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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희망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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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 발칸지역을 여행하면서 2박3일의 여정으로 루마니아의 몇 곳을 돌아보았습니다. 수도 부쿠레슈티, 드라큐라의 무대가 된 마을 브란, 옛 트란실바니아의 수도였던 시비우, 그리고 작은 비엔나라는 별명이 있는 티미쇼아라 등입니다. 수도 부쿠레슈티에서는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만들어낸 괴물 같은 인민궁전을 보았고,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혁명이 일어난 장소이며 희생자들을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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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 발칸지역을 여행하면서 2박3일의 여정으로 루마니아의 몇 곳을 돌아보았습니다. 수도 부쿠레슈티, 드라큐라의 무대가 된 마을 브란, 옛 트란실바니아의 수도였던 시비우, 그리고 작은 비엔나라는 별명이 있는 티미쇼아라 등입니다. 수도 부쿠레슈티에서는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만들어낸 괴물 같은 인민궁전을 보았고,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혁명이 일어난 장소이며 희생자들을 기리는 기념비도 보았습니다. 챠우세스쿠 독재를 무너뜨리는 움직임이 시작했다는 티미쇼아라에서는 승리광장, 자유광장, 그리고 통일광장 등을 둘러보았습니다.


루마니아를 여행하면서 루마니아 출신 독일 작가 헤르타 뮐러가 차우셰스쿠 독재 정권 시절의 사회분위기를 소개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귀국하자마자 찾아 읽은 책이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입니다. 작가는 티미쇼아라에서 남동쪽으로 36㎞ 떨어진 니츠치도르푸(Ni?chidorf)에서 독일계 소수민족인 부모로부터 태어났습니다. 주로 차우셰스쿠 정권 시기의 루마니아 사회주의 공화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썼다고 합니다. 주로 루마니아의 독일 소수민족의 관점에서 이야기되며, 바나트와 트란실바니아의 독일인 현대사를 다루었다고 합니다.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에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은 황폐하고 쇠락한 도시의 변두리에 살면서 희망이라고는 한 줌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사고를 당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야기는 여교사 아디나와 어렸을 적부터 그녀의 절친 클라라를 중심으로 이어집니다. 


아디나는 학생을 토마토 수확 작업에 동원하는 것은 미성년자 노동 착취라고 말했다는 혐의로 교장에게 불려가 성추행을 당하고 비밀경찰에게도 요주의 인물로 찍힌다. 비밀경찰은 그녀의 집에 깔린 여우 모피에서 꼬리와 다리를 차례로 잘라내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알립니다. “그는 재킷 안주머니에서 안전 면도날 하나를 꺼낸다. 그리고 안전 면도날을 싼 포장지를 풀어 무릎 옆에 놓는다. 그는 여우의 오른쪽 뒷발을 자른다. 그는 혀끝으로 검지에 침을 묻혀서 잘린 털을 바닥에서 훔쳐낸다.(199쪽)” 언제라도 그녀의 사생활에 침입할 수 있음을 은밀하면서도 명백히 보여주는 것이지요. 


클라라의 애인이 비밀경찰의 간부 파벨이라는 사실을 아디나가 알게 되면서 두 사람은 서먹해진다. 하지만 클라라는 아디나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쪽지에 적어 알려줍니다. “사람들이 체포될 거야 리스트가 있어 넌 숨어야만 해 우리 집에서는 아무도 널 찾지 못할 거야(300쪽)” 차우셰스쿠 정권이 권력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시도로 집단 체포를 계획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클라라의 통지를 받은 아디나는 남자친구 파울과 함께 국경마을에 사는 친구 리비우에게로 서둘러 피신했습니다. 하지만 리비우의 집에서 지내는 것도 불안한 나날의 연속입니다. 도나우 강을 건너 다른 나라로 도망을 쳐야 할까 생각하는 사이에 차우셰스쿠가 실각하는 장면을 TV에서 보게 됩니다. 그 장면을 본 리비우는 화면에 입맞춤을 하면서 ‘널 먹어버리겠어’라고 말합니다. 파울은 리비우와 함께 화주를 마시면서 금지된 노래를 부릅니다. “깨어나라 루마니아여 네 영원한 잠에서(334쪽)”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라는 제목은 ‘희생자와 가해자를 구분할 수 없다’라는 뜻을 담은 루마니아의 속담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합니다. 차우셰스쿠 정권이 붕괴되었더라도 독재자의 추종 세력과 그 체제에 익숙해진 탓에 정치나 사회적 분위기가 근본적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을 암시한다는 것입니다.


