스》(클레어 니볼라/강연숙 옮김, 느림보, 2003) 이 이야기는 나의 어머니의 이야기입니다 → 우리 어머니 이야기입니다 → 이 이야기는 우리 어머니 삶입니다 2 우리는 서로 너무나 사랑해서 모든 것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 우리는 서로 사랑해서 모두 함께 나누었습니다 3 한 이불 속에서 잤고 → 한 이불에서 잤고 4 어느 날부터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 어느 날부터 모두 바뀌었습니다 16 어른이 되어 결혼을 했고, 자식을 낳아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 어른이 되어 짝을 맺고, 아이를 낳아 집안을 이루었습니다 20 어느 바닷가 마을에 살게 되었습니다 → 어느 바닷가 마을에 살아갑니다 21 내 딸아이는 → 우리 딸은 → 딸아이는 23 가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 가게로 들어갔습니다 25 내 마음의 상처를 아물게 해줄 수 있었는지, 참 놀라운 일이지요 → 내 멍울을 다독여 주었는지, 참 놀라운 일이지요 3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