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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귀레, 신의 분노>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지 않는다>로 만난 베르너 헤르조크 감독. 이 감독의 영화 모음이 나왔기에 더 생각할 것 없이 질렀다.
드라큐라 백작을 다룬 <노스페라투 Nosferatu: Phantom der Nacht / Nosferatu The Vampyre>와 영화 <피츠카랄도>를 찍을 때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꿈의 무게 Burden Of Dreams>에다, 감독이 싫어하면서도 좋아한 배우 클라우스 킨스키를 그리고 있는 <나의 친애하는 적 My Best Fiend>이 들어 있지만, 그래도 나를 잡아당긴 것은 1982년에 만들어진 <피츠카랄도 Fitzcarraldo>다.
제 꿈을 이루려고 온 힘을 바친 사내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게다가 이 감독과 같이 대여섯 편의 영화에 나온 클라우스 킨스키는 영화 속에서 늘 얼굴을 찌푸리고 성을 내는 모습을 보이지만, 여기서는 웃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더 값진 영화인지도 모른다.
2. 아마존 강가에서 철도 사업을 하다 말아 먹고 이제는 얼음 공장을 하는 피츠카랄도(클라우스 킨스키). 제가 좋아하는 오페라라면 불물을 가리지 않고 구경하러 가는 그에게는 꿈이 하나 있다. 엔리코 카루소의 노래를 아마존 강가의 이키토스 마을에서 들을 수 있도록 오페라 하우스를 만드는 것. 제 생각을 다른 사람들한테 말하고 돈을 거두려 하지만 씨도 안 먹힌다. "오페라를 여기서 듣겠다고...꿈 깨!...그럴 돈이 어디 있어"
사랑하는 몰리(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만이 피츠카랄도의 마음을 알아준다. 그래서 말한다. "얼음 공장보다는 고무를 가져와 돈을 벌어야 해요" 아마존 강가에서 고무 농장을 하며 돈을 많이 번 돈 아퀼리노(조시 루고이)처럼.
고무나무가 많은 곳은 벌써 다른 사람들이 터를 잡았으니 피츠카랄도가 갈 곳이 없다. 그런데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듯이, 피츠카랄도의 눈에 들어오는 땅이 있다.
아마존에서 갈라져 들어가는 유카얄리에는 깊고 세찬 여울이 있어 배가 지나가지도 못하는 곳이 있는데, 배가 갈 수 있는 퐁고 아래쪽은 아퀼리노가 자리 잡았으나, 여울이 있는 퐁고 위쪽은 임자가 없는 곳이다.
3. 피츠카랄도는 몰리를 닦달한다. "좋은 땅을 찾았어...빨리 사야 해. 내게 돈을 걸어. 몽땅..." 몰리가 돈을 내주면서도 "당신은 정말 괴짜야..." 할 수밖에 없다. 페루에서는 땅을 사더라도 아홉 달 안에 개발을 해야 제 것이 되므로, 빨리 일을 벌여야 한다. 어떻게 하면 퐁고 위쪽으로 가서 1,400만 그루나 있는 고무나무에서 고무를 캐올 수 있을까?
피츠카랄도는 유카얄리쪽 강과 파치테야쪽 강은 산을 사이에 두고 거의 만날 듯 가깝다는 걸 알았다. 파치테야쪽 강에서 산을 넘어 다른 강가의 고무나무 숲에 이르고, 고무를 캐서 다시 산을 넘어오면 끝. 돈 벌기가 이렇게 쉽다니...
그런데 파치테야가 만만한 곳이 아니다. 고무나무는 거의 없고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알려진 캄파스 무리나 히바로스 무리들이 사는 곳이다. 몇 해 앞인 1898년에 그곳으로 가다가 두 사람의 신부가 목이 잘린 채 죽었다. 모두 가기를 꺼려 한다. 그렇지만 피츠카랄도는 가야 한다. 오페라 하우스를 아마존 강가에 지으려면.
피츠카랄도는 증기선을 사서 손을 보고는 배를 몰고 갈 사람들을 모은다. 지난 번 파치테야로 가다가 돌아온 폴을 배의 선장으로 삼고, 엔진을 잘 다루는 촐로와 술주정뱅이지만 먹을거리를 만드는 에레키키와 여러 사람들을 데리고 떠난다. 어디에 가는지, 왜 가는지를 알리지 않고서. 알면 안 가려 할 것이고, 가더라도 가운데서 달아날 테니까.
4. 잘 짜여진 줄거리와 촘촘하게 얽힌 얼개도 쌈박하고, 볼거리도 많은 영화다. 게다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잘 담았다. 이키토스 마을 사람이든, 히바로스 무리든.
그런데 만들기가 쉽지 않은 영화로 보인다. 그래서 감독이 고마웠다. 강과 강 사이에 있는 산을 깎아서 큰 배를 옮기는 게 여간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감독은 해냈다. 영화 속에서는 피츠카랄도가 말한다. "엄청나게 큰 나이애가라 폭포를 처음 본 서양 사람이 눈으로 보았다고 했듯이, 누가 증거를 보자면 내놓을 것이 없지만 내가 가서 해냈노라고 말할 것이다..."