등장인물들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을 아주 세밀하게 묘사하다보니 이야기의 중심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가늠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작가가 이런 방식으로 이야기를 끌어간 것은 독재정권의 감시와 통제를 비껴가기 위한 방식일 것으로 추측되기도 합니다.

y*****2 2024.06.12.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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뮐러가 만들어 놓은 언어들이란...
"뮐러가 만들어 놓은 언어들이란..." 내용보기
<숨그네>를 읽으면서 그녀의 팬이 되고 싶었다.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는 그런점에서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러나,생각처럼 쉽게 읽히지가 않았다. 그렇게 앞장에서 읽고 쉬기를 반복하던 때,뮐러의 기사를 신문에서 만났다.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에 담긴 뜻도 알았다.(옮긴이의 말에도 간단한 소개가 있었지만,처음에는 뒷장을 펴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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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그네>를 읽으면서 그녀의 팬이 되고 싶었다.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는 그런점에서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러나,생각처럼 쉽게 읽히지가 않았다. 그렇게 앞장에서 읽고 쉬기를 반복하던 때,뮐러의 기사를 신문에서 만났다.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에 담긴 뜻도 알았다.(옮긴이의 말에도 간단한 소개가 있었지만,처음에는 뒷장을 펴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ㅠ)

어쩄든,신문 기사 속에서 만난 책의 소개 덕분에 다시 읽을 용기가(?)난 샘이다.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는 루마니아 속담에서 따온 것으로 희생자와 가해자를 구분할 수 없다는 것,독재정권이 붕괴되었어도 독재자의 추종 세력과 그 시스템에 익숙해진 탓에 근본적인 정치.사회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경향신문 책 소개 중에서)

또한 작가 역시 루마니아 공산체체에 협조하라는 협박에 끝없이 시달렸던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작품이라고 했다.

그러나 작가는 <숨그네>에서도 그러했듯,이 책에서 역시 잔인한 언어 없이도 생생한 고통의 현장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작가가 만들어낸 언어들의 세계를 좀처럼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도대체 무슨 말일까? 이것은 무슨 뜻일까?

이런 인내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뮐러가 만들어낸 언어의 매력속으로 빠져 들어 갈 수가 있다.

왜냐하면 어느 순간 부터 그녀가 만들어 놓은 언어의 마술은 하나의 커다란 퍼즐 같은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독자는 조각조각으로 이뤄진 낱말의 상징적인 암호를 풀어야 한다.

뮐러는 자신의 이야기를 정공법으로,때로는 극악스럽게,혹은 적나라하게 이야기 해 주지 않았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언어세계로 들어 올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이들에게만 퍼즐을 허락해 주고 있었다.

'얼굴 없는 얼굴'을 읽으면서 그녀의 매력 속으로 완전하게 빠질 수 있었다.

옮긴이의 말처럼,이 책은 인내의 시간이 필요했다.

<숨그네>처럼 분명 언어의 마술적 느낌은 같았지만,숨그네와는 다르다.

숨그네는 스토리에 대한 설명을 느낄 수 있었지만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는 퍼즐이 완성되어 가는 순간순간 독자들이 스토리를 이해할 수 있을 뿐이지,그저 단문의 문장들로 읽게 되면 말장난 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을 정도로 스토리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의 마술적언어의 느낌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느낌은 180도 달라진다.

 

뮐러는 어째서 이렇게 자신만의 언어로 책 한권을 쓰게 되였을까?
왜 쉽게 독자들에게 접근하는 방법을 선택하지 않은 것일까? 물어 보고 싶었다.

그리고 혼자 생각해 보기를,예전에 <올가의 반어법>에서 처럼 작가 역시 살아 남기 위해 살아 내기 위해 자신만의 언어들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였을까?

차우세스쿠를 독재자로 표현했다면,그녀는 살아 남지 못했을 테니까 말이다.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는 커다란 낱말상자였다.

그녀의 아픔이,친구의 배신이,혹은 누군가의 죽음을,고통을 ,독재자의 모습,사회의 부조리를 그녀가 만들어 놓은 언어로 가득한!

사실,이렇게 보이는 퍼즐을 맞추려고,혹은 그녀가 만들어 놓은 언어적 마술에 취해 아디나의 슬픔과 클라라의 갈등을 가슴으로 크게 느낄 수 있는 준비가 없었다.

