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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대통합, 통섭을 읽다 보니 저자가 '생물학자'인지라 주로 자연과학의 입장에서 '통섭'을 이야기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종합적 시각'으로 뭔가를 읽고 싶었던 나는 살짝 지루해지고 말았다.
그러다가 찾은 로버트 라이트의 '도덕적 동물'.저자가 진화심리학자라는 데 관심이 더 많이 갔다. 지금까지 '심리학'쪽에 자꾸 기웃거리게 된 것은 ''나'라는 인간이 도대체 왜 이러는가?'라는 궁금함을 충족하기 위했던 것.
거기에 '진화'가 붙으니, 다른 시각에서 바로 본 '인간 본성' 혹은 '인간 조건'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생겼던 것이다.
데이비드 버스의 '이웃집 살인마'를 읽으면서 쇼킹한 제목만큼이나 쇼크를 받았다. '성 판타지'를 누구나 꿈꾸듯 '살인 판타지'를 꿈꾼다는 것, 그것도 다름 아닌 '내 남자, 내 여자'를 지키기 위한 방어 본능이라는 것. 수많은 사례를 제시하며 논증해 나간 데이비드 버스의 글솜씨도 유별나게 재미를 더 했던 기억이 새롭다.
이 책에서도 데이비드 버스의 견해가 많이 인용되기도 한다. 다 읽진 못했지만 '성, 사랑, 섹스', '결혼시장' 등을 통해 일부일처제가 가지는 사회적 의미, 즉 경제 계층이 심화된 사회일수록 일부일처제는 여자가 아닌 남자에게 평등을 주는 전체 종으로 보면 오히려 불평등한 제도라는 것. 권력과 돈을 갖지 못한 남자도 '짝'을 찾아 유전자를 퍼뜨릴 수 있도록 고안된 것이 '일부일처제'라는 것. 그렇지 않을 경우, 폭력성향이 여자보다 더 큰 남자들의 문제행동들은 사회를 지탱할 수 없을 정도일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가정을 깨뜨리지 않는 한도의 남자드르이 외도에 여자들이 어느 정도 용인하는 것도 '일부일처제'를 더욱 강화하는 기제가 된다는 것. 일부일처제가 이름 그대로 잘 지켜졌던 '빅토리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그 시대의 여성관, 즉 '성녀 아니면 창녀'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현재까지도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는 믿고 싶지 않지만 사실이라는 것에 동의하며 씁쓸하다. 여자들이 남자와의 관계에서 '섹스'를 지여하면 할수록 더 높은 지위(돈과 권력 포함)에 있는 남자를 남편으로 맞이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 물론 여자의 미모가 훌륭하면 훌륭할수록 말이다. 이성적인 판단으로, '아니다'라고 반론하고 싶은데, 거참 할 말이 별로 없다.
그토록 부자연스러운 일부일처제가 존속되고 있는 이유를 진화심리학적으로 낱낱이 밝히고 있는 부분에 이르니, '그냥 자연스럽게 살아갈 수는 없나?'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결혼 날짜 잡고 행복해 하는 후배들에게 늘 찬물을 끼얹듯, 차마 100퍼센트 축하한다는 말은 못하겠다, 행복이 언제까지 지속될까? 신혼여행까지. 그 다음은 완벽히 현실이다...라고 농반진반으로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결혼의 연수가 늘어날수록 더더더더욱 그러한 생각에 방점이 찍힌다. 물론 커가는 아이들을 보며, 나름 잘 살고 있지만... 일부일처제, 혹은 결혼제도라는 것 자체에 대한 거부감은 어찌할 수 없다.
