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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휘 주인장의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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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책을 내느라 그동안 수고하신 김용만 선생님께 깊은 감사와 함께 수고의 말씀을 드린다. 주인장이 그동안 부대에 있으면서 가장 기다렸던 것이 바로 이 책의 출판이었다. 주인장이 군대에 가기 전부터 선생님은 오래도록 꿔왔던 꿈, 즉 연개소문이라는 영웅(적어도 주인장은 그렇게 생각한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본격적으로 전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었고 또한 그것은 주인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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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책을 내느라 그동안 수고하신 김용만 선생님께 깊은 감사와 함께 수고의 말씀을 드린다. 주인장이 그동안 부대에 있으면서 가장 기다렸던 것이 바로 이 책의 출판이었다. 주인장이 군대에 가기 전부터 선생님은 오래도록 꿔왔던 꿈, 즉 연개소문이라는 영웅(적어도 주인장은 그렇게 생각한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본격적으로 전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었고 또한 그것은 주인장을 비롯한 고구려史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바램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주인장이 휴가를 나오자마자 인터넷을 뒤져 이 책의 출판을 확인하고 바로 구입한 것이 이상할리 없을 것이다.

먼저 이 책을 처음 접한 사람이라면 얼핏 보고 이 책을 단순한 인물 평전으로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나온 인물 평전이라면 이도학 선생님이 쓴 '백제장군 흑치상지 평전' 이 있을 것이다. 자료가 극히 없는 상태에서 그 정도의 인물 평전을 쓴 것만도 대단한 일일 것이나 이 연개소문전은 그와는 약간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책은 단순한 인물 평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시대史를 조명하는데 집중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인장 역시 이 제목을 보고 어떤 내용일까 하는 막연한 기대심을 가지고 있었다. 자료가 극히 없는 상태에서, 중국측에 존재하는 극히 변질되어 있는 사료들, 그 안에서 과연 연개소문이라는 인간을 얼만큼이나 현실 세계로 끌어내 대중들에게 인식시켜 줬을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있었다. 연개소문이 태어나기 이전의 고구려부터 태어났을 무렵의 고구려, 연개소문이 살아 숨쉬고 정권을 잡고 활동하던 고구려와 동시대의 당을 비롯한 덩대 천하가 이 안에서 모두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연개소문의 50여년 인생(저자는 연개소문의 사망년월을 663년 10월로 보고 있다)을 통해 본 당대 7세기의 아시아 사회가 바로 이 책이 알리고자 하는 내용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 반세기동안 고구려는 부흥과 좌절, 멸망에 이르는 여러가지 사회적 변환을 거치게 되며 700년이 넘게 계속되어 온 동북아시아의 유일한 패권자(覇權者)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과연 이 반세기동안 고구려에서 일어난 사실들과 당대 최고 집권자였던 연개소문 사이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으며 또한 어떤 사실들이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것과 달랐던 것일까? 이 책은 그에 대한 대답을 지금 우리에게 해 주고 있는 것이다.

주인장이 이 책을 그렇게 학수고대하며 기다리고 또 눈여겨 본 것은 바로 '고-당 문명대전' 에 대한 재평가 때문이다. 고구려는 이미 영양태왕때 수(隨)라고 하는 엄청난 괴물을 연거푸 쓰러뜨리면서 700여년 대국의 위엄을 지켰다. 아직까지 동북아시아의 지존은 고구려였으며 초원에서도, 중원 대륙에서도 그런 고구려의 지존의 자리를 넘볼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하지만 수 이후 당(唐)이라는 존재가 두각을 드러내면서 고구려의 지존의 자리는 끊임없는 도전에 직면하게 되고 곧 그 위엄은 흔들리게 된 것이다. 이 책은 그 고구려와 당과의, 천하를 두고 결전을 벌인 당대 시대를 조명하고 있다.

먼저 눈에 띄는 내용을 꼽으라면 천리장성(千里長城)에 대한 기존의 해석과 전혀 다른 저자의 해석이 있겠다. 장성이라는 표현에 발목이 묶여 다채로운 해석이 불가능했던 기존의 견해와 달리 저자는 천리장성이란 본성(本城)과 중·소성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방어용 네트워크(Network)였던 거지, 만리장성과 같은 성격의 경계선이 아님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는 뒤에 나오겠지만 신성과 요동성, 건안성 등 앞으로 벌어질 고-당 문명대전에서 고구려의 서부 방어 진지들이 어떻게 적의 침입을 막아냈는지 얘기해 줄 중요한 전제조건이기에 저자는 천리장성에 대한 얘기를 서두에 이미 꺼내놓은 것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저자는 고-당 문명대전이 단순히 천하를 발아래 두고자 하는 당 태종 이세민의 야욕에 불탄 단순한 당의 침략과 고구려의 방어, 이런 구도로 이뤄진 것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다. 고구려는 당시 이미 만리장성의 북쪽과 초원과의 경계라 할수 있는 난하 상류 일대 동쪽을 지배하고 있던 동북아시아의 패자였었다. 그런 고구려가 단순히 당이라고 하는 신흥 대국의 침입이 있을때까지 묵과하고 있다가 수세적인 입장에만 놓였을까? 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조선상고사나 환단고기가 말하는 연개소문의 중원대륙 정벌은 100% 거짓이란 말인가? 저자는 이에 대해서 부인도, 긍정도 하지 않는다. 기준 잣대가 될만한 사료가 없는 지금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리라.