한 호흡 쉬고 나서...

아디나의 시선으로 다시 읽어 볼 생각이다.

 

인내가 필요한 책이였다.

그러나 인내의 끝엔 뮐러의 언어마술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w*******i 2010.08.21. 신고 공감 2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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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보다 더 뛰어난 문장은 없었다-
"속담보다 더 뛰어난 문장은 없었다-" 내용보기
루마니아 속담,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우리말로 풀면 이런 말이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된다는 것, 야구로 치자면 투수의 공을 치는 타자가 되기도, 타자를 아웃시키기 위한 투수가 되기도 한다는 말이다. 이 속담이 제목으로 나온 이유가 무엇일까?2009년 빛나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헤르타 뮐러는 루마니아 독재정권에 적극 저항하는 1인이였다 . 그 때문에 비밀경찰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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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 속담,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
우리말로 풀면 이런 말이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된다는 것, 야구로 치자면 투수의 공을 치는 타자가 되기도, 타자를 아웃시키기 위한 투수가 되기도 한다는 말이다. 이 속담이 제목으로 나온 이유가 무엇일까?

2009년 빛나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헤르타 뮐러는 루마니아 독재정권에 적극 저항하는 1인이였다 . 그 때문에 비밀경찰들에게 항시 감기를 받고 협박을 받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굳굳이 몸부림 치며 저항하는 데에는 무슨 이유가 필요할까?
그 옴몸의 발버둥이 한 권의 책으로 탄생했다. 

한 여선생이 등장한다. 루마니아의 독재정권에 대항하는.......한 마디 말 때문에 찍혀 비밀경찰에 감시를 받는다. 은은히, 은밀하게, 조금씩 조여오는......숨 쉬는 것도 허락을 받아야 할 만큼 타락한 정권이다. 그런 환경에 헤르타 뮐러는 살아왔던 것이다. 자전적 소설의 냄새가 아주 훅 끼쳐온다. 그녀는 이 소설을 써야만 한다는 어떤 사명감을 갖고 살고 있는 듯 하다. 

결국 독재정권은 무너지지만 어떤 힘의 탄력성, 즉 힘의 논리에 의해 권력과 부를 가진자들은 계속해서 갖길 원한다. 그 비상식적이고 어이없는 상황들을 이 한 권의 책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루마니아판 조지오웰의 <1984>라 할 수 있는 대작이다. 
당신은 목숨걸고 저항할 수 있는가? 빅브라더는 지금 당신을 보고 있을지 모른다. 우린 그런 세상에서 살고 있을지도.....

 

k******o 2011.03.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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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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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 차우셰스쿠 독재자 시절을 겪어낸 굴곡많은 작가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시절의 참담함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기 보다는 간혹 너무 어렵다 싶을 만큼 은유적이고 시적이고 아름다운 단어들로 표현해낸 산문들이 오히려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주인공 아디나의 방에 깔린 여우카펫트의 다리들이 잘려나감으로 그녀의 사생활이 보호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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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 차우셰스쿠 독재자 시절을 겪어낸 굴곡많은

작가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시절의 참담함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기 보다는

간혹 너무 어렵다 싶을 만큼 은유적이고 시적이고 아름다운

단어들로 표현해낸 산문들이 오히려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주인공 아디나의 방에 깔린 여우카펫트의 다리들이

잘려나감으로 그녀의 사생활이 보호되지 못하고

독재 정권의 감시체제에 놓여있음을 비유하고 있다.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독재 정권 비밀경찰의 애인인

클라라 덕분에 그녀는 여우의 머리가

잘리기 전에 도시를 빠져나와 시골로 피신한다.

끝날 것 같지 않던 독재 정권이 무너지고 그녀는 다시 도시로

돌아오지만 거리 곳곳에는 독재의 흔적과 사람들의 아픔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작가의

작품에서 아픔이 묻어나듯이...

작가는 결코 시절의 시련과 상처를 구구절절 드러내지 않는다.

주인공들의 심리묘사는 배제한 채,

담담하고 아름다운 문장들로 이루어진 섬세한 상황의

묘사만이 있을 뿐이다.

그런 점들이 그녀의 이야기들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어 주고 빠져들게 만든다.