다윈의 배우자 결정과정부터 결혼생활까지를 예로 들어 가며 설명하는 부분에서, '참 과학자답게 결혼도 결정했군'싶을 만큼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결혼을 결정하고, 결정 후엔 철저히 적응해서 좋은 남편으로, 좋은 아빠로 살아간 '다윈'을 보며 문득.... 낭만적인 사랑은 빠지고, 합리적인 선택과 판단이라니....하는 생각과 아울러 '나는 왜 보험들 때보다, 결혼을 더 쉽게 재보지도 않고 했을까?하는 때늦은 생각이 떠오른다.
여자들이 능력(가문, 지위, 직업적 능력 등)을 기준으로 남편감을 고른다는 사실, 모르고 있지는 않았다. 결혼을 결정하던 그 당시도 몰랐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런 기준들을 들이대서 사람을 고른다는 것 자체가 뭔가 속물적이고 인간답지 못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던 시절. 근데 말이다, 속물적인 것을 멀리하고자 했던 내가 어쩌면 더 속물적이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니 살짝 씁쓸해지네.
나는 그 시절, 뭐가 그렇게 당당하고 자신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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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섹스, 로맨스, 사랑 2부. 사회적 유대 3부. 사회적 경쟁 11장. 다윈의 망설임 12장. 사회적 지위 13장. 기만과 자기기만
여기까지 읽었다.
늘 밝히지만, 나는 독서를 나라는 인간, 그리고 나를 포함한 주변 관계, 이를 포함한 인간...존재를 이해하기 위해 해왔다. 물론 그 시간과 공들임이 '재미'가 없었다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게다. 읽으면 읽을수록 허기가지고 뭔가 더 부족한 틈이 보이는 순간 또 다른 책에 이미 손이 가 있곤 했다.
처음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생각하고, 느낄까?로 시작한 '소설'읽기. 중학교 때 정말 심심해서, 언니가 꽂아 놓은 몇 권의 책, '전태일 평전', '둥지속의 날개(이어령 저)', '대지(펄벅)', '김동인 소설집'등을 무작위로 읽어댔다. '전태일'을 읽으면서 내가 그를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아팠고, 전태일보다 조금 아주 조금 나은 환경에서 '엄마와 언니'가 공장에서 일을 한다는 사실에 이미 나는 '온건한 주류'일 수는 없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아챘을 것이다. '대지'를 읽으면서는 참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다 잊히고 '전쟁통에 아이를 낳다니, 사람의 성적 욕구란 얼마나 징글징글하게 강한 것일까(중학교 1학년 여학생으로서 나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징그러울 뿐이었다)? '김동인 소설집' 속 감자, 광화사, 광염소나타 등을 읽으면서 특히 광화사와 광염소나타를 읽으며 '예술'은 인간의 존재를 뛰어 넘는 더 높은 곳의 무엇이 아닐까 어렴풋이 기억 속에 저장해 두었던 것 같다.
그리고 고등학교 올라가면서부터 거의 책을 접하지 못했으나, 다행히 국어2 수업에 소개된 수많은 1920~30년대 시 및 소설이 있어 자율학습 시간 내내 문제는 풀지 않고 소설을 줄줄 외다시피 읽어댔었다.
대학 들어가고 나니 자유는 주어졌는데, 이미 '대의의 시대'는 거하고, '개인의 시대'가 래하니 낀세대로서 특별히 읽어낼 텍스트를 찾지 못하고, 그렇다고 뚜렷이 불타는 연애라는 것도 하지 못한 채 한 33년을 이러저러 보내다가, 맞딱뜨린 신경숙, 은희경은 나에게 소설 속 '섬세한 심리묘사'를 선사했다. 미친 듯이 그녀들을 읽어댔다. 책이 나올 때마다, 혹은 지나간 책 중 놓친 것을 찾아. 그리고, 소설가 신경숙이 존경한다는 '박경리 선생과 박완서 선생'의 소설을 또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러티브 만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일상적 심리들... 사실 소설 속 내러티브보다 내 삶의 내러티브는 '찌질하기 짝이 없는 짝사랑과 궁상맞기 짝이 없는 직장생활(국어선생을 하겠다고 교원임용시험을 쳤다 2번이나 낙방을 하고 궁여지책으로 시작한)'을 설명해 내기에는 너무나 절제되고 고급스러웠다.