제 1차 고-당 문명대전에서의 안시성 전투에 얽힌 미스테리는 주필산 전투에 대한 재해석으로 비로소 의문이 풀리며 앞서 말한 신성과 건안성, 즉 천리장성이라고 불리는 요동 방어 시스템의 놀라운 효과는 수십만 당군을 한줌 이슬로 날려버리며 통쾌함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대를 이어 벌어진 제 2차 고-당 문명대전에서의 당측의 변칙 전술과 고구려측의 끈질긴 임전무퇴 정신에 대한 내용은 읽는 이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까지 하는 것이다.

저 멀리 사마르칸트의 강국(康國)에까지 사신을 보내 당을 좌우에서 협공하려고 했던 고구려, 그리고 당을 압박하며 일인천하일통의 과대팽창야욕을 억제하려 했던 설연타, 철륵과의 연합 전선을 펼친 고구려, 허무하게 무너진 백제의 부흥을 도우며 당과 신라 양측을 상대하며 꿋꿋히 버티던 고구려, 이렇듯이 이 책은 당대 아시아 전체에 걸쳐 외교권을 형성하며 천하를 경영한 고구려에 대해서 유감없이 그 실체를 밝혀주고 있다.

이렇게 박진감 넘치는 내용이 전개되는 중간중간 저자는 기존에 잘못 알려져 있고, 잘못 연구되고 있는 사실들에 대해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이 책은 역사 소설이 아니다. 기존에 나온, 연개소문이나 고구려에 대한 단순한 역사 소설이 아니기 때문에 이 책은 단순히 헛된 망상이나 거짓을 실을 수 없는 것이다. 아울러 역사에 근접한 사실을 기록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아무리 이 책이 읽기 쉽고 이야기 형식으로 내용을 전개한다고 해도 그 담긴 내용들은 결코 가벼운 의미의 내용들이 아님을 인식해야만 한다. 저자는 7세기의 아시아를 새롭게 재해석했다. 막연하게 흐린 역사가 이 책에서만큼은 저자의 의도대로 뚜렷한 선을 그은 것이다.

이 책을 2번 읽어보고, 또 3번째 읽어본 후에 이렇게 서평을 쓰고 있는 주인장은 이 책이 대단히 잘 쓰여진, 또한 새로운 시도가 돋보이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영류태왕에 대한 평가가 주인장이 기존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부정적으로 된 면이나 백제의 멸망에 대한 뭔가 조금 모자란 듯한 서술, 연개소문 당사자에 대한 평가 부족 등이 아쉽다 할 수 있겠다. 연개소문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7세기 아시아史를 투영시킨 점은 돋보였지만 정작 그러다보니 그 매개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또한 주인장 같은 사람은 역사책을 볼때 쉽고 이해하기 쉬운 역사책을 원하기도 하지만 풍부한 자료와 다양한 주석이 담긴 역사책을 원하기도 한다. 물론 책을 쓰고 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님을 알기에 여기에 적는 내용은 주인장의 어리석은 푸념 정도로만 들으면 될 것이다. 주인장은 연개소문과 7세기 고구려를 엮어내는 이 책이 조금 더 많은 사실들을 책에 담아 다소 지루하고 따분하더라도 가능한 모든 것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램도 한번 해 본다. 그 말은 곧 이 책이 단순한 역사 마니아들만 보는 책이 아닌, 일반 교양서로도 충분하다는 말이 되겠다.

뛰어난 전략가이자 영웅이었던 연개소문은 그렇다고 일국의 지도자로서도 성공한 케이스는 아니었다.

이런 연개소문을 저자는 그동안 그렇게 표현하려고 갈망했었던 모양이다.