정치 암흑기가 가져다 준 공포와 불안의 심리가 이렇게

아름다운 글들로 표현될 때 오히려 더욱 아프게만 느껴진다.



y********a 2010.12.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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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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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뭐 완전 추상화를 보는듯하다. 다른 사람들이야 워낙 어려운 책들을 잘 섭렵하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어렵다. 마치 그림의 꼴라쥬를 보는 듯하다. 이것저것 써놓은 다음에 모두 뒤섞어 놓은것. 아니면 일상은 너무나도 식상해서 끝간데까지 저지르고 싶은 그런 글. 나를 그저 토해내기. 등등. 어렵다는 생각으로 일단 손에 쥐는 순간부터 진저리를 치는 책이다. 마치 어려운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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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뭐 완전 추상화를 보는듯하다. 다른 사람들이야 워낙 어려운 책들을 잘 섭렵하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어렵다. 마치 그림의 꼴라쥬를 보는 듯하다. 이것저것 써놓은 다음에 모두 뒤섞어 놓은것. 아니면 일상은 너무나도 식상해서 끝간데까지 저지르고 싶은 그런 글. 나를 그저 토해내기. 등등. 어렵다는 생각으로 일단 손에 쥐는 순간부터 진저리를 치는 책이다. 마치 어려운 시를 보는듯도 하고 말이다.

 

한 문장안에서도 너무 많은 뜻을 담고 있어서 헤아리며 읽는 다는 것이 곡예를 하는 수준이다. 한줄 위에서 절대 떨어지면 안된다는 사명감으로 서 있다가 순간 줄을 놓치는 그런 느낌이다. 오즉했으면 첫문장을, 첫단락을 보면서 따라쓰기를 했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이 작가의 글은 대부분이 이렇다. 마치 예전에 보았던 (도대체 뭘 기억하는게 있어야지) 그림중 한국화가인데 그림자가 파란색인 그림이 있다. 아마도 이렇게만 이야기해도 그림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은 많이 알 것이다. 교과서에도 나왓던가? 그런 그림. 사실 그림자가 파란색은 아니다. 하지만 파란색으로 칠했을때 또 다른 풍요로운 세계를 만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드는 생각이 계속 그런 생각이었다.

 

그래서 뒷부분의 책의 해설을 보니 음....이 책이 그런 내용이구나..라는 정리가 되었다. 뭐 완전히 정리가 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도대체 노벨문학상이라는 것은 내가 이해할수 없는 범주에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더욱 열심히 분석하고 싶은 욕망이 마구마구 타오르던 이야기이다.

 

작가는 이야기한다. 자신의 이야기들은 자신의 경험을 그저 사실적으로 그려낸 것이라고 말이다. 정치적인 이데올르기가 아니라 그저 현실 그 자체라고 한다. 독재정권하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기름이 묻은 작업장 바닥에 노동자 한 명이 누워 있다. 그의 눈은 반쯤 감겨 있고 동공은 뒤집혀 있다. 압축기 옆은 온통 피바다이다. 피바다는 응고되지 않고 기름을 흡수한다. 호랑이무늬 고양이가 피바다 냄새를 맡는다. (153쪽)

 

 아디나는 잠시 생각한다. 금지된 노래가 도시 주변을 휘감았기 때문에 도시는 결코 멈추지 않을거라고. 거리가 계속 시골로 퍼져가고 도처에 도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딘가 어두운 들판에서, 길이 선회하면, 종이 울릴 것이다. 왜냐하면 얼어버린 옥수수밭 뒷숲은 공원이니까. 대성당의 시계탑이 그 뒤에 서 있고, 빈 밭은 전혀 비어 있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한가운데로 강이 구불구불 흐를 테니까.(306쪽)

 

 잠에 의해 분리된, 베게 위의 두 머리와 귀들은 머리카락 아래에 있다. 그리고 잠 위에서, 도시 위에서, 가볍고 슬픈 날이 기다리고 있다. 겨울과 따뜻한 공기 그리고 죽은 사람들은 차갑다. 아비의 주방에 있는 가득 찬 잔을 아무도 마셔 비우지 않는다.(346쪽)

y****4 2010.09.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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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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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롬 컴플렉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동일시되어 동정심이나 사랑을 느끼게 되는 상태.   <그 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는 제목 또한 이러한 컴플렉스와 관련있다. 독재에 눌리다 못해 적응되고, 어느 새 내면화시켜버리는 사람들. 그래서 여우는 이미 자신을 죽이는 사냥꾼과 동일시 되어버린 것이다. 이들은 어느새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독재를 옹호하고, 자유를 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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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롬 컴플렉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동일시되어 동정심이나 사랑을 느끼게 되는 상태.

