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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책을 내느라 그동안 수고하신 김용만 선생님께 깊은 감사와 함께 수고의 말씀을 드린다. 주인장이 그동안 부대에 있으면서 가장 기다렸던 것이 바로 이 책의 출판이었다. 주인장이 군대에 가기 전부터 선생님은 오래도록 꿔왔던 꿈, 즉 연개소문이라는 영웅(적어도 주인장은 그렇게 생각한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본격적으로 전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었고 또한 그것은 주인장을 비롯한 고구려史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바램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주인장이 휴가를 나오자마자 인터넷을 뒤져 이 책의 출판을 확인하고 바로 구입한 것이 이상할리 없을 것이다. 먼저 이 책을 처음 접한 사람이라면 얼핏 보고 이 책을 단순한 인물 평전으로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나온 인물 평전이라면 이도학 선생님이 쓴 '백제장군 흑치상지 평전' 이 있을 것이다. 자료가 극히 없는 상태에서 그 정도의 인물 평전을 쓴 것만도 대단한 일일 것이나 이 연개소문전은 그와는 약간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책은 단순한 인물 평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시대史를 조명하는데 집중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인장 역시 이 제목을 보고 어떤 내용일까 하는 막연한 기대심을 가지고 있었다. 자료가 극히 없는 상태에서, 중국측에 존재하는 극히 변질되어 있는 사료들, 그 안에서 과연 연개소문이라는 인간을 얼만큼이나 현실 세계로 끌어내 대중들에게 인식시켜 줬을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있었다. 연개소문이 태어나기 이전의 고구려부터 태어났을 무렵의 고구려, 연개소문이 살아 숨쉬고 정권을 잡고 활동하던 고구려와 동시대의 당을 비롯한 덩대 천하가 이 안에서 모두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연개소문의 50여년 인생(저자는 연개소문의 사망년월을 663년 10월로 보고 있다)을 통해 본 당대 7세기의 아시아 사회가 바로 이 책이 알리고자 하는 내용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 반세기동안 고구려는 부흥과 좌절, 멸망에 이르는 여러가지 사회적 변환을 거치게 되며 700년이 넘게 계속되어 온 동북아시아의 유일한 패권자(覇權者)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과연 이 반세기동안 고구려에서 일어난 사실들과 당대 최고 집권자였던 연개소문 사이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으며 또한 어떤 사실들이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것과 달랐던 것일까? 이 책은 그에 대한 대답을 지금 우리에게 해 주고 있는 것이다. 주인장이 이 책을 그렇게 학수고대하며 기다리고 또 눈여겨 본 것은 바로 '고-당 문명대전' 에 대한 재평가 때문이다. 고구려는 이미 영양태왕때 수(隨)라고 하는 엄청난 괴물을 연거푸 쓰러뜨리면서 700여년 대국의 위엄을 지켰다. 아직까지 동북아시아의 지존은 고구려였으며 초원에서도, 중원 대륙에서도 그런 고구려의 지존의 자리를 넘볼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하지만 수 이후 당(唐)이라는 존재가 두각을 드러내면서 고구려의 지존의 자리는 끊임없는 도전에 직면하게 되고 곧 그 위엄은 흔들리게 된 것이다. 이 책은 그 고구려와 당과의, 천하를 두고 결전을 벌인 당대 시대를 조명하고 있다. 먼저 눈에 띄는 내용을 꼽으라면 천리장성(千里長城)에 대한 기존의 해석과 전혀 다른 저자의 해석이 있겠다. 장성이라는 표현에 발목이 묶여 다채로운 해석이 불가능했던 기존의 견해와 달리 저자는 천리장성이란 본성(本城)과 중·소성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방어용 네트워크(Network)였던 거지, 만리장성과 같은 성격의 경계선이 아님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는 뒤에 나오겠지만 신성과 요동성, 건안성 등 앞으로 벌어질 고-당 문명대전에서 고구려의 서부 방어 진지들이 어떻게 적의 침입을 막아냈는지 얘기해 줄 중요한 전제조건이기에 저자는 천리장성에 대한 얘기를 서두에 이미 꺼내놓은 것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저자는 고-당 문명대전이 단순히 천하를 발아래 두고자 하는 당 태종 이세민의 야욕에 불탄 단순한 당의 침략과 고구려의 방어, 이런 구도로 이뤄진 것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다. 