고구려의 문명대국으로서의 존재 가치에 대해 오래도록 책을 내고 연구하며 글을 써온 저자의 생각이 이 책을 통해 연개소문이라는 인물을 대표해 표출된 것이 아닐까 하며 이만 글을 마치고자 한다.
[인상깊은구절]
어차피 역사는 똑같이 되풀이되지 않는다. 고구려가 다시 재건되지도 않을 것이며 연개소문이 살아 돌아오지도 못할 것이다. 막연히 고구려에 대해 환상을 갖기보다는, 과거의 역사에서 오늘의 현실에 필요한 더할 나위 없는 교훈을 배우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s*****m 2003.11.21. 신고 공감 9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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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그림 못본 전쟁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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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사 논란의 한복판에서 또한권의 고구려사 책을 잡았다. 그것도 고구려 최후의 역사. 참 아이러니였다. 수나라의 대규모 침략을 살수대첩의 일격으로 몰아낸 것이 612년, 당나라의 대규모 침략을 안시성에서 막아낸 것이 645년이었다. 하지만 불과 얼마 뒤, 668년에 고구려는 멸망하고 만다. 꺼지지 직전 마지막으로 화려했던 역사였나. 항상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역사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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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사 논란의 한복판에서 또한권의 고구려사 책을 잡았다. 그것도 고구려 최후의 역사. 참 아이러니였다. 수나라의 대규모 침략을 살수대첩의 일격으로 몰아낸 것이 612년, 당나라의 대규모 침략을 안시성에서 막아낸 것이 645년이었다. 하지만 불과 얼마 뒤, 668년에 고구려는 멸망하고 만다. 꺼지지 직전 마지막으로 화려했던 역사였나. 항상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역사학자들에게도 이해가 안되기는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갑작스러운 고구려 붕괴의 원인은 언제나 연개소문의 못난 자식들 탓으로 돌아가곤 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과감하게도 그 책임의 상당 부분을 연개소문 자신에게 돌리고 있다. 고구려의 자존심을 지키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이미 늙어버린 제국을 재건하는 노력은 게을리 했다는게 그 죄목이다. 말하자면 요즘 유행하는 변혁과 혁신이라는 화두를 실천하지 못한 죄가 된다. 사실 연개소문이 들으면 억울해 할 지적이다. 당 태종 이세민이 집권한게 626년인 반면, 연개소문의 집권은 642년이다. 645년의 전쟁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이세민에게는 20여년의 시간이 있었지만, 연개소문에게는 불과 2~3년이 주어졌을 뿐이다. 제도 개혁에 나서기는, 나라의 틀을 고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다. 특히나 이세민은 황제였던 반면, 연개소문은 실권자이긴 했으나 왕이 아니었다. 이래저래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연개소문이 완전한 면죄부를 받기는 어렵다. 명백한 실수가 있었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 실수, 전쟁에서 이기고 국운을 잃은 실수,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한 실수였다. 고구려는 중국을 제외하고 스스로를 지칭하면서 천하 또는 중원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유일한 나라였다. 자국 중심의 세계관을 갖고 있는 나라였다. 중국이 주변 이민족들을 신하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었듯이, 고구려는 주변 민족을 때로는 형제로, 때로는 군신으로 표현하며 복속시키는 나라였다.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두 나라가 공유할 수 없는 세계관의 충돌이 발생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 세계관을 어떻게 실천하느냐다. 이세민은 고구려와 전쟁 이전 20년동안 주변 민족들의 위협요소를 없애는데 주력했다. 안심하고 고구려와의 전면전을 벌이기 위한 준비였던 셈이다. 고구려는 당과의 국경 수비선을 강화하는데에 힘을 집중했다. 북방 민족과의 외교노력을 통해 당을 견제하려는 노력의 흔적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결정적인 전쟁 과정에서는 큰 효과를 얻지 못했다. 서역의 사마르칸트(지금의 우즈베키스탄) 벽화에 고구려 사신이 등장한다. 당나라의 배후를 노린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결정적인 실수는 신라와의 관계였다. 광개토대왕비에 나타나 있듯, 고구려와 신라 사이에는 전통적으로 군신관계가 성립돼 있었다. 이런 신라가 백제의 침입으로 곤경에 처해 도움을 청했을 때, 고구려는 오히려 백제와 손을 잡는다. 종주국의 입장에서 신라를 끌어안기 보다는 고립시켜 버린 것이다. 종주국의 도움을 얻을 수 없게 된 신라는 당에다 구원 요청을 하게 됐다. 말하자면 종주국을 바꿔버린 셈이다. 신라로서는 고립무원의 절박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조치였지만, 고구려의 입장으로서는 막강한 주적을 상대하면서 동시에 후방에 만만찮은 위협 요인을 안게 된 것이다. 치명적인 실수였다. 신라를 버리고 선택한 백제의 멸망을 수수방관한 것도 적지 않은 실수였다. 후방을 적에게 완전히 내어주고 협공을 당하는 형세가 되고 만 탓이다. 고구려 중심의 천하관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결과였다. 아무래도 고구려 멸망의 직접적인 원인은 연개소문의 못난 아들들에게 돌리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저자는 아들들의 불화가 사돈들의 세력 다툼, 또는 서로 다른 처가(아들 입장에서 외척)의 세력 다툼의 결과일 가능성이 많다고 분석한다.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그렇다고 한때 고구려의 최고 실력자였던 남생이 적국의 길잡이를 자청한 것은 어이가 없다. 아들 잘못은 결국 아버지 탓이니, 연개소문의 집안 단속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큰 그림 못본 탓에 전쟁에 이기고서도 나라를 들어먹은 죄, 물론 크다. 하지만 역시 일은 작은 것부터 해나가야 한다.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 그 순서가 되바뀌면, 결국 나라도 천하도 잃는 것을...
k****9 2004.08.2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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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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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훌륭한 인물이였을 것이다. 야망과 혁명가의 정신을 가지고 있었더 그는. 어떠 이유에서든지 용감한 사람이였다. 그러나 자식 문제만큼은 그렇게 훌륭한 아버지는 아니였던 것 같다. 고구려가 멸망한 이유는 많으나 그 중의 이유를 들자면 연개소문이 죽고 권력에 눈이 멀어 형제들끼리 아웅다웅 싸운게 별로 좋은 일은 아니였다. 서로 눈에 가시거리로 여겼다. 연개소문은 분명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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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훌륭한 인물이였을 것이다. 야망과 혁명가의 정신을 가지고 있었더 그는. 어떠 이유에서든지 용감한 사람이였다. 그러나 자식 문제만큼은 그렇게 훌륭한 아버지는 아니였던 것 같다. 고구려가 멸망한 이유는 많으나 그 중의 이유를 들자면 연개소문이 죽고 권력에 눈이 멀어 형제들끼리 아웅다웅 싸운게 별로 좋은 일은 아니였다. 서로 눈에 가시거리로 여겼다. 연개소문은 분명 사이좋게 도와가며 살아가라고 했건만 아버지의 말이 그리도 싫었나. 서로 권력 다툼을 하다가 한명이 당나라로 숨어버린 것이다. 그 아들은 당나라가 고구려를 멸망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연개소문과 그의 숙적 김춘추를 대곤 한다. 분명 둘중에 뛰어난 사람은 연개소문이였다. 하지만 아들들은 김춘추의 아들 문무왕이였다. 김춘추는 남에 힘을 빌려 통일 시키려 했다면 그의 아들은 당나라를 내쫒아 버렸다. 연개소문이 자신의 나라를 지켰다면 그의 아들은 나라를 멸망시켜 버렸다. 분명 아버지가 훌륭하다 해서 그 아들이 훌륭한 것은 아니며 아버지가 훌륭하지 않다 해서 그 아들이 훌륭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YES마니아 : 골드 g******4 2004.01.2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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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전을 넘어선 역사 새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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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의 주인공 연개소문이 살았던 7세기 동아시아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한국사는 물론 동양사에서도, 조금 오바하면 세계사적으로도 대단히 큰 분기점이 되었던 격변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그 중심에 있었던 이들의 후손을 자처하는 우리는 그것을 '신라의 삼국통일'이라는, 축소지향의 단일민족 이데올로기적인 단어로만 인식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 책의 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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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의 주인공 연개소문이 살았던 7세기 동아시아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한국사는 물론 동양사에서도, 조금 오바하면 세계사적으로도 대단히 큰 분기점이 되었던 격변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그 중심에 있었던 이들의 후손을 자처하는 우리는 그것을 '신라의 삼국통일'이라는, 축소지향의 단일민족 이데올로기적인 단어로만 인식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 책의 제목은 연개소문이라는 한 영웅적 인물의 평전을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당대의 승자들에 의해 왜곡되고 현대의 편협한 역사인식에 의해 가려진 그 웅대했던 시대상에 대한 것이다.