 

<그 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는 제목 또한 이러한 컴플렉스와 관련있다.

독재에 눌리다 못해 적응되고, 어느 새 내면화시켜버리는 사람들.

그래서 여우는 이미 자신을 죽이는 사냥꾼과 동일시 되어버린 것이다.

이들은 어느새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독재를 옹호하고, 자유를 혐오해 버리게 된다.

 

우리나라의 군부독재시절을 그리워 하는, 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갔다.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대통령이 그에게 카네이션 꽃다발을 바친다. 노동자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그들의 입술은 양손의 박자에 맞춰 열렸다 닫혔다 한다. 파벨은 자신이 말하는 소리를 듣는다. 모든 공장엔 검은색 자동차가 있어. 그리고 클라라가 말하는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당신은 공장에 소속되어 있지도 않잖아요. 그는 팔을 뒤로 뻗어 텔레비전을 끈다.

 

 

어떤 현실적인 스릴러 못지 않은 비밀경찰의 소행도 눈에 띈다.

하루하루, 바닥에 깔린 여우 장판의 다리가 하나씩 사라진다.

'너를 지켜보고 있다'는 표시. 그러나 다른 흔적은 없다.

이러한 상황들에서 미쳐버리지 않고 살아갈 방법이 있을까.

사냥꾼이 잡으려 했던 여우는 이미 사냥꾼이 되어버린 상태다. 일제시대에 하릴없이 일본인이 되어버린 사람들. 진심인지 아닌지도 모른 채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자신을 자랑스런 일본 신민이라 자처하던 사람들. 그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표지 안의 여인은 너무나 처참한 표정이다. 사막 아래에서 어떠한 빛 하나 없이, 그저 바라볼 곳이 없어 하늘을 바라본다. 어떤 구원이 있을까. 대답은 아무도 해주지 않아서, 여인은 울지도 못하고 웃지도 못한다.

 

소설은 이러한 상황의 묘사를 위해 위태하고 단편적인 언어를 사용한다.

'비극은 시의 옷을 입어야 한다'는 헤르타뮐러 작가의 말처럼, 끔찍하게도 아름다운 소설이다.

 

 

 

p*********y 2010.08.09. 신고 공감 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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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 억압과 감시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서 도망가버린 희망과 의지.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 억압과 감시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서 도망가버린 희망과 의지." 내용보기
헤르타 뮐러의 글들은 쉽지 않다. 숨그네와 마음짐승이라는 두 권의 책들을 읽으며, 이미 나는 그녀의 이름으로 쓰여진 이야기들은 나를 편안하게 이야기 속에 잡아두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단어 하나, 문장 한 줄 앞에서도 수 없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그 안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는 그녀만의 이야기들을 떠올리기 위해 오랜 시간을 공들여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 바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 억압과 감시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서 도망가버린 희망과 의지." 내용보기
헤르타 뮐러의 글들은 쉽지 않다. 숨그네와 마음짐승이라는 두 권의 책들을 읽으며, 이미 나는 그녀의 이름으로 쓰여진 이야기들은 나를 편안하게 이야기 속에 잡아두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단어 하나, 문장 한 줄 앞에서도 수 없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그 안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는 그녀만의 이야기들을 떠올리기 위해 오랜 시간을 공들여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 바로 그녀의 이야기라는 것을 이미 앞서 경험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를 마주하던 순간에도 나는 어느 정도의 각오를 해야만했다. 이 책이 나를 편안하게 두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가 써내려간 그 많은 단어들과 문장들은 여느 글들과는 다르게 무거운 저 깊은 아래로 자꾸만 가라앉을 것이며, 나는 또 그 말들과 의미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공을 들여, 시간을 들여 노력해야할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말이다. 하지만 그런 각오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는 나의 예상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이미 내가 먼저 읽었던 헤르타 뮐러의 다른 작품인 <숨그네>와 <마음짐승>보다 훨씬 더 나를 당황스럽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그만큼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는 깊고 깊은 이야기였다.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의 이야기를 끌어가는, 혹은 이 이야기 속에서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주인공은 아디나와 클라라라는 이름의 두 여인이다.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일을 하고 있는 아디나와 비밀경찰의 일을 하고 있는 애인을 두고 있는 친구 클라라. 친구이기도 한 이 두여인은 서로 각자 다른 방식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아디나는 체제의 억압과 힘에 정면으로 맞설수는 없지만 그녀만의 방식으로 아이들을 위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클라라는 자신의 힘이 부족하다면 자신이 얻을 수 있는 힘을 몰래 업어서라도 자신이 취할 수 있는 이득을 취하는 쪽을 선택한다. 절친한 친구인 아디나에게조차 비밀로 해야할 만큼 당당하지 못한 비밀을 가진채 말이다. 그리고 이런 그들의 다른 모습은 억압과 감시라는 당시 루마니아의 모습과 더해져 이들의 사이를 벌어지게 만든다.