그리하여, 찾게 된 책들이 간간이 심리학서적들을 들추다가 지루해지면 다시 소설로.... '나는 나를 죽일 권리가 있다'로 시작된 김영하 읽기(사실 내가 추구하는 외모의 사내다). 어린 시절 대놓고 말하기 부끄러워, 이런 남자하고는 연애를 해보았으면 했지만, 사실 그와 해보고 싶은 것은 차디찬 섹스였다. 그의 소설만큼이나 시니컬하게. 어제도 말했지만, 박민규와는 무거운 마음으로 아주 가볍게 장난처럼 처절한 섹스해 보기... 등등을 꿈(그것도 꿈이라면 말이다)꾸곤 했다.
그 후로, '칼의 노래'로 만난 김훈 선생(지금은 그의 소설보다는 에세이가 훨씬 좋아졌지만)의 책을 나올 때마다 사들이기 시작했다. 사실 늘 결단내지 못하고 우유부단하고, 두루뭉술하고, 뜨뜬미지근한 나에게 '김훈'은 충격이었다. 전쟁 중 부하들의 밥먹일 걱정을 하는 '이순신'이라니, 또 전쟁과 전쟁 막간에 햇빛에 나와 기워입은 옷에서 이를 잡는 병사들이라니.... 그 치욕적인 사실적 묘사가 징글징글 맞게 차가우면서도 그를 읽어낼 수 밖에 없었다(그를 읽었다가 맞다, 왜냐면 그의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주인공의 캐릭터는 모두 사라지고, 이순신 김훈, 좌의정 김훈, 문기자 김훈... 온갖 캐릭터 속에.. 아니 캐릭터는 김훈 목소리를 내고 있는 영매에 가까웠다).
그런데, 김훈은 죽는 것을 늘 두려워했다. 내가 아는 김* 아저씨도 죽는 것을 두려워했다. 또 어떤 박* 아저씨도 죽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런데, 그들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어딘가 모르게 닮아 있었다. 살펴보니 그들은 유물론자에 철저히 진화론자라는 사실... 그런데, 나는 그들 모두를 '뇌'를 가진 인간으로 나름 존경하고 있었드랬다. '지적인 힘'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 이것이 나의 진화론적인 적응이다. 한 때, 소설비평을 읽으며 자꾸 거론되는 '들뢰즈', '라캉' 어쩌고 저쩌고...... 현상학, 해석학.. 어쩌고 저쩌고.... 정신분석 쪽은 그나마 조금 알고 있다고 여겨졌으나, 그 외의 철학에 대해서는 거의 문외한에 가까웠고, 지적으로 모자란다는 나의 수치심은 극에 달하고 있을 무렵, 내가 집어 든 것은 철학서적이 아니라 진화론자들의 책들. '다윈'은 읽어내지 않았다. 다윈보다 훨씬 더 쉽고 재미나게 이야기해주는 도킨스 아저씨, 굴드 할아버지, 최재천 오빠, 장대익 오빠, 버스 아저씨 등등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그리고 더 매력적으로 포장이 되었으나 그 기본 기조는 누구 책을 읽어도 흔들림이 없이 자연선택과 누적적 진화, 성선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므로.
이제 더이상 철학적으로 무지한 내가 부끄럽지 않다. 그들은 말이다, 괜히 막 꼬아 놨다. 어렵게... 그리고, 그걸 번역한 사람들 말이다... 자기들도 이해 못하는 거 번역해 놓으니, 그 지경이지. 이제 내가 무지해서 그 텍스트를 읽어내지 못했다고 하지 않을란다. 왜냐... 자기비하가 언제까지 나를 지켜주지 않을 것이므로.