고구려는 당시 이미 만리장성의 북쪽과 초원과의 경계라 할수 있는 난하 상류 일대 동쪽을 지배하고 있던 동북아시아의 패자였었다. 그런 고구려가 단순히 당이라고 하는 신흥 대국의 침입이 있을때까지 묵과하고 있다가 수세적인 입장에만 놓였을까? 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조선상고사나 환단고기가 말하는 연개소문의 중원대륙 정벌은 100% 거짓이란 말인가? 저자는 이에 대해서 부인도, 긍정도 하지 않는다. 기준 잣대가 될만한 사료가 없는 지금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리라. 제 1차 고-당 문명대전에서의 안시성 전투에 얽힌 미스테리는 주필산 전투에 대한 재해석으로 비로소 의문이 풀리며 앞서 말한 신성과 건안성, 즉 천리장성이라고 불리는 요동 방어 시스템의 놀라운 효과는 수십만 당군을 한줌 이슬로 날려버리며 통쾌함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대를 이어 벌어진 제 2차 고-당 문명대전에서의 당측의 변칙 전술과 고구려측의 끈질긴 임전무퇴 정신에 대한 내용은 읽는 이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까지 하는 것이다. 저 멀리 사마르칸트의 강국(康國)에까지 사신을 보내 당을 좌우에서 협공하려고 했던 고구려, 그리고 당을 압박하며 일인천하일통의 과대팽창야욕을 억제하려 했던 설연타, 철륵과의 연합 전선을 펼친 고구려, 허무하게 무너진 백제의 부흥을 도우며 당과 신라 양측을 상대하며 꿋꿋히 버티던 고구려, 이렇듯이 이 책은 당대 아시아 전체에 걸쳐 외교권을 형성하며 천하를 경영한 고구려에 대해서 유감없이 그 실체를 밝혀주고 있다. 이렇게 박진감 넘치는 내용이 전개되는 중간중간 저자는 기존에 잘못 알려져 있고, 잘못 연구되고 있는 사실들에 대해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이 책은 역사 소설이 아니다. 기존에 나온, 연개소문이나 고구려에 대한 단순한 역사 소설이 아니기 때문에 이 책은 단순히 헛된 망상이나 거짓을 실을 수 없는 것이다. 아울러 역사에 근접한 사실을 기록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아무리 이 책이 읽기 쉽고 이야기 형식으로 내용을 전개한다고 해도 그 담긴 내용들은 결코 가벼운 의미의 내용들이 아님을 인식해야만 한다. 저자는 7세기의 아시아를 새롭게 재해석했다. 막연하게 흐린 역사가 이 책에서만큼은 저자의 의도대로 뚜렷한 선을 그은 것이다. 이 책을 2번 읽어보고, 또 3번째 읽어본 후에 이렇게 서평을 쓰고 있는 주인장은 이 책이 대단히 잘 쓰여진, 또한 새로운 시도가 돋보이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영류태왕에 대한 평가가 주인장이 기존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부정적으로 된 면이나 백제의 멸망에 대한 뭔가 조금 모자란 듯한 서술, 연개소문 당사자에 대한 평가 부족 등이 아쉽다 할 수 있겠다. 연개소문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7세기 아시아史를 투영시킨 점은 돋보였지만 정작 그러다보니 그 매개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또한 주인장 같은 사람은 역사책을 볼때 쉽고 이해하기 쉬운 역사책을 원하기도 하지만 풍부한 자료와 다양한 주석이 담긴 역사책을 원하기도 한다. 물론 책을 쓰고 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님을 알기에 여기에 적는 내용은 주인장의 어리석은 푸념 정도로만 들으면 될 것이다. 주인장은 연개소문과 7세기 고구려를 엮어내는 이 책이 조금 더 많은 사실들을 책에 담아 다소 지루하고 따분하더라도 가능한 모든 것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램도 한번 해 본다. 그 말은 곧 이 책이 단순한 역사 마니아들만 보는 책이 아닌, 일반 교양서로도 충분하다는 말이 되겠다. 뛰어난 전략가이자 영웅이었던 연개소문은 그렇다고 일국의 지도자로서도 성공한 케이스는 아니었다. 이런 연개소문을 저자는 그동안 그렇게 표현하려고 갈망했었던 모양이다. 고구려의 문명대국으로서의 존재 가치에 대해 오래도록 책을 내고 연구하며 글을 써온 저자의 생각이 이 책을 통해 연개소문이라는 인물을 대표해 표출된 것이 아닐까 하며 이만 글을 마치고자 한다. [인상깊은구절] 어차피 역사는 똑같이 되풀이되지 않는다. 고구려가 다시 재건되지도 않을 것이며 연개소문이 살아 돌아오지도 못할 것이다. 막연히 고구려에 대해 환상을 갖기보다는, 과거의 역사에서 오늘의 현실에 필요한 더할 나위 없는 교훈을 배우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
