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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화는 이 세상 풍속에 물드는 것을 말한다. 이 말은 주로 종교적 입장에서 사용하는 말이다. 기독교 입장에서 이 말을 사용하면 세속화는 성경에 담긴 진리대로 사는 게 아니라 세상의 이치대로 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기독교가 세상에 너무나 많은 것을 양보하고, 세상에 있는 것들을 무분별하게 수용하기 시작하자 갖가지 병폐가 발생하게 되었다. 기독교의 본질이 왜곡 되었다. 점차 진리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기독교의 기준이 불명확해지자 무엇이 기독교인지 혼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혼란에 빠진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 동화되어 갔다. 기존에 진리라 여겼던 것들을 멀리하고, 새로운 기준을 척도로 삼기 시작했다.
'세속주의를 경계하라'
이 책은 기독교와 세속주의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속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가르쳐 준다. 저자는 모두 5명이다. 각자에게 주어진 주제로 세속화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주요 주제를 살펴보면 '텔레비전/인터넷/영화, 음악, 물질주의, 패션감각 등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직접적으로 맞딱뜨리고 있는 사항들을 다루고 있다. 첫 장에서는 세속주의의 문제를 이야기 한다. 세속주의와 관련하여 주의 할 것과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등을 이야기 한다. 그 외에 다른 장에서는 앞서 열거한 주제들로 이야기를 한다. 몇 가지 사항에서는 그것들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한 전제하여 각각의 사항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마지막 장에서는 세상을 즐기고, 참여 할 것을 독려한다. 언뜻 보면 마지막 장은 첫 장, 그리고 다른 장들과 상반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발을 딛고 있는 곳, 십자가를 전해야 할 곳은 세상임을 생각한다면 마지막 장의 기본 주장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여러 명이라서 내용의 연속성은 떨어진다. 그러나 기본적인 관점이 다르지 않기 때문에 읽는데 부딪히는 점은 없을 것이다. 내용이 깊지 않고, 글이 설교체이기 때문에 편하게 - 가볍게가 아니다. -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수시로 변하는 세상 풍조에 기독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기독교인은 계속 기독교의 진리를 따르며 뒤쳐지는 사람들로 각인 되어야 할까? 답답한 이들로 평가 받아야 할까? 흔히 믿지 않는 이들은 기독교에 양보와 타협을 촉구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양보와 타협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불변하는 진리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는 진리 위에 서 있기 때문에 양보와 타협이 불가능하다. 양보와 타협은 곧 진리의 파괴와 부인을 의미하기 때문에 결코 물러설 수 없다. 다만 영속하는 진리 안에서 바른 삶 -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바탕으로하여 그분과 이웃을 사랑하는, 그에 마땅한 구체적인 행동이 있는 삶 - 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세상과 같아지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세상을 좇는 삶을 거부하고, 앞에서 이야기 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게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행동이고, 추구해야 할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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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는 수많은 미디어 매체에 노출되어 미디어에서 전하는 대로 우리의 생각은 지배당하게 되었고, 심지어 가치관까지도 지배당하기 시작했다. 독립정신과 반역함(“내 권위는 내 것이다!”, “생각대로, 바라는 대로”), 감성주의(“느끼는 것이 아는 것이다”), 순간에 대한 자기도취(“5년 뒤지면 이미 엄청 후진거야”), 물질을 사랑함(“그것을 가져, 그것이 널 행복하게 하고, 너의 인생을 바꿔줄거야”), 성적인 부도덕(“결혼과 순결은 구식이죠”, “혼전임신 해도 결혼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불륜이라도 사랑만 있으면 되죠”), 인생무상(“내일 죽을 테니 먹고 마시고 놀자”, “어짜피 언젠가 죽을 인생, 지금 죽자(자살)”). 어디서 많이들 보던 내용이 아닌가 싶다. 티비광고, 드라마, 영화, 음악에서 흔히들 많이 나타나는 시대정신과 철학이다. 