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리뷰를 '무쟈게' 써댔다. 그땐 글쓰기 창을 열면 리뷰라는 것이 막 쏟아져 나왔다. 퀄리티 둘째치고, 무척 빠른 속도로 다다다다 쓴 다음 끝~하고 창을 닫았다. 운 없어서 날리거나 말거나 옮겨적기 같은 것도 하지 않았다. 모든 과도한 일이 그렇듯이 지금은 후유증 기간인가...리뷰가 써지지 않는다. 아니, 뭣도 잘 써지지 않는다. 그래서 책을 읽기만 하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책은 리뷰를 좀 써야 할 것 같아 무거운 손가락을 놀리는 중이다.
소위 빙의해서 읽었기 때문이다. 빙의해 읽는 책은 객관화시켜 볼 수 없다. 그래서 이 책이 어떻다 말할 수 없고, 그저 지금 이 순간 이 책이 손에 잡힌 걸 인연 쯤으로 여기기로 한다.
시선공포증, 대인기피증, 사회공포증 등의 마음앓이를 하는 아이들의 인터넷 카페. 밀폐된 공간에서 남과 만날 수 있는 곳. 학교(사회 또는 제도)에서 견디지 못한 아이들이 모인 그곳에 빔과 앨리스가 있다. 그애들이 왜 못 견디느냐고? 잘 견디는 아이가 훨씬 더 많은데! 답을 하자면 아이가 다 다르기 때문이고, 아이가 지닌 상처가 다 다르기 때문이며, 결정적으로 사회가 이렇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인마, 실력보다 면허증이 우선이야." -p.73 "이 대한민국 사회는 말야, 웃기는 얘기지만, 고등학교는 나와야 그나마 금수 취급은 면한다고. 너, '금수'라는 말 알지? 다시 말해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최저 임계선이, 너 임계선이라는 말도 알지? 그 최저 임계선이 '고졸 학력'이라고 생각하면 된단 말이지." -p.78
빔과 앨리스는 어느 날 만나기로 한다. 빔은 엄마가 교통사고 입은 상해의 보상으로서 받아놓은 할리 바이크를 타고 앨리스와의 만남을 향해 세상 속으로 나선다. 보통의 엄마가 할 선택으로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할리를 집 마당에 부려놓은 엄마는 빔에게 이렇게 말했다.
-얼마나 다행이야. 양심적인 사람 차에 치였다는 게. 돈 있는 사람이 그렇게 겸손한 경우는 내 생전 처음이다.-p.79
시선공포증이 있는 앨리스가 빔과 만나러 나올지. 빔은 할리를 타고 어떤 이들과 만날지...그런 것들이 궁금한 가운데.. 예상했듯이 빔은 온갖 우여곡절을 겪는다. 그건 빔 자신으로 인한 게 아니라 주로 '할리' 때문이다. 이 역시 예상했던 일이다. 사람들은 빔보다 할리에 더 눈길을 보낸다. 빔은 할리를 지키기 위한 고독한 싸움에 나선 전사처럼 되어 간다.
역시나 할리에 눈길을 주었던, 길에서 만난 바이크족은 빔에게 이런 말을 해준다.
"온로드에서 하는 건 기껏 질주 아니면 폭주 아냐. 하지만 오프로드는 '탈주'라고. 근본적으로 달라." -p.109
그는 오프로드가 스스로 '길을 만들어 가는 여행'이라고도 이야기해주면서, 그 일이 매력적이지만 더럽게 외롭다고도 말해준다. 사실, 온로드를 가지 않는 모든 이들이 얼마나 외로울지는 불문가지다. 빔과 앨리스가 활동하는 카페의 패로디라는또 다른 아이는 기껏 다시 돌아간 학교에서 반 평균을 많이 까먹은 아이들 대열에 끼어 교단 위로 불려올라가 문제를 풀어야 했고, 다시금 학교를 나왔다. 오프로드로 나간 대가다. 그 아이가 외롭지 않다면 누가 외로울까. 온로드가 뭐기에. 오프로드로 가면 안 되나?
오늘 아침, 한겨레 신문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자퇴 내지 퇴학 당한 아이들이 순위 매기기에 의해 강제로 떠밀린 것이며 세상에서 설 곳이 없다는 기사를 쓴 기자에게 모진 소리를 해대는 독자 댓글을 읽다가 나왔다. 그들, 그들은 자신들의 자녀가 온로드에서 절대로 밀려나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들일 것이었다. 그럼 다행이고.
책의 마지막은 반전이다. 반전을 알고 나면 복선이었구나 하는 대목들이 다시 짚힌다. 창비에서 먼저 나왔던 <라일락 피면>의 '널 위해 준비했어'를 모티프로 했다는 작가 말에 저 책을 꺼내 훑었다. 읽었는데 전혀 기억에 없었구나 했다.