| 고구려사 논란의 한복판에서 또한권의 고구려사 책을 잡았다. 그것도 고구려 최후의 역사. 참 아이러니였다. 수나라의 대규모 침략을 살수대첩의 일격으로 몰아낸 것이 612년, 당나라의 대규모 침략을 안시성에서 막아낸 것이 645년이었다. 하지만 불과 얼마 뒤, 668년에 고구려는 멸망하고 만다. 꺼지지 직전 마지막으로 화려했던 역사였나. 항상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역사학자들에게도 이해가 안되기는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갑작스러운 고구려 붕괴의 원인은 언제나 연개소문의 못난 자식들 탓으로 돌아가곤 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과감하게도 그 책임의 상당 부분을 연개소문 자신에게 돌리고 있다. 고구려의 자존심을 지키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이미 늙어버린 제국을 재건하는 노력은 게을리 했다는게 그 죄목이다. 말하자면 요즘 유행하는 변혁과 혁신이라는 화두를 실천하지 못한 죄가 된다. 사실 연개소문이 들으면 억울해 할 지적이다. 당 태종 이세민이 집권한게 626년인 반면, 연개소문의 집권은 642년이다. 645년의 전쟁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이세민에게는 20여년의 시간이 있었지만, 연개소문에게는 불과 2~3년이 주어졌을 뿐이다. 제도 개혁에 나서기는, 나라의 틀을 고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다. 특히나 이세민은 황제였던 반면, 연개소문은 실권자이긴 했으나 왕이 아니었다. 이래저래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연개소문이 완전한 면죄부를 받기는 어렵다. 명백한 실수가 있었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 실수, 전쟁에서 이기고 국운을 잃은 실수,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한 실수였다. 고구려는 중국을 제외하고 스스로를 지칭하면서 천하 또는 중원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유일한 나라였다. 자국 중심의 세계관을 갖고 있는 나라였다. 중국이 주변 이민족들을 신하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었듯이, 고구려는 주변 민족을 때로는 형제로, 때로는 군신으로 표현하며 복속시키는 나라였다.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두 나라가 공유할 수 없는 세계관의 충돌이 발생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 세계관을 어떻게 실천하느냐다. 이세민은 고구려와 전쟁 이전 20년동안 주변 민족들의 위협요소를 없애는데 주력했다. 안심하고 고구려와의 전면전을 벌이기 위한 준비였던 셈이다. 고구려는 당과의 국경 수비선을 강화하는데에 힘을 집중했다. 북방 민족과의 외교노력을 통해 당을 견제하려는 노력의 흔적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결정적인 전쟁 과정에서는 큰 효과를 얻지 못했다. 서역의 사마르칸트(지금의 우즈베키스탄) 벽화에 고구려 사신이 등장한다. 당나라의 배후를 노린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결정적인 실수는 신라와의 관계였다. 광개토대왕비에 나타나 있듯, 고구려와 신라 사이에는 전통적으로 군신관계가 성립돼 있었다. 이런 신라가 백제의 침입으로 곤경에 처해 도움을 청했을 때, 고구려는 오히려 백제와 손을 잡는다. 종주국의 입장에서 신라를 끌어안기 보다는 고립시켜 버린 것이다. 종주국의 도움을 얻을 수 없게 된 신라는 당에다 구원 요청을 하게 됐다. 말하자면 종주국을 바꿔버린 셈이다. 신라로서는 고립무원의 절박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조치였지만, 고구려의 입장으로서는 막강한 주적을 상대하면서 동시에 후방에 만만찮은 위협 요인을 안게 된 것이다. 치명적인 실수였다. 신라를 버리고 선택한 백제의 멸망을 수수방관한 것도 적지 않은 실수였다. 후방을 적에게 완전히 내어주고 협공을 당하는 형세가 되고 만 탓이다. 고구려 중심의 천하관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결과였다. 아무래도 고구려 멸망의 직접적인 원인은 연개소문의 못난 아들들에게 돌리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저자는 아들들의 불화가 사돈들의 세력 다툼, 또는 서로 다른 처가(아들 입장에서 외척)의 세력 다툼의 결과일 가능성이 많다고 분석한다.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그렇다고 한때 고구려의 최고 실력자였던 남생이 적국의 길잡이를 자청한 것은 어이가 없다. 아들 잘못은 결국 아버지 탓이니, 연개소문의 집안 단속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큰 그림 못본 탓에 전쟁에 이기고서도 나라를 들어먹은 죄, 물론 크다. 하지만 역시 일은 작은 것부터 해나가야 한다.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 그 순서가 되바뀌면, 결국 나라도 천하도 잃는 것을... |