배를 산으로 끌고가는 장면을 찍다가 사람이 다치고 죽었는데, 그걸 영화 속에서 생긴 일로 슬쩍 돌려버린 대목이 나온다. 찍다가 벌어졌던 일을 영화 속으로 옮기다니 감독의 재빠른 솜씨가 놀랍다.
인디언 히바로스 무리도 머리가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서 피츠카랄도가 하는 일을 돕기는 했지만 남모를 꿍꿍이속이 있었으니, 피츠카랄도의 생각 대로 다 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산을 옮겨서라도 오페라 하우스를 지을 겁니다" 했던 그 뜻은 이루려 한 셈이다.
어리석다는 우씨 할아버지가 산을 옮긴 것에 견주어도 될 일을 피츠카랄도가 해낸 것이다. 그래서 배 위에서 시가 담배를 피워 물고 뿌듯한 웃음을 짓는 피츠카랄도의 모습은 덤에서 보여주듯이 바로 영화를 어렵게 만든 감독의 모습일 것이다.
영화 속에서 인디언이 하는 말뜻이 좋다. 고무나무는 '우는 나무', 금은 '해의 땀방울', 벌은 '꿀의 아버지'...
5. 오페라를 보고 와서 몰리가 피츠카랄도한테 "같이 있지 않을래요?" 할 때, 몰리가 사는 잘 지은 집이 별로라면서 뿌리친다. "난 변두리가 더 좋아. 거긴 참구경꾼이 있어..." 아이들과 돼지와 함께 축음기로 오페라를 듣는 것도 좋겠지만, 몰리를 내치는 건 좀 아니다 싶다. 그랬다가 나중에 몰리의 집에서 같이 그물 침대에서 지내는 건 또 뭐람? 영화만으로는 두 사람이 그냥 사랑하는 사이인지, 옆지기인지 가리기가 어렵다.
이 영화는 오로지 클라우스 킨스키의 영화다. 감독의 생각 대로 움직이긴 하지만 보이는 건 그 뿐이니까. 시간이 걸리고 산을 깎더라도 큰 배를 강가에 이르게 하려고 애쓰는 모습은, <아귀레, 신의 분노>에서 아마존을 짓밟으려 하는 미친 사람 노릇과는 조금 다르게 보일지 모르지만, 남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제 꿈을 이루려고 한다는 뜻에서 보면 미친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
다른 사람들은 우습게 여겨도 오페라 하우스를 짓겠다는 피츠카랄도를 돕는 몰리를 맡은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는 우리 나이로 마흔다섯 살에 이 영화에 나왔어도 여전히 눈부시다. <레오파드> <로코와 형제들>에 나올 때의 탱탱하던 볼살이 빠진 듯해서 잘 몰랐는데, 날씬한 몸매는 달라진 게 없고 이젠 은근하게 와닿는 아름다움마저 느껴져 좋았다.
흰 옷을 입고 커다란 눈에 노란 머리카락을 날리며 굽히지 않고 나아가는 피츠카랄도 덕분에 아마존 강가에서도 엔리코 카루소가 나오는 오페라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곳에 사는 페루 사람들은 피츠카랄도나 몰리 만큼 오페라를 좋아할까? 공들여서 오페라를 들려주는데 그곳 사람들이 반기지 않을까봐 내가 괜시리 걱정이 된다.
6. 벌써 서른 해가 지난 영화지만 디브이디는 화면이나 소리가 좋다. 집에 있는 텔리비전으로 볼 때 몇 대목에서 가다가 멈추고 해서 짜증이 났지만, 컴퓨터로는 아무 탈이 없이 잘 돌아가는 걸 보면 이제 우리집 디브이디 기계도 늙었나 보다.
덤(보너스)은 아주 푸짐하다. 감독과 제작자가 영화를 보면서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어 마음에 든다. '소용돌이 악마'가 있다는 퐁고의 여울에서 영화를 제대로 만들려고 큰 배를 두 번이나 띄워 찍다가 배에 탄 배우들이나 찍는 사람들이 죽을 뻔 했다는 얘기도 들어 있다.
영화는 157분인데 덤은 무려 376분이다. 우리나라 평론가 둘이 나와서 또 영화를 보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이건 아니다 싶다. 같은 영화에 두 번씩이나 들려줄 까닭이 어디 있는지... 예고편은 이 감독이 만든 영화 여섯 편이나 보여준다. 흐미...좋은 것...19,800원이면 값도 알맞다.
얇은 디브이디 집에 넣어 네 편의 영화를 깔끔하게 싼 이 모음은 아주 마음에 든다. 덤도 다 들어 있다. 멋지게 만들었다. 다른 감독의 영화 디브이디도 이렇게 만들면 얼마나 좋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