라캉이 어려워, 지젝이 읽어주는 라캉을 읽다가 중간 좀 지나 포기해 버린 것... 나는 물론 도서관에 반납해야 할 시간이 도래해서..라고 스스로도 믿어버렸지만... 재대출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 후 내가 집어든 책은 도덕적 동물이었더란 말이다.
각 장이 너무나 명쾌하고, 즐겁지 아니한가? 설명해낼 수 없는 현상이 없을 정도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물론 그 이야기를 여기다 다 적을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위선적이었는지, 그것이 그야말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었고 나름 잘 먹혀 왔다는 것, 그리고 그 위선은 '위'를 향하지 않아 '권력지향적이지 않음'으로 잘 포장되었지만, '아래'로 항해 더 많은 수의 '동지'를 만들었다는 것은 그야말로 '낮추는 척 권력 취하기'의 다름 아니었는가 말이다. 어느 책이라서 이리 명쾌하게 나를 발가벗길 수 있을까? 온천에 가서 한참 온욕하고, 목욕관리사에게 관리 받고, 그리고도 노천온천에서 햇빛 쐬가며 목욕 즐기는 만큼이나 명쾌하게 옷벗기가, 바로 나에게 있어 진화론자들의 책 읽기다.
한 줄 한 줄에 A-ha하면서 읽었지만, 오늘 유난히 눈에 들어온 문장 하나만 인용하자.
"인간은 어떤 행동주의자들이 한 때 상상했던 것처럼 오점이 없는 경력의 소유자들이 아니다. 인간은 분투해야만 억제할 수 있는 악명 높은 성향을 소유한 유기체다. 우리는 지위를 추구하는 비열한 융통성 때문에 낙관주의를 견지하기가 힘들다. 인간은 존경을 받기 위해서라면 군자처럼 행동할 수도 있고, 짐승처럼 행동할 수도 있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인간은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것이다.(384p~385p)"
더이상 덧붙일 말이 무엇이 있을까만, 어떤 대의명분을 들이대더라도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변명이 아닐까?하는 나의 요즘 생각에 들어 맞는 문장이라 이리 열광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려나.
아아아.... 왜 돌고 돌고 돌아서 이 책을 손에 넣게 되었을까? 그러나, 조금 더 일찍 이 책을 손에 쥐었다면, 난 계속 라이트 아저씨와 싸우면서 책을 읽었을 지도 모른다. 웃기지 마세요, 아저씨... 인간은 조금 달라요, 우리가 침팬지와 비교나 되나요? 왜 그래요? 그렇게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들어서 남는 게 뭐있죠? 쳇. 분명히 어렸을 때, 부모님의 사랑이 부족했을 거예욧, 아저씨는... 하며 떼썼을 수도 있겠디.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A-ha, Mr. Wright!! 한다.
그리고 한국의 몇몇 아저씨들에게도 몇 마디, 산다는 것은 '부끄러움을 쌓아간다고 말하는' 아저씨들...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러나 말이죠, 그러면서도 박민규씨처럼 유쾌하게 말하자구요! 칼들고 덤비면 적대적으로 나오던 사람들도, 웃으면서 이야기하면 찔리는 지도 모르고 웃잖아요. 좀 돌려서 말해봅시다요! 살아 남아야 적자가 되지 않겠습니까?
See you later, Mr W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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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도덕적 동물 15장. 다윈주의자와 프로이트주의자의 냉소주의 16장. 진화윤리학 17. 도덕과 유전자 18. 다윈, 종교를 갖다
6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읽으면 좋은 것!
다 읽고 나면 그 종결감이 책무게만큼이나 쿵하고 몰려온다. 그만큼의 아쉬움도 크다. 그렇게 두꺼운 페이지를 다 읽었음에도, 나의 이해는 책에 미치지 못하고, 나의 호기심 또한 모두 채워지지 못한 것. 채워지지 못한 호기심에 연루되어 또, 그 다음 책을 읽게되는 중독...