 

단지 연개소문이란 전설적인 개인이나, 고구려라는 한국인에게만 특별한 나라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그것은 머리로 배움과 동시에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역사이야기를 쓰는 이 책의 저자에 대한 오해이기도 하다.

 

전공서와 교양서로 모두 가능한 방식의 서술 또한 이 책의 저자가 가진 장기이다.

읽기에 어렵지 않고 읽고 나면 남는 것이 있는 책을 원한다면 감히 추천한다.

7세기의 동아시아, 그 중심의 고구려. 그 뜨거웠던 과거의 현장을 관람하며 역사의 무게를 느껴보자.

p**********8 2007.09.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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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과 제국, 문명의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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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에게 고구려는 늘 아쉬움과 선망의 대상이다. 한반도 역사는 5000년의 유구함을 지녔다는 장점이 있지만, 수동적인 움직임을 보였다는 단점이 있다. 한반도에 있었던 국가는 대체적으로 직간접적인 중원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타율성이 많은 역사를 가졌기에 우리는 그나마 우리 역사에서 자율적으로 활동했던 고구려에 대해 선망과 동경을 가졌다. 특히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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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사람에게 고구려는 늘 아쉬움과 선망의 대상이다. 한반도 역사는 5000년의 유구함을 지녔다는 장점이 있지만, 수동적인 움직임을 보였다는 단점이 있다. 한반도에 있었던 국가는 대체적으로 직간접적인 중원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타율성이 많은 역사를 가졌기에 우리는 그나마 우리 역사에서 자율적으로 활동했던 고구려에 대해 선망과 동경을 가졌다. 특히 고구려의 광개토태왕의 정복전쟁은 한반도 국가가 요동 반도의 주도권을 장악한 흔치않은 사례였기에 오늘날 광개토태왕은 우리 민족의 자부심을 상징하는 인물로 여긴다. 이런 고구려가 신라와 당나라에 멸망당했기에, 몇몇은 강성한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두고두고 아쉬워한다. 고구려라는 나라는 이렇듯 우리에게 있어 자부심과 아쉬움으로 남겨져 있다.

  여기서 뜬금없는 의문을 제기해보자면 단지 고구려가 영토가 넓었기에 오늘날 우리 민족이 동경하는 것일까? 고구려를 지탱하던 자율성은 순진한 정복욕의 산물일 것인가? 고구려의 영토는 과거 한반도에 위치했던 국가 중 가장 드넓은 영토를 가진 대국이었다. 그들은 왜 이런 정복전쟁을 추구했던 것일까? 중국의 역사에서 막강한 대국을 일궜던 군주들의 공통점을 하나 꼽자면 바로 '중화의 실현'이라고 할 수 있다. 한무제, 당태종, 명의 영락제, 청의 강희제 등등의 명군들은 중원의 내부를 다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중화의 범위를 중원 밖으로 확장시켰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을 움직인 이데올로기 '중화사상'은 중원의 천자가 세계의 중심이 되어서 지배하는 것을 유학적으로 정리한 사상이다. 중원으로부터 멀리 있는 오랑캐는 예의와 문화로 교화시키되 중원에 위치한 천자의 말을 듣지 않으면 군대로 토벌하여 중화 문화권의 이데올로기를 받들도록 권했다. 단순하게 표현해보면 '내가 짱인데 날 받들지 않으면 토벌해버린다.'라는 뜻이다. 중원의 야심찬 군주들은 자신들의 정복욕을 고상한 중화의 철학을 빌려 실현하려고 노력했다. 야심이 먼저인지 중화사상 때문에 정복전쟁을 시행했는지는 모르겠다만, 중요한 사실은 중원 패권국의 팽창정책은 근본적으로 중화사상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놀랍게도 고구려에도 중원에서 유행했던 '중화사상'과 같은 관념이 존재했다. 바로 고구려 중심의 천하관이다. 고구려는 스스로를 천손의 자손이라고 생각했으며, 자신들을 세상의 중심으로 생각하고, 자신을 떠받드는 속주 국가들을 설정했다. 이러한 속주 국가들의 범위는 남쪽으로는 백제와 신라, 가야가 있었으며 북쪽으로는 말갈과 거란과 같은 여러 유목민들이 포함됐다. 즉 고구려는 중국의 제국이 추구했던 '중화사상'과 비슷한 '천하관'이 존재했다. 그렇기에 고구려는 한반도 국가에 존재했었던 제국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럼 한반도에 제국은 고구려 밖에 없었을까? 그렇지 않다. 고구려 이전에 제국의 풍모를 갖춘 것은 백제였다. 근초고왕 시기 백제는 자신을 맹주로 하여 왜와 가야를 포섭한 연합 세력을 구축하였다. 근초고왕은 이런 연합 제후국의 맹주였으며, 이러한 연합군을 통해 신라와 고구려를 견제했었다. 그러나 근초고왕이 만들어 놓은 백제 중심의 연합 시스템은 광개토태왕의 천하관에 의해 박살 나고, 백제와 신라 가야는 한동안 고구려의 통제를 받는 속국으로 전락했다. 광개토태왕이 국민들에게 지지를 받는 이유는 단순히 영토를 넓혔다는 것을 넘어 고구려가 주체가 되어 천하를 경영한다는 정신을 구현했다는 점이 클 것이다. 이러한 주체적인 고구려의 사상은 일제 치하의 민족주의 역사가들에게도 커다란 영감을 줬다.