노동영웅이 추앙받는 그들의 세상에서 사람들은 매일매일을 고된 노동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노동에 대한 압박은 아디나가 가르치는 아이들조차도 피해가지 않는다. 국가가 힘으로 시대를 억누르고 무작정 강요하는 세상 속에서 아이들이라고 그 힘을 피해갈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아디나는 노동의 대상으로 간주되어버린 아이들에게 그저 착취만을 당하지 않도록 나름의 방법을 알려주는 것으로 작은 저항을 하고, 자신만의 한 조각 양심을 지켜간다. 그리고 대신 체제에 저항하는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혀 더욱 치밀하지만 더욱 공포스러운 감시의 대상으로 선택되고야 만다. 은밀하고도 공포스러운, 그러나 숨기려 하지 않은 거대한 힘 앞에서 점점 쫓기는 신세가 된다. 결국 그녀의 모습은 언제나 감시의 눈초리를 벗어나지 못한 채 매일매일 쫓기며 살아야 하는 힘없는 여우를, 사냥꾼의 덫에 걸린채 몸부림 칠 수록 고통스러워지는 그 시대의 잔인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친구 클라라는 조금 다른 선택을 한다. 그녀는 그녀가 얻고자 하는 아주 작은 혜택을 위해 절친한 아디나에게조차 비밀로 해야할만큼 은밀한 비밀을 등에 업는 쪽을 선택한다. 비밀경찰인 애인을 얻고, 그와의 관계를 통해 몇가지 혜택을 얻는 것으로 조금 더 편안한 삶을 선택한 클라라. 때문에 그녀와 그녀의 은밀한 애인의 관계가 아디나에게 알려졌을 때 그녀들에게는 '우정'이라 불리우는 관계마저도 허락되지 못하게 되어버린다. 끝없는 감시의 공포에 시달리는 자와 감시를 하는 자의 연인 사이에 우정이란 그 누가 보아도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니 말이다.

클라라와 아디나의 모습은 그래서 친구라 말하는 이들에게조차 믿음을 남겨주지 않는 시대의 잔인함이기도 하다. 또한, 비록 미비하고 연약한 저항이라 할지라도 나름의 방법으로 체제에 저항하려 움직인 아디나와 비밀경찰인 애인을 둔 클라라의 사이는 그렇게 당시 루마니아에 존재했던 수 없이 많은 군중의 모습과, 그 시대에 존재했던 억압과 감시, 그리고 가난이 인간들을 얼마나 하찮은 것들 앞에서 인간으로서의 자존심과 양심을 버리고 무릎꿇게 했는지를 보여주는 바로 그 모습이기도 하다.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안에서 그녀들이 살아갔던 시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그녀들 뿐만이 아니다. 그녀들과 함께 같은 시간들을 살아가고 있는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도 강압과 감시, 가난과 허기가 사람들을 얼마나 처참하게 몰고가는지를 끝없이 볼 수 있다.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간보다, 그의 목을 걸고 있는 한 가닥의 줄이 자신에게 얼마나 효용가치가 있는지를 먼저 가늠한다. 또, 힘을 가진자의 잘못은 언제든 무슨 방식으로든 타인에게 전가될 수 있으며, 그 힘으로 그 어떤 것이든 손쉽고 당당하게 얻을 수 있음을, 힘을 가지지 못한 자는 언제나 위태롭게 한 순간 한 순간을 버티며 살아내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공장 곳곳에는 노동자와 같은 수의 절도범들이 존재한다 결론짓고, 감시와 압박을 정당화 한 세상. 자유와 의지보다는 타인에 대한 압력과 복종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그들이 한때에는 지녔을지도 모를 희망과 열망 대신 무기력만을 채워넣고 시대가 강요하는 대로 가난의 고통과 감시의 공포에 무감각해진다. 그리고 그 무기력과 무감각 속에서 삶을 유지하고자 한다. 