재밌는 발견, 인간이라는 종의 '도덕'의 시작은 개체의 이기심을 채우기 위한 불온한 시작이었다는 것. 그러나, 인간의 뿌리깊은 이기심을 제대로 이해해야 오히려 '도덕적일 수 있다는 역설'만큼이나, 로버트 아저씨의 책도 재미나다. 이기심을 채우기 위한 호혜적 평등에서 '사랑, 우애, 평화, 감사' 등에 대해 아주 신랄하고 냉소적인 입장을 견지하던 로버트 아저씨, 마지막, 감사의 말.... 원고를 부분적으로 읽고 충고를 아끼지 않은 사람들, 주제에 관해 토론해주던 사람들, 책을 내는 데 환경을 제공해 준 많은 사람들... 사람들...사람들... 해밀턴, 데이비드 버스 등 나조차도 알만큼 유명한 진화론자들이 저 부류의 사람들에 끼어 있을 만큼 전문성을 인정받은(다시 말해, 지위가 높은) 학자들과의 사회적 유대를 맺고 있다는, 귀여운 자기과시처럼 보이는 것은 책 내용과 연결지어 그렇겠지?
인간의 뿌리깊은 이기심, 친족관계에서 나타나는 우애, 친족에서 더 큰 집단으로 확장되는 호혜적 이타주의, 결국, 자신의 유전자적 생존에 이롭게 되는 구조...
모두 같은 출발점에서 시작했으니, 누구를 비난하며, 나라서 그 비난에서 자유로울까? 그런데, 저녁식사를 위해 모인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해 저녁식사를 먹은 격이 되어 버린 것, 그 주도자가 내가 아닌가 하는 부끄러움..... 내가 무슨 자격으로...
인간의 본성에 대한 속시원하고, 신랄한 파헤침이 돋보이는 책이었다. 내 '본심'을 의심하고, 상대방의 '의도'를 의심하고, 의심하고, 의심하고.... 파고들어 보니, 인간이 참 별거 아니구나... 결국 다시 그 깨달음.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고백도, '너는 나에게 어떤 면에서건 보탬이 된다.'라고 돌려 듣게 되는, 그래서 서글프지만, 속시원한, '선한 동기'란 결코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것을 인정함으로써 비로소 '선해질 수 있다는 것'...
이거봐라, 이거봐... 동어반복적인 이야기 계속하고 있는 거보니, 아직 책을 제대로 다 곱씹지 못했다. 그러면 어떤가.... 뼈속깊이 이기적인(쾌락, 부, 지위의 획득을 위한) 게 사람이라는 것, 다시 한 번 확인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 사람의 중심에 내가 있다는 것, 그걸 알았으니... 더 겸손해질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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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0여 페이지의 꽤나 방대한 분량이다. 저자의 의도는 대충 접했다고 하더라도, 이 내용을 소화시키기 위해서는 한참의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는 느낌이 우선 든다. 인 상을 정리해보자면 크게 3가지 정도가 있다. 앞부분에 주로 언급된 성과 관련된 진화심리학, 후자에 주로 언급되어 있는 (이런 표현이 자주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생명기계로써의 인간의 본능/본성과 윤리의 문제, 그리고 전체적으로 언급되는 다윈 개인의 삶과 그에 대한 심리학적인 분석. 이 저술이 기술적으로 훌륭하다고 한다면, 찰스 다윈의 개인의 삶과 그의 이론에서 비롯한 진화심리학이라는 분야을 잘 조합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점이다. 남성으로써의 다윈, 경쟁자에 대한 다윈의 태도, 다윈의 윤리의식의 허와 실, 다윈의 교육관, 종교관 등등등... 웬만한 자연과학자 개인의 삶을 그의 학문적 업적과 사상을 기반으로 한 패러디 식으로 풀어낸다는 것은 웬만하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보여지는데... 다윈 개인의 독특함도 있고, 그의 업적분야가 가지는 특성도 있고, 하여간 지루할 수 밖에 없는 대작임에도 불구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하는 핵심요소가 바로 다윈의 삶이었다. 성 과 관련한 진화심리학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마초이즘'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다지 좋은 뉘앙스가 아닌것임은 알지만, 나쁜 뜻 없이 그렇게 말하겠다. 