  그러나 고구려의 천하관은 중국의 중화사상과는 다른 점이 존재했다. 고구려의 천하관은 중국의 중화사상과는 다르게, 자신의 영향을 벗어난 지역의 제국의 존재를 인정했다. 즉 내 주변국들 사이에서는 내가 실력자지만,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지역의 실력자는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지역이 바로 중원이었다. 그러나 중국의 중화사상은 이러한 다원적 제국의 존재를 부정했다. 천하는 유일한 중원의 천자의 것이다. 자신들 이외에 다른 제국은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 이러한 사소한 철학의 충돌은 결국 나라의 명운을 건 전쟁으로 표출됐다. 수나라 양제의 무리한 고구려 침공, 그리고 당태종 이세민의 고구려 침공이다.

  연개소문은 당태종 이세민의 침공에 맞서 싸운 인물이다. 그는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이세민을 두 번이나 크게 이겼지만, 결국 고구려는 연개소문의 사후 당나라에 멸망됐다. 그래서 전해오는 역사적 사료는 승자인 당나라의 기록이 대다수이기에 연개소문에 대해 매우 불리한 기록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책은 그런 연개소문을 고찰한 역사서인데, 사실 연개소문에 집중한 평전이라기보다 고당 전쟁에 집중한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태종 이세민은 연개소문의 반역 소식을 듣고 고구려를 정벌하려고 결심했다. 당나라의 서쪽 토번을 정벌한 이세민은 기세를 몰아 수나라도 공략하지 못했던 동쪽의 고구려를 정벌하려고 하였다. 역사서에서 그는 명군으로 칭송받는 군주지만, 그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면 사서에 자신의 이름과 공적을 남기기 위해 과도한 정복전쟁을 추구한 전쟁광이기도 하였다. 특히 팽창정책을 추구하는 중원의 정복군주는 중화사상 이데올로기를 실천하는 것을 평생의 과업으로 여겼는데, 그렇기에 이세민에게 있어 고구려는 평생의 숙원을 이룩하고 자신의 공업을 드높이는 데 있어 가장 안성맞춤의 먹잇감이었다. 게다가 고구려는 독자적인 천하관을 가진 자존감이 높은 국가이므로, 유일무이한 제국을 꿈꾸는 이세민의 입장에서는 고구려의 높은 콧대가 거슬리기 그지없었다. 서토를 개척했다는 자신감, 수나라도 정복하지 못했던 나라, 당나라가 주도하는 중화 질서에 편입되기를 거부하는 자존심 높은 나라,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고구려의 정벌로 자신의 이름을 후대에 길이 남기려는 허망된 야망. 그렇기에 이세민에게 있어 고구려의 정벌은 연개소문의 정변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예견된 사업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연개소문은 그런 당태종에 정면으로 맞섰다. 그는 외교적으로 신흥 강국 당의 눈치를 보는 영류왕을 죽이고, 정권을 장악했다. 연개소문은 고구려의 자주성, 고구려의 천하관을 고수했다. 그렇기에 필연적으로 신흥 제국 당나라와 전통적인 동방의 제국 고구려는 그렇게 전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단순한 국가와 국가의 싸움을 넘어 세계와 세계의 충돌이며, 사상과 사상의 충돌이었다. 그렇게 독자적인 두 세계관을 지닌 문명은 서로 격돌했다.

 1,2차 전쟁의 흐름은 당의 공격과 고구려의 수비로 전개됐다. 당은 압도적인 군대를 동원하여 1차는 육로 중심으로 2차는 해로 중심으로 침공했지만, 연개소문은 이를 적절한 전략으로 막았다. 전쟁의 최종 승자는 고구려였지만, 국력의 회복에 있어서는 고구려는 당나라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자국에서 벌어지는 전쟁이었기에 물자와 생산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전쟁 이후 복구에 있어서도 고구려보다 당이 훨씬 유리했다. 이는 국력의 차이가 빚어낸 결과였다. 게다가 당은 1,2차 전쟁 직후 고구려의 동맹이라 할 수 있는 거란과 백제 세력을 제압하여 고구려를 고립시켰다. 고구려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뽐내던 연개소문이 있을 때에는 무너지지 않았지만 그가 죽자, 내분으로 인해 와해됐고 결국 3차 나당전쟁 때 신라와 당군의 연합군에 멸망당했다. 