아무튼지, 오프로드는 길일까, 아닐까.
가장 서늘했던 대목. "꽃이 워디 사람 기다려주는 거 봤간. 눈 한번 깜짝할 새여, 피고 지는 거."-p206 |
|
강요된 단 한 가지 길만이 진리로 오인되는 현재, 성공을 했건 하지 않았건 우리 모두는 피해자이다.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게 무언지 묻지 않았다는 점에서 동시에 우리 모두는 가해자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질서는 이미 오래전에 피어난 것으로 단 몇 명의 반란에 의해 전복될 정도로 약하지 못하다. 많고도 많은 희생자들의 탄생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그들의 일탈 행위를 비난하면서도 동시에 그들처럼 반기를 들지 못했음을 서러워한다. 사실 저마다 내면에는 현실로부터 벗어나고파 하는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다. 굳이 10대가 아니어도, 매일 넥타이 매고 반듯한 차림으로 출근을 하는 샐러리맨들도 꿈꾸는 게 자유라 했다. 정갈하게 포장된 도로가 아니라, 가끔은 거친 들판을 거닐고픈 마음을 한 번 즈음 품어보지 않은 자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이런 심성은 철없는 무언가로 여겨질 때가 많다. 아직 어린 아이어서 사리분간을 잘 하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 물정을 모르니까 가질 수 있는 생각이라며, 때가 되면 괜찮아질 거라고 어른들은 말한다. 모두가 꿈꾸는 오프로드에 나선 이들이 있다. 아직은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들이 많은 10대 아이들, 숱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세상을 그리고 인생을 깨닫게 될 그들의 현 모습은 그다지 긍정적이지가 못했다. 진짜 이름이 무언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사이버 공간에서 사용되는 닉네임이 그들의 진짜 이름을 대신하고 있었고, 어쩌면 모습 역시 그들이 스스로 창조한 아바타가 대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익명성에 기대어 그들은 상대와의 대화를 시도한다. 서로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 오히려 그들에겐 약이었다. 자신의 상처를 드러낼 수 있는 공간에서 그들은 비로소 제 마음을 상대에게 표했다. 하지만 채팅방에서 제 아무리 많은 말을 나누었을지라도 그들은 직접 대면한 적 한 번 없는 남이었다. 안다고 말해도 진짜로 그것이 아는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는,... 마치 완성을 앞둔 퍼즐의 마지막 한 조각을 찾아 떠나듯 빔의 이야기는 전개되었다. 제 어머니가 남긴 마지막 유품이라 할 수 있는 고급 오토바이만이 그의 곁에 머문다. 목적지는 언젠가 앨리스가 말했던 P. 무작정 떠나면 앨리스를 만날 수 있을 것이고 P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며 빔은 믿는 듯해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한 마리의 새가 탄생하기 위해 알 껍질을 깨고 나오는 과정과도 흡사한 것이었다. 어두컴컴한 곳에서만 상영되는 영화로부터 벗어나야만 하고, 컴퓨터 속 이상한 나라의 문을 박차고 나와야만 하는,... 그것은 단순한 일탈이 아니라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었다. 할리데이비슨 따위로 제 상처입은 마음을 가리 상태로는 절대로 이룰 수가 없는 꿈을 빔은 꾸고 있었다. 그가 만난 세상은 뒤틀려 있었다. 자유를 만끽하는 듯해 보였던 바이크족은 사실 도로의 무법자에 지나지 않았다. 어른이라 하여 달리 세상을 살아가는 현명한 방법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 역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몰라 고민 중인, 세상 앞에서는 어린 아이에 불과했다. 오히려 PC방에서 알바를 하며 살아가는 ‘찬우’에게서 빔은 이제껏 자신을 살게 했던 집착이 실은 자신을 갉아먹고 있음을 깨닫는다. 스스로를 놓아 버린다.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가장이라는 단어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이래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그렇게 빔은 성장을 경험한다. 내가 그토록 하고팠던 성장을,... 생각해 보면 아직 우린 정해진 길로부터 벗어나는 모험을 감행하지 못한 풋내기에 불과하다. 다가오는 성장통이 무서워 성장 자체를 거부해버린 어린 아이가 바로 내 자신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단 한 번이라도 내가 원하는 게 무언지 내 자신에게 난 물어본 적이 있었던가. 혹 패로디처럼 인생의 전면에 나서지는 아니한 채 어른 행세를 해왔던 것은 아닐까? 소설을 통해 나를 돌아본다. 충분히 성장했는지를 묻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