누구라도 이 책에 쓰여진 성역할에 대한 문구를 행간 의미를 무시하고 그대로 인용하면, 나쁜뜻으로 마초라는 말을 피하긴 어려울꺼다. 이러한 오해는 사회생물학, 유전자결정론... 등에 대한 의심과 때로는 오해의 맥락과도 통하는 바가 있는데, 저자는 나름 약간의 신경을 쓰면서 그런 부류와는 거리를 두려고 한다. 어쨌든 한가지 인정해야 할 것은, 적어도 나로서는 알지 못했던 방대한 연구사례들을 언급했다는 것이고, 그것이 지난 수백만년동안의 소위 선조들의 삶 - 남녀 성구분 - 에 대해서는 나름 타당한 설명이 될 수도 있겠다는 점이다. "... 남자들이 언제인가 모여 앉아 한 남자에 한 여자라는 타협안을 이루어 냈다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일부다처제가 평등주의적가치, 보다 엄밀히 말해 남녀 간의 평등이라기보다는 남자들 간의 평등에 부응하여 사라지는 경향을 띠게 되었다는 것이다. .." 이건 뭐 새로울 건 없는 주장 혹은 사실이겠다. 하지만 남성들의 난봉성향, 여성들의 성에대한 소극적인 태도와 그 근거인 출산의 부담, 그리고 경제논리를 추가한 부모의 양육에 대한 부양부담에 따른 성적취향 및 행위의 변화에 대한 분석글들을 읽다보면, 어쩔 수 없이(?) 마초적이란 느낌을 지울 순 없다. 그래도 하나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는 문장하나가 인상적이었다. "남자의 마음이란 과거 여성들의 행동이 어떻게 진화해 왔나에 대한 기록이며, 그 역도 마찬가지다." 어찌보면 자명하기까지 한 이 주장... 언젠가는 이런 주장이 확고한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 혹은 부정하는 것이 가능해질까? 책 마지막 부분에서 난데 없이 커트 보네거트가 떠올랐다. '자유의지'에 대한 저자의 부정적인 언급을 보고서 말이다. 사실 '주의주의'라는 것 빼고는 현대의 대부분의 철학사조들 - 구조주의에서부터 이 책이 말하는 심리의 진화(유전자 등에 근거한) - 은 '자유의지'라는 것을 부정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도 그 궤를 같이하면서, 거의 유전자 결정론에 가까운 주장을 한다. "심리학자들이 인간 정신이 형성되는 과정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들은 인간 종이 형성되는 과정을 이해해야만 한다." 상당한 자신감이 뒷받침되는 주장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저자는 절대로 '몇번 염색체의 어떠한 염기가 개체의 어떤 특징을 결정한다'는 식의 천박한 주장은 하지 않는다. 어찌보면 엄밀하게, 그리고 어찌보면 모든 자연과학이 그렇듯이 "그럴 수 있는 성향, 확률을 제시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에드워들 윌슨이나 리차드 도킨스, 이들이 많은 비난과 논쟁을 일으키면서도 계속 살아남는 것은, 뭐 어떠한 빽이 있어서일 수도 있지만, 정말 인간이 스스로가 기대하고 희망하는 것보다는 자유로운 여지가 별로 없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계속 제시되고, 그런 결과들이 제출되기 때문이라고 본다. 뭐 그런 결과 자체가 편향된 시각에서 비롯됬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앞에서처럼 얄팍한 주장이 아닌 다음에서야, 이드-에고-슈퍼에고가 되었든, 이데올로기와 구조결정론이 되었든, 아비튀스와 최종심급이 되었든, 신이 부여한 개인의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것은 이미 대세가 아닌가 싶단 말이다. 저자 가 언급한 토마스 헉슬리의 다음 발언이 인상깊었다. "사회의 윤리적인 진보는 우주의 과정을 모방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를 회피해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회의 윤리적인 진보는 그것과 투쟁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 ... 웬지 나우시카가 떠오르지 않나? 