 연개소문의 평가는 시대를 걸쳐 다양하게 나타났다.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은 유교적 사대주의 관념으로 연개소문을 군주를 죽여 반란을 일으킨 것에 입각하여 혹평했지만 그가 가진 능력에 대해서는 인정했다. 구한말 일제 치하에 민족주의 사학자인 신채호와 박은식은 연개소문을 민족의 자존심을 지킨 영웅으로 추앙하고, 그런 그의 기상을 본받아 독립을 이루자고 주장했다. 이렇듯 연개소문의 평가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극과 극으로 평가됐다. 우리나라의 고대 영웅의 평가는 대체로 극과 극으로 치닫는데 연개소문 역시도 그렇다. 이러한 극단적인 평가는 연개소문의 본모습을 알아가는 데 한계로 작용할 수 있다. 한 인물에 대해 극단적인 견해를 고수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견해를 무리하게 주장하기 위해 역사적 사실이나 의미를 과장, 확대해석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박은식과 신채호도 연개소문의 자주성을 과도하게 주장하기 위해 역사적 사실을 무리하게 왜곡했다. 민족자존을 우선시하기 위해서 연개소문의 해석에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였고, 이러한 의미 부여는 오늘날 냉정하게 평가해볼 때 왜곡의 단초로 볼 수 있다. 고대의 영웅은 현전하는 사료가 부족하기에, 자의적인 견해를 곁들여 해석할 수밖에 없지만, 그러한 자의적 해석은 전하는 사료와 당시의 상황을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책을 읽으며 연개소문의 장단점을 평해보자면, 일단 가장 큰 장점은 고구려의 천하관과 자존감을 지켰다는 것이다. 그는 정권을 잡으면서 신생 대국 당나라의 중화사상으로부터 고구려의 독자적인 천하관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게다가 국력의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차례의 당나라의 대군을 막아서 승리했다는 것 역시 큰 의의가 있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연개소문의 이미지는 호탕함인데, 책에 나온 연개소문의 행적으로 봐서, 아마 실제적인 연개소문의 성격 역시도 호탕하고 대범한 것으로 추정된다. 즉 그는 개인적 카리스마가 뛰어난 인물이었고, 그런 카리스마를 통하여 고구려의 민심을 하나로 모을 수 있었다. 이런 그의 지도력도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단점을 꼽아보자면 외교 능력, 그리고 첩보의 아쉬움, 후계자 선정, 전쟁에 대한 거시적인 관점의 부재, 고구려의 행정 개혁의 필요성 등등을 꼽을 수 있다. 여기서 가장 꼽고 싶은 부분은 거시적인 관점이다. 1,2차 고당 전쟁의 승자는 분명 고구려지만, 사실 이는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니었다. 당은 막대한 군사적 손실을 입고 패전했지만, 패전 이후에도 고구려를 굴복시키기 위해 외교적으로 군사적인 모략을 계속해서 감행했다. 당은 외교적으로 고구려를 고립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며, 고구려에 속한 이민족들을 포섭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고구려의 우방인 백제를 단숨에 몰락시켜서 고구려를 국제적으로 고립시켰다. 물론 고구려는 자국의 영토에서 전쟁이 벌어졌기에, 국토 피해가 극심하여 복구하는데 모든 신경을 쏟아붓느라 외교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구려의 외교적인 대응은 아쉽다. 물론 고구려가 나름 거란의 지배권을 당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중원의 여러 외곽 민족들에게 사신을 보내 당과의 전쟁을 독촉했다지만, 이미 당시의 흐름은 당이 주도하는 중화 이데올로기가 대세였기에 적극적이지 않은 고구려의 노력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당의 노력 때문에 전쟁에서는 이겼더라도, 시대의 대세는 고구려보단 당의 우위로 흐를 수밖에 없었다.

  내가 가장 아쉬웠던 점은 연개소문의 정권 초반에 신라의 김춘추가 백제를 견제해달라고 사신으로 왔을 때 강압적으로 나가고 백제와 동맹을 맺은 부분이다. 물론 연개소문의 계산에는 당시 백제가 신라보다 강하며, 무엇보다 백제는 왜국과 긴밀한 관계이기에 백제와 손을 잡으면 왜나라와 통할 수 있다는 이점을 고려하여 백제를 선택했겠지만, 차라리 백제와 신라 양국과 동맹을 맺어서, 남방에 싸움에 어느 한 쪽의 편을 들지 않고 방관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신라가 당에 붙은 주요한 원인은 바로 고립이다. 동쪽의 왜, 서쪽의 백제 그리고 북쪽의 고구려로부터 고립된 신라는 어쩔 수 없이 대국인 당에게 빌붙을 수밖에 없었다. 백제는 시종일관 신라와의 전쟁에서 우세를 점했지만, 과도한 자만감에 사로잡혀 결국 나당 연합군에 허무하게 멸망당했다. 만약 백제를 선택할 것이었으면, 무리를 해서라도 백제와 함께 신라를 압박하여 멸망시켜서 후방을 안정화시켰다면 고당 전쟁의 양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까. 백제의 몰락은 결국 고구려의 몰락과도 직결된다. 사실 고구려 입장에서도 백제가 그렇게 허무하게 멸망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고구려가 어떻게 손을 쓸 틈도 없이 백제는 순식간에 몰락했으니 말이다. 고구려는 백제 부흥을 위해 왜에 도움을 요청하고 군사를 파견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는데,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려는 것처럼 비친다. 애초에 백제와 신라 중 백제를 선택했으면 백제를 도와 신라를 멸하는데 좀 더 적극적이었으면 어땠을까. 그런 게 아니면 백제와 신라 두 나라가 각자 싸우도록 하고 고구려는 방관자의 입장으로 주시하되 주전력은 북쪽 당에 집중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당시 백제는 신라 김춘추의 딸과 사위를 죽였기에 양국은 원수지간으로 돌변한 상황이니, 두 나라가 연합하여 고구려의 남쪽을 공격할 일은 드물기 때문이다.