| 정말 훌륭한 인물이였을 것이다. 야망과 혁명가의 정신을 가지고 있었더 그는. 어떠 이유에서든지 용감한 사람이였다. 그러나 자식 문제만큼은 그렇게 훌륭한 아버지는 아니였던 것 같다. 고구려가 멸망한 이유는 많으나 그 중의 이유를 들자면 연개소문이 죽고 권력에 눈이 멀어 형제들끼리 아웅다웅 싸운게 별로 좋은 일은 아니였다. 서로 눈에 가시거리로 여겼다. 연개소문은 분명 사이좋게 도와가며 살아가라고 했건만 아버지의 말이 그리도 싫었나. 서로 권력 다툼을 하다가 한명이 당나라로 숨어버린 것이다. 그 아들은 당나라가 고구려를 멸망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연개소문과 그의 숙적 김춘추를 대곤 한다. 분명 둘중에 뛰어난 사람은 연개소문이였다. 하지만 아들들은 김춘추의 아들 문무왕이였다. 김춘추는 남에 힘을 빌려 통일 시키려 했다면 그의 아들은 당나라를 내쫒아 버렸다. 연개소문이 자신의 나라를 지켰다면 그의 아들은 나라를 멸망시켜 버렸다. 분명 아버지가 훌륭하다 해서 그 아들이 훌륭한 것은 아니며 아버지가 훌륭하지 않다 해서 그 아들이 훌륭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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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의 주인공 연개소문이 살았던 7세기 동아시아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한국사는 물론 동양사에서도, 조금 오바하면 세계사적으로도 대단히 큰 분기점이 되었던 격변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그 중심에 있었던 이들의 후손을 자처하는 우리는 그것을 '신라의 삼국통일'이라는, 축소지향의 단일민족 이데올로기적인 단어로만 인식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 책의 제목은 연개소문이라는 한 영웅적 인물의 평전을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당대의 승자들에 의해 왜곡되고 현대의 편협한 역사인식에 의해 가려진 그 웅대했던 시대상에 대한 것이다.
단지 연개소문이란 전설적인 개인이나, 고구려라는 한국인에게만 특별한 나라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그것은 머리로 배움과 동시에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역사이야기를 쓰는 이 책의 저자에 대한 오해이기도 하다.
전공서와 교양서로 모두 가능한 방식의 서술 또한 이 책의 저자가 가진 장기이다. 읽기에 어렵지 않고 읽고 나면 남는 것이 있는 책을 원한다면 감히 추천한다. 7세기의 동아시아, 그 중심의 고구려. 그 뜨거웠던 과거의 현장을 관람하며 역사의 무게를 느껴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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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에게 고구려는 늘 아쉬움과 선망의 대상이다. 한반도 역사는 5000년의 유구함을 지녔다는 장점이 있지만, 수동적인 움직임을 보였다는 단점이 있다. 한반도에 있었던 국가는 대체적으로 직간접적인 중원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타율성이 많은 역사를 가졌기에 우리는 그나마 우리 역사에서 자율적으로 활동했던 고구려에 대해 선망과 동경을 가졌다. 특히 고구려의 광개토태왕의 정복전쟁은 한반도 국가가 요동 반도의 주도권을 장악한 흔치않은 사례였기에 오늘날 광개토태왕은 우리 민족의 자부심을 상징하는 인물로 여긴다. 이런 고구려가 신라와 당나라에 멸망당했기에, 몇몇은 강성한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두고두고 아쉬워한다. 고구려라는 나라는 이렇듯 우리에게 있어 자부심과 아쉬움으로 남겨져 있다. |
| 내용이 와닿지 않는 기분과 깊지않는 지식을 가지고 단순하게 나열한 전개방식으로 단지 여러가지 고구려 관련내용을 짜집기 한 읽기는 하는데 읽으면서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은 그런책인것 같다. 표지는 그럴싸한데 내용이 부실하다고 할까? 다른 역사류의 책들을보고 있으면 무언가 새로운 많은 것들을 알게도 되고 흥미를 끄는 그런 관점을 배우게 되서 좋을때가 많은데 이책은 보다가 짜증이 났다는....도데체 무얼 말하려고 하는건지 잘 모르겠고 느낌적으로 별로 재미있다는 생각이 안들고 흥미를 끄는 새로운 관점도 없고 보면서 돈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책이었던것 같다. 이렇게 말하면 저자가 기분나쁠 수 도 있겠지만 역사를 좋아하는 나의 관점에서는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는 무료함과 실망감만 안겨준 책이었던것 같다. 최근에는 광해군을 읽고 있는데 내가 까다로운 성격도 아닌데 참 이책처럼 읽고 실망스러웠던 책이 없어서 한번 독자평을 남겨본다. 표지에 신경쓸게 아니라 진짜 내용에 더 신경써야 할 것같다. 내용이 제목에 좀더 걸맞게 잘 읽혔다면 금상첨화였을텐데 아쉬운 마음 금할길이 없다. 이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