이러한 세계관이 과연 옳은가 아닌가? 궁극적으로 세계관이 우리 삶의 방식을 결정하기 떄문에 오직 말씀만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과 세상 그리고 현실 그 자체를 받아 주시는 것을 알려주고 있으므로, 세계관이 성경말씀에 부합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이 책은 여러명의 신학자와 목사님들이 각각 챕터를 맡아서 엮어놓은 책이다. 각 챕터마다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가 얼마나 우리를 미혹하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지를 잘 설명해 놓았다. 우리가 언제든지 맘만 먹으면, 혹은 맘먹지 않아도 보고, 듣고, 즐길 수 있는 텔레비전, 인터넷, 음악, 영화, 패션은 물론 현시대를 살며 중요시 여겨지는 물질 등을 과연 기독교인이라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고, 대처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정리해주고 있다. 세속주의란 과연 무엇인가. 매허니는 세속주의란 타락한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하나님을 배격하며 자신을 높이고, 기뻐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세속주의에 빠지게 하는 것은 우리 육신의 정욕이다. 안목의 정욕이며 이생의 자랑, 즉 소유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에 대한 자랑이다. 우리는 보면서 죄를 짓고, 들으면서 사상과 가치관이 바뀌고, 소유와 물질을 쌓으면서 교만해져만 간다. 인간의 마음은 영구적인 우상 제조 공장이다. 그렇다고 모든 미디어를 차단하고, 배격하며, 절대 보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는 아니다. 이것은 율법주의에 빠질 수 있음을 경고 한다. 우리는 생각을 가지고 이것이 성경적인 부분에서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 옳은 영향력을 미치는지 아닌지를 분별하며 미디어를 시청해야 하고, 수동적으로 멍하니 시청하는 생활방식과 싸워야 한다. 성도는 복음을 통해 자신을 구별하는 사람이다. 아는 것으로만 그치지 말고 복음에 합당한 방식으로 행하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것들을 과감히 멀리해야 한다. 썩어 없어질 물질은 말할 것도 없고,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패션에까지도 이것들을 적용해야 한다고 이 책은 얘기한다. 그렇다면 세상을 바르게 사랑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첫 번째로 세상을 즐기는 것이다. 세속주의는 문제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마음에 대한 문제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이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는데 우리는 이것을 즐기지 못하고, 오히려 그 피조물을 집요하게 숭배하고 있다. 우리는 주변의 세상을 즐김과 동시에 연구해야 하는 이중적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 나갈 때에 하나님을 보다 더 잘 알게 될 것이고, 본받게 될 것이며, 하나님을 기뻐하게 될 것이다. 두 번째로는 세상에 참여하는 것이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모든 삶의 순간에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라. 마지막으로 세상에 복을을 전하라. 성경적인 세계관은 복음전도를 ‘그리스도인의 직무 유기적인 사명’이나 ‘엘리트 영성의 신호’라고 말하지 않는다. 창조주의 성품을 조명하고, 하나님의 행위를 본받고, 구원하고 회복시키고 새롭게 해 주길 원하시는 그분의 뜻을 구현하면서 세상일에 참여한다면, 그 모든 활동이 구속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이 책은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시해 준다. 무려 150년 전 찰스 스펄전이 “지금 바로 이 때의 하나님의 교회가 세상에 대해 너무나도 적은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한가지 이유는, 바로 세상이 교회에 너무나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마치 기독교가 개독교가 되어가고 있는 바로 이 세대를 살면서 말한 내용 같지 않은가. 아무 생각 없이 보고, 듣고, 생각하고, 욕심 냈던 모든 것들이 모두 하나님 앞에서 참 얼마나 부끄러운지 모르겠다. 아무런 자각증상 없이 죄 가운데 그냥 헤엄치고 다녔다는 것이 너무 속상했고, 깊이 회개했다. 나는 찬양과 기도를 하며 종종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으로 충분하다고 고백해 왔다. 그러나 그것이 내 삶에 얼마나 영향력이 없는 껍데기뿐인 고백이었던가. 이 책의 내용은 현재를 살아가는 성도와 교회가 모두 한번쯤 생각해 보고 회개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고백이 진실인가? 정말 당신의 인생에 그리스도 단 한 분만으로도 충분한가? 곰곰히 잘 생각해 보길 바란다. |