  고구려는 첩보가 뛰어난 국가다. 책에서 확인할 수 있듯, 연개소문이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원인에는 바로 뛰어난 첩보 덕분이고, 당은 이런 고구려의 첩보를 의식해서 비밀 군령을 암호로 전달했다. 그러나 고구려의 첩보는 한계를 가지기도 했는데, 1차 나당전쟁 이후 연개소문은 요동과 요하 지역의 성곽에 병력을 집중 배치하였다. 그러나 당나라는 2차 나당전쟁 때 대규모 선박을 통하여 해상 상륙작전으로 평양 침공을 감행했다. 이를 고구려 첩자들은 파악하지 못했다. 더불어 당과 신라가 공통으로 백제를 멸하려는 계획을 고구려는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고구려의 가장 직접적인 몰락의 원인은 바로 연개소문 아들들의 권력 다툼이다. 연개소문과 달리 그 아들들은 연개소문과 같이 비범한 능력을 지니지 못했으며 서로 반목했다. 그러나 연개소문은 이를 예견하지 않고 아들들에게 권력을 배분했고, 이러한 조치는 권력 독점을 위한 내전의 원인이 됐다. 따지고 보면 이런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능력 없는 아들들을 요직에 올린 연개소문의 인사 정책에서 비롯했다. 행정 정비의 개혁도 아쉬운 부분이다. 고구려의 자존을 지키기 위해 당과 대응한 연개소문은 군사적인 부분에 집중적으로 노력했다. 이에 반해 신생 제국인 당나라는 제도적인 체제 개혁과 내정 정비를 통해 정치 제도를 정비했다. 고구려의 행정 시스템은 신생국 당나라의 행정 시스템에 비해 역동적이지 않으며, 시대에 뒤떨어지는 제도였다. 연개소문은 이런 근본적인 시스템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그저 군사적인 침공에만 집중했으니, 이 역시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아쉬운 부분이다.

  쓰고 나니 연개소문의 단점이 두드러지는 것 같지만, 그가 지키려고 했던 고구려의 자존감은 이 모든 단점을 상쇄한다. 고구려의 몰락은 허무하지 않았다. 물론 연개소문의 후계자들의 정쟁으로 무너졌지만 무너지는 순간에도 제국의 풍모를 고수했다. 백제처럼 허무하게 무너지지도 않았고, 신라처럼 줏대 없이 사라지지도 않았다. 고구려는 무너지더라도 고구려답게, 자존감 있게 무너졌다. 이는 연개소문의 분투 때문이다. 그는 사라져가는 제국 고구려의 자존을 마지막으로 불태운 인물이었다. 만약 그가 영류왕을 시해하지 않고 정권을 장악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우리의 인식에 자랑스러운 고구려가 없을지도 모른다. 영류왕이 추구했던 고구려는 고구려만의 천하관을 강조한 제국이 아니라, 당의 세계에 타협하는 제후국이었으니까. 그렇게 역사가 흘러갔다면, 어쩌면 우리가 당에 붙은 신라를 두고두고 비판하는 것처럼 고구려 역시도 그런 비판의 도마에 올랐을 지도 모르겠다. 여러 한계와 비판의 요소가 있지만 어쨌든 연개소문은 고구려의 자존을 마지막까지 지켰던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지적한 단점들을 연개소문이라는 인물이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벅차보인다. 그래서 그의 투쟁은 근본적으로 패배할 수 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이뤄져서 고독한 색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연개소문의 삶과 고구려의 몰락을 읽으며 느낀 점은,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서는 실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고구려가 독자적인 천하관을 주장할 수 있는 배경은 바로 국력에 있었다. 당나라의 팽창 중화주의에 연개소문이 맞설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고구려 중심의 천하관이 있었지만, 이런 고구려 중심의 천하관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닌 힘을 바탕으로 한 자신감의 결과였다. 이런 고구려의 입장은 삼국을 부분적으로 통일한 신라와 크게 비교된다. 신라는 스스로 저자세를 취하여 당의 앞선 문물을 받아들이고, 당나라의 중화주의 세계관에 편입하여 국가의 실리를 챙겨냈다.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런 신라의 통일을 비난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오늘날 21세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은 자존감을 지키는 사람보다 실리적 이득을 챙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물질적 이득 앞에서는 나의 자존을 한 수 접고 이득을 취하는 것이 보편적인 오늘날의 모습이다. 이런 오늘날 고구려의 자존감 있는 몰락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나는 이렇게 결론 내리고 싶다. 평범한 소시민들은 자존감보다 순간적인 이득을 취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특정한 위치에 있고, 자신이 여러 사람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사욕보다는 그보다 한층 더 나아간 가치를 고수하기 위하여 사익을 내려놓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신라는 스스로 중심이 되어 제후국을 거느리거나 독자적인 천하관을 가지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고구려는 신라와 의식 자체가 달랐다. 스스로를 제국으로 인식했고, 그렇기에 으스러지는 순간까지도 제국의 풍모를 지키려고 노력했다. 고구려는 신라보다 스스로 대국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랬다. 대국이니까 대국의 걸맞게 자존감을 지켜내려고 노력했다. 덕분에 후손인 우리는 고구려를 우리 역사의 자존심으로 여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신라와 고구려의 예에서 확인할 수 있듯 일반 소시민이 아닌 좀 더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 더 큰 꿈을 가진 사람들은 개인의 사적 이익보다는 더 큰 가치, 그리고 많은 사람을 품을 수 있는 대의를 추구하는 것이 개인에게도, 집단에게도 유용하지 않을까 싶다.(물론 이러한 삶을 사회지도층에게 무조건 강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는 어디까지나 그들이 자발적인 인식을 통하여 행하기를 바라는 개인적인 희망사항일 뿐이다. 그들에게도 인생에 있어 자유로울 권리고 있고, 사회지도층이라고 해서 밑의 계층들을 위해 무조건적인 희생이 있어야 한단 시각 자체도 나는 비판적으로 생각한다.) 이것이 고구려의 멸망, 그리고 연개소문이 끝까지 지키려고 했던 가치를 통해 읽은 교훈의 핵심이다. 그 외에 독자적인 자존을 지키기 위해서는 조직이든 개인이든 급변하는 시대에 맞춰 끊임없는 혁신이 필요하다는 점도 꼽을 수 있겠다. 구시대 체제를 고수하던 고구려의 행정은 고구려의 자존을 지키기에 너무나도 뒤떨어졌다.