가난은 피할 수 없고, 허기는 익숙해졌지만, 더 가난하고, 더 배고프지 않기 위해 그들은 훔치고 숨긴다. 다른 이들이 모두 훔치기에 자신도 훔친다. 또, 그들보다 조금 더 힘을 가지기 위해 훔치는 타인을 감시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 순간 그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 모두가 훔치고 모두가 감시하는 세상이 되어 버린다. 권력이라는 힘 앞에서 힘없이 늘어진 여우였던 모든 이들이 그렇게 서로를 감시하는 더욱 거대한 사냥꾼이 되어 서로를 향한 덫을 놓고, 서로가 몸부림치며 고통스러워 하기를 기다리는 공포스러우리만치 무감각해진 세상이 되어가는 것이다.  마치 그것만이 가장 재미있는 놀이라도 된다는 듯이 망원경을 들고 높은 곳에 올라서서 숲을 보는 사냥꾼처럼...

그리고 그렇게 세상에 익숙해진 상태로 시간을 살아가던 사람들은 세상이 변화하고 달라져도 다시 힘을 얻지 못했다. 분명, 여우의 머리가 잘리기 전 도망한 아디나는 시골로 숨은 뒤 TV를 통해 그들을 억압하고 감시한 세상이 종결되었음을 알게 되지만, 세상의 변화를 느끼지는 못한다. 여전히 세상은 억압당하고 감시당했던 그 때처럼 흙색이다. 벽의 사진들은 사라지고, 벽보는 더 이상 붙지 않지만, 억압과 감시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여전히 그 세상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욕조 위에 떨어진 해바라기 씨 껍질이 이제는 차창 밖으로 내뱉어질 뿐, 더 이상의 변화는 없다. 이미 아디나와 클라라가 살았던 세상에서 억압과 감시는 사냥꾼이 아닌 여우 그 자신들이 서로를 향해 하고 있었기에, 사냥꾼이 사라진다 한들 달라질 것은 없는 것이다. 오히려 더 많은 여우의 모습을 한 사냥꾼만이 남아있을 뿐이니 말이다.
 
 
아마도 헤르타 뮐러는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를 통해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한번 잘못 흘러가기 시작한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는 것. 또, 그렇게 흘러가 오랜 시간 굳어져버린 잘못된 시대의 모습에는, 이미 돌아갈 제자리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말이다. 수 없이 많은 소설과 영화들이, 그리고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들이, 사람들에게 희망을 말하, 다시 일어서고자 하는 의지의 강인함을 퍼트리지만, 실제로 그녀가 경험한 고국 루마니아가 겪은 시대의 고통은 그렇게 한 순간 사라지지 않았음을.. 현실은 해피엔딩을 준비하고 이야기를 시작하지는 않는 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녀가 이 이야기를 통해 한번 잘못 들어선 시간은 절대 되돌릴 수 없다는 단언을 하고자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그렇기에 더욱 시대가 강요하는 가치의 중요성을, 잘못되어서는 안되는 시대의 흐름을 역설하고자 한 것일테다. 그녀 자신이 그 잘못된 시대와 공포의 시간들을 버티며 살아온 산증인으로 옹이진 상처를 끌어안은 채 여전히 그 시대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헤르타 뮐러 그녀의 시대를 아디나로써 살아왔다. 또한 그녀는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의 클라라처럼 비밀을 간직한 채 자신에게 왔던 친구를 두고 있기도 했다. 그녀 자신이 경험했던 배신과 의심, 공포와 두려움을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 속에서 보여주고 잘못된 시대가 인간을 얼마나 바닥으로 끌어내리는지를 보여주면서도, 한 켠에는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 속의 클라라가 아디나에게 집단체포에 대해 알려주는 것으로  마지막 신의를 지킬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것은, 여우와 사냥꾼의 구분이 의미가 없어질 정도로 치졸해졌던 인간에게도 그 어딘가에 희망이라는 것이 반드시 있으리라는 그녀의 바람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녀가 경험한 현실이 아무리 냉혹하고 잔인했다 하더라도, 그 현실을 벗어날 방법 또한 사람에게서 밖에는 찾을 수 없음을 그녀도 알고 있었을테니 말이다.
t*******9 2010.11.3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