이런 언급들 그리고 기조들이 일관되게 발견되기 때문에, 이런 마초적이고 기계론적인 저작에 대해 쉽게 딱지를 붙이기는 어려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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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심리학으로 들여다본 인간의 본성’이라는 부제의 이 책은 다윈의 진화론에 기대어 인간의 행동과 심리를 논의하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다윈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라는 제목의 머리말에서 이 책의 저자는 다윈에 의해 진화론이 제기된 후 이에 대한 비판들이 쏟아지면서 개선된 이론으로 정착했고, 그 결과 다양한 분야에서 ‘새롭게 개선된 다윈의 이론을 인간에게 적용하기 시작했으며 자신들의 이론을 새로 수집한 자료를 가지고 검증’했던 사례들을 적시하고 있다. 그리하여 ‘인류학과 심리학 그리고 정신분석학 분야’에서도 진화론에 바탕을 둔 이론과 연구 결과들이 도출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저자의 의도는 진화론이 지닌 의미와 그것이 전개되면서 다른 분야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를 밝히고자 한 것으로 이해된다.
저자는 ‘이 책의 중심을 차지하는 것은 진화심리학’이라고 전제하면서, 이른바 ‘다윈주의’를 문화에 적용하는 것에 대한 다양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인간 본성에 대한 생각은 불가피하게 도덕에 대한 이해에 많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실상 1부의 ‘섹스, 로맨스, 사랑’이라는 항목은 다위주의에 대한 자연과학적 성찰을 토대로, 그것이 남성과 여성의 결혼으로 귀결되는 ‘도덕적’ 문제들에 대한 저자 나름의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고 이해된다. ‘신의 섭리’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사고했던 당시의 서양의 사상사에서, 다윈의 진화론이 제기될 때까지만 해도 서양의 주류 학계에서 쉽게 받아들여질 수 없는 이론으로 취급되었다. ‘신과 인간’의 문제를 중심에 두고 사유하던 이들에게 ‘원숭이로부터의 진화’에 의해 인간이 되었다는 진화론의 주장은 불경스럽게 여겨졋을 것임은 명백하다고 하겠다.
부제에서 ‘진화심리학’이라는 이론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 책의 주요 내용은 다윈의 일대기를 추적하면거 그의 삶을 서술하는 일종의 ‘다윈 평전’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도덕적 인간>이라는 제목 역시 다윈을 예로 들어, 그가 살았던 빅토리아 시대의 문화와 도적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아울러 도덕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으로서 삶의 지향으로 품고 있어야 한다는 당위를 주장한 것으로도 파악이해되기도 한다. 그리하여 1부에서 다윈이 살았던 시대의 사회적 조건과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설명과 함께, 2부의 ‘사회적 유대’와 3부의 ‘사회적 경쟁’의 주요 내용은 다윈의 일대기를 추적하여 서술한 일종의 '다윈 평전'에 해당한다고 이해된다. 마지막 항목인 ‘도덕적 동물’은 다시 진화론에 입각한 이론들이 프로이트의 심리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이러한 관점에서 ‘진화윤리학’과 ‘도덕’의 문제까지 연결될 수 있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아마도 저자는 다윈의 일대기를 염두에 두고 이 책을 기획하면서, 그가 남긴 ‘위대한 유산’인 진화론이 심리학으로 전개되는 과정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고자 했던 것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그러한 적절한 예를 다윈의 생애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으며, 다윈의 ‘도덕적 생활’이 진화론을 정립할 수 있었던 주요한 계기가 되었음을 주장하고자 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책의 서술 방향이 다윈의 일대기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진화론의 이론적 근거나 진화심리학에 대한 내용은 오히려 부차적인 내용으로 