  책은 잘 읽히는 편이지만, 편집이 조금 조잡해 보이기도 했다. 전문적인 내용은 챕터의 뒤나 책의 말미에 배치하여서 본문 가독성을 높이려고 한 것 같은데, 내 개인적으로는 너무 산만했다. 그냥 서사적 흐름에 따라 전문적인 내용도 편집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본문 내용은 잘 읽히는 편이었으며, 사료에 대한 비판이 돋보였다. 무엇보다도 《일본서기》의 내용을 적극적으로 참고하여 해석한 부분이 신선했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서기》를 왜나라 시각으로 집필한 사서라 폄하하는데, 물론 자문화 중심주의적인 내용이 많고 왜곡도 많지만 그러한 왜곡의 바탕은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고대사를 해석할 때 주교재로 참고해야 할 도서라고 생각한다. 연개소문 집권 당시 고구려는 왜와 굉장히 긴밀한 관계였고 우방이었으므로, 적국인 중국 측 사료보다 《일본서기》에 나온 기록이 더 신빙성이 있을 가능성도 높다.

  사실 우리나라의 고대사 기록은 미비하기 짝이 없고 기껏해야 《삼국사기》가 독보적인 사서로 권위를 인정받는데, 이런 《삼국사기》 역시 신라 중심적, 그리고 사대주의적 사고, 중국 측 사료를 무비판적으로 기록한 내용이 많다. 그러므로 《삼국사기》 역시 자의적인 해석과 왜곡으로부터 피할 수가 없다. 모든 역사란 기록은 기본적으로 자의적일 수밖에 없고, 특히 고대의 관찬 사료는 자국이나 정치적 입장에 의해 왜곡하여 기록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는 중국의 명저인 《사기》와 《자치통감》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일본서기》 역시도 한계가 있지만 우리의 고대사를 비교적 자세하게 남기고 있다는 점에서 검토해야 할 주요 텍스트로 여겨야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한국 고대사를 고찰하려면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를 넘어 왜나라의 활동까지도 검토해야지 한반도의 고대사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일본은 역사적으로 우리와 앙숙의 관계지만, 그런 것을 떠나 한일 고대사는 서로 너무 밀접하게 영향을 주고 있으므로 양국의 고대사를 명확하게 파악하려면 두 나라의 역사를 면밀하게 비교 분석해야만 한다. 왜는 백제나 가야에 의해 굵직한 사건 때마다  한반도에 파견됐고 활동했던 세력이다. 괜히 《일본서기》에 섬나라 역사 이외에 옆 나라 반도의 동태를 기록했겠는가. 아무튼 《새로 쓰는 연개소문전》은 중국의 사료와 우리 측 사료 그리고 일본의 《일본서기》까지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해석하고 있는데, 전하는 사료가 워낙 소략하여 사료 간의 공백에 있어 저자의 주관성 깊이 들어있기에, 사람에 따라 저자의 해석에 딴죽을 걸 수도 있겠지만, 내 개인적인 사견으로는 저자는 전해지는 사료를 해석 함에 있어 나름의 합리적인 면을 확보하려고 많이 노력한 것 같다. 그래서 대체적으로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아무튼 신화와 극단적 편견으로 가득한 연개소문의 역사적 모습을 책을 통해 탐구할 수 있었다는데 이번 독서의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k******m 2018.07.1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그럴싸한 제목과는 다르게...
"그럴싸한 제목과는 다르게..." 내용보기
내용이 와닿지 않는 기분과 깊지않는 지식을 가지고 단순하게 나열한 전개방식으로 단지 여러가지 고구려 관련내용을 짜집기 한 읽기는 하는데 읽으면서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은 그런책인것 같다. 표지는 그럴싸한데 내용이 부실하다고 할까? 다른 역사류의 책들을보고 있으면 무언가 새로운 많은 것들을 알게도 되고 흥미를 끄는 그런 관점을 배우게 되서 좋을때가 많은데 이책은 보
"그럴싸한 제목과는 다르게..." 내용보기
내용이 와닿지 않는 기분과 깊지않는 지식을 가지고 단순하게 나열한 전개방식으로 단지 여러가지 고구려 관련내용을 짜집기 한 읽기는 하는데 읽으면서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은 그런책인것 같다. 표지는 그럴싸한데 내용이 부실하다고 할까? 다른 역사류의 책들을보고 있으면 무언가 새로운 많은 것들을 알게도 되고 흥미를 끄는 그런 관점을 배우게 되서 좋을때가 많은데 이책은 보다가 짜증이 났다는....도데체 무얼 말하려고 하는건지 잘 모르겠고 느낌적으로 별로 재미있다는 생각이 안들고 흥미를 끄는 새로운 관점도 없고 보면서 돈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책이었던것 같다. 이렇게 말하면 저자가 기분나쁠 수 도 있겠지만 역사를 좋아하는 나의 관점에서는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는 무료함과 실망감만 안겨준 책이었던것 같다. 최근에는 광해군을 읽고 있는데 내가 까다로운 성격도 아닌데 참 이책처럼 읽고 실망스러웠던 책이 없어서 한번 독자평을 남겨본다. 표지에 신경쓸게 아니라 진짜 내용에 더 신경써야 할 것같다. 내용이 제목에 좀더 걸맞게 잘 읽혔다면 금상첨화였을텐데 아쉬운 마음 금할길이 없다. 이만
c*****z 2005.01.1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