서술되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리하여 독자로서는 이 책을 읽는 동안 기획 의도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다윈 평전’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그의 일대기와 함께 진화론에 관한 설명과 전개 과정에 초점을 맞추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아울러 저자가 역점을 두고자 했으나 이 책에서는 미약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었던 ‘진화심리학’에 관한 서술은 별도의 기획으로 저술될 수 있었다고 하겠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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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기적이라는 말이 나쁜 의미로 쓰이는 것이 불만이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이기적이라는게 내 생각이다. 루터는 성자란 그가 행하는 모든 행동이 이기적이라는 것을 이해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내가 자식과 배우자를 위해 고통을 감수하는 것은 그것이 나에게도 유익한 일이라는 걸 아는 탓이다. 에디오피아의 굶주린 사람을 위해 돈을 기부하거나 모르는 사람에게 친절한 것도 다 자기 만족을 위해 그런 것이다. 그런 행동을 함으로써 나는 내가 존재할 만한 사람이라는 가치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을 위해서 산다. 남을 위해 평생을 보낸 사람이건 오로지 자기 이외에 아무도 돌보지 않는 사람이건 둘 다.
인간에게만 있는 친절, 양심, 배려, 우애 이런 이타적 행동은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된 덕목이다. 원래부터 디자인 된 거라면 왜 어떤 사람은 친절하고 배려깊고 양심적인데 다른 어떤 사람은 무례하고 무시하고 양심에 털이 난 것일까? 문제는 인간에게는 두가지 모두가 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사회적 환경에 따라 유도되고 발현되는 것이다. 만약 양심적인 사람이 권력과 지위를 획득하기 더 쉬운 환경이라면 양심 유전자는 멀리 멀리 퍼질 것이다. 반대의 경우라면 양심 유전자는 사라질 것이고 털 난 양심이 자리를 잡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진화심리학자는 대단히 도덕적이다.
여자가 배우자를 고를 때 경제력과 지위를 따지는 것은 자기가 낳은 자식이 보다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겠구나 싶어서이고 남자가 젊은 여자를 다수 원하는 것은 자기 유전자를 많이 많이 퍼지게 하기 위해서다. 진짜 이기적이게도 부모는 잘나고 똑똑한 자식을 더 사랑한다는 것이고 자식의 결혼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것도 유전자를 효율적으로 보존하기 위해서다. 유전자는 행복에 관심이 없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이 행복한 결혼을 하기 보다 효율적인 결혼을 하길 바라는 것은 다 이 때문이다.
이 책은 인간 종의 결혼과 사회적 유대, 지위를 둘러싼 경쟁을 다윈의 삶을 통해 들여다 보았다. 다윈에 대한 다윈주의적 분석인 셈이다. 다윈이 어떻게 결혼 상대자를 선택했고, 형제관계는 어떠했으며 자식을 어떻게 키웠으며 친구관계는 어떠했는가를 알려준다. 다윈이 과학자로서의 지위를 어떻게 획득했는지도 보여준다. 다윈주의적 분석은 다윈을 굉장히 이기적, 야망가, 위선자로 바라본다. 그러나 다윈은 실제로 빅토리아 시대의 어떤 사람보다도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였다.
이 책의 부제는 진화심리학으로 들여다본 인간의 본성이다. 본성은 그런 것이다. 천하의 다윈이지만 그도 동물이고 본성을 지닌 것이다. 다윈의 전기를 읽는다 해도 이보다 더 흥미진진하진 않을 것 같다. 600쪽이 넘지만 시종일관 흥미를 갖게 하는 재미있고 힘있는 책이다.
*뒷쪽으로 갈수록 오타가 눈에 띄어 편집/구성에서 별 하나를 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